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송년모임 화두]구조조정-휴머니즘

  • 입력 1998년 12월 21일 19시 24분


2차는 없다. 맥주 한잔을 놓고 조촐하게 벌이는 올 송년회. 흥청망청 이어지던 술자리 대신 알찬 프로그램으로 짜인 1차만으로 실속있게 한해를 정리하는 것이 유행.

송년회에서는 올해 우리 부서, 직장에서 생긴 일 중 10대 뉴스를 선정해 잠시나마 웃음을 머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 올해 직장인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송년회 10대 뉴스’에는 무엇이 꼽혔을까.

▼ 웃지 못할 일 ▼

올 직장인에게 가장 큰 뉴스는 구조조정과 감봉에 따른 생활고와 각박해진 직장생활. 그러나 ‘웃음’은 살아 있다.

한솔PCS 수도권엔지니어링팀의 송년회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자살소동’이 10대 뉴스로 꼽혀 좌중을 웃겼다. 경기 성남의 한 건물 5층 옥상 난간에 매달려 기지국 안테나 조정작업을 하던 김홍준주임. “진정하고 내려오십시요”라는 메가폰 소리에 놀라 내려다보니 119구조대 구급차 경찰차가 총출동해 있었다는 것. 김씨는 “직업상 높은 곳에 올라갈 때마다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하려는 것으로 오해를 많이 받았다. 올해처럼 ‘건물에 오르는 직업’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고 술회.

삼성에버랜드가 사내통신망을 통해 선정한 올해 빅뉴스 1위는 ‘마이클 잭슨 방명록 분실사건’. 지난 여름 이곳을 방문한 미국가수 마이클 잭슨의 사인이 담긴 방명록이 없어졌는데…. 영업기획 행사 홍보팀 등 부서별로 치열한 ‘빼돌리기 경쟁’이 벌어져 사라졌던 것인데 석달만에 발견됐다고. 살벌한 경쟁의 시대에 애꿎은 방명록만 ‘너덜너덜’해지는 수난(?).

▼ 인정(人情)은 살아있다 ▼

직장생활이 각박해질수록 동료간에 오가는 정성이 더욱 감동을 준다. 서울 종로의 한 생맥주집에서 열린 금강기획의 전략9팀 송년회. 여름에 상영된 재난영화 ‘하드 레인’처럼 빗속 모험을 체험한 이종채대리의 사연이 10대뉴스 2위. 산후조리차 집에 누워있던 아내와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침수된 집을 탈출한 이대리. 팀동료와 전직원이 나서 십시일반 모아준 성금에 눈물.

현대백화점에서도 백혈병을 앓던 강모대리(정보기술실)와 박모대리(본점)를 돕기위해 4천여 직원이 나서 헌혈과 성금모금 운동(총 4천8백만원 모금)을 펼친 ‘동료애’가 주요뉴스. 이들은 곧 직장에 복귀할 예정.

▼ 굿 뉴스 ▼

에버랜드에서는 직원들이 시골에서 붙잡아온 10여마리의 반딧불이를 정성껏 번식시켜 에버랜드를 ‘반딧불이 천국’으로 만든 일, 한솔PCS에서는 식권이 3천5백원에서 1천5백원으로 대폭 인하된 일이 최고 ‘굿 뉴스’.

뭐니뭐니해도 직장의 화제는 노총각 노처녀의 결혼뉴스. 경제난도 사랑의 행진을 막을 수 없었다. ㈜신원에서는 한해 평균 3쌍정도 탄생하던 사내커플이 올해는 7쌍이나 나와 구조조정의 시대를 무색케했다. 한솔PCS에서도 회사 창설 2년만에 지난달 첫 사내커플이 탄생. 같은 부서에 근무하면서 정보통신업체답게 전화할 때도 은어를 사용해 보안을 유지해왔다고.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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