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이지윤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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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06-29~2025-07-29
역사26%
인사일반18%
문화 일반18%
문학/출판10%
무용10%
연극5%
사회일반5%
종교3%
남북한 관계3%
미술2%
  • “올해 中서 ‘환황해 고인돌 문화권’ 논문 발표… 고조선과의 관련설, 中학자들도 인정하는 셈”

    “올해 중국 랴오닝성 문물고고연구소의 저널에 ‘환황해(環黃海) 고인돌 문화권’ 논문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고인돌을 세운 이들이 고조선과 관련됐다는 학설이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도 일부 받아들여지게 되는 셈이지요.”이달 정년 퇴임하는 ‘고인돌 전문가’ 하문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65)는 1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환황해 고인돌 문화권’이란 고인돌의 분포 지역이 고조선의 초기 강역으로 알려진 지역과 거의 일치하고, 청동기시대 대표 유물인 비파형동검 분포권과도 비슷하다는 점에서 이를 통해 고조선의 실체를 밝히려는 가설이다. 반면 중국 측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인돌을 중국 문명의 일부로 왜곡하려 하고, 북한은 대동강문화론(평양 대동강 유역이 고대문명 발상지란 주장)의 근거로 고인돌을 내세우려 하기도 한다.하 교수는 지금까지 중국을 100여 차례, 북한을 10여 차례 방문하면서 고인돌 조사에 헌신해 왔다. 보안을 이유로 카메라는 물론이고 휴대전화조차 반입이 허용되지 않는 유적지를 쫓아다녔다. 10여 년 전 환황해 고인돌 문화권 가설을 제시한 뒤엔 북방 탁자식 고인돌과 한반도 남방 개석식(蓋石式) 고인돌의 연결 고리를 찾고자 애썼다. 하 교수는 “경기 하남 등의 지역에서 탁자식과 개석식의 과도기에 놓인 ‘변형 탁자식 고인돌’을 발견했다”며 “고조선 강역 내 문화 전파를 보여주는 핵심 유물”이라고 주장했다.한국 구석기 고고학의 개척자인 고 파른 손보기 연세대 교수(1922∼2010) 등을 사사한 하 교수는 고인돌이 흔히 알려진 대로 ‘지배자의 무덤’이 아니라 ‘백성 모두의 무덤’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는 “과거 한반도에 고인돌이 약 6만 기가 있었다고 추정하는데, 그중 비파형동검을 비롯해 지배자의 물품이 나오는 건 1%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민무늬 토기나 화살촉 한두 점이 출토되는 게 전부이고, 어린이나 여성의 뼛조각도 나온다”며 “고인돌이 청동기시대에 보편적으로 축조된 무덤이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퇴임 뒤에도 연세대 파른기념교수로서 연구를 이어가는 하 교수는 “아직 남은 숙제가 있다”고 했다. 중국과 북한의 아전인수식 고인돌 해석에 학문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틀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인터뷰 당일도 그는 랴오닝성의 정가와자 유적에 엿새 동안 다녀온 직후였다. 비파형동검과 관련된 주요한 청동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1990년대 우리나라가 고구려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중국은 이미 고구려를 넘어 고조선까지 손댄 참이었습니다. 자꾸 한 발씩 늦는 거죠. 아직 연구가 미흡한 북한 지역의 고인돌 자료를 선제적으로 힘 닿는 데까지 정리하고 싶습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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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인돌은 지배자의 무덤’이란 설명 바로잡아야 한다 생각한 게 여기까지 이끌어”

    “올해 중국 랴오닝성 문물고고연구소의 저널에 ‘환황해(環黃海) 고인돌 문화권’ 논문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고인돌을 세운 이들이 고조선과 관련됐다는 학설이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도 일부 받아들여지게 되는 셈이지요.”이달 정년 퇴임하는 고인돌 전문가 하문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65)는 14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환황해 고인돌 문화권’은 고인돌의 분포 지역이 고조선의 초기 강역으로 알려진 지역과 거의 일치하고, 청동기시대 대표 유물인 비파형동검 분포권과도 비슷한다는 점에서 이를 통해 고조선의 실체를 밝히려는 가설이다. 이에 비해 중국 측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인돌을 중국 문명의 일부로 왜곡하려 하고, 북한은 대동강문화론(평양 대동강 유역이 고대문명의 발상지라는 주장)의 근거로 고인돌을 내세우려 하기도 한다.하 교수는 중국을 100여 차례, 북한을 10여 차례 다니면서 고인돌 조사에 헌신해 왔다. 보안을 이유로 카메라는 물론 휴대전화조차 반입이 허용되지 않는 유적지를 좇아다녔다. 10여 년 전 환황해 고인돌 문화권 가설을 제시한 뒤엔 북방 탁자식 고인돌과 한반도 남방 개석식(蓋石式) 고인돌의 연결 고리를 찾고자 애썼다. 하 교수는 “경기 하남 등 지역에서 탁자식과 개석식의 과도기에 놓인 ‘변형 탁자식 고인돌’을 발견했다”며 “고조선 강역 내 문화 전파를 보여주는 핵심 유물”이라고 했다.한국 구석기 고고학의 개척자 고(故) 파른 손보기 연세대 교수(1922~2010) 등을 사사한 하 교수는 고인돌이 흔히 알려진 대로 ‘지배자의 무덤’이 아니라 ‘백성 모두의 무덤’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는 “과거 한반도에 고인돌이 약 6만 기가 있었다고 추정하는데, 그 중 비파형동검을 비롯해 지배자의 물품이 나오는 건 1%도 안 된다. 대부분 민무늬 토기나 화살촉 한두 점 출토되는 것이 전부이고, 어린이나 여성의 뼛조각도 나온다”며 “고인돌이 청동기시대 보편적으로 축조된 무덤이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학부 때 발굴 현장을 다닐 때부터 그런 짐작이 들었어요. 1983년부터 중고교 국사 교사로 일했는데, 교과서가 고인돌을 지배자의 무덤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학교를 나와 연구를 시작했는데, 그게 저를 여기까지 이끌었네요.”퇴임 이후에도 연세대 파른기념교수로서 연구를 이어가는 하 교수는 “아직 남은 숙제가 있다”고 했다. 중국과 북한의 아전인수식 고인돌 해석에 학문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틀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인터뷰 날도 그는 랴오닝성의 정가와자 유적에 엿새간 다녀온 직후였다. 비파형동검과 관련된 주요한 청동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1990년대 우리나라가 고구려 연구를 본격 시작할 때 중국은 이미 고구려를 넘어 고조선까지 손을 댄 참이었습니다. 자꾸 한발씩 늦는 거죠. 아직 연구가 미흡한 북한 지역의 고인돌 자료를 선제적으로 힘 닿는 데까지 정리하고 싶습니다.”(하 교수)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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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가야 궁성지’ 품은 고령군, 5번째 고도 됐다

