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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뭘 피웠기에….’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기숙사에서 뭔가를 대마초로 알고 피웠던 외국인 유학생이 갑작스러운 경련 증세를 보여 응급실로 실려 갔다. 27일 서울성북경찰서와 고려대병원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에서 고려대로 유학 온 N 씨(18)는 고려대에서 함께 공부하는 러시아 출신 A, B 씨와 함께 23일 기숙사에서 몰래 뭔가를 담배처럼 피웠다. N 씨를 병원으로 이송했던 구급대원은 “N 씨가 차 안에서 혼자 웃다가 발길질을 하는 등 내내 이상행동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병원 관계자도 “N 씨가 처음에는 의식불명 상태로 경련을 일으키다가 흔들어 깨우자 히죽히죽 웃으며 침대 밑으로 계속 들어가려고 했다”며 “마약을 투약한 것 같아 경찰에 신고했다”고 했다.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이들은 “대마초인줄 알고 피웠다”고 털어놨지만 소변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신종 마약인 경우 기존에 분류돼 있는 마약 성분에 포함돼 있지 않아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올 수 있다”며 “정확한 분석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이들의 모발 검사를 의뢰했다”고 설명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중국 당국에 억류된 탈북자들의 강제북송에 반대해 6일째 단식투쟁을 벌이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26일 “북한의 고위 간부 3명이 24일 중국을 방문해 ‘탈북자들을 범죄자로 취급하지 않을 테니 전원 북한으로 빨리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박 의원은 이날 서울 종로구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 북한 측은 (탈북자들이 억류된) 선양(瀋陽)구류소를 방문해 면접교섭권을 행사하려고 한다”면서 “우리 정부가 탈북자들에게 한국인 증명서를 발급해주지 않고 미적거리는 상황에서 북한이 발 빠르게 나서 탈북자들을 회유하기 위해 면접교섭권을 행사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런 사실을 중국 공안당국 내부의 정보원을 통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정부가 나서서 면접교섭권을 행사해 한국의 가족들과 만나게 하고, 중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해 북한이 탈북자들을 회유·협박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중국대사관 앞에는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난민 40명이 국제난민지원단체인 ‘난민들의 피난처’ 회원들과 함께 ‘우리의 친구를 살려 주세요’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콩고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난민들은 “같은 난민 신세인 탈북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강제 북송은 난민협약 위반이고, 범죄와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북한 조선적십자회중앙위원회 대변인은 25일 조선중앙통신과의 문답에서 “괴뢰역적패당의 ‘탈북자 북송 반대’ 소동은 또 하나의 반(反)공화국 모략 광란극”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탈북자 송환 반대 노력을 ‘역겨운 추태’라고 비난하며 “원래 ‘탈북자’ 문제는 난민 문제가 아니고 우리 주민들에 대한 유인납치 책동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일성종합대 교수 출신 탈북자인 조명철 통일부 통일교육원장은 26일 김일성대 출신 중국 인사들에게 탈북자 강제 북송을 막아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조 원장은 서한에서 “우리가 김일성대에서 정의를 위해 과업을 배운 것 아니냐. 탈북자들을 돕는 것은 정의로운 것이고, 이들이 희망에 따라 처리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국내 김일성대 동창회 회장이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

고려대는 24일 오후 백주년기념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가마타 가오루(鎌田薰) 일본 와세다대 총장에게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김병철 고려대 총장은 “교수로서 법학 분야의 교육에 크게 기여했고 총장으로서 대학 국제화에 큰 업적을 남겼다”며 “앞으로 고려대와 와세다대 간 교류에 더 큰 발전이 있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가마타 총장은 답사에서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고려대와 와세다대가 각자의 건학 이념을 서로 존중하며 지금보다 한층 더 연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학교폭력 문제로 강제 전학을 당한 중학생이 이전에 다니던 학교 앞으로 돌아와 하급생들을 다시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학생은 동네 일진 선배들에게 상납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피해자들로부터 부모의 귀금속과 승용차까지 빼앗은 것으로 드러났다.서울 양천경찰서는 양천구 목동 일대 중학교 1학년생 15명으로부터 금품을 갈취하고 폭행한 정모 군(14)을 구속하고 서모 군(14)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목동의 A중학교 출신인 정 군은 2학년 재학 중이던 학교에서 아이팟을 강매해 지난해 7월 경기 광명시 소재 B중학교로 강제 전학됐다.정 군은 학교를 옮겨서도 무단결석을 자주 하다 이달 7일 유급됐고 가출한 뒤로는 찜질방과 PC방을 전전해왔다. 생활비가 궁해진 정 군은 익숙한 목동으로 돌아가 서 군 등 친구 10명을 불러 모았다.이들은 지난해부터 알고 지내던 중학교 1학년 쌍둥이 형제 이모 군(13)의 집으로 찾아가 명품 팔찌와 다이아몬드 반지, 승용차 열쇠 등 2728만 원 상당을 빼앗았다. 이들은 나흘간 새벽마다 훔친 차를 몰고 다니다 역주행으로 차량 2대를 잇달아 들이받고 도주하기도 했다.또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오토바이를 사서 상납하라’ ‘선배들에게 돈을 바쳐야 하니 팔 수 있는 금붙이를 집에서 가져와라’라고 하는 등 14차례에 걸쳐 협박해 총 4259만 원 상당을 빼앗았다. 경찰은 이들이 후배들에게서 빼앗은 돈을 지역 일진들에게 상납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법관 재임용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판사회의가 17일 서울중앙지법 등 서울지역 3개 법원에서 열렸다. 2009년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사태 이후 3년 만이다. 이날 회의는 최근 서울북부지법 서기호 판사의 재임용 탈락 소식으로 촉발됐지만 논의는 법관 평가제도와 재임용제도에 한정됐다. 