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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LIG손해보험은 올 시즌 우승후보 0순위로 꼽혔다. 그러나 개막 후 2연패하며 흔들렸다. 까메호-김요한-이경수로 구성된 삼각편대는 막강했지만 세터 이효동과의 호흡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경기를 치를수록 팀 전력은 정상궤도에 올랐다. 러시앤캐시와 대한항공을 각각 3-0으로 연파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그런 LIG손해보험이 20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방문경기에서 KEPCO를 3-0(25-13, 26-24, 25-18)으로 완파하고 기분 좋은 3연승을 달렸다. 까메호가 양 팀 최다인 24점(성공률 62.1%)을 퍼부었고 이경수 김요한(각 9득점)이 힘을 보탰다. 이효동은 안정적인 토스로 공격을 도왔다. 수비에서도 KEPCO를 압도했다. 이효동과 까메호는 블로킹으로만 각각 6점과 4점을 내며 상대 공격을 원천봉쇄했다. 반면 KEPCO는 팀 전체 블로킹 득점(5점)이 상대팀 이효동 한 명에도 못 미쳤다. 양준식과 이동엽을 세터로 번갈아 투입했지만 주포 안젤코와의 호흡이 맞지 않았다. 안젤코는 불안한 토스 때문에 10득점(성공률 24.5%)에 그쳤다. 여자부 현대건설은 GS칼텍스를 3-1(25-18, 25-21, 21-25, 25-16)로 꺾고 3연패에서 탈출했다. 현대건설의 새 외국인 선수 야나는 국내 데뷔 후 최다인 31점(성공률 63.6%)을 올렸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포수로 역대 최다 홈런(313개), 최초 20홈런-20도루(2001년), 자타공인 최고의 투수 리드….’ SK 박경완(40)은 화려한 기록을 보유한 ‘국가대표 포수’다. 그러나 최근 2년간은 단 18경기 출전에 그쳤다. 표면상의 이유는 ‘부상’ 때문이었다. 그러나 19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만난 그는 “언제든 경기에 출전할 준비가 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솔직한 심경을 들었다.○ “감독이 안 쓰겠다면 떠나는 게 맞다” 박경완은 16일 선수 생활을 1년 연장하기로 SK와 합의했다. 내달 구단과 연봉 협상을 할 예정이다. SK는 그에게 코치직과 해외연수를 제안했다. 박경완은 정중히 거절했다. 그는 “이렇게 잊혀지듯 선수생활을 접고 싶지 않다”며 현역 연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내년 시즌에도 그가 1군에 살아남을지는 불투명하다. 올 시즌 주전포수로 뛴 조인성 정상호가 건재한 데다 이재원까지 복귀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달 2일 SK 이만수 감독이 미국 플로리다 마무리훈련에서 돌아오면 ‘담판’을 짓겠다고 했다. 만약 내년에도 올해처럼 2군에 주로 머문다면 10년 동안 뛰었던 SK를 떠난다는 각오다. 그는 “만약 감독이 나를 안 쓰겠다면 내가 떠나는 게 맞다. 이렇게 2군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내 몸은 경기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 SK는 올 시즌 박경완이 부상 때문에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경완의 말은 달랐다. “몸 상태는 90%까지 올라왔다. 내가 ‘부상 때문에 복귀하지 못한다’는 보도를 볼 때마다 너무 답답했다. 난 충분히 뛸 수 있었지만 공정한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그는 올해 초 스프링캠프 때부터 자신이 점점 소외되고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올 시즌 1군 출전 경기는 8차례. 1991년 데뷔 이래 가장 적은 출전 경기 수다. 그는 “만약 내가 다른 포수에 비해 기량이 떨어져서 밀려난 거라면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말도 없이 2군에 머물고만 있어 답답했다”고 털어놓았다. 박경완은 2군에서조차 설 자리가 별로 없었다. 2군 경기 출전도 36차례에 불과했다. SK 김용희 2군 감독의 입장에서는 신인 선수에게도 출전 기회를 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2군의 현실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3, 4일에 한 번밖에 경기에 나서지 못해 타격감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고 했다.○ “포수로선 누구보다 자신 있다” “오늘이 내 야구 인생에서 마지막 경기가 될 듯해. 그래도 최선을 다할 거니까 좋은 결과가 있겠지. 열심히 할게.” 박경완은 올 시즌 첫 1군 경기였던 6월 16일 문학 한화전을 앞두고 아내에게 이런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야구를 하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담겨 있었다. 이날 박경완은 외국인투수 부시와 호흡을 맞췄다. 부시는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3-1 승리를 이끌었다. 박경완의 투수 리드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올 시즌 그가 출전한 8경기에서 SK는 4승 4패를 거뒀다. 박경완은 “투수 리드 등 수비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 내가 팀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타격이었다. 올 시즌 1군 타율은 불과 1할(20타수 2안타). 2000년 홈런 40개를 쳤던 왕년의 홈런왕으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는 “분명 전성기만큼 방망이를 휘두르긴 어렵다. 하지만 타격 감각을 살릴 기회가 부족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이만수 감독은 “야구 선수가 실력이 안 되는데 뛸 수는 없다. 그 당시 박경완은 부상이 회복되지 않았고 타격도 약해 다른 포수들에 비해 부족했다”고 말했다.○ “어디서든 야구를 하고 싶다” 박경완이 소망하는 건 단 하나. ‘어느 팀에서든 주전 포수로서 야구를 하고 싶다’는 거다. 그는 올 시즌 내내 ‘남들이 봤을 땐 아닌데 나만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닌가’ 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SK에서 안 된다면 다른 팀에서라도 포수로 뛰면서 후배를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박경완은 포수가 약한 팀에 여전히 매력적인 선수다. 그가 올해 자유계약선수(FA)를 선언하지 않았기에 다른 팀으로 이적하려면 트레이드밖에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 감독은 “내년에도 박경완과 함께 간다. 좋은 포수를 다른 팀에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연 박경완의 간절한 소망은 내년 시즌에 이뤄질까.인천=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쏴∼”시원한 샤워 물줄기가 내리쏟아진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땀을 씻어낸다. 그 와중에 한 중년 여성이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러곤 알몸인 선수들 사이를 아무렇지 않은 듯 헤치고 다닌다. 선수들도 태연하게 농담을 던진다. 선수단 외엔 절대 출입금지인 라커룸과 그 안의 샤워실에 유일하게 ‘상시 접근 권한’을 부여받은 이 여자. 프로야구 태평양(현대의 전신) 시절부터 18년째 유니폼 빨래를 도맡아온 이천금 씨(55)다.○ 서른여덟에 처음 만난 프로야구1990년대 초만 해도 프로야구 선수들은 자기 유니폼을 직접 빨아 입었다. 1995년 초 태평양은 선수들의 편의를 위해 선수단 빨래를 도맡아 해줄 세탁소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태평양 1군 매니저 최재필 씨(52)는 홈구장이던 인천 도원구장 근처 세탁소를 수소문했다. 하지만 두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최 씨는 “밤늦게 경기가 끝난 뒤 새벽까지 세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업주들이 난색을 표했다”고 회상했다. 최 씨가 세 번째로 찾은 게 이 씨의 세탁소였다. 자녀 넷을 키우고 있던 이 씨는 최 씨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다. 이 씨는 그렇게 나이 서른여덟에 처음으로 프로야구와 연을 맺었다.유니폼 세탁은 고된 일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야구장으로 가 세탁물을 거둬 오면 어느덧 밤 12시를 훌쩍 넘겼다. 