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우

주현우 기자

동아일보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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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woojoo@donga.com
  • “진작 싱크홀 지도 있었다면… 땅은 메우면 되지만 오빤 안돌아와”[히어로콘텐츠/크랙]

    “이런 지도가 진작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오빠가 그런 사고를 겪기 전에….” 26일 서울 강동구 명일2동 대명초교 교차로 인근에서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을 만난 박수빈 씨(31)는 본보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를 손에 들고 말했다. 그의 오빠 박평수 씨(33)는 올해 3월 이곳에서 발생한 싱크홀 사고로 숨졌다. 사고 지점에서 멀지 않은 강동구 길동에 사는 수빈 씨는 3개월이 지난 지금도 불안하다. “이 동네에 싱크홀 사고가 또 나진 않을까요? 저는 날 것 같아요. 골목마다 공사장이 너무 많이 보여요.”● 싱크홀로 빨려 들어간 33세 청년 석 달 전 사고 당일 평수 씨의 일과 시작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3월 24일, 전날 늦게까지 야식을 배달한 평수 씨는 오전 9시 알람 소리에 깼다. 배달 일은 평수 씨가 어머니, 여동생 몰래 4년 전 시작한 부업이었다. 그는 2018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사업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거래처에 돈을 떼여 빚이 생겼다. 여기에 법정 다툼까지 얽혔고, 평수 씨는 주 7일 배달일을 시작했다. 그날 평수 씨는 점심 ‘배달 콜’이 몰리기 전인 오전 11시부터 나가 주문을 기다렸다. 오전 11시 37분 샐러드, 11시 42분 볶음밥, 낮 12시 6분 커피, 12시 33분 샐러드, 12시 44분 곱창, 12시 50분과 53분 햄버거. 평수 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강동구 일대에 배달 7건을 마쳤다. 오후 2시 반 평수 씨는 잠깐 집에 들러 어머니가 차려준 김치볶음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평수 씨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오후 3시 자신의 본업인 통신사업체 사무실로 출근해 잠시 남은 업무를 처리했다.평수 씨는 저녁 배달을 위해 오후 5시 사무실을 나섰다. 오후 5시 50분 떡볶이, 6시 3분 햄버거 배달을 마치고 다음 배달 음식을 받으러 오토바이를 몰았다. 그가 명일2동 대명초교 교차로를 지나는 순간 발밑에서 땅이 주저앉았다. 오후 6시 28분 30초 평수 씨는 폭 18m, 깊이 20m 싱크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생전 그의 모습이 포착된 마지막 순간이었다.● 유족들, 아직 사고 원인도 듣지 못해 그날 오후 10시쯤 평수 씨의 동료 라이더가 집에 찾아왔다. “싱크홀 사고가 났는데 뉴스 영상 속 오토바이가 평수 오토바이와 같은 기종 같아요.” 늘 자정이 다 돼야 일을 마쳤기에 한창 배달 중일 줄만 알았던 오빠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 3개월이 지난 이달 24∼26일 히어로팀은 싱크홀 위험 지역과 사고 사례를 분석한 ‘크랙: 땅은 이미 경고를 보냈다’ 시리즈에서 전문가들과 제작한 안전지도를 공개했다. 평수 씨가 숨진 강동구 명일2동, 수빈 씨와 어머니가 살고 있는 길동은 안전지도에서 싱크홀 발생 위험이 높은 4등급 지역이었다. 수빈 씨는 “가장 위험한 4, 5등급 지역만 체계적으로 잘 관리해도 사고 발생률을 낮출 수 있었을 텐데. 서울시는 이런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해당 지점에 싱크홀이 생긴 이유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는 당초 5월 말까지로 예정했던 조사 기간을 7월 말까지 연장했다. 서울시는 4월 20일 사고 지점 보수를 마치고 도로를 정상 개통했다. 예전처럼 그 위로 차가 다닌다. 수빈 씨는 국토부나 서울시로부터 아직 사고의 원인이 뭔지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별다른 연락도 없었다. 수빈 씨에게 거듭 어쩔 줄 몰라 하던 사람은 사고 지점 바로 앞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던 이충희 씨뿐이었다. 그는 사고 징후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알린 인물이었다. 이 씨는 서울 지하철 9호선 굴착공사의 영향으로 주유소 바닥에 균열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 공사 관계자, 서울시 측에 여러 차례 항의했다. 사고 당일 오전에도 빗물받이에 작은 구멍이 생긴 걸 발견해 신고했다. 사고 이후 주유소 운영을 중단한 이 씨는 지자체 등에 피해 복구를 요구했다. 그는 수빈 씨에게 평수 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사람이 죽었는데 나는 먹고살자고 소리를 낸다는 게 참,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땅은 다시 메우면 되지만 사람은 안 돌아와” 수빈 씨는 사고가 잊혀지고 또 다른 사람이 비슷한 사고를 당할까 우려했다. 그는 “국가가 관리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피해자가 생길 것”이라며 “우리가 백날 뭐라고 한들 관리자들이 잘해줘야 하는데. 저 같은 시민 한 명이 얘기한들 누가 들어주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무너진 땅은 다시 메우면 되지만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며 “저희 가족의 일상은 오빠가 떠난 그날에 멈췄다”고 말했다.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공승배 기자 ksb@donga.com}

    • 202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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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년간 전국 싱크홀 사고 1448건, 정부 조사위 꾸려진건 3건뿐[히어로콘텐츠/크랙下-②]

    싱크홀 사고가 인명 및 재산 피해로 이어지고 있지만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모나 피해가 큰 사고는 정부가 전문가들로 이뤄진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중앙사조위)를 구성할 수 있는데 실제 구성 비율은 0.2%에 불과했다. 조사위원에게 강제적인 조사 권한도 없어 민간 공사의 경우 시공사 등이 조사를 거부하면 사고 현장에도 못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 숨진 싱크홀, 사고조사위 구성 안 해현행법에 따르면 정부는 면적 4m² 이상 또는 깊이 2m 이상의 싱크홀 사고에 대해선 전문가들을 모아 중앙사조위를 구성할 수 있다. 보통 토질, 터널, 지하 안전 등 전문가 12명 이내로 구성되며 6개월간 조사할 수 있고, 추가로 3개월 활동을 연장할 수 있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2018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발생한 전국 싱크홀 사고 1448건을 분석한 결과, 중앙사조위 구성 요건을 충족하는 사고는 총 649건이었다. 이 중 실제로 중앙사조위가 구성된 건 3건(0.2%)이었다. 2020년 경기 구리시 교문동 싱크홀, 2022년 강원 양양군 낙산해수욕장 싱크홀, 올해 3월 서울 강동구 명일2동 싱크홀 때만 중앙사조위가 구성됐다.반면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친 지난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싱크홀 사고 때는 중앙사조위가 구성되지 않았다. 2021년 1월 경기 안산시의 한 건설현장에서 주변 도로 80m가 무너질 정도로 큰 싱크홀이 발생했지만 이 역시 중앙사조위는 구성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구성 기준을 알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2021년 구성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이후에도 구성 기준을 충족한 싱크홀 사고 239건 중 2건(0.8%)만 중앙사조위가 구성됐다.● 권한 없는 조사위원, 현장에 못 들어가기도정부가 조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며 대부분의 싱크홀 원인 조사는 지방자치단체 몫이 됐다. 지자체도 사고가 터지면 해당 과 공무원 등으로 자체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지만 역량 및 전문성 부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2020년 8월 구리시 교문동에서 아파트 앞 도로가 가라앉아 폭 16m, 깊이 20m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했다. 인근에서 지하철 굴착 공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구리시는 자체 조사 결과 ‘상수도관 파열’ 탓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구리시 관계자는 “해당 공사는 발파 방식이 아닌 기계를 이용한 굴착 방식이라 싱크홀과 연관성이 낮다”고 했다.하지만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국토부가 조사에 착수했고 4개월 뒤 “상수도관은 사고 발생 이후에 파손됐다. 싱크홀과는 무관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구리시와 정반대의 결론이 나온 것이다. 김정환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싱크홀 사고 원인을 조사할 때는 전문가가 동행해 조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지적했다.전문가들은 싱크홀 사고가 나면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사조위를 구성해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더해 실제 조사를 수행하는 위원들의 권한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도 등 여러 지자체 사조위에 참여한 이규환 건양대 재난안전소방학과 교수는 “조사위원들이 사고 현장에도 못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법 개정을 통해 강력한 조사 및 자료 요구 권한을 부여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축구장 134개’ 땅 꺼졌는데… 원인-책임 두고 6년째 갈등당진시 “한전 굴착공사 때문” 결론한전 “바다 매립지 특성 고려해야”원인 규명을 둘러싸고 법적 분쟁까지 벌어진 싱크홀 사고도 있다. 2019년경 충남 당진시 아산국가산업단지 부곡공단에서는 95만8600m²(축구장 134개 넓이) 규모의 부지가 2.5cm 넘게 꺼지는 대규모 싱크홀 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역대 국토부에 신고된 싱크홀 사고 중 가장 거대한 규모의 사고다. 당시 땅 밑에선 한국전력이 송전선을 지하로 연결하기 위해 깊이 60m짜리 굴착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이 사고로 공단 내 공장 수십 동에서 벽이 갈라지거나 바닥이 내려앉는 등 피해를 입었다.한전은 2017년 10월부터 굴착공사를 시작했지만 공장 대표들이 이를 알아차린 건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였다. 그사이 한전은 공사 도중 지하수가 유출되는 등 문제로 두 차례나 공사를 중단했지만 그때마다 공법을 바꿔 굴착을 재개했다. 싱크홀 사고 발생 직후 한전은 A학회에 1억2000만 원의 용역비를 주고 사고 조사를 의뢰했다. A학회는 이듬해 ‘굴착공사의 영향으로 싱크홀이 발생한 건 맞지만 바다 인근 매립지라는 특성상 자연적으로 발생한 싱크홀의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요지의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피해 공장 대표들은 용역에 참여한 A학회 위원들을 경찰에 고발하고, B협회에 의뢰해 정반대 결론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싱크홀 발생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한전에 있다는 결론이었다.갈등이 지속되자 당진시는 사고 발생 1년 2개월 만인 2020년 3월 ‘당진시 지하사고조사위원회’를 꾸려 9개월간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위는 ‘한전의 전력구 굴착공사에 따른 지하수 유출’을 부곡공단 싱크홀 원인으로 결론 내렸다. 그러자 한전은 부사장까지 나서 “부곡공단 지반침하에 원인을 제공한 것에 대해 분명히 사과한다.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하지만 한전은 2022년 10월 당진시가 ‘공사 현장을 원상복구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리자 불복하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0월 법원이 한전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한전은 곧바로 항소했다. 한전 관계자는 “싱크홀 사고와 관련된 터널 구간에 대해선 원상복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사고와 무관한 구간에 대한 원상복구 명령은 과하다고 판단해 항소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 공장 대표들의 보상 문제를 두고서도 “복구 비용을 정하는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며, 결과를 수용할 예정”이라고 했다.법정 공방이 지속되는 동안 피해 공장 대표들은 건물안전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공장에서 일을 이어가고 있다. D등급은 지방자치단체가 사용 제한 여부를 결정해야 할 정도로 피해가 심한 상태다. 지난달 28일 오후 찾은 공단에서는 바닥이 10cm 넘게 가라앉아 있거나 가스관이 휘어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입주한 송근상 현대호이스트 대표는 “차라리 다 무너져 내렸으면 좋겠다. 사람이 죽어야 관심을 갖지 않겠느냐”고 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크랙: 땅은 이미 경고를 보냈다’는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를 자체 제작, 공개하고 국토교통부 서울시 부산시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싱크홀 자료의 문제점을 파헤쳤습니다. 디지털 인터랙티브 버전 ‘크랙’ 시리즈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 전용 페이지인 디오리지널(https://original.donga.com/project/series?c=0311)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크랙 디지털 인터랙티브 기사 보기히어로콘텐츠팀▽팀장: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취재: 공승배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임상아 ND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소연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이형주 인턴 당진=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공승배 기자 ksb@donga.com임보미 기자 bom@donga.com}

    • 202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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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크홀 지도 공개를” 국회 입법 팔걷었다[히어로콘텐츠/크랙下-①]

