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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97개 사립 중고교 교장이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거부한 학교장에게 출석을 요구한 서울시의회의 조치를 교권 침해로 보고 강력히 대응하기로 했다. 서울시사립중고등학교장회(회장 조형래 배명고 교장)는 4일 성명을 내고 “서울시교육청과 시의회는 학교를 더이상 이념 논란의 장으로 만들지 말고 친일인명사전 구입과 이용에 관한 결정을 전적으로 학교 자율 재량에 맡겨야 한다”며 “구입 거부 학교장을 시의회에 출석시키고 징계까지 요구하기로 한 방침을 철회하지 않으면 시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성명 발표에 찬성한 학교 297곳은 서울 전체 사립 중고교(312곳)의 95%다. 4일까지 시교육청에 친일인명사전 구입 거부 의사를 밝힌 학교는 4곳으로 모두 사립학교다. 이를 감안하면 친일인명사전을 이미 산 학교들도 시교육청과 시의회의 구입 강제 방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상당수 학교장은 “시교육청과 시의회의 지시와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친일인명사전을 샀어도 도서관에 비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언급해왔다. 교장회는 “친일인명사전이 정치적 편향성을 담고 있는 저작물인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다”면서도 “다만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저작물을 구입해 학교에 비치하는 문제는 학교장을 비롯한 구성원의 의사와 제도적 절차를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학교도서관진흥법과 초중등교육법에서 정한 대로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나 학교운영위원회의 (구입 거부) 의사결정을 따르려는 학교장을 시의회에 불러 핍박하고 징계하겠다는 건 교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했다. 7일 출석을 요구받은 학교장들은 모두 시의회에 나가지 않을 방침이다. 시교육청이 4일 동성고 서울디지텍고 영훈고 중동고에 확인한 결과 학교장들은 “학교 자율권 수호 차원에서 시의회 교육위에 나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3일까지는 구입 거부 방침을 밝힌 학교가 6곳이었지만 4일 오전 2곳이 입장을 번복했다. 교장회는 학교장들의 출석 거부 이후 시의회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시민단체와 연대 투쟁에 나서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거부하는 학교에 굳이 구매를 강요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각 학교에 구입 예산을 지원했던 시교육청은 구매 거부 학교에 보낸 예산 30만 원을 환수할 방침이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법원과 정부가 친(親)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성향의 교육감들이 내놓은 좌편향 정책에 잇달아 제동을 걸고 나섰다. 대법원은 전북도교육청의 학교자치조례를 집행 정지시켰고, 교육부는 친일인명사전 배포를 강행하는 서울시교육청에 “법적 절차를 지켰는지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법외 노조 판결을 무시하는 전교조에 대한 정부의 압박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좌편향 정책과 전교조의 투쟁 일변도 기조는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결국 그 피해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친전교조 진영이 최소한 실정법의 테두리는 지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 “친일인명사전 배포, 절차 무시 의혹”… 교육부, 서울교육청 재압박교육부는 3일 “친일인명사전을 교육자료로 선정해 배포하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심의 절차를 지켰는지 확인해 8일까지 보고하라”며 서울시교육청을 압박했다. 교육부는 각 학교가 도서를 구입하려면 학교도서관진흥법과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나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시교육청이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중고교 583곳에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강제했다고 보고 있다. 일선 학교의 불만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사립중고등학교교장회는 ‘친일인명사전 구입 강제 방침이 학교장의 자율권과 교사의 교권, 학교도서관운영위의 심의 권한도 침해한다’는 성명서를 4일 발표하기로 했다. 교장회는 특히 서울시의회가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거부한 학교장들에게 7일 출석하라는 공문을 보낸 것에 반발하고 있다. 조형래 회장(배명고 교장)은 “구입을 거부한 학교장에게 시의회로 출석하라는 건 교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고 정치권력이 교육 위에 군림하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3일 현재 시교육청에 친일인명사전 구입 거부 의사를 밝힌 학교는 자율형사립고 3곳을 포함해 사립학교 6곳이다. 당초 거부 의사를 밝힌 학교가 13곳이었지만, 일부 학교가 시의회의 출석 요구 공문 때문에 방침을 바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3일 “시의회가 학교장에 대한 강제 소환과 징계 요구를 강행한다면 소송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 “학교장 권한 옥죄는 조례, 집행정지”… 대법 “전북교육청, 상위법 위반”일부 교육감이 추진하는 학교자치조례에도 제동이 걸렸다. 교육부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달 26일 전북도교육청의 ‘전북 학교자치조례안’의 집행을 정지하라고 결정했다. 도교육청이 1월 공포한 이 조례는 일선 초중고교에 학칙, 예산, 교육과정을 심의하는 ‘교무회의’와 담임 배정, 교원 업무를 심의하는 ‘교원인사자문위원회’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했다. 교장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교무회의와 자문위의 의견을 수용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교육부는 이 조례가 상위법을 위반할 뿐 아니라 교장의 경영권과 운영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며 대법원에 조례 무효 확인 소송을 내고 집행정지결정을 신청했다. 교육부는 “대법원의 결정은 교사와 학생의 자율권을 지키기 위한 가처분 성격”이라며 “조례의 위법성을 다루는 본안소송은 최소 2, 3년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학생자치조례는 친전교조 성향 교육감의 주요 공약 중 하나다. 표면적으로는 “지나치게 비대한 교장의 권한을 줄이고 교사의 권한을 늘려 학교 민주화를 이룬다”는 게 정책 목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일부 교육감이 자신의 지지 세력인 전교조의 영향력을 학교 현장에서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대법원의 결정은 같은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경기도교육청과 강원도교육청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 설립을 주도한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이미 2013년 이 조례를 만들었지만 교육부가 무효 확인 소송을 내 4년째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 ‘시국선언’ 전교조교사 징계 안한 교육감 14명 고발 ▼교육부,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사무실 보증금 6억 가압류도 추진교육부는 법외 노조가 된 뒤에도 정부로부터 본부 사무실 임차보증금으로 지원받은 국고보조금 6억 원을 반납하지 않는 전교조에 대해 4일 이후 법원에 가압류를 신청할 계획이다. 앞서 교육부는 두 차례 국고보조금 반납을 요청했지만 전교조는 응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국가채권관리법에 따라 전교조 본부 사무실 집기 등 재산을 가압류하게 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하고 이후 국고보조금 지급 청구 소송도 제기할 계획이다. 교육부가 학교에 복귀하지 않은 노조 전임자 40명에 대한 직권면직을 각 시도 교육감들에게 요구한 가운데 전교조는 강경한 투쟁을 예고했다. 지난달 27일 전국대의원대회에서 “탄압을 뚫고 조직을 확대 강화하겠다”며 △총선 대응 교육혁명 의제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등을 현안 투쟁 사업으로 정했다. 교육부는 전교조가 전임자와 일반 조합원 간 역할 분담을 통해 이전보다 강력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보고 있다. 간부급 전임자들이 직권면직되면 더 이상 공무원이 아닌 만큼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필요가 없어진다. 결국 전임자들이 극한 발언과 투쟁을 주도하고 조합원들의 참여를 이끄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29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1차 시국선언에 참가한 전교조 조합원들을 징계하지 않은 14개 지역 교육감을 2일 검찰에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최예나 yena@donga.com·이은택 기자}
