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 죽음 죄책감 그리고 숨막히는 일상…. 인간을 절망케 하는 것들. 탈출구는 어디에 있을까. 차라리 쫓기지 말고 돌아서서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구미의 여류작가가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소설 「장엄호텔」(마리 르도네·열림원)과 「성자를 찾아가는 사람들」(수전 트롯·한양출판)은 서로 다른 목소리로 삶의 돌파구를 들려준다.
한 소설의 무대는 배수관이 새고 변기가 막히는 삼류 「장엄호텔」. 그리고 또다른 한권의 무대는 성자가 살고 있는 산위의 작은 집.
장엄호텔은 호텔을 빼놓고 모든 것을 삼키는 늪위에 있다. 때문에 항상 습기가 차고 파리와 쥐들이 몰려든다. 거기 혼기를 놓친 듯한 세자매가 살고 있다. 불치의 병을 앓는 첫째, 연극배우를 꿈꾸지만 한번도 무대에 서보지 못한 둘째, 그리고 두 언니를 뒷바라지하며 호텔을 힘겹게 운영하는 주인공 막내. 일절 대화가 없는 가운데 이름도 알 수 없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소설은 사막의 모래처럼 영원을 향해 건조하게 흐른다.
장엄호텔은 갈수록 적자가 늘어 유일한 장식물인 네온사인을 켤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된다. 주인공의 두 언니도 쥐가 옮긴 전염병에 걸려 덧없이 숨진다.
아버지의 사망에 충격을 받아 7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경험때문일까. 작가는 마치 노련한 의사처럼 절망을 극단으로 몰고간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독자들이 스스로의 고통을 조용히 되돌아 보고 희망의 자락을 잡을 수 있도록 이끈다.
한편 세상사람들이 성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살고 있는 산위의 조그만 집. 이 집 앞에는 일년내내 끝이 보이지않는 사람들의 줄이 서있다. 모든 고민을 들어주는 성자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러나 성자는 수많은 날들을 기다려 찾아온 방문객에게 대부분 고작 몇초간 말을 받아줄 뿐이다. 사람들은 『속았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지만 산을 내려가는 도중 문득 자신을 되돌아 보며 성자가 옳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자동차사고로 부인과 아이를 잃어버린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성자. 그는 자신을 찾아온 여성에게 연모의 감정을 느낄 정도로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에게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특별한 처방이 없다. 단지 『마음속의 고통을 찬찬히 되새기고 들여다보라』고 눈으로 속삭일 뿐.
〈한정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