    지방자치단체장이 싱크홀(땅 꺼짐) 안전지도를 만들어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입법이 추진된다. 잇단 싱크홀 사고에 시민 불안이 커지고 있는데도 서울시, 부산시 등 지자체가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자 국회가 나선 것이다.25일 안태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지하안전법) 일부개정안에는 시도지사가 싱크홀 안전지도를 제작하고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안 의원은 “지반침하 예방은 단순한 안전 문제를 넘어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할 과제”라고 배경을 밝혔다. 같은 당 황명선 의원은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보호에 필요한 싱크홀 정보의 경우 지자체장이 적극적으로 공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서울시는 강동구 명일2동 싱크홀 사고로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친 뒤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공개하라는 요구에도 비공개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도시철도 공사 구간에서 싱크홀이 14차례나 발생한 부산시 역시 ‘지반침하 위험지도’를 만들었지만 시민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도 2014년 서울 송파구 대형 싱크홀 발생을 계기로 785억 원을 들여 ‘지하공간 통합지도’를 만들었지만 일반 시민은 볼 수 없다. 국토부 승인을 받은 일부 개발사업자 등만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싱크홀 지도 공개와 함께 지자체의 싱크홀 대응을 더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윤종군 민주당 의원은 싱크홀 우려가 있으면 국토부가 지자체장에게 보강, 보수 등을 명령할 수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했다.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싱크홀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지하 안전 평가 전문가인 이재호 지원텍 대표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든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처럼 지반침하에 대한 대응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서울시와 정부가 보유한 싱크홀 지도들을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부산 시민단체 건강사회복지연대의 이성한 사무처장은 “시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지하 안전지도를 정밀하게 만들어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혈세 들인 싱크홀 지도, 핵심정보 빠져… 건물 기울어도 비공개비공개에 무용지물 된 ‘싱크홀 지도’국토부가 만든 ‘지하공간 통합지도’ 지하수-공동 정보 없고 접근 제한 서울-부산시 제작 지도도 상황 비슷 철도공사장 옆 3년간 14번 싱크홀 현장 본 전문가 “땅속이 갯벌 같아” 시민들 “눈앞 땅 꺼져도 상태 몰라”지난달 28일 부산 사상구 사상∼하단선 도시철도 공사 현장 인근. 새벽시장 바닥에 균열이 여럿 보였다. 길이 5m가량의 균열 틈새에 손가락을 집어넣자 쑥 들어갔다. 주변 화장실, 계단, 건물, 기둥에는 금이 가 있었다. 전봇대가 쓰러질까 봐 보강해 놓은 장치도 보였다.이 주변에서는 최근 3년간 14차례 싱크홀이 발생했다. 지난해는 8차례, 올해는 3차례 있었다. 부산시는 지하 안전 관리를 강화한다며 국비 5800만 원을 지원받아 2년 전 ‘지반침하 위험지도’를 만들었지만 시민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사이 땅이 12cm 가라앉아 4층짜리 건물이 기울어지면서 사무실을 급히 이전한 주민도 있었다.● 싱크홀 핵심 요소 빠지고 자료도 비공개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부산에서 만난 새벽시장 상인회 이복용 관리부장은 “눈앞에서 땅이 꺼지고 균열이 늘어나는데 시에서 하는 공사에 대해 우리가 뭘 알겠나.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집과 일터 주변에서 자꾸 싱크홀이 발생하는데 부산시가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자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최소한의 대비를 위해서라도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특히 사상구 공사 현장처럼 싱크홀 사고가 빈번한 지역은 조속한 자료 공개와 이를 통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달 20일 히어로팀과 함께 이 지역 굴착공사 현장을 살펴본 조복래 지하공간연구소장은 “지하 15m 정도를 파 내려갔는데도 여전히 땅이 갯벌 같다. 그만큼 땅이 약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낙동강 하구에 있어 모래 퇴적층이 두껍게 형성돼 있다. 굴착공사장 바닥은 물이 흥건한 진흙 상태였다. 조 소장은 “일반 땅이라면 이 정도 깊이를 파면 비교적 단단한 땅이 나타날 텐데 여기는 아직 수십 m는 더 파야 멀쩡한 땅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부산시가 만든 싱크홀 지도에는 이 같은 지질 정보가 빠져 있다. 지질, 지하수, 싱크홀 이력 등은 싱크홀 발생 위험을 판단하는 핵심 요소들인데 정작 싱크홀 피해 예방을 위한 지도에는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지도에 반영됐다는 지하시설물 정보 역시 시설물이 매설된 깊이, 노후화 정보 등은 담기지 않아 싱크홀 예방이나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국토교통부가 서울 송파구 대형 싱크홀 사건 이후 2022년 만든 ‘지하공간 통합지도’에도 지하수, 공동(空洞·땅속 빈 공간), 과거 싱크홀 이력 등이 빠져 있다. 지도에 표시된 지하시설물 위치와 실제 위치가 다른 곳도 여럿이었다. 게다가 국토부의 지도 자료는 보안상의 이유로 일반 시민이 접근할 수 없다. 국토부가 승인한 일부 사업자에게만 종이 자료 형태로 잠깐 대여해 준다. 최근 싱크홀 사고가 전국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만큼 자료 공개의 필요성이 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서울시 역시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시민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집값, 부동산 민심을 우려해서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지도에는 지하수, 지질, 지하구조물 등 중요 요소들이 빠져 있어 싱크홀 예방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민 불안 커져… 지자체는 ‘네 탓 공방’부산시는 25일 특별대책을 발표하고 이달 말 공동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 결과를 공개하고 시에 도로안전과를 신설해 지하 안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시가 공개한다는 GPR 자료는 ‘지반침하 위험지도’와는 다른 것으로, 최대 지하 1, 2m 정도의 상황만 알 수 있다. 시는 싱크홀 사고를 신고한 시민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지도에 지하매설물 현황 정도만 반영하고 있어서 실제 싱크홀 위험도를 제대로 구현하기 어려워 공개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현재 ‘도로함몰 안전지도’로 부르며 지반 탐사 우선 구간 등을 정하는 데 보조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부산 싱크홀 사고는 부실한 시공 및 관리·감독 문제까지 겹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공사 현장의 사업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2월부터 지하수가 공사장에 계속 흘러들어와 한동안 공사가 중단됐다. 지하수 유입은 대표적인 싱크홀 유발 요인이다. 부산시 산하 공공기관인 부산교통공사(시행사)는 건설사업관리단(감리)에 대책을 요구했고, 감리단은 “물막이 기능이 더 좋은 콘크리트 벽체로 바꿔 시공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공사 측은 정부에서 추가 예산을 받기 곤란하다며 사장 등 상부에 이를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달에는 공사 현장 인근 지하 우수박스에서 균열까지 발견됐다. 사상구는 지하철 공사가 원인이라고 주장했고, 공사 측은 “공사 때문이 아니다”라며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임종철 부산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부산같이 지반이 연약한 곳이나 지하 개발사업이 활발한 대도시에선 싱크홀을 예방하기 위한 지도가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학계 “지하 안전평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전수조사를”지하안전協, 싱크홀 예방 토론회 본보 제작 지도엔 “위험도 보여줘”“지반조사 결과는 반드시 전문가에게 다시 검증을 받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이종섭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지방자치단체가 지하안전평가를 기준과 원칙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유재성 고려컨설턴트 대표)동아일보가 히어로콘텐츠 ‘크랙: 땅은 이미 경고를 보냈다’를 통해 ‘서울시 싱크홀 안전 지도’를 공개한 이후 전문가들은 싱크홀 사고를 막기 위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25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한국지하안전협회 주최로 열린 ‘지반침하사고 예방 대토론회’에서는 지반, 지하안전, 지질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반복되는 싱크홀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논의했다. 유 대표는 “균열, 침하 등 위험 구간은 설계에도 반영해서 사고 시 즉시 복구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며 “국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종태 엘머스코리아 전무는 “현장에 가보면 이미 싱크홀 사고가 벌어졌던 곳인데도 계측기를 설치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이에 대한 확인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우선 효명이씨에스 부사장은 “장마철이 시작된 현재 지자체와 유관 기관이 협의해 우회수로, 집수정 규모를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동 지하정보기술 대표는 “지반침하 진단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엔지니어들이 작업에 몰입할 수 있도록 처우 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굴착공사 전 시행하는 지하안전평가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고명상 명동엔지니어링 대표는 “평가를 해보면 ‘지반이 안전하냐’고 물어보는 발주처는 한 곳도 없다. 공사 기한을 맞출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한 현장에서 설계 오류를 여럿 잡아냈지만 개선 요구가 묵살됐다고 말했다.협회는 히어로팀과 만든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를 이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공개했다. 이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동아일보가 분석한 요소들은 싱크홀 위험도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며 “위험한 지역을 선별했다면 그다음은 계측 등 촘촘한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최창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도심을 싱크홀 안전지역과 위험지역으로 나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싱크홀 발생 위험이 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은 서로 지하안전평가 기준을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위험한 지역은 소규모 공사도 정밀하게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용선 한국토질 및 기초기술사회 부회장은 “산에서 깊게 굴착하는 공사와 도심에서 얕게 굴착하는 공사 중 더 면밀히 관리해야 하는 곳은 후자”라며 위험도에 따라 평가 기준을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크랙: 땅은 이미 경고를 보냈다’는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를 자체 제작, 공개하고 국토교통부 서울시 부산시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싱크홀 자료의 문제점을 파헤쳤습니다. 디지털 인터랙티브 버전 ‘크랙’ 시리즈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 전용 페이지인 디오리지널(https://original.donga.com/project/series?c=0311)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크랙 디지털 인터랙티브 기사 보기히어로콘텐츠팀▽팀장: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취재: 공승배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임상아 ND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소연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이형주 인턴 부산=공승배 기자 ksb@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임보미 기자 bom@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 202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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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망 사고-깊이 5m 넘는 대형 싱크홀 모두 안전도 낮은 4, 5등급서 발생했다[히어로콘텐츠/크랙中-①]

    2019년 12월에 1명이 숨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싱크홀(땅 꺼짐) 지점에서는 지하보도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여의동은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한국지하안전협회와 제작한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에서 안전도가 낮은 5등급 지역이었다.지난해 8월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친 서대문구 연희동 싱크홀 지점은 사천빗물받이펌프장 유입관로 신설 공사장 인근이었다. 안전지도에서 5등급 바로 위인 4등급 지역이었다.히어로팀은 2018년 이후 서울에서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깊이 5m 이상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한 지점 6곳을 안전지도에서 분석했다. 국토교통부의 지하안전정보시스템(JIS)은 싱크홀 관련 자료를 2018년부터 집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해당 사고 모두 4, 5등급 지역에서 일어났다. 6건 중 사망 사고는 여의동, 연희동, 강동구 명일2동 등 총 3건이었는데 인근에 굴착공사가 진행 중이었다.깊이 6m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했던 마포구 대흥동, 깊이 5m 싱크홀이 생긴 송파구 석촌동은 4등급 지역이었다. 깊이 5m 싱크홀이 생긴 여의동은 5등급이었다. 원인은 모두 굴착공사 안전관리 부실, 되메우기 불량 등 인재(人災)였다.대형 싱크홀을 포함한 전체 싱크홀은 서울에서 2018년 이후 총 132건 있었는데 90건(68.2%)이 안전지도상 4, 5등급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지하에 묻어 놓은 상하수관이 손상돼 지하수가 흘러나오거나, 주변 굴착공사로 인한 여파가 원인이었다.지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지하 10m 이상을 파내는 굴착공사를 하려면 지반 안전을 증명하는 지하안전영향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명일2동 같은 경우 인근의 지하철 9호선 공사가 이 평가를 통과했지만 사고를 막지 못해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이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싱크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위험 지역을 미리 선별하고, 굴착공사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싱크홀 68% ‘안전 취약’ 4, 5등급서… 공사부실 41%선 인명피해서울 싱크홀 사고 분석해보니8년간 132건중 90건 4, 5등급 몰려 인명피해 주요 원인 ‘굴착공사 부실’ 서울內 깊이 10m 공사장 300여곳중 196곳이 ‘본보 안전지도’서 4, 5등급 “굴착공사 현장 수시 안전점검 필요”국토교통부가 집계를 시작한 2018년 이후 서울에서 발생한 싱크홀(땅 꺼짐) 132건 중 90건(68.2%)은 본보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의 4, 5등급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반, 지하수, 지하철, 지반침하 이력, 노후 건물 분포 정보 등 싱크홀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많을수록 해당 지역의 안전도는 낮아진다. 반면 안전도가 높은 1등급 지역인 관악구 대학동에서는 싱크홀이 한 번도 없었다.● 서울 싱크홀 68.2%는 4, 5등급 땅에서올해 1월 16일 서대문구 연희동 사천교 삼거리 인근에는 폭 1m, 깊이 1m의 싱크홀이 생겼다. 지하에서는 2020년부터 사천 빗물펌프장 유입관로 신설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공사로 연약해진 주변 지반을 보강하지 않은 것이 사고 원인이었다. 이 지점은 지난해 8월 29일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친 연희동 싱크홀 사고 지점에서 불과 500m 거리였다. 연희동은 안전지도에서 최하등급(5등급) 바로 위인 4등급이다.싱크홀 원인은 지하 매설물 손상, 굴착 공사 등 다양하다. 서울에서 발생한 싱크홀 중 63.6%는 ‘상하수도 및 매설물 손상’이 원인이었다. 하수관이 깨져 물이 흘러나올 때 흙이 쓸려가며 싱크홀이 생기는데, 지하 1∼2m 얕은 깊이에서 발생해 피해 규모가 크지 않다.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등의 피해가 큰 심각한 싱크홀은 지하 깊은 곳에서 진행되는 굴착공사 때문인 경우가 많다.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이 최근 10년간 벌어진 서울 싱크홀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굴착 공사 부실로 싱크홀 사고가 난 경우 40.7%는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반면 지하 매설물 손상으로 발생한 싱크홀이 인명 피해로 이어진 경우는 7.7%에 불과했다.● 지금도 196곳 대규모 굴착 공사 진행 중히어로팀 취재 결과 현재도 4, 5등급 지역에서는 대규모 굴착 공사가 여럿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싱크홀 위험을 점검하기 위해 최근 깊이 10m 이상 굴착공사 현장 300여 곳 주변 도로를 지표투과레이더(GPR)로 탐사 중이다. 이 중 196곳이 본보 안전지도에서 4, 5등급이었다. 5등급인 강동구 고덕2동에서는 지하철 9호선 연장공사를 포함해 10곳에서 깊이 10m 이상 굴착공사가 진행 중이었다.전문가들은 굴착공사장 주변에 공동(空洞·땅속 빈 공간)이 생긴 경우 얼마나 빠르게 커질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우려한다. 지난해 서대문구 연희동, 올해 3월 강동구 명일2동 싱크홀의 경우에도 사고 3, 4개월 전 탐사에서는 공동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시로 안전 여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명일동 싱크홀, 2년前 안전평가때 조사 누락인근지점 최대 허용치 겨우 통과 취약성 알고도 추가 조사 안해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친 서울 강동구 명일2동 싱크홀이 일어나기 전 수행된 굴착공사장 지하안전평가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지하안전법에 따르면 지하 10m 이상 굴착공사를 하기 전 지하안전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명일2동 일대에서 진행 중인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도 2023년 이 평가를 통과했다. 평가는 주요 지점(대표 단면)을 조사해 수치로 안전 여부를 나타낸다. 굴착을 하면 주변 땅, 구조물 등이 얼마나 영향을 받아 움직이는지 예측해 수치로 나타내는 식이다. 기준치를 초과하면 공사를 못 한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평가 보고서를 입수해 전문가들과 검증했다. 총 21곳 지점을 대표 단면으로 선정해 분석해놨는데 그중 싱크홀 지점과 가까운 지점은 ‘터널 상단 침하량’(터널 윗부분이 주저앉는 정도)이 24.86mm였다. 최대 허용 기준치(25mm)를 불과 0.14mm 차이로 통과했다. 그 주변은 대표 단면 선정 및 조사, 분석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구간에서 올해 3월 24일 싱크홀이 발생해 오토바이 운전자가 숨졌다.보고서를 본 전문가들은 “마지막 조사 지점이 기준치를 턱걸이로 통과했다면 그 주변은 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추가로 대표 단면으로 지정, 분석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지질 전문가인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교수는 “취약 단면을 선정한다면 당연히 포함됐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지하안전평가 업체는 “보고서 뒷부분에 사고 지점과 가까운 구간을 검토한 내용을 추가했다”며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많은 단면을 다 검토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크랙: 땅은 이미 경고를 보냈다’는 대형 싱크홀이 왜 굴착공사장 주변에서 발생하는지, 그 과정과 원리를 디지털 인터랙티브 기사로 소개합니다. 디지털 인터랙티브 버전 ‘크랙’ 시리즈는 25일 오전 3시 온라인 공개됩니다.▶크랙 디지털 인터랙티브 기사 보기▽팀장: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취재: 공승배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임상아 ND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소연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이형주 인턴 임보미 기자 bom@donga.com공승배 기자 ksb@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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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등급 땅 굴착공사, 싱크홀 감지기도 없어… 소장은 “지반 좋다”[히어로콘텐츠/크랙中-②]

    올해 4월 서울의 한 지하차도 굴착공사 현장. 기둥과 땅이 맞닿는 곳에 일정 간격으로 설치됐어야 할 계측기가 안 보였다. 계측기란 지반이 움직이거나 변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장비로 지표침하계, 지중경사계 등이 있다. 점검을 나온 정부 안전 점검단 관계자가 “계측기는 어디 있나요?”라고 묻자, 현장소장은 “곧 설치할 예정”이라고 대답했다. 점검단 관계자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터파기 공사하기 전에 설치해야 하는 걸 모르느냐”고 되묻자, 현장소장은 “이 현장은 지반이 워낙 좋아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동행한 이날 현장은 본보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에서 가장 안전도가 낮고 지반이 불안한 5등급 지역이었다.●계측기 위치 제각각… 불편하다고 옮겨 달아 점검단은 공사장 입구에서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콘크리트 기둥부터 살폈다. 표면에 균열이 보였다. 이곳 지반은 돌이 아니라 흙이 대부분이었다. 지반이 단단하면 시공이 간편하고 가격도 저렴한 토류판(흙막이 벽체)을 쓴다. 반면 지반이 붕괴되기 쉽거나 불안정한 곳은 콘크리트 기둥을 쓴다. 콘크리트를 타설해 벽을 세우는 방식으로, 시공이 어렵고 가격도 비싸다. 이곳은 콘크리트 기둥이 있었다.설계도상 흙막이벽 뒤에 설치했어야 할 계측기는 실제로는 약 6m 떨어진 도로 건너편 공터에 설치돼 있었다. 현장 담당자는 “원래 설치해야 하는 지점이 차가 다녀서 옮겼다”고 했다. 계측기 설치 지점을 마음대로 바꾸면 싱크홀 조짐을 감지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점검단 관계자는 “애먼 곳에 계측기를 설치하면 붕괴 조짐을 모를 수도 있다”고 했다.●붕괴 조짐도 감지 어려운데… 현장은 ‘무감각’ 공사장 붕괴를 막기 위해 설치된 버팀보들 주변에도 계측기가 없었다. 흙더미가 누르는 하중의 변화를 측정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였다. 바로 위에는 덤프트럭, 중장비 차량 등이 지나다녔다. 점검단은 현장 관계자들에게 “공사할 때 불안하지 않냐. 수천억 원을 쓰는 공사인데 계측기 비용 2억∼3억 원을 아끼느냐”고 지적했다. 히어로팀이 5월에 찾아간 경기의 한 지하철 공사장에서도 문제가 발견됐다. 김태병 국토교통부 기술안전정책관은 현장에 도착한 뒤 계측기 위치부터 확인했다. 흙막이 벽체 곳곳이 돌출되는 등 이상 징후가 보여서다. 현장 관리자는 반대편 벽면을 가리키며 “계측기는 저쪽에 설치돼 있다”고 했다. 원래 있어야 할 곳에서 10m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현장소장이 ‘문제없다’는 식으로 말하자 김 정책관은 “걱정이 된다. 최근 사망 사고가 난 굴착공사 현장들 돌아보면 소장님들은 다 ‘내가 30년 작업했는데 이렇게 해서 문제없었다’고 한다”고 말했다.●비용 아끼려 방수 대신 배수… 공사장은 물바다경기의 또 다른 지하철 노선 신설 현장은 배수 시설에서 문제가 발견됐다. 히어로팀이 점검단과 함께 터널에 들어갔을 때 바닥엔 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지하 터널 공사는 굴착공사 중에서 물 유입량이 가장 많다. 터널 주변을 전부 방수 비닐로 덮고 콘크리트를 많이 칠하면 물을 막을 수 있는데 문제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현장은 이 방식 대신에 배수펌프로 물을 퍼내는 방식을 쓴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다. 한 굴착공사 분야 전문가는 “원래 지하안전법상 지하수 유출량이 설계에서 정한 3단계 관리 기준(안전-주의-위험) 중 위험 단계에 해당하면 공사가 중지됐다”며 “그런데 민원이 너무 많아서 유출량이 이 기준을 넘어도 공사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하수 유출량이 기준치의 5배를 넘어도 그냥 공사하는 곳이 많다”며 “이런 현장 주변에서는 공동(空洞·땅속 빈 공간)이 100개씩 나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크랙: 땅은 이미 경고를 보냈다’는 대형 싱크홀이 왜 굴착공사장 주변에서 발생하는지, 그 과정과 원리를 디지털 인터랙티브 기사로 소개합니다. 디지털 인터랙티브 버전 ‘크랙’ 시리즈는 25일 오전 3시 온라인 공개됩니다.▶크랙 디지털 인터랙티브 기사 보기히어로콘텐츠팀▽팀장: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취재: 공승배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임상아 ND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소연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이형주 인턴 임보미 기자 bom@donga.com공승배 기자 ksb@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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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지도엔 없는 ‘지질-지하철-지하수’도 반영… ‘발밑 안전’ 첫공개[히어로콘텐츠/크랙上-②]