‘입시의 첫 단추’라고 불리는 전국연합학력평가가 10일 실시된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이번 학력평가는 지난해와 달라진 여러 입시제도가 반영되는 첫 시험이다. 수준별로 치러졌던 국어가 통합되고, 수학은 계열별(‘가’형과 ‘나’형)로 바뀌며 한국사는 처음 필수로 지정됐다. 3월 학력평가에서 점수가 좋게 나온다고 자만해선 안 된다. 학력평가에는 재수생이 포함되지 않는다. 재수생이 합류하는 6월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에서는 보통 재학생 성적이 떨어진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는 “3, 4월 학력평가는 실력을 점검하는 차원으로 접근하고 6월 모의평가를 목표로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력평가 전까지 기출문제를 충분히 풀어 보는 게 좋다. 3월 학력평가는 1, 2학년 때 치른 모의고사와 완전히 다르다. 출제 경향이나 난이도가 수능과 거의 유사해서다. 기출문제를 토대로 충분히 시험 유형에 익숙해진 뒤 시험을 보는 게 좋다. 다만 3월 학력평가는 출제 범위가 수능보다 작으므로 다른 문제집도 여러 권 풀어 보는 게 바람직하다. 시험을 치른 뒤에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김희동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모의평가는 수능처럼 표준점수와 백분위, 등급만 제공되지만 학력평가는 석차, 오답률까지 나와 취약점을 찾기 좋다”고 강조했다. 취약한 부분은 앞으로 들어야 할 EBS 강의, 각종 인터넷 또는 학원 강의 계획에 적극 반영하는 게 좋다. 첫 학력평가부터 오답노트를 만들어 두면 수능 직전에 어떤 교재보다도 유익할 것이다. 이번 시험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탐구영역 과목 선택과 한국사 공부법 전략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탐구영역이나 한국사는 대학마다, 또 전공마다 반영 비율과 방법이 다르다. 언어 수학 영어 난도가 낮아질수록 상위권 대학에서는 탐구 과목 영향력이 커진다. 한국사는 반영 비율에 비해 분량이 많아 공부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이 필요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부정적 인식을 반영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던 ‘정신지체’라는 용어가 27년 만에 완전히 사라졌다. 특수교육 대상자 선정 요건 중 ‘정신지체’를 ‘지적장애’로 변경하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일부 개정안이 지난달 3일 공포·시행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이에 교육부는 17개 시도 교육청에 법 개정 내용과 함께 “정신지체 학생 대신 지적장애 학생이라고 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교육부는 정신지체라는 용어를 지적장애로 바꾼 이유로 장애 관련 유사 법령 간 용어 통일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었다. 교육부는 “장애인의 종류를 정하는 장애인복지법도 2007년 10월부터 정신지체인을 지적장애인으로 변경했다”며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정신지체는 지적장애의 전 용어로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장애인복지법에서 정신지체라는 용어가 사라졌는데도 유독 특수교육법에서만 유지돼 특수교육기관 종사자들은 혼란을 호소하고 지적장애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상처를 받았다. ‘정신지체’라는 용어는 1989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사용됐다. 그전까지는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에서 규정한 ‘정신박약’이라는 용어가 쓰였다. 정신지체 대신 지적장애라는 용어를 쓰는 건 세계적 추세기도 하다. 미국정신지체협회는 2007년 1월부터 명칭을 미국지적장애 및 발달장애협회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Mental Retardation’(정신지체) 대신 ‘Intellectual Developmental Disorder’(지적발달장애)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개정 특수교육법이 시행됨에 따라 시행령과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도 최근 입법예고했다.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6월부터 시행된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2~18일까지 저소득층 가정을 대상으로 ‘초중고 학생 교육비와 교육급여 지원’ 신청을 받는다고 1일 밝혔다. 교육급여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일환으로 전국 지원 기준이 동일하고, 교육비 지원은 각 시도교육청의 예산에 맞춰 지원하는 사업이라 지원 기준이 다르다. 교육급여 수급자로 결정되면 초등학생은 연간 부교재비 3만9200원, 중학생은 부교재비와 학용품비 9만2500원, 고교생은 학용품비·교과서대금 18만4600원과 입학금·수업료 전액을 받을 수 있다. 교육비 지원 대상자는 초·중학생은 부교재비와 급식비, 방과후 수강권, 교육정보화 등 연간 최대 156만 원, 고교생은 학비가 더해져 최대 294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신청 가구의 소득·재산조사 결과가 기준 중위소득 50% 이하인 경우(4인 가구 기준 월 소득인정액 219만 원 이하) 교육급여와 교육비 지원을 모두 받을 수 있다. 교육급여 수급자로 선정되지 않아도 소득·재산조사 결과가 교육청별 지원기준(일반적으로 중위소득 50~60% 이내)에 해당하면 교육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보호자가 사고나 실직을 당해 일시적으로 가정환경이 어려워지거나 서류상 증빙하기 어려운 경제적 곤란에 처한 경우 학교장 추천을 통해 교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지원받길 원하는 학부모나 보호자는 주소지의 주민센터에서 신청하면 된다. 교육비 지원만 신청하는 경우 ‘교육비 원클릭’ 사이트(oneclick.moe.go.kr)나 ‘복지로 온라인’(online.bokjiro.go.kr)에서도 가능하다. 이미 교육비나 교육급여를 지원받고 있다면 다시 신청하지 않아도 된다. 기존 정보로 가구의 소득·재산을 조사해 계속 지원 여부를 심사받는다. 교육급여와 교육비 신청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면 주민센터나 중앙상담센터(1544-9654), 보건복지부 콜센터(129)로 문의하면 된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교육자로서의 국가관이 매우 의심스럽다. 서울시의회에 출석을 요구하고 징계를 요구하겠다.” 김문수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이 29일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거부하는 학교장들에게 ‘소환장’ 발급을 예고했다. 그는 “보수적인 정치세력과 일부 언론의 방해로 몇몇 학교장들이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보류하고 있다”며 “시의회의 예산 의결권을 무시하고 교육감의 지시사항을 거부한 것으로 학생들에게 본을 보여야 할 교육자이자 공직자로서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친일인명사전 강제 구입 지시에 대한 불만이 폭발 일보 직전이다. A고 교장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고 교장인 나조차 읽어보지 못한 책을 섣불리 도서관에 비치하는 건 교육자로서 무책임한 것”이라고 말했다. B고 교장은 “특정 민간단체가 만든 도서의 구입을 강제하는 건 교육청이 그곳을 간접 지원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학교장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많았다. C고 교장은 “교육과정상 필요한 책인지는 학교장이 판단해야 하는데 교육청은 ‘돈(30만 원) 줬으니 사라’는 식”이라고 했다. 학교가 불법을 저지르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학교도서관진흥법에 따르면 학교는 도서 구입 전 1주일간 공포하고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방학이라 운영위를 열기 어렵고, 운영위가 반대할 경우 교육청 지침을 따르려면 법을 위반해야 한다. 그러나 목소리를 높이던 교장들은 이내 한숨을 쉬었다. “교육청에 반발할 수 있는 학교가 몇이나 될까요. 공립학교는 특히 그렇고 사립학교는 괜히 감사나 받죠.” 이에 상당수 학교는 책을 사되 교장실이나 창고 등에 비치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한 교장은 “학부모단체에서 도서관에 책을 비치하는 교장은 고발하겠다고 해 다행히 핑곗거리가 생겼다”라며 웃었다. 일단 시교육청에 친일인명사전 구입 거부 의사를 밝힌 13개교 교장(29일 기준)은 시의회에 출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가장 바쁜 개학 시즌에 말이다. 학교장이 시의회에 출석하는 건 이례적이다. 도서를 구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는 최초다. 김 위원장은 이들 교장에 대한 징계까지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원 징계는 국가가 교육감에게 위임한 사무다. 누가 올바른 교육자인가. 학생들에게 끼칠 영향은 전혀 고민하지 않고, 책 살 돈을 쥐여줬다고 “잘 알겠습니다” 해야 하는가.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거부한 교장들은 잘못된 국가관을 가진, 학생들을 위하지 않는 교육자라는 뜻인지 묻고 싶다.최예나·정책사회부 yena@donga.com}
