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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규모와 기능을 확대하는 법안이 슬로바키아에서 통과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유로존의 그리스 지원에 청신호가 켜졌다.이에 앞서 슬로바키아 의회는 11일 유럽 구제금융 체계인 EFSF의 확대안에 대한 표결에서 150명 중 55명만 찬성표를 던져 부결시켰다. 이에 따라 EFSF 기금을 2500억 유로에서 4400억 유로로 늘리려던 당초 계획이 틀어지고 유로존의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한 전반적인 절차에도 차질이 예상됐다. 하지만 슬로바키아 제1야당인 스메르사회민주당의 로베르트 피코 총재는 12일 “EFSF 확대안에 대해 이번 주 다시 표결을 해 통과시키는 것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2차 표결은 늦어도 14일 이전에 실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스메르사민당은 당초 조기 총선 실시와 새 연정 구성을 전제로 법안에 찬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금까지 17개 유로존 국가 가운데 16개국 의회가 EFSF 확대안을 승인하고 이제 마지막 국가인 슬로바키아의 법안 통과가 예상됨에 따라 유로존의 그리스 구제금융을 위한 정치적 걸림돌은 모두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12일 뉴욕증시도 슬로바키아의 EFSF 확대안이 조만간 승인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상승 출발했다. 이날 오전 10시 반(현지 시간) 현재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날 종가보다 1%가량 올랐다.한편 끊임없는 성추문과 부패 의혹, 국가재정 위기 등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75)의 의회 신임투표가 14일 열릴 예정이어서 현 이탈리아 정부의 존립 여부가 주목된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5일 사망한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항상 검은색 터틀넥과 리바이스 청바지, 뉴밸런스 운동화 차림을 고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같은 옷차림은 잡스의 트레이드마크가 돼 사후 그와 관련된 패션상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현상까지 낳았다.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잡스가 어떤 계기로 검은색 터틀넥을 즐겨 입게 됐는지가 곧 출간되는 전기 ‘스티브 잡스’에서 공개됐다고 11일 보도했다.전기 내용에 따르면 1980년대 일본을 방문한 잡스는 소니 직원들이 똑같은 유니폼을 입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해 모리타 아키오 당시 소니 사장에게 이유를 물었다. 모리타 사장은 “전쟁 뒤에 직원들이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 기업 차원에서 직원들의 복장을 대신 마련해 줬고 이것이 나중엔 직원들을 단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얘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잡스는 소니의 유니폼을 만든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에게 부탁해 직원 유니폼용 샘플 몇 개를 갖고 귀국했다.하지만 애플의 직원들은 잡스의 유니폼 아이디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잡스는 당시 “직원들이 내 아이디어를 싫어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잡스는 이세이와 친분을 쌓게 됐고 정기적으로 만났다. 잡스는 직원 유니폼은 몰라도 편의성과 개성을 위해 자기만의 유니폼을 입는 것은 필요하다 생각하고 이세이가 디자인한 검은 터틀넥 수백 장을 받아 입기 시작했다.작가 월터 아이잭슨은 전기에서 “잡스가 자기 옷장에 걸려있는 터틀넥들을 보여주며 평생 입을 만큼 충분한 양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서술했다. 잡스의 전기는 24일 시판된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치명적인 병마와 싸우면서도 같은 병에 걸린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며 모금활동을 벌여 온 11세 영국 소년이 결국 세상을 떠나 영국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버밍엄에 살던 해리 모즐리 군은 어렸을 때부터 책이나 TV를 볼 때 항상 고개를 기울이는 습관이 있었다. 시력도 계속 나빠져만 갔다. 일곱 살이던 2007년 2월 해리는 청천벽력같이 희귀성 뇌종양인 모양세포성성상세포종(pilocytic astrocytoma)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어린이 5만 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난다는 희귀종으로 뇌 안에서도 시각을 관장하는 부분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화학요법을 동원한 치료도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다. 의사는 “종양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른도 쉽게 감당하지 못하는 고된 항암치료가 시작됐지만 소년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해리의 투병생활에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2009년,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한 아저씨를 병원에서 만나고부터였다. 55세 사업가였던 이 남자는 매일같이 해리와 같은 치료를 받으면서 나이를 초월한 친구가 됐다. 하지만 ‘친구’의 병세는 갑작스럽게 악화됐고 해리는 집에 있는 구슬을 가져다 팔찌를 직접 만들어 시장에 팔기 시작했다. 팔찌 수익금을 뇌종양 연구기금으로 기부해 친구의 치료를 돕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해리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그러나 해리는 뇌종양에 걸린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모금운동을 이어갔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슈퍼마켓이나 쇼핑센터에 나가 팔찌를 팔고 모금을 위해 수백 명의 청중을 상대로 강연을 다녔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해리는 2009년 말에는 한 자선단체가 매년 수여하는 ‘올해 영국에서 가장 친절한 어린이(Britain's Kindest Kid)’상을 수상했다. 고든 브라운 전 총리, 존 테리를 비롯한 영국 축구스타, 음악인 등 유명 인사들이 해리가 만든 팔찌를 착용하고 다니고 직접 찾아와 격려했다. 