세탁기 4대와 건조기 3대를 가동해도 꼬박 2, 3시간이 걸렸다. 세탁을 마친 뒤 유니폼 상의와 하의, 양말, 속옷을 선수 개개인별로 분류했다. 해진 곳이 있으면 수선까지 했다. 빨래를 마치면 선수단이 출근하기 전에 라커룸으로 가 유니폼을 선수별로 옷장에 넣어두었다. 그러면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팀이 지방 방문경기를 할 때면 오전 2, 3시에야 홈구장에 돌아온 선수단에서 유니폼을 받아왔다.1996년 태평양이 현대로 바뀌었다. 현대는 2000년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길 때 인천에 새로 들어온 SK 선수단에 이 씨를 소개시켜 줬다.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긴 현대도 계속 이 씨에게 빨래를 맡겼기 때문에 이 씨는 현대와 SK의 빨래를 함께 했다. 시즌 중 많게는 하루에 100벌씩 빨래를 했다. 이 씨가 빨래를 마치면 남편이 현대의 홈인 수원으로, 이 씨가 SK의 홈인 인천으로 빨래 배달을 갔다. 동네 주민의 세탁물은 맡을 엄두를 못 냈다. 이 씨는 “그렇게 프로야구가 내 삶 그 자체가 됐다”고 했다.○ 새벽부터 유니폼 찾는 감독도이 씨가 프로야구에 발을 들인 이후 숱한 변화가 일어났다. 크고 작은 일들이 이 씨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현대는 2003년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유명을 달리한 이후 야구단 지원이 줄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구단 사정이 어려워지자 한때 세탁비가 연체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씨는 2007년 현대가 해체될 때까지 인천에서 수원을 왕복하며 빨래를 책임졌다.감독의 스타일도 이 씨에게 영향을 줬다. 2003∼2006년 SK를 이끌었던 조범현 감독(52)은 선수단 출근 시간이 오후 2시였지만 종종 오전 7시에 출근했다. 그럴 때마다 구단 매니저가 “감독님 출근했으니 빨리 유니폼을 가져오라”고 전화하기 일쑤였다. 반면 2007∼2011년 8월까지 SK를 맡았던 김성근 고양 감독(70)은 너무 늦게 퇴근했다. 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에게 1시간 넘게 특별훈련을 시키는 데다 그 후엔 본인의 개인운동까지 하고 오전 1시쯤 집에 갔다. 이 씨는 감독 유니폼까지 수거해야 집에 갈 수 있었다. 이 씨가 홀로 운동하는 김 감독에게 “집에 안 가시냐”고 하소연하면 “나랑 같이 운동하고 갑시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씨는 “그땐 솔직히 너무 얄미웠다”며 웃었다.이 씨는 지난해까지 선수들에게 “잠실로 경기하러 갈 땐 꼭 헌 유니폼을 가져가라”고 당부했다. 잠실에서 경기를 한 유니폼을 빨 때는 유독 얼룩이나 때가 잘 안 지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해 말 잠실구장 흙에서 석면이 검출돼 큰 파문이 일어났고 그 이후 잠실구장의 흙을 전면 교체하자 그런 일이 없어졌다. 또 천연잔디보다는 인조잔디에서 때가 더 묻기도 한다. 이 씨는 “인조잔디에서 경기한 선수의 유니폼 엉덩이에는 쥐 발자국처럼 촘촘히 때가 묻어 안 지워진다. 엉덩이 쪽을 따로 손빨래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따뜻한 선수 덕에 버틴 18년이 씨가 수거해 차에 실어둔 유니폼을 팬들이 훔쳐가기도 했다. 라커룸에서 고가의 물건이 없어질 때면 의심받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 씨는 마음 따뜻한 선수들과 함께할 수 있었기에 즐겁다고 했다.2002년 SK에서 처음 만난 현 LG 김기태 감독(43)도 이 씨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한여름 땀에 전 유니폼은 아무리 빨아도 냄새가 날 때가 있다. 그때 일부 선수는 이 씨에게 불평했다. 그럴 때마다 당시 고참 선수였던 김 감독은 “예전에 집에서 직접 빨아 입을 때를 생각해라”라며 이 씨를 감쌌다. SK 박진만(36)은 1996년 현대에서 데뷔할 때부터 이 씨에게 세탁물을 맡겼고 2005년 삼성으로 이적하고도 이 씨를 잊지 않았다. 지금도 이 씨와 마주치면 먹을 것과 함께 “힘내시라”는 따뜻한 말을 건네곤 한다.넥센 조중근(30)이 SK에서 뛰던 2007년 초. 이 씨가 그의 속옷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이 씨는 사과하며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이 씨를 “이모”라고 부르는 조중근은 웃어넘겼다고. 조중근은 2007년 시즌 중인 5월 현대로 이적한 뒤 수원 라커룸에서 익숙한 속옷을 발견했다. SK와 현대의 빨래를 함께 하던 이 씨가 실수로 그의 속옷을 SK가 아닌 현대로 보냈던 것이다. ○ 대를 이어 함께하고픈 프로야구이 씨는 프로야구 덕에 네 자녀를 부족함 없이 키웠다. 2004년엔 종전의 허름한 세탁소 대신 인천 서구 가좌동에 넓은 세탁소를 장만했다. 2010년 시즌 뒤 SK 빨래는 그만뒀다. 2000년부터 10년 동안 두 구단의 빨래를 해오다 보니 몸에 무리가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천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넥센의 빨래는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이 씨는 “현대와의 의리 때문”이라고 했다.이 씨는 “힘에 부치면 아들에게 세탁소를 물려줘서라도 프로야구와의 연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쏴~" 시원한 샤워 물줄기가 내리쏟아진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땀을 씻어낸다. 그 와중에 한 중년 여성이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곤 알몸인 선수들 사이를 아무렇지 않은 듯 헤치고 다닌다. 선수들도 태연하게 농담을 던진다. 선수단 외엔 절대 출입금지인 라커룸과 그 안의 샤워실에 유일하게 '상시 접근 권한'을 부여받은 이 여자. 프로야구 태평양(현대의 전신) 시절부터 18년 동안 유니폼 빨래를 도맡아온 이천금 씨(55)다. ● 서른여덟에 처음 만난 프로야구 1990년대 초만 해도 프로야구 선수들은 자기 유니폼을 직접 빨아 입었다. 1995년 초 태평양은 선수들의 편의를 위해 선수단 빨래를 도맡아 해줄 세탁소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태평양 1군 매니저 최재필 씨(52)는 홈구장이던 인천 도원구장 근처 세탁소를 수소문했다. 하지만 두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최 씨는 "밤늦게 경기가 끝난 뒤 새벽까지 세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업주들이 난색을 표했다"고 회상했다. 최 씨가 세 번째로 찾은 게 이 씨의 세탁소였다. 자녀 넷을 키우고 있던 이 씨는 최 씨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다. 이 씨는 그렇게 나이 서른여덟에 처음으로 프로야구와 연을 맺었다. 유니폼 세탁은 고된 일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야구장으로 가 세탁물을 거둬오면 어느덧 밤 12시를 훌쩍 넘겼다. 세탁기 4대와 건조기 3대를 가동해도 꼬박 2, 3시간이 걸렸다. 세탁을 마친 뒤 유니폼 상의와 하의, 양말, 속옷을 선수 개개인별로 분류했다. 해진 곳이 있으면 수선까지 했다. 빨래를 마치면 선수단이 출근하기 전에 라커룸으로 가 유니폼을 선수별로 옷장에 놓아두었다. 그럼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팀이 지방 방문경기를 할 때면 새벽 2, 3시에야 홈구장에 돌아온 선수단에게서 유니폼을 받아왔다. 1996년 태평양이 현대로 바뀌었다. 현대는 2000년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길 때 인천에 새로 들어온 SK 선수단에게 이 씨를 소개시켜줬다.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긴 현대도 계속 이 씨에게 빨래를 맡겼기 때문에 이 씨는 현대와 SK의 빨래를 함께 했다. 시즌 중 많게는 하루에 100벌 씩 빨래를 했다. 이 씨가 빨래를 마치면 남편 이명환(57) 씨가 현대의 홈인 수원으로, 이 씨가 SK의 홈인 인천으로 빨래 배달을 갔다. 동네 주민의 세탁물은 맡을 엄두를 못 냈다. 이 씨는 "그렇게 프로야구가 내 삶 그 자체가 됐다"고 했다. ● 프로야구 역사와 함께 변해온 삶 이 씨가 프로야구에 발을 들인 이후 18년 동안 숱한 변화가 일어났다. 크고 작은 일들이 이 씨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현대는 2003년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유명을 달리한 이후 야구단 지원이 줄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구단 사정이 어려워지자 빨래비가 한 때 연체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씨는 2007년 현대가 해체될 때까지 인천에서 수원을 왕복하며 빨래를 책임졌다. 