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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월 7일 19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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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지금까지 각 당 대변인이 정치투쟁의 선봉장 노릇을 해왔다”고 자성한 뒤 “내년에는 상대 당에 대한 공격보다 당의 방침을 좀더 진지하고 정확하게 국민에게 알리는 데 주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험한 단어의 사용을 배제하고 국민이 듣기에 신선하고 기분 좋은 단어를 사용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런 약속을 한 지 이제 겨우 열흘이 지났다. 시쳇말로 다짐을 쓴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그 열흘 동안 ‘감동을 주는 논평’과 ‘신선하고 기분 좋은 단어’를 하나라도 찾아볼 수 있는가.
▷‘의원 꿔주기’니 ‘영수회담장 맞싸움’ 등 도저히 아름다운 표현을 쓸 수 없는 정치상황 때문에 부득이 약속을 어겼다고 두 대변인은 말할지 모른다. 그렇다해도 “오도된 자기도취에 빠진 독선적 시국관” “아집, 편견 대권욕에 사로잡힌 인간의 전형” “노욕(老慾)의 기만정치” “양치기 소년 같은 거짓말쟁이” 등 듣기에 섬뜩한 독설을 거리낌없이 뱉어내야 했는가. 듣는 사람이 욕지기를 느낄 정도의 야비한 인신공격을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야 옳았는가.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할 말, 안할 말을 고스란히 토해 놓기로 한다면 누가 말했듯이 그건 대변인이 아니라 ‘똥인’이다. 윗사람이 격한 표현을 쓸 때 걸러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싸움을 크게 붙이려고 덧칠을 하니 그들이 내는 성명, 논평을 배설물에 비유한들 누가 탓을 하겠는가. 정치판이 아무리 험하게 돌아가더라도 멋진 말, 재치있는 표현으로 가슴을 울리는 대변인을 보고 싶다. 아이들이 듣고 볼까 두려운 난잡한 말은 이제 정말 싫다.
<민병욱 논설위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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