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왕에 웬 씻김굿?
지난 1일 「세계연극제 97 서울/경기」개막식에서 「맛보기」로 선보인 특별공연작 「리어왕」의 한 장면. 백인 흑인 배우들이 끼욱끼욱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난데없이 각설이타령이 울려퍼졌다. 씻김굿도 등장했다.
막이 오르면서 시작되는 씻김굿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상징적인 대목이다. 권력 명예 돈 사랑 등 가장 근원적인 욕망과 그에 대한 집착때문에 파멸하는 인간들. 씻김굿은 그들을 위무하는 제의적 형식과 함께 인간의 속성은 결국 하나라는 주제를 담는 의미로 펼쳐진다.
여기서 무당역할을 하는 배우는 뜻밖에도 아프리카 출신에, 독일국적에, 미국주소에, 게다가 5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흑인무용가 아리안 피에르. 우리나라를 포함, 7개국 21명의 배우가 함께 하는 다국적연극의 대표주자답다.
세계연극제 기간에 열리는 세계극예술협회(ITI)세계총회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적 공연양식을 추구하는 연출자 김정옥씨(ITI세계본부회장)아래 세계의 배우가 모여 만드는 연극이 바로 「리어왕」이다. 동아일보 주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지극히 보편적인 리어왕의 모습을 준비하고 있는 유인촌씨(극단 유 대표)는 『무당역할을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신기(神氣)가 뚝뚝 떨어지는, 타고난 무당』이라고 피에르를 소개했다.
피에르가 이 작품에 참여한 것도 그의 무당기질 때문이었다. 지난해 필리핀에서 열린 세계고유문화올림픽에서 주술적인 퍼포먼스를 펼친 것이 연출자를 사로잡았던 것. 한국이든 아프리카든 무당과 배우는 우주의 에너지와 인간 영혼을 모으고 움직이는 힘을 지녔다고 그는 믿고 있다.
피에르의 눈에 비친 리어왕 역의 유인촌씨는 엄청난 힘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진 배우다. 에너지와 카리스마를 갖췄으면서도 민감한 감성을 지녔다고 피에르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씨처럼 강렬한 영혼을 가진 배우를 보면서 한국 연극에는 서구에서 보기 힘든 혼이 깃들여 있다는 것, 인간의 깊은 감정과 가치를 연극을 통해 이렇게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피에르와 유씨는 『이번 다국적 공연은 피부빛과 언어, 대륙의 장벽을 넘어 인간은 결국 하나임을 증명해주는 러브스토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10∼15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02―3444―0651
〈김순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