감독의 스타일도 이 씨에게 영향을 줬다. 2003년~2006년 SK를 이끌었던 조범현 감독(52)은 선수단 출근 시간이 오후 2시였지만 종종 오전 7시에 출근했다. 그럴 때마다 구단 매니저가 "감독님 출근했으니 빨리 유니폼을 가져오라"고 전화하기 일쑤였다. 반면 2007년~2011년 8월까지 SK를 맡았던 김성근 고양 감독(70)은 너무 늦게 퇴근했다. 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에게 1시간 넘게 특별훈련을 시키는데다 그 후엔 본인의 개인운동까지 하고 새벽 1시 쯤 집에 갔다. 이 씨는 감독 유니폼까지 수거해야 집에 갈 수 있었다. 이 씨가 홀로 운동하는 김 감독에게 "집에 안 가시냐"고 하소연하면 "나랑 같이 운동하고 갑시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씨는 "그 땐 솔직히 너무 얄미웠다"며 웃었다. 이 씨는 지난해까지 선수들에게 "잠실로 경기하러 갈 땐 꼭 헌 유니폼을 가져가라"고 당부했다. 잠실에서 경기를 한 유니폼을 빨 때는 유독 얼룩이나 때가 잘 안 지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해 말 잠실구장 흙에서 석면이 검출돼 큰 파문이 일어났고 그 이후 잠실 구장의 흙을 전면 교체하자 그런 일이 없어졌다. 또 천연잔디보다는 인조잔디에서 때가 더 묻기도 한다. 이 씨는 "인조잔디에서 경기를 한 선수의 유니폼 엉덩이에는 쥐 발자국처럼 촘촘히 때가 묻어 안 지워진다. 엉덩이 쪽을 따로 손빨래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따뜻한 선수 덕에 버틴 18년 이 씨가 수거해 차에 실어둔 유니폼을 팬들이 훔쳐가기도 했다. 라커룸에서 고가의 물건이 없어질 때면 의심받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 씨는 마음 따뜻한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었기에 즐겁다고 했다. 2002년 SK에서 처음 만난 현 LG 김기태 감독(43)도 이 씨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한여름 땀에 전 유니폼은 아무리 빨아도 냄새가 날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일부 선수는 이 씨에게 불평 했다. 그럴 때마다 당시 고참 선수였던 김 감독은 "예전에 집에서 직접 빨아 입을 때를 생각해라"며 이 씨를 감쌌다. SK 박진만(36)은 1996년 현대에서 데뷔할 때부터 이 씨에게 세탁물을 맡겼고 2005년 삼성으로 이적하고도 이 씨를 잊지 않았다. 지금도 이 씨를 마주치면 먹을거리를 건네며 "힘내시라"며 따뜻한 말을 건네곤 한다. 넥센 조중근(30)이 SK에서 뛰던 2006년. 이 씨가 그의 속옷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 이 씨는 사과하며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이 씨를 "이모"라고 부르는 조중근은 웃어넘겼다고. 조중근은 2007년 현대로 이적한 뒤 수원 라커룸에서 익숙한 속옷을 발견했다. SK와 현대의 빨래를 함께 하던 이 씨가 실수로 그의 속옷을 SK가 아닌 현대로 보냈던 것이다. ● 대를 이어 함께 하고픈 프로야구 이 씨는 프로야구 덕에 네 자녀를 부족함 없이 키웠다. 2004년엔 종전의 허름한 세탁소대신 인천 서구 가좌동에 넓은 세탁소를 장만했다. 2010년 시즌 뒤 SK 빨래는 그만뒀다. 2000년부터 11년 동안은 두 구단의 빨래를 해오다 보니 몸에 무리가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천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넥센의 빨래는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이 씨는 "현대와의 의리 때문"이라고 했다. 이 씨는 "힘에 부치면 아들에게 세탁소를 물려줘서라도 프로야구와의 연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인천=조동주 기자 djc@donga.com}
“배구 하기 참 좋은 경기장이야.” 러시앤캐시 김호철 감독은 14일 LIG손해보험과의 안방 데뷔전을 치를 충남 아산 이순신체육관 내 배구코트를 둘러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러시앤캐시는 서울 장충체육관이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 이번 시즌에 한해 연고지를 아산으로 옮겼다. 7월 13일 개관한 이순신체육관은 최신식 시설을 갖췄다. 러시앤캐시는 지난달 31일 숙소까지 아산으로 옮기며 ‘아산 정착’에 열중했다. 처음으로 프로 스포츠단을 갖게 된 아산시민은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 3176석을 갖춘 이순신체육관엔 이날 관중 3429명이 몰렸다. 예상치 못한 많은 관중이 몰려 매표가 지연될 정도였다. 일부 시민은 좌석이 없어 계단에 앉아 경기를 관람해야 했다. 다만 이순신체육관에 배구장과 빙상장이 함께 있기 때문에 배구장 규모가 다소 작은 게 아쉬웠다. 경기장이 좁다보니 일부 선수는 코트 밖 복도에서 몸을 풀었다. 러시앤캐시와 아산시의 연고지 계약은 내년 4월까지다. 하지만 아산시는 그 후에도 러시앤캐시와 함께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복기왕 아산시장은 “시 차원에서 러시앤캐시의 모기업을 찾아볼 생각이다. 모기업이 내야할 돈을 시가 나눠 낼 용의도 있다. 꼭 러시앤캐시가 계속 아산을 연고지로 했으면 한다”고 했다. 러시앤캐시는 홈팬의 열성적인 응원을 받았지만 LIG손해보험에 0-3(19-25, 20-25, 17-25)으로 패했다. 이날도 범실을 25개나 저지르며 손발이 안 맞는 모습이었다. 팀 공격성공률은 38.7%에 불과했다. 김 감독은 “선수 개개인은 뛰어난데 팀플레이를 전혀 할 줄 모른다. 아직 팀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니 2라운드까지는 많이 얻어맞을 거다. 선수들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반면 LIG손해보험은 18점(성공률 64%)을 퍼부은 외국인 선수 까메호를 앞세워 시즌 첫 승(2패)을 따냈다. 여자부에선 GS칼텍스가 기업은행을 3-1(25-18, 22-25, 25-17, 25-22)로 꺾고 3연승을 달렸다. 외국인 선수 베띠가 양 팀 최다인 33점을 올렸고 런던 올림픽 대표팀 듀오인 한송이(15득점)와 정대영(13득점)이 힘을 보탰다.아산=조동주 기자 djc@donga.com}

류재천 씨(56)는 아들인 한화 류현진(25)의 메이저리그 포스팅 금액을 발표 당일인 10일 오전 7시에야 알았다. 전날까지도 에이전트로부터 “아직 결정된 게 없다”는 말을 듣고 밤을 지새웠다. 류 씨는 포스팅 금액이 2573만 달러(약 280억 원)라는 말을 듣고 한 번, 그 팀이 LA 다저스란 걸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12일 인천의 한 호텔에서 만난 류 씨는 “모든 게 급박하게 돌아갔다”고 했다. 한화가 류현진의 조건부 포스팅을 허락한 건 10월 29일. 보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미국 진출을 결정지어야 했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류현진은 류 씨에게 “11월 1일부터 충남 서산으로 마무리 훈련을 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미국 진출은 불투명해 보였다. 당초 류 씨는 포스팅 금액으로 1000만∼1500만 달러만 나와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2573만 달러까지 나올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아들도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나왔다며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이어 “우선 교섭권을 가진 다저스는 한국 친화적인 팀이어서 만족한다. 로스앤젤레스는 날씨도 좋아 현진이가 더 잘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류 씨는 아들의 모든 경기를 직접 보러 다녔다. 인천 집에서 대전 안방경기는 물론이고 아들의 방문경기 등판까지 모두 챙겼다. 가끔은 선글라스를 끼고 경기를 관전했다. 어쩌다 아들이 난타를 당할 때면 아버지로서 ‘표정 관리’가 안 되기 때문이다. 특히 류현진이 잘 던지고도 승수를 못 쌓아 ‘불운의 아이콘’이라 불린 올 시즌엔 선글라스를 쓰는 날이 많았다. 류현진은 14일 미국으로 출국한다. 미국 진출을 추진할 당시에는 서울에 머물렀다. 그런 아들을 보기 위해 류 씨는 서울까지 찾아가 낙지를 먹으며 한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류 씨는 내년 시즌에는 아들의 경기를 TV로 지켜볼 생각이다. 그는 “현진이가 잘 따르는 친형 현수(28)가 미국에 살고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현지에서 아들을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괜찮다. 이제 현진이는 내 아들을 넘어 ‘대한민국의 아들’이 됐기 때문”이라며 웃었다.인천=조동주 기자 djc@donga.com 김종석 채널A기자 lefty@donga.com}

