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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총리 후보자를 결정적으로 낙마시킨 것은 박연차 씨를 알게 된 시기나 관사 도우미로 도청 직원을 쓰고, 부인이 관용차를 타고 강의를 하러 다닌 행위 자체보다는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 둘러댄 거짓말이었다. 스스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말했듯이 거듭 말을 바꾸면서 전도가 유망하던 40대 젊은 총리 후보자는 싸늘해진 민심을 돌릴 수 없었다. 공무원과 국회의원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봉급 받고, 세금으로 나라살림을 꾸리는 공직자다. 국민이 채용한 공직자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국민을 속이는 행태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작년 7월 이 대통령은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골프여행과 관련해 거짓말한 것이 드러나자 “다른 곳도 아닌 검찰 최고책임자가 국가 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내정을 취소했다. 그런데도 공직자들의 거짓말이 이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천안함 폭침사건이 북한 소행임을 아직도 못 믿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은 군이 여러 차례 말을 바꾼 행태도 큰 영향을 미쳤다. 폭침 발생 시각이 계속 바뀌고 천안함을 공격한 것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놓고 새떼와 반잠수정으로 오락가락하니 군 당국의 발표를 불신하게 된 국민이 늘어난 것이다. 남북문제에서도 청와대는 작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비밀접촉 보도가 나온 다음에야 “다 지난 얘기인데…” 식으로 사실을 인정했다. 남북관계의 투명성을 유독 강조했던 정부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이기에 국민은 더욱 허탈하다. 야당도 정부 여당의 거짓말을 탓할 자격이 없다. 2009년 미디어관계법 통과 때 민주당 이미경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석을 돌아다니며 반대투표 버튼을 마구 눌러놓고 동영상 공개 전까지 “투표 방해나 조작이 없었다”고 잡아뗐다. 박지원 씨(현 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2002년 대북송금 의혹이 제기되자 “단돈 1달러도 보낸 적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김정일에게 4억5000만 달러를 불법 송금한 것이 드러나 유죄 판결을 받았다. 1999년 국정원 정보통신부 법무부 등 3개 부처가 ‘휴대전화는 감청이 안 됩니다’라고 신문광고를 한 것도 거짓말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동아일보가 보도한 휴대전화 도청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으나 2005년 도청 사실이 확인됐다. 공직자의 거짓말은 도덕성의 문제를 넘어 정책을 왜곡하고 국민의 선택을 그르쳐 민주주의를 교란하는 결과를 빚는다. 국민을 속인 공직자가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거짓말이 사면되지 않는다. 거짓말하는 공직자와 정치인들을 끝까지 추적해 국민이 심판하는 나라라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3인의 사퇴는 정부 여당에 맹성(猛省)의 멍에를 지웠지만 야당에도 도덕성 성찰의 부담을 안겼다. 청문회에서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을 신랄하게 몰아치던 의원들을 비롯해 야당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깨끗한지 국민은 궁금하다. 민주당 강성종 의원은 신흥학원 이사장을 지내며 신흥대와 인디언헤드국제학교에서 학교 돈 80억 원을 빼돌려 생활비와 정치자금으로 썼다는 것이 검찰 수사결과다. 구속 수사를 받아야 할 죄질이지만 민주당은 국회의원의 회기 중 불체포특권을 악용하기 위해 반년째 연중무휴(無休)로 임시국회를 열었다. 민주당은 지난주 김 총리 후보자 처리에 관한 한나라당과의 협상 자리에서도 강 의원 체포동의안 자동폐기를 겨냥해 “27일 본회의에서 김태호 후보자를 처리하지 말고 강성종 체포동의안을 상정하자”고 제의했다. 빼돌린 학교 돈으로 가정부 보수까지 지급한 범법 혐의자를 끌어안는 행태는 ‘초록이 동색’ 아니고 무엇인가.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번 인사청문회에 대해 “공직자의 도덕적 기준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높아진 도덕적 기준’은 민주당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대안정당 수권정당의 가능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의 말대로 민주당이 ‘원칙과 명분을 중시’하는 진보적 정당임을 내세우려면 강 의원 처리 같은 구체적 사안에서부터 떳떳하게 행동해야 한다. 김 총리 후보자 부인의 루이뷔통 가방은 청문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집중 표적이 됐다. 김 총리 후보자가 191만 원짜리 가방을 구입한 장소를 명확하게 대지 못해 가방 취득 경위에 대한 의문을 낳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루이뷔통 가방은 서울의 직장여성들도 들고 다니고 지하철 안에서도 볼 수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아내나 자녀 또는 본인이 명품 가방이나 옷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지, 장롱을 한번 열고 확인해주었으면 한다. 과거 10년 민주당 집권 시절 일부 인사들이 저지른 권력형 비리는 국민의 뇌리 속에 아직 잊혀지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밑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 씨는 10억 원 안팎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받고도 검찰 출석을 한사코 거부한 바 있다. 그가 법보다 상위(上位)의 특권이라도 가진 게 아니라면 민주당은 ‘정치적 탄압’ 운운할 것이 아니라 한 씨 수사에 협조했어야 옳았다.}
좌편향 역사교과서를 수정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시에 따라 금성출판사가 내용을 고쳐 발행한 것은 정당하다는 항소심 판결이 그제 나왔다. ‘출판사가 교과서 저자의 동의 없이 내용을 수정한 것은 저작인격권 침해’라는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현행 교과부 규정에 따르면 ‘교과부 장관은 교과용 도서의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때 검정도서의 경우 저작자 또는 발행자에게 수정을 명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교과서 저자들은 출판 계약 당시 교과부의 수정 지시가 있을 경우 지시에 따른다는 데 동의했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 내용은 개인적인 창작물과 다르다. 역사교과서는 이 땅에서 살아갈 미래세대에게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헌법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사실(史實)을 가르쳐야 한다. 저자 개인의 주관적 사관(史觀)에 치우쳐선 안 된다. 2심 법원은 출판사 측이 잘못된 역사교과서를 시정할 수 있는 재량을 갖고 있음을 인정했다.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고교 교과서에는 ‘이승만 정부 때 친일파 청산이 안 돼 민족정신에 토대를 둔 새로운 나라의 출발은 수포로 돌아갔다’ ‘북한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토지개혁이 남한 농지개혁보다 농민에 유리했다’는 식의 편향된 내용이 서술돼 있다. 