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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지’로 환자들을 유혹해 수년간 억대 보험금을 챙긴 한의원 원장이 경찰에 적발됐다. 마일리지를 쌓으면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보험사기에 적극 가담한 환자 수십 명도 함께 입건됐다.서울 수서경찰서는 강남구 대치동 A한의원에서 2006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보험금 1억5000만 원을 부당하게 타낸 혐의(사기)로 원장 B 씨(39)를 입건하고 청구금액이 300만 원에 이르는 환자 20여 명도 함께 조사하고 있다고 15일 밝혔다.경찰에 따르면 B 씨는 본인이 운영하는 한의원에서 환자에게 무료로 물리치료나 보약을 받을 수 있는 마일리지를 주고 이들에게서 본인이나 가족의 개인정보를 넘겨받아 진료도 하지 않은 채 진료한 것처럼 꾸며 보험금을 타낸 혐의를 받고 있다. B 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보험사의 눈을 피하려고 환자 가족과 지인의 명의를 돌려가며 보험금을 청구하기도 했다.환자들은 ‘공짜’ 마일리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가족이나 지인의 개인정보를 병원에 제공했다. 경찰은 환자 명부에 적힌 7500명 중 수백 명이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청구내용과 진료·처방 기록, 간호일지를 대조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강원 태백시 보험사기가 생활고에 시달린 주민들의 생계형 범죄였다면 이번 사건은 ‘마일리지’ 욕심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09년 육군 병장으로 전역한 윤모 씨(26)는 키가 193.7cm다. 다른 병사보다 한 뼘 이상 큰 윤 씨는 군 생활 내내 불편함이 많았다. 생활관 침대가 작아 밤새 다리를 구부린 채 자야 했고 판초우의 모포 등 군 지급 품목도 몸에 맞지 않았다. 장신인 윤 씨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K-2 소총이었다. 윤 씨는 세워총 자세를 할 때면 오른손에 쥔 총이 땅에 닿지 않아 장시간 들고 서 있어야 했다. 총 개머리판을 땅에 닿게 내려놓으면 어깨가 처져 선임에게 지적받기 일쑤였다. 총이 작아 구부정한 자세로 총을 잡고 쏘다 보니 사격 성적도 나빴다. 윤 씨는 “생활의 불편함은 참을 수 있었지만 키 때문에 사격 성적이 나오지 않아 구박을 당하고 특박(특별외박)도 나가지 못해 속상했다”고 토로했다.○ 204cm 병사도 같은 총으로? 국방부는 3일 징병검사 기준을 대폭 강화한 징병 신체검사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다음 달 8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키의 보충역 판정 기준이 기존 196cm 이상에서 204cm 이상으로 상향 조정돼 윤 씨보다 10cm가 큰 병사도 입대할 예정이다. 입대 병사의 신장이 커짐에 따라 30년째 그대로인 K-1, K-2 소총 길이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부 병사와 간부는 “총에 사람을 맞추라는 전근대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현재 군이 쓰고 있는 소화기는 1980년대 초 키 170cm에 맞춰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가 큰 병사는 견착 시 눈이 가늠쇠에 닿을 지경이어서 머리를 당겨야 하고 키가 작은 병사는 눈과 가늠쇠가 멀어 고개를 내밀어야 해 불편하다. 무엇보다 타격의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다. 2009년 9월 1일 국방일보에는 개인의 신장 차에 맞춘 맞춤형 K-2 개머리판과 K-1 어깨받침쇠를 개발한 2008년 육군 교육사령부 전투발전제안 전투장비 부문 은상 수상작이 보도되기도 했다. 키에 따라 개머리판과 어깨받침쇠를 단계별로 제작해 탈부착이 가능한 구조다. 당시 제안에 따라 2008년 7∼9월 교육사령부가 예하 부대 장병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전진무의탁 사격측정을 실시한 결과 170cm 이상∼175cm 미만 장병의 명중률이 67%인 데 비해 185cm 이상은 40%, 165cm 이하는 34%로 낮았다. 반면 신장에 맞춘 맞춤형 개머리판과 어깨받침쇠를 장착한 총기로 사격을 한 결과 165cm 이하 장병은 40%포인트가 증가한 74%를, 185cm 이상 장병은 31%포인트가 늘어난 71%를 기록했다.○ 군 생활 자신감도 떨어뜨려 문제는 사격 부진이 군 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사고까지 유발한다는 점이다. 당시 사격측정에 참가했던 S 대위는 “군 평가의 기본인 사격 실력이 떨어지면 자신감이 동반 하락해 다른 내무 생활에도 의기소침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일부 부대에서는 사격을 못하는 병사에 대해 부대 평가를 떨어뜨렸다며 왕따를 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대구의 한 부대에서 A 일병이 자살하기도 했다. 당시 해당 부대 간부는 “사격 등 교육훈련 때 잦은 실수로 선임병에게 여러 번 혼났다”고 말했다. 불편은 남성보다 평균 키가 작은 여군도 예외가 아니다. 키가 163cm인 현역 여군 대위(32)는 “지휘관은 사격 실력이 뛰어나야 부대원들을 통솔할 수 있어 간부들도 사격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현재 일부 간부는 2008년 개발됐던 맞춤형 개머리판과 어깨받침쇠를 개인적으로 구해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6단계로 개머리판 길이 조정이 가능한 M4A1 소총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대한사격연맹 관계자는 “사격에서 키는 굉장히 민감한 요소”라며 “총신 자체를 건드리는 게 아니라 탈부착만으로 길이를 조정할 수 있다면 효율적이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표준화된 소총을 사용하는 게 어렵다는 주장을 아직 듣지 못했다”며 “일부 필요 부대에서만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울 강남의 대형 백화점에서 대낮 인질극이 벌어졌다. 40분가량 인질로 붙잡힌 임신부는 손에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행히 태아에는 이상이 없었다.