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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대 규모의 책 축제 ‘파주북소리 2012’가 15∼23일 경기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린다. ‘책으로 소통하는 아시아’를 기치로 내건 이번 축제는 책 자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시, 강연, 퍼포먼스 등 130여 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아시아와 유럽의 출판계 인사들과 국내외 200여 개 출판사, 300여 개 문화예술 단체가 참가한다. 전시행사로는 축제 기간 내내 열리는 ‘한글 나들이 569’가 눈길을 끈다. 한글 탄생 569주년을 맞아 한글이 새겨진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날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잡지 ‘소년’(1908년 창간) 등 희귀 잡지를 선보이는 ‘추억의 그 잡지’ 특별전도 볼거리다. 올해 첫선을 보이는 아시아 출판문화상인 ‘파주 북어워드’와 전 세계 주요 책마을 13곳이 참여하는 ‘세계책마을심포지엄’도 주목할 만하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프랑스의 저술가 기 소르망, 일본의 역사소설가 사토 겐이치 등 세계적인 저자들과 신영복, 도정일 교수 등 국내 유명 저자들의 강연도 독자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연과 문화행사도 열린다. 시인 김소월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김소월 문학의 날’ 행사에는 수많은 후배 문인과 문학도의 시 낭송과 가곡 공연, 강연회가 포함된다. www.pajubooksori.org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푸른 개 장발(황선미 글, 김동성 그림·웅진 주니어)=개를 키워서 용돈벌이를 하는 노인과 잡종 삽살개가 삶의 끄트머리에서 인간적인 화해를 나누는 이야기. 미운 오리새끼처럼 다른 외모로 태어나 가족에게 무시당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주인공 개 장발이 주인 목청과 함께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숙연해진다. 초등학교 고학년. 9500원.옛 선비들의 국토 기행(원영주 글, 이수진 그림, 권태균 사진·주니어 김영사)=정약용, 이황, 이이, 허균 등 최고의 문인 20명이 우리 땅을 돌아보며 쓴 기행문 20편. 초등학생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고전 기행문과 수필을 미리 맛볼 수 있다. 초등학교 전 학년∼중학생. 1만 원.지갑이 떨어져 있었어요(리지 핀레이 지음, 김호정 옮김·책속 물고기)=길 위에서 지갑을 주운 운 좋은 악어는 친구들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고 주인을 찾아 돌려줄까? 묵직한 지갑을 들고 주인을 찾아 걷고 또 걷는 꼬마 악어의 여정. 5∼7세. 1만1000원.재주 많은 일곱 쌍둥이(홍영우 글, 그림·보리)=굶주리는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원님네 곳간을 털다 위기를 맞게 된 일곱 쌍둥이가 신기한 재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평안북도 철산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그림책. 1만1000원.}

괴이한 이름, 복잡한 족보, 뜬금없는 저주들…. 이 책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본다면 쉽게 마주칠 수 있는 낯선 구성요소다. 산스크리트어 원문의 뜻을 최대한 살려 옮긴 탓에 한국어를 읽는 건지, 외국어를 읽는 건지 머리가 아파온다. 신을 포함한 등장인물 이름만도 2000개가 훌쩍 넘는다. 그러나 현재 출간된 5권까지는 고작 4분의 1에 불과하다. 20권까지 번역이 완결되려면 15권이나 남았다. 하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읽다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와 이름들에 고개를 갸웃하게 될지 모른다. ‘세계 대홍수’ 이야기는 세계가 대재앙을 맞이해 인류가 멸망한다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 ‘2012’가 현대적으로 번안한 원형이고, 등장인물인 유디스트라 삼형제가 삼국지 속 유비 관우 장비를 빼닮았다는 점,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부조물도 알고 보면 이 책의 이야기를 시대별로 그린 것이라는 점에 놀라게 될 것이다. ‘바라따 족의 전쟁에 관한 대설화’라는 뜻의 이 책은 기원전 14∼10세기에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사촌 간인 ‘빤다와’ 형제들과 ‘까우라와’ 형제들 사이의 전쟁과 그들이 겪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담았다. 힌두사상의 핵심을 담은 ‘바그바드 기타’(성스러운 신에 대한 찬가)도 그 일부다. 1만 년간 인도인의 지혜와 상상력의 보고로 자리매김해온 이 책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합한 것의 약 8배 길이에 달한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 연극연출가 피터 브룩은 1905년 프랑스 아비뇽 연극제에서 이 장대한 고전을 9시간 분량의 연극으로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타이타닉’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도 “마하바라따를 영화화하는 것이 필생의 꿈”이라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마하바라따에 비하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순진한 편”이라는 말을 남겼다. 한때 ‘인도를 준다 해도 셰익스피어와는 바꾸지 않겠다’는 영국인들이 새삼 부끄러워질 수도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마하바라따에 있나니, 마하바라따에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없도다’라고 믿는 인도인들의 자부심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닌 셈이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에 불과하다.” 옛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이 남긴 말이다. 잇따라 발생하는 아동 성폭력 사건이 신문지면을 뒤덮고 있지만 같은 경험을 한 어린이 수백만 명은 오늘도 치유하기 힘든 아픔 속에서 살아간다. 특별법 제정, 가해자 화학적 거세 같은 대책이 활발히 논의된다 해도 이미 성적 트라우마를 안게 된 아이들에게 치료법이 되진 못한다. 이 책은 통계에 그칠 뻔했던 성폭력 피해자들의 경험을 개인의 비극으로 접근한다. 저자는 40년간 성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상담하고 연구해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다. 