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멱살잡이 수출’

  • 입력 2001년 10월 17일 23시 17분


누군가가 국회의원 집에 전화를 했다. 아버지를 찾는 전화에 어린 아들은 “국회에 가셨다”고 말했다. 아이치곤 대답이 야무져 “국회가 뭐하는 곳인지 아느냐”고 물어봤다. 아이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싸움하는 곳 아니에요?” 물론 우스갯소리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 같은 질문을 던져보면 대부분이 똑같은 대답을 할지 모른다. TV에서 의원들이 삿대질을 하며 야유나 욕설을 퍼붓고 고함을 지르면서 몸싸움을 벌이는 경우를 오죽 많이 보았는가.

▷그 같은 일이 발생할 때마다 국회의장은 “다음 선거에 떨어질 것”이라며 자제를 당부하고 여야도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고 다짐을 하지만 의원들에겐 쇠귀에 경 읽기다. 3월에도 여야 총무가 나서 앞으로는 국회에서 욕설이나 야유를 하지 않기로 한 ‘노 샤우팅(no shouting)헌장’을 만들어 지키기로 했지만 흐지부지됐다.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자신과 다른 의견에는 무조건 큰소리부터 치고 보는 우리 국회의 후진성은 언제쯤 고쳐질까.

▷문제는 의원들이 국회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보스에게 ‘충성’을 다했다는 뿌듯한 마음이 되는 것만 같다. 일부는 자신의 몸싸움 장면을 의정보고서 등에 자랑스럽게 수록하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한 의원이 의원총회에서 상대 당 의원의 과격한 발언 때 아무 소리도 못하고 앉아있기만 해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그 자리에서 왜 소리를 안쳤는지, 왜 그 의원을 끌어내리지 못했는지…”라며 자책했다. ‘충성’의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한탄인 것만 같다.

▷의원들의 그 같은 모습이 마침내 ‘수출’까지 됐다고 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뉴질랜드의 한 TV광고에 한국 정치인들이 멱살잡이를 하며 싸우는 장면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한국대사관이 방영규제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셔츠판촉용 광고라고 하니 아마도 국회의원들이 입고 싸워도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옷감이 질기다는 뜻인 것만 같다. 그 장면에 등장한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활약상이 외국에까지 소개됐다고 기뻐만 할 것인가.

<송영언논설위원>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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