이날 오후 열린 단독판사회의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전체 127명 중 70명, 서울남부지법 30명(전체 39명), 서울서부지법 16명(전체 23명)이 참석했다. 단독판사는 대부분 30, 40대 초반이다.이날 의제는 ‘연임심사제도의 제반 문제점 및 개선방안 논의’ ‘근무평정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논의’ 등 두 가지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을 맡은 이정호 판사는 3시간의 열띤 토론이 끝난 7시 37분 2가지 주장을 담은 결의문을 공개했다. 결의문은 “첫째, 우리는 이번 연임심사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재판의 독립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 관해 인식을 같이한다. 둘째, 현행 근무평정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연임심사제도는 객관성 투명성이 담보되고 방어권이 보장되도록 개선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판사는 “서 판사 내용은 언급은 됐지만 의제가 아니어서 논의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나머지 지방법원도 비슷한 취지의 결의문을 채택했으며 결의문은 각 지방법원장에게 제출된 뒤 대법원에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의견을 모아주면 적극적으로 검토해 필요한 것은 수용하겠다”고 밝혔다.회의에 참석한 서부지법의 한 판사는 “회의는 대체로 차분하게 진행됐다”며 “연임심사과정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판사들이 소명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의견이 대체로 일치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단독판사는 “10년 가까이 판사로 근무했지만 나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하지만 또 다른 판사는 “그렇다고 해서 근무평정 결과를 매년 공개하면 오히려 평가자의 눈치를 보게 돼 법관의 독립을 해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2004년 법관이 신청하면 자신의 근무평정결과 요지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가 평정에 따른 불필요한 인사잡음과 낮은 평가를 받은 법관의 사기저하 등을 이유로 이듬해 곧바로 관련 규정을 삭제했다. 결국 근무평정 공개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어려운 셈이다.이번 단독판사회의를 시작으로 판사회의는 당분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20일에는 의정부지법에서, 21일에는 수원지법과 광주지법에서 단독판사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특히 20일 대전지법에서는 단독판사뿐 아니라 배석판사도 참여하는 평판사회의가 소집됐다.반면 사태가 확산될 소지는 크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단독판사는 “대부분의 판사가 서 판사 탈락이 부당하다는 것보다 기존에 관련 논의가 거의 없었던 만큼 법관 재임용제도를 지적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16일 발표된 법원 인사에 따라 27일 인사이동이 이뤄지면 동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편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서 판사는 17일 오후 퇴임했다.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
폐렴 증세로 서울대병원에 장기 입원했다가 병세가 호전돼 퇴원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16일 퇴원 열흘 만에 고열 증세로 다시 입원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17일 “검사 결과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큰 이상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현재 열을 내리는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의식은 분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거동이 불편해 병원 입원 당시 휠체어를 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말 고열과 천식 등의 증세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약 4개월간 치료를 받은 바 있다.}

13일 오전 10시 35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섰다. 한 손에 장미 한 송이를, 다른 손에는 플루트를 들고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잘못을 사죄한다”며 1970년대 서울 청계천 일대에서 빈민구호 활동을 해 온 일본인 목사 겸 사회운동가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基之·81) 씨였다.대사관 맞은편에 세워진 평화비 앞에 선 노무라 씨는 플루트를 꺼내 홍난파 작곡의 ‘봉선화’를 연주했다. 손은 긴장한 듯 떨렸고 호흡도 달렸지만 3분 남짓한 연주 내내 진지한 표정이었다. 연주를 마치고 흐느끼기 시작한 그는 평화비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일제 침략의 역사가 없었더라면 ‘봉선화’라는 노래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선곡 이유를 설명했다.노무라 씨는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고 제정구 전 국회의원 등과 함께 청계천과 경기 화성에 빈민자활공동체의 탁아소를 세우는 등 구제사역에 힘써왔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수도권 대학의 총학생회들이 학교 근처의 자취방과 하숙집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모아서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경기 침체와 전세난 속에서 학생들이 집을 구하려다 고생하거나 잘못 계약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학가에 ‘주거권’ 개념 관심 연세대 총학생회 ‘Focus On’은 ‘주거정보조사단’이라는 홈페이지를 8일 열었다. 학교 근처의 하숙집 50여 곳을 조사단 10명이 직접 돌아본 뒤 △가격 △건물 방향, 건축 연도, 학교로부터의 거리 △방 크기, 개인 화장실, 정수기, 텔레비전, 인터넷, 식사 제공 여부, 개인 냉난방 시설에 대한 정보를 올렸다. 총학은 “새 학기에 신촌에서 집을 구하려면 평균 5. 6회를 방문해야 한다. 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충분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수정 주거정보조사단장은 “여름방학에는 자취방과 고시텔까지 조사하는 등 정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것”이라고 했다. 고려대 총학생회 ‘고대공감대’도 최근 ‘안암골 택리지’를 발간했다. 학교 근처의 153개 하숙집 자취방 원룸 고시원 정보를 망라했다. 