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11일 오후 12시 10분경 피의자 이모 씨(35)는 강남구 삼성동 한 백화점 7층 주방용품 매장에 찾아와 임신 5개월인 김모 씨(39)를 식칼로 위협하고 머리채를 붙잡은 채 인질극을 벌였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가 김 씨와 대화를 나누던 직원의 머리채를 잡으려다 실패하자 김 씨를 잡고 위협했다”고 전했다. 이 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곧바로 붙잡혔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가 횡설수설하는 등 정신분열 증세를 보인다”며 “추가 조사를 마친 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상 감금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50년 6월 10일 정용석.’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의 한 오피스텔. 낡은 가죽 가방 안에 적힌 글귀를 말없이 바라보던 85세 정한석 씨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가방 안에는 동생 용석 씨(81)의 빛바랜 물리학 노트가 담겨 있었다. 정 씨는 “내가 선물한 가죽 가방을 들고 등교하는 동생의 뒷모습이 자랑스러웠다”며 “가방을 선물한 보름 뒤 6·25전쟁이 나 동생은 가방을 몇 번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평생 동생을 그려온 정 씨의 사연은 지난해 12월 28일 정 씨가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에 발전기금 1억 원을 기부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3남 2녀 중 장남인 정 씨는 어릴 적부터 용석 씨를 유달리 아꼈다. 집안 형편 때문에 충북 청주상고를 졸업한 후 은행에 취직했지만 동생만큼은 꼭 대학에 보내고 싶었다. 재주가 많았던 용석 씨도 청주농고를 졸업하고 1950년 5월 연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정 씨는 “동생의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아끼던 양복도 전당포에 맡겼었다”며 “설움을 풀어준 동생이 정말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뿐이었다. 전쟁 발발 후 정 씨가 피란 간 사이 서울에 남은 용석 씨는 북한에 강제 납북됐다. 휴전 이후 정부와 민간단체를 통해 동생의 소식을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정 씨는 지금도 동생을 잊지 못해 이산가족 관련 기사는 빠짐없이 스크랩하고 동생이 남긴 물건도 매일 닦아 새것처럼 보관한다. 동생이 행여나 집을 찾지 못할까 봐 성북동 집에서 50년째 살고 있다. 정 씨는 동생을 뒷바라지하지 못한 평생의 한(恨)을 다른 동생들과 자신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으로 달랬다. 동생들과 자녀들은 정 씨의 뒷바라지로 모두 국내외 명문대를 졸업했다. 정 씨는 “자린고비 소리 들어가며 한 푼 두 푼 모은 돈 1억 원을 연세대에 기부한 게 용석이를 위한 마지막 일”이라며 “비록 용석이가 돌아오지 못해도 나중에 그의 자식들이 연세대에서 아비의 흔적을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연세대 김한중 총장은 12일 오후 3시 총장실에서 정 씨에게 감사패를 증정할 예정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연세대 총동문회는 2012년 ‘자랑스러운 연세인상’ 수상자로 허동수 GS칼텍스 회장(화학공학 60학번),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사학 55학번)을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시상식은 10일 오후 6시 반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있을 ‘2012 연세동문 새해인사의 밤’ 행사에서 열린다.}

“오늘부터 기부하셔야 합니다. 제가 딱 정해드린 거예요 잉! 단 학번별로 돈 내는 기준이 다릅니다.” 지난해 12월 9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연세대 상경·경영대 동창회 모임인 ‘2011 연세 상경인의 밤’에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개그맨 최효종 씨가 장학금 기부 기준을 정해주러 나섰다. 최 씨는 “00학번대는 하루 1000원씩, 90학번대는 한 달 보너스 금액, 80학번대는 매달 골프 라운드 횟수 곱하기 100만 원, 70학번대는 본인이 생각하는 금액에서 ‘0’을 하나 더 붙이기, 60학번대는 결혼기념일 등 모든 특별한 이벤트 때마다 기부를 해야 한다”고 기준을 정했다. 아내 모르게 장학금을 기부했다가 들통이 나 난감했다는 졸업생의 고민에 최 씨는 “동일한 금액을 아내에게 현금으로 주면 된다”고 답했다. 최 씨가 동창회의 장학금 모금 캠페인 ‘블루 버터플라이’의 기부 기준을 정해준 뒤 모두 4924만 원이 모였다. 2010년 모금액은 344만 원이었다. 블루 버터플라이는 기부자 30명이 하루 1000원씩 내 장학생 1명에게 4년간 학비와 해외연수를 지원하는 캠페인이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남자만 술값 내란 법이 있나."지난해 12월 31일 경기도에서 군 생활 중인 육군 이모 대위(30)는 연말을 맞아 친구와 함께 서울 마포구 홍대 앞을 찾았다. 술집에 들어간 이 대위는 여자끼리 술을 마시고 있는 A 씨(23·여) 일행에게 "함께 술을 마시자"며 '작업'을 걸었다. 여성들의 술값도 A 씨가 냈다. 이 대위는 2차 술자리로 가는 길에 노점상에서 귀마개를 사 A 씨의 귀에 씌워주기도 했다.적극적인 이 대위와 달리 A 씨의 속내는 달랐다. 남자친구가 있는 A 씨는 지갑에 넣어둔 커플링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오전 5시까지 이어진 술자리. 이 대위는 A 씨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줄 기색을 보이지 않자 선물한 귀마개와 1차 술값이 아깝단 생각이 들어 A 씨가 자리를 비운 사이 현금 10만 원이 든 A 씨의 지갑을 훔쳐 달아났다.A 씨는 이 대위가 노점상에서 카드로 결제한 사실을 기억하고 카드 결제 기록을 받아 경찰에 신고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이 대위를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해당 헌병대에 사건을 인계할 예정이라고 5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밤새 시간과 돈을 쓰고 나서도 소득이 없으니 투자한 돈이 아깝단 생각이 들어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고 밝혔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홍익대 총동문회(회장 이영관)는 ‘2012년 자랑스러운 홍익인상’ 대상 수상자로 이두식 홍익대 회화과 교수를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 부문별 수상자로 강우현 ㈜남이섬 대표(경영), 이경순 누브티스 대표(문화예술), 이종욱 ㈜티맥스소프트 대표(기술혁신), 윤순종 홍익대 토목학과 교수(학술), 추재엽 서울 양천구청장(사회봉사), 이영복 충암고 야구부 감독(스포츠)이 뽑혔다. 시상식은 9일 오후 6시 반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 무궁화홀에서 있을 ‘홍익대 총동문회 2012 신년교례회’에서 열린다.}