교육부가 법외 노조가 된 뒤에도 학교에 복직하지 않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임자 40명을 직권면직하라고 17개 시도 교육감에게 요구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교육부는 최근 각 시도 교육청에 ‘소위 전교조 미복직 노조 전임자에 대한 직권면직을 3월 18일까지 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교육부가 직권면직을 요구한 전교조 노조 전임자는 총 40명이다. 전교조는 지난달 23일 ‘2016년 3월 1일자 전임 신청’ 명단에 이들 40명의 이름을 올려 교육부로 보냈다. 지난해 전임자 활동을 하던 83명 중 이들 40명은 올해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또 전임자 활동을 하겠다는 취지다. 40명 중에는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과 각 지부장 등이 포함돼 있다. 교육부는 만약 일부 교육감이 전교조 전임자 40명에게 휴직 허가를 내주면 직권으로 취소할 방침이다. 직권면직 처분을 하지 않는 경우 교육감들에게 직무이행명령을 내리고 그것도 어길 시 직무유기죄로 형사 고발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또 교육감들에게 18일까지 전교조 법외 노조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사무실 지원 중단’ 공문을 보내지 않은 교육청은 인천 광주 세종 강원 전북 제주 등 6곳, ‘단체협약 효력 상실’을 통보하지 않은 교육청은 서울 광주 세종 강원 충남 전북 경남 제주 등 8곳이다. 교육부는 이 두 가지 후속 조치 이행을 계속 거부하는 교육감에게는 시정명령을 내릴 방침이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박근혜 대통령 취임 3주년을 넘어서고 있지만 국정의 핵심인 외교안보부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 실생활에서는 특히 교육 분야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선거 때 공약한 교육 복지 외교안보 분야의 주요 정책이 어떻게 추진돼 어떤 공과(功過)를 만들어 냈는지 심층 진단에 나선다. 》 “사교육을 줄였다고 꼽을 만한 정책이 없다. 정부의 의지 자체가 없는 듯하다.”(안상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부소장) “요새는 공부만 해서는 자기소개서에 채울 내용이 없다.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다 돈으로 만들어야 하는 게 문제다.”(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서울 서초구의 이모 씨) 박근혜 정부는 3년간 ‘행복교육’을 외쳤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학생도, 학부모도, 대학도 너나없이 교육 문제로 인한 경제적, 정신적 부담이 커졌다고 목청을 높인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내놓은 2015년 초중고교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는 정부 조사 이래 최고치인 24만4000원으로 3년 연속 증가했다. 그러나 이 수치에조차 고개를 끄덕이는 학부모는 아예 없다. ○ 늘어나는 사교육 부담 주변 학부모들에게 “영어, 수영, 미술 학원은 안 보내느냐”고 핀잔을 받는 A 씨가 초등학교 6학년 딸에게 쓰는 사교육비는 매달 약 48만 원(수학 20만 원, 피아노 13만 원, 중국어 13만 원, 방과후학교 컴퓨터 3개월에 8만 원). 적잖은 부담이지만 “지금 입시 체제에서는 초등학교 때 영어랑 예체능을 끝내 놓아야 중학교 때 자기소개서용 스펙 준비, 고등학교 때 입시 수학 준비에 집중할 수 있다”는 주변의 말에 늘 불안하다. “남들 하는 만큼 시킨다”는 B 씨가 중3 아들에게 쓰는 사교육비는 매달 175만 원(영어 주 3회 과외 50만 원, 수학 주 2회 과외 50만 원, 국어 사회 역사 학원 각 20만 원, 과학 학원 15만 원)이다. 고교에 가면 훨씬 더 비싸질 학원비에 벌써부터 한숨이 난다. 정부는 획기적으로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부담이 날로 늘어난다고 하소연한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사교육 경감을 위한 정책은 없고, 새로운 사교육 수요를 계속 만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초중고교 사교육비 통계가 매년 오르는데 교육부는 올해 업무보고에서도 구체적인 사교육비 절감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영어, 학습지, 발레 등 영유아 사교육 폭증에 대한 비판이 높지만 교육부는 “2018년부터 3∼5세 사교육비를 국가 통계로 지정하겠다”며 느긋한 반응이다. 대표적인 대선 공약인 자유학기제가 “학원들에 ‘링거’를 놓아줬다”는 말도 나온다. 정부가 2014년 일명 선행학습금지법(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학원의 선행학습 광고만 막을 뿐 선행학습 자체는 막지 않은 탓에 학원들은 자유학기제를 ‘선행 사교육 집중 기간’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 고충 호소하는 대학과 대학생 현 정부 들어 대학들은 재정난과 구조 개편에 따른 운영난을 동시에 호소하고 있다. 반값등록금 공약에 따라 지난해 연간 등록금 14조 원 가운데 국가장학금으로 지원된 돈은 7조 원이다. 이 가운데 대학의 부담분이 3조 원이 넘는 데다가 각 대학이 정부로부터 국가장학금Ⅱ 유형을 받기 위해 수년째 등록금을 동결하면서 대학은 재정난을 겪고 있다. 지난 정부가 부실 대학을 중심으로 구조개혁을 했던 것과 달리 현 정부는 모든 대학을 5등급으로 나눠 정원 감축을 압박하는 데 대한 불만도 높다. 서울 대규모 대학의 한 기획처장은 “연구 중심 종합대학은 국제 경쟁력을 높이려면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부실 대학을 적극적으로 정리하지 않고 모든 대학의 정원을 조금씩 줄이는 것은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산업 수요에 맞춘 프라임 사업, 인문학 진흥을 위한 코어 사업 등 신규 대학 재정지원 사업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대학들은 어느 기준에 맞춰 학과 구조를 재편해야 할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학생들의 삶의 질 역시 팍팍하다. 대선 공약은 ‘행복기숙사’를 많이 만들어 기숙사 수용률을 30%까지 높이고, 사립대 기숙사비를 30% 인하하겠다고 했지만 둘 다 지켜지지 않았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까지 겹쳐 대학 재학 기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대학생들은 실질적인 대학 학비 부담이 늘어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 갈등 조정 능력 없는 교육부 지난 3년간 교육과 관련한 사회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누리과정,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간강사 처우 개선 등을 두고 갈등이 지속되고 있지만 교육부는 사회부총리 부처에 걸맞은 갈등 조정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누리과정 예산 문제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지만 교육부는 관련 주체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기보다는 “누리과정 예산은 교육청의 의무이고, 이미 누리과정 예산을 지급했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사회적 갈등을 빚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두고도 교육부는 일방통행을 고집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국정화 방침을 확정 고시한 뒤 교과서 집필진과 편찬 기준 등을 공개하겠다던 약속을 뒤집고 비공개로 집필을 진행 중이다. 2011년 12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수차례 시행이 유예된 시간강사법 역시 교육부의 무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강사를 보호한다는 법의 취지와 달리 시간강사들은 대량 해고를, 대학은 재정 부담 증가를 우려해 법 시행은 2012년, 2013년 잇달아 연기됐다. 그런데도 교육부가 2년간 사태 수습을 하지 못하자 지난해 말 국회가 다시 법 시행을 유예하면서 대학가는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다.유덕영 firedy@donga.com·최예나 기자}

오세목 서울자사고교장협의회장(중동고 교장·사진)은 서울시교육청의 친일인명사전 구입 지시와 관련해 28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정치적으로 논란이 있는 책을 교육청이 구입하라고 강제하는 건 학교장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일”이라며 “교육과정 운영에 필요한 책인지는 학교장이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회장에 따르면 자사고들은 시교육청이 친일인명사전 구입 예산을 자사고에까지 내려보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시교육청은 공립학교에 비해 재정 사정이 좋은 편인 자사고에 목적사업비를 내려보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사고에 정말 필요한 지원은 해주지 않고 생뚱맞게 내려준 예산은 ‘노 생큐(No thank you)’”라고 말했다. 오 교장은 협의회 차원의 결정에 대해 “자사고마다 학부모와 동문들로부터 ‘논란 있는 친일인명사전을 정말 구입할 거냐’는 전화가 많이 왔다”면서 “결국 서울자사고교장협의회가 25일 회의를 열어 구입을 유보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 회장은 “교육청이 사유서 제출 등을 요구한다면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예산 반납 절차도 알아볼 것”이라며 “협의회가 금주 중 구입 거부 이유를 공식적으로 조목조목 밝히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간호학과에 입학하는 이혜심입니다.” 수강신청 방법, 학과 소개, 기숙사 안내…. 귀가 쫑긋 섰다. 교수님들이 하나씩 이야기할 때마다 혜심이(22·여·사진) 가슴이 콩콩 뛰었다. 정말 한국인이 된 것 같았다. 4일 혜심이가 앉아 있던 방에는 ‘이화여대 재외국민과 외국인 특별전형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7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딱딱딱딱…. 잇소리가 경비대에까지 전해질까 봐 몸이 더 떨렸다. 10월이지만 배꼽까지 차오른 강물은 살짝 얼어 있었다. ‘저쪽에만 가면 엄마가 있을 거야.’