한화가 류현진을 미국 프로야구로 보내면서 벌어들일 예정인 2573만7737달러33센트(약 280억 원)는 국내 프로야구단의 1년 운영비와 맞먹는 금액이다. 막대한 ‘실탄’을 손에 쥔 한화는 이번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의 신흥 강호로 떠올랐다. 한화 정승진 대표는 “류현진의 공백을 메울 만한 대어급 선수를 영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연 누가 한화 유니폼을 새로 입을까. ○ 영입 1순위는 LG 정성훈? 전문가들은 한화가 FA로 보강해야 하는 1순위 포지션으로 내야수를 꼽는다. 한화는 올 시즌 내야 수비에서 어이없는 실책을 남발했다. 올 시즌 FA 11명 중 공수를 겸비한 내야수로는 LG의 3루수 정성훈이 있다. 양상문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내년에 김태완 송광민이 제대해 복귀하지만 여전히 내야수가 부족하다. 3루수 정성훈이 한화로 온다면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성훈은 올 시즌 타율 0.310에 12홈런, 53타점으로 팀의 중심타자 역할을 했다. 그는 2008년 시즌 후 LG에 FA로 입단할 당시 4년간 25억 원에 계약했다. 하지만 올해 FA 시장은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 그의 몸값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급 외국인 투수 2명? 한화가 류현진의 공백을 메우려면 특급 외국인 선발투수 2명을 영입해야 한다. 이번 FA엔 마땅한 선발투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화는 그동안 외국인 선발투수에 대한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그 결과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가 생긴 이래 한화의 ‘10승 외국인 투수’는 세드릭 바워스(미국·2007년 11승 13패, 평균자책 4.15)뿐이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정상 외국인 선수의 첫해 연봉 상한치는 30만 달러(약 3억2625만 원). 하지만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는 특급 선발 투수를 데려오려면 적어도 100만 달러(약 10억8000만 원)는 써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매해 기량 미달의 외국인 투수 때문에 눈물 흘렸던 한화로선 올해가 통 큰 투자를 할 적기다.○ SK 박경완과 롯데 김주찬까지? 일각에선 한화가 SK에서 사실상 전력 외로 구분된 박경완을 트레이드해 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일성 KBSN 해설위원은 “한화가 우승 전력을 갖추려면 투수 리드가 뛰어난 박경완이 필요하다. 그가 한화에서 133경기 중 80경기만 뛰어도 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FA를 선언한 롯데 김주찬은 발이 빠르고 공격력도 좋아 한화의 취약한 테이블 세터(1, 2번 타자)를 채워 줄 최적의 선수로 꼽힌다. 류현진이 떠나며 선물한 280억 원은 한화의 전력 보강을 위한 쌈짓돈이다. ‘큰손’으로 거듭난 독수리가 부활을 향한 날갯짓을 시작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레오를 본 소감요? ‘멘털 붕괴’(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잘한다는 뜻)네요.” 삼성화재의 쿠바 출신 외국인 선수 레오(22)의 활약을 본 프로배구 감독들의 반응이다. 레오는 3일 KEPCO와의 경기에서는 51득점, 6일 우승후보 LIG손해보험을 상대로는 36득점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현대캐피탈 하종화 감독은 “레오가 지난 시즌 삼성화재에서 뛰었던 가빈(러시아리그 진출) 못지않게 강해서 놀랐다. 삼성화재는 외국인 선수 복이 있는 거 같다”고 평가했다. 레오는 2009∼2010년 배구를 거의 하지 못했다. 쿠바는 자국 선수가 대표팀에서 일정기간 뛰지 않고 바로 외국으로 나가면 2년 동안 국제이적동의서(ITC)를 발급해주지 않는다. 국가를 위해 의무적으로 봉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레오는 2009년 대표팀을 뛰지 않고 푸에르토리코로 건너가면서 ITC를 발급받지 못했다. 레오는 지난해에야 푸에르토리코 리그에서 뛸 수 있었다. 레오는 올 시즌을 앞두고 ‘높이와 탄력은 좋은데 파워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키 206cm에서 나오는 높이와 쿠바인 특유의 탄력은 일품이지만 몸무게가 78kg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올해 초 레오와 접촉했던 한 구단 관계자는 “레오 측에 입단 테스트를 제의했는데 비자 발급이 늦어져 포기했다. 테스트를 하지 않고 바로 영입할 정도로 검증된 선수는 아니었다”고 했다. 레오는 8월 말에야 삼성화재에 입단했다. 그는 시즌 개막에 앞선 연습경기까지만 해도 평범해 보였다. 그러나 개막전에서 폭발적인 스파이크와 안정된 리시브를 선보이며 가빈을 뛰어넘는 ‘괴물’로 변신했다. 다른 팀 감독은 넋을 잃었다. 신치용 감독은 단기간에 ‘레오 만들기’에 성공했다. 우선 레오의 체중을 7kg 불려 힘을 키우도록 했다. 여기에 “훈련을 게을리하면 언제든 방출할 수 있다”고 말하며 배구에 집중하도록 유도했다. 레오는 스물두 살이지만 아내와 두 아들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여서 한국무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가빈이라는 큰 그림자도 자존심 강한 레오를 자극했다.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레오의 괴력 행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현대캐피탈 하종화 감독은 7일 충남 천안 홈 개막전을 앞두고 부담이 컸다. 상대가 러시앤캐시였기 때문이다. 러시앤캐시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현대캐피탈을 지휘했던 김호철 감독을 사령탑으로 영입하면서 서로 관계가 묘해졌다. 게다가 러시앤캐시가 충남 아산으로 연고를 옮기면서 양 팀은 ‘충청 라이벌’이 됐다. 하지만 ‘박힌 돌’은 ‘굴러온 돌’보다 강했다. 원조 충청 팀 현대캐피탈은 러시앤캐시를 3-0(25-18, 25-19, 25-20)으로 완파했다. 문성민은 왼발 부상에서 아직 완쾌되지 않았지만 13점을 퍼부으며 에이스의 역할을 다했다. 새로 영입한 외국인 선수 가스파리니는 우려와 달리 15득점으로 활약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현대캐피탈은 2007년 은퇴 이후 5년 만에 코트에 복귀한 서른아홉의 노장 리베로 이호를 3세트 말에 투입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하 감독은 “승부의 세계엔 공과 사가 없기 때문에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이겨서 좋다. 하지만 김 감독에게 미안한 기분은 든다”며 웃었다. 2010∼2011시즌 삼성화재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이 열린 2011년 3월 24일 이후 594일 만에 친정인 천안에서 경기를 한 김 감독은 “집에 온 기분이다. 홈팀 벤치가 아닌 방문팀 벤치에서 경기하려니 어색하더라. 현대캐피탈과 경기할 때는 늘 만감이 교차할 것 같다. 아무래도 현대캐피탈이 옛 감독을 많이 봐준 거 같다”며 웃었다. 하지만 “선수들이 이기려는 욕심이 많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높은 블로킹을 뚫을 능력이 부족했다”며 냉철한 반성도 잊지 않았다. 여자부에선 기업은행이 도로공사를 3-0(25-14, 25-23, 25-18)으로 꺾고 2연승을 달렸다.천안=조동주 기자 djc@donga.com}
