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문고 수학교사 이상용씨(43). 월요일만 되면 아침부터 노래를 흥얼거린다. 틈나는 대로 동요부터 가곡까지 낮은 소리로 부른다. 서울 보광동에 사는 김덕찬씨(57·사업). 사업상 약속도 월요일 저녁만은 사절이다.
경기 이천군의 이덕천씨(47·사료도매업). 월요일 오후면 서울로 향한다. 차를 몰면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이들이 매주 월요일 저녁 모이는 곳은 서울 대치동 강남대학교회 강당. 「우리 아버지 합창단」 연습실이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뉘 부르는 소리 있어…」
저녁 8시. 건물 전체가 어둠에 잠기는 시간이지만 불이 환히 켜진 4층 연습실에서는 우렁찬 합창소리가 흘러나왔다. 20∼50대 20여명의 아버지들이 내뿜는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연습실. 한결같이 코 끝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쉬었다 합시다』 지휘자 김신일씨(43)의 말에 한순간 긴장이 풀어졌다. 삼삼오오 모여 얘기꽃을 피워냈다.
『소장은 목표달성 타령입니다. 누가 하기 싫어서 안합니까. 불황이라 있는 차도 팔려는 상황이에요』(H자동차 판매사원 K씨)
『고등학생인 큰아이의 귀가시간이 늦어져 걱정입니다. 「얘기 좀 하자」고 하면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립니다』(서울 신사동 L씨)
이리 치이고 저리 받히는 아버지들이 모여 고민을 털어놓고 생각을 나눈다. 동병상련이라서인지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다.
이 모임이 시작된 것은 지난 3월. 음악평론가 탁계석씨(45)와 지휘자 김씨가 합창을 통해 「아버지 제자리 찾기」운동을 벌이자는 뜻에서 합창단을 구성했다.
『아무리 가족들에게 권위를 인정해달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아버지의 자리는 스스로가 찾는 것이지요. 노래를 통한 가족 내 대화 재개, 합창을 통한 건전한 아버지상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탁씨의 설명이다.
단원이 이제 30명이나 되고 지난 달에는 조촐하나마 서울 종로구의 부암아트홀에서 창단공연까지 가졌다. 단원들은 연습을 통해 학교 시절의 노래실력도 되살리고 일주일의 스트레스도 남김없이 푼다고 입을 모은다.
지휘자 김씨는 『부족한 목소리지만 남의 목소리와 합쳐 세상에 맑고 힘찬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라며 『앞으로 내 자녀만의 아버지가 아닌 모든 자녀의 아버지로서 소년소녀가장을 찾아 사랑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활동 등으로 보람을 키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휴식 후 「아버지 노래」(정공채시 김봉천곡)로 다시 연습이 시작됐다. 연습은 밤 10시까지 계속됐다.
「아무리 모진 고난 밀어닥쳐도/언제나 꿋꿋하신 아버지/태산이 가로막고 가시밭길 험난해도/이것이 내가 할 일…」.
〈김진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