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음지③]비닐하우스촌 주민들

  • 입력 2002년 11월 4일 18시 16분


서울시 비닐하우스촌 현황
자치구비닐하우스촌 수 세대수
강남구개포동 구룡마을 등 10개2524
서초구서초3동 꽃마을 등 17개1075
송파구장지동 화훼마을 등 5개532

4일 오후 ‘비닐하우스촌’으로 불리는 서울 송파구 장지동 610 일대 화훼마을. 겨울 추위에 바람까지 매섭게 몰아치는 가운데 전신마비의 이옥수씨(68·여)가 난방도 되지 않는 5평짜리 판잣집 방에서 혼자 신음하고 있었다. 문틈으로 찬바람이 새어 들어와 방안에서도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이 마을 한마음교회 주광열(朱光烈·65) 목사는 “날씨는 추워지는데 홀로 계시다 행여 사고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찾아오는 가족은 없지만 법적으로는 아들이 있어 정부 지원금도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이 마을에는 213가구 300여명의 주민이 합판과 각목으로 지은 판잣집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1980년대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송파구 가락동에서 밀려난 주민들이 화훼용 비닐하우스를 집으로 개조해 살면서 마을이 형성됐으나 91, 99년 큰 화재가 난 뒤 비닐하우스 집은 사라지고 지금은 판잣집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마을 주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화재다. 집이 나무로 지어진 데다 보온을 위해 가연성 소재인 비닐하우스용 덮개를 지붕에 씌운 탓에 불이 나면 몇 분 안에 모든 것이 타버리기 때문이다. 99년 1월 화재 때 마을의 절반인 113가구가 전소되기도 했다.

마을회장 안정순(安正淳·52)씨는 “취사를 위해 집집마다 설치한 액화석유가스(LPG)통 때문에 불이 나면 대형 폭발사고까지 우려된다”며 “화약을 짊어지고 사는 것 같아 매일 밤 공포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기존에 설치된 소화전 외에 소화전 1곳을 추가로 설치해 줄 것을 관계기관에 요구하고 있다. 또 공동화장실을 수세식 화장실로 교체하는 것도 숙원 중 하나다.

서울의 비닐하우스촌은 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인해 도심에서 밀려난 저소득 계층들이 집단으로 이주하면서 형성됐다. 6월 말 현재 서울에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3개 구에 32개 비닐하우스촌(총 4131가구)이 산재해 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과 한국도시연구소가 최근 비닐하우스촌 179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53.5%)이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소득으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0대 이상 혼자 사는 노인의 비율도 21%에 달했다.

한국도시연구소 이호(李浩) 책임연구원은 “비닐하우스촌이 비록 사유지를 불법 점유한 것이긴 하지만 주민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기초적인 기반시설과 복지서비스를 제공한 뒤 임대주택 제공 등의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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