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납북된 동생, 살아있는지…” 60여년 눈물 85세 형, 동생 모교에 1억을 내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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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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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석 씨, 연대에 발전기금

연세대에 1억 원을 기부한 정한석 씨가 1950년 동생이 연세대에 입학지원서를 제출할 때 썼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연세대에 1억 원을 기부한 정한석 씨가 1950년 동생이 연세대에 입학지원서를 제출할 때 썼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950년 6월 10일 정용석.’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의 한 오피스텔. 낡은 가죽 가방 안에 적힌 글귀를 말없이 바라보던 85세 정한석 씨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가방 안에는 동생 용석 씨(81)의 빛바랜 물리학 노트가 담겨 있었다. 정 씨는 “내가 선물한 가죽 가방을 들고 등교하는 동생의 뒷모습이 자랑스러웠다”며 “가방을 선물한 보름 뒤 6·25전쟁이 나 동생은 가방을 몇 번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평생 동생을 그려온 정 씨의 사연은 지난해 12월 28일 정 씨가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에 발전기금 1억 원을 기부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3남 2녀 중 장남인 정 씨는 어릴 적부터 용석 씨를 유달리 아꼈다. 집안 형편 때문에 충북 청주상고를 졸업한 후 은행에 취직했지만 동생만큼은 꼭 대학에 보내고 싶었다. 재주가 많았던 용석 씨도 청주농고를 졸업하고 1950년 5월 연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정 씨는 “동생의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아끼던 양복도 전당포에 맡겼었다”며 “설움을 풀어준 동생이 정말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뿐이었다. 전쟁 발발 후 정 씨가 피란 간 사이 서울에 남은 용석 씨는 북한에 강제 납북됐다. 휴전 이후 정부와 민간단체를 통해 동생의 소식을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정 씨는 지금도 동생을 잊지 못해 이산가족 관련 기사는 빠짐없이 스크랩하고 동생이 남긴 물건도 매일 닦아 새것처럼 보관한다. 동생이 행여나 집을 찾지 못할까 봐 성북동 집에서 50년째 살고 있다.

정 씨는 동생을 뒷바라지하지 못한 평생의 한(恨)을 다른 동생들과 자신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으로 달랬다. 동생들과 자녀들은 정 씨의 뒷바라지로 모두 국내외 명문대를 졸업했다. 정 씨는 “자린고비 소리 들어가며 한 푼 두 푼 모은 돈 1억 원을 연세대에 기부한 게 용석이를 위한 마지막 일”이라며 “비록 용석이가 돌아오지 못해도 나중에 그의 자식들이 연세대에서 아비의 흔적을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연세대 김한중 총장은 12일 오후 3시 총장실에서 정 씨에게 감사패를 증정할 예정이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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