그는 2009년 이후 2만여 개의 팔찌를 팔아 총 50만 파운드(9억1200만 원)를 모금했고 이를 영국 암 연구소에 기부했다.하지만 해리는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올 8월 쓰러졌다. 대수술을 받았지만 혼수상태에 빠진 뒤 깨어나지 못했다. 해리의 어머니 조지나 씨는 8일 저녁 6만7000명의 트위터 팔로어에게 “용감한 아들이 내 팔에 안겨 잠들었다. 그 순간, 이 세상은 너무나 어둡고 잔혹한 곳이 됐다”고 썼다.이날 트위터에는 추모 글이 이어졌다. 브라운 전 총리의 부인 세라 브라운 여사는 “그가 11년 짧은 인생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했던가. 훌륭한 소년 해리를 만나게 돼 즐거웠다”고 말했다. 영국 암연구소의 리처드 테일러 마케팅 이사는 “해리는 영국 전체가 자신이 만든 팔찌를 자랑스럽게 차기를 꿈꿨다”며 “치명적인 병을 갖고 있으면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고 다른 이들을 항상 돕고자 했던 소년이었다”고 회고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2001년 9월 10일 한 테러 용의자가 경찰에 체포됐다고 치자. 이 용의자는 다음 날로 계획된 9·11테러에 대한 핵심 정보를 알고 있지만 좀처럼 실토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테러를 막기 위해 이 사람을 고문하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 베스트셀러 ‘정의는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인권과 법, 정의와 같은 보편적 원칙이 우선인가, 당장 위험에 처한 수천 명의 생명이 우선인가’를 묻는 이 질문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주 발생하는 딜레마의 대표적인 사례다. 9월 30일 미국이 무인항공기를 동원해 미국 시민권자인 테러리스트 안와르 알올라키(사진)를 제거한 것과 관련해 이번 작전의 정당성을 놓고 샌델 교수가 제기한 것과 비슷한 논란이 미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다. 알올라키는 정보기관들이 오사마 빈라덴보다도 더 위험한 인물로 평가하는 거물 테러리스트였다.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의 지도자로 2009년 텍사스 미군기지 총격 사건 등 최근 미국을 겨냥한 굵직한 테러의 핵심 배후 역할을 했다. 당연히 미국 정보기관은 그를 심각한 위협으로 보고 ‘제거 대상 1호’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악랄한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자국 시민을 재판 등 법적 절차 없이 죽이는 게 정당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수정헌법 5조는 “정해진 법적 절차 없이 누구도 생명과 자유, 재산을 빼앗길 수 없다”고 규정한다. 뉴욕타임스는 1일 “법조 전문가 사이에서도 매우 논란이 많은 작전”이라며 “진보진영과 미국 내 무슬림들은 재판 절차 없이 정보기관의 판단만으로 어떻게 자국민을 죽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고 전했다. 미국의 이슬람 성직자인 야시르 카드히는 “미국은 그동안 시리아나 이란 정권이 재판에 따르지 않은 처형을 했다고 비난해 왔다. 이런 점에서 이번 작전은 매우 위선적”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알올라키의 아버지는 아들을 사살리스트에 올린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 체포되면 미국에서 재판을 받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법원은 “알올라키가 미국 법체계를 경멸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미국 정부는 알올라키가 알카에다 지도자로서 미국에 대한 즉각적인 위협이었고 그를 생포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행정부는 성명에서 “의회가 부여한 권한을 이용해 테러단체와의 전쟁을 하면서 적의 지도부를 타깃으로 삼는 것은 국적에 관계없이 적법한 일”이라고 항변했다. 한편 미국 정부는 사전에 이 같은 논란을 예상하고 내부적으로 법리 검토를 했다. 법무부는 중앙정보국(CIA)에 작전을 허가하는 메모를 보냈으며 행정부 변호사들이 작전의 법적 문제를 검토한 결과 합법성에 대한 어떤 이견도 없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남성 중심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마침내 여성에게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주기로 했다. 의회에도 여성을 참여시키기로 했다.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은 25일 국정자문기구 격인 ‘슈라위원회’ 연설에서 “다음 회기부터 여성을 슈라위원회에 참여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압둘라 국왕은 “우리는 여성을 하찮은 존재로 만드는 데 반대하기 때문에 성직자들과 논의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며 “또 다음 지방선거부터는 여성이 후보로 참여할 수 있으며 투표권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슈라위원회는 형식적으로는 사우디의 의회에 해당하지만 입법권은 없고 법률제안권만 있어 절대왕정인 사우디에선 사실상 왕실 자문기구 역할만 한다. 하지만 사우디가 참정권은커녕 그동안 여성의 운전조차 금지하고, 직업을 가지거나 남성 친척의 허가 없이 수술을 받는 것 또한 금지할 만큼 보수적인 사회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국왕의 발표는 큰 정치적 변화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05년에 처음 도입된 지방선거의 경우 이미 이달 29일 치러질 두 번째 선거의 후보자 등록이 완료됐기 때문에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첫 선거는 2015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부터 아랍 국가들을 휩쓴 재스민혁명, 즉 ‘아랍의 봄’의 영향으로 사우디에서도 여성의 권리 신장 등 사회개혁에 대한 요구가 잇따랐다. 특히 4월엔 여성 수십 명이 지다 시의 행정관청에 몰려가 여성의 투표권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을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사우디의 지식인과 인권운동가 60여 명도 여성 참여를 제한하는 지방선거를 거부하자는 운동을 벌여 왔다. 이웃한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등에서는 2000년 이후 속속 여성의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보장해 왔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한국 정부가 적어도 1978년까지 자체적으로 핵 개발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았던 것으로 25일 밝혀졌다. 