여러 쪽에 걸친 각종 수치와 통계들은 그 자체로 성폭력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이뤄지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의 3분의 1이 직간접으로 성폭력에 연관돼 있으며 전 세계 여성의 25%, 남성의 10%가량이 성인이 되기 전에 성적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다. “만약 어떤 질병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 정도 수치에 달했다면 국가적 비상사태가 선포됐을 것이며 치료책을 위한 연구비도 즉시 마련됐을 것이다.” 미국 ‘성 학대 추방을 위한 어머니 모임’ 창설자 클레어 리브스의 발언을 곱씹다 보면 세상이 성폭력에 얼마나 둔감한지 돌아보게 된다. 저자가 치료했던 일반인들의 생생한 사례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아동 성학대로 트라우마를 겪었던 유명인사들 이야기다. 유치원생 시절부터 옷 벗기 게임을 했다는 앤젤리나 졸리, 여덟 살 때 침실로 들어온 하숙생에게 성폭행을 당한 메릴린 먼로, 열네 살 때부터 수년간 의붓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한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까지 스크린에서 TV에서, 혹은 역사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인물들이 차례로 소개된다. 본인이 확인해주지 않았으나 정황상, 혹은 저자의 추정만으로 성폭력 피해자로 소개된 인물도 적지 않다.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 루이스 캐럴 등이 그렇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타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책에 소개된 유명인사들이 대부분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책 말미에 실린 ‘부모들을 위한 조언’이나 ‘치료사들을 위한 조언’은 유용하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강하게, 오랫동안 갖게 된다고 한다. 주변의 누군가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면 당신이 평생 그의 편이라는 점을, 시련을 이기고 나면 더욱 아름답고 심오한 내면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려주면 어떨까.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이것 좀 꽉 매 주라요. 돈 못 건진다 누가 그러오? 서로를 마주보며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텔레비전도 안 보오? 남편들이 아내를 죽일 때 이유를 대기 좋은 거지….”(백가흠의 미발간 소설 ‘나프탈렌’ 중) 평일 오후 8시 라디오 주파수를 EBS에 맞추면 주부 권아영 씨(32)가 등장인물에 따라 낭랑한 목소리를 달리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다. 이 채널의 간판 책 프로그램인 ‘라디오 연재소설’이다.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의 소설 전편을 읽어주는데 지루해질 만하면 소설과 어울리는 음악이나 작가 인터뷰가 나온다. 낭독자는 일반인들의 신청을 받아 선정한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다 지친 주부, 일용직 노동자, 실직 상태의 젊은이들이 낭독을 맡아왔다. 독서의 계절에 책 읽어주는 라디오 프로들이 청취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KBS1 라디오 ‘책 읽는 밤’, SBS ‘라디오 북카페’ 같은 지상파 방송사들의 프로뿐 아니라 인기 팟캐스트 ‘책 읽는 라디오’ 등도 현대인들의 피곤한 일상을 위로하고 있다. EBS는 ‘책 읽는 라디오’를 모토로 내걸고 올가을 개편에서 책 관련 프로를 10개로 늘렸다. 매달 공개방송 형태로 ‘낭독의 힘’이라는 북콘서트를 열어 청취자들과 일반인 낭독자, 작가, 인디 싱어송라이터들이 소통하는 장도 마련한다. 아무 기교도 없이 책을 읽기만 하는데 청취자 카페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회사원 장모 씨(30)는 “밤늦게 야근한 뒤 퇴근길 차 안에서 라디오북을 크게 틀어놓고 들으면 꼭 좋은 영화를 한 편 감상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유통업에 종사하느라 일요일마다 출근하는 안영주 씨(27·여)는 “평일 방송분을 일요일엔 하루 종일 재방송해주는데 일요일에도 일해야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덜 수 있어 위안이 된다”고 전했다. 소설가들은 낭독 프로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책으로 펴내기 전 EBS ‘라디오 연재소설’에서 소개됐던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 편혜영의 ‘서쪽 숲에 갔다’, 백영옥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김연수의 신작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출간 후 호평을 받았다. 소설가 백가흠은 “예전에는 소설을 쓴 뒤 눈으로만 퇴고를 했는데 내 작품이 낭독되는 것을 들으면서 문장의 리듬감까지 살필 수 있었다”며 “소설이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연수도 낭독되는 작품을 들은 뒤 소설 제목을 ‘희재’에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으로 바꿔 달았다. ‘책은 집에서 혼자 조용히 읽는 것’이라는 편견을 지닌 사람들에게 소설가 편혜영은 이렇게 말한다. “이야기의 원형은 글이 아니라 말입니다. 좋은 작품은 읽었을 때 운율감이 살아나는 글이죠.”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일본에서 활동하는 만화가 정인경(39)의 풍자만화전 ‘어떤 할머니의 이야기-내가 느낀 후쿠시마, 그리고 일본’은 천재지변을 남의 일로만 여기는 이들의 안일함에 대한 경고다. 14일까지 서울 은평구 동명여고 운연당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지난해 3·11 동일본 대지진 당시 큰 피해를 본 후쿠시마를 배경으로 그린 풍자만화 10점이 주를 이룬다. 방사능 위험지역으로 분류돼 대피 명령이 내려졌지만 집에서 수십 년을 숨어 살아온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던, 안전하다고 굳게 믿었던 원전이 하루아침에 나를 집에서 쫓아낼 수도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됐어요. 많은 일본인이 편리한 생활보다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법을 고민하기 시작한 듯해요.” 숙명여대 사학과 졸업 후 1996년 일본 유학을 떠난 정 작가는 2006년 3월 일본 교토 세이카대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만화 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에서 16년째 살고 있는 그는 달라진 일본 사회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독도 문제로 한일 관계가 경색됐고, 일본이 화난 것처럼 보이지만 일부 정치인만의 일인 것 같아요. 