    서울시는 지난해 9월 “지반침하 우려도를 분석하고 수치화하는 ‘지반침하 안전지도’ 개발을 연내에 마치겠다”고 했다. 이 지도를 올 3월 서울 강동구 명일2동 싱크홀 사고 이후 공개해 달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그러나 서울시는 “공개 시 불필요한 오해와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며 비공개했다. 집값, 부동산 파장을 우려해서라는 분석도 나왔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한국지하안전협회 소속 지하공간 개발 설계·시공 엔지니어링 전문가 14명의 도움을 받아 지난 3개월간 공공데이터를 분석해 426개 행정동 단위의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를 직접 제작했다. 일반에 공개가 제한되는 노후 매설물 정보는 노후 건물 정보로 대체했다. 노후 건물 주변에 노후 매설물이 많다는 특성을 반영했다.● 민간 첫 싱크홀 안전지도, 정보 2만 건 반영싱크홀 안전도는 △지반(지질 분포, 토사층 두께, 충적층 두께) △지하수(지하수 수위, 수위 저하, 토양 침투 성능) △지하철(노선 분포도, 정거장 밀집도) △지반침하 이력(지반침하 사고 밀집도 및 규모) △노후 건물 분포(30년 이상 노후 건물 밀집도) 등 크게 다섯 가지를 기준으로 분석했다.히어로팀과 전문가들은 석 달간 이와 관련된 정보, 자료들을 취합한 뒤 각 행정동을 다섯 가지 주요 요인별로 등급을 매겼다. 이 등급들 중 안전도가 가장 낮은 등급을 해당 동의 종합등급으로 정했다. 지반 항목은 국토지반정보통합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서울시 시추 정보 7만 건을 이용했다. 지반 분석을 맡은 전문가들은 지도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각 행정동당 대표 시추공 정보를 최소 50개 이상, 총 2만 건 이상의 시추 정보를 분석했다.● 서울시 비공개 지도, 한강벨트에 4, 5등급 몰려히어로팀은 취재 과정에서 서울연구원 김정환 연구위원을 통해 서울시가 공개하지 않고 있는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지도와 히어로팀이 제작한 안전지도를 서로 비교한 결과, 두 지도 모두 안전도가 낮은 것으로 분류한 4, 5등급 지역이 일명 ‘한강 벨트’에 몰려 있다는 공통점이 발견됐다. 다른 안전도 최하 지역들도 서울시의 지도와 히어로팀의 지도가 대부분 비슷했다.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서울시 자료는 상하수관, 통신관, 전력관 등 ‘지하 시설물이 얼마나 밀집해 있느냐’를 기준으로 도로별 위험도를 나눴다. 위험도가 높게 분류된 곳은 지하 1, 2m 밑에 공동(空洞·지하 빈 공간)이 있을 확률이 높은 곳이다.● “굴착지 주변 위험 줄이는 데 지도 활용해야”히어로팀 지도와 다른 부분도 있었다. 종로구, 중구 등 구도심은 서울시 지도에서 대부분 위험도가 높은 5등급으로 분류됐다. 오래된 지하 매설물과 이 주변에 생긴 작은 공동이 많은 탓이다. 반면 히어로팀 지도에서는 이 지역 내 5등급은 을지로동 1곳뿐이었다.김 연구위원은 “서울시 자료는 어느 곳에 탐사 차량을 보내야 공동을 빨리 발견해 메울 수 있을지를 찾는 게 목표인 연구였다. 그래서 분류 기준도 면적 단위가 아닌 도로 경계선”이라고 했다. 서울시 지도의 한계도 드러났다. 지하 공간을 개발할 때 개발업자들은 지질, 지하수 정보를 반영해 안전 여부를 따지는데 서울시 지도에는 이 요소들과 지하철 현황도 반영되지 않았다. 히어로팀 지도에는 모두 반영된 요소들이다. 김 연구위원은 히어로팀 안전지도에 대해 “대형 지반침하 사고가 날 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들을 고루 반영했다”며 “이 지도를 보고 ‘몇 등급이냐’에만 관심을 갖기보다는 굴착 공사장 주변의 위험 요소를 줄일 수 있도록 정부 역시 대책을 마련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 보기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크랙: 땅은 이미 경고를 보냈다’는 인명, 재산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도심 싱크홀 문제를 파헤쳤습니다. 시민 불안은 커지는데 정부와 서울시는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히어로팀은 전문가들과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를 만들었습니다. 디지털 인터랙티브 버전 ‘크랙’ 시리즈는 24일 오전 3시 온라인 공개됩니다.▶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 보기히어로콘텐츠팀▽ 팀장: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취재: 공승배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임상아 ND▽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소연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이형주 인턴임보미 기자 bom@donga.com공승배 기자 ksb@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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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426개동 첫 ‘싱크홀 지도’ 절반이 안전도 낮은 4, 5등급[히어로콘텐츠/크랙上-①]

    올해 3월 서울 강동구 명일2동에서 도로가 꺼지며 오토바이 운전자가 숨졌다. 싱크홀(땅 꺼짐) 크기는 폭 18m, 깊이 20m로 서울에서 발생한 싱크홀 중 최대 규모였다. 옆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이충희 씨는 사고 두 달 전 주유소 바닥에서 실금을 처음 발견했다. 인근에서는 지하철 9호선 굴착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씨는 균열 틈새 폭이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1cm까지 커지는 것을 보고 공사 관리자들을 불러 “안전한 거냐”고 따져 물었지만 그들은 “우리 공사 때문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하에 있는 기름 탱크의 안전이 우려됐다.최근 잇단 싱크홀 사고가 인명 피해로 이어지자 ‘내 발밑이 안전한지’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지난해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완성했다고 발표했지만 명일2동 사고 이후에도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4월부터 석 달에 걸쳐 한국지하안전협회와 함께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를 만들었다. 사람과 기업, 각종 인프라가 집중된 서울에서 싱크홀이 발생할 경우 다른 지역보다 인명, 재산 피해가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동별로 △지반 △지하수 △지하철 △지반침하 이력 △노후 건물 분포 정보를 분석해 안전도를 1∼5등급으로 분류했다. 1등급에 가까울수록 안전하다.그 결과 서울 전체 면적(605.200km²)의 50.2%인 303.930km²는 안전도가 낮은 4, 5등급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총 426개 행정동 중 208개로 특히 한강 주변에 집중됐다. 과거 서울에서 벌어진 싱크홀 사망 3건, 깊이 5m 이상 대규모 싱크홀 사고 3곳을 지도와 비교해 보니 4, 5등급 지역이었다. 싱크홀 현황 집계가 시작된 2018년 이후 올해 5월까지 서울에서 총 132건의 싱크홀이 생겼는데 68.2%(90건)가 안전지도상 4, 5등급 지역인 것으로 확인됐다. 싱크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들이 실제 사고로 이어졌다는 뜻이다.▶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 보기기술 분석을 맡은 이호 한국지하안전협회장은 “4, 5등급 지역은 지반 침하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요인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이런 곳에서 굴착 공사를 할 때 엄격한 안전조치를 하지 못하면 대형 침하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말하면, 5등급 지역이라도 이제부터 안전 확보에 필요한 적정 공법을 쓰고 감독, 감리, 시공 안전조치를 철저히 한다면 싱크홀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회장은 “싱크홀은 초기의 작은 사고 징후에도 민감하게 대응해야 큰 피해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삼성1동-압구정동-여의동… 싱크홀 안전 4, 5등급 한강벨트 많아‘서울 싱크홀 안전지도’ 분석해보니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역 4번 출구. 지하철 공사 현장 주변의 보도블록이 군데군데 내려앉거나 깨져 있었다. 울퉁불퉁하게 내려앉은 바닥 곳곳에는 새벽부터 내린 비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바로 옆 시멘트 바닥에는 새끼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균열이 수 m 이어졌다. 화단, 환기구 등 구조물 곳곳에는 균열을 보수한 흔적이 보였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과 전문가들이 만든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는 서울 426개 동의 지반 상태 등을 분석했다. 이 중 국회, 지하철역, 한강공원 등이 있는 영등포구 여의동은 안전도 1~5등급 중 가장 낮은 5등급을 받은 33개 동 중 한 곳이었다. 지반, 지하수, 지하철, 노후 건물 분포에서 4등급을, 지반침하 이력에서 5등급을 받았다.● 5등급 여의동 가보니 굴착 주변에 균열여의동은 종합등급 5등급을 받은 33개 동 중 다섯 가지 평가 영역에서 모두 4등급 이하를 받은 유일한 동이었다. 지하안전정보시스템(JIS)에 싱크홀 사고가 취합되기 시작한 2018년부터 최근까지 여의동에서는 6번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서울의 동들 중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은 싱크홀이 한번 일어난 곳 주변에서 다시 일어날 확률이 높다며 주의 깊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싱크홀이 한번 발생한 위치에서 반경 100m 이내에 또 다른 싱크홀 혹은 공동(空洞·땅속 빈 공간)이 생길 확률이 67%였다. 100곳 중 67곳은 주변에 또 발생한다는 의미다.히어로팀은 여의동 일대를 전문가와 직접 살펴봤다. 여의도역 4번 출구에서 약 20m 떨어진 지점 지하에는 5호선, 9호선이 지나간다. 그 아래는 신안산선 건설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연말에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GTX-B 노선 공사도 시작될 예정이다. 지하철은 공사 과정뿐 아니라 공사 후에도 지하수를 대량으로 빼내 지반이 약해지기 쉽다. 지하철역이 밀집한 곳일수록 고층 건물이 몰려 있다. 고층 건물 역시 지하를 깊이 파내고 지은 구조물이라 건물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계속 지하수를 뽑아내야 한다.동행한 변광욱 한국지하안전협회 부회장은 “보도블록 균열은 지하 공사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공사장 주변에서 물이 빠져나간 공간을 흙이 메우면 땅이 점점 가라앉는다. 시간이 지나면 밑으로 내려앉아 지표면의 보도블록과 흙 사이에 빈틈이 생긴다. 그 지점에 하중이 집중되면 보도블록이 깨지거나 금이 간다. 변 부회장은 “한강과 바로 접한 여의도 지반은 모래와 흙이 뒤섞여 무르다”며 “이렇게 지반이 약한 곳에서는 굴착 공사 구간으로부터 반경 200m 주변 땅까지 침하될 수 있다”고 했다.● 삼성1동 싱크홀 빈번, 압구정동 노후 건물 밀집강남구 삼성1동과 압구정동도 안전도가 낮은 5등급으로 나타났다. 삼성1동은 지반, 지반침하 이력 항목이 5등급이었고 나머지 3개 항목은 2~4등급이었다. 압구정동은 지반, 노후 건물 분포 항목에서 5등급을 받았고 나머지 3개 항목은 모두 3등급이었다. 압구정동은 지은 지 오래된 대단지 아파트가 많아 지하 노후 매설물이 싱크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삼성1동의 경우에는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공사가 진행 중이다. 대형 굴착 공사다. 22일 오후 삼성역 5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인도 경계석과 보도블록에 균열이 보였다. 인도가 물결치듯 휘어지며 코엑스 앞 경계석이 깨져 있었고, 나무 울타리는 기울어져 있었다. 지하철역 입구의 돌 난간을 떠받치는 바닥도 내려앉아 임시로 아래 타일을 괴어 놓은 상태였다. 이호 한국지하안전협회 회장은 “영동대로 공사장은 지난해 정부 특별점검에는 포함됐는데 굴착이 더 진행된 올해 점검에는 포함되지 않았다”며 “면밀한 안전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4, 5등급 지역서 굴착 공사 부실 관리 땐 위험서울 426개 동 중 싱크홀 안전도 1등급을 받은 곳은 관악산과 서울대 관악캠퍼스가 있는 관악구 대학동뿐이었다. 2등급 지역도 관악구에 8개로 가장 많았다. 그 외 북한산(강북구 우이동), 안산(서대문구 홍은1동 등) 등의 행정동이 주로 안전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안전도 4, 5등급 지역이 ‘당장 땅이 꺼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싱크홀은 지하 매설물 손상, 굴착 공사 안전 부실 등 여러 요인이 결합해 영향을 미친다. 기본적으로 안전도가 낮은 4, 5등급 지역에서 이런 인위적인 요인까지 가해지면 싱크홀이 생길 확률이 커진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안전지도를 통해 위험 지역을 미리 선별하고, 그 지역의 굴착 공사를 엄격하게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크랙: 땅은 이미 경고를 보냈다’는 인명, 재산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도심 싱크홀 문제를 파헤쳤습니다. 시민 불안은 커지는데 정부와 서울시는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히어로팀은 전문가들과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를 만들었습니다. 디지털 인터랙티브 버전 ‘크랙’ 시리즈는 24일 오전 3시 온라인 공개됩니다.▶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 보기히어로콘텐츠팀▽ 팀장: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취재: 공승배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임상아 ND▽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소연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이형주 인턴◇안전도 분석에 활용한 공공데이터=지질분포(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서울시 지질도), 충적층·토사층 두께(한국건설기술연구원 국가지반정보통합DB), 지하수위(서울시 지하수 측정연보), 지하수위저하(서울시 지하수 보조관측망 변동분석), 토양침투성능(국립농업과학원 토양분포도), 지하철 노선분포·정거장 밀집도(서울시지하철노선도), 지반침하이력 밀집도 및 규모(지하안전정보시스템), 30년 이상 노후건물 분포도(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지도 제작 기술자문=△총괄 이호 한국지하안전협회 회장 △지질특성분석 정경문 정찬규 천명남(이하 협회이사) △수리특성분석 유재성 우상백 구본민 △지하공간개발현황분석 변광욱 장우선 △지하공동발생현황분석 김창동 김한응 △지반침하이력분석 남준희 김승진 △자문 안상로 협회 고문임보미 기자 bom@donga.com공승배 기자 ksb@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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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아이파크’ 붕괴 3년, 원청-하청 네탓만… “6명 죽음에도 바뀐게 없어”[히어로콘텐츠/누락 번외편]