또 미국은 한국 정부의 이런 움직임을 주시했으며 한국 정부의 핵 개발 추진 배경에는 자국민을 안심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결론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기밀 해제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당시 문건에서 드러났다. 미국 안보전문 연구기관인 노틸러스연구소와 글로벌아시아는 문건 내용을 이날 웹사이트에 게시했다.지금까지는 한국 정부가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이후 핵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문건은 한국이 1976년부터 1978년까지 2년 동안 핵무기 개발을 위해 얼마나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였는지 서술하고 있다. 1977년 한국 외무부는 미국이 남한에서 전술핵무기를 철수한다면 한국 정부는 핵무기 개발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문건은 “한국 내 핵 개발과 관련된 논의는 미군 철수 문제 및 베트남전쟁 종전과 연계돼 있다”며 “당시의 지정학적인 불확실성이 박정희 대통령으로 하여금 핵억지력을 더 원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그러나 CIA 문건은 “핵무기와 관련해 국내에서 논란이 있었지만 한국 정부가 실제로 핵무기를 확보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미국 항공우주국(NASA) 대기연구위성(UARS)이 24일 오후(한국 시간) 지구에 추락했으나 인명 및 재산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무게 5.7t으로 2005년 임무를 마친 뒤 ‘우주 쓰레기’로 지구 궤도를 떠돌고 있던 이 위성은 30여 년 만에 지구에 추락한 가장 큰 우주 물체로 기록됐다. NASA는 이 위성이 이날 대기권에 진입해 산산조각이 난 뒤 태평양 또는 북미 서부 지역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추락 시점은 그리니치표준시(GMT)로 24일 오전 3시 23분∼5시 9분(한국 시간 24일 낮 12시 23분∼오후 2시 9분) 사이로 파악됐다. NASA는 “정확한 추락 시점과 장소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영국 공영방송 BBC가 연대를 기원전(BC)과 기원후(AD)로 표기하는 관행을 깨고 ‘BCE’와 ‘CE’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고 데일리메일 등 영국 언론들이 25일 보도했다. BBC의 이 같은 움직임은 기존 용어인 ‘BC’ ‘AD’가 기독교적 시각에 따른 것으로 비(非)기독교인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BBC는 최근 자사 홈페이지의 ‘종교’ 섹션에서 “BC, AD의 중립적 대안으로 BCE, CE를 쓰기로 했다”며 “공평함을 중시하는 BBC로서는 비기독교인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용어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BC는 ‘예수 탄생 이전(Before Christ)’, 라틴어인 AD는 ‘주님의 해(Anno Domini)’의 줄임말이다. 이에 반해 BCE는 ‘공동 연대 이전(Before Common Era)’, CE는 ‘공동 연대’라는 의미를 각각 담고 있다. 다만 기원 전후의 기준이 되는 시점은 ‘예수의 탄생’으로 ‘BC, AD’와 같다. BBC는 인기 퀴즈쇼인 ‘유니버시티 챌린지’, 라디오4의 ‘인 아워 타임’ 등 일부 프로그램부터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 자사가 운영하는 청소년 대상의 온라인 학습 사이트에도 일부 콘텐츠에 BCE, CE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BBC는 BCE, CE 사용을 강제하지는 않고 BC, AD와 병행해 사용할 방침이다. BBC는 “별도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지는 않았으며 두 체제 모두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만큼 어떤 용어를 쓸지는 각 방송 제작진의 판단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BBC의 이 같은 움직임은 당장 영국 내 기독교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국 성공회교 피터 멀린 목사는 “BBC가 정치적 균형을 이유로 아무런 의미 없는 용어를 내세우고 있으며 더 나아가 기독교정신도 훼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BCE, CE’는 이미 역사적으로 유대인 등 비기독교인들이 자주 써 왔으며 최근 미국 교과서에서도 빈도가 높아지는 등 사용이 확산되는 추세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미국 뉴욕의 9·11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WTC) 자리인 ‘그라운드제로’ 인근에 이슬람 문화센터가 21일 문을 열었다. 지난해 기독교인과 무슬림, 9·11테러 희생자 가족 간에 개장 여부를 놓고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이날 이슬람 문화센터 ‘파크 51’의 개장식은 오케스트라의 중동 전통악기 연주와 뉴욕에 거주하는 각국 출신의 이민자 자녀 160명의 인물사진 전시회 개최 등으로 조용하게 진행됐다. 2년 전부터 운영돼온 이슬람 모스크(예배당)는 센터의 일부로 포함됐다. 이 센터에는 앞으로 수영장과 헬스클럽, 강연장 등도 들어선다. 센터 건립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 8월 뉴욕 시 랜드마크 위원회가 그라운드제로 인근의 낡은 건물을 헐고 15층짜리 이슬람 사원을 건축한다는 계획을 승인하면서 촉발됐다. 테러 장소와 불과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이슬람의 상징물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일부 복음주의 교회 목사들은 꾸란을 불태우는 등 반발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무슬림들이 종교를 믿을 권리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해 센터 건립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냈다. ‘파크 51’ 건설을 맡고 있는 부동산 개발업체 ‘소호 프로퍼티’ 측은 이 센터를 뉴욕의 무슬림뿐 아니라 종파를 초월한 모든 사람에게 개방할 방침이다. 샤리프 엘 가말 대표는 “센터 건립 과정 초기에 9·11 희생자 가족들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며 “하지만 지금은 센터 자문위원회에 최소 한 명의 희생자 가족을 포함시키고 있다”고 말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중국의 투자는 경제 도약의 기회인가, 식민지로 가게 하는 독배인가.’ 많은 아프리카 국가의 공통된 고민인 이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이 21일 잠비아에서 나온다. 20일 투표가 진행된 잠비아의 대통령 선거는 중국에 호의적인 여당 다자민주운동당(MMD)의 루피아 반다 현 대통령과, 반(反)중국 노선을 내세운 야당 애국전선(PF) 마이클 사타 후보 간의 치열한 접전 양상으로 진행됐다. 