옛 애인으로부터 받았던 선물은 지금까지 쓸모없거나 가슴 아프게 하는 애물단지였다. 이런 애물단지가 이웃사랑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서울 마포구 창전동 ‘재미공작소’에서 ‘옛 애인 선물바자(Give Your Old Gifts)’ 행사가 14일 개최된다. 연인에게 5년 동안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헤어지고 나니 처치 곤란함을 느낀 한 유학생의 발상으로 시작된 행사다. 주최자인 프랑스 파리7대학 유학생 오보배 씨(30·여)는 4일 “바자회에서 헤어진 연인에게 받은 선물을 단순하게 돈으로 바꾸는 일은 비인간적이다”며 “사랑과 이별로 성장통을 겪은 20, 30대가 소년소녀가장에게 주는 선물이란 의미를 행사에 담았다”고 말했다. 행사의 수익금은 전국소년소녀가장돕기시민연합에 전달될 예정이다. 접수된 물건에는 저마다 사연이 가득하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귀금속 상점 30곳 넘게 돌아다녀 고른 자수정 펜던트, 남자친구가 직접 만든 귀고리, 옛 애인이 대신 써준 리포트 등 30여 점이다. 한 여성 기증자는 “옛 연인에게 받은 선물로 기부를 하니 고마운 기억을 나누는 기분이 든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오 씨는 “2000년대 젊은이들의 연애 트렌드를 선물로 보여 주는 전시회 성격도 있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헤어진 애인에게 받은 버리기 아까운 선물 기부합시다." 사람들이 옛 애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받아 판매해 수익금 전액으로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이색 행사가 14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 '재미공작소'에서 열린다. '옛 애인 선물바자(Give Your Old Gifts)' 행사는 5년간 사귄 옛 애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한 유학생의 참신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프랑스 파리 7대학에 유학 중인 오보배 씨(30·여)는 "단순히 바자회를 열고 헤어진 연인에게 받은 선물을 돈으로 바꾸는 일은 비인간적이다"며 "사랑과 이별로 성장통을 겪으며 성장한 20, 30대가 소년소녀가장을 주는 선물이란 의미를 행사에 담았다"고 말했다. 수익금은 전국소년소녀가장돕기 시민연합에 전달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접수한 품목은 기념일에 선물 받은 목걸이, 옛 애인이 내려받은 미국드라마가 담긴 외장하드, 애인이 대신 써줬던 리포트 등 30여 점이다. 한 기증자는 "기부를 하니 고마운 기억을 나누는 기분이 든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오 씨는 "2000년 대 젊은이들의 연애 트렌드를 그들이 주고받은 선물로 보여주는 전시회 성격도 있다"고 말했다. 기부물품에 대한 우편접수는 오는 7일까지 마포구 창전동 재미공작소에서 받는다. 문의는 070-7517-6961.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 우수상 임홍경 경위“고생하는 우리 경찰을 격려하는 큰 상을 마련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3일 ‘영예로운 제복상’ 우수상을 수상한 경북 영주경찰서 강력1팀장 임홍경 경위(49)는 “개인적으로 영광이지만 함께 고생하는 경찰들에게 미안하다”며 수상 소감을 겸손히 밝혔다. 그는 동료들에게 ‘목숨을 아끼지 않는 정통 수사반장’으로 통한다. 임 경위는 지난해 8월 영주시 부석면에서 폭우로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을 맨몸으로 구조했다. 당시 현장에는 피서객 10여 명이 있었지만 계곡 물살이 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순찰 중 우연히 발견한 그는 “주변에서 미쳤느냐며 말렸는데 물놀이용 튜브에 의지해 버티는 여학생을 본 순간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며 “물 속에 들어가니 시커먼 물이 휘감아 겁이 났지만 꼭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에 물러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여학생과 함께 20m 가까이 휩쓸려 내려가는 순간에도 물 밖으로 여학생을 먼저 올려 보냈다. 그는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감싸고 있느라 물 밖에 나오니 돌덩이에 부딪쳐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다”며 “나중에 병원에 가보니 요추까지 부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2004년에는 영주시에서 열린 농민대회 집회 때 흥분한 시위대에 감금돼 구타당하던 전경 3명을 구하다가 시위대가 던진 보도블록에 얼굴을 맞아 뇌진탕으로 6개월간 고생하기도 했다. 그는 범인 잡는 실력도 뛰어나 2010년 6월 3인조 강도살인범을 검거하는 등 최근 3년간 모두 339명을 검거했다. 그는 “24년 형사 생활 동안 온몸에 흉터가 가득하다”며 제가 헌신하는 만큼 국민의 치안이 확보된다는 믿음으로 “앞으로도 살신성인의 자세로 일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우수상 최승복 경사“큰 격려를 받았으니 잿더미 속에 묻힌 진실을 찾는 데 혼신을 바치겠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화재감식 전문수사관 최승복 경사(45)는 13년간 서울지역 화재·폭발 사건 등 1000여 건을 담당한 ‘화재감식의 달인’이다. 그는 사회의 이목이 집중됐던 국보 1호 숭례문 방화사건, 용산 화재참사, 정남규 연쇄방화 살인사건 등을 해결하며 방화치사범 15명, 연쇄방화범 17명 등을 검거했다. 최 경사는 2008년 2월 숭례문 화재 당시 살을 에는 추위에도 18일간 망루에 올라 화재감식을 진행해 발화 부위를 밝혀내고 방화에 사용된 물병 잔존물, 시너 성분, 일회용 라이터 등 결정적인 현장 증거물을 확보했다. 2009년 1월 용산 ‘남일당’ 화재사건 때는 화재원인을 둘러싸고 공방이 벌어지자 과학적인 재연실험을 통해 농성자의 화염병으로 불이 난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최 경사는 화마 속에 숨겨진 억울한 죽음도 밝혀냈다. 