프로야구의 ‘야생마’ 이상훈(41)이 독립야구단 고양에서 김성근 감독과 한솥밥을 먹는다. 고양은 이상훈을 투수코치로 영입했다고 6일 밝혔다. 김 감독과 이 신임 코치는 2002년 LG에서 감독과 투수로 인연을 맺었다. 고양 하송 단장은 “이상훈이 개인 사업을 정리하고 코치에 전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2008년 프로야구 각 부문 시상식이 열렸던 11월 6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당시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홈런왕인 거포 유망주 박병호의 가슴은 새로운 각오로 불탔다. 조만간 함께 무대에 오른 1군 수상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리라고. 지금은 2군을 전전하다 상무에서 군복 차림으로 상을 받았지만 훗날 멋진 양복을 입고 시상식장 곳곳을 누비리라고 말이다. 2012년 프로야구 각 부문 시상식이 열린 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 박병호는 4년 전 자신과 했던 ‘약속’을 실현했다. 검은색 정장에다 보라색 넥타이를 맨 박병호는 최우수선수상(MVP), 홈런왕, 타점상, 장타력상 등 트로피 4개를 안고 밝게 웃었다. 꿈을 이룬 자의 아름다운 미소에 참석자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꿈 이룬 만년 거포 박병호 박병호는 기자단 투표에서 총 91표 가운데 73표를 얻어 다승왕을 차지한 삼성 장원삼(8표)을 제쳤다. 예년과 달리 포스트시즌 시작 전에 투표가 이뤄져 한국시리즈에서 2승을 거둔 장원삼과의 격차가 컸다.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오랜 2군 생활을 하면서 야구를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다. 지금도 피땀 흘리고 있는 2군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동기 부여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병호는 2005년 LG에 입단했지만 주로 2군에 머물며 빛을 보지 못했다. 급기야 2011년 심수창과 함께 송신영-김성현의 2 대 2 트레이드 카드로 넥센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박병호는 넥센 박흥식 타격코치의 지도 속에 절치부심해 올해 정규시즌에서 홈런(31개), 타점(105개), 장타력(0.561) 등 타격 3관왕에 올랐고 호타준족의 상징인 ‘20홈런-20도루’ 클럽까지 가입했다. 박병호는 MVP(2000만 원), 타격 3개 부문(900만 원) 등 총 2900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 그는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하신 아버지의 차가 30만 km를 넘게 뛰었더라. 아버지 차를 바꿔드리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 MVP-신인왕 싹쓸이 … 겹경사 넥센 넥센은 MVP 박병호와 신인왕 서건창을 동시에 배출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가을야구에 초대받지 못한 팀이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석권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수상소감 막바지에 박병호는 제2의 야구인생을 열게 해준 이장석 넥센 대표에게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고는 호기롭게 “대표님 다음 시즌 연봉 기대하겠습니다”라는 깜찍 멘트를 날렸다. 이 대표는 대답 대신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2의 박병호’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이란 두 글자를 가슴에 품게 만들기에 충분한 장면이었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연습생… 방출… 경찰청 탈락… 연습생… ‘서건창 드라마’▼총 91표 중 79표. 넥센 서건창(23·사진)은 압도적인 지지로 생애 단 한 번밖에 없는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경쟁자인 KIA 박지훈(7표), LG 최성훈(3표), 삼성 이지영(2표)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그는 올 시즌 타율 0.266, 39도루, 70득점으로 팀 공격의 선봉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서건창의 야구 인생은 ‘인간 승리’ 그 자체였다. 2008년 LG에 신고 선수(연습생)로 입단했지만 딱 1경기에 나선 뒤 쫓겨났다. 이후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청에 지원했지만 그마저도 떨어졌다. 그는 일반 사병으로 병역을 마치고 지난해 10월 초 넥센의 비공개 테스트를 통과해 또다시 신고 선수가 됐다. 올 시즌을 앞두고 넥센 염경엽 감독(당시 주루코치)의 지도로 도루 실력을 크게 끌어올리며 주전 자리를 꿰차더니 이번에 신인왕까지 올랐다. 신고 선수 출신 신인왕은 1995년 삼성 이동수 이후 17년 만이다. 넥센 이장석 대표는 서건창의 수상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 대표는 “사실 지난해 서건창이 NC 입단 테스트를 보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우리 팀 비공개 테스트 일정을 NC보다 먼저 하도록 바꿨다. 박흥식 당시 넥센 2군 타격코치가 서건창을 높이 평가했다. 그만큼 서건창이 탐났었는데 그 결실을 맺어 기쁘다. 올해 2400만 원이었던 연봉은 크게 오를 것”이라며 웃었다. 서건창은 “올 한 해는 꿈같았다. 내년엔 출루율과 득점을 높여 꼭 가을야구를 하고 싶다. 꿈이 계속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했다. 서건창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내 감독 인생의 마지막 승부라 생각하고 부딪쳐 보겠다.” 김시진 전 넥센 감독(54)은 5일 롯데의 새 사령탑으로 전격 선임된 뒤 이렇게 말했다. 9월 17일 올 시즌 15경기를 남기고 감독에서 중도 하차한 지 49일 만이다. 롯데 구단은 이날 김 전 감독을 제15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김 전 감독이 지도자로 오랜 경험과 선수 육성 능력을 갖춰 새 사령탑으로 영입했다는 것이다. 3년 계약에 계약금 3억 원, 연봉 3억 원 등 총 12억 원. 김 감독은 ‘구도(球都)’ 부산을 연고로 한 롯데 사령탑이 된 게 가슴 설레면서 의욕이 생긴다고 했다. “롯데는 좋은 선수와 열성적인 팬을 갖고 있다. 선수들과 많은 땀을 흘리고 능력의 최고치를 내도록 만드는 게 내 몫이다.” 투수 김시진의 현역 시절은 파란만장했다. 1983년 삼성에 입단해 5년 연속 두 자리 승리를 챙기며 팀의 에이스로 활동했다. 1985년과 1987년 다승왕에 올랐다. 그러나 1989년 롯데로 트레이드된 뒤 4시즌 동안 13승을 거두고 1992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통산 성적은 124승 73패 16세이브에 평균자책 3.12. 지도자 김시진은 ‘투수 조련사’였다. 1993년 태평양 코치를 시작으로 현대 투수코치(1996∼2006년)를 맡아 임선동 김수경 등을 키워냈다. 2006년 11월 현대 감독으로 첫 사령탑이 됐지만 이듬해 팀이 해체됐다. 2008년 10월 우리(현 넥센) 감독으로 복귀해 올 시즌에는 한때 넥센을 선두에 올려놓기도 했지만 후반기 6위로 성적이 떨어지면서 결국 지휘봉을 놓았다. 하지만 친형처럼 선수단을 이끄는 능력을 롯데가 인정하면서 다시 감독직을 맡게 됐다. 김 감독이 롯데의 새 사령탑을 맡으면서 롯데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투수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애제자였던 정민태 전 넥센 코치도 이날 롯데 1군 투수코치로 영입됐다. 롯데는 야구 열기가 가장 뜨거운 부산을 연고로 하고 있다. 제리 로이스터 전 감독이 재계약을 못한 것도, 양승호 전 감독이 끝내 자신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것도 최고 인기 구단에 걸맞은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롯데 감독직이 ‘독이 든 성배’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 감독 역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부산 야구팬이 1992년 이후 한국시리즈 우승에 목말라 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구단과 롯데 팬 모두 우승을 원하는 걸 안다. 내가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뛴 게 1992년 롯데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해다. 그때 같은 마음으로 뛰겠다”고 말했다.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프로배구 러시앤캐시와 대한항공이 맞붙은 4일 인천 도원체육관.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김호철 러시앤캐시 감독(57·사진)이 경기 시작 직전 소회에 잠긴 듯 물끄러미 배구 코트를 쳐다봤다. 589일 만에 사령탑으로서 코트를 다시 밟는 날이라 감회가 남달랐을 터였다. 김 감독의 비장한 복귀전은 패배로 끝났다. 