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한동안은 벙어리여야 했다. “국경을 넘을 때 들켜도 절대 알은척하면 안 된다”고, “같이 죽을 순 없다”고 중국 쪽 브로커가 했던 말이 귀에 맴돌았다. 태국 국경 앞에서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 때문에 붙잡혔다. 라오스에 있는 감옥은 12월인데도 따뜻했다. 하지만 몸은 두만강을 건널 때처럼 떨렸다. 한국에 들어온 건 그로부터 3개월 뒤였다. 하나원 교육을 마치고 2010년 9월 사회로 나올 때 걱정은 하나였다. 일반 중학교에 가서 따돌림당할까 두려웠다.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탈북 학생은 2008년 966명에서 지난해 2475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들은 언어와 학업, 편견에 부딪혀 적응을 어려워한다. 오늘의 혜심이도 없었을지 모른다. 학교와 지역사회의 관심이 없었다면…. ▼ 배고픔보다 간절했던 공부… 두만강을 건넜다 ▼휴대전화 불빛에 깨알같이 작고 꼬불꼬불한 글씨가 드러났다. 혜심이는 잔뜩 웅크린 몸 위로 이불을 더 당겼다. 새근새근 친구들의 숨소리가 들렸다. 혜심이가 입을 움직였다. ‘시-오-엔-시-이-아르-엔(concern).’ 밖으로 새어나오는 소리는 없었다. 상산고(전북 전주) 기숙사에선 자정이면 모든 불을 꺼야 했다. 소등 뒤 공부하는 게 사감 선생님에게 걸리면 벌점을 받았다. 15점이면 퇴소다. 학생이 적어도 6시간은 자야 한다는 게 학교 규칙이었다. 잠이 안 왔다. 1분 1초도 안 자고 꼴딱 밤을 새워도 시간이 모자랐다. 친구들보다 늦은 2년…. 아니, 정확히는 11년이었다. 혜심이가 풀 뽑고 밭을 갈 때 이곳 친구들은 학교에 있었다. 첫 수업 날. 무슨 과목을 배웠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가슴이 미친 듯 쿵쾅거렸다는 느낌만 기억날 뿐이다. 선생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분명 한국말이었지만. 칠판을 보는 혜심이의 강렬한 두 눈이 심하게 흔들렸다. 슥슥슥 연필이나 볼펜이 노트 위를 바쁘게 오가는 소리가 앞뒤에서 들렸다. 꼴찌는 각오했었다. 어렵겠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굳은 의지를 갖고 온 학교였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혼자 공부할 때면 책상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대체 내가 왜 여기 앉아 있을까?’ 모든 과목이 어려웠지만 혜심이 성적표에 최악으로 적힌 건 늘 국어였다. ‘그래도 말은 알아들으니까’라고 생각했는데 국어는 혜심이 노력에 보답하지 않았다. 눈으로 읽을 수 있고 귀로도 들리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지 머리와 가슴이 이해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배경 지식을 쌓아온 친구들과 갑자기 한국에 떨어진 혜심이의 차이였다. 그날 들었던 종소리는 아직도 공포스럽다. 입학 후 첫 모의고사 국어 문제지를 받아 든 날. 지문 2개를 간신히 읽었을 뿐인데 80분이 훌쩍 지났다. “21번 답, 1번이야 2번이야?” 하는 친구들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거기까지 문제를 읽어보지도 못한 혜심이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북한과 달리 모든 문제가 5지선다라 찍을 수라도 있는 게 다행이었다. 객관적 상관물이 뭔지, 주객전도가 무슨 뜻인지…. 외계어를 듣는 것 같았다. 한국에 와서 처음인 게 대부분이지만 특히 영어가 그랬다. 경북 포항 창포중에 2학년 2학기부터 다닌 혜심이 곁에는 늘 단어장이 있었다.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 ‘엔-이-이-디.’ 여기 학생이라면 need를 ‘니드’라고 읽으며 뜻을 암기했을 터지만 혜심이는 오직 알파벳만 읽을 수 있었다. 큼직한 글씨에 한글과 그림이 적절히 섞여 있는 중학교 영어 교과서도 읽기 버거웠다. 그런데 상산고 영어 책(부교재)에는 한글이 하나도 없었다. 셜록 홈스 등 친구들은 자라면서 한 번쯤 읽어본 내용이고, 문장을 훑는 즉시 무슨 뜻인지 해석해냈다. 혜심이에겐 한 단어 한 단어가 높디높은 장애물이었다. 선생님 말이 외계어처럼 느껴지는 건 수학도 마찬가지였다. 수학 문제 앞에서는 늘 얼음 상태였다. 북한을 탈출할 때 쉴 새 없이 주변을 살피던 눈동자도, 불안에 덜덜 떨던 손도 수학시간엔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혜심이의 하루 공부 계획표에는 수학이 늘 10시간이었다. 주말, 도서관, 혜심이 책상 위에는 달랑 수학 책 한 권만 놓여 있었다.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든 엑스든 표시되는 문제가 10개도 안 되는 날이 많았다. 젖을 먹어야 하는 아기에게 밥을 먹이는 것. 숟가락 젓가락 중 어떤 걸 써야 할지도 가르치지 않고 일단 밥만 먹게 한 것.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혜심이는 자신이 한 공부가 딱 그 꼴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부터 늘 발등의 불을 끄기도 바빴다. 도덕 사회 체육 국어 영어 수학…. 가릴 것 없이 일단 달달달 외웠다. 어떻게 해서든 평균 점수를 올려야 하니까. 잘못된 줄 알았지만 달리 방법도 없었다. 남북하나재단의 ‘2014 탈북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 청소년 중 48%가 학교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로 ‘학교 수업 따라가기’를 꼽았다. 다음은 문화·언어 적응(14.9%), 친구관계(8.0%) 등이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탈북 학생의 학업중단율은 2.2%다. 2008년 10.8%였던 것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일반 학생의 학업중단율(0.8%)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혜심이가 이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탈북 학생들이 교육과정에 적응하기 어려워한다는 점이다. 탈북 학생의 학업중단율은 초교는 0.2%지만 중학교 2.9%, 고교 7.3%, 대학 9.8%로 올라간다. 혜심이에게는 보통의 탈북 학생과 어떤 다른 점이 있던 걸까.꼴찌를 각오한 여정의 시작 중학교 3학년 8월 말, 혜심이 앞에 학교 소개 책자가 여러 권 놓였다. 담당 형사와 혜심이네 집을 찾아온 한 노신사가 내민 것이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책자는 온통 영어로 돼 있었다. “우리 상산고는 전국 단위 자율형사립고인데 공부 잘하는 애들만 모인단다. 매년 50∼60명은 서울대에 가니까 네가 와서 꼴찌만 안 해도 정말 잘하는 거란다.” 임현섭 교감(2014년 퇴임)이 말했다. 자사고? 처음 들어보는 말에 혜심이는 눈만 끔뻑끔뻑거렸다. 임 교감은 덧붙였다. “딱 한 가지, 학생들이 공부도 잘하고 형편이 좋은 경우가 많은데…. 그런 걸로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되는구나.” 혜심이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바로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전혀 신경 안 써요.” 임 교감이 웃었다. “공부하려는 열정은 충분한 것 같으니 오렴. 결정은 네 몫이다. 학비 걱정은 전혀 하지 말고.” 그는 다시 오겠다고 했다. 혜심이는 양손 검지만으로 키보드 위에 ‘ㅅ ㅏ ㅇ ㅅ ㅏ ㄴ ㄱ ㅗ’라고 쳤다. ‘학생들이 영어로 뮤지컬을 하잖아? 입학생 성적이 상위 3%(중학교 졸업 성적 기준)? 나는 상대가 안 될 텐데 괜히 가서 힘들지 않을까?’ 잠시 머뭇거리던 혜심이 손이 빠르게 검색 창을 닫았다. ‘여기서 평생 살 거고 힘든 날이 더 많겠지. 공부는 분위기가 반이잖아. 어차피 경쟁은 안 될 테니 친구들에게 배우자는 마음으로, 한번 가보자.’ 진학을 결심한 혜심이 전화를 받은 임 교감이 수학 영어 교사를 데리고 다시 찾아왔다. 포항으로 가며 그가 두 교사에게 말했다. “이 아이를 데려오면 당신들이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겁니다. 당연히 입학 성적은 꼴찌겠지만 3년 동안 어떻게 잘 키워낼 수 있을지 연구하세요.” 2008년부터 상산고 교사들 지갑에는 전국 각지로 향하는 고속버스와 기차 승차권이 쌓여갔다. 각지의 ‘숨은 진주’를 찾으러 다니는 거였다. 임 교감 서랍에는 학생이 거주하는 경북 울릉도에 다녀오느라 끊었던 왕복 배편 영수증도 들어있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지 못한 소외계층 아이들도 일말의 가능성만 보인다면 데려다 키우기 위해서였다. 공부로 아이들의 삶과 세상을 바꾸게 하자는 취지였다. ‘수학의 정석’으로 번 돈으로 1981년 상산고 문을 연 홍성대 이사장의 뜻이었다. 어려서 어렵게 공부한 기억 때문에 경쟁력 있는 사학을 세우자고 결심했던 그였다. 그런데 유독 탈북 학생은 찾지 못했다. 어느 날 홍 이사장은 대구지방경찰청에서 장학금을 받은 학생 중 탈북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마침 대구에서 연수를 받고 있던 임 교감이 혜심이를 찾아갔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업 시연을 해본 교사들이 말했다. 하지만 임 교감은 포항에 두 번 더 갔다. 당시 혜심이 담임교사가 말했다. “지난해 처음 본 시험(2학년 2학기 중간고사)에서 400명 중 280등이었는데 벌써 100등 넘게 올랐어요. 공부는 평생 거의 처음이라는데 대단한 거죠.” 반 친구들도 이야기했다. “혜심이요? 걔 진짜 지독해요.” 학교로 돌아오는 임 교감의 발걸음이 가벼웠다.“내 이름을 모두가 알게 할 거야!” 숫자가 눈물에 젖어 자꾸만 번졌다. ‘50.’ 제일 먼저 파고들었던 수학의 1학년 첫 모의평가(6월) 점수였다. 다른 과목은 점수도 모른다. 다 찍었으니 채점은 무의미했다. 입을 앙다물어도 눈앞은 흐려졌다. 선생님들이 점심시간 휴식도 포기하고 방과 후 개인과외를 해주는데, 백번도 넘게 설명해주는데 왜 이 모양일까…. 친구들이 자는 동안 공부해도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자책이 늘어갔다. 자기 시간만 자꾸 도망가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혜심이는 세게 고개를 저었다. ‘너무 배가 불러서, 좋아서 이러는구나. 밥도 다 주지, 선생님들이랑 친구들이 다 챙겨주지, 공부만 하면 되는데 힘들다는 게 말이 돼?’라고 생각했다. 불과 3년 전 일이다. 종일 닭 토끼 개들에게 먹일 풀을 뜯고 농사를 지었다. 왜 의자에 앉아 있고 싶지 않았겠나. 하지만 손가락이 부르트게 일하지 않으면 “꼬르륵” 소리만 들어야 했다. 