중국의 투자를 받아들여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과 중국의 ‘경제 식민지’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 대선의 핵심 쟁점이 됐다.○ 중국 영향력 커지며 반중 감정도 확산 중국과 잠비아의 외교관계는 196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본격적인 경제 교류는 지난 10년간 비약적으로 늘었다. 2000년만 해도 1억 달러에 불과했던 양국의 무역규모는 지난해 28억 달러로 급증했다. 중국의 잠비아에 대한 자원투자가 늘어난 것도 최근부터다. 아프리카 최대의 구리 생산국인 잠비아에선 원래 서구의 광산업체가 주도권을 잡고 있었지만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로 2009년 구리 가격이 폭락하면서 대부분 자국으로 철수했다. 그 빈자리를 중국 업체들이 밀고 들어오면서 싼값에 채굴권을 대규모로 사들인 것이다. 지난해 중국의 잠비아에 대한 투자 규모는 10억 달러를 넘는다. 중국의 투자에 특히 호의적이었던 잠비아 정부는 광산 소득에 대한 세금을 깎아주고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위안화 은행 예금과 인출을 허용하는 등 특혜를 베풀었다. 하지만 잠비아 국민들 사이엔 중국을 무조건 감싸고도는 정부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 투자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만 챙겨가고 있으며 잠비아로 돌아오는 투자의 과실도 일부 권력층만 향유하고 있다는 것. 지난 10년간 잠비아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5%를 웃돌았지만 여전히 국민의 3분의 2는 하루 소득 2달러 미만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한 광산에서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에 항의하는 잠비아인 종업원들을 향해 중국인 관리자가 발포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반중(反中) 시위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중국, 아프리카 식민지론에 반발 중국의 이런 행보에 대한 국제사회의 견제도 커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6월 잠비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을 겨냥해 “아프리카 나라들은 신(新)식민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자국에 우호적인 아프리카 정권을 향해 로비를 하고 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사타 후보 측은 “여당의 자금력이 갑자기 막강해졌다”면서 “반다 대통령 측이 중국에서 선거자금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은 “중국의 투자로 아프리카에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겼고 철도 등 인프라에 대한 기여도 크다”며 ‘식민지론’에 반발하고 있다. 특히 잠비아 대선자금 지원 의혹에 대해 중국은 20일 외교부 브리핑에서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 중국은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잠비아와 앞으로도 계속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현지 주재 중국대사관은 잠비아 투자에 불만을 품은 반중 세력을 우려해 8월 중순 교민들에게 안전 주의령을 내린 상태다. 이날 투표는 전반적으로 차분하게 진행됐지만 수도 루사카에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야당 지지자들의 시위로 경찰과의 충돌이 있었다. 1차 개표 결과는 이르면 21일 밤(현지 시간)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버스 크기의 인공위성이 주말경 지구에 떨어진다. 정확히 어디로 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근 30여 년간을 통틀어 지구에 떨어지는 가장 큰 추락 물체지만 너무 겁낼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위성에 맞을 확률은 20조(兆)분의 1에 불과하다.문제의 위성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1991년 쏘아올린 대기연구위성(UARS). 무게는 5.7t, 지름은 10.7m로 버스 한 대 크기다. 2005년까지 14년간 성층권의 대기 및 기후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퇴역했다. 이후 ‘우주 쓰레기’로 지구 주위를 돌다 2007년 운석과 충돌해 동력을 급격히 잃었고 4년 만에 지구로 떨어질 운명에 처했다. NASA는 19일 자체 속보 웹사이트에서 “UARS는 22∼24일경 지구로 떨어질 것으로 보이며 23일이 유력하다”고 전했다.추락 지점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NASA는 “위성의 궤도였던 남위 57도∼북위 57도의 어느 지점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류가 거주하는 대부분의 지역으로 북위 33∼43도인 한반도도 당연히 포함된다. 물론 이 위성은 대기를 통과하면서 대부분 타버리고 남은 동체도 100여 개로 산산조각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NASA는 “이 조각들 중 26개가량은 타지 않은 채 지표면에 떨어지며 일부 조각은 100kg이 넘을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UARS는 1979년 인도양에 떨어진 우주정거장 ‘스카이랩’ 이후 지구상에 떨어지는 가장 큰 우주 물체다.다행히 인명피해가 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NASA는 이 위성에 인간이 맞을 확률이 ‘3200분의 1’이라고 추정했다. 세계 인구가 70억 명임을 감안하면 각자가 맞을 확률은 20조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지구엔 바다와 사막, 밀림 등 인류가 살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위성 파편이 도시나 인구밀집지역을 강타할 확률은 상대적으로 적다.전문 용어로 ‘궤도 잔해(orbital debris)’라 불리는 우주 쓰레기는 지구 주위에 수천만 개가 떠돌고 있다. 이 중 지름 10cm 이상의 비교적 큰 쓰레기도 2만 개가 넘는다. 이것들은 1950년대 후반 우주시대가 개막된 이후 하루에 하나꼴로 지구에 떨어졌다. 아직 이로 인한 심각한 인명피해나 재산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NASA는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가능성에 대비해 UARS의 추락 시점과 장소에 대한 속보를 매일 홈페이지에 게재할 예정이다.만약 이 위성의 파편을 발견하더라도 이를 소장해선 안 된다. 