이처럼 나라의 정통성을 깎아내리는 교과서로 학생들에게 정상적인 국가관을 심어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폄하될 우려까지 있다. 교과부는 2008년 10월 국사편찬위원회 등 6개 기관의 건의에 따라 금성출판사에 36개 항목의 수정을 명했다. 저자들이 수정을 거부하자 출판사는 대한민국의 정부수립이 잘못된 것처럼 규정한 대목을 ‘친일파 청산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등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표현을 다듬는 땜질에 불과해 좌편향 기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이다. 저자들은 교과부의 교과서 수정 지시를 문제 삼은 별도의 행정소송을 냈다. 다음 달 2일 선고될 예정인 이 사건에 대한 판결 역시 헌법적 질서와 다수 국민의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2003년부터 이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이 지금 고교생부터 20대 초중반까지 퍼져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배운 ‘금성교과서 세대’가 앞으로 이 나라, 이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걱정된다.}

1966년 중국에서 “기존 권위에 반기를 들라”는 마오쩌둥의 선동에 가장 먼저 뛰어나온 집단은 학생들이었다. 전국의 학교마다 혁명조직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열 살 남짓 어린 학생들은 홍소귀(紅小鬼·어린 홍위병)라고 불렸다. 사회정의와 계급의식에 불타던 중학생 류칭은 일본 유학을 갔다 온 교사의 사상성을 비판했다. 교수이던 친구 아버지를 ‘인민의 적’이라며 몰아냈다. 교사와 수업이 사라진 교실은 ‘만리장성 투쟁조’ ‘두려움 없는 붉은 혁명군’ 같은 동아리 차지가 됐다. ▷류 씨는 지금 중국 광둥 성과 말레이시아에 공장 여러 개를 운영하는 사업가다. 그에게 문화혁명에 대한 기억은 ‘잃어버린 10년 세월’에 대한 아쉬움뿐이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6년 경기 평택시에 투자하려던 그가 계획을 백지화하면서 남긴 말이 있다. “여기 올 때마다 학생시위, 노동자시위를 본다. 한국에서 문화혁명이 일어나고 있나 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교육정책 수립에 학생들을 제도적, 조직적으로 참여시키는 ‘서울교육 학생참여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21세기 민주시민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학생 자치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곽 교육감 취임식 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추천한 ‘학생 대표’로 나와 “일제고사를 없애주세요” 하고 외쳤던 여중생 같은 아이들이 학생참여위원회에 모일 공산이 크다. 명칭부터 이념, 정책까지 과거 좌파정권의 ‘참여민주주의’를 부활시킬 모양이다. ▷학생(學生)들이 아직 배우는(學) 인생(生)임을 모른다면 곽 교육감에게 교육감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없는 이유는 이들이 아직은 미성숙해서다. 체벌금지로 교사의 교육력을 무력화하고, 청소년인권조례를 통해 학교를 정치투쟁의 장(場)으로 만들고, 학생참여위원회로 학생을 정치꾼으로 키우는 ‘좌파교육 3종 세트’를 밀어붙이는 이유가 궁금하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일찍이 “좌파는 학생자치로 교사를 무력화하고, 유치원생도 정책토론을 시켜 혁명전사로 만드는 등 교육을 공산화 전략으로 이용한다”고 갈파했다. 곽 교육감은 전교조로도 모자라 학생들까지 홍위병으로 만들 셈인가.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문화바우처에 대해 늦게 알았는데 알고 나서 어찌나 행복하던지요.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부산의 김선영 씨가 연극 ‘오래된 아이’를 본 뒤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문화바우처란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에게 연극 음악 미술 책 등 문화프로그램을 즐길 비용으로 1년에 5만 원까지 지원하는 제도다. 올해 예산 67억 원으로 13만4000여 명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지급 대상자로 추산되는 400만 명 중 3.3%에 불과하다.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 농어촌지역에서는 문화예술 경험을 할 기회가 많지 않다. 특히 집에 읽을 책이 부족해 풍부한 독서를 하지 못한 청소년들은 인지능력 개발이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테네시대 연구진이 소외계층 학생 852명에게 학년 말에 직접 고른 책 12권씩을 3년간 집에 가져가게 하는 실험을 한 결과 읽기 성적이 크게 올랐다. 책을 많이 읽어서만이 아니다. 자신이 한 계단 위로 ‘계층이동’을 했다고 여기게 돼 삶의 자세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이제는 국민 모두가 고르게 문화를 누릴 수 있어야 하겠다”며 문화바우처 제도를 내년부터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동유럽 공산정권 붕괴 직후 이 대통령이 찾았던 헝가리의 공연장에 서민층 학생들이 많아서 놀랐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문화의 세례를 받기 어려운 소외지역을 위해 ‘찾아가는 프로그램’ 개발에도 정부는 신경을 써야 한다. 동아일보는 2007년부터 강원 인제, 경남 거창, 경북 울진 등 지방 청소년들을 찾아가 클래식음악과 발레, 뮤지컬, 비보이 공연을 보여주는 ‘친구야 문화예술과 놀자’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이런 문화예술 공연을 생전 처음 보았다는 청소년이 26%나 된다. 한번 감동을 느끼게 된 청소년들은 85%가 “공연이 있으면 또 오겠다”고 할 만큼 문화예술에 목말라 있다.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한진중공업은 미래세대의 ‘문화격차’ 해소에 기여하는 이미지를 청소년들에게 주어 기업으로서도 큰 플러스다. ‘문화공헌’을 하는 기업이 늘면 영세한 문화예술 공연단체들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문화가 소외된 계층과 지역까지 찾아가 상상력과 꿈을 선사하는 나라가 돼야 지역격차도 줄어들고 행복지수도 높아진다.}
수원지법 여주지원이 경기 여주군 남한강 이포보 공사현장의 보(洑) 기둥에 올라가 지난달 22일부터 한 달째 농성 중인 환경운동연합 간부 3명에게 퇴거하라고 20일 명령했다. 그러나 이들은 법원 결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4대강 사업 중단’이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고공농성을 계속하려는 태세다. 법원 판결도 무시할 만큼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이곳에 살지도 않는 환경데모꾼들은 서울에서 가까운 이포보를 국책사업 반대 선전장으로 삼고 있다. 김춘석 여주군수는 “아름다운 이포보가 건설돼 호수가 생기면 관광명소로 만들어 주민이 먹고살 일자리 창출 기반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강바닥의 자갈 모래를 긁어내 판매한 2000억 원 중 1000억 원이 여주군에 돌아간다. 연간 예산이 2800억 원에 불과한 지방자치단체로서는 큰 수입이다. 그제는 인근 주민 1800여 명이 이포보가 내려다보이는 이포대교에서 강 건너까지 한 줄로 ‘인간 띠’를 만들고 농성자들에게 공사 현장을 떠나라고 촉구했다. 70년간 이곳에서 살았다는 김영무 옹은 “저 사람들이 뭔데 주민이 원하는 공사를 왜 방해하느냐”고 소리쳤다. 환경운동가들이 4대강 사업을 비판할 수는 있다. 4대강 개발에 반대하는 시위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사 자체를 방해하는 행위는 지역주민과 지방자치단체에 손해를 끼치는 범법 행위다. 이들의 점거농성이 길어질수록 국민의 혈세가 더 들어간다. 사고라도 날까 봐 다리 밑 강물 위엔 그물망 같은 구조용품이 설치됐고 경찰차량과 앰뷸런스 소방차도 대기하고 있다. 그 비용은 결국 세금에서 나온다. 경비인력들이 밤잠을 못 자며 범법자들을 지키는 데까지 세금이 들어가는 것이다. 법원은 이들이 현장을 떠나지 않으면 1인당 하루 300만 원씩, 공사현장을 출입하거나 공사 장비를 훼손하면 한 번에 300만 원씩을 공사업체에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환경근본주의적 이념투쟁을 위해 지역주민과 법치를 무시하는 환경단체의 횡포를 더는 용납해선 안 된다. 이들이 하루빨리 농성 현장을 떠날 수 있도록 관계당국은 적법한 강제조치를 취해야 한다.}