러시앤캐시는 정규시즌 데뷔전에서 우승 후보 대한항공에 1-3(25-23, 23-25, 17-25, 20-25)으로 졌다. 대한항공의 마틴(20득점)과 류윤식(12득점)을 당해 내지 못한 데다 역대 정규시즌에서 두 번째로 많은 범실(40개)을 저지르며 스스로 무너졌다. 5세트까지 치렀다면 현대캐피탈의 최다 범실 기록(2011년 11월 29일 대한항공전·범실 42개)을 깰 뻔했다. 하지만 러시앤캐시가 1, 2세트에서 보여 준 저력에선 ‘김호철의 힘’이 느껴졌다. 러시앤캐시는 1세트에서 영국 셰필드대 치의예과 출신인 외국인 선수 다미가 긴장한 탓에 4득점에 그쳤지만 안준찬 김정환 신영석(각 3득점)이 고르게 활약하며 첫 세트를 따냈다. 2세트에서도 지긴 했지만 세트 내내 최대 점수 차가 3점에 불과할 정도로 접전을 펼쳤다. 하지만 3세트부터 체력이 달린 데다 4세트 중반 지난 시즌 신인왕 최홍석이 발목을 다쳐 빠지는 바람에 추격의 동력을 잃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아직 두 세트 정도 뛸 힘밖에 없다. 팀을 맡은 후 한 달 내내 체력훈련에 집중했지만 아직 부족하다”면서도 “선수들이 공을 만진 지 10일밖에 안 됐다. 체력훈련을 더 하면서 감을 키우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여자부에선 기업은행이 흥국생명에 3-2(18-25, 25-17, 14-25, 25-16, 15-12)로 역전승했다. 런던 올림픽 대표팀 출신 김희진이 23점, 외국인 선수 알레시아가 22점을 냈다. 흥국생명 외국인 선수 휘트니는 데뷔전에서 44점을 따내며 트리플 크라운(후위 9, 블로킹 4, 서브 4득점)을 달성했지만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인천=조동주 기자 djc@donga.com}
넥센 염경엽 감독은 부임한 직후 구단 버스에 타는 선수들을 바꿨다. 투수 출신이었던 김시진 전 감독 시절에는 1호차에 투수가, 2호차에 야수가 탔는데 이를 반대로 바꿨다. 감독이 타는 1호차에 야수를 태운 데에는 이유가 있다. ‘팀 공격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넥센은 올 시즌 타격 곳곳에서 빈틈이 노출됐다. 팀 타율(0.243)은 최하위고 출루율(0.325)은 7위다. 삼진도 892개나 당해 한화(907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염 감독은 이런 넥센을 ‘불방망이 타선’으로 바꾸기 위한 체질 개선에 나섰다. 염 감독은 투수전보다 공격적인 야구를 선호한다. 그는 마무리 훈련을 시작하며 “점수가 많이 나는 야구가 재밌다. 투수전이나 일본 야구처럼 번트 대면서 1, 2점 내는 야구는 재미없다. 공격적인 야구를 해야 실책, 주루플레이 같은 여러 변수가 생긴다”고 했다. 그는 다음 시즌 타선의 목표를 ‘출루율 1위’와 ‘최소 삼진’으로 잡았다. ‘어떻게든 살아나가고, 죽더라도 쉽게 죽지 말라’는 메시지다. 한화 김응용 감독은 홈구장을 넓혀달라고 했지만 염 감독은 지금 그대로 간다는 입장을 보였다. 구장이 좁아야 홈런이 많이 나오고 공격적인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넥센은 지난달 31일 1.5군급 선수 26명(투수 11명 야수 15명)을 이끌고 일본 가고시마로 마무리 훈련을 떠났다. 염 감독은 “올 시즌 타격이 침체된 건 허약한 하위 타선 때문이다. 일본 마무리 훈련에서 하위 타선 조련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가 가장 큰 기대를 거는 선수는 올 시즌 두산에서 이적한 이성열이다. 염 감독은 “이성열이 지금은 허점이 많지만 박병호와 비슷한 점이 많다. 잘 키우면 팀 공격력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넥센이 내년 시즌 화끈한 타력의 팀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삼성 이승엽은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가 됐다는 말을 듣고 더그아웃에서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6차전 승리투수인 장원삼이 MVP가 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역대 정규시즌에서 5번(1997, 1999, 2001, 2002, 2003년)이나 MVP를 차지했지만 정작 한국시리즈 MVP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승엽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마음고생을 지독하게 했다. 4차전 0-0으로 맞선 4회 무사 1, 2루에서 어이없는 주루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당시 2루 주자였던 그는 최형우의 우익수 플라이를 안타로 착각해 3루까지 내달리다 아웃됐다. 자신도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팀의 중심인 그가 ‘멘붕(멘털붕괴)’에 빠지자 삼성도 함께 무너졌다. 이승엽은 만회할 기회만을 기다렸다. 6차전에서 4-0으로 앞선 4회 2사 만루의 기회가 왔다. 그는 상대 투수 채병용의 4구째를 받아쳐 오른쪽 담장을 원바운드로 맞히는 3타점 3루타를 날렸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깨끗이 털어낸 한 방이었다. 그는 3루 베이스를 밟자마자 큼직한 손동작으로 기쁨의 세리머니를 하며 환호했다. 이승엽은 “2스트라이크 이후라 안타 치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장타를 쳐서 정말 기분 좋았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더라”며 웃었다. 이승엽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자신에게 ‘100점’을 줬다. 그는 “‘아시아 홈런왕’을 했던 2003년보다 더 소중한 날이다. 성적을 떠나 자신 있게 내 폼대로 스윙을 해서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는 최고참답게 투수진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그는 “말로만 듣던 삼성의 막강 투수진을 직접 겪었다. 투수들이 3점만 내주면 이긴다고 하더라. 2002년 때보다 타격 부담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그는 우승을 확정짓고 가장 먼저 부모님을 떠올렸다. 특히 2007년 1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는 “어머니가 보신 마지막 우승이 2002년이다. 지금 계셨으면 아주 좋아하셨을 거다. 어디 계시든 날 지켜주시리라 믿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팀에도, 가족에게도 효자였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SK와 삼성의 한국시리즈는 5차전부터 중립지역인 잠실구장에서 열린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만5000석 이상의 구장을 가진 서울 연고팀이 한국시리즈에 오르거나, 2만5000석 이상의 구장을 가진 지방 연고팀끼리 붙지 않는 한 5∼7차전을 잠실에서 치르도록 했다. 최대한 많은 팬이 경기장을 찾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SK와 삼성, 그리고 잠실의 원주인인 두산과 LG는 중립경기가 마냥 좋지만은 않다. 정규시즌 1위 삼성은 중립경기로 잠실에서 열릴 SK와의 한국시리즈 5∼7차전에서 더그아웃을 선점할 권리가 있다. 삼성은 3루 쪽 더그아웃을 골랐다. 3루 쪽은 방문 팀 라커룸이 따로 없어 더그아웃 복도에 선수들 가방을 늘어놓아야 한다. 탈의실도 없어 선수가 구단 버스나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모두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은 당연히 없다. 삼성 관계자는 “외국인 선수가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태블릿PC를 만지작거리는 걸 볼 때마다 부끄러워진다”며 한숨쉬었다. 그래도 삼성이 3루 쪽을 고른 건 1루 쪽을 써도 이런 불편함이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중립경기 때는 홈 팀 라커룸을 쓸 수 없다. 그래서 그나마 잠실에서 방문경기를 할 때 늘 써 와 익숙한 3루 측을 골랐다. 안방인 대구구장에서도 3루 쪽을 더그아웃으로 쓰는 점도 고려했다. SK도 울상이다. 잠실구장에서 늘 3루 쪽에서 경기장을 바라보다 1루로 옮기게 돼 생긴 시야의 차이는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열악한 시설은 답답하기만 하다. 3루 더그아웃과 마찬가지로 복도에 짐을 늘어놓아야 하는 데다 원래 1루 쪽이 홈 팀을 위한 공간이라 중립경기 팀이 마음 편히 쓸 공간이 거의 없다. SK 이만수 감독조차도 따로 감독실이 없어 두산의 선수휴게실을 임시로 감독실로 이용했다. 두산과 LG도 남의 잔치가 자신의 안방에서 열리는 게 탐탁지 않다. 두산 관계자는 “이제 프로야구 인기도 많이 올라갔는데 굳이 잠실에서 중립경기를 해야 하나 싶다”며 씁쓸해했다. 중립경기는 지방 구장의 열악한 환경 탓에 생긴 제도다. 보다 좋은 구장에서 큰 경기를 치르자는 취지다. 하지만 더그아웃에 늘어서 있는 선수들의 짐을 보면 잠실구장이 그럴 자격이 있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6월 잠실구장에서 공청회를 열어 “9회말 2사 후 만루홈런을 치겠다”며 야구장 시설 개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KBO 관계자는 “그때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다”며 한숨쉬었다. 박 시장의 그 ‘만루홈런’은 언제 터지는 걸까.조동주 기자 djc@donga.com}