단순 화재변사 사건으로 묻힐 뻔한 2010년 강원도 캄보디아 결혼 이주 여성 화재 사망 사건도 그의 노력 덕에 보험금을 노린 남편의 범행으로 밝혀졌다. 그는 “범인이 범죄 현장에 불을 지르면 범죄 증거를 찾기 쉽지 않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더 크다”고 말했다. 최 경사는 화재감식을 연구하며 화재공학 석사학위까지 취득했고 주요 사건을 해결한 뒤 쓴 17편의 논문을 학술등재지에 발표했다. 2002년에는 경찰청 제1호 사단법인 ‘한국화재조사학회’를 창설하고 2008년에는 주도적으로 서울청 ‘화재감식전문과정’을 만들어 화재감식 전문요원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우수상 박성용 경사“높은 파도에도 아랑곳없이 바다 곳곳을 누비며 해상 경계활동에 나서고 있는 1만여 해경에게 보내주시는 국민의 따뜻한 성원이라고 생각합니다.” 2009년부터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경비함인 1509함에서 고속단정(경비함에 탑재된 고무보트)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박성용 경사(41)는 ‘불법조업 중국어선 잡는 도사’로 통한다. 그는 2010년부터 2년간 서해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침범해 불법조업에 나선 중국어선을 48척이나 나포했다. 2006년에는 두 차례나 해양경찰청장상(중국어선 나포 유공)을 받은 그는 불법조업 중국어선 단속에 투입되는 특공대원들이 타는 고속단정을 직접 운전한다. 현장에 도착하면 흉기를 휘두르며 저항하는 선원들을 나포하는 작전에도 몸을 던지고 있다. 어선만 단속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2월에는 전남 신안 가거도 남쪽 해상에서 불법으로 폐유를 유출하며 항해한 중국 유조선을 적발했다. 같은 해 9월에는 가거도 주변에서 한국어선을 충돌한 뒤 도주하는 중국 상선을 검거하는 등 해상에서의 모든 불법행위를 단속하고 있다. 해양사고에 따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도 그의 임무다. 지난해 5월 가거도 남쪽 해상에서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던 유자망 어선을 예인해 선원들을 모두 구조했다. 지난달 중국어선 나포작전 도중 순직한 이청호 경사의 유가족과 불우이웃을 위해 상금을 전액 기부하기로 한 그는 “중국어선의 폭력적 저항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점을 고려해 정부가 단속 장비뿐만 아니라 인력도 크게 늘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남 완도가 고향인 그는 완도수산고를 졸업한 뒤 6년간 원양어선을 타며 해양경찰관이 되는 꿈을 키우다가 1996년 해경에 입문했다.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 우수상 김영관 소방장“저는 봉사하면서 월급도 받잖아요. 그러니 이 직업이 제게는 큰 복이죠. 하하하.” 3일 ‘영예로운 제복상’ 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영관 소방장(50·서울 도봉소방서 미아119안전센터)은 3일 ‘왜 소방관이 됐냐’는 질문에 이같이 대답했다. 1988년 2월 소방관이 돼 그동안 화재현장에 출동한 횟수만도 5600여 건에 이른다. 응급구조사 자격증도 딴 그는 심장이 멈춘 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해 다시 살려낸 ‘하트세이버’ 기록만 14차례 갖고 있다. 그와 2인1조로 근무하는 정연욱 소방교(31)는 “김 소방장은 경험이 적은 제가 긴장할까 봐 항상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응급상황이 닥치면 무섭게 돌변해 CPR를 시행한다”고 말했다. 주간 근무 때는 9시간, 야간 근무 때는 15시간을 근무하기 때문에 비번 때는 쉬기 바쁜 구급대원의 운명 역시 김 소방장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다. 그는 강북장애인 복지관을 찾아가 응급구조사 실력을 발휘해 혈압을 재고 혈당을 체크하는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장애인 가정을 찾아가 목욕시켜 주는 일도 벌써 100여 회가 넘었고 장애인 가정 도시락 배달도 빼놓지 않고 있다. 그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는 “취했거나 단순 부상일 때 구조대를 호출하거나 이유 없이 폭언을 퍼붓는 시민이 아직도 있다”며 “생명을 구하기 위해 1초가 급한 분들을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격무에 지치기도 하지만 가족의 격려는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된다. 김 소방장은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한 두 딸이 수상 소식을 듣고는 ‘대단한 우리 아빠 축하하고 사랑해요’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줘 눈물이 났다”며 감격해했다.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 특별상 김정진 중사특별상을 받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1방공여단 정비담당 김정진 중사(33)는 ‘국방 발명의 달인’으로 불린다. 김 중사는 스마트폰용 군사작전 애플리케이션, 방독면 정화통 교환 알림장치, 무선 크레모어 등 군 관련 발명품 8건을 개발해 모두 특허등록을 했다. 이 중 통합정비관리시스템은 김 중사 개인이 아닌 국방부 명의 특허 1호로 등록돼 군의 지식자산이 됐다. 그의 관심은 발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군뿐만 아니라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서울시 등에 120여 건의 각종 정책 제안도 내놓았고 이 중 25건이 받아들여졌다. 그는 미아방지시스템 제안으로 2008년 행안부 장관상, 소년소녀가장 지킴이 사업 제안으로 2009년 복지부 장관상, 출산용품 기부·대여센터 구축 제안으로 지난해 서울시 창의상을 받았다. 한국신지식인협회는 지난해 김 중사를 ‘신지식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김 중사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 매일 신문을 정독한다. 문제점을 발견하면 개선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고 내가 제안한 것이 개선되면 미묘한 희열도 느낀다”고 말했다. 