평범한 일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현안은 원전 사고 대책입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진 발생 550여 일이 지난 현재 현 밖에서 피난 중인 주민은 6만2000명을 훌쩍 넘었고, 임시 주택에서 생활을 하는 주민은 27만 명에 이른다. 7월 답사차 후쿠시마 현립 미술관에 다녀왔다는 그는 미국 화가 벤 샨이 그린 ‘러키 드래건’(1961년)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러키 드래건’은 1954년 미국이 비키니 섬에서 벌인 수소폭탄 실험으로 낙진 피해를 본 일본 어선 러키 드래건(福龍)호의 어부가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데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개관 때부터 소장해 온 작품이라는데 우연치곤 기막히죠. 이곳에서 30년쯤 뒤에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으니까요.” 정 작가는 아사히신문 오사카지사가 발행하는 회보 ‘아사히21관서스퀘어’에 연재했던 작품들도 소개했다. 고독사, 자녀 학대, 무연고사 등 병든 일본 사회를 보여주는 한 컷 만화들이 예사롭지 않다. 그가 일본에 가서 느낀 첫인상이 ‘지독히도 개인주의적인 사회구나’였다. “묻지 마 살인이나 성폭행 같은 사건들이 일본에선 이미 10년 전부터 일어났지요.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된 상태에서 혼자 화를 키우다 발산을 할 데가 없으니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그는 일본의 현재가 한국의 미래가 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스마트폰처럼 편리한 기구가 생겨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 소통하면서 우리 세계가 넓어졌다고 착각하는 것 같아요. 알고 보면 고립된 사회로 가고 있는 데도 말이죠.”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문학 길 위에 시간을 묻다(최금녀 지음·문학세계사)=길 위에 삶이 있고 시가 있었다. 인도, 네팔, 몽골 등 낯선 곳들을 돌며 건져낸 삶의 편린들이 눈부시다, 찬란하다. 이국적 향기가 가득한 시와 산문을 모은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1만3000원. 오정희의 이야기 성서(오정희 지음·여백)=국내 대표적 여류작가인 저자는 10년 동안 성서를 풀어쓰며 신실한 신앙을 키웠다. 리듬감 있게 넘어가는 ‘이야기’로 재탄생한 성서가 한결 친근하게 다가온다. 1만3800원. ○ 학술 냉철한 머리, 뜨거운 가슴을 앓다(변형윤 윤진호 지음·지식산업사)=원로 경제학자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의 삶과 사상, 사회 참여 활동을 되돌아본 대화록. 2만 원. 어느 낙관론자의 일기(기 소르망 지음·문학세계사)=발전에 대한 확고한 믿음, 낙관론자로 잘 알려진 저자가 2009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여행 일정을 따라 날짜순으로 작성한 일기를 모았다. 1만5000원. ○ 인문 마지막 마음(나형수 지음·경천)=전직 언론인인 저자가 암 수술을 받은 지 10년째 되는 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한 뒤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엮은 책. 1만4000원. 동물해방(피터 싱어 지음·연암서가)=1975년 처음 출간된 이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동물 해방 운동의 바이블. 실험실과 공장식 농장 등 동물이 처한 환경을 알려 동물에 대한 태도의 전환을 촉구하고 잔혹 행위를 금하도록 이끈다. 2만 원. 일상에서 철학하기(로제 폴 드르와 지음·시공사)=딱 20분만 존재하는 세상 살아보기, 카페테라스에서 투명인간 되기, 까맣게 잊었던 장난감과 재회하기. 책이 시키는 엉뚱한 짓들을 하면 철학자가 될 수 있을까? 저자가 외친다.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철학하세요!” 1만3000원. ○ 실용·기타 해독 주스(서재걸 지음·맥스미디어)=스트레스와 소화불량, 변비로 우리 몸에 매일매일 쌓여가는 독소를 빼주는 자연 치료법을 소개한다. 1만4500원.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키우는 마법의 말 30(요시모토 쇼코 지음·맥스미디어)=‘엄마 공부교실’의 창설자인 저자가 소개하는, 부모와 아이를 위한 대화 사전. 1만1500원. 현장리포팅과 방송스피치(강성곤 지음·형설출판사)=방송 현장에서의 리포팅 기법, 인터뷰 기술, 스피치와 화법 등 방송 실무 이론을 담았다. 1만8000원.}

윌리 프란시스는 몹시도 운이 없는 사형수였다. 동네 약국 주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사형 선고를 받은 그는 1946년 5월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서 전기의자형에 처해졌지만 수차례 고압 전류가 흘렀음에도 끝내 죽지 않았다. 급기야 전류가 흐르도록 머리에 덮은 띠와 덮개가 답답하다며 풀어 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장비 고장으로 전류가 사형수에게 전달되지 않은 때문이었다.교도소 측이 다시 장비를 설치하는 동안 젊은 변호사가 일사부재리 원칙을 들어 “사형수에게 두 번 사형집행을 하는 것은 헌법이 규정한 적법 절차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연방대법원에 심의를 요청했다. 대법관 9명이 내린 결과는 5 대 4, ‘죄수의 불운까지 헌법이 책임질 순 없다’는 판결이었다. 프란시스는 결국 판결이 나온 지 5개월 만에 다시 의자에 앉았고 ‘실수 없이’ 몸으로 흐른 2500V의 전류에 숨을 거뒀다.저자는 프란시스를 여러모로 ‘두 번 죽인’ 사례 외에도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내린 역사적인 31가지 판결을 소개한다. 연방대법원에 올라오는 청원은 연간 1만 건이지만 이 중 심의를 위해 선택되는 사건은 100건도 채 되지 않는다. 추리고 추린 31가지의 목차만 훑어봐도 미국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를 쥔 느낌이다.미국 사법부 최고 기관인 연방대법원의 대법관은 한번 임명되면 스스로 퇴임하거나 의회의 탄핵을 받지 않는 이상 해임되지 않는 종신직이다. 지성, 법률적 성취, 평판 등 여러 면에서 당대 최고의 법관들이 벌이는 치열한 논리전쟁이 볼만하다. “흑인은 인류 질서상 열등한 족속으로 독립선언서에 나타난 권리와 특전을 부여할 수 없다”며 남북전쟁의 씨앗을 탄생시킨 일도 있었지만 공룡 기업 스탠더드 오일을 전격 해체해 자본주의의 독과점을 경고하는 명판결을 이뤄내기도 했다. 미국 27대 대통령이자 10대 연방대법원장을 지낸 윌리엄 태프트는 미국 사회에서 연방대법원의 막강한 영향력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대통령은 왔다가 가지만 연방대법원은 언제까지고 이어진다.”다른 법률 관련 교양 입문서들이 판례를 소개하는 데 급급했다면 이 책은 판결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잘 버무린 독특한 구성이 돋보인다. 사건의 역사적 배경과 소송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프롤로그, 판결문과 반대 의견, 판결 이후 사회에 끼친 영향을 서술한 에필로그가 미국 사회나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는다.책의 백미는 정갈한 판결문만큼 논리 정연한 일부 대법관의 반대 의견 글이다. 