프로배구 2012∼2013시즌은 상무 신협이 빠진 채 6개 팀으로 열린다. 이에 따라 3, 4위가 맞붙는 준플레이오프가 폐지됐다. 시즌 2, 3위의 플레이오프에 이어 1위와 맞대결하는 챔피언결정전만 열린다. 예년보다 포스트시즌행 티켓이 한 장 줄어든 셈이다. 6개 구단 감독은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시티에서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치열한 순위싸움을 예고했다.○ 우승은 LIG손해보험? 6개 구단 감독 가운데 50%가 LIG손해보험의 우승을 예상했다. 새로 영입한 쿠바 국가대표 카메호(26·206cm 102kg·사진)가 가빈(전 삼성화재)에게 필적할 만한 레프트 공격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경석 LIG손해보험 감독은 “지난 시즌 하위권에 머물렀기에 이제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선수단의 우승 열망도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기존의 강팀도 호락호락하게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 시즌 우승팀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은 “가빈이 러시아로 이적한 뒤 우리를 4∼5위 전력으로 평가하더라. 5년 전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지만 그때마다 우승했다. 경기가 예상대로 되는 게 아니란 걸 보여 주겠다”고 했다. 대한항공 신영철 감독은 “지난 시즌엔 준비가 부족해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에 졌다. 이번엔 다를 것”이라며 우승을 다짐했다. 현대캐피탈 하종화 감독은 사자성어 ‘붕정만리(鵬程萬里)’를 인용하며 “(전설의 새) 붕새를 타고 만 리를 날아가는 심정으로 멀고 험한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꼴찌는 KEPCO? KEPCO는 이번 시즌 유력한 꼴찌 후보다. 지난 시즌 승부 조작 파문의 여파로 선수층이 얇아졌기 때문이다. 실업팀인 화성시청의 세터 이동엽을 영입한 게 전부다. 이날 KEPCO 신춘삼 감독을 제외한 모든 감독이 KEPCO를 꼴찌 예상 팀으로 꼽았을 정도다. 그러나 신춘삼 감독은 “쑥스럽지만 우리도 우승이 목표다. 팀 전력이 정상이 아니지만 꼴찌는 김호철 감독의 러시앤캐시가 할 것”이라고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신 감독은 “러시앤캐시만큼은 꼭 이길 것”이라고 했지만 김 감독 역시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듯 웃어넘겼다. 프로배구 2012∼2013시즌은 11월 3일 오후 3시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리는 삼성화재와 KEPCO의 경기로 화려한 막을 올린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그는 프로야구 선수로선 그저 그런 대주자 요원이었다. 프로 10년간 통산 타율은 1할대(0.195)에 불과했다. 누가 봐도 이름 없이 잊혀질 수많은 선수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야구를 놓지 않았다. 야구단 운영팀 직원을 거쳐 선수를 가르치는 코치가 됐고 이젠 한 구단의 감독 자리에 올랐다. 사람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 딱 넥센 염경엽 감독(44)을 위한 말이다. 23일 목동구장에서 염 감독을 만나 그의 인생과 야구를 들었다.○ 대주자 염경엽 염 감독은 아마추어 시절엔 ‘잘나가는’ 선수였다. 광주일고 시절 청소년대표를 했고 고려대 4학년 때는 전국대학야구 추계리그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대회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그는 1991년 태평양(현대의 전신)에 신인 2차 지명 1순위로 입단했다. 신인임에도 숱한 선배를 제치고 첫해부터 주전 자리를 꿰찼다. 전반기까지만 해도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거론될 만큼 두각을 보였다. 그때부터 유혹이 시작됐다. 경기를 마치고 야구장에서 나오면 수십 명의 여자가 그의 차를 둘러쌌다. 간신히 차에 올라 집으로 가면 그 앞에도 여성 팬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인기에 스스로 취해버려 훈련을 게을리했다. 점차 하향세를 타던 그는 1996년 개막전에서 당시 신인 박진만(현 SK)에게 밀려 주전 엔트리에서 탈락하고 만다. 그는 “애국가를 부르던 중 내 이름이 없는 전광판을 보고 화장실에 가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려 했다. 당시 캐나다는 자국에 도움이 될 만한 다른 나라의 유명 스포츠인에겐 바로 영주권을 내주는 정책을 썼다. 그러나 그마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대사관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1순위로 사업을, 2순위로 야구교실을 적어내는 바람에 영주권 심사에서 탈락했다. 캐나다 측에서 사업을 우선하는 자는 자국 체육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떨어진 실력에 이민을 가려고 한눈까지 팔았으니 야구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1996년부터 대주자, 대수비 요원으로 전락한 그는 2000년 현대가 우승한 후 쓸쓸히 유니폼을 벗었다.○ 운영팀 염경엽 은퇴한 그는 2001년 야구단 운영팀 과장이 됐다. 현대 구단으로선 최초의 선수 출신 직원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남들과 다르게 일하는 법을 찾는 데 집중했다. 그는 운영팀을 맡은 직후 용산전자상가에서 노트북컴퓨터를 샀다. 당시 모든 구단에서 손으로 써온 보고서 양식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생전 처음 만져보는 노트북과 13시간 동안 씨름하며 10종류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여기에 꼬박 반나절이 걸린 이유는 그가 모든 보고서를 선 하나씩 일일이 그어가며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잘 몰라도 새로운 것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선수의 경험이 담긴 보고서는 이전의 것들과 확실히 달랐다. 신망을 얻은 그는 운영팀장 대행에 스카우트 업무까지 맡았다. 그는 “일이 너무 많아서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기가 그렇게 싫었다.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처음 운영팀을 맡을 때 현대와 했던 약속 때문”이라고 했다. 염 감독은 원래 코치를 맡고 싶었다. 그래서 대주자 시절부터 더그아웃에서 상대 투수의 ‘구세’(투수가 공을 던질 때의 세밀한 습관)를 유심히 관찰하고 이를 메모해왔다. 외국 야구교본도 모조리 사들여 읽었다. 이를 잘 아는 현대는 2001년 그에게 운영팀 자리를 제안할 때 “2년만 이 일을 해주면 코치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약속한 2년이 지났지만 구단은 “1년만 더 해 달라”고 말을 바꿨다. 또 1년이 지났지만 구단의 대답은 똑같았다. 그 다음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마다 사표를 쓰며 ‘저항’했지만 구단의 간곡한 요청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는 “운영팀 일을 너무 잘한 게 화근이었다”며 웃었다.○ 코치 염경엽 염 감독은 2006년에야 꿈에 그리던 수비코치를 맡았다. 들뜬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두 달 만에 현장의 벽에 부닥쳤다. 선수들에게 아무리 기술을 가르쳐줘도 그 이상으로 응용할 줄을 몰랐다. 