15일 밤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선 남성 동성애 커플이 나란히 침대에 누워 팔베개를 하다 포옹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우리 사랑도 사랑이라고. 몸 붙은 쌍둥이처럼 그렇게 우리 사랑하다 죽자”고 말하는 장면을 놓고 시청자 게시판에선 거센 논란이 벌어졌다. 현직 교사라는 시청자는 “가족 간 갈등과 해결 과정을 그리는 드라마를 넘어 지나치게 동성애를 포장하는 것 같아 우려된다. 방송의 교육적 파급력을 신중히 고려해 달라”고 요구했다. 성적 소수자(少數者)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과 그들의 사랑을 가족이 시청하는 안방매체에서 보여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방송법은 ‘시청자의 윤리적 정서적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성 커플의 등장 빈도가 늘면서 “닭살이 돋아 채널을 돌린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더구나 밤 10시에 ‘15세 시청가’로 방송돼 온 식구가 보다가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곤란하다”는 시청자가 많다. 동성애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감동적 가족애를 그렸다는 견해도 있기는 하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겠다는 작가의 의도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수용성(受容性)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국가기간방송 KBS 드라마에도 제대로 된 가정은 절반에 불과하다. 시청률 40%를 넘긴 KBS 2TV ‘제빵왕 김탁구’에선 사장이 보모와 사통해 아들을 낳고, 사장 부인도 비서실장과 불륜을 저질러 아들을 낳았다. ‘착한 사람이 이기게 돼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지만 극히 비정상적인 가정 구도가 거북한 게 사실이다. KBS 김인규 사장은 올 3월 “KBS의 살길은 공정성을 확보하고 선정성을 배제해 확실한 공영방송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아침드라마 ‘엄마도 예쁘다’부터 일일드라마 ‘바람불어 좋은 날’과 주말드라마 ‘결혼해주세요’까지 외도 드라마가 버젓이 전파를 타고 있다. 공영방송으로서 불륜 소재라야만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고식적 사고에서 탈피하는 노력 없이 수신료 인상만 주장한다면 곤란하다.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통해 돈을 벌어들이는 방송사가 국민 정서와 사회적 윤리, 파급력을 외면할 수는 없다. 방송의 공적 책임에 대해 방송법 5조는 ‘방송은 건전한 가정생활과 아동 및 청소년의 선도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음란, 퇴폐 또는 폭력을 조장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불륜드라마 공해로부터 가정을 보호해주기 바란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올해 안에 허가하기로 일정을 정한 종합편성채널(종편)의 심사기준이 어제 발표됐다. 방통위는 종편사업자를 어떤 방식으로 몇 개 뽑을지에 대해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하나는 사업자 수를 미리 정해놓고 희망 사업자의 신청을 받아 고득점 순으로 뽑는 비교평가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일정한 심사기준을 충족하면 모두 승인해주는 절대평가 방식이다. 심사기준을 명확히 한 뒤 공정하고 투명하게 평가한다면 비교평가냐 절대평가냐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다만 자원이 한정된 방송광고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종편사업자의 과다(過多) 선정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방통위는 심사배점으로 방송의 공적 책임을 전반적으로 고려한 제1안과 콘텐츠경쟁력을 강조한 제2안,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 종합편성 콘텐츠사업 승인 심사기준을 중시한 제3안을 제시했다. 2009년 7월 미디어 관련법의 개정은 지상파 방송의 독과점을 깨고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높여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따른 것이다. KBS와 MBC는 각각 지분의 100%와 70%를 정부가 사실상 보유하고 있어 정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다. KBS, MBC 등 국가가 실질적으로 소유하는 방송의 매출액 비중이 77%나 된다. 지상파는 시청률과 광고수입에 급급해 방송의 공익성을 외면했다. 노조가 사실상 주인 노릇을 하는 노영(勞營)방송 구조는 ‘과잉 복지’ ‘편향 보도’ 논란을 불렀다. 독과점의 폐해를 혁파하려면 새로 탄생하는 종편은 공정성 공익성이 가장 중요한 심사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종편의 콘텐츠 경쟁력은 자체 제작능력뿐 아니라 다양한 외부 독립제작사와 상생(相生)구조를 갖추었는지가 중요하다. 국내 독립제작사들은 그동안 방송 콘텐츠의 유통과 소비가 지상파 방송 위주로 이뤄져 거대 방송사의 횡포에 시달렸다. 한류(韓流)를 살찌울 젖과 꿀이 방송사로만 흘러들어간 것이다. 새로 허가를 받는 종편은 기본적인 기획 편성 제작 능력을 갖추는 동시에 독립제작사와 해외 미디어를 시청자와 연결하는 역할을 하면서 방송시장의 활성화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 종편 선정은 1980년 신군부가 언론통폐합으로 만들어낸 지상파 3사의 독과점 구조를 개혁하고 신문과 방송의 칸막이를 없애 미디어융합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동아일보는 라디오방송의 선구자였던 동아방송(DBS)을 신군부에 강제로 빼앗겼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굴곡의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혀야 한다. 방통위는 미디어융합시대를 이끌 선두주자를 육성한다는 사명감으로 올해 안에 차질 없이 종편 선정을 마쳐야 할 것이다.}