위성은 원칙적으로 미국 정부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NASA는 “파편에 유해물질이 있을 수도 있고, 예리한 단면에 다칠 수도 있다”며 “만지지 말고 가까운 경찰서에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한 금융사 트레이더의 무리한 투자가 세계 금융계를 발칵 뒤집어 놨다. 영국 경찰은 스위스 최대은행 UBS의 트레이더로 일하던 퀘쿠 아도볼리 씨(31)를 15일 체포해 회사에 20억 달러라는 막대한 손실을 끼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 한 사건으로 UBS의 올 3분기 순이익은 모두 날아가 UBS의 수지는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후유증으로 정부의 구제금융까지 받았던 UBS는 재무건전성 악화는 물론이고 신용등급마저 강등될 처지에 놓였다. 이를 계기로 금융사에 대한 규제와 내부통제 시스템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아도볼리 씨는 런던에서 탄탄대로의 경력을 쌓아가던 잘나가는 금융인이었다. 아프리카 가나 출신으로 영국에서 한 해 학비가 2만 파운드(3500만 원)가량 되는 비싼 기숙학교를 거쳐 명문 노팅엄대를 졸업했다. 2006년 UBS에 수습 투자 상담원으로 입사한 그는 내부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최근엔 30만 파운드(약 5억25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는 매우 성실하고 차분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풍족한 삶은 잘못된 투자 한 번에 송두리째 날아갈 운명에 놓였다. UBS는 14일 밤 회사의 트레이딩 계정에서 이상한 부분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고, 다음 날인 15일 오전 3시 반경 아도볼리 씨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체포됐다. 15일 오전 UBS는 “한 트레이더의 허가받지 않은 임의매매로 20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봤다”는 짧은 성명을 발표했고 이날 UBS의 주가는 11% 폭락했다. 무디스는 “이 회사의 위험관리에 대한 취약점이 드러났다”며 신용등급 강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도볼리 씨가 정확히 어떤 투자를 해 이 같은 막대한 손실을 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가 지난주 페이스북에 “나에게 기적이 필요하다”고 써놓은 것으로 미뤄볼 때, 최근 투자에서 잇달아 실패한 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고위험 파생상품에 무리한 투자를 했다 더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각국의 주가와 환율이 크게 출렁이고 있었다. 세계 금융계는 유수의 글로벌 투자은행인 UBS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에 충격과 의문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금융사들은 리스크 관리를 위해 저마다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했다. 트레이더마다 최대 투자 및 손실한도를 정해놓고 이를 넘어서면 상부나 리스크관리 부서에 자동으로 보고가 되는 등의 방식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경찰은 아도볼리 씨가 내부통제 시스템을 깨기 위해 고의로 범법행위를 저질렀는지, 다른 동료들과 공모를 했는지 등을 수사하고 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페루 남부 등 안데스 산맥 일대 평원에는 ‘나스카 라인(Nazca Line)’이 있다. 고대인들이 신앙 숭배의 차원에서 새나 짐승 등을 새겨 놓은 것으로 지상에선 식별이 안 되지만 공중에서 보면 확연히 드러나는 거대한 지상의 그림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고대 문양이 중동 지역에서도 발견됐다고 미국 과학전문 웹사이트 라이브사이언스닷컴이 14일 보도했다. 중동판 나스카 라인은 시리아와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광대한 사막 지역에서 무더기로 관찰됐다. 최소 2000년 전 사막 위에 돌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대 문양은 지름이 작은 것은 25m, 큰 것은 70m에 이른다. 여러 개의 바퀴살이 있는 둥근 바퀴 모양인데 바퀴가 하나만 있는 것도 있고 수십 개가 모여 있는 것도 있다. 일부 사각형 바퀴나 바퀴살이 거의 없는 모양도 있다. 학자들은 신앙 목적이나 천문의식을 위해 만든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24세의 한 리비아 여성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에 각종 군사 기밀정보를 넘겨줌으로써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몰아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통신은 트리폴리의 한 호텔에서 익명을 전제로 이 여성과 단독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12일 보도했다.나토군은 3월 19일부터 리비아 군사 개입을 시작해 카다피 군 기지와 무기 등에 대한 폭격을 해왔다. 하지만 이후 카다피군이 민간인 지역에 군사시설을 숨기거나 위장을 하는 바람에 정확한 폭격 대상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나토군 폭격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다수 발생할 가능성까지 커졌다. 이때 나토군에 결정적 도움을 준 사람은 ‘노미디아’라는 코드명으로 활동한 24세의 여성이었다.평범한 엔지니어였던 노미디아는 카다피가 반정부 시위대를 무참히 진압하는 것에 격분해 처음엔 카타르에 있는 반(反)카다피 성향 알아흐라르 방송사에 전화를 걸어 현지 상황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카다피군의 무기 보관 장소, 탱크의 위치 등 고급 군사정보도 전했고 방송사는 이 정보를 과도국가위원회(NTC)를 통해 나토에 넘겼다는 것. 노미디아가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반카다피 성향의 정부군 퇴역장교로 노미디아는 아버지를 비롯해 카다피에게 반대하는 고위 군 관료들에게서 정보를 얻었다고 했다. 노미디아는 자신의 첩보 활동이 카다피군에 발각되지 않게 하기 위해 휴대전화 7개, 심(SIM) 카드 12개를 바꿔 사용했다. 가족 몇 명을 제외하면 그녀가 어디에 머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 나토에 제공하는 정보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군사시설에 직접 차를 몰고 가서 수 시간 동안 정찰을 하기도 했다.여자라는 것도 큰 무기였다.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이 이런 일을 하리라고 생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첩보활동이 쉬웠다는 것.노미디아는 “약 두 달 전 카다피군에 잡힐 뻔한 일이 활동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라고 회상했다. 