문장력과 유머, 날카로운 비판력 등 어느 면에서도 판결문에 뒤지지 않는다. 200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조지 부시와 민주당 부통령 앨 고어가 맞붙은 대통령 선거 재검표 결과에 대한 판결이 대표적이다. 양측의 구두 변론을 들은 지 16시간 만에 연방대법원이 부시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끝나자 반대 의견을 제시한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은 “상황을 신속히 종료하겠다는 구실로 헌법이 보장한 동등한 보호의 원칙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대선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도는 없어졌지만 패자가 누구인지 분명해졌다. 패자는 재판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잃도록 만든 모든 관계자”라고 일갈했다.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들이지만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표현의 자유, 낙태, 예술과 외설의 기준, 안락사에 대한 판결이 비교적 보편적이고 고전적인 편이라면 ‘무기를 드는 것만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라는 판결은 특정 종교의 병역 거부 논란을, 초과근무·최저임금제·저작권보호·주식부당거래 등에 대한 판결은 ‘경제민주화’를 떠올리게 한다.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의료보험개혁법에 대한 판결도 우리 사회에서 한때 이슈가 됐던 의료 민영화와 선거철 단골 소재인 복지에 대해 돌이켜 보게 한다.판결의 시비를 따져 보는 것보다 연방대법원이 어떤 과정을 통해 결론을 도출해 냈는지에 더 주목하는 것이 유익할 듯싶다. 추천사에 실린 글처럼 책 속 판결들이 “권위와 관행이 아닌 토론과 논증에서 나온 결과”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개미와 베짱이’ 속 베짱이가 천하의 한심한 백수가 된 것은 미국 때문이었다? 미국의 문화제국주의가 세계로 확대된 결과 죽도록 일하지 않는 사람은 게으름뱅이로 낙인찍혔다는 해석이다. 인도문화연구소를 운영하는 저자는 “게으름은 인간과 삶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준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며 죄의식을 걷어낸다. 벌레 한 마리 더 잡아먹기 위해 새벽녘에 일어나는 새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하쿠나 마타타’(근심과 걱정이 없는 세상) 속에 살 것인가. 선택은 자유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바둑의 세계는 냉정하다. ‘집중력 향상에 그만’이라는 삼촌 손에 이끌려 바둑도장에 갔고, 새벽마다 뚫어져라 기보책을 봤다. 신동 소리를 들으며 11세에 한국기원연구생이 됐지만 프로입단에서 미끄러지는 순간 바둑돌을 던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웹툰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바둑판보다 더 넓은 세상에 던져지게 된다. 미생을 그린 윤태호(44)는 성공보다 실패, 결과보다 과정에 방점을 찍는 만화가다. 전작인 ‘이끼’가 대성공을 거뒀고, 포털 다음 웹툰 평점 1위를 고수하며,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명강사인 그의 성공 스토리를 떠올리면 의외다. 미생의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4일 그가 대우교수로 있는 세종대 연구실을 찾았다. “성공의 의미를 오해하는 사람이 많아요. 노동자들을 탄압하면서 매출액을 올린 기업가는 성공한 인물일까요?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학자들이 성공한 인생인가요? 저는 미생의 주인공이 성공에 집착하기보다 바둑이라는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제가 가난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성취한 사람보다는 잃어본 사람, 열외가 돼 본 사람에게 더 마음이 끌려요.” 미생(未生)은 ‘아직 살지 못한 자’라는 바둑용어. 만화는 프로기사 입문에 실패해 완생(完生)을 이루지 못한 주인공이 대기업 계열사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겪는 조직생활을 현실감 있게 묘사한다. 자기가 돋보이려고 부러 ‘폭탄’ 동기와 프레젠테이션 짝을 맺는 인턴들, 잘되면 제 덕, 못 되면 부하 탓하는 부장, 항상 충혈된 눈을 부릅뜬 채 일에 매달리는 워커홀릭 과장…. 웹툰이 연재되는 날에는 ‘직장생활의 애환을 담은 진정한 성인만화’ ‘책 나오면 얄미운 상사와 눈치 없는 신입 책상 위에 살포시 놓고 싶다’처럼 공감을 표하는 댓글이 수백 개씩 달린다.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는 작가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주는 다수의 샐러리맨 ‘딥스로트’ 덕분에 ‘리얼리티 최강 직딩 필독 웹툰’을 그려내고 있다. 웹툰과 함께 소개되는, 1988년 조훈현 9단과 중국의 최강자 녜웨이핑 9단이 맞붙은 제1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 결승 최종국의 한 수 한 수도 깨알 같은 재미를 더한다. “소수의 영재가 우리를 먹여살린다면 서울이라는 도시에 이렇게나 많은 빌딩, 책상, 형광등이 필요할까요. 사람들은 모두 한 점에서 출발하지만 각자가 도달하는 지점은 다릅니다. 직장 내에서 성취속도가 다르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은 아니지요. 누구나 자기만의 바둑이 있는 법이죠.” 전작과 달리 미생의 내용은 밝고 희망적이다. 아무 쓸모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바둑이 결정적인 순간 주인공의 기사회생을 돕는 장면에서는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이끼’처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자는 제안은 많이 들어오지만 쉽게 팔리진 않을 거예요. 독자들이 인물 간의 극적인 갈등보다 ‘이건 나와 닮았어’ 하고 공감하는 지점에서 재미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독도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등이 동북아에 미묘한 긴장을 불러온 가운데 2012 베이징 국제도서전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의 대표 소설가가 한자리에 앉았다. 지난달 30일 오후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한 ‘저자와의 만남’이 끝난 후 이문열 작가(64)는 베이징 한국문화원에서 옌롄커(閻連科) 인민대 교양학부 교수(54)와 만나 한중일 3국의 영토 분쟁과 문학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중국에서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평가받는 옌 교수는 소설 ‘딩씨 마을의 꿈’과 수필집 ‘나와 아버지’로 국내에 알려졌다. 특히 소설 ‘사서(四書)’(자음과모음)가 중국 공산당 정권을 은유적으로 비판했다는 이유로 중국 본토에서 판매 금지되고 지난해 한국과 홍콩 대만에서 먼저 출간돼 화제가 됐다. ―서로의 작품을 읽어 보았나. ▽옌롄커=이 작가의 장편 ‘시인’을 감명 깊게 읽었다. 