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日만화 가려읽는 중3 자매이야기

  • 입력 1997년 8월 26일 08시 32분


『우스꽝스러워요』 당돌하기 짝이 없는 대답. 10대 만화광 자매가 「만화가를 데려다 조사하는 검찰」에 대해 하는 말이다. 출생시간 5분 차이로 언니 동생사이인 일란성 쌍둥이 표수연 소연 자매(14·서울 녹천중3년)는 「청소년을 나쁜 길로 이끈다」며 만화가를 「때리는」 검찰이 너무나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국내와 일본 순정만화를 두루 섭렵한 자매는 학교에서 「클램프」로 통한다. 클램프(CLAMP)란 일본의 만화가 그룹. 오카와 모코나 아가라시 네코이 등 젊은 여류 만화가 4명이 89년부터 함께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최근 일본과 국내에서 「성전(聖戰)」 「X」 등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 이 만화의 컷을 한 두 개 정도 수첩에 오려 갖고 다니지 않는 여학생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 물론 어른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들은 나름대로 논리가 있다. 『일본 만화가 모두 폭력 음란물인 것은 아니다』는 언니 수연이는 오히려 『소니 TV를 보며 코끼리 밥솥으로 지은 아침밥 먹고, 혼다에서 수입한 대우 아카디아 타고 출근하고, 저녁에는 가라오케에 가서 스트레스 푸는 어른들이 무슨 할 말이 있느냐』고 쏘아붙인다. 96년 이 만화가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기 전 명동에서 구한 일본 만화잡지를 읽기 위해 일한사전 하나만으로 일어를 익히기 시작, 지금은 웬만한 일본어책은 사전 없이 술술 읽는 수준이 됐다. 지난 14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열린 97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SICAF97)에서 클램프의 「X」를 직접 판매하는 일에 나서기도 했다. 용돈을 모아 동대문에서 「X」의 주인공 복장을 맞춰 입고 행사장을 찾았다. 돈은 받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 하는 일을 한다」는 보람이면 충분했다. 「안 봐도 알 만한 줄거리에 뻔한 대사」 일색이었던 우리나라 만화가 이처럼 뛰어난 작가들의 활약으로 일본과의 수준차를 좁혀 가려고 막 기지개를 켜려는 요즘. 마치 청소년 범죄를 만화가들이 조장한 양 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분위기가 안타깝기만 하다. 『성인용 청소년용을 구분했으면 그대로 팔면 되는 거 아니예요? 청소년이 담배를 사서 피우면 담배 가게 책임인가요, 담배회사 책임인가요?』 수연 소연이는 『이현세 아저씨가 다시 붓을 들지 않는 한 제 또래들은 계속 일본만화에 빠질 거예요』라며 『청소년들의 취향을 실력이 아닌 법과 제도로 바꾸려고 하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나성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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