당시 카다피군은 그녀의 심카드 중 하나를 추적해 성을 제외한 이름을 알아냈다. 그는 “그땐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계속 이동했고 가족들도 안전을 위해 이 집 저 집을 전전했다”고 말했다.NTC 잘릴 위원장, 트리폴리 첫 연설한편 나토군은 지난 주말부터 카다피 친위대의 일부 거점도시에 폭격을 재개했지만 라스라누프, 바니왈리드 등지에서 여전히 강한 저항을 받고 있다. 반군 대표인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위원장은 12일 트리폴리 순교자 광장에서 처음으로 대중연설을 갖고 “온건 이슬람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 리비아를 건설하자”고 역설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리비아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동자 상당수가 무아마르 카다피의 용병으로 오인받아 반카다피군에 잡혀가거나 리비아인들에게서 보복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는 리비아인의 적대감에 일자리를 잃거나 오갈 데 없는 난민 신세로 전락했다. 흑인들이 반카다피 세력으로 추정되는 괴한에게 다수 살해됐다는 증언도 나온다. 이 때문에 요즘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시내에선 흑인들을 거의 볼 수 없다. 상당수 흑인은 내전 중 이미 리비아를 탈출했고, 남아 있던 흑인 중 많은 수는 반군이 트리폴리를 함락한 후 체포돼 감방에 끌려갔다. 체포를 피한 흑인들은 집에서 숨어 지내고 있다. 카다피는 내전이 일어나자 차드 니제르 수단 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 용병들에게 하루 수십∼수백만 원의 일당을 주고 반군과 싸우도록 했다. 내전 당시 반군과 시민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을 감행했던 용병들은 반군이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지금 ‘공공의 적’으로 찍혔다. 그런데 용병과 무관한 외국인 흑인 노동자들까지도 용병으로 오인돼 위협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반군들이 수백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구금하고 있다”며 “많은 트리폴리 시민은 ‘아프리카 출신 하층 노동자’를 곧 ‘외국인 용병’과 같은 말로 인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나 출신 교사인 토니 비니 씨는 “2주 동안 집에서 숨어 지냈다”며 “지금 모든 흑인이 보복의 타깃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단체들은 반군에 체포된 외국인들이 불결하고 악취가 나는 교도소로 이송돼 리비아인들보다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피터 부케르트 연구원은 “구금된 흑인은 대부분 군인도 아니고 평생 총을 잡아본 적이 없음이 분명하다”며 “이는 리비아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를 반영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내전 전만 해도 리비아에는 전체 인구 600만 명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5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었다. 주로 아프리카, 아시아, 동유럽 출신인 이들 노동자는 건설 및 정유, 의료시설 등에서 자국에서보다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해 왔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미 6개월에 걸친 내전 도중 리비아를 탈출해 현재 리비아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프리카계 노동자들은 10만 명 정도다. 뉴욕타임스는 “리비아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리비아의 새 집권세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좌우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지난달 31일 리비아 트리폴리 인근 ‘카미스 여단’의 군부대. 한때 무아마르 카다피 원수의 최고 정예부대의 기지였던 이곳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거듭된 폭격과 반카다피군의 공격으로 이미 초토화돼 있었다.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경찰은커녕 반군 병사 한 명도 지키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 단위의 방문객까지 아무 제지 없이 초소를 통과했다. 카미스 부대 안에는 각종 탄피들과 총기 부품 등 군수용품이 널려있었다. 심지어 카다피군이 버리고 간 탱크들과 각종 무기 매뉴얼(사용설명서), 초소 당직근무기록표 등도 많이 발견됐다. 이곳에 들어온 한 리비아인은 군수용품을 담는 상자 하나를 자기 트럭에 싣고 갔지만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리비아 독재 정권의 한 상징이자 최고의 전투력을 보유했던 이곳이 흡사 관광지처럼 방치된 상황은 내전을 거친 리비아의 불안한 미래를 보여주는 듯했다. 트리폴리에서 동남쪽으로 25km 정도 떨어진 농지에는 옛 소련의 스커드미사일이 경비병도 없는 상태에서 방치돼 있다. 사거리가 300km인 이 미사일은 이동식 발사대로 쓰이는 트럭에 장착된 채 있어 알카에다 같은 이슬람 테러 조직의 탈취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5일 전했다. 트리폴리 시내는 아직도 실탄이 든 총으로 무장한 반군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시내 민간인 가정도 상당수가 무기를 소지하고 있다. 리비아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일부 반군 청년들이 나중에 다시 사회 불만 세력으로 바뀌면 이들이 가진 총기가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내전 과정에서 트리폴리의 아부슬림 교도소 등 여러 감옥을 탈출한 죄수들 손에 무기가 들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불법 총기 확산의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리비아가 보유했던 재래식 무기의 행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정보당국자들은 “휴대용 미사일(MANPADS)의 위치를 추적해 수거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 정보관계자는 AP통신에 “중동 지역에서 휴대용 미사일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며 “이미 카다피군이 보유했던 재고 중 일부가 시장에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최대 3만 기로 추정되는 휴대용 미사일은 개인 휴대가 가능하며 1발로도 항공기를 격추할 수 있다. 