    “HDC현대산업개발은 ‘동바리(임시 거치대)’ 해체를 지시한 적이 없습니다.” (시공사 현대산업개발)“하청업체는 동바리 해체 과정을 절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하청업체 가현) 지난해 11월 4일 오후 2시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 201호. 2022년 1월 11일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의 1심 결심 공판 최후 변론이 이어졌다. 시공사 현대산업개발(현산)’과 하청업체 ‘가현’은 서로 책임을 미뤘다. 붕괴의 직접적 원인으로 꼽힌 동바리 해체를 누가 지시했는지를 둘러싼 대립이었다. 법정 밖 ‘재판 안내 게시판’에는 현산, 가현, 감리업체인 건축사무소 ‘광장’을 포함해 관계자와 법인 등 총 20명이 ‘피고인’으로 적혀 있었다. 당시 사고로 총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1심 선고는 사고 발생 3년 만인 지난달 20일 내려졌다.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고상영)는 원청인 현산과 하청인 가현 모두에 사고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며 양측 현장소장 2명에게 최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다만 기소된 이들 중 경영진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1심 결심 공판을 참관해 피고인들의 최후 변론을 들었다. 붕괴 사고 이후 책임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안전한 건설 현장을 만들겠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약속은 지켜졌는지 사고 3년 후의 상황을 추적했다.● ‘동바리 해체’ 경위 명확한 진술 없어 법원의 선고 전 검찰 구형 이후 피고인 최후 변론이 시작됐다. 그 누구도 건물이 어쩌다 무너졌는지 명확히 설명하는 사람은 없었다. 3년 전 사고 당일, 원청 현장소장은 부임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이었다. 안전 총괄 담당자는 사고 나흘 전부터 가족 휴가를 떠나 현장을 비웠다. 붕괴된 201동의 담당 감리는 개인 사정으로 다른 감리에게 일을 부탁하고 현장을 비운 사이 일이 벌어졌다.‘동바리 해체’를 누가 지시했는지, 잘못된 지시를 막을 수는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피고인 중 한 명인 원청 계약직 사원은 “현장을 감독해야 할 직원이 충원되지 못해 현장에서 채용했다”며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장에서 당연히 있어야 하는 서포트(지지대)가 정말 ‘제대로’ 있는지 확인할 시간이 있었을까”하고 말했다. 하청 현장소장은 “어느 하나라도 제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이 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았겠냐”고 말했다.1심 법원은 권순호 현산 전 대표이사 등 경영진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추상적인 지휘 감독의 책임’은 있지만 직원의 과실에 대한 직접적인 주의의무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감리업체 ‘광장’ 소속 감리들은 징역 1년 6개월~3년에 집행유예 3~5년을 선고받았다. ‘원청과 하청이 공사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집유 선고 이유였다. 현산, 가현, 광장 각각 법인에는 5억 원, 3억 원, 1억 원의 벌금형이 내려졌다.광주지검은 항소했다. 1심이 원청과 하청 경영진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사실오인과 법리 오해의 위법이 있어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았다”며 “피해 규모가 컸음을 고려하면 더 무거운 형이 선고되어야 한다”고 했다.● “여섯 명이 죽었지만 바뀌는 것 없어”히어로팀은 지난해 11월 4일 오후 2시 광주 북구 ‘경동택배’ 창고에서 아이파크 붕괴 사고 희생자가족협의회 대표인 안정호 씨를 만났다. 인테리어 일을 하는 안 씨는 작업 일정과 대금 등을 조율하느라 분주했다.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리는데 창고로 배송된 매트리스, 합판, 카펫 등 택배 물품도 정리해야 했다.그 시간 광주지법에서는 1심 재판이 진행 중이었지만 안 씨는 가지 않았다. 당시 붕괴로 안 씨는 매형 유모 씨를 잃었다. 매형은 안 씨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준 사범이자 함께 체육관을 운영했던 인생의 동반자였다. 사고 날, 안 씨는 일을 하다가 변고를 접했다.안 씨는 검찰이 구형하는 결심 공판에 안 갔다. 다른 유가족들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안 대표는 “유가족들은 재판이 시작될 무렵만 해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처벌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며 한동안 재판도 꾸준히 참관했다고 했다. “혹시라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이라도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했어요.”하지만 재판은 다르게 흘러갔다. 현산과 가현은 붕괴의 책임 소재를 두고 긴 공방을 벌였다. 지켜보던 유가족들은 “이러다 재판이 ‘꼬리 자르기’ 식으로 결론 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안 씨는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이 처벌받는 일이 정말 어렵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느 정도 지켜본 뒤 ‘이미 끝났구나’ 생각했습니다.”안 씨는 결심 공판에 불참하며 “여섯 분의 죽음 이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잖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노가다하는 사람들의 죽음은 슬프지도, 억울하지도 않은 일이 됐다”며 “누구 하나만 잘못해서 발생한 사고가 아닌데 유족들은 누구를 붙잡고 원망해야 하냐”고 했다.● 시공사-감리사는 아직 영업 중사고 이후 2022년 3월 국토교통부는 서울시 측에 현산에 대해 ‘등록 말소 또는 영업정지 1년’의 엄중 처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현산은 여전히 영업 중이다. 처분 권한이 있는 서울시는 이달 3일 현재까지 영업 정지 등 어떤 행정 처분도 내리지 않았다. 감리업체 광장은 화정 사고 이후 2022년 9월 경기도로부터 영업 정지 1년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제기한 행정취소소송 가처분 신청이 인용돼 영업을 재개했다. 광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인천 서구 검단 아파트 공사 감리와 설계를 맡았다. 2023년 4월 29일 오후 11시 반경 검단 아파트는 공사 도중 지하 주차장이 붕괴됐다. 유력한 원인은 ‘철근 누락’이었다.〈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영상: 김지희 안정용 PD광주=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광주=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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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히어로콘텐츠/누락④-하]

    서울 강남에서 공사 중인 총 17층 규모의 소형 A아파트. 2019년 책정된 공사비는 53억3500만 원이었다. 하지만 공사 초기 건설사 부도로 한동안 공사가 중단됐다. 이후 물가 인상 탓에 공사비는 지난해 79억4000만 원으로 늘었다. 5년 새 150% 증액됐다.●눈에 보이는 외장재 위주로 공사비 올려5년새 타일-유리 ‘외장재’ 4배↑철골 등 안전비용은 사실상 삭감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A아파트 전체 공사 비용 자료를 입수해 항목별 증감을 분석했다. 가장 많이 늘어난 항목은 부대 공사 비용으로 613% 올랐다. 타일 공사(448%), 미장 공사(443%), 유리 공사(425%) 등 주로 외부 마감재 항목도 많이 올랐다. 고급 대리석 마감재 비용은 152% 올랐다.반면 아파트 전체 구조나 안전과 연관된 비용은 증액 폭이 작거나 일부는 사실상 삭감됐다. 철근콘크리트 공사비는 120%, 골재비는 128% 올라 외장재보다 증가 폭이 작았다. 철골 공사비는 5년 전의 83%로 줄었다. 총 18개 항목 중 유일하게 감액된 항목이다. 건축 구조 설계비는 총 840만 원으로 5년 전과 똑같았다. 총 공사비의 0.01%. 물가 인상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삭감됐다. 김지상 한국구조기술사회 부회장은 “발주처가 요구하는 건설비에 맞춰야 하니 겉에서 잘 보이는 마감재 비용을 늘리고, 눈에 잘 안 보이는 철골 구조체 물량은 줄인다”고 설명했다.현장 관계자들은 “건설사는 속은 부실한데 겉은 화려한 아파트를 지어 이윤을 남기고, 입주자는 외관과 브랜드에 만족해한다”고 지적했다. 한 건설 전문가는 “마치 예쁜 사치재를 구입하듯 집을 산다”며 “현재 한국의 아파트는 ‘사는(living) 곳’이 아니라 ‘사는(buying) 것’”이라고 비판했다.●안전보다는 대리석… “쪽대본 드라마처럼 지어”안전 외면한 설계 변경 비일비재주민들 “집값 떨어질라” 하자 쉬쉬“아휴, 우리 아파트 아무 문제없다니까. 이런 거 물어보시면 집값만 또 떨어져요.”지난해 8월 히어로팀이 찾은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 입주민에게 ‘추가 하자가 발생하지 않았냐’고 묻자 힐난이 돌아왔다. 2023년 이 아파트의 한 동에서는 철근 다발이 외벽을 뚫고 나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공사는 안전진단을 거쳐 문제의 철근이 주철근이 아닌 ‘잉여(남는) 철근’으로 확인됐다며 하자 보수를 완료했다고 했다. 사고 직후 입주민들은 오히려 시공사를 두둔했다. 이 문제가 처음 제기된 아파트 매매 관련 애플리케이션(앱) 게시판에는 “전문가들이 문제없다네요” “이런 걸로 안 무너져요” 등의 입주민 글이 올라왔다. ‘부실 아파트’라는 오명이 집값 하락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서다.구축 아파트를 신축으로 재건축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소유자들로 이뤄진 재건축 조합이 시공사에 무리한 단가 인하, 공기 단축을 요구하거나, 부실 공사를 ‘쉬쉬’ 하기도 한다.히어로팀은 현재 시공사 선정 작업이 한창인 서울의 대규모 재개발 사업과 관련된 국내 5대 대형 건설사의 사업 제안서 일부를 입수했다. 각 건설사는 ‘가장 낮은 물가지수 적용’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 없음’ 등 돈과 관련된 공약을 앞세웠다. 공사 기한에 대한 확약성 문구도 다수 등장했다. 하자 보수나 안전 관련 내용은 드물었다. 한 대형 건설사 제안서에는 “공사 기간을 43개월로 단축해 가장 빠른 입주를 실현시키겠다”며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 등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경우에도 공사를 정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건설사는 “공사비 증액 없는 확정 지분제”를 앞세웠다.이를 본 현장 시공 전문가들은 “원자재값이 오르는데 공사비 인상을 안 한다는 것은 사실상 ‘거짓말’”이라며 “공사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손해를 안 보는 방법은 구조물 설계를 변경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내 10대 대형 건설사의 한 아파트 재건축·재개발 사업 담당자는 “조합이 공사비를 줄여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며 “그러면서 마감재, 외장재는 ‘고급화’ ‘화려한 조경’ 등을 요구한다”고 했다. 그는 “그 요구를 들어주려면 안전 구조 비용에서 빼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신은영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원은 “조경이나 외부 마감재 변경을 둘러싼 조합과 시공사의 논의가 길어지면 공사가 시작된 뒤에도 설계를 변경하는 현장이 많다”며 “쪽대본 드라마처럼 아파트를 짓는 셈”이라고 비유했다.부실시공의 가장 큰 피해자인 아파트 주민들도 ‘집값 걱정’에 부실을 덮는다. 송주열 아파트비리척결본부 대표는 “입주민이 부실시공 문제를 제기하면 입주자대표협의회가 ‘외부에 알리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보수 보강을 못 하게 하는 사례들이 많다”며 “협의회 쪽이 건설사 편을 드니 문제를 제기한 입주민도 지쳐서 포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한국 아파트는 투자 자산 개념이 강해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 비용에는 그동안 소홀했다”며 “초고층 아파트가 즐비해진 만큼 미관도 중요하지만 구조 설계비 등 안전 관련 비용을 늘려야 할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국토부 퇴직하면 건설사-협회에 재취업정부 안전대책 19개중 시행은 7개뿐전관들, 협회 등 포진해 ‘법안 로비’정부나 국회에서 발의된 건설 안전 관련 법안은 상당수가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히어로팀은 2022년 1월 광주 화정 아파트 붕괴 사고 직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19가지 부실시공 근절 대책의 이행 여부를 전수 분석했다. 그 결과 현재 시행된 대책은 7개에 불과했다.전문가들은 건설업계에 포진한 ‘국토부 전관’들의 문제를 지적한다. 지난해 12월 기준 국토부에 따르면 2018년 이후 7년간 국토부 출신 퇴직공무원 107명 중 25명(23%)이 건설·주택 관련 협회나 건설업체에 재취업했다. 이 중 23명은 4급 이상 고위직이다. 국회 국토위 소속 한 야당 의원 보좌관은 “각종 건설협회에 소위 ‘국토부 카르텔’이 많다. 건설사에 불리한 법안을 막기 위해 국회나 관계 부처에 일종의 ‘로비’를 하는 것이 이들의 주 업무”라고 전했다.대규모 주택 공사는 지역 현안과 밀접해 국회의원도 안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공사 지연을 막으려는 지역구 의원들이 표를 의식해 안전 규제 법안을 반대하는 경우도 많다. 국토위 소속 한 여당 의원 비서관은 “(국토위) 법안 소위까지 올라가려면 여야 합의가 필요한데 여기서부터 막히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건설사 입김에 의원 1명이라도 반대하면 본회의에도 오르지 못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전문가들은 2015년 대법원이 철근 누락이 발견된 인천 청라푸르지오 아파트의 시공사 직원과 감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도 부실 확산에 결정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시공사는 일부 구조물에 철근을 설계보다 적게 넣었다. 대법원은 “시공사 측이 지키지 않은 기준은 ‘설계도서’가 아닌 ‘시공상세도면’”이라며 “사건 직후 철근 보강 공사를 진행해 안전진단 결과 안전성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판단했다. 건설 전문가들은 “부실시공의 ‘촉매제’가 된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최명기 서울디지털대 건설시스템공학전공 객원교수는 “법원은 부실시공이 있어도 전면 재시공보다 일부만 보강하라는 판결을 낸다”며 “건설사도 부실시공에 대한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아 왔다”고 비판했다.〈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https://www.donga.com/news/Series/70000000000703)[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 공개됩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영상: 김지희 안정용 PD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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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히어로콘텐츠/누락④-상]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감리는 부실을 막는 최후의 보루이자 레드팀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시공사, 시행사의 압박에 철근 누락을 못 본 척 넘긴다. 어쩌다 문제를 제기한 감리는 해고되고, 때론 감리사 전체가 교체되기도 한다. 완공된 아파트에 부실 시공 논란이 불거지면 모든 화살은 감리에게 돌아온다. 제 역할을 못 하는 감리와 그로 인한 부실의 실체를 파헤쳤다.“황 씨 말은 알겠어요. 그런데 책임질 수 있어요?”2023년 9월 황우진(가명) 씨가 LH 아파트 A건설현장 감리단장으로 일할 때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담당자가 “철근 누락 사실을 절대 입 밖에 꺼내선 안 된다”며 경고 섞인 당부를 했다.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무너진 게 불과 5개월 전 일이었다. 사건을 들은 황 씨는 자신이 감리를 맡은 A아파트 외벽 철근 시공 상태를 다시 조사했다. 한쪽 벽에 철근이 70%나 빠져 있었다.●‘철근 70% 누락’ 지적, 돌아온 건 ‘해고’공사중단 권한, 소송 우려에 못쓰고시공사는 문제 생기면 “감리 탓”인건비 아끼려 인원 기준도 안지켜“3개동에 주차장까지 혼자 감독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구조”황 씨는 LH에 알렸다. 하지만 LH는 공사를 강행하려 했고 황 씨는 “안 된다. 이러다 무너진다”고 버텼다. 시공사는 ‘재시공’ 대신 ‘일부 보강’을 절충안으로 제시했다. 비용 때문이었다. LH 담당자는 “당신이 재시공 비용을 낼 거냐. LH 아파트가 또 문제가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황 씨는 이 사실을 언론에 제보했고 그 여파로 공사가 중단됐다. 황 씨는 소속 건축사무소에서 잘렸다. 업계에서는 ‘내부 고발자’로 낙인찍혔다. 황 씨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을 만나 “그때는 자살을 생각할 만큼 힘들었다”고 말했다.건설 현장에서 감리는 부실 시공을 막을 ‘최후의 보루’다. 공사 기간 내내 문제점을 찾아내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건설 현장의 감독관이자 레드팀이다. 설계 도면에 따라 철근이 제대로 설치됐는지, 콘크리트 강도가 적정한지 확인하고 문제점을 찾아 지적해야 한다. 감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아파트는 ‘제멋대로’ 지어진다. 감리가 시행사, 시공사 등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다.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아파트 완공 전에는 시공사, 시행사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부실을 덮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완공 뒤 문제가 불거지면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소송, 수사에 직면하는 경우도 있다. 히어로팀이 인터뷰를 시도한 감리들 대부분은 “부정적인 말을 하면 업계에 금방 소문이 퍼져 일하기 어렵다”며 고사했다.그럼에도 오랜 설득 끝에 히어로팀은 30년 차 베테랑 감리부터 업계 4년 차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여성 감리까지 총 10명의 감리를 만났다. 그들을 심층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감리가 소신대로, 원칙대로 일할 수 없는 현장 시스템과 그 결과가 어떤 부실을 낳는지 들을 수 있었다.●시공-시행사, 마음에 안 드는 감리사 통째로 교체현재 경기 지역에서 건설 중인 대규모 오피스텔 현장 관리 감독을 맡은 김모 감리는 부실시공 문제를 제기했다가 교체당했다. 김 감리는 지반(땅) 공사에 사용된 콘크리트 말뚝 강도, 말뚝이 지하에 묻히는 깊이 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히어로팀이 접촉한 이 건설 현장의 다른 시공 관계자들도 똑같이 우려했던 부분이다.하지만 시공사는 감리의 문제 제기 때문에 공사가 지체되자 감리사 전체를 교체했다. 아파트 감리 선정은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지만 오피스텔 등은 시행사(발주처)가 선정하기 때문에 맘대로 바꿔버린 것. 히어로팀은 해당 지자체에 제출된 김 감리의 교체 사유 문건을 확보했다. 주 교체 사유는 ‘권한 남용’, ‘월권행위 빈번’이라 적혀 있었다. “설계자와 발주자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검측을 중단했다”는 내용도 있었다.같은 현장에서 부실시공 문제를 제기한 시공 관계자 박명훈(가명) 씨는 “감리원 교체는 건설 현장에서 자주 봤던 일이지만 공사 중 감리사를 통째로 바꾸는 건 이례적”이라며 “감리가 완강히 버티며 두 달 넘게 공사가 지체되자 마음이 급해진 시공사가 ‘트집’을 잡아 조치를 취한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히어로팀이 6개월간 살펴본 건설 현장에서는 이같이 감리가 소신대로 제 일을 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많았다. 감리들은 스스로를 ‘심부름꾼’, ‘귀찮은 존재’, ‘부실공사의 총알받이’라며 자조했다. 30년 차 임모 감리는 “열심히 일한 감리는 다음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다”며 거수기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털어놨다. 일을 열심히 할수록 ‘너무 깐깐하다’ ‘횡포를 부린다’며 다음 일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역설적인 구조가 숨어 있었다.●‘공사 중단’ 권한 있어도 소송 우려에 행사 어려워감리에게는 ‘공사 중단’ 권한이 있다. 하지만 공사를 중단했다가는 송사에까지 휘말릴 수 있다. 예정보다 공사가 늦어지면 시공사는 입주 예정자에게 입주가 늦어진 만큼 금전적 배상을 해야 하는데, 감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장모 감리는 “시공사에서 ‘감리가 공사 진행을 방해한다, 사업적으로 큰 손해를 봤다’며 민사 소송을 건 적이 있었다”고 했다. 30년 경력 유모 감리는 “문제를 발견해 공사 중단을 요구하면 시공사로부터 손해배상 등 민사 소송이 들어온다. 이를 피하려 문제를 눈감고 넘어가서 붕괴 사고라도 나면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한테 자폭 버튼을 준 셈”이라고 말했다.감리는 ‘돈’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감리사는 발주처 용역을 수행해 받은 돈으로 소속 감리에게 월급을 준다. 공사 발주처는 근본적으로 아파트나 건물을 빨리 올려 이익을 남기는 게 목적인데, 감리가 자꾸 문제를 제기하면 ‘눈엣가시’로 여긴다. 25년 경력의 이모 감리는 “발주처가 감리사를 선정할 때 소속 감리가 검사를 깐깐하게 했다는 평을 들으면 용역 계약을 안 하려 한다”며 “용역을 못 딴 감리사는 업체 유지가 어려워지고 감리도 월급을 못 받게 된다”고 말했다.시공사는 감리사를 선정하고 나서도 감리들이 까다로운지 ‘뒷조사’에 나선다. 과거 시공사와 갈등을 빚은 감리는 다음번 같은 시공사 현장에 선임되기 어렵다. 유 감리는 “감리사에서 (시공사가 원하지 않아) 해당 감리를 현장에 배치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시켜 월급을 절반만 주거나 눈치를 줘서 쫓아내기도 한다. 일을 열심히 할수록 급여를 제대로 못 받거나 일자리를 잃을 우려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2시간 걸릴 철근 검사, 10분에 마쳐감리 투입 인원은 건설기술진흥법상 공사비, 공사 종류 등에 따라 기준이 정해진다. 기준 인원을 지키지 않으면 공사를 시작할 수 없고, 계획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과태료 2000만 원을 부과한다.하지만 현실은 법과 다르다. 법적 기준대로 감리를 투입해도 인력이 충분치 않은데, 현장에서는 인건비와 공사비를 아끼려 이마저 지키지 않는다. 감리 기준 인원을 서류상으로만 충족시키기 위해 투입되지 않은 감리를 ‘가라(가짜)’로 명단에 넣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감리 10명이 필요한 현장에 절반이 투입되는 것도 쉽지 않다. 품질 관리에 집중해야 할 감리 1명이 안전, 공무, 자재 관리, 환경, 민원, 사무실 관리까지 겸임한다. 유 감리는 “부산의 한 아파트 단지를 지을 때 34층 2개 동, 51층 1개 동, 지하주차장 1∼3층 건축 감리를 나 혼자서 했다”며 “아파트 1개 층 철근 간격을 제대로 검사하려면 최소 2시간은 봐야 하는데 10분만 봤다”고 말했다.감리 업무가 너무 많다 보니 검측, 감독은 현장 관리자나 작업반장 보고에 의존해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눈에 잘 띄는 주철근과 띠철근 간격 정도만 빠르게 훑고 넘어가는 식이다. 이 감리는 “감리 적정 인원은 아파트 180가구당 1명 정도지만 실제로는 1000가구에 2, 3명인 게 현실”이라며 “공사 마감 기한이 있으니 다른 현장 작업자들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완벽하게 설치됐다’고 보고한다는 걸 알지만 모른 척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문제 생기면 ‘감리 탓’… “내가 업을 잘못 택했나”시공사와 시행사는 부실시공 논란이 불거지면 많은 경우 감리에게 책임을 미룬다. 임모 감리는 “전문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시키는 일만 하는 ‘심부름꾼’, 책임질 일이 생기면 ‘총알받이’로 쓰인다”고 말했다. 장 감리는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인데 정부는 감리 책임을 늘리는 법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살기 위해 어떻게든 책임에서 빠져나가게끔만 점검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고 말했다. 감리 고모 씨도 “감리가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14년 차 최호민(가명) 감리는 여전히 회사에서 ‘막내’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감리는 이미 ‘리스크는 큰데 보상은 적고 욕은 욕대로 먹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신입이 들어오지 않는다.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동기 가운데 유일하게 감리를 지망했습니다. 안전을 지켜낸다는 자부심이 있었죠. 하지만 금세 깨달았습니다. 감리는 건설 현장의 책임 회피용 직책일 뿐이라는 걸요. 책임은 너무 큰데 권한은 없습니다. 자괴감이 듭니다. 제가 이 업을 선택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죠.”〈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https://www.donga.com/news/Series/70000000000703)[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 공개됩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영상: 김지희 안정용 PD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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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역까지 있어야 하는 공사현장… 철근이 지시대로 박히지 않았다[히어로콘텐츠/누락③-상]