시인 김삿갓이라는 전설적 인물과 당대 한국의 현실이 잘 접목됐다고 생각했다. 작품 배경이 중국 현실과 닮아 친숙했다. ‘황제를 위하여’도 읽고 싶다. ▽이문열=옌 교수의 ‘나와 아버지’를 흥미롭게 읽었다. 엄숙해야 하는 장면에서 능청스러운 반어법 표현들이 재미있었다. ―두 분 모두 소설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곤 한다. ▽이=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몇몇 사건이 지식인으로서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사회적 관점을 표출하는 작품을) 썼을 뿐이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에게 혹독하고 잔인한 비판을 받았고, 한 10년간 많은 손해를 봤다. 이제 글 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문학 이외의 것에 정열과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옌=개인의 운명이나 삶 자체가 사회 현실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는다. 지난해 ‘사서’가 본토에서 출판되지 못했지만 중국은 한걸음씩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언젠가 판금 조치가 풀릴 것으로 기대한다. ―한중일 3국이 영토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옌=각 정부가 썩 지혜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세 나라의 지도자가 충분한 지혜를 모았다면 이렇게까지 얽히지 않았을 것이다. ▽이=애초에 결론이 날 수 없는 문제다. 영토를 포기한 지도자는 용서받지 못한다. 한번 자기 영토라고 주장했던 것을 어떻게 번복하겠는가. 일본이 ‘중국에 센카쿠 열도 돌려주자’고 할 것 같나. 제3자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세상에 가장 애매한 법이 국제법이다. ▽옌=이 선생이 독도에 가신 걸 지지한다. 한국과 중국은 그런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다. ▽이=제주도 가까운 곳에 이어도가 있다. 한국이 해양관측소를 설치했는데 중국에서 신경 쓰고 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한국도 영토라고 주장한 적이 없지만 중국이 내놓으라는 말을 한다면 그때는 일이 커질 수 있다. ▽옌=중국 지도자들이 견해의 일치를 본다면 대범하게 선물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 간 냉전 기류를 완화하기 위해 문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을까. ▽이=가까울수록 원수지면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가 될 수 있다. 동북아 3국은 침략과 원한으로 점철된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지역을 묶으려는 움직임들이 있지만 결국 국가 이기주의에서 발원한 것이다. 문화적 이상만 갖고는 화해하기 어렵다. ▽옌=문학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문학 교류는 상호이해를 촉진하고 새로운 의식의 탄생을 이끌 수 있다. 예전 같으면 벌써 일어났을 전쟁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저지하는 데 문화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베이징=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29일 중국 베이징 ‘중국국제전람중심’ 신관에서 5일 일정으로 개막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2012 베이징 국제도서전’은 실용서가 주도하는 ‘출판 한류’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재테크 건강 육아 미용을 다룬 실용서를 전시한 한국 출판사 부스들에 유독 발길이 잦았다. 30일 열리는 한중출판세미나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중국에서는 실용서를 포함한 한국 도서들이 해마다 1400종 넘게 번역 출간된다. 미국 영국 대만 일본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중국 청년들의 상황과 맞아떨어져 중국 출판 시장에서 5주간 베스트셀러 종합 선두를 지키기도 했다. 중국의 실용서 붐에 대해 출판계 인사들은 집값이 뛰고 가계 빚이 늘면서 노후가 불안해진 중국 독자들이 사정이 비슷한 한국의 재테크와 육아 관련 도서를 찾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일본 책보다 저작권료가 싸면서도 트렌드에 맞고 디자인과 콘텐츠가 좋은 것도 한국 책의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트렌디 드라마가 처세술이나 심리 위주의 중국 실용서적 시장의 판도를 건강과 미용 쪽으로 바꿔놓았다는 분석도 있다. 저작권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 이가희 중국저작권 담당자는 “몇 년 전만 해도 책 제목에 ‘심리’란 단어만 들어가면 무조건 비싸고 통 크게 계약하는 중국 출판업자가 많았는데, 요즘은 피부, 화장, 건강 관련 도서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젊은 여성 독자들을 겨냥해 미용서적을 출간하는 중국 양광수미 출판사의 장웨이 편집자(30)는 “‘시티헌터’(SBS) 같은 한국 인기 드라마를 본 중국 여성들이 한국에서 출간된 패션이나 미용 도서를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날 도서전을 찾은 차이리리 씨(26·여)도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많은 중국인이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며 “중국 책보다 시각 자료가 풍성한 한국 책이 이해하기 쉽다”고 말했다. 올해로 19회째를 맞은 이번 도서전에는 75개국 2010여 곳의 출판사가 참가했다.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올해의 주빈국으로 초청된 한국은 ‘한글과 IT, 그리고 기록문화와의 만남’을 주제로 다양한 특별전을 마련했다. 황동규 황석영 이문열 은희경 성석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13명이 도서전을 맞아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하는 한중 작가 교류 행사에 참가해 중국 작가 8명과 문학적 교감을 나눈다. 중국이 한국 도서 저작권의 최대 수출국인 만큼 이번 도서전에 거는 한국 출판인들의 기대도 크다. 지난해 한국출판연구소와 주요 에이전시가 집계한 결과 2009∼2010년 출판저작권 수출 2904건 가운데 중국으로 수출한 건수가 1204건으로 41.4%를 차지했다. 출판사 관계자는 “다른 도서전의 경우 저작권 계약 10건 중 6∼7건이 수출이고, 나머지가 수입 계약인 데 비해 베이징 도서전에선 9건이 수출 계약”이라며 “올해 주빈국으로 참여해 규모가 커진 만큼 중국 시장을 잡기 위해 애쓸 것”이라고 말했다.베이징=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출판계 사재기 감시기구인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는 소설가 겸 수필가 남인숙의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자음과모음)에 대해 ‘사재기 의심’ 결정을 내렸다. 