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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15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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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68)씨가 자신이 한때 ‘시의 정부(政府)’라고 칭송했던 스승이자 선배인 고 미당 서정주의 작품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고씨는 18일 발간 예정인 계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게재한 ‘미당 담론’을 통해 미당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고씨가 미당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에 협력한 미당과 결별을 선언한 뒤 21년만의 일이다.
이 글에서 고씨는 미당의 첫 시집인 ‘화사’(1941년)의 대표시 ‘자화상’을 조목조목 분석하면서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하는 이 작품이 미당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이라는 게 고은씨의 주장이다.
고씨는 “이 시를 통해 청년 미당은 ‘세계에는 오직 나만 있다는 이기주의나 무례한 자아군림주의’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시의 ‘스물셋해 동안 나를 키운 건 八割(팔할)이 바람이다’라는 유명한 구절에 대해 그는 “20대 초의 방황적인 삶을 ‘바람’으로 돌리는 것은 언어가 갖는 허상을 이용한 감동유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어떤 이는 내 눈에서 罪人(죄인)을 읽고 가고 / 어떤이는 내 입에서 天痴(천치)를 읽고 가나’란 구절에 대해서는 “죄인과 천치는 강렬한 수사일 뿐 미당이 깊은 자기성찰이나 회개의 아픔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미당에게는 삶에서나 문학에서나 이른바 대응 콤플렉스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은연중 자신을 무오류성에 두게 한다. 세상사를 개괄적으로 깨달은 나머지 세상에 대한 어떤 종류의 자책도 필요 없게 된다.”
고씨는 이처럼 “세상에 대한 수치가 결여된 미당이 ‘자화상’ 이후 자기합리화에 더욱 능란해지면서, 자아와 세계의 무속적(巫俗的) 연결을 통해 이런 경향이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당의 두 번째 시집 ‘귀촉도’(1946년)에서 보여준 동양 회귀에 대해서도 고씨는 “식민지시대에서나 해방 후의 시기에서 동떨어진 매우 수상한 피난의 영역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표제시 ‘귀촉도’는 내가 보기에 황당무계한 작품이며, 그 시집 안에 적지 않은 시들이 점액질의 언어기교 밖에는 볼품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고씨는 ‘귀촉도’ 이후 미당이 기교 위주의 순수문학을 지향하게 된 배경을 ‘시대에 대한 전진적인 지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고씨는 이승만부터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권력의 품에서 보금자리를 찾기 위한 미당의 행적을 주목하면서 ‘권력 의존적 생존’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고씨가 미당이 세상을 뜬 지금에 와서 왜 맹렬히 비판하는 것일까? 그는 “미당의 과거 행적은 상당기간 소멸될 수 없는 것”이라면서 “미당에 대한 지리멸렬한 예찬들이나 대중적 추앙속에서 그에 대한 비판도 변증법적으로 요청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신화화되는 고인에게 ‘제 몫’을 찾아주기 위한 도전적인 문제 제기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고씨의 신랄한 비판에 대해 문단 안팎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되고 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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