그는 “선수들이 이유를 모르고 시키는 대로만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 후 눈높이를 낮추고 이걸 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시키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때 그에게 기초를 배운 게 당시 현대에서 뛰던 강정호(넥센) 황재균(롯데)이다. 그는 2007년을 끝으로 현대가 해체되자 LG로 적을 옮겼다. 처음에는 운영팀을 맡았지만 곧 수비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원래 하고 싶었던 건 역시 코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십몇 년간 몸담았던 친정과 새로운 팀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결국 그는 지난해 11월 LG를 나왔다. 야인으로 돌아간 그는 ‘야구백과사전’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당시 넥센 김시진 감독의 주루코치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렇게 그는 4년 만에 친정 현대의 후신인 넥센으로 돌아왔다. 그는 “친정팀에 와서 적응하는 데 딱 10일 걸렸다. 그게 친정의 힘”이라며 웃었다. 염 감독의 대주자 경험은 주루코치를 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선수 시절 더그아웃에서 봐두었던 투수의 사소한 습관을 고스란히 전수했다. 올 시즌 박병호와 강정호가 처음으로 20홈런-20도루를 달성한 것도 그의 덕이다. 그는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도루와 거리가 멀었던 둘을 불러 “이진영이 2008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로 성공한 건 두 자릿수 도루를 했기 때문”이라고 설득했다.○ 감독 염경엽 염 감독은 10일 넥센의 사령탑에 올랐다. 올 시즌 팀을 도루 1위(179개)로 끌어올린 공을 인정받았다. 감독이 된 그는 또 새로운 시도를 했다. 선수단 상견례(23일) 전인 21, 22일 모든 코칭스태프와 1박 2일의 워크숍을 가진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올 시즌의 과오를 되짚으면서 다음 시즌 목표를 제시했다. 그 목표는 ‘4강’이나 ‘우승’ 같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의 성격처럼 세밀한 것이었다. 타자에겐 팀 출루율 1위와 최소 삼진, 투수에겐 최소 볼넷과 최소 도루시도 허용을 주문했다.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야 선수들이 집중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투수 및 타격코치는 이 자리에서 시즌 중에 말하지 못했던 여러 문제점에 대한 해법을 주고받았다. 염 감독은 선수와 구단 직원, 코치를 모두 경험한 몇 안 되는 감독이다. 현장과 구단을 모두 잘 아는 그는 “모든 오해는 소통 부재에서 생긴다”고 했다. 그는 “만약 구단 고위 관계자가 감독의 작전과 선수 기용에 의문을 품으면 그 즉시 감독에게 이유를 물어 이를 풀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없어 오해가 커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염 감독은 이미 2군 시스템 개혁, 새 포수 영입 등 혁신에 돌입했다. 그에게 다음 시즌 예상 성적을 물었다. 대답은 단호했다. “커리어가 하나도 없는 내가 입으로 아무리 말해봤자 의미 없다. 다음 시즌에 뭐든 직접 보여주겠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늘 같은 결과가 반복됐다는 게 실망스럽다.” 25일 금의환향한 클리블랜드 추신수(사진)의 목소리엔 답답함이 묻어났다. 그가 주전으로 뛰기 시작한 2008년부터 5년째 소속팀이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신수는 올 시즌에도 타율 0.283에 16홈런 67타점으로 제 몫을 한 반면 클리블랜드는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4위에 머물며 또 가을잔치 진출에 실패했다. 추신수는 이날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거취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내비쳤다. 그는 “팀을 옮길 수 있다면 이기는 팀으로 가고 싶다”고 밝혔다. 특히 올 시즌까지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것에 대해 “1년간 공을 들인 농사가 수포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클리블랜드는 영세한 구단이다. 추신수는 내년 시즌 직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몸값이 치솟을 가능성이 높아 그 전에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는 이에 대해 “아직은 나도 에이전트도 모른다. 구단에서 결정할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추신수가 내년 3월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할 수 있을까. 그는 “WBC는 클리블랜드의 스프링캠프 일정과 겹친다. 새로 부임한 테리 프랑코나 감독의 허락을 받아야 해 확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몸 상태도 변수다. 그는 “올 시즌에 온몸이 부상병동이었다. 지난해 수술한 손가락에 다시 금이 가기도 했다”면서도 “내 옷장에 걸려 있는 옷 중에서 국가대표 유니폼에 가장 애착이 간다. 팀과 에이전트가 조율하고 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쇼! 삼성의 최형우∼”(원곡 김원준의 ‘show’) “와이번스의 박진만∼ 박진만∼”(원곡 비스트의 ‘Beautiful’) 24일 삼성과 SK의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린 대구구장에는 양 팀 선수의 응원가가 연신 울려 퍼졌다. 경기 중 쉬는 시간에도 최신 가요가 계속 흘러나왔다. 대다수의 관중은 끊임없이 나오는 노래에 흥겨워한다. 다만 이 음악이 ‘억’ 단위의 고가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야구장에서 나오는 최신 가요와 기존 곡을 개사한 응원가는 모두 저작권 사용료를 낸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마케팅 자회사인 KBOP는 2001시즌부터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판매용 음반에 대한 저작권료를 지급해왔다. 2000년 7월 개정된 저작권법에 따라 전문체육시설에서 쓰는 음악에 대해선 사용료를 징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KBOP가 8개 구단을 대표해 비용을 내면 나중에 시즌 수익을 각 구단에 분배할 때 이 부분을 공제한다. 2001시즌 1600만 원이었던 저작권료는 2010시즌 7040만 원, 2011시즌엔 1억4900만 원으로 올랐다. 저작권료가 10년 동안 10배 가까이로 오른 셈이다. 이는 그만큼 프로야구의 인기가 높아졌고, 지난 시즌부터 요율(입장수입에 대한 저작권료 비율)이 0.2%에서 0.3%로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1억 원대였던 음악사용 대가는 올 시즌 3억∼4억 원으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는 저작권료뿐 아니라 노래를 부른 가수와 음반 제작자에 대한 보상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2009년 7월 저작권법은 판매된 음반을 사용해 공연을 하면 실연자와 제작자에게 보상금을 주도록 개정됐다. KBOP는 법 개정 후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한국음원제작자협회와의 오랜 협상 끝에 두 단체에 2010, 2011시즌분을 올해 한꺼번에 지급하기로 했다. 보상금은 통상 당해 저작권료의 50∼60%다. 이 비용은 해당연도 시즌이 끝나면 이듬해 정산해 지급한다. 보상금이란 개념은 나라별로 천차만별이다. 일부 유럽국가에는 있는 반면에 미국 일본 중국에는 없다. KBOP는 보상금 때문에 음악 관련 지출이 2, 3배로 뛴 데다 협상 창구도 3개로 늘어 고충이 크다. 갑자기 억대의 돈을 추가로 내야 해 가슴이 쓰린데 3곳과 매년 줄다리기까지 해야 한다. 저작권협회 실연자연합회 음원제작자협회도 국민 스포츠인 프로야구의 공익성을 인정하고 협상 창구를 일원화하려는 노력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권리 보호를 위해 저작권의 요율을 더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등 ‘이익’에만 집착하면 그 노래가 팬들에게는 더이상 응원가로 다가가지 않을 수도 있다. ‘상생’이 오래가는 법이다.조동주 스포츠레저부 기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