러시아 모스크바 중심의 붉은광장은 이 나라 역사와 권력의 상징이다. 크렘린 궁과 역사박물관, 바실리 성당, 백화점이 둘러싸고 있고 중앙엔 레닌의 미라를 전시하는 무덤도 있다. 록 음악 마니아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엔 광장에서 록 페스티벌도 많이 열린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이어서 러시아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문화재감독청은 “특정 정치사회단체의 집회로 문화유산을 파괴하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않은 러시아만 그런 게 아니다. 1963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30여만 명 앞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고 연설한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몰 광장도 허가제다. 집회나 행사계획서를 내면 담당 직원들이 엄격히 심사해 허가를 결정한다. 기준은 광장의 보호와 질서 유지다. 시설물 훼손이나 폭력행위, 계획서와 다른 행사내용이 나중에라도 드러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음번 이용은 불가능해진다. 광장은 이용신청자뿐 아니라 모든 미국인을 위한 공공장소이기 때문이다. ▷서울광장은 거꾸로 간다. 지금까지는 허가제였지만 신고제로 바뀔 모양이다. 시민들의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을 목적으로 한 행사만 가능했지만 앞으론 정치적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있게 됐다. 지난 주말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서울시의회가 이런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서울광장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말은 그럴듯해도 신고제로 하면 데모광장이 될 게 뻔하다. 개정안 제안 이유에 명시했듯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 시위 자유의 본질’을 서울광장에서 실현하겠다는 게 진의라고 봐야 한다. 데모꾼들의 광장이 되면 2008년의 불법 쇠고기시위가 재현되지 말란 법이 없다. ▷서울시가 재의를 요구하겠다지만 민주당 시의원이 전체의 75%나 돼 최종 통과는 불가피할 것 같다. 그러나 개정안에 서명한 시민은 8만5072명이고 전체 서울시민은 2009년 현재 1046만4051명이다. 아무리 ‘시민의 광장’이라고 해도 허가 없이 신고만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유재산은 없다. 서울광장은 이용신고자뿐 아니라 모든 시민을 위한 곳이어야 한다. 간신히 제자리를 찾은 서울광장까지 ‘시위 전문세력’에 뺏긴다면 1000만 명이 넘는 서울시민들은 너무 억울하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특권(特權)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은 국무총리 공직윤리지원관실만이 아니다. 검찰이 그제 본격 수사에 착수한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의 거액 비자금 조성 사건에도 권력층이 관련됐다는 의혹이 있다. 2009년 재선임된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협력업체인 임천공업에서 조성한 비자금을 사장 연임 로비자금으로 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지금은 임천공업 비자금 조성 관계만 수사한다”고 선을 그었다. 남 사장의 로비 대상으로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여권의 거물급 인사가 거론되고 있다. 이 사건 수사가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사찰 사건처럼 ‘깃털’만 잡아내는 데 그치면 국민의 냉소를 피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법 앞에 평등한 것이 법치주의의 이념이다. 그렇지만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은 법치주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오남용(誤濫用)되고 있다. 8·15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 씨,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과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 등이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의 사면은 특별한 사람들에게 더 온정적이다. 생계형 범죄자 사면은 구색으로 끼어들어간 것 같다. 노건평 씨가 사면될 경우 전직 대통령의 가족은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사면권 오남용이 지속된다면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 권력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고 사법부의 권위에도 상처를 입힌다. ‘서민 정당’을 자처하는 민주당도 특권 감싸기에 바쁘다. 민주당 강성종 의원은 자신이 이사장을 맡았던 학교법인에서 80억 원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강 의원을 체포하지 못하도록 연중무휴(無休)로 임시국회를 열었던 민주당이 국회에 강 의원 체포동의안이 회부됐을 때도 범법자 보호에 앞장선다면 30개의 친(親)서민 정책이 무색해질 판이다. 한나라당 역시 동료 의원 구명을 위해 체포동의안 자동폐기에 공모(共謀)한다면 특권의 담합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어제 이임식을 가진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사회적 약자에게만 준법을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법치주의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서민의 곤고(困苦)한 삶 위에 특권 지대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비치는 세상에서 정치권이 외치는 친서민 구호는 공허하게 들린다.}

“역동적으로 안양을 살리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갈 수 없습니다.” 최대호 안양시장(민주당)이 7월 1일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이처럼 화합을 강조하던 그가 전임 시장 시절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의 징계를 담당한 안양시 간부들을 모두 좌천시켰다. 전보 제한규정을 위반한 인사다. 이들 징계 담당자에 의해 지난해 파면된 손영태 전 전공노 위원장은 최 시장 측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발탁됐다. ▷“교육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교육주체들이 만족하는 정책이 우선한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의 발언이다. 그래놓고 전임 교육감 시절 결정된 익산 남성고와 군산 중앙고의 자율형사립고 지정을 취소한다고 어제 공식 발표했다. 좌파 시민단체들의 ‘단일후보’로 당선된 그는 자율고를 평등 이념을 해치는 특권교육의 상징으로 본다. “모든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며 따뜻한 교육현장을 만들겠다”는 취임사가 아름답긴 하지만 하향평준화 붕어빵 고교 일색으로 만드는 조치가 반드시 건강하고 행복한 교육은 아닐 것이다. ▷안양과 전북의 정책 뒤집기는 여러모로 닮았다. 최 시장과 김 교육감은 좌파 성향이면서도 겉으로는 이념에 초연한 듯, 이념을 초월한 듯 말한다. 좌파라고 불리는 게 싫은지, 민주 인사로 보이고 싶어선지 의문이다. 권력을 접수하자마자 전임자의 정책을 뒤엎고는, 법령을 위반한 것이니 시정하라는 상부 명령에 맞서고 있는 것도 똑같다. 학원장 출신의 최 시장은 “행정안전부의 시정명령이 적법한지는 사법부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헌법학 교수 출신인 김 교육감도 사법 판단까지 물을 태세다. ▷법대로 하면 안양시가 잘못된 인사를 바로잡지 않을 경우 경기도지사는 직권으로 인사를 취소할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역시 전북도교육청의 자율고 지정 취소 조치가 부당한 것으로 드러나면 지방자치법 제169조 제1항에 따라 직권으로 도교육청의 결정을 취소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에 과연 그럴 만한 의지가 있느냐는 거다. 말로만 “단호히 대처”를 외치다 흐지부지 넘어가면 좌파 단체장들의 ‘반란’은 속속 이어질 것이다. 공은 정부에 넘어왔다. 특히 실세 차관이라던 이주호 교과부 장관 내정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태어나서 보니 아빠가 사장이면 얼마나 좋을까.” 