「신의 아그네스」세 여자, 16년만에 「재결합」

  • 입력 1999년 2월 2일 19시 57분


윤석화(44) 윤소정(55) 이정희(52).

83년 연극계의 신화를 만들었던 ‘신의 아그네스’의 주인공들. 16년만에 그 공연을 위해 다시 모였다. 배역도 그때와 똑같다. 이번엔 윤석화가 제작과 연출까지 맡았을 뿐.

국내 초연 당시 지방을 포함해 열달간 3백회나 공연됐고 윤석화는 단연 스타로 떠올랐다. 그 뒤 셋은 한 무대에서 만나지 못했다. 그때의 인상이 워낙 강렬했던 탓일까.

윤석화의 데뷔 25주년을 맞은 올해.팬들에게 ‘다시 보고 싶은 연극’을 물어볼 때마다 ‘신의 아그네스’란 응답이 나왔다. 10년전 캐나다로 이민간 이정희는 “다시 공연하자”는 윤석화의 전화에 두말않고 달려왔다. 지금 이들은 열여섯해 전보다 더 원숙한 모습으로 연습실의 밤을 밝히고 있다.

존 필미어 원작의 공연내용은 바뀐게 없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와 연륜이 세 배우들에게서 짙게 배어나올 듯. 이들은 “신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극의 의미를 이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또하나 바뀐 것.

80년대와 90년대, 문화를 만들고 즐기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80년대 갈채를 받았던 고민과 진지함이 가벼움으로 가득찬 이 세기말에도 통할 수 있을까. 윤석화는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은 영원한 과제”라며 이런 우려를 ‘가볍게’ 일축했다.

‘신의 아그네스’가 던지는 물음은 무겁다. 신은 존재하는가. 인간은 그 앞에 무엇이고 기적은 가능한가. 가벼운 연극이 주류를 이루는 요즘 흐름을 거스른다. 세 배우가 모인 이유도 후배들에게 거스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

어린 수녀(아그네스·윤석화 분)가 아이를 낳아 죽인다는 충격적 줄거리. 무신론자인 정신과 의사(윤소정)가 아그네스의 정신 감정을 통해 진실을 밝히려 하지만 수녀원장(이정희)은 아그네스의 순수와 기적을 믿는다.

과학적 진실만 믿는 여의사. 신의 기적을 갈구하는 수녀원장. 그 대립항의 중간에서 문제를 던진 아그네스. 마지막 대사는 의사가 말하는 “이것이 기적이기에 충분하지 않습니까”이지만 그 해석은 관객의 몫이다.

12∼19일 평일 토 오후 4시, 7시반 일 공휴일 오후 3시, 6시. 서울 종로구 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 02―747―5932

〈허 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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