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돼지엄마’ 학원장으로 변신중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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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A 씨는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입시학원을 차렸다. 아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고득점을 받고 서울대에 진학하는 데 일조한 강사들을 스카우트한 뒤 자신은 원장이 됐다. 아들이 공부를 잘하니 아이가 어떤 강사에게 배우는지 묻는 엄마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A 씨는 숨기지 않고 학원을 가르쳐줬다. 그러다 보니 A 씨를 영입하고 싶어 하는 학원이 생겼다. 조력자 역할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A 씨는 아들의 진학 후에도 학원 정보를 묻는 엄마들이 끊이지 않자 아예 학원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최근 대치동에는 대형을 제외하면 ‘돼지엄마’들이 차린 학원이 다수 자리 잡았다는 게 엄마들의 전언이다. 몇 년 전까지 돼지엄마들이 대형 학원 상담실장으로 영입되는 케이스가 꽤 있었다. 하지만 자율형사립고가 강남권에 자리 잡으면서 그룹과외가 늘었고, 그 과정에서 생긴 돼지엄마들이 학원 경영에까지 뛰어들었다는 얘기다.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4년 여름 대치동에 학원을 차린 B 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B 씨는 1학년 때 수학 내신이 20점대였던 아들에게 사교육 공을 들여 ‘수능 만점+경희대 한의학과 합격’이라는 ‘훈장’을 달 수 있었다. B 씨는 자사고에 다니는 아들과 친구들에게 그룹과외를 시킬 때 팀장 역할을 했다. 자연스레 좋은 강사 리스트를 꿰게 됐다. 재수 끝에 아이 진학을 성공시킨 B 씨는 정시만큼은 자신이 ‘도사’라고 믿는다.

대개 돼지엄마의 자녀는 공부를 잘한다. 주변 엄마들이 돼지엄마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아는 사람을 통해서라도 줄을 대려는 이유다. 돼지엄마는 그룹과외를 결성할 뿐 아니라 학원에도 “우리 아이 진도에 맞는 반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해 쉽게 관철시킨다. 엄마들 평판에 죽고 사는 학원은 돼지엄마를 무시할 수 없다. ‘돼지엄마 팀’에 대한 학원 측 대우가 좋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그 팀에 끼려 줄을 선다. 돼지엄마 팀이 교내 대회에서 상을 휩쓴다는 이야기는 특별하지도 않다. 이런 돼지엄마들이 이제는 자기 자녀를 가르친 강사들을 영입해 직접 학원을 꾸리고 있다.

돼지엄마 학원은 대부분 소규모 팀 수업이다. 인맥과 신뢰를 기반으로 알음알음 알려져 광고도 별로 하지 않는다. 원장이 수업은 하지 않고 상담만 맡는다는 것도 다른 학원과의 차이다.

돼지엄마 원장의 가장 큰 무기는 먼저 자녀를 대학에 보낸 선배 엄마 입장에서 이야기해 준다는 것. 돼지엄마 원장은 엄마들에게 입시 전문가보다 더 큰 신뢰를 준다. 한 엄마는 “대형 학원에서 아무리 ‘최다 합격’이라고 광고해도 내 아이와는 관련 없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자녀 한둘을 대학에 잘 보낸 엄마가 입시상담을 해주면 확실히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돼지엄마 학원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입시에서 수시 비중이 확대되며 내신이 중요해지고,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이 증가하며 정성평가를 하는 교사의 재량이 커져서다. 한 엄마는 “돼지엄마 학원에서는 원장이 자녀를 내 아이와 같은 고교에 먼저 보내봤기 때문에 교사의 성향이나 학교의 특성을 잘 알고 조언해준다. 대형 학원에 보내는 것보다 얻는 게 많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돼지엄마 학원의 단점도 지적한다. 가장 큰 문제는 전문성이다. 한 입시정보업체 관계자는 “요즘 입시는 감이 아니라 수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싸움”이라며 “자녀를 대학 잘 보냈다는 이유로 상담 받고 그 내용만 믿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돼지엄마의 노하우가 자녀 성적이 중하위권인 엄마에게까지 보편적으로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강남 지역 한 학부모는 “일부 돼지엄마는 자기 팀에 끼워주는 문제로 ‘갑질’을 해 문제도 많다”며 “이들이 엄마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해 사교육을 더 조장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대치동#돼지엄마#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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