한 여중생이 한숨을 쉬며 내뱉어 제 엄마를 기함하게 만든 소리다. 앞으론 이런 말로 경악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태어나서 보니 사회적 배려 대상자면 얼마나 좋을까.” 정부가 18개 새 자율형사립고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에 내신 최저기준을 없앴다.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 자녀 등이 대상이다. 대학입시에도 이들만의 특별전형이 늘어나니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부럽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판이다. 그렇다고 자녀를 위해 계속 가난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랴 싶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고 있다. 4인 가구 월 소득이 165만 원 미만인 기초생활수급자 148만 명 중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29만 명이다. 이보다 수입이 많아지면 교육비 지원까지 끊기니 차라리 일을 하지 않겠다는 이가 적지 않다. 1996년 미국 민주당 정부가 복지혜택을 5년으로 끊고 자립하라며 등을 떠민 것도 도덕적 해이 때문이다. 당시 냉혹하다고 비판받았지만 지금은 성공한 개혁으로 평가된다. 정부가 어제 총리 후보자와 내각 진용을 발표하면서 친(親)서민 국정을 강조했다. 한나라당 서민정책특위 홍준표 위원장은 아예 ‘우파 포퓰리즘’을 내걸었다. 좌파가 포퓰리즘으로 국민을 선동하고 국민은 이에 현혹돼 표를 던지니, 다음 정권을 내주는 것보다 우파도 포퓰리즘을 하는 게 낫다는 충정일 터다. 하지만 우파든 좌파든 포퓰리즘으로 잘못된 역사는 나치 독일부터 페론의 아르헨티나까지 넘쳐난다. 더구나 이 정부는 포퓰리즘에 매달리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대중영합 정책에 잘된 나라 없어 첫째, 나중에 나라가 흔들리든 재정이 파탄 나든 당장 포퓰리즘으로 뜨려면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현재 한나라당엔 그런 사람이 없다. 홍 위원장이 ‘모래시계 검사’로 주목받았다지만 당 대표 경선에 졌다고 사사건건 발목 잡는 함량으론 리더 자격도 의심스럽다. 김태호 후보자도 총리가 돼 대통령의 입만 보고 일할 경우 지금 지닌 참신한 이미지마저 잃을 우려가 있다. 둘째, 포퓰리즘의 특징이 대중 대(對) 엘리트로 편을 가르는 거다. 정부와 여당은 벌써 중소기업=서민=선, 대기업=부자=악으로 국민을 분열시켰다. 말로는 통합을 외치면서 좌파정권 뺨치는 ‘증오 정치’를 해선 다수 국민을 위해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기업과 부자들을 ‘살찐 고양이’라며 포퓰리즘 대열에 앞장섰지만 지지율은 최악 수준으로 떨어지는 추세다. 뉴욕타임스는 “정부보다 현명해진 보통사람들이 이젠 대기업 아닌 큰 정부가 더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셋째, 포퓰리즘이 나라를 재앙에 빠뜨리는 가장 큰 이유는 대중에 영합하느라 문제의 근본을 해결 못하고 되레 악화시켜서다. 오랜 포퓰리즘에 시달렸던 콜롬비아의 대니얼 메지아 교수는 “분배 위주 포퓰리즘은 인적투자를 외면하는 등 소외계층의 생산성을 높이지 못해 소수엘리트 지배를 확고히 할 뿐”이라고 했다. 좌파 교육감들의 무상급식 주장은 교과서적 예가 될 수 있다. 모든 초중고교생에게 무상급식을 하려면 이미 저소득층 자녀와 농어촌에서 하고 있는 급식예산을 빼고도 매년 1조9600억 원이 필요하다. 이런 돈이 있으면 교원평가를 반길 만큼 유능한 교사를 더 뽑거나 맞춤식 교육을 하는 게 교육경쟁력을 높여 소외계층이 제 힘으로 가난을 벗어나는 데 보탬이 된다. 서민이 ‘서민계급’에 안주하게 만드는 정부는 반(反)서민이다. 자립의지와 능력을 갖고 일하게 해줘야 진짜 친서민이다. 평생 배려의 대상으로 사는 인생이 행복할 것 같지도 않다. 남이 낸 세금으로 사는 이가 많아야 진보이고 우리나라가 가야 할 방향이라면, 나는 반대다. 리더가 진정 국민과 국익을 위해 꼭 필요한 결정을 내리면 대중은 받아들인다. 정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올리는 치명적 정책을 발표했는데도 거꾸로 지지율이 오른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산증인이다.사실과 진심이 선동정치 이긴다캐머런의 선거자문을 맡았던 전략가 빌 크냅은 양극화가 극심한 정치난국을 헤쳐 나가는 핵심이 리더십이라고 했다. 좌우연합내각으로 출범했지만 좌우파 리더들은 국정목표의 공통점을 찾아냈고, 당내 강경파의 발목잡기를 이겨냈으며,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력해야 할 정책에 대해 국민에게 신속히, 충분히, 진심을 다해 설명했다. 국민은 정치꾼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많이 알고 있다. 민주당이 재·보선에서 패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자유시장경제와 효율적 정부가 성장과 발전을 가져온다는 경제법칙은 변하지 않았다. 선거결과가 나올 때마다 “국민은 현명하다”는 우리 정치인들이 돌아서선 딴소리하는 걸 보면 역시 그들이 더 어리석은 모양이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온통 욕설과 막말에 뒤덮인 나라는 문화국가가 될 수 없다. 욕설과 막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교양인 대접을 받을 수도 없다. 오늘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토록 심각한 언어 타락을 자초했는지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환경시설 관리병으로 근무하던 한 병사가 2년 전 상급자에게 “개○○ 죽을래” 같은 욕설을 듣고 모욕감을 못 이긴 나머지 부대 작업장에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육군 법무실의 ‘군 내 언어폭력 이대로 좋은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육군의 자살 사건 중 언어폭력으로 인한 사례가 27%에 이른다. 욕설은 불량 남학생들이나 하는 것으로 돼있었지만 지금은 우등생도, 여학생도 별 생각 없이 욕설을 입에 담는다. 어머니뻘 되는 환경미화원에게 심한 욕설을 한 모 대학 ‘패륜녀’가 인터넷에서 크게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중고교생 대상으로 인터넷강의를 하는 강사들은 인기를 끄는 수단으로 욕설을 사용한다. “이승만 박정희는 ×새끼”라는 사회탐구, “×놈, ×새끼”가 말끝마다 끼어드는 수리영역 강의가 중고교생들의 의식을 파고들고 있다. TV와 라디오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쏟아내는 비속어 문제도 심각하다. 가이드라인도, 제재장치도 없는 인터넷 공간의 댓글은 죄 없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최근 아이폰 열풍을 타고 ‘대놓고 욕해줌’ 같은 애플리케이션(앱)이 욕설을 일상화, 오락화의 경지로 가져다놓았다. 각종 매체를 타고 번지는 욕설을 무감각하게 방치하다 보면 갈수록 확대 재생산돼 전체 사회가 건강성을 잃어버리기 쉽다. 육군이 ‘욕설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장병들이 철없는 10대도 아니고, 제대하면 사회생활도 해야 하는데 욕을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생활을 해선 곤란하다”는 취지다. ‘말하기’나 언어순화 교육은 학교에서 맡아야 할 부분이지만 군이라고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언어는 습관이다. 욕설 없이는 말을 못하는 습관이 배면 제대한 후 사회에 진출해서도 고치기 어렵다. 언어는 정신을 표출하는 기호이며 영혼의 울림이다. 어휘와 말씨는 말하는 사람의 인격과 품성, 교양과 사회경제적 배경을 말해준다. 별 생각 없이 쓰는 욕설이 자신의 민얼굴임을 안다면 부끄러워서라도 함부로 쓰긴 힘들 것이다. 언어 순화는 감정 통제를 가르치는 인성교육의 한 방법이다. 말이 혼탁해지면 정신도 사회도 병들게 된다. 어른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아이들의 욕설도 줄어들 것이다. 