    지난해 11월 서울 도심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바닥, 벽, 천장 등 사방에 거미줄처럼 철근 가닥들이 시공되고 있었다. 작업자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가운데 철근을 담당하는 철근공들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기자가 다가가 국적을 묻자 서툰 한국어나 짧은 영어로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0명 중 9명꼴로 외국인이었다.철근 시공을 지휘하는 한국인 ‘철근 부장’은 이들에게 작업 지시를 내릴 때마다 멈칫하며 누군가를 불렀다. 외국인 중 조금이나마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임시 통역 담당’ 철근공이었다. 언어별로 1, 2명가량이 이런 역할을 했다. 철근 부장이 도면을 손에 들고 한국말로 지시 사항을 쏟아내면 통역 담당이 동료들에게 모국어로 옮겨 손짓하며 설명했다. 그래도 몇몇 외국인 철근공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기자가 직접 본 철근 시공 현장은 뭐가 뭔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사방에 깔리고 박힌 철근마다 지름, 모양, 길이, 형태, 종류가 모두 달랐다. 설계 도면은 그보다 더 복잡했다. 관리자와 철근공 사이에 정교한 의사소통 없이는 시공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커 보였다. 철근 소장 진모 씨는 “도면은 까다로운데 소통은 안 되니 한국인과 외국인이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철근이 누락되는 등 부실이 생긴다”고 했다. 히어로팀은 지난해 11월 수도권 아파트 공사장에서 철근공 보조, 신호수, 잡부 등으로 취업해 일하며 현장을 살펴봤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 근로자 증가가 어떻게 철근 시공 오류로 이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히어로팀이 만난 철근공 등 건설 관계자 47명은 저마다 ‘누락’의 경험들을 털어놨다.히어로팀은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기간에 ‘철근 부장’과 베트남 등 외국인 철근공들이 의사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한국인 임모 작업반장은 “철근 쪽은 요즘 대부분이 불법 체류 외국인이다. 한국인 철근공은 점점 줄고 외국인 철근공이 90%인데 말이 잘 안 통하다 보니 현장에서는 시공 오류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촉박한 공사 기한 안에 빨리빨리 아파트를 올려야 하는데 철근 공정은 복잡하다”며 “의사소통이 잘 안 되니 시공해야 할 철근 개수나 간격을 틀리거나, 위치를 다른 곳으로 오해하거나, 엉뚱한 철근을 박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고 말했다.● 철근 작업 지시는 복잡한데 의사소통은 ‘버벅’철근공 10명 중 9명 꼴 외국인외국어 뒤섞인 현장 서로 말 안통해“복잡한 철근 공사 작업지시 어려워”건설 현장에 점심시간이 되면 외국인 철근공들은 같은 국적끼리 모여 밥을 먹으며 왁자지껄 떠들었다. 곳곳에서 중국어, 러시아어, 베트남어를 비롯해 분간이 어려운 외국어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베트남 철근공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이름이 뭔가요”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웃기만 했다. 스마트폰으로 번역 애플리케이션(앱)을 켜서 한국말을 베트남어로 번역해서 보여주자 그제야 자기 이름을 “풍반탕”이라고 대답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어려운 상황이라 복잡한 철근 시공 지시는 전달되기가 더욱 어려워 보였다.외국인이 없으면 현장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관리자나 현장소장이 애를 먹기도 한다. 형틀 소장 최모 씨는 “천장 마감 작업을 제대로 안 했길래 담당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뜯고 다시 시공하라고 지시했더니 거절해 버렸다”며 “문제를 지적하면 ‘우리 없으면 현장이 돌아가기나 하는 줄 아냐’고 나온다”고 했다. 철근 소장 신모 씨는 “떠난 외국인들이 다시 일하게 하려면 사정사정해서 돈을 올려줘야 한다”며 “우리도 내키지 않지만 그렇게라도 비위를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건설 현장에서 외국인의 ‘세(勢)’가 커지면서 국가별 근로자 조직도 생겨났다. 과거 건설 현장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과 비(非)노조가 일자리를 놓고 다퉜다면 최근에는 조선족팀, 베트남팀, 동남아팀 등이 각자 뭉쳐 일자리를 얻어내기 위해 ‘국가 대항전’을 벌인다.● 상당수는 불법 체류자… 교육 없이 바로 투입시공 오류와 현장 갈등에도 불구하고 시공사가 외국인을 계속 쓰는 이유 중 하나는 ‘돈’이다. 한 건설 관계자는 “임금이 한국인보다 저렴하니까 시공사는 이윤을 많이 남기려고 외국인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히어로팀이 일한 현장에서 한국인 일당은 25만 원, 외국인 일당은 19만 원이었다. 6만 원이 저렴하다. 이 현장은 약 400명의 근로자가 작업 중이었다. 절반만 한국인 대신 외국인을 고용해도 시공사는 하루 1200만 원, 한 달에 3억6000만 원의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 아파트 건설에 3∼4년이 걸리기 때문에 총 130억∼170억 원가량을 아끼는 셈이다.문제는 현장 외국인 근로자 중 상당수가 불법 체류자라는 점이다. 지난해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건설 현장의 외국인 42만2765명 중 24만2913명(57%)이 불법 체류자로 추정됐다. 히어로팀이 외국인 근로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대부분은 “내가 불법 체류자 신분이라 인터뷰를 하기 어렵다. 발각되면 잡혀가 추방될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외국인이 정식으로 E-9(비전문 취업) 비자를 받고 한국에 오면 현장 관련 교육을 3∼5일 정도 받는다. 최소한의 사전 지식을 습득하는 셈이다. 하지만 불법 체류자는 이런 교육을 안 받고 바로 현장에 투입된다. 말은 잘 안 통하는데 철근 시공법은 갈수록 복잡해진다.● 공사 기한 압박도 문제… 철근 안 묶고 매립기한 압박에 “철근 한두개 빠져도 뭐”철근 고정 결속선 안묶는 경우 허다지연비용 시공사 떠안아 대충대충“콘크리트 치면 진실도 묻히는거죠”히어로팀이 만난 한국인 철근공 이민형(가명) 씨는 외국인에게 ‘몸값’이 밀려 지난해부터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4년간 철근공으로 일하면서 설계보다 훨씬 얇은 철근을 깐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당시 철근 반장은 지름 22∼25mm 바닥(슬래브) 철근이 들어갈 자리에 10mm대 철근을 넣으라고 지시했다. 철근이 두껍고 무거우면 비싸고, 가늘고 가벼우면 싸다. 이 씨는 “소시지 같은 철근을 넣어야 하는데 이쑤시개를 깐 거죠. 속으로 욕이 나왔지만 생계가 있으니 다른 방법이 없어요”라고 말했다.외국인 근로자 증가 외에도 철근 부실시공을 초래하는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이 있었다. 이 씨는 ‘공기(공사 기한) 압박’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특히 철근과 철근을 고정시키는 ‘결속선’을 안 묶는 경우가 현장에선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결속선은 콘크리트를 부었을 때 철근이 휘거나 이탈하는 것을 막아주는데 이를 묶지 않는 것이다. 이 씨는 “10곳을 묶어야 하면 그중 1곳만 묶고 끝낸다”며 “하루에 정해진 할당량이 있으니 일일이 묶다 보면 기한 내 일을 못 마친다”고 말했다. 결속선이 없는 철근은 덜렁덜렁 흔들린다. 이 씨는 “저는 건설 현장 내막을 알잖아요. 아무리 싸게 나와도 제가 지은 아파트엔 솔직히 살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히어로팀이 취재한 건설 현장 역시 공기를 맞추기 위해 폭우나 함박눈이 내리는 날에도 야외 공사를 강행했다. 한 날은 오전 작업이 늦어지자 하청업체 반장이 팀장과 심각한 얼굴로 상의하며 “오후 3시에 콘크리트 타설 감리 검사가 있는데 진행 속도가 나지 않아 큰일인데요”라며 안절부절못했다. 이날 콘크리트 타설 검사를 못 하면 전체 공정이 하루씩 밀린다는 설명이었다.콘크리트는 빗물이 섞이거나 매우 추운 날 작업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콘크리트가 굳기도 전에 추위 탓에 얼었다가 기온이 올라간 뒤 녹는 현상을 ‘동결융해(凍結融解)’라고 한다. 콘크리트 속 수분이 얼면 그 부피가 9%가량 팽창한다. 이 얼음이 녹으면 콘크리트는 골다공증 환자의 뼈처럼 약해진다.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건설사, 시공사는 공기를 맞추려 공사를 강행한다. 수분양자들의 입주가 늦어지면 지연 비용은 고스란히 시공사 몫이기 때문이다. 철근공 김모 씨는 “위에서 공사 기한을 맞춰야 해 빨리빨리 하라고 압박한다”며 “‘철근 한두 개쯤이야 빠져도 괜찮겠지’ 하고 넘어가게 된다”고 했다. “월급쟁이 입장에서 뭘 어쩌겠어요.”● 부실 철근은 시멘트로 덮어… “저 말곤 몰라요”아파트를 짓는 과정에서 부실시공하는 것을 넘어, 다 지은 아파트의 부실을 감추기도 한다.30년 차 방수 기능공 김용학 씨는 2023년 11월 충청 지역의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밖으로 돌출돼 심하게 휘어 있는 철근 더미를 한 작업자가 시멘트로 덮어 버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당시는 국토교통부가 현장 점검을 나오기 3일 전이었다. 이를 미리 전해 들은 건설사는 문제 부분을 재시공하는 대신에 시멘트로 덮어 버렸다. 김 씨는 히어로팀에 “부실시공의 ‘마지막 증거’를 몰래 사진으로 남겨 놓고 있다”고 했다. 그는 “보강 공사 없이 시멘트로 덮은 철근은 나중에 부식돼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사람들은 번지르르한 겉모습만 보고 좋은 아파트라고 생각하면서 비싼 돈을 대출까지 끌어 지불해요. 하지만 이런 감춰진 부실이 있다는 건 저나 작업자 말고는 알 수 없죠. 공구리(콘크리트) 치면 결국 ‘진실’도 같이 묻혀 버리는 거니까요.”〈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https://www.donga.com/news/Series/70000000000703)[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 공개됩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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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는 것 거의 없는 4차 하청… 금 간 기둥 알면서도 썼다”[히어로콘텐츠/누락③-하]