최대 과제는 겨울나기였다. 공부 한번 마음껏 해보는 것. 딱 한 가지 소원이었다. 그렇지만 그저 꿈이었다. 어차피 대학도 못 갈 텐데 시간 낭비였다. 지식이 있거나 재능이 있거나 예쁘거나 돈이 많거나…. 이 중 두 가지는 가져야 한다고 사람들이 그랬다. 북한도 변했다. 자기가 벌어서 먹고사는 세상이 된 지 오래였다. 자식도 한 명, 아들보다 딸이다. 혜심이도 예쁨 받고 싶었다. 하지만 늘 손가락질을 받았다.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없었다. “반역자의 집”, 사람들은 말했다. 엄마가 중국에 자주 왔다 갔다 했다는 이유였다. 억울했다. 사회 환경이 이러니 먹고살려고 그런 건데! ‘아웃사이더로 살기 싫다, 내가 열심히 살면 내 자식은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다.’ 혜심이는 바라고 또 바랐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혜심이라는 이름을 알게 만들 거야.” “모든 사람이 나를 우러러보게 할 거야.” “나는 전설이 될 테다. 내가 보여줄게.” “내가 지금 가진 건 열정뿐이다.” 혜심이 노트에는 빈 공간이 없었다. 힘들 때마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날 해야 할 공부를 마칠 때마다 ‘승리’라는 단어가 차곡차곡 적혔다.▼ “내 이름, 사람들이 알게 할 거야”… 새 꿈을 꾸다 ▼이곳에서도 가진 게 없긴 마찬가지였다. 재산 스펙 미모…. 하지만 딱 하나 바꿀 수 있는 게 있었다. 대학. 명쾌했다. 공부만 하면 되니까. 학교를 다니는 탈북 청소년이 희망하는 최종 학력은 대학교가 67.0%로 가장 많다(2014 탈북 청소년 실태조사). 다음은 △대학원-박사(14.2%) △전문대(6.6%) △대학원-석사(6.1%) 순이었다. 가장 필요로 하는 지원 역시 학습과 학업 부분(69.1%)이었다. △경제(63.0%) △진로상담(28.4%) △의료(7.5%) △친구 교류 등 적응(3.0%)보다 높은 수치다. 탈북 학생 다수가 대학 진학을 원하지만 대부분 대학 문턱에 가보지도 못하거나 진학을 해도 공부하기 버거워한다. 어쩌면 혜심이도 ‘탈북 학생 학업중단율’ 수치만 높이는, 그런 학생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이해심 많은 해피 바이러스 이혜심!” 입을 열기도 전에 심장이 쿵쿵쿵 뛰었다. 들킬까 봐 두려워 중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제 말해야만 한다. “나는 북한에서 온 이혜심이야. 모르는 게 많고 부족한 게 많으니까 많이 도와줘.” 창포중과 상산고에서 처음 친구들을 만날 때 혜심이는 솔직히 말했다. 숨겨서 얻을 건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말투와 억양 때문에 금방 들통 날 일이었다. 그럴 바에야 솔직히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는 게 최선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가급적 밝히지 않고 싶다는 탈북 청소년 비율은 2014년 32.3%로 2012년보다 4.2%포인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아무 거리낌 없이 밝힌다’는 응답은 2.4%포인트 줄었다(21.8%→19.4%). 북한 출신임을 공개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는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44.2%) △차별대우를 받을까 봐(26.0%)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호기심을 갖는 게 싫어서(16.4%) 등이 꼽혔다. 상산고 친구들은 이상했다. ‘이 애들은 북한에 관심이 없나?’ 오히려 혜심이가 궁금했다. 중학교 때는 첫 일주일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다. 아이들은 “김정일 알아?” “거기도 냉장고가 있어?” “텔레비전은 있냐?” 질문을 쏟아냈다. 상산고에서는 3학년 때가 처음이었다. 한국사 시간에 선생님은 혜심이에게 “친구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질문받아 보라”고 했다. 남학생 2개 반까지 혜심이 앞에 100명이 모였다. “나는 사실 너 같은 사람을 만난 게 처음이야.” 친구들은 그제야 털어놨다. 1학년 1학기가 끝난 뒤 여학생 3명이 임 교감을 졸랐다. “혜심이랑 한 학기 더 살게 해주세요, 네?” 기숙사 규정상 방 배정은 추첨이었다. 하지만 임 교감은 입학 전에 미리 당사자와 부모에게 양해를 구한 학생들만 혜심이 룸메이트로 묶었다. 혹시 따돌림을 겪을까 봐서였다. 하지만 한 학기 뒤 아이들은 말했다. “혜심이랑 있으니 제가 자극받고 많이 배워요.” 상산고 학부모들에게 혜심이는 딸이었다. 청소를 이유로 1년에 두 번 있는 ‘강퇴(강제퇴소)’ 때 외에는 집에 가지 않았던 혜심이는 주말이나 명절에 친구 집으로 갔다. 맛있는 것을 먹고 전주 한옥마을 구경도 같이 했다. 학부모들은 혜심이가 3학년 때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고 수학 학원을 다니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는 공부만 하면 된다”며 선뜻 비용을 부담해주려 했다. 이런 사연을 안 학원장은 공짜로 수업을 듣게 해줬다. 때때로 용돈을 쥐여 주는 것도, 자기 자녀가 받은 장학금을 선뜻 “혜심이에게 주세요”라고 하는 것도 학부모들이었다. 혜심이 통장에는 매달 꼬박꼬박 10만 원이 찍혔다. 누군지 잘 모르지만 법인 감사가 주는 용돈이었다. 매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200만 원이 넘는 돈이 들어왔다. 홍 이사장이었다. 정부 지원금은 일반고 기준인 탓에 나머지 학비와 기숙사비는 매번 홍 이사장이 장학금으로 줬다. 친구들이 학업 스트레스와 집에서 떠나온 외로움에 엄마 아빠에게 전화할 때 혜심이는 선생님들을 찾았다. 혜심이 휴대전화 발신 목록에 집은 거의 없다. ‘나도 힘들고 엄마도 힘드니까….’ 서로 이 시간을 잘 견디고 있을 거라고 믿는 게 최선이었다. 선생님이 부모였고 교장, 교감, 이사장이 할아버지였다. 3학년 담임 박순식 교사는 혜심이를 보며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상산고는 아이들만큼 교사에게도 쉽지않은 학교다. 3학년 담임에게는 특히 그랬다. 하지만 혜심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내색도 않고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는 뭐지?’ 스트레스로 전학을 고민하는 친구에게 “나 같은 꼴찌도 있는데 네가 무슨 걱정이니?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고 위로하는 혜심이가 대견했다. 박 교사에게 ‘해피 바이러스’ 혜심이는 스승이었고, 또 복이었다. 너무 기름져서 먹으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던 삼겹살 돈가스 피자 치킨이 좋아졌다. 고향에 비하면 봄바람 같았던 한국의 겨울바람이 너무 차게 느껴졌다. 친구들이 북한 말 좀 써보라고 해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할 수가 없었다. 가끔 포항에 가면 “전주 사람이냐”는 말을 들었다. 흔치 않은 탓에 출신이 드러날까 봐 개명하려던 생각도 바꿨다. ‘나를 혜심이로 알아주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좋았다. “이해심 많은 이혜심!”이라고 친구들이 불러주는 게. 그 말은 진짜였다. 의심했던 게 부끄러워질 만큼. 하나원을 나올 때 한 목사가 말했다. “너를 도와주는 사람이 많을 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식도 아닌 날 위해 자기 주머니를 여는 사람이 있다고?’ 3학년 6월 모의평가 성적표에는 ‘수학 2등급’이 적혀 있었다. 교사들이 모두 그랬다. “이건 기적”이라고. 혜심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쌤! 이제 시작이에요.” 기적은 혼자 만든 게 아니었다. 모두, 함께였다. 모두 함께, 그리고 처음 혼자 혜심이는 2015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 간호학과에 지원했지만 합격증을 받지 못했다. 서울대는 탈북자를 뽑는 기회균형선발 특별전형이 정시에만 있어서 다른 학교 수시엔 응시도 하지 않은 터였다. 이 때문에 내용이 180도 다른 한국사까지 공부했는데…. 친구들이 모두 가고 싶어 하는 대학에 혜심이도 가고 싶었다. 바보 같은 실수는 잊어버리고 남한에서 흔하다는 재수를 결심했다. ‘하지만 수업료와 교재비는 어떻게 하나.’ 동그라미 개수에 숨이 막혀 학원비 고지서는 구겨버렸다. 포항으로 돌아가 혼자 공부할 작정이었다. 홍 이사장은 지난해 2월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혜심이를 차에 태웠다. 도착한 곳은 경기 용인에 있는 재수기숙학원. 공부하겠다는 녀석을 위해 홍 이사장이 직접 알아본 학원이었다. 홍 이사장도 학원장도 혜심이에게 한 말은 똑같았다. “비용 생각은 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렴.” 화장실 가고 잠자고 먹는 시간 빼고 공부만 했다. 자신을 위로해 줄 친구도 선생님도 없었다. 탈북자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밥을 먹으러 갈 때도 저만치 달려가서 꾸역꾸역 넣었다. 남들보다 한 그릇씩 더 먹었는데 살은 빠졌다. 북한에서 막 왔을 때(45kg)보다 2kg이나 줄었다. 스트레스 속에서 공부만 해서 그런 듯했다. 지난해 6월 혜심이는 기숙사에서 강퇴를 당했다. 메르스 위험이 높았을 때라 밖에 한번 나가면 기숙사에 다시는 못 들어온다는 말에 끝까지 버텼다. 하지만 감기는 피로가 누적된 혜심이를 결국 쓰러뜨렸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기어이 다시 돌아왔다. 6월 모의평가 전체 등급이 수능 때보다 총 4등급 향상됐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탐구가 모두 한 등급씩 올랐다. 혜심이는 이화여대 수시 자기소개서에 “스스로 공부하고 발전할 수 있는 사람”임을 강조했다. 수능을 보진 않았지만 재수 덕을 본 셈이다. 모든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려 인터넷으로 합격 소식을 확인하고는 정말 환하게 웃어봤다.“진짜 시작이다, 얼마든지 덤벼” 집에 웃음꽃이 피었다. 6년 만이다. 지금까지 명절이 즐거웠던 적은 없었다. 늘 불안했다. 할머니 엄마 이모랑 콩찰떡을 먹었다. 북한에서 설에 먹는 송편 대신이었다. “참말로 한시름 놓았다”고 모두 입을 모았다. 방송 뉴스 앵커가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전했다.