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버전업」,김수영문학상 역대수상자 재선정 『눈길』

  • 입력 1997년 9월 11일 07시 52분


「김수영문학상」 「이상문학상」 「소월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작고 문인들의 문학적 전통을 잇자는 뜻으로 마련된 문학상들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고인의 문학적 색채와는 관계없이 시상주체인 출판사의 상업적 이해나 심사위원의 성향에 따라 수상자가 결정된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 사이버문학을 지향하는 문예지 「버전업」가을호가 이런 문학상 시상풍토에 반문을 제기했다. 권위있는 시문학상인 「김수영문학상」의 역대 수상자를 재선정함으로써 「문학상 뒤집어보기」를 시도한 것. 선정위원은 「버전업」의 편집위원인 이용욱 김소연 전사섭씨. 특별히 「김수영문학상」을 선택한 이유는 『이 상이 한국시사에 기여한 긍정적인 역할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버전업」이 제시한 수상자 재선정의 기준은 실제의 김수영문학상이 고려할 수 없었던 「차후세대에 끼친 영향력」과 김수영 시정신의 핵심인 전위로서의 불온함 혹은 꿈과 불가능을 추구하는 자세를 얼마나 이어받았는가이다. 81∼91년 수상작의 재선정에서 원래 수상작과 일치한 예는 83년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와 87년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 단 두 작품뿐이었다. 85년에는 원수상작인 최승호의 「고슴도치의 마을」 대신 예심에서 탈락한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선정하며 『두 작품중 김수영의 정신에 가까운 시집을 고르라고 했을 때 박노해의 것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89년의 원수상작은 중견시인 김정웅의 「천로역정, 혹은」. 그러나 버전업은 『노련함과 견고함이라는 덕목 때문에 한 중견시인에게 김수영문학상이 주어지는 것은 안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모험정신」에 입각해 재선정된 작품은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과 송찬호의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96년 수상자 유하의 경우 「너무 늦게, 엉뚱한 작품으로 선정된 인물」로 평가됐다. 버전업은 96년이 아닌 91년에 조정권의 「산정묘지」 대신 그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수상작으로 재선정하며 『우리 시대가 처한 저급한 대중소비사회의 키치적 면모를 가장 앞서 비판적으로 수용한 시인』으로 평가했다. 「버전업」의 「김수영문학상 시비걸기」에 대해 문인들은 『원래 수상작에 대한 지나친 평가절하 등의 문제가 없지 않지만 「문학상 본래의 뜻을 회복하자」는 의도만큼은 신선하다』고 반겼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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