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도종환씨,6번째 시집 「부드러운 직선」펴내

입력 1998-07-23 19:45수정 2009-09-25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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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문득, 묻고 싶다.

어떻게 견뎠는지, 대체 어떤 희망이 있었길래 끝내 떠나지 못했는지. ‘바람부는 들판에서’, 희망과 작별하지 못해 감내해야만 했던 그 지독한 기다림과 그리움. 그것은 차라리 시대의 형벌이었던가.

하지만 희망은 언제나 그렇듯이, 지극한 절망 한가운데에서 솟아난다.

누구의 말대로 그의 시를 읽고 있자니 아뿔싸,눈물이 나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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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 망

그대 때문에 사는데

그대를 떠나라 한다

별이 별에게 속삭이는 소리로

내게 오는 그대를

꽃이 꽃에 닿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대를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고

사람들은 내게 이른다

………………

그대가 있어서

소리없는 기쁨이 어둠속 촛불들처럼

수십개의 눈을 뜨고 손 흔드는데

차디찬 겨울 감옥 마룻장 같은 세상에

오랫동안 그곳을 지켜온

한장의 얇은 모포 같은 그대가 있어서

아직도 그대에게 쓰는 편지 멈추지 않는데

………………

매일 만난다 해도 다 못 만나는 그대를

생에 오직 한번만 만나도 다만나는 그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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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젠가, 시인 안도현을 이르기를 ‘늘 강물처럼 출렁이는 시인, 물푸레나무 잎처럼 푸른 시인’이라고 했다.

이제, 안도현은 그에게 그 찬사를 되돌려주고 싶을지 모른다. 그는 물푸레나무의 청정(淸淨)한 기운을 맑은 빛으로 풀어내는 바로 그 출렁이는 강물 같은 사람이라고.

그리고 안도현은 그 천진한 눈망울을 깜박이며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의 시가, 부드러운 화법 속에 내밀한 뜨거움을 숨기고 있는 것은 그 자신 ‘연어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바다까지 갔다가 제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마침내는 수천 수만의 알을 낳고 조용히 물밑으로 가라앉고 마는.

시인 도종환씨(44).

전교조 해직교사 10년 경력의 그.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여섯번째 시집 ‘부드러운 직선’은 올곧은 삶의 우물에서 건져올리는 따뜻한 기운으로 넘친다.

‘가지 않을 수 없었기에, 가야만 했던 고난의 길’. 그의 시는 한 시대가 지웠던 역사의 짐을 안고 단 한 발짝이라도, 반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뜨거운 삶의 기록이다.

지난 세월은 어쩌면, 그에게 열매를 많이 달고 서 있던 까닭에 허리에 무수히 돌을 맞아야 했던 상수리나무거나 갈참나무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서도 가난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겨울 나무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스스로를 ‘산골짝에서 이름없는 돌멩이나 매만지며 흐르는 한 줄기 개울’에 빗댄다. 밤에는 별을 안고 낮에는 구름을 품으며 소리없이 낮은 곳을 지키며 흐르는.

하지만 개울은 또한 바다의 핏줄이며 바다의 시작이 아니던가. 그는 진정, ‘가슴속 그 물빛으로 마침내 수천 수만 바닷고기를 자라게 하고/어선만한 고래도 살게 하는’ 바다와 같은 시인이고자 했다.

전교조, 그리고 어느새 십년 세월….

그는 그 십년동안 많은 것을 보아버렸다. 말을 갈아타고 옷 바꿔 입는 사람들, 따라갈 수 없는 가파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운동한 기간보다 운동을 이야기하는 기간이 더 긴 사람들….

‘그 길’에 나선 후로 몇은 죽고, 또 여럿은 떠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돌아섰듯이 당신도 그렇게 떠나가라는 걱정과 충고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끝내 남았다. 많은 이들이 겨울을 견디느라 눈비 품은 잿빛하늘을 닮아가도 ‘가장 여린 가지가 가장 푸르다’는 자연의 지혜를 홀로 새겼다.

브레히트의 말처럼, “우리들은 ‘우애의 땅’을 준비하기 위해 투쟁하면서 이미 우리 사이의 ‘우애’를 잃어버렸다”는 우(愚)를 범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추스렸다.

‘아주 아주 위태롭던 날 어둡고 슬프던 날/벼락을 대신 맞고 죽어간 나무가 있고/그 앞에 어린 순을 내미는 나무가 함께 있다/…첫서리 내리면 잎을 버리고 몸 사리는 나무와/한겨울 내내 푸른빛을 잃지 않는 나무가/함께 모여 숲을 이룬다/낙락장송 혼자 이루는 숲은 없다…’

이제 얼마뒤면 그는 그리던 교단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되면 그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게 될 것이다. 그가 그토록 바랬던 것처럼,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숲 속에 함께 섞이리라. 그렇게 섞여서 더불어, 그 숲의 푸른 빛을 지켜가리라….

<이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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