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 예전이었다면 혜심이는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아무렇지 않다. ‘북한이 어떻게 해도 내 잘못이 아니니까. 잘 모르는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이제 어떤 말에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단단해졌다. “솔직히 (북한 출신인) 여러분 선배들도 적응하기 힘들어해요. 영어가 어렵고 친구들보다 나이도 많으니까….” 오리엔테이션에서 교수의 말에 북한 출신 신입생들이 움츠러들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혜심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얼마든지 덤벼!’ 혜심이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진짜 시작이다. 살고 싶은 인생을 산다. 열심히 살 것이다. 7년 전 강물에 몸을 내던졌던 것보다 더욱 힘을 내서.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서울지역 22개 자율형사립고 교장들이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하라는 서울시교육청의 방침에 반발하며 구입을 보류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이들은 정치적 논란이 있는 책 구입을 교육청이 강제하는 건 학교장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자사고교장협의회는 25일 회의를 열고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유보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자사고 교장 대부분은 시교육청이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하고 지역교육지원청에 정산서를 제출하라고 한 24일까지 아무 내용도 보고하지 않았다. 교장들은 “학부모와 동문들이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할 것이냐’며 우려 섞인 전화를 많이 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오세목 회장(중동고 교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시교육청이 정산 관련 내용을 보고하지 않은 사유서를 내라는 등 후속 조치를 시작하면 공식 입장을 밝히고 예산 반납 절차도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자사고 외에도 교육청 방침을 거부하기 힘든 공립학교를 제외하고 사립학교 중심으로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하지 않거나 구입하더라도 도서관에 비치하지 않겠다는 학교가 속출하고 있다. A고 교장은 “교장인 나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고 맞는 내용인지 판단이 안 서는 책을 섣불리 도서관에 비치하는 건 무책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이날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하라고 한 583개교 중 구입 거부 의사를 표시한 학교는 서울디지텍고를 포함해 10곳(중학교 6곳, 고교 4곳)이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나머지 학교가 모두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전체 현황을 수합 중”이라며 “구입 거부 의사를 밝히거나 관련 내용을 보고하지 않은 학교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파악하고 그렇지 않다면 행정명령 등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사교육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초중고교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총 사교육비를 학생 수로 나눈 것·24만4000원)가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와 통계청은 26일 이런 내용을 담은 ‘2015년 초중고교생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1인당 사교육비의 증가보다 “2015년 사교육비 총규모는 17조8000억 원으로 6년 연속 감소했다”는 내용을 강조해 ‘꼼수’ 논란을 불렀다. 사교육비 총규모는 학령인구의 감소를 고려하지 않은 수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9년부터 감소세였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현 정부가 들어선 2013년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14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24만2000원)는 조사 시작 이래 최고치였는데 이 기록이 지난해에 또 깨진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보도자료 1쪽에 지난해 사교육비가 2014년(18조2000억 원)보다 2.2%(4000억 원) 줄었다며 2009∼2015년 감소세를 보인 사교육비 총규모 수치를 자세히 공개했다. 반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전년보다 소폭 증가했다”는 내용은 연도별 증가율도 공개하지 않은 채 뒤쪽에 다뤘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은 교육부가 사교육비가 늘어난 사실을 감추기 위해 눈가리고 아웅하기식 발표를 했다고 비판했다.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늘었음에도 사교육비 총규모가 줄어든 것은 전체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착시 현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체 초중고교생은 608만9000명으로 전년보다 3.1%(19만7000명)나 줄었다. 사교육비 조사에 EBS 교재비, 어학연수비, 방과후학교비는 포함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조사에는 학원, 개인·그룹과외, 방문학습지, 인터넷 및 통신강좌 수강료만 들어 있다. 또한 실제로 사교육을 받은 학생(68.8%)만 따져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5만5000원으로 전년보다 0.7%(3000원) 증가했다. 교육부는 일반 교과에 대한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19만 원으로 전년보다 0.3%(1000원)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초등학교만 줄었을 뿐 중학교는 2014년 24만8000원에서 지난해 25만1000원으로, 고교는 19만4000원에서 20만2000원으로 늘었다. 예체능 교과 사교육비는 5만3000원으로 전년보다 5.4%(3000원) 증가했다. 양극화 현상은 여전했다. 지난해 월평균 소득 700만 원 이상 가구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2만 원으로 월 소득 100만 원 미만 가구(6만6000원)의 6배 이상이었다. 서울은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33만8000원으로 중소도시(24만 원) 광역시(23만3000원) 읍면지역(16만 원)을 압도했다. 성적이 상위 10% 이내인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1만6000원이지만 하위 20% 이내 학생은 16만8000원만 썼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지난해 초중고교 학생 1인당 사교육비가 24만4000원으로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23만6000원이었던 1인당 사교육비는 박근혜 대통령 정부가 들어선 2013년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26일 발표한 지난해 초중고교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당 월평균 명목 사교육비는 2014년보다 2000원(1.0%) 증가한 24만4000원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까지 포함한 수치다. 지난해 사교육 참여율(68.8%)을 고려해 실제 사교육을 받은 학생만을 기준으로 한 1인당 사교육비는 35만5000원으로 전년보다 3000원(0.7%) 증가했다. 학교급별 1인당 월평균 명목 사교육비는 초등학교는 23만1000원, 중학교는 27만5000원, 고등학교는 23만6000원이었다. 전년 대비 각각 0.4% 감소하고 1.9%와 2.9% 증가한 수치다. 사교육 참여 학생만으로 따지면 초교는 28만6000원, 중학교는 39만6000원, 고등학교는 47만 원이었다. 사교육비 증가는 예체능 분야가 이끌었다. 일반교과 사교육비는 월 평균 19만 원으로 전년대비 1000원(0.3%) 줄었다. 하지만 예체능은 5만3000원으로 3000원(5.4%) 늘었다. 과목별로는 국어와 영어 사교육비는 각각 1.0%, 2.1% 감소하고 수학은 전년 수준을 유지했으며 미술과 체육은 3.0%, 13.6% 증가했다. 이에 대해 예체능 분야 사교육비가 증가해도 총액은 여전히 일반교과가 많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경우 일반교과의 월평균 사교육비가 지난해 각각 25만1000원, 20만2000원으로 전년보다 1.0%, 4.1% 늘었다. 정부가 방과후학교에서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공교육정상화법을 시행한 이후 일반교과에 대한 수요가 학원으로 더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사교육 양극화 현상은 여전했다. 가구의 월평균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사교육비 지출 규모와 참여율이 모두 높았다. 지난해 월평균 소득 700만 원 이상 가구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2만 원으로 월소득 100만 원 미만인 가구(6만6000원)보다 6배 이상 높았다. 사교육 참여율은 각각 82.8%와 32.1%였다. 4대 권역 중에는 서울의 사교육비와 참여율이 제일 높았다. 서울은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8000원, 참여율은 74.3%로 중소도시(24만 원, 70.0%), 광역시(23만3000원, 68.6%), 읍면지역(16만 원, 57.7%)을 압도했다. 성적별 사교육 격차도 컸다. 상위 10% 이내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1만6000원이지만 하위 20% 이내 학생은 16만8000원을 썼다. 교육부는 지난해 사교육비 총규모가 17조8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2.2%(4000억 원) 감소하고, 2009년(21조6000억 원) 이후 감소세가 지속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착시현상이다. 지난해 초중고교 학생 수는 608만9000명으로 전년보다 3.1% 줄었다.최예나기자 yena@donga.com}