권오빈 복지국장은 “2학기에 개정판과 모바일 웹페이지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서강대 총학생회 ‘와락’도 이달 중 주거실태조사단을 꾸려 하숙집과 자취방의 시세, 주거환경, 담합 실태를 조사할 예정이다. 김윤영 부총학생회장은 “싸고 좋은 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 주거 문제를 해결하자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월세에 생활비로 등골 휩니다 이들 총학생회는 지난해 11∼12월 선거 때 ‘주거권을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선출됐다.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서울 서대문구 우정부동산 관계자는 “신촌의 자취방이나 하숙집은 월세가 평균 50만 원이다. 여기에 관리비 약 5만 원, 전기료 수도료는 별도”라고 설명했다. 비싼 곳은 월세가 60만∼70만 원으로 올라간다. 원룸 전세는 6000만∼7000만 원이다. 고려대 권용택 씨(25)는 “월세와 생활비를 합쳐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를 쓴다. 자취하는 학생들은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토로했다. 최근 일부 대학가에 생긴 민자 기숙사도 일반 전월세 못지않게 비싸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권영진 한나라당 의원실에 따르면 △건국대는 1학기(4개월)에 식비를 포함해 1인실 245만 원, 2인실 175만 원 △서강대는 2인실 185만 원 △숭실대는 1인실 199만 원, 2인실 125만 원이 든다. 대학생 A 씨는 “2인실 기숙사를 월 40만∼50만 원에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하숙을 하는 게 낫다. 비용이 많이 들어 고시원으로 옮기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 YMCA가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간 자취 또는 하숙을 하는 대학생 526명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5명이 최소 주거 면적기준(14m²·3평) 이하의 좁은 공간에서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시원 학생의 96%는 14m²가 안 되는 공간에서 지내고 있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김남윤 인턴기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이지영 인턴기자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

지난해 10월 실시된 제22회 공인중개사시험의 문제를 둘러싸고 정답 논란이 일고 있다. 응시자 150여 명은 “부동산학개론 A형 9번 문제의 정답을 1번으로 발표한 것은 오류”라며 ‘정답 없음’을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행정심판을 한국산업인력공단을 상대로 내겠다고 9일 밝혔다. 응시자들에 따르면 ‘시장상황별 추정 수익률의 예상치가 다음과 같은 부동산의 기대수익률과 분산은?’이라는 문제에 대해 공단은 ‘기대수익률 20%, 분산 0.6%’인 1번을 정답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들은 분산값이 ‘0.6%’가 아닌 ‘60’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 대학 부동산학과 교수와 공인중개사 학원에 문의한 결과 문제 자체에 오류가 있다는 의견을 받았다. 엄길청 경기대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절댓값으로 계산하는 것에 익숙한 수험생들은 보기처럼 %로 표시하는 것에 혼란을 느꼈을 수 있다”고 봤다. 갤럽도 “공단의 주장도 통계학이나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재무회계 분야의 관행과 특성을 감안해 풀이과정을 분석했을 때 이 문제는 ‘정답 없음’으로 처리하는 것이 옳다”고 답변했다. 공단 측은 “행정심판을 청구하면 해명자료를 내놓겠다”고 답했다. 공인중개사시험 정답을 둘러싼 논란은 2000년부터 해마다 이어져 왔다. 복수정답 논란이 일면서 합격자를 발표하고 난 뒤 뒤늦게 출제 오류를 인정하고 추가로 합격자를 발표하는 일이 반복돼 온 것. 2000년 제11회 시험에서는 한 문제가 복수정답 처리됐고 2001년에도 합격자 발표가 난 뒤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으로 한 문제가 복수정답 처리돼 논란이 일었다. 2004년 실시된 제15회 시험에서는 총 5개 문제에 오류가 발생해 모두 복수정답이 인정됐고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 재시험까지 치러지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해에도 정답을 두고 행정소송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공인중개사시험을 매년 10만 명 가까이 치르는 데다 시험 자체가 전문 학문이라기보다는 수학과 경제학을 짜깁기한 문제가 많다 보니 논란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한 문제 차로도 수백 명의 당락이 엇갈리기 때문에 학원이나 응시자 모두 일단 모든 문제에 대해서 이의 제기를 하고 본다는 것. 서울의 한 대학 부동산학과 교수는 “과목이 워낙 다양한 데다 응시자도 많다 보니 이의 제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공단 관계자는 “전국 200여 개 학원들이 학원 홍보 차원에서 문제 제기를 밥 먹듯이 한다”고 하소연했다. 시험을 관리 감독하는 정부부처가 자주 바뀌는 탓에 시험관리행정에 전문성과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인중개사시험은 2001년 12회차까지는 건설교통부가 주관하다 2002년 제13회 시험부터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 이관됐다. 15회부터 17회까지는 한국토지공사에서 담당하는 등 출제기관이 세 차례나 바뀌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가수 이효리 씨(사진 오른쪽)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1억 원을 내놓았다. 아름다운재단은 이 씨가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효리(孝利)기금’을 만들어 보내왔다고 8일 밝혔다. 이 기금은 ‘효(孝)를 통해 어르신들에게 이로움(利)을 보태고 싶다’는 이 씨의 바람을 담았다. 재단은 이 씨의 뜻에 따라 기부금을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들을 지원하는 데 쓸 예정이다. 이 씨는 지난해 말에도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겨울 난방비와 생필품을 사는 데 쓰라며 5000만 원을 기부했다.}