각박한 세상일수록 배려와 따스함이 배어나오는 말을 쓰기 위해 다함께 노력하는 사회가 돼야 문화국민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지식인의 역사를 다룬 책 ‘지식인의 탄생’은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졸라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1894년 유대계 장교 드레퓌스가 군사기밀을 독일에 팔아넘긴 혐의로 잡혀갔다. 군부가 보불전쟁의 패전 책임을 면하기 위해 그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확신한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는 글로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드레퓌스는 1906년 프랑스 최고재판소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사회는 지식인들에게 쉽사리 판단하기 힘든 문제에 대해 무엇이 맞고 틀린지 양심을 걸고 말해주길 바란다. 군사독재 시절 우리 지식인들은 그런 역할을 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방송 때는 한국언론학회가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려 편파방송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2005년 황우석 사태 때는 인터넷 커뮤니티인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가 큰 역할을 했다. 어떻게든 황 교수를 믿고 싶었던 국민정서와 권력의 보호막이 결합된 황우석 신화는 과학자들의 탐구정신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2008년 광우병 사태는 과학에 이념이 덧붙여졌다. 광우병 공포를 확산시킨 ‘죽음의 향연’의 저자 리처드 로즈는 “인간광우병이 대재앙이 될 것이라는 출간 당시(1997년) 예언이 틀렸다”고 인정했는데도 일부 ‘지식인’은 한물간 이론을 펴 서울을 촛불바다로 만들었다. 올해 천안함 사태는 더 복잡하다. “어뢰 폭발이 있었다면 ‘1번’ 글씨가 타버렸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어뢰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몇몇 미국 대학 한국인 교수의 주장이 좌파 매체들을 통해 번져나가 음모설을 부풀렸다. ▷열(熱) 전달 분야 전문가인 송태호 KAIST 교수가 이에 대한 논문을 내놨다. 폭발 당시 1번 글씨가 쓰인 어뢰 추진부 후면의 온도는 0.1도조차 상승하지 않는 것으로 계산됐고, 따라서 글씨가 지워지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밝혔다. 그는 ‘1번 논쟁’을 과학적으로 밝힐 결심을 한 이유로 “전문가 중 누군가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엉터리 주장으로 나라가 들썩이는 것을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역시 지식인의 맥은 끊어지지 않았다. 천안함의 진실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은 이제 끝났으면 좋겠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이 익산 남성고와 군산 중앙고의 자율형사립고(자율고) 지정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재단 측이 제시한 재정상태와 투자계획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유지만 납득할 수 없다. 두 학교는 5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자율고 지정을 마쳤고 10월 원서접수를 시작해 내년 첫 신입생을 받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교육의 양극화 계층화를 초래하는 특권교육에 반대한다”고 공언하던 김 교육감의 평준화 집착증이 자율고를 첫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두 학교도 당황스럽겠지만 자율고 입학을 준비하던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이 크다. 입시정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예측 가능성이다. 대학입시의 경우 3년 후 시행될 정책을 미리 발표한다. 수험생들이 대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고교입시라고 해서 대학입시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도 일단 자율고로 지정하면 최소한 5년 후에 재심사하게 돼 있다. 전북의 수많은 고교 중에 상산고를 포함해 자율고 세 곳이 있다고 해서 평준화의 골격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김 교육감은 전교조와 좌파 성향 시민사회단체들의 추대를 받고 당선됐다. 당선 직후 본보 인터뷰에서 “정부와 갈등을 빚고 교육 현장을 실험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정부 및 다른 지역과 소통 협력을 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치면서 올바른 교육정책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헌법학자 출신이 법령을 위반하면서 자신이 한 말을 뒤집고 있는 것이다. 자율고 지정 취소라는 중대한 결정을 교육감이 독단으로 내릴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법령에 자율고 지정 때 교과부 장관과 사전 협의를 해야 한다고 명시된 것 자체가 취소할 때도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유권해석을 했다. 교과부는 교육현장에 혼돈이 생기지 않도록 지휘감독에 나서야 할 것이다. 최대호 안양시장(민주당)은 불법 단체인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에 대한 징계를 담당한 공무원들을 인사위원회도 거치지 않고 대거 좌천시켰다. 최 시장은 보직을 받은 지 1년이 되지 않은 직원은 전보할 수 없도록 한 안양시 인사관리 규정도 위반했다. 전공노를 감싸기 위해 법령에 따라 할 일을 했을 뿐인 징계 담당 공무원들에게 불이익을 준 것이다. 좌파 성향의 교육감과 지자체장이 자신들의 ‘영지(領地)’에서 사사건건 정부에 맞서면서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은 불안하다.}

2008년 말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최모 교사가 학업성취도 평가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강행해 해임됐다. 최 교사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원들이 교문 앞에서 ‘출근투쟁’을 벌이는 자리에 학생 8명이 ‘선생님을 빼앗지 말아 주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교장은 어린이들이 정치적 시위에 휘말리는 것이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 판단해 피켓을 빼앗았다. ▷이를 국가인권위원회는 헌법 21조가 보장한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초등학생들로부터 피켓을 빼앗은 교장에게 “표현의 자유 침해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헌법과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은 국가안보나 공공안전 등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견해를 표시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어린 학생들이 어른의 사주를 받아 사회를 어지럽히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여도 ‘표현의 자유’이기에 막을 수 없다. 