센터가 서점들로부터 구매 기록을 받아 살펴본 결과 여러 사람이 일정 기간 반복적으로 이 책을 구매해 동일 주소지에서 받아본 것이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출간된 이 책은 주요 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었다. 출판사는 “사재기는 없었다”고 강력히 부인했지만 곧 과태료 처분이 내려질 예정이다. 윤철호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 운영위원장은 “사재기를 부인한 출판사에 과태료를 부과한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도서 사재기는 출판사가 자신의 책을 다량으로 구입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림으로써 판매를 촉진하는 것으로,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따라 과태료 최고 1000만 원이 부과되는 엄연한 불법 행위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재발하는 출판계의 고질병이기도 하다.○ ‘키 작으면’ 사재기했던 책?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는 2008년 9월 출범 이후 현재까지 총 8건의 사재기 의심 사례를 적발했고 이 중 5건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지난달 과태료 상한선이 1000만 원으로 인상되기 전에는 300만 원이 최고액이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일단 베스트셀러에 올라가면 최소 1만 부가 나가도 순이익이 2000만 원가량 되니 과태료는 ‘껌값’에 불과하다”고 말했다.본보는 출판사 대표, 영업부장들로부터 사재기 실태를 들어봤다.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이 대형 서점을 돌며 책을 한 권씩 구입하는 ‘방문 사재기’의 경우 한 사람이 딱 한 권만 산다. 서점들이 사재기를 막기 위해 한 명이 여러 권을 사도 판매 집계에는 한 권만 적용하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이렇게 사온 책들을 서점의 비표(도장)를 지워 다시 출고한다. 특수 약물을 써서 지우기도 하고 얼룩이 남으면 절삭기를 이용해 2∼3mm씩 잘라내기도 한다. 한 출판사 대표는 “서점에서 동일한 책들 가운데 살짝 ‘키가 작은’ 책은 사재기 후 다시 출고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 독서카페 서평 이벤트도 이용일부 인터넷 ‘독서카페’나 ‘서평카페’에서 열리는 서평 이벤트도 이용한다. 누리꾼들이 책을 산 뒤 계좌번호를 알려주면 출판사가 책값을 입금한다. 회원은 공짜 책을 얻고, 출판사는 매출을 올리면서 독자 서평까지 챙긴다. 이들을 연결해준 독서 카페 운영자들이 출판사로부터 수수료를 챙기기도 한다. 사인회도 마찬가지다. 독자 외에도 서점 직원들이 사인을 받는데 이는 출판사가 해당 서점에서 구매한 책들이다. 단속과 엄포에도 불구하고 왜 사재기가 근절되지 않을까. 한 출판사 관계자는 ‘최소비용 최대효과’를 이유로 꼽았다. 정가 1만 원짜리 책을 사재기할 때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입하면 10% 할인을 받아 9000원에 살 수 있고, 책은 다시 6000원을 받고 재출고할 수 있다. 결국 3000원만 쓰면 1만 원짜리 책 한 권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셈이다. 한 대형 서점 관계자는 “1분 단위로 판매량의 이상 증가를 살피는 등 여러 사재기 방지책을 내놓았지만 지능적으로 변하는 사재기를 미리 차단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미국 뉴욕 뉴저지 주 한인 등이 23일 일본의 욱일승천기에 대해 ‘일본 전범기 퇴출을 위한 시민모임’을 결성한 가운데, 국내에 번역돼 소개된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욱일승천기가 등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한국에서 유통되는 일본 번역물 가운데 욱일승천기가 나오는 만화 장르는 다양하다. 특히 일본 우익세력을 대표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만화가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가와구치 가이지 작가의 군사물인 ‘침묵의 함대’(서울문화사)가 대표적이다. 세계 최고의 핵잠수함인 ‘야마토’를 둘러싼 정치 군사 사회 문제를 다룬 이 만화에는 곳곳에서 욱일승천기가 등장한다. 지난해 투니버스에서 방영한 후지타 요이치 감독의 군사물 애니메이션 ‘은혼’도 마찬가지다.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에도 욱일승천기가 나온다. 군대를 배경으로 한 ‘개구리 중사 케로로’에서는 욱일승천기가 프로그램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부터 등장하며, ‘원피스’ ‘짱구는 못 말려’와 같은 케이블 TV 애니메이션에도 변형된 욱일승천기가 나온다. 일본 작가들이 만화 표현 중 하나인 ‘집중선’을 그리면서 욱일승천기에 대한 논란을 교묘히 피해간다는 의견도 있다. 집중선은 만화 속 캐릭터가 작품 속에서 중요한 선언이나 다짐을 할 때, 혹은 자랑스럽거나 긍지에 차 있는 상황에서 배경에 빨간 선으로 그려진다. 이 같은 변형된 모양까지 넓은 의미의 욱일승천기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박석환 만화평론가(39)는 “만화에 전범기인 욱일승천기가 등장하는 것은 문제 삼아야 한다. 국가적 정체성이나 자부심을 드러낼 때 변형된 욱일승천기가 나오는데 단순한 만화적 표현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작품도 있다”고 말했다. 욱일승천기는 일본 국기에 그려진 빨간색 동그라미(붉은 태양) 주위에 퍼져나가는 붉은 햇살(旭光)을 그린 깃발로, 메이지 유신 이후 구 일본 제국 시대에 사용한 일본군의 군기다. 1870년 16줄기의 햇살이 그려진 욱일승천기가 일본제국 육군기로 지정됐으며 이와 유사한 기가 1889년 일본 제국 해군 군함기로도 지정되면서 일본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종료되자 과거 독일의 나치 상징인 갈고리 십자가 모양의 하켄크로이츠처럼 사용이 금지됐지만, 자위 목적으로 창설된 해상자위대가 다시 군기로 제정하면서 부활했다.23일 결성된 ‘일본 전범기 퇴출을 위한 시민모임’은 “독일은 전후 하켄크로이츠를 퇴출시켰는데 일본은 전범기를 오히려 자위대의 깃발로 채택했다”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일본 선수들의 욱일승천기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를 겪은 아시아 국가들에 욱일승천기 퇴출 운동에 동참할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대학시절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만난 첫사랑의 집을 지어주고(영화 ‘건축학개론’), 아내와의 별거를 꿈꾸며 강원 평창올림픽 건축프로젝트에 목숨 걸고(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불혹의 나이에도 완벽한 신체 비율과 외모를 자랑하는 건축사무소 대표(드라마 ‘신사의 품격’). ‘밤샘작업, 1인 사무실의 영세함, 용역비 감소에 따른 경영난 등 건축사의 실상을 완벽히 무시한 미화’라는 지적도 있지만, 올 상반기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가장 주목받은 직업은 건축가였다. 