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몸통'은 누구인가

  • 입력 2001년 1월 14일 18시 48분


검찰의 수사는 목적의 정당성 못지 않게 절차도 중요하다. 절차가 투명해야만 수사결과에 대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도 검찰이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의 선거자금 지원 사건을 수사하면서 결과적으로 정치공방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이미 이 사건을 국기(國基) 문란행위라고 규정했다. 이 사건 수사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거나 정치적 협상으로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동안의 수사과정에서 96년 4·11 총선 당시 안기부의 자금을 받았다는 정치인 명단이 유출됐고 검찰이 이미 수사범위를 정한 듯한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수사목적과 절차의 정당성을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어떠한 이유로도 이 사건의 본질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 검찰은 우선 안기부가 96년 당시 신한국당에 선거자금으로 지원한 1192억원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

검찰은 안기부 예비비가 확실하다며 국고수표 사본 등을 증거로 제시했지만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이 돈의 실체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95, 96년 안기부예산 내용을 검토한 결과 세입과 세출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며 안기부예산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의 돈은 안기부 계좌로 관리하던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의 ‘통치자금’이라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서울 내곡동 안기부 청사 신축자금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요컨대 국고수표 발행이 예산전용이 아니라 돈세탁 과정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이던 강삼재(姜三載) 한나라당 의원이 “그 돈은 구 민정당에서 넘어온 재산과 후원금 등으로 마련한 것이며 거기에는 ‘밝힐 수 없는 돈’도 포함됐다”고 말한 대목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강의원이 검찰에 자진 출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기부 예산이건 아니건 당시 문제의 자금을 집행한 당사자인 만큼 검찰에 나가 내막을 밝혀야 한다.

안기부 자금이 과연 어떤 돈인가는 검찰의 수사범위와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돈의 성격에 따라 이미 구속된 김기섭(金己燮) 전안기부차장과 검찰소환에 불응하고 있는 강의원의 ‘윗선’으로 수사범위가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

그런데도 여권 관계자와 검찰이 수사의 정치적 파장을 염두에 둔 듯 ‘YS에게까지는 안 갈 것’이란 말을 흘리고 있다. 이사건의 성격상 ‘깃털’만 건드리고 끝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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