2일 오후 수심 가득한 표정의 일본인 여성이 일본대사관 직원과 함께 서울 종로경찰서로 들어섰다. 1998년 4월 한국에서 사라진 딸 나카무라 미나코(中村三奈子·33) 씨를 15년째 찾아 헤매는 나카무라 구니 씨(69)였다.실종 당시 19세였던 미나코 씨는 대입 재수학원 등록을 준비하던 중 일본 니가타 공항에서 출국해 한국 김포공항으로 입국한 기록만을 남기고 갑자기 사라졌다. 수사에 나섰던 일본 경찰은 나카무라 씨 이름으로 예약된 서울행 대한항공 티켓과 실제 그가 해당 항공편으로 서울에 입국한 사실을 확인한 것 외에는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다. 1999년 12월 구니 씨의 수사 의뢰를 받고 미나코 씨를 찾아 나선 한국 경찰도 큰 성과 없이 2005년 사건을 미제로 종결했다.미나코 씨가 실종된 사실이 처음 알려지던 해 일본 사회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나카무라 미나코를 찾는 모임’이 결성되기도 했고 TV 프로그램에서는 초능력자를 앞세워 미나코 씨를 찾는 시도도 했다. 일부 언론은 나카무라 씨의 납북 가능성까지 조심스레 제기했다. 하지만 이 같은 관심마저도 세월과 함께 사라져 버린 상태다.다른 사람들은 다 잊어도 엄마는 딸을 포기하지 못했다. 미나코 씨는 구니 씨가 일찍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억척스럽게 키워낸 막내딸이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구니 씨는 딸을 찾느라 일자리까지 그만뒀다. 그는 “대학에 꼭 가겠다며 공부에 열중하던 딸이 왜 갑자기 한국으로 떠난 것인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며 이날 한국 경찰에 재수사를 부탁하고 돌아갔다.이번이 12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구니 씨는 3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기자와 만나 “넋을 놓고 있는 것보다는 딸이 사라진 한국에 있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했다. 한국 공항에 내려 공기를 들이마시면 왠지 딸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다고도 했다.그는 아직도 딸과의 마지막 대화를 잊지 못한다. 유독 애교가 많던 딸은 실종 전날 밤까지도 교사였던 구니 씨가 학교에 가져갈 장식품 교재를 함께 만들었다. 그는 “따로 옷이나 돈을 챙겨간 흔적도 전혀 없었다. 아직도 딸이 사라진 이유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구니 씨는 한국에 와 있는 동안 서울 곳곳에 딸을 찾는 전단 1000장을 붙였다. 그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직접 제작한 전단에는 딸의 마지막 모습과 함께 ‘어디서 뭘 하고 있니, 건강하게 있다고 알려주렴. 기다리고 있단다’라는 애타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한파가 닥치고 큰눈도 내렸지만 구니 씨는 모든 일정을 걸어서 소화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라도 딸과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지막 기대감 때문이다. 딸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딸과 함께 살던 집에 아직 그대로 살고 있다는 그는 1년에 한 번씩은 한국을 방문하려고 노력한다. 딸을 찾으려면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2008년에는 고려대 어학당에서 한 달간 한국어를 배우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는 정성이 부족한 것만 같아 딸이 실종된 4월 7일이면 하루 종일 공항에서 한국으로 떠나는 관광객들에게 전단을 나눠 주곤 한다.그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을 볼 때마다 모두 다 잃어버린 딸 같아 눈물이 난다”고 했다. 출국을 몇 시간 앞둔 그는 마지막으로 “정말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소식만이라도 알고 싶다. 한국인 여러분이 우리 딸을 잊지 않고 계속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고려대 국제어학원 한국어문화교육센터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8일부터 10일까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KOICA-고려대 한국어 국제 콘퍼런스-꿈을 이뤄주는 한국어’ 행사를 연다. 이번 행사에서는 현지 대사 및 전문가들이 현지의 한류 현황과 한국 관련 현지인들의 관심사에 대해 정보를 나누는 한편 ‘KOICA-고려대 한국어 연수과정’을 거친 현지 한국어 교사들이 현장 교육 사례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정봉주 전 의원 구명을 촉구하는 ‘비키니 1인 시위 인증샷’ 논란과 관련해 진보 성향 여성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6일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에 대해 항의 성명을 냈다. ‘쌍화차코코아’ ‘소울드레서’ ‘화장발’ 등 3개 카페로 구성된 ‘삼국카페’는 이날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나꼼수에 가졌던 무한한 애정과 믿음 동지의식을 내려놓는다”며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마저 여성 인권에 무지하다는 현실이 참으로 유감”이라고 밝혔다. 또 “(나꼼수가) 가슴 응원 사진을 두고 ‘코피를 조심하라’고 쓴 접견민원서신 사진을 공개한 것은 여성을 한낱 눈요깃거리로만 삼고 남성의 정치적 활동에 사기를 진작하기 위한 대상으로 전락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체 회원 수가 60만 명인 삼국카페는 2008년 광우병 시위를 비롯해 방송사 파업, 4대강 반대집회 등에 활발히 참여해 왔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그 추운 바닷속에서 얼마나 무섭고 외롭소.” 5일 일본 야마구치(山口) 현 우베(宇部) 시 니시키와(西岐波) 바닷가에 4명의 한국인이 섰다. 백발이 성성한 이들은 잔잔한 겨울바다를 향해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들은 70년 전인 1942년 2월 3일 붕괴된 조세이(長生) 탄광의 조선인 희생자 유가족들. 당시 일본 최대 해저탄광이었던 조세이 탄광은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광원 183명을 그대로 삼켰다. 법으로 채탄이 금지된 위험지역으로 이미 여러 차례 붕괴 가능성이 경고됐지만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에너지원 확보가 시급해진 일본 정부가 무리하게 조업을 벌이다 사고가 난 것. 특히 전체 희생자 중 136명은 일본으로 강제 동원됐던 조선인 노동자였다. 이들은 평소 키보다 높은 울타리로 에워싸인 숙소에 감금된 채 밤낮으로 채탄 작업을 벌이다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한 채 이국 바다에 묻혔다. 사고 이후 탄광 측은 유족들에게 위패와 소정의 위로금만 전달했고 조선인 희생자들은 그렇게 잊혀져 갔다. 탄광 사고의 악몽이 물 밖으로 드러난 것은 2006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동아일보와 함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면서부터다. 일본의 양심 있는 시민도 조선인 희생자 유가족 달래기에 힘을 보탰다. ‘조세이 탄광 물 비상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회장 야마구치 다케노부·山口武信)은 3년 전 십시일반으로 모금을 시작해 유족들이 합동 추모제를 지낼 수 있도록 바닷가 인근의 터를 사들였다. ‘물 비상(非常)’이란 수몰 사고가 발생했다는 일본 은어. 김형수 장생탄광희생자유족회장은 “해저탄광의 환기구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제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그마저 탄광 소유주 후손의 땅이라 그동안 마음대로 못했다”며 “일본인들의 모금 덕에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제사를 지낼 수 있다”고 했다. 