1974년부터 정권이 바뀌는 것과 관계없이 일관되게 유지돼 온 고교평준화 체제가 붕괴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수목적고와 자립형사립고가 강세를 보이고 일반고는 침체돼 수직적 서열 체계가 굳어졌다는 게 이유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연구팀이 최근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한 ‘초·중등교육 정상화를 위한 고교 체제 개편방안 연구 보고서’의 주 내용이다. 시교육청이 24일 공개한 이 보고서는 현재의 고교 체제와 고입 전형이 학교 간 양극화를 심화시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외국어고와 국제고, 자사고를 일반고와 통폐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목고와 자사고는 학교 간 교육 여건을 균등화한다며 평준화를 도입한 뒤 그 보완책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제 그 학교들이 일반고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우수한 학생을 전기에 특목고와 자사고가 선점하는 현행 고입 전형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서울 일반고 183곳의 교사 759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반고 위기의 원인으로 “중학교 성적이 높은 학생이 오지 않았다”(91.0%)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보고서는 또 일반고에는 특목고나 자사고에 비해 저소득층 비율이 높아 더 침체된다고도 지적했다. 특목고나 자사고에 가기 위한 경쟁이 초등학교 때부터 치열해 초중등교육 정상화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일반고를 살리고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특목고나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는 의견은 계속돼 왔다. 특히 이 주장은 좌파 성향 교육감을 중심으로 유지돼 왔다. 그러나 특목고나 자사고를 없애는 방식으로는 일반고가 살아날 수 없다는 지적도 많다. 특목고나 자사고가 우수한 학생을 받아서 교육이 잘되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교사들의 열정이 우선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교사가 ‘학생들 수준이 떨어져서 안 된다’ ‘학원에서 공부하고 오라’는 식으로 대하지 않고 끈기를 갖고 가르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방적인 특목고와 자사고 폐지 주장이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많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선택권을 가져야만 학교는 해당 학생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고 학생도 열정이 생겨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고교 체제나 입학전형을 바꾸는 건 대통령령을 개정해야 해 교육부가 추진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일반고에 특목고나 자사고처럼 교육과정이나 예산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자율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일반고인 서울 B고 교장은 “특목고나 자사고는 학생들 실력이 비슷하지만 일반고에는 1등부터 꼴찌까지 다양하다”며 “정부의 일반고 살리기 대책도 일률적으로 할 게 아니라 학교가 자기네 사정에 맞는 아이디어를 내면 적극 지원해주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말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이제 은행 가는 게 두렵지 않다. 은행원에게 “돈을 찾고 싶은데 액수랑 이름 좀 써 달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 지하철역에서 몇 분 뒤에 다음 차가 오는지도 읽을 수 있게 됐다. 안상은 할머니(70)는 2012년까지 한글도 숫자도 읽지 못했다. 하지만 고덕평생학습관에서 초등학력 인정 문해교육을 받으며 달라졌다. 혼자 살게 되자 까막눈인 게 너무 불편했다. 자신이 못 배웠기에 자식들 공부는 더 열심히 시켰다. “애들 잘 키웠으면 됐지, 이 나이에 무슨 공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식들이 장성해 해외로 나가니 문제였다. 외로운 건 둘째 치고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안 할머니는 고덕평생학습관에서 줄곧 반장을 하는 등 모범생이었다. 지난해에는 ‘서울평생학습축제 도전 문해 골든벨’에 참가해 10등 안에 들었다. 글씨를 배우면서 배우지 못한 걸 감추려 백화점에서 비싼 옷을 사 입곤 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안 할머니는 3월에 중등학력 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도 들을 예정이다. 기회가 된다면 대학에도 진학해 글을 쓰고 싶다. 이매자 할머니(73)는 2013년부터 매주 화 목 금요일에 푸른어머니학교 야간반에 나갔다. 집안 살림 때문에 칠십이 넘어 겨우 시작한 공부인데도 낮에는 손자손녀를 돌보느라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학교에 간다”며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손가락 관절염 때문에 글을 쓰는 게 힘들다. 글씨체가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마냥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특별반인 야간 시 쓰기반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광자 할머니(78)는 어머니를 잃고 우울증이 심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불면증에도 시달렸다. 하지만 양원주부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배우는 게 즐거우니 잠도 잘 자게 됐다. 한문 공부가 특히 좋아 중등과정 학생이 따곤 하는 급수도 땄다. 김 할머니는 “죽기 전까지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시교육연수원에서 ‘2015학년도 초·중 학력인정 문해교육’ 이수자 556명(초등 485명, 중등 71명)의 졸업식을 열었다. 졸업자 중 44.5%는 70대, 36.7%는 60대인 것을 비롯해 99%가 50∼80대다. 김 할머니는 이날 교육감 표창장도 받았다. 학력인정 문해교육은 기초학력이 부족해 일상생활이나 직업생활에서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교육감이 설치·지정한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학력을 인정받는다. 서울시교육청은 2011년 전국 교육청 중 최초로 학력인정 문해교육을 시작했다. 현재 서울에서 2260명이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이제 은행가는 게 두렵지 않다. 은행원에게 “돈을 찾고 싶은데 액수랑 이름 좀 써 달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 지하철역에서 몇 분 뒤에 다음 차가 오는지도 읽을 수 있게 됐다. 안상은 할머니(70)는 2012년까지 한글도 숫자도 읽지 못했다. 하지만 고덕평생학습관에서 초등학력 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받으며 달라졌다. 혼자 살게 되자 까막눈인 게 너무 불편했다. 자신이 못 배웠기에 자식들 공부는 더 열심히 시켰다. “애들 잘 키웠으면 됐지, 이 나이에 무슨 공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식들이 장성해 해외로 나가니 문제였다. 외로운 건 둘째 치고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안 할머니는 고덕평생학습관에서 줄곧 반장을 하는 등 모범생이었다. 지난해에는 ‘서울평생학습축제 도전 문해 골든벨’에 참가해 10등 안에 들었다. 글씨를 배우면서 배우지 못한 걸 감추려 백화점에서 비싼 옷을 사 입곤 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안 할머니는 3월에 중등학력 인정 프로그램도 들을 예정이다. 기회가 된다면 대학에도 진학해 글을 쓰고 싶다. 이매자 할머니(73)는 2013년부터 매주 화·목·금요일에 푸른어머니학교 야간반에 나갔다. 집안 살림 때문에 칠십이 넘어 겨우 시작한 공부인 데도 낮에는 손자손녀를 돌보느라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학교에 간다”며 가방을 매고 집을 나서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손가락 관절염 때문에 글을 쓰는 게 힘들다. 글씨체가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마냥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때문에 특별반인 야간 시 쓰기반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광자 할머니(78)는 어머니를 잃고 우울증이 심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불면증에도 시달렸다. 하지만 양원주부학교에서 친구들 만나고 배우는 게 즐거우니 잠도 잘 자게 됐다. 한문 공부가 특히 좋아 중등과정 학생이 따곤 하는 급수도 땄다. 