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을 판소리로… 젊은 소리꾼 앞장서 말랑해진 판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30일 11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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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생 소리꾼 이승희(가운데)가 고수 김홍식과 함께 ‘판소리 레미제라블-구구선 사람들’을 선보이고 있다.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오늘날 한국 현실에 맞게 재창작했다. 입과손스튜디오 제공


K컬처에 대한 국내외 관심도가 급등하면서 세련되고 말랑해진 창작 판소리가 무대에 줄줄이 오르고 있다. 1980~1990년대생 젊은 소리꾼들이 앞장서 판소리를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고 TV 예능 등 다른 매체에도 진출하며 관객 저변을 넓히는 추세다.

다음달 8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판소리 레미제라블-구구선 사람들’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재창작했다. 뮤지컬 ‘아리랑(2017)’의 차옥비 역으로 관객 눈도장을 찍었던 1982년생 소리꾼 이승희가 판을 이끈다. 원작의 시민혁명은 의병 활동으로, 장발장은 장씨로 등장하는 등 서사와 인물을 한국에 맞게 바꿨다. 소리꾼과 고수 외에 키보드, 드럼 등 현대 악기가 협연한다.

해외 고전을 재해석한 판소리극도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다. 인디 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로 활동하며 팬층을 다진 이자람(39)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원작의 창작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4월21~22일·아트센터인천)’를 공연한다. 앞서 창작 뮤지컬 ‘아랑가’, ‘적벽’ 등으로 주목받은 작창가 겸 소리꾼 박인혜(39)는 올해 초 19세기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의 단편소설을 토대로 한 ‘판소리 쑛스토리-모파상 편’을 선보였다. ‘보석’을 비롯한 모파상의 단편 3권을 엮어 1인극으로 풀어냈다.

국내 현대문학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창작 판소리극 ‘체공녀 강주룡(3월31일~4월2일·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은 박서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평양의 고무공장에서 일하며 독립운동가 겸 노동운동자로 활동했던 실존 인물 강주룡의 일대기를 다룬다. 새로운 형태의 판소리를 지향하는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소속 정지혜(37), 강나현(29) 등 젊은 소리꾼들이 창작 판소리 28곡을 노래할 예정이다.

‘요즘 핫한’ 소리꾼 겸 작창가 이자람의 창작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 중 일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주인공 산티아고가 넘실대는 파도 속 청새치 떼와 사투를 벌이는 대목은 공연의 백미로 꼽힌다. ⓒLG아트센터_StidioAL. LG아트센터 제공.


판소리가 다변화하는 건 우리 문화에 대한 국내외 젊은층의 관심도가 높아진 것과 관련된다. 30일 인터파크티켓에 따르면 지난 연말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 ‘노인과 바다’의 예매자 중 20, 30대의 비율은 54%에 달했다. ‘구구선 사람들’ 역시 2030 예매자가 50%를 차지하고 있다. 유현진 ‘구구선 사람들’ 총괄PD는 “팬데믹 이전에 비해 판소리를 단순 ‘전통음악’이 아니라 공연예술 자체로 즐기는 2030대 관객이 많아졌다”며 “해외에선 2017년 씽씽밴드가 이름을 알린 것을 시작으로 최근 K팝 등 열풍이 겹치며 국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걸 체감한다”고 말했다.

판소리에 화제성이 더해지자 소리꾼을 찾는 매체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젊은 소리꾼들은 최근 정통 판소리 이외 장르와 매체에 진출하며 대중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국립창극단 소속 김수인(28)은 팝페라 경연 프로그램에서 다채로운 소리를 들려주는 중이다. ‘국악계 아이돌’로 불리는 소리꾼 김준수(32)는 지난해 말 뮤지컬 ‘서편제’에서 뮤지컬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으며 지난달 음악 예능 방송에서 활약하며 주목을 받았다.

팬데믹 기간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서 수준 높은 판소리 콘텐츠가 많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박인혜 작창가는 “과거 공중파 방송 클립영상 등에 그쳤던 판소리 콘텐츠가 불과 3년 사이에 질적,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젊은 관객의 접근성이 높아졌다”며 “젊은층에게 판소리가 고루한 것이 아닌 새롭고 세련된 예술로 인식되면서 창작자들 역시 전승과 보존 이상의 예술적 활동을 활발히 하는 추세”라고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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