    “모르는 척 균열이 있는 기둥을 그냥 박았습니다.”지난해 11월 아파트 건설소장인 정민호(가명) 씨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을 만난 자리에서 울먹였다. 침묵 뒤에 나온 고백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9월 말이었다.정 씨는 자신이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균열이 간 기둥을 그냥 설치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원래대로라면 품질 문제가 있는 기둥은 돌려보내고 정상 기둥을 설치해야 하는 게 맞다”며 “그런데 원청에서 약속과 달리 돈을 다 떼어 가고 모른 척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이미 제 돈으로 적자 메워 일하고 있었다”며 “올바른 기둥을 다시 받아서 설치하려면 손해가 너무 막심하니까 그럴 여력이 안 됐다”고 했다.불법 하도급 문제는 우리나라 건설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는 고질병으로 꼽힌다. 실제 투입되는 공사비가 줄어들면서 부실 공사로 이어지는 원인이 된다. 그 핵심에 불법 하도급 업체들이 있다. 히어로팀은 4차 불법 하도급사 직원이었던 정 씨와 서른네 번의 통화, 세 번의 대면 인터뷰를 거쳤다. 정 씨가 대기업 건설사부터 1차, 2차, 3차 하도급사들과 나눈 320건, 총 18시간 44분 분량의 통화 녹음을 모두 살펴봤다. 거기에는 불법 하도급이 초래한 아파트 부실 공사의 실체가 담겨 있었다.● 재하청도 불법인데 ‘4차 재하청’까지‘하청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 불법 구두 계약에 공사대금 못받기 일쑤 1, 2, 3차 업체서 수수료 떼가면 발주액의 30% 쥐꼬리 공사비 남아“불량 자재 돌려보내는 게 맞지만기둥 운송비-추가 인건비 부담적자 보며 공사… 부실유혹 빠져”정 씨는 건설업 경력 30년 차 베테랑이다. 현재 경기 지역 모 아파트 건설 현장의 기둥 설치를 담당하고 있다. 그의 회사는 대기업 건설사에서 ‘하청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을 받은 불법 하도급 업체다. 우리나라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원칙적으로 ‘하청의 하청’, 즉 재하청(재하도급)은 위법이다. 그런데 그의 업체는 재하청도 아닌 네 번째 하청 업체였다.지난해 3월 정 씨는 한 건설업체 대표에게서 “아파트 기둥을 설치하고 3억7000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일해 보지 않겠냐”란 제안을 받았다. 건설업계가 불황인 데다 설치 공법도 어렵지 않아 일을 받았다.불법 하도급이었기 때문에 서면 계약서는 없었고, 모두 구두 계약으로 이뤄졌다. 물론 정 씨도 정식으로 계약서를 쓰고 일하고 싶었지만 ‘계약서를 쓰자’고 말하는 순간 “너 말고 할 사람은 많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일거리가 사라진다.정 씨 회사의 하도급 관계는 이러했다. 대기업 원청 종합건설업체 A사는 전문건설업체에 1차 하청을 맡겼다. 1차 업체는 2차 업체에, 2차 업체는 3차 업체에 맡겼다. 3차 업체는 정 씨 업체(4차 불법 하도급 업체)에 일을 줬다. 결국 일은 정 씨 회사가 하는데 앞의 업체들은 일을 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떼어 간다.건설 현장에서는 정 씨를 ‘3차 업체’로 알고 있었다. 정 씨에게 일을 준 3차 업체 대표가 다른 업체에 재하청 사실을 알리지 않고 몰래 일을 줬기 때문이다. 3차 업체 대표는 정 씨와의 통화에서 “내가 하도급 줬다는 얘기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정 씨도 익숙했다. “하루이틀 하나요. 걱정 마세요.”현장 출근 첫날,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사전에 구두로 계약한 기둥이 아닌 다른 시공 방식의 기둥을 설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설치가 훨씬 까다롭고 설치 비용도 1.5배가량 더 드는 방식이었다. “시공법이 다른 기둥인데 어떻게 된 겁니까.” 정 씨가 따졌다. “아, 그래? 잘못 알았나 보네.” 3차 업체 대표의 대답은 그뿐이었다. 이대로 공사를 맡으면 정 씨 회사가 오히려 손해를 볼 상황이었다. 정 씨는 “업계가 워낙 좁아 신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일을 하려면 ‘못 하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추가 인건비 등 5000만 원가량을 손해 볼 상황이었지만 3차 업체는 달랑 1000만 원만 보전해 줬다.● 내려갈수록 공사비 줄어… 하자 있어도 방치정 씨는 일을 시작한 지난해 3월 초부터 5월까지 약 두 달 치의 ‘기성’(결제대금)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3차 업체는 기존에 없던 청구서를 내밀었다. 지난해 1, 2월 정 씨가 일을 맡기 이전에 다른 업체가 사용한 중장비 대여료 1800만 원을 정 씨에게 줄 돈에서 공제한다는 것이었다.정 씨는 참다 못해 2차, 3차 업체와 통화를 했다. “내가 일하기 전 다른 업체가 사용한 중장비 대여료를 왜 내가 내야 하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두 업체의 공통된 대답은 “어쩔 수 없다”는 말뿐이었다. 1차 업체에도 연락했지만 “우리는 3차 업체가 있는 줄도 몰랐다. 이번 일로 공사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순간에 다른 업체의 중장비 대여료를 ‘꼬리’인 정 씨가 떠안았다.그는 2024년 3월부터 지금까지 일한 돈을 제대로 못 받고 있다. 시공비, 인건비 등 받아야 할 돈만 7000여만 원인데 그중 5000만 원가량을 못 받았다. 3차 업체는 지난해 5월부터 지급을 미루고 있다. 전화 통화에서 3차 업체는 정 씨에게 “2차 업체가 돈을 안 주니 우리도 못 주는 거다. 2차도 돈이 없나 봐. 나도 집 내놨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래서 2차 업체로 전화했다. 그러자 2차 업체는 “우리는 3차 업체에 돈을 지급했다. 3차는 소장님한테 돈 줬다고 하던데?”라고 했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대금을 못 받은 지 8개월째. 당장 협력업체에 줘야 할 대금 결제가 위태로웠다. 이미 정 씨 앞으로 날아온 내용증명도 한가득이었다.현장에서 공사를 직접 진행하는 정 씨에게 돈이 없으면 이는 자연스레 부실시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균열이 간 기둥 등 문제가 있는 요소를 확인하고 바로잡으려면 비용이 드는데, 그러려면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결국 금이 간 기둥은 그대로 아파트에 설치됐다. 겉에 칠을 하고 외장재를 덮으면 수분양자는 기둥에 금이 갔는지, 하자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말단 업체는 공사비의 30%만 가지고 시공”히어로팀은 ‘4차 하청’ 정 씨의 사례에서 계약서 미작성, 공사 대금 미지급 등 불법 하도급에서 비롯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위험은 이런 불법 하도급이 부실시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정 씨도 “공사 대금을 주지 않아 기둥 운송비와 추가 인건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며 “문제가 있는 기둥도 돌려보내지 못하고 그냥 설치한 것”이라고 고백한 이유다.취재 결과 2차, 3차, 4차 업체는 모두 불법 하도급에 해당했다. 대형 건설사가 전문건설업체(1차)에 기둥 설치 공사를 맡겼는데 허락 없이 2차, 3차, 4차까지 일을 떠넘겼기 때문이다. 건설산업기본법상 발주처 동의 없이 재하도급을 하거나, 하청 받은 공사 전체를 재하도급하면 불법이다.2차, 3차 업체는 현장에서 직접 공사를 하지 않고 일정 부분의 공사 대금만 수수료로 챙겼다. 실제 공사를 맡는 마지막 업체를 제외한 중간 업체들이 일을 넘기고 돈은 받는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한 셈이다. 건설 현장의 불법 하도급 업체는 전국에 1만 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5월부터 8월까지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불법 하도급 집중 단속 결과 현장 508곳 중 35.2%(179곳)에서 불법 하도급 업체가 적발됐다. 건설 현장 10곳 중 4곳은 불법 하도급 업체가 시공 중인 셈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하도급까지 포함하면 훨씬 높은 비율로 불법 하도급이 현장에 만연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무법인 공정 황보윤 변호사는 “최종 하도급사에는 발주 금액의 극히 일부만 떨어지니 공사 비용을 맞추려 부실 공사 가능성이 커진다”며 “심지어 발주 금액의 30% 정도만 갖고 최하단 업체가 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https://www.donga.com/news/Series/70000000000703)[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 [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 공개됩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영상: 김지희 안정용 PD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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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근 누락 알리자, 지자체 “무너진 건 아니잖아요”[히어로콘텐츠/누락②-상]

    “검단 아파트처럼 무너진 건 아니잖아요?”지난해 1월 경기 A아파트에 사는 이동민(가명·입주자협의회장) 씨는 관할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통화하다 돌아온 답변에 말문이 막혔다. 앞서 이 씨는 A아파트의 국토교통부 안전진단 보고서를 받아 살펴봤다. 지하 주차장에 시공된 철근 개수가 도면보다 부족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파트에 다녀간 국토부 정밀안전진단업체 관계자는 ‘화재 시 물을 가득 실은 소방차가 못 들어올 수도 있다’며 위험성을 구두로 경고했다. 이 씨는 사용 승인을 내어준 지자체에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별문제 없지 않냐’는 투였다. 국토부, 국토부 산하 국토안전관리원에도 전화를 걸었지만 “보고서가 오타일 거예요”란 답변이 돌아왔다. 부실 시공 가능성을 일축했다.그로부터 열 달 뒤인 11월 27일.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찾아간 이 씨의 아파트는 지하 주차장 천장 전면 보수작업이 한창이었다. 입구에는 ‘보수 공사로 이용 불가’ 팻말이 붙어 있었다. 곳곳에 설치된 사다리 사이로 인부들이 철근 누락 지점마다 보강 작업을 했다.이 씨는 철근 누락을 찾아내고 보강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지자체의 안전 인식이 어떤 수준인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씨의 아파트는 2023년 4월 검단 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같은 해 10월 국토부가 ‘전국 민간 무량판 아파트 안전점검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문제없다’고 한 아파트 중 하나였다. 발표대로면 A아파트에 부실시공은 없어야 했다. 하지만 이 씨의 문제 제기에서 시작된 민간전문업체와 시공사의 재조사 결과, 지하 주차장 철근이 33개나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시공사조차 부실을 인정했다. 이 씨는 “정부나 지자체의 말을 믿고 내 아파트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정부 발표에 대한 불안감과 의문점에서 시작해 홀로 ‘누락’을 추적해 온 지난 1년 4개월을 떠올렸다.“여기가 맨 처음 철근 누락이 발견된 기둥입니다.”지난해 11월 27일 경기 A아파트 지하 주차장. 입주자협의회장 이동민(가명) 씨가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을 한 기둥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더니 말했다. 주차장은 2주 전부터 철근이 누락된 자리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탄소보강섬유를 덧대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기존 천장 콘크리트를 뜯어내고 보강섬유를 시공했다. 누락된 철근 33개를 대신해 건물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다. 이 씨는 ‘누락’을 찾아내기 위해 홀로 정부, 지방자치단체와 맞서 고군분투한 1년 4개월을 돌아보며 생각에 잠겼다.●“화재 때 소방차가 못 들어올 수도 있어요”〈의심〉“주차장 하중 계산 잘못, 붕괴 위험”구조기술사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국토교통부의 민간 무량판 아파트 1차 조사(설계 도면 검증) 직후였던 2023년 8월 16일. A아파트를 조사하러 온 건축구조기술사는 도면을 살펴보더니 이 씨와 입주민들에게 심각하게 말했다. “지하 주차장의 하중(무게) 계산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는 “물을 가득 실은 소방차가 주차장 위 1층에 진입하면 붕괴 위험이 있을 수 있다” “20층 이상 건물은 불이 나면 소방굴절사다리차가 들어와야 하는데 그 차가 무겁다. 이 아파트는 그 차가 못 들어올 구역들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 씨와 입주민들은 가슴이 철렁했다.3주 뒤 국토부 2차 조사(주차장 전단보강근 조사)가 시작됐다.마침 지자체에서 아파트 사용승인을 담당하는 책임자가 현장에 온 것을 본 이 씨는 다급하게 다가가 설명했다. “전문가가 말하는데 여기 붕괴 위험 때문에 소방차가 못 들어올 수도 있답니다. 불나면 고층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좀 해주세요.” 이를 들은 책임자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분(구조기술사)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일 거예요. 아니 진짜 설계 문제가 있었다면 아파트 사용승인이 안 나왔겠죠.” 말이 안 통하자 이 씨는 현장에 온 국토부 산하 국토안전관리원 수도권지역본부장에게도 다가갔다. “여기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데요. 어떡합니까.” 이를 들은 본부장은 이 씨를 안심시키듯 “아 네네, 주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공유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곤 자리를 떴다. 이후 그는 소식이 없었다. 이 씨의 우려는 점점 절박함으로 변해갔다.●‘부실시공 없다’는데 보고서가 이상하다〈누락〉국토부 조사 “문제없다”지만 찜찜보고서 뒤져보니 ‘철근 부실’ 명확두 달 뒤인 10월 23일, 국토부는 ‘전국 민간 무량판 아파트 조사 결과 부실시공 없어’라는 발표를 했다. 그때까지도 A아파트 조사 결과는 이 씨에게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이 씨는 관할 지자체에 아파트 조사 보고서를 요구했지만 ‘우리도 없다’는 답변이 왔다. 국토부는 여전히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 씨는 재차 지자체에 보고서 입수 방법을 수소문했고, 이에 지자체 주무관이 업체에서 보고서를 받아 이 씨에게 건네줬다.마침 같은 아파트에 건설 전문가가 살고 있었다. 이 씨는 그와 함께 국토부 보고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구조도면은 구조계산서와 일치한다. 구조체 보강공사는 필요 없다….’ 별다른 문제 없이 넘어가던 와중에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설계도면에는 천장 주철근(건물을 지탱하는 직선 모양의 핵심 철근) 시공 간격이 165mm였다. 그런데 조사업체가 측정한 실제 간격은 320mm였다. 간격이 약 2배였다. 이 씨와 함께 보고서를 분석한 전문가가 “이건 중간에 박혀 있어야 할 철근이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그런데 국토부 보고서 말미의 철근 탐사 결론은 ‘적정’(문제 없음)이었다. ‘뭔가 잘못됐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거짓이다.’●“오타”라는 국토부-“안 무너졌잖아”란 지자체〈방관〉누락 찾으려 1년4개월 고군분투국토부도 지자체도 ‘나몰라라’만이 씨는 보고서에서 찾아낸 문제를 국토부, 국토부 산하 국토안전원에 알렸다. “아 그거, 아마 오타일 거예요 오타.” 허무한 답변이 돌아왔다. 믿을 수 없었던 이 씨는 조사업체에 직접 연락해 “철근이 누락된 게 맞습니까. 국토부는 오타라고 합디다” 하고 물었다. 업체는 이틀 뒤 고심 섞인 답변을 보내왔다. “엔지니어의 양심으로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오타가 아닙니다.” 국토부 해명과 달리 철근이 누락됐다는 말이었다. 국토부 보고서의 결론이 거짓이었고, 국토부의 해명도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동시에 ‘우리 아파트가 정말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국토안전원에 이 사실을 알리자 국토부는 바빠졌다. 내부 회의를 거치더니 ‘우리는 전단보강근, 콘크리트 강도를 조사했지 천장 주철근은 조사하지 않았다. 천장 주철근이 없는 건 맞지만 우리 판정에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내왔다. 주철근은 조사를 안 했으니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는 뜻이었다. 불과 두 달 전 ‘부실시공은 없다’고 발표한 것과는 다른 태도였다.2023년 7월 31일 원희룡 당시 국토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천장의 판, 바닥이자 천장을 이루고 있는 이 판에 여러 층으로 철근이 가로세로로 다 들어가 있다. 그것을 빼먹은 것이라면 우리나라가 정말 대한민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철근을 빼먹으면 대한민국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그 주철근이 이 씨의 아파트에는 빠져 있었다. 이 씨는 “본인들(국토부)이 철근 누락 사실을 문서에 써놓고, 전단보강근만 조사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하는 건 궤변 아니냐”고 말했다.●“아파트가 무너져야 공무원들이 후회할까요”〈인정〉철근 33개 누락 확인 후 보강공사“우리 아파트는 운이 좋았어요”정부와 지자체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A아파트는 결국 지난해 2월부터 민간 안전진단업체를 선정해 넉 달간 재조사를 진행했다. 시공사, 국토부의 간섭을 우려해 일부러 지방 업체를 골랐다. 이 업체가 철근 탐사 장비로 지하 주차장의 천장을 검사한 결과 철근 2000여 개 중 총 33개가 누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시공사도 와서 살펴본 뒤 자신들의 부실시공을 인정하고 보강 공사비를 전액 지불했다.이 씨는 히어로팀에 “우리 아파트는 운이 좋았다”며 “국토부 보고서에서 철근 누락 1개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단순 오타라는 말을 믿었다면 계속 안전하다고 믿고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철근 누락은 오타가 아니라 진짜라고 알려준 조사업체의 양심고백 덕분에 보강공사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국토부가 ‘부실시공이 없다’고 밝힌 아파트는 전국 민간 무량판 아파트 427곳(준공 기준 288곳) 전부다. 이 씨는 “우리 아파트처럼 철근이 빠진 아파트가 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모든 아파트 입주민들이 이 씨처럼 철근 누락을 직접 밝혀내기는 쉽지 않다. 일부 아파트는 국토부에 조사 보고서 공개를 요청했지만 ‘영업상 비밀침해’를 이유로 비공개 처리됐다.이 씨는 국토부와 지자체가 문제를 외면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검단 아파트처럼 또 다른 아파트가 무너진 뒤에야 정부가, 공무원들이 후회할까요?”〈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 공개됩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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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근 절반 빠진 20층 건물, 지진 7초만에 S자로 휘며 바로 붕괴[히어로콘텐츠/누락②-하]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아파트 철근 누락과 부실시공 문제를 취재하는 7개월여 동안 건설 현장 안팎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철근 몇 개 빠져도 안 무너져요”였다. 반면 앞서 2023년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건의 핵심 원인은 전단보강근 누락, 즉 철근 누락이었다. 일각에서는 건설 현장의 느슨한 안전 인식이 실제 사고로 이어진 사례라는 평가도 나온다.히어로팀은 철근 누락이 건물 안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내진 및 구조설계 전문업체인 ‘SH구조엔지니어링’의 정승열 대표와 함께 일주일간 시뮬레이션 실험을 진행했다. 정 대표는 우리나라 ‘1세대 내진 설계 전문가’로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구조 설계에 참여했다. 시뮬레이션에는 미국 CSI(Computer and Structures Inc.)사의 ‘퍼폼3D’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미국 등 전 세계에서 내진 설계에 가장 많이 쓰이는 프로그램이다.히어로팀은 서울에서 지진이 일어난 상황을 가정했을 때 철근 시공 상태가 건물 붕괴에 미치는 영향을 3차원(3D) 시뮬레이션으로 알아봤다.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 사례를 감안했다. 국내 언론에서 부실시공과 지진, 아파트 붕괴 사이의 연관 관계를 검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철근 24% 빠진 건물, 지진 24초 뒤 와르르높이 80m 빌딩에 규모 6.7지진 가정철근 100%땐 흔들리다가 중심 회복“철근 부족하면 하부 벽부터 타격한순간에 무너지는 ‘취성파괴’ 발생”평상시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도부실시공 부분이 ‘시한폭탄’ 작용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리히터 규모 3.0 이상의 지진은 2021년 5회, 2022년 8회, 2023년 16회 발생하며 점점 늘고 있다. 2017년 11월 경북 포항시와 경주시에서 규모 5.1∼5.4 지진이 발생했을 때 포항에서만 총 754개 주택이 피해를 입었다. 이 가운데 아파트 등 7곳은 기둥이 건물을 버틸 수 없는 정도로 심각하게 손상돼 철거 판정을 받았다. 2011년 준공된 4층 규모 건물은 기둥 8개 중 3개가 주저앉았는데 기둥 속 철근이 절반가량 빠져 있었다.이를 감안해 히어로팀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서울에 있는 높이 80m(지하 1층∼지상 20층) 빌딩’을 가상 설계했다. 일반 아파트로 치면 30층 정도에 해당한다. 여기에 규모 6.6∼6.7 지진 상황이 발생했을 때 건물이 버틸 수 있는지 검증했다.히어로팀은 건물에 시공된 철근량을 100%(정상 시공), 76%, 57%로 바꿔가며 지진 상황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알아봤다. 공사 현장에서 실제 사용되는 철근 지름은 보통 25mm, 22mm, 19mm인데 이를 반영했다. 특히 자재비를 아끼기 위해 값비싼 굵은 철근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값싼 가는 철근을 시공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을 감안했다. 인장력(잡아당기는 힘)에 강한 철근은 건물이 기울거나 휘어도 곧바로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콘크리트는 적정 강도인 35MPa(메가파스칼)로 시공됐다고 가정했다.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철근 100% 시공’ 건물은 지진이 일어나자 아래쪽부터 물결치듯 흔들렸다. 이후 한쪽으로 기울다가도 ‘오뚝이’처럼 중심을 회복했다. 60초간 지진이 계속됐지만 무너지지 않고 버티며 최종적으로 ‘안전’ 판정을 받았다.그다음은 ‘철근 76%만 시공’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지진이 시작된 뒤 24초 만에 폭삭 무너졌다. 처음에는 건물 전체가 조금씩 흔들리더니 15초가 지나자 건물 맨 아래 벽부터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건물 전체가 왼쪽으로 기울며 무너졌다.마지막으로 ‘철근 57% 시공’ 건물을 시험했다. 실제 공사 현장에서 아파트 전체 철근의 절반을 빼먹는 사례는 매우 드물 것으로 보이지만 철근 누락의 위험성을 알아보기 위해 진행한 실험이었다. 이 경우 건물은 지진 시작 7초 만에 매우 빠르게 무너졌다. 지진 직후에는 미동도 없다가 갑자기 S자형으로 크게 휘더니 순식간에 무너졌다.히어로팀과 함께 시뮬레이션을 수행한 정 대표는 “철근이 부족하면 건물 아랫부분 벽부터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고 결국 한순간에 무너지는 ‘취성파괴’(한계 이상의 충격이나 무게가 가해지면 물체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급속도로 부서지는 현상)가 발생한다”고 했다.●지진 아니어도 부실은 위험… 건물 한계 넘어서히어로팀은 지진 등 대재난이 아닌 일상 상황에서 철근 누락과 부실시공이 건물에 미치는 위험성도 함께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했다.먼저 철근과 콘크리트가 모두 100% 설계대로 잘 시공됐을 경우에는 건물의 내력비가 ‘0.743’으로 나타났다. ‘내력비’란 건물이 최대한으로 버틸 수 있는 무게와 현재 가해지는 무게 사이의 비율이다. ‘내력비 0.743’은 ‘건물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치 힘의 74.3%만 쓰고 있다’는 뜻이다. 나머지 25.7%는 일종의 ‘남는 힘’이다. 지금보다 25% 더 무거운 무게가 가해져도 건물이 버틴다는 뜻이다.철근량을 56%로 줄여 봤다. 그러자 천장을 받치는 긴 형태의 ‘보’와 기둥 철근 내력비가 모두 1을 넘어섰다. 버틸 수 있는 한계치보다 더 많은 무게를 받고 있다는 뜻으로, 실제 상황에서 예측하지 못한 무게가 추가된다면 붕괴 가능성도 높다. 특히 보는 내력비가 1.63까지 치솟았다. 실제 상황이라면 해당 건물은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계획에 없는 조경 공사로 흙더미 무게가 더해지거나 하는 상황에서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정 대표는 “부실시공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며 “지진 같은 극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철근이 많이 빠지면 부실시공 부분에서 문제가 터져 건물 전체로 연쇄 붕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美마이애미-검단 주차장 붕괴 원인도 철근외국에서도 철근 누락이 실제 붕괴로 이어진 사건이 있다. 2021년 6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비치 서프사이드에서 12층짜리, 136채 규모의 아파트 ‘챔플레인 타워스 사우스’가 무너져 98명이 숨졌다. 사고 당시 입주민들이 잠든 새벽에 아무런 전조 증상 없이 아파트가 무너졌다. 마치 팬케이크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붕괴돼 ‘팬케이크 붕괴’라고도 불렸다.지난해 3월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가 발표한 ‘사고 예비 조사 보고서’에는 최초 붕괴 지점인 주차장 쪽 기둥의 철근이 일부 누락됐을 가능성이 담겼다. 설계도면에 따르면 기둥과 1층 로비 바닥을 연결하는 철근이 총 8개 들어갔어야 했는데 실제로 보니 절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우리나라도 철근 부실시공이 붕괴로 이어진 적이 있다. 2023년 4월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현장을 조사한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일부 지점에 전단보강근이 미설치된 곳들이 발견됐다. 1995년 6월 29일 벌어져 500명이 넘게 숨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역시 가격이 비싼 L자형 철근을 써야 할 자리에, 저렴한 I자형 철근을 쓴 것이 붕괴의 한 원인으로 밝혀졌다.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고를 예방하려면 설계대로 철근과 콘크리트를 시공하는 기본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이번 시뮬레이션은 철근 누락과 건물 붕괴의 위험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첫 사례”라며 “실험 결과는 대부분 고층 아파트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만큼 철근이 조금이라도 빠지면 보강 공사로 구조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 공개됩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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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토부 “문제없다” 덮었는데, 보고서엔 11곳 ‘철근-콘크리트 부실’[히어로콘텐츠/누락①-하]