이 책은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건축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이 건축 입문서로 읽기 적당하다. ‘르네상스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탈리아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를 시작으로 주철 건축의 기본을 만든 미국의 제임스 보가더스, 독특하고 창의적인 스페인의 안토니 가우디, 건축에 미학을 입힌 스위스 르코르뷔지에, 전후 일본을 복구하면서 일본 모더니즘을 열었던 단게 겐조 등 유명 건축가 40명의 삶과 건축세계를 설계도와 작품 사진을 곁들여 소개했다. 전 세계 건축역사 전문가 36명이 쓴 글을 영국의 건축역사·비평가 케네스 파월이 엮었다. “역사상 위대한 건축가들은 대개는 박식가였다”는 엮은이의 말처럼 금세공인과 조각가 수업을 받았던 브루넬레스키는 건축뿐 아니라 선박 건조에도 풍부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수학자 출신의 영국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은 기하학 전문지식을 이용해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을 지었다. ‘시대를 앞서갈 것, 새로운 재료와 기술에 대한 도전과 탐색을 멈추지 말 것.’ 책이 강조하는 ‘빌더(builder)’의 역할이자 존재이유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철권통치를 무너뜨리기도, 지지 기반이 확실치 않던 버락 오바마 후보를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도 한다. 새롭게 변화하는 정보화 정치 시대에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은 악성 댓글과 정보의 신뢰성 부족 등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소셜미디어로 무장한 젊은 세대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가 주요 선거와 정책의 향배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저자는 미국 시러큐스대 정치학 박사로 IT와 정치, 정보화시대 민주적 거버넌스 등을 연구하고 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스물여덟 살 청년은 겁이 없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졸업과 동시에 보스턴컨설팅그룹 컨설턴트로 취업, 경영학석사(MBA)를 준비하던 청년은 누가 봐도 ‘엄친아’였다. 인생의 전환점은 친구 5명과의 술자리에서 던진 농담이었다. “재미있으면서 의미 있는, 그런 건 왜 없지? 우리가 한 번 해볼까?” 국내 최초의 강연기획 문화기업 마이크임팩트의 한동헌 대표(30)는 ‘명확한 메시지가 담긴 강연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2009년 3월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다니며 재미삼아 기획한 강연콘서트 ‘청춘, 냉정과 열정사이’의 5000석 표가 순식간에 매진되자 그 길로 사표를 내고 회사를 차렸다. 2010년 1월 창업 후 KBS2 ‘남자의 자격’의 강연편 ‘청춘에게 고함’, 청춘을 대상으로 한 강연콘서트 ‘열정락서’, 청춘들을 위한 축제 ‘청춘페스티벌’ 등 히트작을 잇달아 내놓았다. 창업 2년 반 만에 직원이 50명으로 불어났는데 평균 연령이 27세다. 최근 그가 내놓은 ‘청춘 고민상담소’(엘도라도)는 ‘두려움’ ‘스펙’ ‘조바심’ ‘한계’ 등 청춘이 버려야 할 10가지 키워드를 주제로 한 강연을 엮은 책이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철동 마이크임팩트의 복합문화공간인 엠스퀘어에서 만난 그는 “‘강연’하면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편견을 뛰어넘고 싶다”고 했다. “선배나 어른들로부터 조언이나 이야기 듣는 걸 좋아했는데 그런 것도 넓은 의미의 강연입니다. 대학생 때 학과에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초청해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는데 학생들이 듣지 않고 도망가려 한 적이 있어요. 기획 연사 강연 구성 이런 것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기대를 품게 하는 강연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문화콘텐츠로서 강연이 갖는 힘은 무얼까요. “잘 읽은 책 1권보다 명확한 메시지가 담긴 강연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요. 강연은 사람이 직접 말하는 것을 보고 듣고 진정성을 체감하고 ‘아우라’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죠. 인간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존재예요. 고대 그리스에 광장이 생겨난 것도 그렇죠. 역설적으로 현대사회는 사람들끼리 더 많이 연결돼 있음에도 그런 의견을 나눌 장이 부족합니다. 맘껏 고민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답에 확신을 갖는 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청춘’이라는 콘텐츠가 앞으로 식상해질 수도 있을 텐데요. “제가 젊으니 청춘이 가장 크게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지고 있어요. 서른에 접어든 여성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원더우먼’ 강연, ‘지적 된장남’들을 위한 강연파티 ‘메디치’, ‘중년 고민 상담소’ 등으로 강의 소재를 넓혀가고 있어요.” 강연기획가로서 한 대표의 자산은 3000명이 넘는 명사 네트워크다. 총 300회가량의 강연에 1300명이 넘는 명사가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석했다. 한 달에 100건씩 연 1000건이 넘는 강연 제의가 잇따르고 있다. 국내 연사뿐 아니라 ‘3차 산업혁명’ 저자 제러미 리프킨,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등 외국 학자들의 내한강연도 성사시켰다. 올해 안으로 기 소르망 프랑스 파리국립대 교수, 아시아 여성 최초의 하버드로스쿨 종신교수인 석지영 씨도 초청할 예정이다. 강연기획으로 시작한 기업은 강연 전문 에이전시, 교양강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아카데미스쿨, 복합문화공간 운영 등으로 업무영역이 날로 커가고 있다. “강연이 끝나고 몇몇 분이 와서 ‘고맙다. 좋은 일 한다’는 말씀을 하시면 뿌듯하더라고요. 저희 강연을 듣고 바뀌는 분들이 하나둘 모인다면 그게 곧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책을 고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잘 차려놓은 밥상’ 앞에 앉는 것. 이른바 ‘올해의 책’ ‘○○대 권장도서 100선’ ‘꼭 읽어야 할 고전시리즈’ 등은 목록만 살펴봐도 유식해지는 느낌이다. 문제는 재미와 소화능력. 다종다양한 ‘좋은 책(혹은 좋다고들 하는 책)’이 반드시 흥미롭게 읽히거나 충실히 이해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북 칼럼니스트 강창래 작가(53)는 둘 사이의 간극을 날카롭게 지적해왔다. 