서방 세계는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 과정을 떠올리며 리비아 내 무기 방치 상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소련 붕괴 당시 제대로 관리 통제되지 못한 각종 재래식 무기는 러시아의 군 권력층과 마피아를 통해 중동의 테러단체에까지 팔려나가 지금까지도 러시아는 물론이고 서방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이언 마틴 자문관은 4일 “리비아의 새 지도자들은 현재 도로를 순찰하고 있는 수백 개의 무장그룹을 대체할 국가 경찰과 군 조직을 창설해야 한다”며 “무기 확산 문제가 심히 걱정된다”고 말했다.트리폴리=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시민혁명의 현장을 취재하면서 스물세 살의 튀니지인인 이삼 오피 씨의 도움을 받았다. 물도 음식도 없는 전쟁터 같은 현장에서 오피 씨는 통역과 섭외, 이동 안내 등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마침내 1일 트리폴리를 떠나는 날, 차로 3시간 반 걸려 리비아 서부 해안 국경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겼다. 튀니지 측 검문소 경찰이 우리더러 “비상시에만 쓰게 돼 있는 차로를 이용했다”며 다짜고짜 국경 통과를 막아서는 것 아닌가. ‘비상용’ 표지판 하나 없었는데…. 억지를 부리는 것임에 틀림없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실랑이를 하며 2시간을 보냈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결국 오피 씨에게 20디나르(약 1만6000원)를 쥐여 주며 경찰에게 주라고 했다. 여정 내내 활기에 차 있었던 오피 씨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두 장의 지폐를 손에 쥔 채 한참을 고민하고 난 뒤 천천히 경찰관에게 걸어갔다. 불과 5분가량 지났을까. 튀니지 경찰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차량을 통과시켰다. 오피 씨는 우리에게 “10디나르를 경찰에게 건넸다”고 말하고 우리에게 남은 10디나르 지폐를 돌려줬다. 그는 이후에도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오피 씨는 자기 나라 경찰의 부패상을 외국인 기자에게 보여주게 된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화가 나 있는 듯 보였다. 이 청년은 원래 자신의 조국이 재스민 혁명의 진원지로서 ‘아랍의 봄’을 이끌었다는 자부심이 강했다. 그는 기자와 동행한 여정 중에도 “재스민은 빨리 지는 꽃이기 때문에 재스민 혁명이란 말은 부적절하다”며 “튀니지 혁명으로 불러 달라”고 말했다. 올 1월 튀니지 시민들이 독재자를 몰아내 중동·북아프리카 민주화 도미노의 선봉에 선 것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그였다. 부패 공무원과 경찰이 여전히 많은 구시대적인 현장을 직접 목격한 것을 넘어 외국인에게까지 보여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몹시 안타까웠을 것이다. 기자는 “한국도 1987년에야 민주화에 성공했다. 혁명을 이끈 당신 같은 청년들이 있는 한 튀니지 사회도 발전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는 쉽게 위로받지 못했다. “조국에 실망했느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경찰에 돈을 줌으로써 부패 사회에 일조했다”고까지 말했다. 오히려 돈을 건넨 기자가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오피 씨의 부끄러움 속에서 오히려 희망을 발견했다. 파괴보다 더 어려운 재건의 과제를 짊어질 중동 젊은이들이 이렇게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아랍의 봄’은 성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튀니지에서유재동 국제부 jarrett@donga.com}

8월 31일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살라에딘 병원의 6인실 병실. 기자가 병실에 들어서자 흑인 환자들의 까만 눈동자가 일제히 쏠렸다. 왼쪽 가운데 침대에 누운 남자에게 갔다. 양 다리에 붕대를 친친 감고 있었다. 왼팔에는 링거액을 꽂았다. 오른팔에는 어딘가에 긁힌 자국도 보였다. 아프리카 차드에서 왔다는 30대 환자에게 “어쩌다 다쳤냐”고 물었더니 “1년 전 리비아로 건너와 일하다가 보름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말했다. 그때 지나가던 여의사가 갑자기 끼어들며 강한 아랍 억양의 영어로 말했다. “믿지 마세요. 모두 거짓말이에요.”이 여의사는 올해 35세인 무함마드 이남 씨. 트리폴리에서 태어나 떠나본 적이 없는 그는 이 병원에서 12년째 외과의사 생활을 하고 있다. 보수적인 아랍 국가의 몇 안 되는 여성 인재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그의 인생은 리비아 시민혁명으로 달라졌다.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은 올 2월부터였다. 병원에 갑자기 환자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한 것. 군인에게는 적군과 아군이 있겠지만 위급한 환자에게는 적군 병원과 아군 병원이 따로 없는 법. 카다피 정부군과 반군 할 것 없이 부상자들은 모두 이 병원으로 몰렸다. 전황에 따라 분위기도 달라졌다. 이남 씨는 집에서 몰래 위성을 이용해 외국방송을 봤다. 도심에 모인 거대한 인파, 총에 맞아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 국영TV에선 절대 볼 수 없던 장면이었다. 이남 씨는 “그땐 정말 이 나라가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니면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병원에 다니는 것도 겁이 나긴 마찬가지였다.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도 병원에 수시로 찾아와 “반역자들이 병원에 실려 오면 절대 치료해주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병원을 찾아온 환자들은 하나같이 “군인들이 우리에게 사정없이 총을 쐈다”고 말했다. 군인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남 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결국 이남 씨도 카다피군에게 어머니의 사촌과 삼촌 등 친척 세 명을 잃었다. 모두 병원 인근 동네에서 저격수의 공격을 받았다. 주변 이웃들도 대부분 한 명 이상의 가족을 잃었다. 어떤 집은 서너 명씩 죽어나갔다. 이남 씨 동료도 네 명의 자녀를 한꺼번에 잃었다. “병원으로 실려 오는 정부군 용병들을 볼 때마다 피 끓는 복수심에 불타올랐어요.”이남 씨는 당시의 솔직한 심정을 기자에게 고백했다. 용병들은 사람을 죽인 대가로 카다피 정권에서 하루 1000∼3000디나르(86만∼250만 원)씩 받았다. 그런데 정작 치과의사 자격증을 가진 이남 씨의 여동생은 4년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남동생도 실직자다. 카다피는 석유를 팔아 번 오일머니로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자국민을 죽이는 데 갖다 쓰고 있었던 것이다.