    288곳중 철근 1개 이상 누락 8곳3곳은 콘크리트 강도 부적합 판정전단보강근 ‘간격 미흡-누락’ 확인돼도정부, 전문가 내세워 “그래도 안전”조사방식도 ‘정밀→신속’으로 바꾸고기둥 주철근 조사 빼 ‘답정너 진단’2023년 10월 23일 국토교통부는 “입주민이 직접 입회한 가운데 투명하고 철저하게 조사를 했다”며 ‘민간 무량판 구조 아파트 전수조사 결과 부실시공은 없다’고 발표했다. 총 427곳(시공 중 139개, 준공 288개) 무량판 아파트를 전수 조사했는데 철근 누락 등 부실은 하나도 없었다는 내용이었다.히어로팀은 국토부 발표에 의문을 품고 준공을 마친 288곳의 국토부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국토부가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던 보고서로 총 1102쪽 분량이다. 이를 건축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정밀 분석한 결과, 보고서에 담긴 아파트들 중 최소 11곳(3.8%)에서 부실이 발견됐다. 8곳은 ‘철근 누락’이 있었고, 3곳은 콘크리트 강도가 법적 최소 안전 기준(85%)보다 낮았다. 부실이 없다던 국토부 발표와 달랐다.● 철근 빠졌는데 국토부는 “누락 0건” 발표국토부의 G아파트 조사보고서에는 총 10곳의 철근 조사 구역 중 1곳에서 ‘전단보강근을 확인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전단보강근은 기둥이나 벽체가 천장, 바닥과 연결되는 부위를 잡아주는 철근이다. 당시 조사를 수행한 안전진단업체는 ‘도면에는 전단보강근이 표기돼 있지만, 현장조사에서는 철근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내용을 적어놨다. 도면에 있는 철근이 실제로는 없다는 뜻이다.H아파트 국토부 보고서에는 철근 조사가 실시된 4개 구역 모두에 ‘부적정’ 판정이 적혀 있었다. 도면대로면 10cm 간격으로 설치해야 할 철근이 실제로는 20cm 간격으로 설치돼 있었다는 것. 철근 절반을 빼먹은 셈이다. 해당 조사 업체는 “전단보강근이 일부 누락됐거나 시공 간격이 미흡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도 남겼지만, 국토부의 공식 발표에 전혀 없었다. 그 대신 국토부는 보고서에 ‘그래도 안전하다’는 취지의 전문가 자문단 의견을 넣어놨다. 해당 자문단은 “천장(슬래브)이 충분한 강도를 확보하고 있어 전단보강근 시공이 더는 필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게재했다.히어로팀은 위 보고서들을 전문가들에게 가져가 검증을 의뢰했다. 보고서를 살펴본 홍건호 호서대 건축공학부 교수(전 검단사고조사위원장)는 “철근을 설계와 달리 빠뜨렸다면 수분양자에 대한 계약 위반”이라며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해 안전성을 확인하고 보수, 보강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콘크리트, 설계 강도의 76%에 그쳐보고서에는 2023년 국토부가 조사한 아파트 288곳 중 16곳의 콘크리트 강도가 설계 기준(100%)에 미달한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그중 3곳은 시설물특별법 정밀안전진단 기준을 적용하면 ‘부적합 구조물’에 해당됐다. 콘크리트 설계 강도가 85% 미만인 경우가 부적합 구조물이다. 콘크리트 강도가 76.7%에 불과한 I아파트도 있었다. 참고로 2023년 붕괴된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경우 콘크리트 강도가 70.4%에 불과한 구역도 있었다. 김강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한국콘크리트학회 부회장)는 히어로팀에 “85% 미만인 구조체는 품질 저하로 구조적 보수나 보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 외에도 국토부 보고서에는 전단보강근이 제대로 시공됐는지 불분명해 ‘보류’ 판정이 내려지거나, 조사 자체를 못 한 아파트도 16곳 있었다. 부실 여부 자체를 아예 파악하지 못한 곳들이다. J아파트의 경우, 지하주차장 11개 구역 중 7곳에서 ‘전단보강근이 있는지 없는지 구분이 어렵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판정 보류다.● 부수지 않으면 정확히 확인 어려운 전단보강근히어로팀이 한국콘크리트학회에 이 같은 국토부 보고서 내용을 검증 의뢰한 결과 “전단보강근은 철근 탐사 장비로 탐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비파괴 철근 검사기로 겉면을 훑는 식으로는 제대로 검사가 안 된다는 뜻이다.전단보강근은 천장과 기둥의 철근을 엮어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전단보강근이 매립된 천장 부분을 비파괴 철근 검사기로 훑으면 철근이 제대로 보이지 않거나 아주 작은 ‘점’만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철근에 가려져 안 보이는 경우도 있다.히어로팀은 국토부 보고서에 ‘전단보강근이 설치됐다’고 적혀 있는 아파트 3곳의 조사 보고서를 전문가들에게 검증 의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히어로팀에 ‘판독 불가’라는 결론을 전달해 왔다. 안전진단업체인 황두엔지니어링 이우진 대표는 “(국토부가) 전단보강근이 설치됐다고 판정한 일부 보고서 내용을 살펴봤는데, 저라면 철근이 설치됐는지 안 됐는지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4개월 필요한 조사가 2개월에 끝나”정부가 발표 데드라인을 미리 정한 뒤 기한에 맞추려 조사 방식을 축소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검단 아파트 붕괴 사고 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7월 31일 국토부에 조사를 지시했고, 일주일 뒤 원희룡 당시 국토부 장관은 한국시설안전협회와 회의를 열어 논의했다. 여기서 8가지 이상 방식으로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해 두 달 내 끝내는 방안이 제시됐지만 협회는 4개월가량 필요하다며 기한을 맞추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협회 관계자는 “그러자 용산(대통령실)과 행정부(국토부)에서 두 달 안에 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며 “‘안전하다, 안전하지 않다’는 기본적인 것만 하면 (두 달 내) 할 수 있다고 답했다”고 했다. 결국 국토부는 조사 기간을 두 달로 맞추려 조사 항목을 4개로 줄였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 기둥, 벽체의 주철근 조사 등은 생략됐다.전문가들은 촉박한 조사 기간과 축소된 조사 방식이 부실 조사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안전진단업체가 아파트 전수조사 현장에 인력을 실제 투입한 기간은 9월 1∼25일로 25일에 불과했다. 주영규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과 교수(전 검단사고조사위원)는 히어로팀에 “안전진단업체가 제대로 조사하려면 한 단지에 ‘올인’해도 최소 3개월은 필요하다”며 “근본 원인들을 조사하지 않고 발표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국토안전관리원에서 추가 검사 자료 등을 바탕으로 ‘문제없음’을 확인했다”면서도 “저희는 2개 항목(전단보강근 유무, 콘크리트 강도)만 안전점검을 했기 때문에 아파트 전체가 100% 자신 있게 부실시공이 없다고 말씀드릴 사항은 아니다”라고 했다. 조사 일정 축소에 대해선 “LH 아파트 조사와 동일하게 진행했으며 (축소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④-상]“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 [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 공개됩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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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근 8개 있어야할 기둥, 실제론 4개밖에 없었다[히어로콘텐츠/누락①-상]