16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나를 위한 책, 내가 좋아하는 책을 선택하는 것으로 책을 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작가는 1일부터 페이스북에서 ‘강창래의 책이야기: 책을 보는 10가지 관점’을 연재하고 있다. 그는 “책의 홍수시대에 ‘읽기 전에 고르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책에 대한 고정관념과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연재 동기를 밝혔다. 연재 첫 순서로 선보인 ‘포르노 소설이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켰다고?’는 프랑스 민중이 계몽주의자들의 위대한 저작물보다 비슷한 시기에 쓴 ‘그들의 포르노그래피’를 읽었으며 이것이 곧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단초가 됐다는 내용. 대표적인 예가 1761년 장 자크 루소가 쓴 연애소설 ‘신(新)엘로이즈’다. 독자들이 귀족과 평민, 계급이 다른 두 주인공의 비극적인 사랑을 통해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했다는 설명이다. “1년 뒤 출간된 사회계약론은 혁명 이전에 베스트셀러였지만 읽은 사람이 주로 지식층이고 많이 잡아야 100명 정도였습니다. ‘신엘로이즈’는 115쇄를 찍었고 출판업자들이 책을 못 대 시간당 대여료를 받고 빌려줄 정도였어요. 대부분의 사람이 ‘북 콘서트’처럼 낭독 형식으로 독서를 즐겼다는 걸 감안하면 영향력이 어마어마했던 셈이죠.” 2부에선 ‘아무도 읽지 않은 책에서 과학혁명이 시작되다’, 3부에선 ‘시대의 지배구조와 타협하며 살아남은 고전들’을 다룰 예정이다. 그는 “고전이 지배계층에 적응하지 않았다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권위자나 전문가들이 좋다고 해서 의심 없이 넘어가선 안 된다. 전공자에게나 고전이지 모두에게 고전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권장도서, 필독도서 목록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그런 도서 목록은 죄책감만 심어줍니다. ‘100권 읽기’ 같은 독서운동이 활발했던 1990년대에 자란 세대들이 외려 책과 멀어진 이유는 텍스트에 대한 달콤한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강요하지 마세요. 책은 종착점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정류장 같은 겁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올해 ‘2012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의 부천만화대상 시상 결과는 이례적이라고 평가됐다. 송동근 만화가(42)의 학습만화 ‘피터 히스토리아’(부제: 불멸의 소년과 떠나는 역사 시간여행)가 인기 웹툰 등을 제치고 수상작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학습만화가 대상을 수상한 것은 상 제정 이래 8년 만에 처음이다. 축제 개막식이 열린 15일 경기 부천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난 송 작가는 “생각지 못한 큰 상을 받게 돼 얼떨떨하다”면서 “새로운 학습만화의 지평을 열고 싶다”고 말했다. ‘피터 히스토리아’는 약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태어난 13세 소년 페테루가 영생을 얻어 시공간을 넘나들며 인류사의 주요한 사건들을 겪어 나간다는 내용을 그렸다. 페테루는 지역에 따라 표트르, 베드로, 피터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등장한다. 주인공이 이솝과 함께 팔려 가는 그리스 노예가 되는가 하면 예수의 제자가 되는 등 역사적 인물들과 호흡한다는 점에서 “학습만화의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어린이 교양월간 ‘고래가 그랬어’에 2007년 초부터 2009년 1월까지 약 2년 간 연재된 뒤 지난해 2권짜리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송 작가는 대구 계명대 사학과를 2년 만에 중퇴하고 1993년 상경한 뒤 만화가의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낮에는 게임회사에서 일하고 밤에 만화를 배웠다. 2000년 웹진 이코믹스에서 ‘만화왕’으로 데뷔해 몽상만화 ‘지문사냥꾼’, 경제만화 ‘펠릭스는 돈을 사랑해’ 등에 참여했다. “발생연도에 집착하고 누가 어떤 사건을 터뜨렸는가에만 주목하는 역사만화를 답습하고 싶지 않습니다.” 송 작가는 “암기식 역사 교육 영향으로 정보 나열에만 충실한 것이 기존 역사만화들의 맹점”이라며 “기존 학습만화들의 형식은 교과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조선사에 눈을 돌렸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나약한 국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조선은 찬란한 역사를 지닌 나라입니다. 그 훌륭했던 부분들이 가려지고 있는 게 안타까워요.” 그는 역사만화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지나가는 한 컷에도 당시 의복, 음식, 언어습관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며 책을 쌓아 두고 공부 중이라고 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예멘. 지난해 초 ‘아랍의 봄’으로 장기 독재정권이 물러난 국가들이다. 일부 과도기적 혼란을 겪고 있는 나라들도 있지만 대체로 민주화 수순을 잘 밟아가고 있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반면 시리아는 혁명이 발생한 지 17개월이 지났지만 권력을 부자세습한 아사드 정권이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계속되는 시민 학살과 시위대 탄압으로 사망자 수는 시리아인권관측소(SOHR) 추산 2만 명을 넘어섰다. 시리아 사태 속보가 연일 이어지는 와중이라 이 책의 등장은 반갑다. 2006년부터 민주화 혁명을 겪기 직전인 2010년까지 시리아 주재 일본대사를 지낸 저자는 서구의 시각에서 벗어나 시리아 담론과 국제 정세의 분석을 시도했다. 우선 시리아와 인근 아랍국가 간의 관계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언론에도 알려지지 않은 일들을 비교적 상세히 전달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시리아 사태를 꾸준히 보도해온 아랍의 알자지라TV가 현장과 동떨어진 취재원들로부터 증언을 전달받아 현장보고 형식으로 보도했다는 사실이나, 고문 학살의 상징으로 떠올라 반정부 시위의 열기를 고조시켰던 13세 소년 함자 알카티브의 사망 원인은 시신 부검 결과 고문이 아닌 총에 맞은 것으로 판명됐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의도적으로 반정부 단체가 내세우는 사실들을 폄하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저자가 사망자 수나 실제 상황과 관련한 반정부 단체의 발표가 과장이 많다는 생각에 경도된 것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새로운 팩트를 추가했다면 훨씬 설득력 있었을 것이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