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 송태호 교수와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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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3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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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지식인의 역사를 다룬 책 ‘지식인의 탄생’은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졸라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1894년 유대계 장교 드레퓌스가 군사기밀을 독일에 팔아넘긴 혐의로 잡혀갔다. 군부가 보불전쟁의 패전 책임을 면하기 위해 그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확신한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는 글로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드레퓌스는 1906년 프랑스 최고재판소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사회는 지식인들에게 쉽사리 판단하기 힘든 문제에 대해 무엇이 맞고 틀린지 양심을 걸고 말해주길 바란다. 군사독재 시절 우리 지식인들은 그런 역할을 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방송 때는 한국언론학회가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려 편파방송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2005년 황우석 사태 때는 인터넷 커뮤니티인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가 큰 역할을 했다. 어떻게든 황 교수를 믿고 싶었던 국민정서와 권력의 보호막이 결합된 황우석 신화는 과학자들의 탐구정신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2008년 광우병 사태는 과학에 이념이 덧붙여졌다. 광우병 공포를 확산시킨 ‘죽음의 향연’의 저자 리처드 로즈는 “인간광우병이 대재앙이 될 것이라는 출간 당시(1997년) 예언이 틀렸다”고 인정했는데도 일부 ‘지식인’은 한물간 이론을 펴 서울을 촛불바다로 만들었다. 올해 천안함 사태는 더 복잡하다. “어뢰 폭발이 있었다면 ‘1번’ 글씨가 타버렸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어뢰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몇몇 미국 대학 한국인 교수의 주장이 좌파 매체들을 통해 번져나가 음모설을 부풀렸다.

▷열(熱) 전달 분야 전문가인 송태호 KAIST 교수가 이에 대한 논문을 내놨다. 폭발 당시 1번 글씨가 쓰인 어뢰 추진부 후면의 온도는 0.1도조차 상승하지 않는 것으로 계산됐고, 따라서 글씨가 지워지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밝혔다. 그는 ‘1번 논쟁’을 과학적으로 밝힐 결심을 한 이유로 “전문가 중 누군가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엉터리 주장으로 나라가 들썩이는 것을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역시 지식인의 맥은 끊어지지 않았다. 천안함의 진실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은 이제 끝났으면 좋겠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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