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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7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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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천년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진신두의 묘수’(해설기사 참조)에 내가 직접 당하다니…. 외길 수순인데도 한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이 판은 내가 이겼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아마 똑같은 상황을 묘수풀이 문제로 냈다면 순식간에 정답을 찾아냈을 것이다.
지난해 생애 첫 타이틀을 따낸 것이 바로 이 LG정유배 였다. 전기 우승자도 다시 본선 1회전부터 뛰어야 하는 선수권전이지만 이 기전에 대한 애착만큼은 누구보다도 남달랐다. 올해도 어떻게든 LG정유배에서 우승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기전보다 더욱 독한 마음을 먹고 바둑을 뒀다.
결승 진출. 그리고 상대는 이 9단.
나는 이 9단에게 되돌려줘야 할 빚이 많다. 96년 명인전 도전기에서 처음 만나 2대 3으로 진 것을 포함해 타이틀전에서 6번 싸워 6번 모두 졌다.
이번 만큼은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5번기에서 벌써 2연패. 주위에선 이미 ‘이 9단의 타이틀 획득’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내가 이 9단보다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어찌보면 이 9단은 지금까지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전북 전주시 대형 시계점의 아들이라는 부유한 환경과 가족의 적극적인 뒷바라지 속에서 바둑을 배웠고 조훈현 9단의 내제자로 들어갔다. 그의 천재성은 물론 대단하지만 그만큼 주위 환경도 따라줬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14세의 어린 나이에 타이틀을 따냈고 1인자에 올랐다.
그에 비한다면 나의 바둑 인생은 잡초와 같았다. 바둑 공부를 위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 오지에 들어가 몇달씩 머물기도 했고 체력 단련을 이유로 아버지와 함께 하루에도 몇차례씩 산을 넘어야 했다. 바둑만 전념하기 위해 중학교 진학도 포기하지 않았던가.
물론 과거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타고난 천재성에 좋은 환경까지 곁들였던 그를 노력과 집념으로 뭉쳐진 나는 넘을 수 없는 것일까. 그가 모차르트라면 나는 살리에리일까. 모르겠다. 참을성 말고 바둑 실력으론 이 9단에 비해 뒤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집념이 과한 탓일까. 그것이 나의 눈을 어둡게 하는 것은 아닐까. 1국은 너무 움츠리다가 밀려버렸고 2국은 초반부터 승부를 서두르다가 묘수를 당해 그르쳤다. 나는 바둑 이전에 심리적으로 이 9단에게 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설사 이번 대회에서 진다해도 이 9단의 아성에 도전하는 일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밟아도 밟아도 살아나는 잡초처럼.
최 명 훈(프로기사)

◆'전신두' 묘수는…
LG정유배 결승 5번기 제2국. 최명훈 8단이 백번. 하변에서 대마가 걸린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장면도 백 ○가 흑 ○보다 한 수 부족하지만 백은 ‘가’의 축과 ‘나’로 돌려치는 축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흑 1이 양쪽 축을 동시에 해결하는 천금의 묘수. 황당한 표정으로 반면을 내려보던 최명훈 7단은 몇 수 더 두어보다 돌을 던졌다. 81수 끝 흑 불계승. 참고도의 흑 ‘다’와 ‘라’의 축을 방비하는 백 ○처럼 양 축을 방비하는 묘수를 보통 ‘진신두의 묘수’라고 한다. 진신두의 묘수는 당나라 선종(847∼859) 당시 바둑 1인자였던 고사언이 견당사를 이끌고 당나라에 온 일본 왕자와의 바둑에서 두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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