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면접점수 조작’ 하나은행, 탈락자에 5000만원 배상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5일 14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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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채용 과정에서 상위권 대학 출신 지원자를 선발하기 위해 면접 점수를 조작하면서 탈락하게 된 피해자에게 은행 측이 5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부장판사 김경수)는 하나은행 채용 탈락자 A 씨가 하나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A 씨는 하나은행에 합격했을 경우 받았을 임금 일부와 채용 탈락에 따른 정신적 위자료 등 총 2억1000만 원의 배상을 요구했으나 법원은 이 중 5000만 원에 대해서만 하나은행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A 씨는 2016년 하반기 하나은행 신입채용에 응시해 서류전형, 인·적성 검사, 합숙·임원면접을 거쳐 내부적으로 작성된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하나은행은 서류전형에서 출신 학교별로 점수를 차등 적용했으나 임원면접에선 지원자들의 출신 대학을 공개하지 않는 이른바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했다.

인사부장은 A 씨 등이 포함된 합격자 명단을 보고받은 뒤 실무자에게 ‘상위권 대학 지원자들을 합격시키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에 실무진이 상위권 대학 출신과 은행장 추천 지원자 등 14명의 임원면접 점수를 합격선 이상으로 조정하면서 A 씨는 합격자 명단에서 제외됐다. 이 과정에서 A 씨의 임원면접 점수도 당초 4.3점에서 3.5점으로 낮춰졌다.

재판 과정에서 하나은행은 당시의 채용 과정에 대해 “채용 절차는 채용의 자유 및 재량권의 범위 내에서 진행됐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정 대학 출신 지원자들이 예년보다 부족해 대학별 균형을 고려했고, 사기업으로서 입점 대학 출신을 우대할 필요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법원은 하나은행이 채용 절차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현저히 훼손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채용절차가 인사권자에게 재량권을 부여하는 영역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채용 과정이 상당히 진행됐다면 응시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인사권자의 행위는 위법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또 하나은행이 일반 사기업과 달리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등 국가로부터 감독과 보호를 받는 금융기관이란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지원자의 능력만을 평가하기 위해 임원면접에 도입된 블라인드 면접 방식의 취지를 몰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청년 실업이 만연한 현재 채용비리는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이며 원고는 이러한 침해행위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A 씨와 하나은행 간에 최종적으로 고용관계가 성립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임금 부분에 대한 배상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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