신체와 정신이 아직 미숙한 학생에게 어른과 똑같은 표현의 자유를 부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잘못된 주장을 하면 혼낼 수도 있고 피켓을 빼앗을 수도 있는 것이 교육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초등학생의 판단력, 지적발달 수준 및 학교현실과 교육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학생들이 ‘외부’와 연계되는 경우 학교가 정치의 장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초등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피켓을 들고 나왔더라도 교사라면 말려야 한다. 학업성취도 평가 거부 같은 교육 이데올로기에 관한 문제는 어린 학생이 나설 일이 아니다. 자칫 학생들을 전교조 이념 실현을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인권위가 현실과 동떨어진 결정으로 논란을 빚은 적은 이번만이 아니다. 전임 위원장은 2008년 불법 쇠고기 시위 때는 침묵하다 작년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무렵에 “시위 자유가 위축되고 있다”는 성명을 내 물의를 일으켰다. 1년 전 취임한 현병철 위원장 역시 왜곡보도로 쇠고기 시위를 촉발한 MBC의 ‘PD수첩’ 제작진 기소에 대해 “국내외에서 우려한다”며 불법 시위에 영합하는 자세를 보였다. 현 위원장과 이번 결정을 내린 위원들에게 자신의 초등학생 자녀나 조카가 불법 행위를 옹호하는 피켓 시위에 나서도 좋은지 묻고 싶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드디어 대통령도 ‘정의란 무엇인가’ 대열에 합류한 것 같다. 지난주 이명박 대통령은 캐피털사의 금리가 40∼50%라는 말에 “큰 회사들이 비싼 이자를 받는 게 사회정의상 괜찮은 거냐”고 말했다. 화제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어려운 도덕 질문을 던지며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 정의라고 한 대목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캐피털사의 실제 금리가 그보다는 낮고, 대통령이 “대출받아 갚으라”고 일러준 미소금융은 영세사업자금을 빌려주는 곳이지 ‘묻지 마 서민대출’ 창구는 아니라고 해봐야 소용없다. 금융감독위가 곧장 캐피털사 실태조사에 들어갔으니 대통령 말대로 대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한다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금리를 낮출 공산이 높다. 정의사회 만세다. 다만 작년 9월 미국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출간되기 석 달 전, 같은 주제를 달리 다룬 아마르티아 센의 ‘정의라는 아이디어’란 책이 나왔다는 사실은 언급할 필요가 있다. 어제 구글 영문판을 검색해보니 센의 책 관련 항목(574만 건)이 샌델(235만 건)보다 많다. 공교롭게도 둘 다 하버드대 교수인데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2009년 올해의 책으로 샌델 아닌 센의 책을 선정했다. 우리나라엔 ‘정의란 무엇인가’만 번역돼 담론을 장악했지만 지구촌에선 또 다른 정의가 더 주목받고 있으니 재미있는 현상이다. 좌파 측은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대(對)정부 공격으로 재미를 보고, 정부는 정의라는 프레임에 말려드는 형국이다. 공동善이냐, 선택할 능력이냐그러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철학자인 센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 자체가 좋은 출발점이 아니라고 밝히고 들어간다. 정의(正義)에도 여러 정의(定義)가 있고, 사람마다 가치와 판단이 다르므로 절대적 정의를 찾는 사회가 오히려 정의롭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누가 봐도 정의롭지 않은 노예제도나 여성참정권 거부 같은 제도부터 없애되, 그것도 실제로 벌어질 결과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샌델이 공동선을 강조하는 데 비해 센은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중시하는 것이 두 사람의 큰 차이다. 둘 다 공공의료를 지지하지만 샌델이 도덕적 의무를 이유로 드는 반면 센은 자기 삶을 선택할 능력을 가지려면 건강이 기본이라는 점을 든다. 샌델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모두 아이를 보내고 싶어 하는 공립학교를 정의로 꼽는데 센은 아니다. 어떤 교육이 좋은지에 대한 판단은 다양하기 때문에 정부가 기준을 정하는 데 반대한다. 어느 쪽이 바람직한지 헷갈리는 사람에게 우리나라에선 번역돼 나오지 않아 안타깝지만 ‘또 다른 웨스 무어’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다. 2000년 로즈 장학생이 돼 신문에 실렸던 웨스 무어라는 사람이 비슷한 시기 신문에서 살인죄로 복역 중인 동명이인을 발견하고 그의 삶을 추적해 쓴 실화다. 둘 다 흑인이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불량소년이었던 저자는 어머니가 엄한 꾸중 끝에 허리끈을 졸라매고 보낸 사립학교와 군사학교 교육 덕에 자기 삶을 선택해서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살인자인 또 다른 무어 역시 비행소년이었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다가 결국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됐다는 내용이다. 불법과 不正타파가 정부의 정의 샌델의 시각에서 본다면 사회적 약자인 무어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 공동선일 수 있다. 하지만 센의 시각으론 범죄자 무어가 어릴 때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키워주지 않았던 교육이 정의롭지 못하다. 센이 더 타당하다고 보는 나로선 샌델만 아는 것도 정의의 한쪽만 바라보는 편향이다 싶다. 센은 돈과 웰빙만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다. 한편에서 공동선이라고 믿는 것이 다른 편에선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개개인 사이도 그렇지만 정부가 모든 갈등을 단칼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관점에서 공공의 이성적 추론(public reasoning)을 통해 실현가능한 일부터 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센의 견해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부자 정권’이란 비판이 억울하고 지방선거 패배가 뼈아픈 정부로선 갈 길이 바쁠 터이다. 나중에야 어찌되든 서민정책을 쏟아내고, 대기업을 쥐어박기까지야 않겠지만 선순환 고리를 만들기(청와대 표현) 위해 공권력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정의사회 구현을 내걸고 민주정의당을 만들었던 1980년대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정부가 정의의 화신이 되려는 건 위험하다. 가치관에 따라 능력을 키우며 공동선을 모색하는 건 각자에게 맡기고, 정부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불법과 부정부터 없앨 일이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부산과 진주 환경운동연합 간부들이 어제 새벽 낙동강 공사구역인 경남 창녕군의 함안보에 있는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시작했다. 서울과 경기지역 회원들은 남한강 공사구역인 경기 여주군 이포보 위로 돌진했다. 환경연합은 “비(非)이성적이고 반생태적이며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4대강 사업 강행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강 살리기 공사장 점거농성이 더 비이성적으로 보인다. 함안보 인근 농촌은 비가 80mm만 와도 농업수로가 넘쳐 벼농사를 망치는 상습침수지역이다. 강바닥이 얕아 제방에 물이 넘치다가도 가뭄이면 금방 말라붙어 양수기로도 물을 끌어올 수 없다. 