야마구치 회장(82)은 “한국인 희생자와 유족에게 미안한 마음에 추모비도 함께 세우고 싶었지만 2억 원의 비용을 아직 모두 모금하지 못했다”며 “반드시 힘을 모아 돌아가신 조선인의 한국 이름을 새긴 추모비를 세우고 이들의 영혼을 달래 드리겠다”고 했다. 이날 일본인들이 선물한 터에서 70주기 합동 추모제를 지낸 유족들은 “육지도 이토록 추운데 저 찬 바닷속은 오죽하겠느냐”며 “너무 추워 시신이 아직 썩지도 못했을 것 같다”고 오열했다. 이들은 제사를 마친 뒤 굴뚝까지 배를 타고 가서 헌화하는 것으로 추모식을 마무리했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측은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해 고국으로 모셔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멤버인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씨가 비키니 시위 논란에 대해 “성희롱이 아니었다” “생물학적 완성도에 감탄했다”고 발언하면서 또다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김 씨와 주진우 시사IN 기자, 시사평론가 김용민 씨 등 나꼼수 멤버들은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시사주간지 시사IN 주최로 열린 토크 콘서트에서 최근 논란이 된 정봉주 전 의원 구명 촉구 비키니 인증샷 독려 발언에 대해 “성희롱할 의도가 없었고 성희롱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김어준 씨는 “성희롱은 권력의 불평등 관계가 전제돼야 성립한다. 비키니 사진을 올린 여성이 ‘우리(나꼼수) 때문에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했다가는 우리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것 같은 불평등한 관계가 존재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성희롱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여성이 오랜 세월 성적 약자였기 때문에 이런 이슈에 예민할 수 있고 그럴 권리가 있음은 인정한다”며 “다만 자신의 몸을 이용해 정치적 표현을 할 자유가 있고 그 권리도 인정돼야 한다. 불쾌하다고 이 권리를 제약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동안 비키니 인증샷과 관련한 비난에 대해 ‘법적 도의적 무죄’를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영향력 있는 미디어로 자리 잡은 나꼼수가 이번 사안을 나꼼수 멤버와 사진 속 여성과의 관계로만 국한해 해석한 것은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전문가 “일반인이 느낀 불쾌감에 미디어로서 책임질 줄 알아야” ▼양현아 서울대 법대 교수는 “사진 속 당사자가 법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나꼼수를 청취하는 일반인들이 성적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꼈다면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이와 함께 김 씨가 이날 ‘생물학적 완성도’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도 온라인상에서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콘서트 참가자들에 따르면 김 씨는 “그 분(비키니 인증샷을 올린 여성)의 생물학적 완성도에 감탄한 것도 사실이고 동시에 ‘아 이런 식의 (신선한) 시위도 가능하구나’라며 정치적 동지로서 감탄한 것도 사실”이라고 발언했다.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ID ‘@la_******’는 “김어준의 이번 발언은 생물학적 미완성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누리꾼은 “그렇게 따지면 ‘키 180cm 이하의 남성은 루저’라고 말했다가 욕먹은 ‘루저녀’ 역시 자신의 생물학적 완성도 기준치에 따라 말했던 것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생물학적 완성도’라는 단어가 이날 하루 유행어처럼 번져 ‘나의 생물학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열심히 운동해야겠다’ ‘내일 정월대보름은 생물학적 완성도가 높은 달이 뜨는 날’ 등의 트윗이 이어지기도 했다.그동안 나꼼수와 정치적 성향을 같이해 온 진보 진영 인사들도 실망감을 나타냈다. 영화감독 이송희일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비키니 사진을 보며 생물학적 완성도를 운운했다는 김어준. 이제는 우생학으로 진화하고 계신가 보죠? 이쯤 되면 더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네요. 강용석은 좋겠어요, 길 건너에 든든한 마초 동지가 계셔서”라고 적었다. 대한민국자식연합 총재라는 트위터 이용자는 “정신분석학적으로 참 완성도 떨어지는 소리를 했네, 사회학적으로 참 뭐 같은 타이밍에, 정치학적으로 안타깝게…”라고 적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결혼 5년 만에 어렵게 쌍둥이 임신에 성공한 유모 씨(35)는 배 속에서 두 개의 심장이 뛸 때마다 남들보다 두 배의 기쁨과 함께 두 배의 부담을 느낀다. 월 250만 원인 남편의 월급으로는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이 버거울 것 같아서다. 쌍둥이는 병원 검사비용부터 1.5배 이상이 들었다. 6만8300원이면 되는 초음파검사비로 11만 원을 냈고 양수검사비도 40만 원이 많은 120만 원을 내야 했다. 앞으로 제왕절개비도 50만 원 더 내야 하고 산후조리원은 2주에 90만 원을 더 내야 한다. 유 씨는 “어렵게 임신한 만큼 더 감사하게, 기쁘게 낳고 싶지만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고 푸념했다.만혼(晩婚)에 따른 난임 치료가 늘면서 쌍둥이 이상의 다태아(多胎兒) 출생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아직 사회적 지원은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그 바람에 세 쌍둥이 이상을 임신한 경우에는 한 명을 지우는 ‘선택유산’마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태어난 다태아 수는 1만2841명으로 2005년 9459명에 비해 5년 새 35%가 늘었다. 산모의 평균 초산 연령이 2000년 27.7세에서 2010년 30.1세로 올라가면서 체외수정 및 배란유도로 쌍둥이를 출산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하나만 낳아 남부럽지 않게 키워 보자’는 생각으로 병원을 찾았던 예비 부모들은 예상치 못했던 다태아 임신 소식에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역시 비용이 가장 큰 부담이다. 쌍둥이 임신부는 고위험군이라 검사비, 합병증 치료비도 많이 들고 자연분만보다는 제왕절개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에서 출산 전후 비용으로 제공하는 ‘고운맘카드’도 태아가 아닌 산모 1인당 기준이라 일반 임신부와 동일하게 40만 원만 지급된다. 8개월 전 쌍둥이를 출산한 조영일 씨(36)는 “출산 후에도 기저귀와 옷값, 예방접종비 모두 두 명분이라 부담스러웠다”며 “예방접종비만 200만 원이 들었다”고 했다. 