내년에 상사 진급을 앞둔 김 중사는 군번이 2개다. 임관 4년 만인 2001년 장기복무 부사관 인원이 줄어들면서 부득이 전역해야 했다. 이후 민간기업에 다니다 군 당국에 “재입대 제도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고, 재입대 제도가 새로 생기자 2002년 하사로 재임관했다. 대구공고 출신인 김 중사는 자동차정비사 등 자격증 10개를 갖고 있다. 한국방송통신대에서 행정학 학사, 숭실대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각각 받았고, 아주대 교육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는 “전역하면 부사관학과 교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 노블레스상노블레스상 수상자인 경북소방본부 119종합상황실 김응군 소방교(37)는 2003년 7월 화재 진압 도중 건물 더미에 깔리면서 하반신 마비라는 중증 장애를 얻었다. 전처럼 화재 현장으로 달려갈 수는 없었지만 그는 2004년 3월 다시 소방서로 복귀해 동료를 지원하는 행정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병원 치료 과정에서 겪은 공상(公傷) 소방관의 어려운 처지를 각종 토론회와 외부 기고를 통해 알리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2005년 8월에는 소방장비개발대회에서 ‘발광형 안전표시등’을 출품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지난해 3월에는 국회에서 열린 ‘소방관 처우 및 노후장비 개선을 위한 대토론회’에 대표 소방관으로 참석해 소방관의 열악한 현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 소방교는 “뜻깊은 상을 받게 돼 영광스럽다”며 “부상을 당해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소방 현실을 개선해 나가는 데 이 상이 큰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함께 노블레스상을 받게 된 대전남부소방서 현장지휘대 김형수 소방위(47)는 구조대 레펠 훈련 중 추락해 11차례 수술 끝에 지체장애 5급 판정을 받고도 다시 현장으로 복귀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뼛속까지 소방관’ ‘불사조’다. 2000년 11월 사고를 당했지만 화재조사관 자격증을 따 전문화재조사요원으로 활동 중이다. 1999년 동아마라톤대회 풀코스 완주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8차례 완주 기록도 갖고 있다. 꾸준한 재활치료 덕분에 가능한 일이지만 손목과 안면의 심각한 부상 탓에 다시 소방호스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제빵기능사 과정을 수료한 그는 매주 한 번씩 장애인이나 노인, 결식아동 등을 위해 빵을 만들어 나눠주는 봉사도 하고 있다. 헌혈 횟수는 60회에 이른다. 김 소방위는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혀 장기적으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충실히 보호할 수 있는 일이라 보람을 느낀다”며 “아직 몸이 불편하지만 계속 노력해 더 많은 일을 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 이렇게 심사했습니다동아일보사와 채널A가 제정한 ‘영예로운 제복상’은 국가의 안전과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제복 공무원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상이다. 군인 경찰 소방공무원 등 제복 공무원들은 열악한 근무여건에서도 나라를 위해 봉사해 왔지만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와 평가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뼈저린 반성에서 이 상의 정신은 출발했다. 제1회 ‘영예로운 제복상’ 수상자들은 국민적 관심과 언론의 조명을 받지는 못했더라도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혼신을 바쳐온 공무원이다. 수상자는 최근 1, 2년의 일회성 실적이 아닌 10년 이상 근무하는 동안의 공적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정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정상명 전 검찰총장은 “대상을 받은 해군 김성호 소령은 아덴 만 여명 작전이라는 유명한 군사작전을 성공시킨 공적뿐 아니라 지난 한 해 동안 270일 가까이 배에 머물며 동료 군인들에게 ‘살신성인’의 귀감이 됐다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지난해 12월 29일 이 같은 기준을 토대로 국방부 경찰청 해양경찰청 소방방재청에서 추천한 15명의 후보 가운데 대상 1명, 우수상 4명, 특별상 1명, 노블레스상 2명 등 모두 8명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명품을 소개하는 잡지 노블레스가 후원한 노블레스상은 화재 진압이나 인명 구조 중에 부상해 장애가 생긴 소방관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대상과 우수상 수상자 중 경찰과 소방공무원은 1계급 특진되고 군인은 이에 준하는 인사 혜택을 받는다. 지난해 말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을 단속하다 순직한 이청호 경사 등 순직 공무원들은 훈장과 보상금 중복 수여 등의 문제를 고려해 추천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심사에는 군과 경찰 소방기관 등 해당 부서의 내·외부 인사가 1명씩 참여했고 동아일보와 채널A에서도 부국장급 인사가 심사위원에 1명씩 포함됐다. 심사위원들은 “제복 공무원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게 선진국”이라며 “나눠주기식 시상이 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엄정하게 심사하겠다”고 다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암기력만 있으면 한 달 반 만에 점집 창업이 가능합니다."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의 A역술학원 조모 원장은 "100만 원을 내고 32번 만 수업을 받으면 고수익 평생직업인 역술인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A학원은 점집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사주 궁합 작명 명리학 성명학 등을 교육한다. 