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맞벌이주부]「슈퍼우먼」 꿈꾸는 세여성 이야기

  • 입력 1996년 11월 24일 01시 40분


「감히 인간의 몸으로 슈퍼우먼을 꿈꾼 죄, 그 벌을 달게 받을지어다」. 맞벌이주부 혹은 기혼여성직장인. 한 여성의 부지런함과 똑똑함만으로는 덜어지지 않는 삶의 무게가 그들의 어깨에 얹혀있다. 30대를 사는 어느 세 여성의 「집안일과 직장일」을 들여다보니…. ==============▼ 공무원 K씨 ▼================ 「尹景恩기자」 서울 사는 공무원 K씨(31)는 한달에 두번씩 주말비행기를 탄다. 남편과 함께 부산에 내리면 마중나온 시누이가 부지런히 차를 몰아간다. 저녁때쯤 닿는 곳은 경남 의령의 시댁. 7개월된 딸을 그제야 품어본다. 주변의 친지들도 맞벌이를 하는데다 놀이방은 세살 이상의 아이만 받아주니 2개월의 출산휴가를 마칠 때쯤 시어머니 손에 아이를 들려보내야 했다. 시어머니에게 한달 30만원, 아이 「면회」갈 때마다 비용이 15만원 든다. 요즘은 애 안봐주려는 시어머니도 많다던데 그나마 다행이다. 떠나보낼 때는 통통하던 아이가 시골로 내려가자마자 우유를 다 토하고 설사를 하더니 장염으로 꼬박 두달을 앓았다. 변변한 병원이 없어 어린 것이 고생하는구나 싶어 매일 안부전화를 하지만 마음은 아프기만 했다. 다 그만두고 아이나 잘 키워야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1년간 육아휴직을 하면 11년 뛰어온 직장내 경쟁에서 뒤처질까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 카피라이터 L씨 ▼============== 「李英伊기자」 결혼한지 9년된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L씨(33)는 「가정은 생활, 일은 목표」라는 게 지론. 직장일을 시작한 만큼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생각이다. 남자직원 네명을 「거느리고」 일한다. 호칭도 조심스러워 모두에게 존대말을 한다. 야근을 시키거나 술 한 잔이라도 나누려면 부담이 적지 않다. 뭐든지 실력쌓는 일을 게을리하면 뒤처지는 것 같아 견딜 수 없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려고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곳, 대학거리를 자주 찾는다. 경력 11년의 그는 작년 「한국 지형에 강한 휴대폰」이라는 카피로 「떴다」. 무려 1년반동안 용산전자상가에서 살다시피하며 거의 매일 밤12시까지 야근을 한끝에 외제가 주도하던 휴대전화시장의 판도를 바꿔놓는데 한몫했다. 회사일에 겨우 적응하자마자 덜컥 아기부터 낳아 양쪽 일 모두에 쩔쩔매게 될까봐 애낳기를 5년간 미뤘다. 그는 『여성도 일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 줄게』라고 네살배기 딸에게 약속한다. ==============▼ 출판사 Y씨 ▼================ 「尹景恩기자」 출판사에 다니는 Y씨(36)와 남편의 「대충 아침」은 우유 한잔씩. 저녁도 웬만하면 각자 해결이다. 토요일마다 장을 봐오지만 많이 남는다. 남편은 집안일은 거의 안한다. 신혼초엔 이리저리 구슬려가며 시켜봤지만 이제는 싸움날까봐 그냥 둔다. 한번은 어쩌나 보려고 몇달간 청소를 안 해봤더니 지저분한 채 그대로여서 포기했다. 「깔끔한 집안만들기」부담은 버린지 오래. 동네 지정은행에 내야 하는 아파트관리비는 번번이 연체다. 밥 한끼도 소홀히 하지않고 아이를 정성껏 키우는 전업주부가 부럽기도 하다. 친정어머니 3개월, 애보는 아줌마 2년, 시어머니 1년을 전전하다 아이는 요즘엔 어린이집에 간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더 문제. 방과후 빈집에 혼자 놔둘 수도 없고 학원으로만 내돌리기도 그렇다. 회사일 집안일을 다 잘 해내야 하는 게 「비극적」이지는 않다. 일도 즐겁거니와 조금 덜 성공하더라도 아이와 가정이 주는 또 다른 기쁨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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