이에 더해 대부분의 생명보험사는 ‘유병률이 높고 조산의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임신 중에는 쌍둥이의 보험 가입을 거부하거나 한 아이만 가입시켜 준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 쌍둥이 이상을 임신한 경우 선택유산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모 씨(35)는 네 차례의 인공수정 시도 끝에 지난해 5월 세 쌍둥이를 임신했지만 ‘유산율이 높고 비용 부담도 크니 선택유산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사의 권유로 한 명을 유산시켰다. 산부인과들은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 선택유산을 권하고 있지만 현행법은 인공수정 시술이 활성화되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 선택유산을 규제하는 조항 자체가 없다. 선택유산은 전문의의 상담을 거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데다 허가 및 신고 사항도 아니다.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의 최안나 대변인은 “선택유산에도 자궁 손상 및 병균 감염 등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영국이나 스웨덴처럼 법으로 배아를 필요 이상으로 이식하지 못하게 제한해야 한다”며 “다태아를 임신하더라도 선택유산보다는 모두를 무사히 출산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우리는 진보의 치어리더가 아니다.’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여성 비하 발언을 놓고 여성 누리꾼들이 분노하고 있다. 정봉주 전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는 일부 여성들의 ‘비키니 응원’ 사진이 공개된 직후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여성 성(性)을 상품화했다”며 불쾌해하는 여성 누리꾼들의 항의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이번 논란은 21일 방송된 ‘나꼼수 봉주 3회’에서 “정봉주 전 의원이 독수공방을 이기지 못하고 부끄럽게도 성욕감퇴제를 복용하고 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 보내기 바랍니다”라는 발언이 나가면서 시작됐다.이틀 뒤인 23일 ‘나와라 정봉주 국민본부’ 홈페이지에 한 여성이 비키니만 입은 채 가슴에 ‘가슴이 터지도록 나와라 정봉주!’라는 문구를 적은 사진을 올렸다. 이 여성은 “타고난 신체적 특성 탓에 다소 선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점 미리 양해 부탁한다”는 글도 올렸다. 누리꾼의 폭발적 관심이 이어지면서 다른 여성들도 추가로 속옷과 비키니로 가린 가슴에 정 전 의원의 석방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적은 사진을 올렸다.연이은 ‘가슴 시위’ 인증샷에 대해 대다수 여성 누리꾼들은 “정 전 의원의 석방과 가슴 노출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그동안 순수한 의도로 정치 활동에 참여해 온 여성을 희롱하고 성을 상품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나꼼수 멤버인 주진우 시사IN 기자가 27일 자신의 트위터에 “가슴응원 사진 대박이다. 코피를 조심하라!”는 메시지가 적힌 정 전 의원 접견민원인서신을 올리자 여성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이화여대 동문 커뮤니티를 비롯해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나꼼수 멤버들에게 보내는 여성 팬들의 항의 메시지가 속속 올라왔다. 한 여성은 주 기자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나꼼수의 공개적인 시각적 성희롱에 대해 분노한다. 나꼼수를 위해 몸이라도 기꺼이 바칠 여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던 거냐. 대중적 인기를 앞세워 권력을 남용하는 나꼼수가 ‘가카’와 다를 게 뭐냐”고 항의했다.다른 여성은 “슬럿워크나 반모피 누드시위와 달리 정 전 의원 석방 운동은 누드이거나 야할 필요가 전혀 없다”며 “이번 가슴 시위는 쇼맨십 이상의 정당성이 없다”고 지적했다.파문이 커지자 작가 공지영 씨도 자신의 트위터에 “나꼼수의 비키니 가슴시위 사건 매우 불쾌하며 당연히 사과를 기다립니다”고 적었다.한편 나꼼수 팀은 29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정봉주 석방 촉구 신년음악회’를 개최했다. ‘어느 위대할 정치인을 위한 칸타타’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음악회는 정 전 의원의 팬카페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이 주최하고 나꼼수 공연기획자인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기획자로 참여했다.김어준 주진우 김용민 등 나꼼수 멤버와 이한철밴드, 김C 등이 출연해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음악회 티켓 한 장 가격은 2만5000원으로, 2000여 석이 사전 예약됐다. ‘나와라 정봉주 국민본부’ 대표인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 등 민주당 인사들도 참석했다. 한편 이날 김용민 씨와 공동사회를 보기로 돼있던 공 씨는 참석하지 않았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28일 오후 7시 반 112로 긴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천사와 요정이 시켜 엄마를 죽였다”는 최모 씨(39)의 자수 전화였다. 경찰이 서울 성북구 정릉동 집에 출동했을 때는 최 씨와 함께 살던 새어머니 박모 씨(61)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부엌에 있던 칼이 범행도구로 사용됐다.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 밑에서 남동생과 자라던 최 씨는 30년 전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박 씨를 처음 만났다. 비록 배로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박 씨는 가슴으로 최 씨 형제를 길러냈다. 자신의 친딸은 오히려 친정에 맡겨놓고 최 씨 형제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다. 일용직 노동일을 하는 남편을 돕기 위해 남대문시장에서 일감을 받아와 생계를 책임지던 억척스러운 아내이기도 했다.새어머니의 사랑 아래서 최 씨는 전기배선 기술자를 꿈꾸며 건강하게 자랐다. 고등학생 때 전기배선 기술 자격증을 따 매달 30만 원씩 벌어 1000여만 원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최 씨는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당한 뒤로 갑작스러운 우울증과 정신분열 증세를 겪었다. 