김 할머니는 “죽기 전까지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시교육연수원에서 ‘2015학년도 초·중 학력인정 문해교육’ 이수자 556명(초등 485명, 중등 71명)의 졸업식을 열었다. 졸업자 중 44.5%는 70대, 36.7%는 60대인 것을 비롯해 99%가 50~80대다. 김 할머니는 이날 교육감 표창장도 받았다. 학력인정 문해교육은 기초학력이 부족해 일상생활이나 직업생활에서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교육감이 설치·지정한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학력을 인정받는다. 서울시교육청은 2011년 전국 교육청 중 최초로 학력인정 문해교육을 시작했다. 현재 서울에서 2260명이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지난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법외노조로 판결 받은 뒤 교육부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관련 후속조치 세 가지를 이행하라고 지시했지만 이를 모두 이행한 교육청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전교조 사무실 지원금 회수 또는 퇴거 명령 △전교조와 체결한 단체협약 효력 상실 통보 △노조 전임자 학교 복귀 등을 22일까지 이행하라고 지시했다. 서울 부산 전북 교육청을 제외하고 이날 교육부에 이행 현황을 보고한 14개 교육청 중 전교조가 사무실에서 나가거나 관련 지원금을 반납해야 한다는 공문을 보내지 않은 곳은 인천 광주 세종 강원 제주 등 5개 교육청이다. 단체협약 효력 상실을 통보하지 않은 교육청은 광주 세종 강원 경남 제주 등 5곳이다. 복직신고를 한 전임자는 전체 해당자(83명) 중 35명이다. 교육부는 우선 전교조가 전임자 복귀 명령에 반발해 휴직기간 연장을 신청하기로 한 39명에게 휴직을 허가해 주는 교육감에겐 직무이행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허가 없이 학교로 복직하지 않는 전임자 출신에게 직권면직 또는 징계가 내려지도록 교육감에게 지시할 방침이다. 사무실 지원금 회수 또는 퇴거, 단협 효력 상실을 아예 통보하지 않은 교육감에게는 시정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교육부는 전교조 본부에 18일 “국고보조금으로 지원한 사무실 임차보증금 6억 원을 빨리 반환하라”는 독촉장을 발송했다. 국가채권관리법에 따라 전교조 본부는 독촉장 발급일로부터 15일 내인 다음 달 3일까지 6억 원을 반환해야 한다. 한편 인천시교육청은 이적단체 ‘변혁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교육운동 전국준비위원회’를 구성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됐던 박미자 전 전교조 수석부위원장 등 4명의 징계 여부를 다음 달 15일 심의하겠다고 22일 교육부에 보고했다. 인천교육청은 이들 4명에 대한 교육부의 경징계 의결 요구를 3년 가까이 보류해 왔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법외 노조가 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이달 22일까지 학교로 복귀해야 하는 전임자 83명 중 절반 정도는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18일 밝혔다. 전교조는 이날 서울 서대문구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임자 83명 중 44명만 3월 1일자로 소속 학교로 복귀시키고 변성호 위원장 등 핵심 지도부 39명은 교육청에 휴직 연장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전교조의 방침은 불법적으로 전임자 직책을 이어 가겠다는 뜻이다. 변 위원장은 “교육부가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대량 해직을 감수하고라도 (전임자들을) 지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교육감은 교원노조법상 노조 지위를 상실한 전교조의 전임자 휴직을 허가하면 안 되고, 법에 따라 직권면직 또는 징계(파면 해임 등)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일부 친전교조 성향의 교육감이 이런 절차를 밟지 않으면 교육부는 직무이행명령과 형사 고발을 불사하겠다는 계획이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법외노조가 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이달 22일까지 학교로 복귀해야 하는 전임자 83명 중 절반 정도는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18일 밝혔다. 전교조는 이날 서대문구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임자 83명 중 44명만 3월 1일자로 소속 학교로 복귀시키고 변성호 위원장 등 핵심 지도부 39명은 교육청에 휴직 연장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전교조의 방침은 불법적으로 전임자 직책을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변 위원장은 “교육부가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대량 해직을 감수하고서라도 (전임자들을) 지켜나가겠다”고 밝혔다. 교육감은 교원노조법상 노조 지위를 상실한 전교조의 전임자 휴직을 허가하면 안 되고, 법에 따라 직권면직 또는 징계(파면 해임 등)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일부 친 전교조 성향의 교육감이 이런 절차를 밟지 않으면 교육부는 직무이행명령과 형사 고발을 불사하겠다는 계획이다.최예나기자 yena@donga.com}

최근 10년 사이 서울지역에서 일반고 서울대 합격자가 이른바 ‘교육특구(강남, 서초, 송파, 노원, 양천)’에 쏠렸다는 동아일보 보도(2월 15일자 A13면)가 나간 뒤 교육현장에선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학교 관계자들은 “일반고는 이제 다른 길을 찾거나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학부모들은 “상황이 이러니 초등학교, 중학교 때 사교육을 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고 분노했다. 본보는 현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하기 위해 지역별 분석에서 더 나아가 서울의 25개 자치구에 있는 일반고 1곳당 서울대 합격자 수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일반고 1곳당 서울대 합격자가 많이 줄어든 10개 구 중 8곳은 강북 지역으로 나타났다. ○ 강북 도봉, 서울대 합격 가장 많이 줄어 서울 각 구의 일반고 출신 서울대 합격자를 해당 지역의 일반고 수로 나눈 결과 합격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동대문구였다. 2007학년도만 해도 동대문구에 있는 일반고 1곳당 서울대 합격자는 1.4명이었으나 2016학년도 입시에서는 2.0명으로 42.9%가 늘었다. 동대문의 서울대 합격자 증가는 휘경여고의 ‘원톱’ 효과가 크다. 동대문에는 경희여고, 동국대사범대부속고, 청량고, 해성여고, 휘경여고 등 총 5곳의 일반고가 있다. 이 중 휘경여고는 서울대 합격자가 2007학년도 0명에서 2016학년도 6명으로 급증했다. 해성여고는 0명에서 3명으로 늘었고, 나머지 세 학교는 줄었다. 동대문에 이어 마포(28.6%↑), 강남(26.4%↑), 양천구(15.6%↑) 순으로 합격자가 큰 비율로 늘었다. 이 중 강남과 양천은 일명 ‘교육특구’에 속한 지역으로 이전에도 명문대 합격자가 많았지만 10년 사이 더욱 늘어났다. 반면 부진을 면치 못한 지역도 있었다. 서울대 합격자가 가장 많이 줄어든 지역은 강북구로 2007학년도만 해도 일반고 1곳당 1.8명꼴로 서울대 합격자가 나왔지만 2016학년도에는 0.6명(66.7%↓)으로 줄었다. 그 다음으로는 도봉 강동 구로 중랑구 순으로 합격자 수 감소가 컸다. 특히 하위 10개 지역 중 강동, 동작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모두 강북이었다. 그나마 강남권으로 분류되는 강동과 동작도 교육특구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지역이다. 결국 서울 내에서 지역별 서울대 합격자 ‘양극화’가 심해진 것이다. 평균 학력이 높고 학구열이 거센 지역은 세월이 흐르며 더 많은 합격자를 냈고, 반대 지역은 갈수록 쇠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우수 학생들 ‘강북 엑소더스’ 강북의 쇠락과 강남의 선전은 학생들의 이동 흐름에서도 나타난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3월 발표한 ‘2015학년도 신학기 후기 일반고 전·편입학 배정결과’를 살펴보면 서울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몰린 지역은 강남, 강동, 송파였다. 후기 전·편입학이란 일반고 신입생 배정이 다 끝나고 입학한 뒤 가족들이 갑자기 이사하는 등의 새로운 이유가 생겨 다른 학교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당시 총 1095건의 전입 또는 편입이 이뤄졌는데, 이 중 158건은 강남구로 들어온 숫자였다. 강동·송파구에도 149건의 전·편입이 이뤄졌다. 보통 이 지역은 집값과 전셋값이 높지만, 전문가들은 “교육이라는 변수가 더 크게 작용해 학부모와 학생들이 거주지를 옮겨서라도 들어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강남은 성적을 잘 내는 학교가 많고 학원도 많아서 좋은 학군으로 재배정받기 위해 고교 입학 초 아예 옮겨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송파구의 한 고교 교장은 “특히 강남지역 사립고는 교사들이 오랜 기간 바뀌지 않고, 입시전문가도 있어서 맞춤형 입시준비가 가능하다”며 “강북이나 공립에서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권오현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은 “우수학생이 특정 지역의 학교에 꾸준히 몰리는 문제는 교육적으로 해결책을 논의해봐야 할 현상”이라며 “비강남 지역 학생들이 서울대에 더 많이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그럴 만한 실력을 만들어 줄 장기적인 계획을 학교, 교육당국, 교육청이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은택 nabi@donga.com·최예나·유덕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