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에 「한국 영화 위기론」이란 유령이 떠돌고 있다. 영화 제작 편수는 해마다 줄고 제작비는 끝없이 오르고 있다. 대규모 국제 영화제들에서 아시아 영화 특히 일본 영화의 화려한 부상은 우리 영화를 더욱 초라하게 한다. 영화평론가협회와 영화인협회 등 영화인 단체들은 오늘의 상황을 한국영화의 「총체적 파국」이라 진단, 극복 대책을 논의하는 세미나를 마련하고 있다. 과연 한국 영화는 위기인가. 현장에 있는 두 사람의 논쟁을 싣는다.》
뿌리도 근거도 없는 한국 영화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탄 아시아의 어떤 영화감독은 『검열이 창의성을 살찌웠다』고 했다. 얘깃거리를 찾던 일부 평론가들은 이를 빌미삼아 한국 영화계의 안일한 제작과 「작가 정신 부재」를 외치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그도 아니라면 한때 이윤을 찾아 경쟁적으로 몰려들었던 대기업들이 한국 영화 제작에서 발을 빼고 싶어 영화의 질적 수준 타령을 하는 것이리라.
객관적으로 나타난 수치들을 봐도 한국 영화가 위기라는 말은 근거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10만명 이상 관람한 영화가 매년 5, 6편에 불과했다. 올해는 「올가미」 「창」 「접속」 등 벌써 13편에 달한다. 이중 몇편은 1백만명 내외의 관객을 동원했다. 일찍이 언제 한국 영화가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가.
분명 올해 개봉된 한국영화는 50여편에 그쳐 지난해보다 줄었으며 내년에는 더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 영화 4편을 만들어야 외국 영화 1편을 수입할 수 있었던 시절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의 1백여편과 지금의 50편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해선 안된다. 그때도 제대로 된 영화는 30∼40편에 불과했다. 문제는 의욕을 갖고 정성들여 만든 작품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고 나는 그런 A급 영화가 늘고 있다고 확신한다.
투자자인 대기업들의 이윤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위기론을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급작스런 대자본의 유입으로 치솟은 제작비 문제는 영화계가 슬기를 모아 함께 극복할 일이다. 그런 이유로 대기업들이 영화 제작을 꺼린다면 사람과 기술 자본 삼박자가 갖춰져야 할 영화사업을 너무 가볍게 보고 뛰어든 것이다.
올해도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가 수상을 하거나 관심을 모았다. 작품 수준이 하향세에 있다고 단정할 수 만은 없다. 칸영화제나 베를린영화제같은 세계적 국제영화제 입상은 작품만 좋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국가적 조직적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영화를 진정 위한다면 질책보다 격려가 필요한 시기다.
이춘연<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