제대 이후 증세가 심해지면서 박 씨는 취업도 결혼도 못했다. 10년 넘게 정신병원을 전전하던 최 씨를 내내 보살핀 것도 박 씨였다.29일 저녁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최 씨의 아버지(65)는 “아내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좋은 사람이었다”며 “나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생긴 것 같아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그는 “상복을 입을 자격도 없다”며 점퍼 차림으로 홀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최 씨에 대해 정신감정을 의뢰하고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29일 밝혔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17년 전 히말라야 등반길에서 안내인인 장부 셰르파 씨를 잃었던 고려대산악회가 최근 히말라야를 다시 찾아 그의 아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21일 귀국했다. 고려대산악회는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한 호텔에서 1995년 고려대산악회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안내인으로 참여했다가 정상을 등정하고 하산하던 중 추락사한 장부 셰르파 씨의 부인 치링 셰르파 씨와 아들 펨바 셰르파 군(18)을 만났다.고려대산악회 원정대원 8명은 개교 90주년을 기념해 1995년 장부 셰르파 씨와 함께 에베레스트에 올라 2개월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하지만 한 시간여 만에 장부 셰르파 씨가 북쪽 낭떠러지에 떨어졌다. 원정대는 시신도 찾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다. 부인의 품에 안겨 있던 펨바 군을 바라보며 김종호 당시 원정대장은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은 이날 17년 전 약속을 지킨 것이다.아버지가 사망했을 당시 15개월로 엄마 품에 안겨 있던 펨바 군은 어느덧 10학년생(한국의 교교 2년)이 돼 있었다. 펨바 군은 솔루쿰부 지역의 시골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부인 치링 씨는 카트만두에서 조그만 식당을 운영 중이다. 김 대장은 17년 만에 다시 만난 모자(母子)와 망자(亡者)에 대한 추억을 나눴다. 산악회원들은 펨바 군에게 1년간 학비와 생활비로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을 전달하고 앞으로도 꾸준한 후원을 약속했다. 김 대장은 “17년 사이에 앳돼 보였던 부인 치링 씨가 어느새 중년의 여성이 돼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펨바 군이 아버지를 많이 닮아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펨바 군이 공부에 뜻이 있다면 한국으로, 가능하면 고려대로 유학을 올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도 했다.펨바 군은 “아버지처럼 용감한 사람이 돼 여행가이드를 하고 싶다. 도움을 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웃었다. 치링 씨도 “17년 전에 잃은 남편을 기억해 먼 나라에서 찾아와 가족을 챙긴 일은 유례가 없었던 것 같다”며 “한국의 대원들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이에 앞서 원정대는 히말라야 봉 중 하나인 임자체(약 6190m)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고문을 맡은 오은선 대장과 OB 멤버인 박용일 씨 외 산악회원 3명은 등반 11시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오 대장은 “히말라야 등반 경험이 전혀 없는 대학생 훈련대가 겨울에 히말라야에 오른 것은 소중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대학생 주장 천성인 씨(26)는 “대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돌아온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며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 데 이번 등반의 기억이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원정대가 귀국하던 날 이들 모자는 17년 전처럼 대원들을 배웅하며 안전한 귀국을 기원하는 가다(흰 천)를 목에 걸어줬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두만강 물속으로 혁이(19·2005년 탈북 당시 12세)는 조심스레 첫발을 내디뎠다. 해가 떨어진 뒤로 내내 비가 내린 탓에 강물 위로 안개까지 뿌옇게 끼어 있었다. 5월 봄 날씨라지만 북한과 중국을 가르는 강물은 여전히 차가웠다. 두 다리를 모두 물속에 담그자 순간 물살에 몸 전체가 휘청거렸다. 9년 전 먼저 탈북에 성공한 아버지(53)가 ‘믿고 따라오라’며 보내준 북한 브로커는 이미 성큼성큼 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어머니(52)와 누나(24)도 강물 속으로 몸을 내맡겼다. 혁이라고 더 이상 주춤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 엄마와 함께 남한으로용기를 내어 몇 걸음 더 걸어갔을까, 갑자기 강바닥이 푹 꺼졌다. 며칠 전부터 연일 내린 비에 강물은 생각보다 불어나 있었다. 강물은 어느덧 키 120cm인 혁이의 어깨 너머 높이까지 올라왔다. ‘절대 큰 소리를 내어선 안 된다’던 브로커의 당부사항도 잊은 채 겁에 질린 혁이는 순간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발이 바닥에 닿질 않아.”혁이는 어려서부터 옥수수와 감자 말고는 먹어본 음식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또래보다 30cm 이상 작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시각장애 1급)이기도 했다. 왼쪽 뇌가 쭈그러든 뇌병변장애 1급이라 오른쪽 팔과 다리도 쓰지 못했다. 앞장서 강을 건너던 어머니는 막내아들의 다급한 부름에 그대로 뒷걸음질쳐 돌아왔다. 몸이 불편하다고 봐주는 것 없이 다른 형제보다 더 엄하게 혁이를 가르쳤던 엄마는 어느새 혁이 앞에 등을 내밀었다. “어서 업히거라.” 도움 받기를 싫어하는 자존심 강한 혁이도 순간 어린아이처럼 엄마 등에 올라탔다. “무섭지? 엄마도 많이 무서워. 엄마 등만 꼭 붙잡고 있어. 이 강만 건너면 아빠 만날 수 있대.” 그렇게 업고 업힌 채로 모자는 한 시간 넘게 두만강을 건넜다.○ “학교에 가고 싶어요”함남 홍원군 인근 작은 마을에서 혁이네는 벼와 옥수수, 고구마 농사를 지었다. 혁이 부모님은 물론이고 누나, 형(21)까지 꼬박 하루 종일 일했지만 늘 배를 곯기 일쑤였다. 옥수수가 주식이었고 그마저도 부족할 때는 감자를 삶아 밥 대신 먹었다. 혁이 가족이 탈북을 결심한 건 비단 배고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혁이의 미래도 큰 이유였다.혁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발육이 늦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생후 1개월이 됐을 무렵이었다. 여느 아이와 달리 도통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다른 아기들은 실컷 뒤집고 기어 다닐 나이에 혁이는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고만 다녔다. 오른쪽 팔도 펴지 못했다. 장애가 있어도 밝고 붙임성이 좋던 혁이는 7세가 되던 해 자기도 형, 누나처럼 학교에 보내달라고 매일 엄마를 졸랐다. 북한 사정상 장애인 특수교육을 기대할 수는 없었기에 엄마는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혁이의 고집을 이기지 못한 엄마는 입학원서를 내러 큰마음 먹고 학교에 갔다. 엄마 손을 잡고 온 혁이를 보고 학교 아이들은 “눈깔 병신이 왔다”고 깔깔댔다.