상습침수와 농업용수 부족을 해결하려면 강바닥을 파내고 보를 만드는 게 필수다. 그런데도 환경연합은 “지방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했다”며 물과 침낭까지 가지고 올라가 고공(高空) 농성을 벌였다. 이 단체는 대한하천학회가 6월에 열었던 간담회를 홈페이지에 소개하면서 “진정한 강 살리기는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인근 주민의 삶이 어찌되든 강을 방치하는 것이 무조건 정의롭고 선하다는 주장은 비인간적인 환경교조주의다. 4대강 살리기에는 오폐수 처리장을 신증설하고, 하천에서 비료와 농약을 주어 채소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고 생태공원을 만드는 사업도 들어 있다. 환경단체가 앞장서 요구해야 할 사업들이다. 개발 반대를 업(業)으로 삼는 일부 환경단체가 환경도 보호하지 못하면서 국가사회에 손해를 끼친 사례는 무수히 많다. 환경단체들은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을 전북 부안에 설치하지 못하도록 주민을 선동해 소요 사태로 몰고 갔다. 요즘 원자력은 이산화탄소(CO₂)를 대체하는 친환경 에너지로 각광을 받는다. 철도는 고속도로보다 친환경임에도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공사를 반대해 개통이 늦어졌다. 환경운동연합이 진실로 환경과 인간을 생각한다면 함안보 이포보 꼭대기에 올라갈 것이 아니라 함께 토론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옳다. 정부에는 “시민사회와 소통하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위험한 곳에 올라가서는 ‘공사를 중단할 때까지 안 내려간다’고 협박이니 이율배반이다. 도덕성도, 전문성도 내세울 것 없으면서 국민과 후손에 누를 끼치는 극단적 시민운동은 끝내기 바란다.}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이 여성과 아나운서 직업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는 보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강 의원은 16일 국회의장배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참석했던 대학생 20여 명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지난해 청와대를 방문했던 그 여학생에게 “그때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며 “옆에 사모님만 없었으면 네 (휴대전화) 번호도 따갔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발언이 보도되자 강 의원은 “정정보도청구와 함께 민형사상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들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서 우스갯소리를 한 건 맞지만 성적(性的) 발언은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동석한 대학생들 사이에서 문제가 된 것을 보면 적절한 우스개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주성영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은 “당의 위신을 훼손한 것으로 판단한다. 강 의원의 소명이 (국민을) 설득하기에 부족하다”며 제명처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윤리위는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여러 경로로 학생들의 의사를 확인했다. 참석자도 많고 민주당 여성의원도 동석한 자리인 만큼 진상을 가리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보도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천박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한나라당 여성의원들은 “강 의원의 여성 비하적이고 성차별적인 발언은 개혁과 쇄신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당에 대한 해당(害黨) 행위이며,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중차대한 행위”라고 규정했다. “대통령이 사모님만 없었으면 번호를 따갔을 것”이라는 말도 여학생들 앞에서 할 수 있는 우스개는 아니다. 아나운서연합회는 ‘강 의원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 전체 아나운서들에게 사과하고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연합회가 분노할 만하다. 그는 2005년 중앙당 운영위원 시절에도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칼럼을 쓰면서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우선 그녀는 섹시하다’는 글을 올려 빈축을 산 적이 있다. 공인 중의 공인이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도 성적 표현을 쓰는 말버릇을 버리지 못하다 설화를 빚은 것이라면 동정을 살 여지도 없다. 국회의원이나 공직자들의 성희롱은 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나쁜 남자다. 장애인 주차구역에 태연하게 차를 세우고, 직원들은 그의 제왕적(帝王的) 스타일에 혀를 내두른다. 오죽하면 자신이 세운 기업에서 쫓겨났겠나. 그러나 1997년 파산 직전의 그 회사로 12년 만에 복귀해 13년 만인 올해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으로 키웠다. 애플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 얘기다. 지난주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은 그를 ‘기술 분야에서 가장 영리한 50인’ 중 1위로 꼽았다. ▷잡스가 내놓은 제품들은 그냥 첨단기술 신상품이 아니다. 기존 시장을 뒤엎고 아예 새 판을 만들어버리는 ‘킬러 앱’이다. 매번 ‘그런 제품이 팔리겠느냐’는 사회적 통념에 도전했다. 1984년 내놓은 매킨토시는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이용한 첫 번째 테크놀로지 혁명이었다. 2001년의 아이팟은 합법적 디지털 뮤직시대를 개막한 두 번째 혁명, 2007년의 아이폰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시킨 세 번째 혁명으로 꼽힌다. 올해 나온 태블릿PC 아이패드는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뛰어넘어 IT 판세를 뒤집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잡스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을까. 젊은이들이 대기업과 공기업 입사만 고집하는 한 쉽지 않다. 그런 곳에서는 인화(人和)가 무엇보다 중시된다. 인사담당자들은 “요즘 신입사원들은 똑똑하지만 자기밖에 모른다”며 불평한다. 잡스는 어려서부터 독불장군이었다. 친구들은 “경기에서 지면 분해서 울부짖는 아이”라고 했다. 국내 글로벌 전자기업의 인사담당 임원은 “한국판 잡스가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 “잡스는 창업을 했다”고 말했다. ▷국내 IT벤처 1세대로 KAIST에서 기업가정신을 강의하는 안철수 석좌교수는 “잡스를 강의에 연결했더니 학생 절반이 갑자기 창업을 하겠다고 진로를 바꾸더라. 처음엔 겁도 났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가정신이야말로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이라며 “풍부한 인재풀을 바탕으로 도전을 장려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국판 애플’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패를 해도 잡초처럼 일어서는 자세가 중요하다. 잡스처럼 성질이 고약해도 ‘좀 다를 뿐’이라고 인정해주는 관용이 필요한 건 물론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