자신들에 대한 현지인들의 적개심을 익히 알고 있는 용병들은 병원에 와서도 자기는 용병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총은 만져보지도 못했다”고들 말하지만 의사들은 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용병들의 최대 관심사는 치료를 잘 받고 나서 리비아인의 눈을 피해 본국으로 ‘탈출’하는 것이다.내전이 격화되자 이번에는 반군 환자가 늘기 시작했다. 정부군 반군 환자가 섞이기 시작하면서 응급처치 후엔 서로 다른 방에 격리해 입원을 시켰다. 이들은 치료를 받고 나가면 또 서로를 죽였고 다시 병원에 오기를 반복했다. 같은 국민들끼리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현실이 너무 싫었다. 지난 6개월간 TV를 보면서 매일 눈물을 흘렸다.의사의 길과 인간적 감정 사이에서 번민하던 이남 씨의 고통을 잡아준 것은 꾸란이었다. 그는 매일 “아무리 적일지라도, 원수일지라도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꾸란의 구절을 가슴에 새기며 일터로 나간다. 지금 602호에는 차드, 수단, 니제르 출신 정부군 용병들이 입원해 있다. 정부군의 수를 다 헤아리면 이 병원에만 100명 안팎이다. 내 가족과 이웃, 친구들에게 총질을 한 사람들이지만 이남 씨는 동등하게, 최선을 다해 치료해주고 있다.“정부군 환자들을 지금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다”는 솔직한 심정을 기자에게 수차례 반복하면서도 이맘 씨는 용병 환자들에게 다가가 “불편한 데는 없느냐”고 물으며 환부를 살폈다.트리폴리=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리비아 혁명의 성지가 된 트리폴리 시내 순교자광장(옛 그린광장). 31일 아침 동이 트자마자 이슬람식 복장을 한 시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매년 라마단(이슬람 금식 성월)이 끝난 뒤 여는 대규모 기도회가 이날로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행사는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몰락 직후 열리는 최대 규모의 기도회로서 의미가 더욱 특별했다. 오전 7시경이 되자 광장은 일부 가장자리를 제외하면 모두 들어찼다. 이날 모인 인원은 대략 2만 명 정도로 추산됐다. 치과의사를 하는 타리크 무함마드 씨(32)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광장에 왔다”며 “지금 트리폴리에 수도나 전기는 끊겼지만 카다피가 없으니 정말 행복하다”며 “조국 리비아의 민주주의와 자유, 평화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도회엔 여성과 어린이, 가족 단위 시민들도 많이 보였다. 트리폴리에 산다는 마나니 함무다 씨(42·여)는 각각 18세, 11세짜리 두 딸을 데리고 광장에 왔다. 그는 “알라와 혁명을 위해, 또 국가의 재건을 위해 알라에게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카다피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냐”고 묻자 단호하게 “하루빨리 잡혀서 그동안 저지른 범죄에 대해 법의 심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큰딸 하자르 양이 끼어들며 “(카다피는) 죽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세 모녀는 인터뷰를 마친 뒤 광장 뒤편에 모인 다른 여성들과 합류했다. 이슬람식 기도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기도 공간이 엄격하게 분리된다. 혁명을 성공시킨 시민들은 기도회 중간에 여러 차례 두 팔을 높이 들어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만들어 보이며 기쁨을 나눴다. 군중의 큰 함성이 수초간 이어질 때도 많았다. 평소 숙연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기도회라기보다 시민혁명 축하행사 같았다. 7시 50분경 이맘(이슬람 성직자)의 기도가 시작되자 2만여 명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은 뒤 절을 올렸다. “알라는 위대하다”라는 이들의 기도문이 광장 너머까지 널리 울려 퍼졌다. 기도회는 삼엄한 경계 속에 진행됐다. 기자가 묵는 호텔에서 광장까지는 불과 도보로 10분 거리였지만 중간에 5차례 이상 검문을 거쳐야 했다. 총을 든 반카다피군은 사람들의 가방을 모두 열어보는 것은 물론이고 공항에서나 볼 수 있는 스캐너 장비까지 동원해 일일이 몸수색을 했다. 혹시나 있을 카다피 정부군의 테러 가능성 때문이었다. 광장 옆 박물관 건물의 옥상에도 반군들이 올라가 망원경 등을 이용해 광장의 동태를 살폈다. 다행히 별다른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기도회가 끝난 뒤 반군들은 다시 한 번 하늘을 향해 축포를 쏘아댔다.트리폴리=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리비아 트리폴리의 아부슬림 지역에는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정권의 잔혹함을 상징하는 교도소가 있다. 죄수들은 내전 과정에 도주해 텅 비었지만 곳곳에 수십 년간의 고문과 구타를 보여주는 가슴 아픈 흔적들이 남아 기자와 시민들을 맞고 있다. 8월 30일 기자가 직접 가본 교도소는 황량했다. 여기저기 핏자국과 함께 전기고문이 자행됐음을 증언하는 끊어진 전선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자물쇠가 있던 벽면은 여지없이 뜯겨 나갔고 쓰레기가 가득 차 악취가 코를 찔렀다. 감방 벽면에는 죄수들이 붙여놓은 그림들도 걸려 있었다. 황량하기 짝은 없는 이 아부슬림 교도소의 역사는 이번 리비아 혁명의 도화선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1996년 열악한 복역 환경에 항의해 시위하는 재소자 수백 명에게 정부 보안군이 1시간 이상 중화기를 발포해 죄수 1270명이 숨진 ‘아부슬림 대학살’이 15년 뒤 부메랑이 돼 그대로 정권의 종말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혁명은 당시 희생된 재소자들을 대변했던 변호사가 2월 벵가지에서 체포되자 재소자 유족들이 항의하며 시위를 시작한 것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내전이 됐다. 아부슬림 교도소는 내전 과정에서 나토군 공습 과정에서 일부 무너졌다. 간수들이 모두 달아나는 바람에 재소자들은 굶주림에 시달렸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주민들이 24일 감옥 문을 열고 재소자들을 모두 해방시켰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한 반군은 “수감자 대부분이 반정부 인사여서 카다피에게 반감을 느낀 시민들이 이들에게 연대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소자들 중엔 일반 잡범도 다수 있었기 때문에 탈옥한 이들을 다시 잡아들이는 것도 새 정부의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반군들은 “아부슬림 교도소는 이제 카다피 정부에서 일했던 부패관리들을 집어넣는 교도소로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트리폴리=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