    지난해 11월 경기 A아파트 지하주차장. 사각기둥 한 곳 표면에 비(非)파괴 철근 검사기를 갖다 대고 왼쪽부터 천천히 훑었다. 검사기 액정 화면에 ‘철근’을 나타내는 파란 수직선이 하나씩 나타났다. 총 4개. 표면에서 깊이 3cm 안에 철근 4개가 들어 있다는 뜻이다. “8개여야 하는데 4개가 안 보이네요.” 설계 도면대로면 철근은 8개여야 했다. 기둥의 다른 3개 면도 검사기로 훑었다. 그 결과 기둥 속에 있어야 할 주철근 총 24개 중 12개가 ‘누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과 검사에 동행한 최명기 서울디지털대 건설시스템공학전공 객원교수는 “기둥이 잘못 설치됐다”고 말했다.2023년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 뒤 국토교통부는 같은해 10월 23일 전국 민간 무량판 아파트 427곳(시공 중 139곳, 준공 288곳)을 2개월간 전수 조사한 결과 ‘철근 누락 등 부실 시공이 없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토부는 결과만 발표하고 아파트 명단, 세부 안전진단 결과는 비공개에 부쳤다.아파트는 한국인에게 ‘집’을 넘어 재산 대부분이자 정체성이다. 한국인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산다. 정부 발표대로 우리 아파트는 안전할까. 검증이 필요했다. 히어로팀은 정부가 공개하지 않은 1102쪽 분량(준공 288곳)의 무량판 아파트 안전진단 보고서 전체를 입수해 전문가들과 수개월간 분석했다. 철근 누락 8곳, 콘크리트 강도 미달 3곳 등 최소 11곳에서 부실이 발견됐다.히어로팀은 아파트를 직접 찾아가 조사했다. 국토부 조사팀이 다녀갔던 아파트 중 히어로팀이 설계도면을 확보한 21곳을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에 걸쳐 조사했다. 국토부가 사용한 장비와 똑같은 전문장비로 지하주차장 기둥 총 850여 개를 조사하고, 문제가 있는 곳은 전문가와 함께 찾아가 재검증했다. 그 결과 9개 단지(43%) 기둥 25개에서 철근 누락을 발견했다. 도면에는 있지만 실제로는 없는, 누락된 철근은 총 60개였다.히어로팀은 더 나아가 아파트의 ‘뼈대’인 철근이 어떻게, 왜 누락되는지 이유를 취재했다. 철근이 빠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아봤다. 이를 위해 붕괴 위험을 3차원(3D) 시뮬레이션으로 실험하고 건설 현장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근로자, 감리, 구조기술사 등 182명은 ‘누락’의 실체를 털어놨다. 이 기획은 그간 7개월을 담은 ‘부실과 누락에 대한 보고서’다.“이곳 지하 주차장은 여러 종류의 기둥들이 모여 있어 복잡합니다. 시공자가 헷갈려 설계도면과 다른 기둥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최 교수는 도면을 손으로 가리켰다. 주철근 절반이 빠진 기둥의 주변에는 다른 종류의 기둥이 여러 개 그려져 있었다. 최 교수는 “이 기둥은 공장에서 철근을 모두 넣은 완제품을 현장에서 설치한 방식”이라고 했다. 그런데 도면 속 기둥과 실제 설치된 기둥은 철근 개수가 달랐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최 교수와 함께 부실 기둥의 위쪽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 봤다. 1층에 가 보니 비상시 소방차가 다니는 보행자 통행로가 있었다. 최 교수는 “만약 고층 건물 아랫부분이었다면 하중이 커 위험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1곳 아파트 중 9곳 철근 누락주철근은 건물을 지탱하는 여러 소재 중 콘크리트와 함께 가장 중요한 ‘뼈대’ 역할을 한다. 2023년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전단보강근’은 기둥과 천장, 바닥의 연결 부위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만, 주철근은 건물 무게를 직접 지탱한다. 건물의 붕괴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부위지만 정작 국토부 조사에서는 대상에서 빠졌다.히어로팀은 지난해 5개월간 전국 5개 시도의 21개 단지 아파트 지하주차장 기둥의 주철근 시공 상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9개 단지에서 주철근 누락이 확인됐다. 기둥 숫자로는 총 850여 개를 조사했는데 그중 25개(약 3%) 기둥에 철근 총 60개가 빠져 있었다.경기 B아파트 주차장에선 기둥 30개 가운데 6개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됐다. 기둥 1개당 적게는 1개, 많게는 5개의 철근이 빠져 총 17개 철근이 빠졌다. 그 위에는 어린이집, 상가 등이 있었다. 이곳의 주차장 도면을 보면 크게 두 종류의 기둥이 설치됐다. 한 종류는 사각 기둥의 한 면에 철근 3개씩, 다른 종류는 5개씩 들어갔다고 도면에 쓰여 있었다. 3개씩 들어가는 기둥이 전체 기둥 139개 중 94개(68%)였다. 이들은 철근에 문제가 없었다. 반면 철근이 5개씩 들어가야 할 기둥에서는 누락이 발견됐다. 현장을 동행한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대학장(건축구조기술사)은 “5개씩 철근이 설치돼야 할 기둥에도 3개씩만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전남 C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연속된 기둥 3개 전부 철근이 2개씩 빠져 있었다. 대구 D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는 기둥 3개에서, 대구 E아파트에서는 기둥 5개에서 철근 누락이 발견됐다. 전남 F아파트에서는 기둥 콘크리트 밖으로 철근 일부가 튀어나와 있었다. 부식의 위험이 커 보였다.● 철근 1개=사무실 하나 버틸 힘… “1개라도 누락 땐 보강해야”철근 24개중 절반 12개 빠진 기둥도1개 빼면 사무실 하나 버틸 힘 사라져“하나쯤 괜찮겠지 관행이 붕괴 불러무게 버틸 수 있게 반드시 보강해야”히어로팀은 현장에서 얻은 검사 결과를 가지고 구조설계 전문업체 ‘한구조엔지니어링’에 분석을 의뢰했다. 철근이 빠진 기둥은 무게를 버티는 힘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분석 결과 A아파트 기둥(철근 24개 중 12개 누락)이 설계대로 시공됐을 경우 견뎌낼 수 있는 무게는 약 300t이다. 하지만 철근 누락 시공 탓에 지탱 한계가 4분의 3인 226t으로 줄었다. 철근 총 20개 중 2개가 빠진 B아파트 기둥이 견딜 수 있는 최대 무게는 294t이다. 철근 20개를 모두 넣었더라면 306t까진 버틸 수 있었다. 이길림 한구조엔지니어링 이사는 “B아파트 기둥의 경우 철근이 하나 빠지면서 사무실 하나 정도(㎡당 350kg)를 견딜 수 있는 힘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기둥뿐 아니라 천장에도 주철근이 빠졌다면 어떤 영향이 있을까. 천장 철근을 5개에서 4개로 줄였다고 가정해 분석하자 ‘부적격 건물’이라는 결과가 나타났다. 기둥 철근이 빠졌을 때보다 영향이 컸다.아파트 설계 및 시공에는 ‘안전율’이라는 개념이 있다. 버틸 수 있는 최대 무게를 실제 가해지는 무게로 나눈 숫자. 안전율이 1보다 낮으면 붕괴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구조기술사들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대비해 안전율에 1.2∼1.5배 이상의 여유분을 두고 건물을 설계한다. 철근 10개가 필요한 지점에 12∼15개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1, 2개가 빠져도 당장 붕괴가 일어나진 않는다.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철근 누락 지점을 반드시 보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감정인(건설) 오석진 진이엔씨 대표는 “신차 타이어 부품 1개가 없어도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만,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바퀴가 빠지는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 아파트도 같다”고 말했다. 구조설계전문업체 정승열 SH구조엔지니어링 대표는 “철근 한 개라도 빠지면 그만큼 무게를 버틸 여유가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최근 건설 현장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내는 ‘밸류엔지니어링(VE)’이 확대되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율을 최소화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1.5배 이상 두던 안전율을 1에 가깝게 타이트하게 수정하는 식이다. 김규용 충남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다른 선진국보다 시공 관리 감독 역량이 떨어진다”며 “무턱대고 안전율만 타이트하게 가져가면 붕괴 위험만 높아지는 꼴”이라고 했다.● “철근 하나쯤이야 관행 계속되면…”지난해 9월 서울 구로구의 공사 현장에서 만난 신상준 철근소장은 “철근이 빠져도 콘크리트에 묻히고 나면 아무도 모르고 넘어가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철근 하나쯤은 빼먹어도 괜찮을 것. 모를 것”이라는 관행으로 굳어졌다는 게 현장 이야기다. 철근 탐사를 마친 안 전 학장은 이 같은 업계 관행에 대해 “설마 하며 넘어갔던 안전불감증 끝에 발생한 사고를 몇 번이나 더 겪어야 하냐”라며 ‘하인리히 법칙’을 예로 들었다. “330번 중앙선을 침범하면 300번은 문제가 없고 29번은 경미한 사고, 1번은 사망 사고가 발생한다는 게 하인리히 법칙입니다. ‘철근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관행이 계속되면 어느 순간 대형 붕괴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히어로팀 어떻게 조사했나국토부 쓰는 장비로 기둥 1개당 30번 이상 주철근 탐지히어로콘텐츠팀은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자기장 활용 비(非)파괴 검사 장비로 조사 대상 아파트 기둥과 철근을 탐사했다. 콘크리트를 깨부수지 않고 철근 시공 유무를 검사할 수 있는 유일하고 검증된 방식이다. 히어로팀은 리히텐슈타인 ‘힐티’사의 최신 철근 탐지기인 ‘PS(페로스캔) 300’ 모델을 사용했는데, 국토교통부 전수조사 시행 당시 조사업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장비다. 기자들은 서울 송파구 힐티코리아 본사에서 전문가에게 장비 사용 교육도 받았다. 이 장비는 콘크리트 깊이 최대 20cm 안까지 철근 확인이 가능하다.히어로팀은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하나의 기둥당 위, 중간, 아래 부위를 총 30회 이상씩 검사했고 전문가와 동행해 재검증을 받았다. 결과 데이터는 건축구조기술사 등에게 의뢰해 다시 검증을 받았다.국토부는 2023년 조사 당시 철근 중 ‘전단보강근’을 조사했는데 이 철근은 기둥과 천장, 바닥의 연결 지점에 묻혀 있어 검사 장비로는 제대로 탐지가 안 된다. 전문가들은 “콘크리트를 부수고 그 안을 들여다보는 파괴 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 전단보강근은 외부에서 장비로 검사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다른 철근들에 가려져 있어 제대로 판독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히어로팀은 이런 점을 감안해 기둥에 수직으로 설치되는 ‘주철근’을 탐사했다. 건물의 붕괴를 막는 데 있어 전단보강근보다 훨씬 중요한 핵심 부위가 주철근이라는 점, 외부에서 장비로 탐지하기가 매우 쉽고 빠르다는 점, 검사 결과가 정확히 나온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히어로팀은 철근 누락이 발견된 아파트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입주민 등에 재산상 피해를 줄 수 있는 점, 특정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 아파트의 문제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 [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 공개됩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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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존 男승무원 “깨어보니 구조돼 있더라”

    전남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당시 탑승객 181명 중 극적으로 구조된 승무원 2명은 다행히 모두 생명에 지장이 없고, 의식도 뚜렷한 것으로 전해졌다. 29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동체 꼬리 쪽에서 구조된 남녀 승무원은 골절상 등을 당한 채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2명 모두 여객기 뒤쪽 비상구 부분에 앉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공항 외벽 충돌 과정에서 꼬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면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남성 승무원 이모 씨(33)는 사고 직후 목포한국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 씨는 ‘어디가 아프냐’란 의사의 질문에 “내가 여기 왜 오게 된 것이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이 씨는 또 “도착을 앞두고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고, 비행기가 착륙한 것 같았는데 이후는 기억이 없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이 씨는 이날 오후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으로 옮겨져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씨는 흉추와 좌측 견갑골·늑골 등 5곳이 골절되고 머리에 열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 관계자는 “이 씨의 의사소통 능력에는 문제가 없다”며 “(이 씨가) ‘깨어 보니 구조돼 있더라’라고 했다. 다만 정신적 트라우마가 우려돼 사고에 관해서는 묻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함께 구조된 여성 승무원 구모 씨(25)도 골절상과 타박상을 입고 목포중앙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구 씨는 이송 과정에서 구급대원에게 “조류 충돌로 추정된다. 비행기 엔진에서 연기가 난 뒤 폭발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구 씨는 이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으로 전원됐다.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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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왜 여기에” “엔진서 연기 난후 폭발”…구조 2명은 비행기 후미에 있던 승무원

    전남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당시 탑승객 181명 중 극적으로 구조된 승무원 2명은 다행히 모두 생명에 지장이 없고, 의식도 뚜렷한 것으로 전해졌다.29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동체 꼬리 쪽에서 구조된 남녀 승무원은 골절상 등을 당한 채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2명 모두 여객기 뒤쪽 비상구 부분에 앉아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공항 외벽 충돌 과정에서 꼬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면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남성 승무원 이모 씨(33)는 사고 직후 목포한국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 씨는 ‘어디가 아프냐’는 의사의 질문에 “내가 여기 왜 오게 된 것이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이 씨는 또 “도착을 앞두고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고, 비행기가 착륙한 것 같았는데 이후는 기억이 없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이 씨는 왼쪽 어깨가 골절되고 머리 등을 다쳤지만 병원 측은 이 씨의 맥박이 정상이고 보행도 가능한 정도라고 진단했다. 이날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이 씨를 서울 강서구의 병원으로 이송한 한 구급대원은 “(이 씨의 상태가) 주변과 대화할 수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함께 구조된 여성 승무원 구모 씨(25)도 골절상과 타박상을 입고 목포중앙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구 씨는 이송 과정에서 구급대원에게 “조류 충돌로 추정된다. 비행기 엔진에서 연기가 난 뒤 폭발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구 씨는 서울 송파구의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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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노상원, ‘장군 못될 이름’이라 개명했다 들어… 야전 피하려 靑 기웃”

    “노상원 같은 사람을 우리는 정치군인이라고 부른다.”(육군사관학교 동기 C 씨) “성추문 이후로 사람이 권력 지향적으로 변해 있었다.”(대전고 동문 A 씨) 12·3 비상계엄을 사전 모의한 의혹을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지인들은 대부분 그를 옛 이름인 ‘노용래’로 지칭하면서 ‘권력욕 많은 군인’으로 묘사했다. 노 전 사령관의 육사 동기들은 그가 진급을 위해 이름까지 바꿨고 군인 같지 않게 늘 권력 주변부에 있으려 애썼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그의 성향은 민간인 신분으로 ‘롯데리아 회동’ 등을 통해 배후에서 비상계엄을 기획하고 정보사 내 사조직 ‘수사2단’을 구성했다는 의혹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군 못 될 이름’ 사주팔자에 개명까지노 전 사령관의 육사 41기 동기인 C 씨는 25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노용래(노 전 사령관의 개명 전 이름)는 초년부터 권력욕이 아주 강했다”며 “소령 때부터 야전에서 근무하려고 하지 않고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정치권을 계속 기웃거리더라”라고 했다. C씨는 당시 동기들 사이에서 노 전 사령관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다며 “사주팔자를 봤는데 기(氣)가 막혀 있고, 진급해 장군이 되려면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소리에 개명까지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장군이 되려면 장군봉 세 군데를 다니면 된다는 말에 노 전 사령관이 계룡산, 오대산 등 장군봉을 다녔다는 말도 있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의 다른 육사 동기는 “(2007년) 박흥렬 씨가 노무현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 할 때 노상원이 육군참모총장 비서실 산하 정책과장을 했다”며 “나중에 박 씨가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갔는데 노상원을 데리고 갔다”고 했다. 박 씨는 ‘기무사 계엄 문건 작성’의 배후로 지목돼 당시 검찰 조사까지 받았으나 무혐의로 결론 났다. 같은 사건으로 수사를 받았던 다른 육사 출신 고위 장성은 현재 노 전 사령관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 친구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노 전 사령관은 나와 관계없는 인물”이라고 선을 그었다.● 동문들 “고교 때 조용히 공부만… 계엄 배후라니” 노 전 사령관의 모교인 대전고 동문들은 “노용래는 워낙 여성스럽고 조용히 공부만 해서 이번 계엄 사태의 배후라는 걸 접하고는 다들 놀랐다”고 말했다. 대전고 동문 김모 씨(64)는 “노 전 사령관은 대학에 갈 당시 서울대 사회과학대를 갈 수 있는 충분한 성적인데도 육사 진학을 선택했다”며 “동문들 사이에서는 ‘우리 동문 중에 육군참모총장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있었다”고 했다. 또 다른 동문은 노 전 사령관이 고3 때 대전 모처로 떠난 학도호국단 캠프에서 사격 ‘만발’을 맞혀 군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성추문으로 불명예 퇴직한 2018년 이후 그를 한 차례 만났다는 한 동문은 “(이전과 다르게) 사람이 굉장히 권력 지향적으로 변해 있더라”라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이 12·3 불법 비상계엄의 비선이자 핵심으로 지목된 뒤 그의 주변 지인과 이웃들은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노 전 사령관의 또 다른 동문은 “10년 전에 사병들이 기강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면 많이 혼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강직한 군인 스타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의 거주지 중 한 곳으로 알려진 충남 서천군 일대 주민들은 “최근 수사기관에서 압수수색이 들어온 것 같다”며 뒤숭숭한 분위기를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은 24일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된 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59)가 수감 중인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검찰은 이르면 26일 노 전 사령관을 불러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대전=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서천=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 202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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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檢, “국수본 지시로 국회에 경찰 50명 파견” 의심

    검찰이 “3일 불법 비상계엄 당일 국군방첩사령부의 체포조 운영과 관련해 국회에 경찰 50명이 대기했다”는 군 관계자들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25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국수본이 국군방첩사령부에 정치인 등 유력 인사 ‘체포조’를 지원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국회 수소충전소에 영등포경찰서 소속 경찰 등 50명이 대기 중”이라는 계엄 당일 통화 녹취록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경찰과 방첩사 관계자들의 진술을 종합할 때 국수본이 국회에서 가까운 영등포서 경찰들을 중심으로 의원 체포조를 꾸린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검찰은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 조사를 통해 관련 사안을 보고받았는지, 보고를 받은 시점은 언제인지 등 사실관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계엄 당일 우 본부장과 국수본 지휘부들 사이의 통화 내역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검찰은 앞서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으로부터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체포조 100명을 경찰에 요청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이에 대해 여 사령관은 “국회 체포조가 아닌 계엄 합동사령부에 필요한 경찰 수가 100명이라고 언급한 것”이라며 “실제로 합동 작전을 어떻게 할지 등은 전혀 구상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국수본 관계자는 “계엄 당시 영등포서에서 우발상황 대비 및 질서유지를 위해 자체적으로 비상소집한 형사들을 수소충전소에 배치했던 것”이라며 “방첩사로부터 ‘현장 안내 목적’으로 10명의 명단을 요청받아 제공한 것일 뿐, 나머지 인원들은 방첩사의 체포조와 전혀 관계가 없고, 방첩사 관계자들의 일방적인 진술”이라고 반박했다.내란 혐의를 받는 문상호 정보사령관(수감 중)을 조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최근 문 사령관으로부터 “계엄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 체포조를 운영한 것이 맞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문 사령관이 계엄 이후 텔레그램 앱을 삭제하는 등 증거를 인멸하려고 한 정황도 파악했다. 경찰도 12·3 비상계엄의 핵심 배후로 꼽히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을 24일 검찰에 넘긴 뒤 노 전 사령관과 사전 계엄 회동을 했다고 알려진 구삼회 2기갑여단장을 25일 불러 조사했다.최미송 기자 cms@donga.com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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