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숲」 석림(石林)은 중국인들 스스로 계림(鷄林)못지 않은 비경으로 손꼽는 곳이다. 이곳은 중국 서남부 운남(雲南)성의 성도 곤명(昆明·해발 1,894m)에서 동쪽으로 1백40여㎞ 떨어졌다. 싸니족은 그 근방의 루난현과 밀르현, 곤명의 명소인 「오백리 호수」 덴츠에 모여산다.
석림을 보기 위해 입장권을 샀다. 요금은 인민폐 33원(元·한화 약 3천3백원). 내국인의 갑절에 해당하는 비싼 입장료다. 일반 노무자의 한달 임금이 평균 4백원, 골목길 싸구려 밥집의 한끼 식사비가 2원, 곤명의 명물 쌀국수 꿔쳐미시엔을 수수하게 한그릇 먹는데 5∼10원 정도니 비싸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매표소 앞에는 관광안내원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서있다. 선택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들은 다름아닌 싸니족의 처녀들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색색이 고르게 배합된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었다. 안내비용도 30원. 역시 만만찮은 금액이었다. 관광을 마치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거브 마소』 「고맙습니다」라는 말인데 꼭 우리말 같이 들렸다. 알고보니 싸니족 말은 중국어와 전혀 다르며 오히려 우리말과 비슷했다.
어순이 같고 조사가 있다. 「자시오」라는 뜻의 「짜자」, 「너 잘 있었니」의 「니 짜」는 또 어떤가.
말뿐만이 아니다. 호랑이 숭배습속, 개고기를 즐겨 먹는 습성, 김치담그기, 실뜨기와 가위바위보 놀이, 아기를 띠로 받쳐 등에 업는 것 등등. 매년 음력 6월24, 25일에 열리는 민속축제 「호바지」에는 횃불놀이 소싸움을 즐긴다. 남자 옷의 주된 색조는 붉은 색. 모자에는 꿩깃털을 두어개 꽂는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수렵무사의 모자와 닮은 꼴이다.
우리 설에 해당하는 춘절(春節)에 싸니족은 정성으로 음식을 장만해 조상신을 섬긴다. 사람이 죽으면 석관에 넣어 매장하고 봉분을 만든다. 초상이 나면 동네사람들이 힘을 합쳐 장례를 치른다.
상주는 양이나 돼지 소를 잡는다. 이는 본래 죽은 자에게 주는 제물이다. 장례식 때는 온 마을사람들이 나팔을 불고 춤도 춘다. 숨진 이를 기쁘게 하고 상주를 위로하려는 것이라 한다.
사람이 죽고 백일이 지나면 시마(무당)나 시파(박수무당)를 찾아 점을 본다. 이때 숨진 이의 이름 나이를 말하면 그의 내생을 알려준다. 복채로 약간의 돈을 준다. 숨진 이가 고생길에 있다는 점괘가 나올 경우에는 재를 올리기 위해 향초 그리고 쌀을 마련한다. 무당은 각각 저마다의 신을 모신다. 흥미로운 것은 싸니족 무당은 평생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싸니족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 흥에 겨워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사랑의 노래를 읊조린다. 사랑에 빠진 처녀는 풀피리를 불어 남자를 유혹한다. 이에 남자가 풀피리를 불어 화답하면 처녀의 구애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많은 다른 소수민족 여자들처럼 싸니족 여성들도 남자를 극진히 모신다. 반찬을 집어주고 차를 따라 주는 등 정성이 지극하다. 연애하는 모습을 보면 여자가 남자를 귀여운 어린아이 대하듯 한다. 애정어린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볼을 어루만지거나 일없이 옷에서 먼지나 티끌을 털어낸다. 이렇게 사랑스런 싸니족 여성은 잠자리에서도 남자에게 팔베개를 해 준다고 하니, 글쎄….
<연호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