학원의 기본 과정은 3개월이지만 주말까지 수업을 들으면 한 달 반 만에 역술인이 될 수 있다. 3회 차 수업이 진행 중인 교실에는 개량 한복을 입은 강사가 칠판에 십이지간(十二支干)을 한자로 쓴 뒤 외울 내용을 설명했다. 수업은 대부분 단순암기식으로 이뤄졌다. 임진년(壬辰年) 새해를 맞아 점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면서 점집 창업을 문의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경기가 불황이면 점집 문턱이 닳는다'는 속설처럼 취업난 속에 역술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역술학원으로 몰리는 것이다. 학원들도 '100% 창업' 내걸고 자체 자격증을 발급하며 수강생을 모으고 있다. 경기 의정부시 B역술학원은 4개월 창업 속성반과 2개월 상담 실전반을 운영 중이다. B역술학원 관계자는 "1, 2월에 점집 창업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시기다"며 "20~30대 젊은 여성들의 사주카페 창업 문의가 가장 많고 은퇴를 앞둔 40~50대 직장인과 부업으로 삼으려는 주부의 문의도 많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기자가 창업 희망자를 가장해 학원을 방문해보니 대부분 학원들은 "창업이 손쉽다"고 강조했다. A학원은 "삼재(三災) 등 몇 가지 용어만 외우고 사람의 표정을 살피며 눈치껏 섞어서 말하면 된다"며 "어려운 한자가 적힌 사주 책만 펴놓고 설명하면 다들 쉽게 믿는다"고 기자를 안심시켰다. 다른 학원은 문의하러온 사람들의 사주를 직접 봐주며 '신기(神氣)'와 '예지력'이 있다며 강하게 권하기도 했다. 일부 학원은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끄는 서양의 타로 점 강의도 제공한다. 학원 측의 설명과 달리 실제 현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1년 전 사주카페를 연 한 20대 여성은 "1년간 학원에 다녔지만 창업 후에도 6개월 이상 개인 교습을 받아야 했다"며 "점집은 주변 입소문이 중요한데 한 번 '별로'라고 소문나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토로했다. 단기 속성학원에서 배우고 가게를 열었다가 실패해 다른 학원에서 추가로 강의를 듣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점술 및 유사서비스업종에 해당되는 업체는 1만4000여 개로 종사자는 1만5000여 명 이상이다. 한국역술인협회는 전국의 역술가나 무속인이 최소 50만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역술인협회 관계자는 "역술인은 미래에 대한 조언보다 카운슬링의 역할도 중요한데 돈벌이에 눈 먼 사람들이 이런 역할을 하기 어렵다"며 "협회 차원에서 엉터리 학원들을 단속하고 싶어도 '떳다방' 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자체 단속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아들 입으라고 ‘노스페이스’ 점퍼 사놓았는데 결국 입어 보지도 못하고….”28일 스스로 목을 매 숨진 광주 J중 2학년 A 군(14)의 아버지(45)는 울분에 겨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목 놓아 운 탓에 목은 잠겨 있었다.A 군 아버지는 29일 영안실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나는 전혀 몰랐다. (아들이 학교에서) 괴롭힘 당한 줄은…”이라고 말했다. 그는 “같은 반 친구들이 30명 가까이 진실을 밝혀 주러 영안실을 찾아왔다. 아이들은 다른 반 B 군이 우리 애를 괴롭혔다고 했다. 샌드백처럼 때리고, 담배 구해 오라고 시키고, 가방 내던지고…”라고 아들이 당한 ‘학교 폭력’을 생생하게 전했다. 그는 “B 군이 아들에게 돈을 모아 놓으라고 강요하고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때도 자신이 일을 마칠 때 옆에 서 있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말했다고 하더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아들이 성적 때문에 죽은 게 아니다. 억울하다. 동글동글 귀여운 아이 얼굴을 보라. 오늘 축 늘어진 모습을 보고서 기절하고 말았다”고 애끓는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A 군의 성격에 대해 “호탕하고 쿨하다”고 전했다. 그는 “학교에서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덮으려고 한다”며 “성적 비관이라는데 말이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그는 “며칠 전 ‘기말고사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아들이 먼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또 ‘다음에 잘 보겠다’고도 했다. 그래서 나도 ‘힘내라’고 하고 그제는 삼겹살 사줬다. 그렇게 밝은 애가 왜 죽나”라고 반문했다.얼마 전에는 아들이 교복 바지가 찢어지고 무릎에 피가 난 채 귀가해 약을 발라준 적도 있었다. 그는 “왜 그랬냐고 아들에게 물었더니 집 근처 공사장 벽돌에 부딪쳐서 찢어졌다고 말했는데 이것도 학교 폭력에 당한 게 아닌가 모르겠다”고 말했다.그는 “그날 담임교사한테 담배를 갖고 있다가 들켜 50분가량 꾸지람 들었단 이야기를 들었다”며 “친구들이 증언해주려고 (장례식장에) 왔는데 교사들이 말 못하게 눈치를 줬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내가 김모 교장에게 ‘돌아가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더니 교장이 교사들에게 ‘일어나지 말라’고 막기도 했다”고 전했다. A 군 아버지와 같이 학생들도 “학교와 선생님들이 이 문제를 덮으려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교사들이 장례식장에 와서도 자신들에게 눈치를 주었다는 것. 결국 A 군 아버지가 “아이들이 교사가 있어서 말을 못한다”고 교사들에게 식장 밖으로 나가도록 요청해 교사들은 이날 오후 9시경 모두 돌아갔다. 일부 학생들은 “교사들이 각 학생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애들을 장례식장에 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말하는 등 학교 측의 ‘사건 축소 움직임’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학교가 예정인 30일보다 하루 빨리 방학을 시작한 데도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학교 측에서 자살 사건을 축소하려고 방학까지 앞당겼다”며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 A 군의 피해 사실을 증언하지 못하도록 손을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 측에도 섭섭함을 드러냈다. 