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상문학상 김지원-현대문학상 이순원씨 수상

  • 입력 1997년 1월 27일 20시 35분


[정은령 기자]소설가 김지원씨와 이순원씨가 각각 제21회 이상문학상과 제42회 현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번 수상을 문학적 여정의 「중간평가」로 받아들이는 두 사람의 수상소감을 들어보았다. 두 작가의 수상작은 다른 후보작들과 함께 곧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이상문학상 수상 김지원씨▼

소설가 김지원씨(54)의 수상소식은 문단에 의외의 뉴스로 받아들여졌다. 김씨는 지난 74년 등단 이후 줄곧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잊혀질 만하면 한편씩 모국에서 작품을 발표하며 「건재」를 알려왔던 그는 뉴욕 맨해튼에서 국제전화로 수상소식을 접한 뒤 『기쁘기는 하지만 이걸 어쩌나하는 당황스러움이 앞선다』고 수줍어했다.

수상작 「사랑의 예감」(계간 「라쁠륨」 96년 겨울호 게재)은 기승전결의 소설적 얼개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신혼여행길에 뉴욕에서 20여년만에 만난 어릴적 친구 신옥과 장미부부의 수다로 채워지는 제1장 「지금은 뉴욕」과 남편이 납북된 뒤 홀로 아이를 키우며 사는 여인 갈희가 화자가 되는 제2장 「서울의 사랑」이 뚜렷한 인과관계없이 이어진다.

두개의 장을 실낱같이 잇는 존재는 신옥의 남편인 서환. 틀에 박힌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서환은 어느날 사고로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생면부지인 갈희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뒤 삶의 소중함에 눈뜬다.

우연성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이지만 등장인물들의 삶은 서로 끈끈히 연결돼 있다.

『나이가 들수록 전혀 별개로 보이는 삶조차도 서로 유기체처럼 연결돼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김씨는 『소설을 통해 사랑에 관해 얘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은 허상일 뿐입니다. 한사람에 대한 애정이든 인류애든 오직 사랑만이 삶을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파인 김동환과 여류소설가 최정희의 맏딸로 태어난 김씨는 『잘쓰든 못쓰든 내 생긴대로, 쓰지 않으려해도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 같다』고 고백한다.동생 채원씨도 소설가로 활동중이다.

▼현대문학상 수상 이순원씨▼

소설가 이순원씨(39)는 요즘 동료 문우들로부터 『상복이 터졌다』는 인사를 받기 바쁘다. 지난해 가을 「동인문학상」을 받은데 이어 새해 벽두부터 「현대문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오렌지족의 행태가 사회문제로 떠올랐던 지난 92년에 오렌지족을 다룬 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를 발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이번 수상작인 「은비령」(「세계의 문학」96년 겨울호)은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30대 초반에는 어떤 주제든 다 도전해보고 싶었고 사회에 대해 할 말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마흔을 바라보게 되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동을 담은 따뜻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지더군요. 「은비령」은 그런 마음의 변화를 담은 작품입니다』

「은비령」의 남녀 주인공은 「죽은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소설가」와 「죽은 남편의 친구에게서 위안을 얻는 여자」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과거의 인연에 얽매여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봄눈이 오던 어느날 이들은 함께 대관령 언저리의 계곡 은비령으로 향한다. 이 계곡은 소설가가 친구를 처음 만났던 곳이다.

은비령에서 두사람은 아마추어 천문가와 함께 하쿠타케혜성을 보게 되고 그로부터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2천5백만년을 주기로 똑같이 반복된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듣는다.그것이 한 천문학자가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해명을 듣지만 두사람은 「우리 삶은 다시 한번 이 별에서 그렇게 시작할 것만 같다」고 믿는다.

『집필과정에서 아마추어천문학자로부터 「2천5백만년 반복설」이라는 오래된 거짓말을 들은 뒤 사람의 인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사랑이나 인연이 거대한 우주의 질서로서 영속성을 갖는 것이라면 오늘 우리가 맺고있는 작은 인연조차도 아름답고 의미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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