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거짓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생을 기름지게 하고 인간의 상상력을 우주의 차원으로 넓혀주는 것이다. 거짓말은 진실이라는 딱딱한 빵 속에 든 슈크림처럼 의외의 달콤하고 살살 녹는 이야깃거리와 즐거움을 준다」. 올초 소설 「재미나는 인생」에서 자신을 「전세계 거짓말쟁이협회 서기장」이라고 밝히며 동료회원인 소설가 평론가 예술가 등에게 이런 환영사를 썼던 작가 성석제(36). 그가 내주 새로운 거짓말 하나를 보탠다. 새 창작집 「아빠 아빠 불쌍한 우리 아빠」(민음사)를 펴내는 것이다.
90년대 등단작가들이 섹스나 죽음으로 시대의 허무를 노래하고 혹은 자아와 세계의 불화에 갈등하는 여자들의 삶을 그리느라 몰두하는 동안 그는 엉뚱하게도 「건달」과 「고수」들의 얘기를 써왔다.
건달이라도 「모래시계」의 기업형 깡패가 아니다. 오로지 주먹힘 하나만 믿고 시골읍내에서 왕노릇을 하는 흘러간 시절의 주먹패들이다. 「고수」들 역시 변두리 기원이나 당구장을 전전하며 내기로 푼돈을 버는 떠돌이들이다.
그는 이들이 『「물신(物神)」이라는 획일화된 돋보기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인물들』이라고 말한다. 그의 소설 속에서 건달들의 난동이나 고수의 한판승부는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같은」 단조로운 일상에 「뉴스이자 연재소설 연속극이자 스포츠, 신화」같은 역할을 한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한량들의 삶을 통해 그는 톱니바퀴같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는 산업사회의 질서를 거스르며 『인간적인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자못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무거운 주제를 건드릴 때도 성석제는 시치미를 떼고 농담하듯 얘기를 풀어간다. 만담가처럼 질긴 입심 덕분에 그의 소설은 읽히는 것이 아니라 중계방송을 듣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을쓸때그는가락을살려단숨에 써내려간다고 한다. 성석제의 소설에는 「90년대의 독보적인 개성」 「남성적 서사의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칭찬과 함께 「진지하지 못하다」 「냉소적이다」라는 걱정도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는 『도대체 진실이란 무엇인가』라고 되묻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세르반테스와 열자 장자다. 그들의 공통점은 세상사를 참과 거짓으로 나눠 「나는 진짜다」라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순수한 진실도 순수한 거짓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쓰기의 재미도 바로 진실과 거짓 사이의 아슬아슬한 지점을 그려낸다는 것 아니겠는가』
〈정은령기자〉
▼ 작가노트 ▼
성석제는 소설가이기 전에 시인이었다. 86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그의 시세계는 풍자로 일격을 날리는데 능수능란한 소설과는 달리 서정적이다.
작가로서 그를 얘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작고한 시인 기형도. 연세대 동창생인 기형도는 대학 1학년 때 문무대에서 만난 그를 문학회로 이끌었다.
군제대 후 그가 본격적으로 문학수업을 해야겠다고 작정했을 때 착실하고 주도면밀한 기형도는 『작가가 되려면 모름지기 도스토예프스키전집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 등을 읽어야 한다』며 그에게 긴 학습목록을 만들어주었다.
책도둑질에 일가견이 있던 그가 유일하게 「몸수색」을 당하며 책을 훔쳐올 수 없었던 곳도 기형도의 집.
『우리 가운데 먼저 죽은 사람의 책을 산 사람이 몽땅 가지는 것으로 하자』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은 기형도의 집을 찾았던 성씨가 한나절을 책만 만지다 돌아온 아픈 기억들은 소설「스승들」에 상세히 기록됐다.
성석제는 학창시절 소설을 써서 교내 박영준문학상을 받기도 했지만 기형도를 따라 시를 택했다. 등단 후 「낯선 길에 묻다」 등 두권의 시집을 펴낼 때까지 그는 대기업 홍보실에 근무했다. 전업작가로 변신한 뒤 짧은 소설들을 쓰기 시작한 그는 94년 짧은 소설모음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선보임으로써 문단의 시선을 모으기 시작했다. 96년 장편 「왕을 찾아서」와 창작집 「새가 되었네」, 97년 시집 「검은 암소의 천국」을 펴냈다.
〈정은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