그는 “아내가 오전에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단순한 성적 비관으로만 볼 뿐 적극적인 진실 규명 노력이 없었다”며 “죽은 지 하루가 지나서야 영안실에 찾아와 조사를 다시 하겠다고 하니 억장이 무너진다”고 분통을 터뜨렸다.그는 “대구 사건이 일어났을 때 뉴스를 보고 알았지만 남의 일인 줄 알았다”며 “애가 얼마나 힘들고 억울했으면 죽을 때도 주먹을 꽉 쥐고 죽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아들의 상처를 몰라주어 너무 미안하다”며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해당 학교 측은 “학교 폭력이 자살 원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고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며 “부모께서 가해 학생을 지목했으나 아직 단정할 수 없으며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 은폐하려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광주=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

서강대 초대총장인 존 데일리 신부(사진)가 28일(현지 시간) 선종했다. 향년 88세. 서강대는 데일리 신부가 28일 오후 1시 40분 미국 위스콘신 주 밀워키 시 소재 세인트카밀러스 예수회 사제관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고 29일 밝혔다. 데일리 신부는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 태어나 1961년 노스캐롤라이나대(UNC)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해 가톨릭교 예수회가 세운 서강대에 영문과 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3년 서강대 2대 학장에 뽑혀 1970년 종합대로 승격시켰고 이후 6년간 서강대 1 2대 총장을 맡아 학교의 기틀을 잡았다. 1981년 도서관장을 끝으로 은퇴한 뒤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서강대 명예교수직은 유지해 왔다. 지난해에는 서강대 개교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서강대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서강희년(禧年)상’을 받았다. 한국에 대한 애정도 남달라 서강대에 재직하던 1963∼1975년 당시 학교 풍경을 담은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장례미사는 세인트카밀러스 예수회 사제관에서 내년 1월 3일 오후 6시와 4일 오전 9시에 열린다. 국내에서는 1월 3일 오전 10시 서강대 성 이냐시오관에서 추모미사가 열릴 예정이다.}
불우이웃을 돕는 구세군 자선냄비가 올해 84년 역사상 최대 금액을 모았다. 26일 한국 구세군에 따르면 1일부터 24일까지 거리모금과 기업후원금을 포함한 자선냄비 모금액(현금 기준)이 올해 목표치인 45억 원을 넘어섰다. 잠정 집계 결과 이전 최대 기록인 2009년 37억1000만 원보다 8억 원 이상 많을 것으로 예측됐다. 물품까지 포함한 최대 기록인 지난해 42억1000만 원보다도 많을 것으로 전망됐다. 구세군 홍봉식 사관은 “23, 24일 거리모금액까지 더하면 46억 원도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며 “시민 사이에서 어려울수록 돕자는 나눔의 공감대가 확산되고 기업의 기부도 크게 늘어 모금액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4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는 봉투 안에 1억1000만 원짜리 수표가 담겨 있었고 20일에는 90세 노부부가 서울 구세군 회관을 찾아와 2억 원의 후원금을 익명으로 기부했다. 경기 안양역 앞 자선냄비에는 매년 1000만 원씩 내는 50대 중반 기부자의 나눔이 8년째 이어졌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이 23일 오후 경기 양주시 명보육원을 찾아 산타복을 입고 원생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행정안전부 제공}

국제 구호활동가 한비야 씨(53·여·사진)가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다. 이화여대는 한 씨가 2012학년도 1학기 학부대상 ‘국제개발협력’ 강의를 맡았다고 22일 밝혔다. 초청특강 형식의 강의를 꾸준히 해온 한 씨는 처음으로 정규강좌 강의를 맡게 됐다. 한 씨는 2001년부터 9년간 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으로 일했고 9월 유엔 중앙긴급대응기금(CERF) 자문위원으로 위촉됐으며 12월부터 월드비전 초대 세계시민학교장도 맡고 있다.}

“나처럼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도 학교 공부만으로 영어 달인으로 만드는 유능한 교사가 될래요.” 올해 ‘이화 미래인재전형’으로 이화여대 영어교육과에 합격한 광주 동아여고 조은비 양(18·사진)은 1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포부부터 당차게 밝혔다. 2012학년도에 신설된 이화 미래인재전형은 저소득층 가정 학생 중 미래에 대한 목표가 뚜렷하고 실력을 갖춘 학생을 선발해 등록금 전액과 생활비, 기숙사까지 제공하는 제도. 다단계 서류평가와 3단계 면접평가를 통해 올해 30명이 선발됐다. 조 양은 2세 때 부모님이 이혼한 뒤 작은 가게를 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며 교사의 꿈을 키워왔다. 조 양은“수업 시간에도 선생님의 교수 방법에 의문이 생기면 손을 들고 다른 방법을 건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 양은 “나중에 교사가 된다면 아이들이 즐겨 보는 최신 드라마나 영화 대화 속의 숙어나 단어를 따와 재밌고 친근하게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조 양은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며 배운다는 생각으로 영어 일기 동아리를 만들고 친구들의 글을 직접 첨삭해 주기도 했다. 조 양은 교사가 되기 위해 성격까지 바꿨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다 보니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며 “교사가 되려면 여러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생각에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말도 걸면서 성격을 바꿔 나갔다”고 털어놓았다. 