나날이 심해지는 괴롭힘에 씩씩했던 혁이도 결국 학교를 나가지 못했다. 놀림도 싫었지만 시각장애인인 혁이가 일반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혁이의 시력으로는 10cm 정도 앞에 놓인 글씨밖에 읽을 수 없었다. 칠판에 쓴 선생님의 판서는 아무리 가까이 가더라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상에 코를 박고 글씨를 쓰려다 보니 다른 친구들이 한 문장을 쓰는 동안 한 글자 쓰는 일도 어려웠다. 오른손이 불편해 억지로 왼손으로 생활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어렸을 때는 몰랐던 장애인으로서의 좌절감이 학교 입학 이후 도리어 더 커졌다. 친구들이 미워서, 학교 수업을 못 따라가서 하루 이틀씩 수업을 빠졌고 학교에 가는 날보다 안 가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학교 선생님 대신 다섯 살 위인 누나가 혁이를 돌보며 한글과 셈을 가르쳤다. 매일 아침 남매는 산에 올라 나물을 캐고 땔감을 찾으며 한글 노래를 불렀다. 그게 장애인으로서 혁이가 북한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이었다. 척박한 북한 땅에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아들이 불편한 몸과 보이지 않는 시력으로 평생 농사를 짓고 고생해야 한다는 현실을 어머니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마침 동네에서 몰래 보던 남한 TV 프로그램에서는 어떤 병도 뚝딱뚝딱 잘 고쳐내는 남한의 유능한 의료시설들이 소개됐다. ‘남한에 가면 혁이가 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있고, 운이 좋다면 남들처럼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생각만으로 어머니는 장애인 아들을 데리고 목숨을 건 탈북을 결심했다.○ 사막길 건너고 철조망 넘어중국 지린(吉林) 성에서 학교를 다니던 큰아들과 함께 먼저 탈북에 성공한 혁이 아버지는 부인의 전화를 받고 며칠 뒤 탈북 전문 브로커를 고향 집으로 보냈다. 예고도 없이 밤 12시 갑자기 찾아온 브로커는 ‘마을 밖에 차를 대놨으니 서두르라’며 혁이와 어머니, 누나를 재촉했다. 세 식구는 갈아입을 옷 한 벌 못 챙긴 채 차를 타고 그 길로 그날 밤 국경에 도착했다. 몸이 불편해 마을 밖 친척집에도 가본 적이 없었던 혁이에겐 첫 ‘여행’이었다. (혁이는 아찔했던 탈북 과정을 지금도 ‘추억’이라고 부른다.)돈으로 매수한 국경경비대원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두만강을 건넌 세 식구는 중국인 브로커를 따라 중국 네이멍구 지역으로 이동했다. 차를 타다 걷다를 반복하기를 꼬박 일주일. 사막 길을 걷는 내내 누나와 엄마가 번갈아 가며 혁이를 업었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워낙 거세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빵과 염소젖은 꺼내는 순간 모래에 뒤덮여 시커멓게 변했다. 두 사람이 인간 벽을 세워 바람을 잠깐 막는 사이 입에 음식을 재빨리 넣는 것이 그들의 식사법이었다.그렇게 걷고 또 걸어 도착한 몽골 국경에는 허술한 철조망이 있었다. 철조망을 직접 손으로 벌려 세 사람은 함께 국경을 넘었다. 이제 남은 일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이었다. 몽골 국경경비대 난민수용소에는 이미 수백 명의 탈북자가 한국 대사관으로 인계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66m²(20평) 남짓한 방에 남녀 탈북자 50명이 뒤섞여 생활했다. 혁이네도 두 달을 기다린 끝에 2006년 4월 비행기를 타고 한국 땅을 밟았다.○ ‘굽은 팔’ 수술 받고 싶지만3개월간의 하나원 적응 생활을 마치고 아버지와 형이 기다리고 있는 서울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농촌 벽돌집에서만 평생을 살아온 혁이에겐 ‘집 여러 채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가 신기하기만 했다. 신기한 건 집뿐만이 아니었다. 남한에는 혁이처럼 장애인을 위한 교육 과정도 제대로 마련돼 있었다. 혁이의 적응 과정을 돕던 서울 공릉사회복지관에서 혁이에게 시각장애인 전문 교육 과정을 권했다. 마침 집에서 30분 거리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문학교인 한빛맹학교(교장 김양수)가 있었다. 2007년 봄 한빛맹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혁이는 난생처음 시험이라는 것을 봤다. 점자가 찍힌 종이를 익숙한 손길로 만져가며 문제를 풀던 남한 친구들과 달리 혁이는 간단한 국어와 수학 문제를 읽는 것조차 어려웠다. 결국 네 살 어린 초등학교 3학년 동생들 반에 들어갔지만 혁이는 그래도 좋았다. 남들보다 조금 뒤처졌지만 이제 혁이는 한글은 물론이고 영어로 인사말과 자기소개도 할 줄 알게 됐다. 재미교포인 원어민 영어교사 소냐 김 씨(23·여)가 유독 혁이를 아껴준 덕분에 두렵기만 했던 영어에 자신감도 생겼다.같은 반 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현재 중학교 2학년인 혁이는 요즘도 매일 오전 6시면 집에서 나와 남들보다 1시간 반 먼저 학교에 도착해 영어 공부를 한다.혁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체육이다. 한빛맹학교에서는 시각장애아를 위해 굴리면 소리가 나는 특수 축구공을 사용해 연습을 한다. 시력이 조금 나은 아이들이 시각장애 1급 친구들과 손을 잡고 2인 1조 축구 경기를 하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꿈도 꿔보지 못한 시간이다.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시각장애와 뇌병변장애는 어쩔 수 없지만 굽어버린 오른팔은 수술을 통해 펼 수도 있다고 했다. 신경까지 모두 되살리긴 어렵지만 수술을 하고 재활치료를 통해 지금보다는 편하게 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수술비를 마련하는 것이 큰 문제다. 혁이의 아버지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엄마는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지만 수술비를 대기에는 수입이 턱없이 부족하다. 혁이는 “다리는 괜찮은데 팔은 좀 고쳤으면 좋겠다”며 “오른팔이 불편하니까 무거운 것도 못 들어 아르바이트를 못한다”고 처음으로 솔직하게 소원을 말했다. 혁이는 요즘 한국에서 가수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가수 신승훈이 혁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이자 롤모델이다. 한국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우연히 본 텔레비전에서 신승훈이 기타를 치며 발라드를 부르는 모습에 반했다고 했다. 대개 신명나고 들썩이는 북한 가요 스타일과는 달리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났다. 마침 얼마 전 학교 선배인 김수환 형이 SBS ‘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 프로그램에 출연해 심사위원인 가수 보아를 울리는 것을 보고 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도 제가 목소리는 미성이거든요. 가수가 되면 몸을 쓰지 않아도 되고 목소리와 진심만 있으면 남들과 공감할 수 있잖아요.”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