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장관은 최근 제기된 북한의 핵개발계획은 핵무기를 실험, 생산하지 않고 핵 재처리시설을 갖지 않는다는 한반도비핵화선언은 물론 제네바합의 등을 위반한 것이라고 공세를 폈다.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엄청난 ‘후(後)폭풍’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한 핵개발 프로그램의 존재를 미국 대통령 특사에게 한순간에 ‘시인’하고 나선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의도적인 공세였다. 빅 딜을 겨냥한 것인지, 아니면 대회전을 각오한 것인지를 알아야 사태수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 장관이 이번 평양 장관급회담에서 완수해야 할 최대 임무는 바로 북한의 ‘진짜 속셈’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는 19일 평양으로 출발할 때부터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의 직접 면담을 공공연하게 강조했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20일 “작년 9월 서울에서 열린 5차 장관급회담 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북한 수석대표인 김영성(金靈成) 내각책임참사를 면담한 적이 있다”며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정 장관의 김 위원장 면담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은 ‘귀에 거슬릴 수 있는’ 정 장관의 기조발언이 있은 뒤에도 핵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북측 수석대표인 김영성 내각책임참사는 미국의 압박을 ‘바깥 날씨’로 표현하는 등 현 상황을 날씨에 빗대어 속내를 얼핏 내비쳤다.
▽김 대표〓바깥 날씨가 어떻든지 우리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야 한다.
▽정 대표〓최근에 일어난 일 때문에 무거운 마음으로 왔다. 아침에 날씨를 보니까 하늘이 내려앉았다. 비가 오려는지 날씨만큼이나 마음이 무겁다.
▽김 대표〓우리는 지금까지 바깥 날씨가 어떻든, 서풍이 불든, 비가 오든, 갈 길을 갔다. 북남관계도 마찬가지다.
▽정 대표〓온도차가 심하면 감기에 걸린다. 바깥은 너무 추운데 방안이 따뜻하면 안 된다.
하지만 북측은 이날 밤 ‘21일 고위인사와 면담이 있을 것’이라고 통보해와 남측 대표단을 긴장시켰다. 고위인사는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남측의 한 회담 관계자는 “이날 회의는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며 “국제사회의 우려를 솔직하게 전하려다 보니 회의 분위기가 무거울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평양〓공동취재단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