조 양은 대학 생활이 시작되면 교육 봉사부터 열심히 할 생각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 공부방에 다니며 대학생 언니 오빠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정작 중고교 때 공부하기 바빠서 봉사활동도 제대로 못했다”며 “이제는 가정 형편이 어렵고 외로운 아이들이 영어라는 소통의 창을 닫아버리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가르쳐 주고 싶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이화여대에서 수류탄 터졌어야 했는데….’7월 29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 인근에서 6·25전쟁 때 사용됐던 수류탄이 발견됐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이화여대 수류탄 발견’ 기사가 뜨자 학생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선플’과 함께 학교와 학생을 싸잡아 비방하는 ‘악플’도 줄을 이었다.일부 누리꾼은 ‘폭발물 처리반이 처리해야 할 폭탄이 수류탄만이 아니다’ ‘군가산점을 폐지시킨 원흉’ 등 허위사실을 댓글로 올렸다. 욕설과 성적인 비속어 등 악성 댓글도 적지 않았다.같은 달 25일에는 이화여대가 여성 학군단(ROTC) 설치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가자 또다시 ‘이화여대가 군대를 부정한다’는 내용과 함께 욕설 섞인 댓글이 쏟아졌다. 참다못한 이화여대는 “도를 넘는 비방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10월 학교 관련 기사에 악성 댓글을 단 18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고소했다.경찰은 고소장을 접수하고 수사를 벌인 끝에 13명의 신원을 확인하고 해외 체류 중인 2명을 제외한 11명을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11명 모두가 남성이었다”며 “직업이 없거나 회사원, 대학생인 이들은 이화여대가 페미니스트(여권 신장과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 집단이라고 생각해 댓글을 달았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우리 집 장맛은 며느리도 몰라.’서울 중구 신당동 떡볶이의 ‘진짜 원조’ 마복림 할머니가 12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고인은 1996년 TV 광고에서 “우리 떡볶이 고추장 맛의 비결은 며느리도 모른다”는 대사로 유명해졌다. 수년 전부터 노환으로 가게에 나오지 못하던 고인은 3년 전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15일 국립중앙의료원을 출발한 운구차는 고인의 일생이 담긴 신당동 떡볶이 골목을 한 바퀴 돌고 장지인 강원 춘천시 경춘공원으로 향했다.광주의 한 중농 집안에서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난 고인은 19세 때 전남 목포로 시집간 뒤 광복 이후 서울로 올라와 남편과 함께 신당동에서 미군물품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다. 1953년 한 중국집에서 자장면 그릇에 가래떡을 빠뜨렸다가 자장소스 묻은 떡을 맛보고는 곧바로 ‘마복림식 떡볶이’ 가게를 냈다. 당시 연탄불 위에 양철냄비를 올리고 고추장과 춘장(자장의 원재료)을 풀어 떡을 넣어 판 것이 오늘날 신당동 떡볶이의 진짜 원조다.1970년대 중반 신당동 고인의 집 앞 개천이 복개공사로 큰길이 되면서 유동인구가 늘어 장사도 번창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 가스가 보급되면서 오늘날 신당동 떡볶이의 모습을 갖췄다. 1980년대 초부터 떡볶이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지금의 떡볶이 골목이 형성된 것이다.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떡볶이를 팔아 온 고인과 가족은 나눔에도 힘썼다. 신당동 떡볶이 상인회 박두규 회장(48)은 “고인이 늘 넉넉한 인심을 주변에 베풀다 보니 상인회 전체가 소외된 이웃돕기에 힘쓰게 됐다”며 “고인의 아들과 며느리가 봉사활동에 제일 열심이다”고 전했다. 상인회는 한 달에 한 번 떡볶이를 만들어 지역아동센터와 복지관 등에 간식으로 지원하고 홀몸노인과 소년소녀가장 가정에도 찾아가 쌀과 선물을 제공하고 있다.고인은 생전에 오전 2시면 가게로 출근해 떡볶이 장을 만들고 육수인 연한 멸치국물도 직접 만들었다. 수십 년간 떡볶이를 향한 고인의 노력은 오늘날 커다란 냄비에 어묵과 떡, 라면과 쫄면 사리, 튀김 만두, 달걀 등을 넣고 육수를 부어 고추장과 춘장을 섞은 양념을 푼 떡볶이를 만들어 냈다. 2명 기준으로 7000원 안팎이면 푸짐한 신당동 떡볶이를 즐길 수 있다.고인이 경영 2선으로 물러난 뒤에는 고인의 아들과 며느리들이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 신당동 떡볶이 건물 입구에서 건물 2채를 쓰는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집’은 첫째 둘째 셋째 아들과 며느리가, 10m가량 떨어진 곳에 20여 년 전 문을 연 ‘마복림할머니 막내아들네’는 막내인 다섯째 아들 부부가 하고 있다.고인이 세상을 떠난 12일부터 이 가게들도 문을 닫았다. 가게를 찾았던 박병희 씨(42)는 “살갑진 않아도 떡과 사리를 푸짐하게 담아주는 할머니 손길에 자주 찾았는데 돌아가셨다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할머니 가게 옆에서 30년간 떡볶이를 팔아온 박선규 씨(77)는 “고인은 맛에 대한 고집이 남달랐다”며 “다른 가게가 음악 DJ를 데려와 손님을 모을 때도 한결같이 맛을 지키는 데만 열중했다”고 추억했다.떡볶이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고인이 살았던 낡은 기와집이 있다. 고인이 생전 “집안을 일으킨 발판이 된 옛 가옥을 허물지 말라”고 당부해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다른 사람이 세 들어 살고 있지만 문 앞에는 ‘마복림’이라고 쓰인 나무 명패가 걸려 있고 집안에는 할머니가 쓰던 가구와 가족사진이 남아 있다. 넷째 아들 박동섭 씨는 “옛 맛을 지키려 했던 어머니의 뜻이 담긴 집”이라고 설명했다.고인의 고추장 맛의 비결은 며느리들이 이어 나간다. 마 할머니 떡볶이집 간판에는 ‘며느리도 몰라’ 문구 옆에 ‘이제 며느리도 알아요’라고 적혀 있다. 삼우제가 끝난 다음 날인 18일 가게는 다시 문을 연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