    약 1500년 전 한반도 남부에서 위세를 떨친 ‘대가야’가 자리 잡았던 경북 고령군이 고도(古都)로 지정됐다. 국가유산청은 18일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에 맞춰 ‘고령 대가야’를 우리나라의 다섯 번째 고도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2004년 경북 경주와 충남 부여·공주, 전북 익산이 고도로 지정된 뒤 21년 만에 새로운 고도 지정이다. 고도는 우리 민족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로서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 가운데 선정된다. 유산청은 “고대 한반도에서 대가야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 버금갈 정도로 발전한 국가였다”며 “5세기 후반 대가야는 현재의 고령뿐 아니라 경남 합천·거창부터 전북 남원, 전남 순천·광양 등까지 세력을 확장됐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학술조사에 따르면 대가야는 왕위 세습체계와 중국식 왕호(王號), 시조 탄생 설화, 순장 의례 등을 제대로 갖춘 중앙집권식 국가였다. 특히 고령은 대가야의 핵심적인 중심지로 평가 받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가야고분군’으로 등재된 ‘지산동 고분군’을 비롯해 다양한 유·무형 문화유산이 잘 보존돼 있다. 대가야 도성(都城) 체계를 보여주는 궁성지와 왕궁 방어성(주산성), 수로 교통 유적, 금관 및 ‘대왕(大王)명’ 토기 등이 대표적이다. 고도로 지정되면 세계유산 탐방거점센터가 건립되며 역사문화공간 조성과 주거 환경 및 가로 경관 개선 등을 지원받는다. 유산청은 “고도 지정을 계기로 고령 대가야의 역사적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알려 지역 관광문화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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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억울한 비둘기… ‘평화의 전령’서 ‘날개 달린 쥐’로

    푸드덕, 날갯짓만 했을 뿐인데 비둘기에게 따가운 눈총이 쏟아진다. 한때 정보 메신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비둘기가 도심의 ‘유해 동물’로 전락한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비둘기는 고대 페르시아에선 전령으로 활약했고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적군의 이동에 관한 결정적 정보를 전달했다. 20세기 중반 미국 서민에겐 유용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신과 휴대전화가 보급되고 공장식 닭 사육이 가능해지면서 비둘기는 설 자리를 잃었다. 높은 지능과 번식력은 되레 혐오의 명분이 됐다. 연구 결과 비둘기는 이들의 배설물을 흡입하지 않는 이상 병균을 옮기지 않는다. 산성비만큼 건물에 해롭지도 않다. 이 책은 비둘기처럼 애꿎게 혐오의 대상이 된 동물들의 편에서, 이들을 향한 인식의 변천사를 짚는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이기심 등이 동물에 ‘골칫거리’ 이미지를 덧씌웠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계 곳곳의 동물행동학자, 야생동물 보전활동가, 토착 원주민 등과 함께 살펴본 동물의 다층적 면모를 유쾌하고 현장감 있게 들려준다. 같은 동물도 나라에 따라 다른 취급을 받는다. 한국인은 동물 카페에서 돈을 일부러 주고 봐야 하는 귀염둥이 라쿤.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악명 높은 ‘쓰레기 판다’로 불린다. 집집마다 쓰레기통을 헤집고 다니면서 도시를 악취 나게 하기 때문이다. 토론토는 라쿤이 열지 못하는 쓰레기통을 설계하고 배포하는 데 한화로 약 315억 원을 썼지만, 이 천재 동물은 아예 쓰레기통 부수기를 택했다. 하지만 사실 라쿤은 죄가 없다. 도시화와 생태계 파괴 때문에 먹이를 찾아 서식지를 떠났을 뿐이다. 동물의 이미지는 국제 정세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도시민에게 영물인 코끼리는 가까이에서 사는 현지인에겐 ‘살아 있는 탱크’다. 인간을 포함한 다른 생물을 찢어발기고, 농부의 한철 작물을 싹 먹어 치운다. 경제 가치에 따라 사람보다 코끼리 목숨이 더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케냐에서 코끼리는 사람보다 귀하다. 코끼리가 밀렵을 당하면 현장에 서른 명이 출동하지만, 코끼리에게 사람이 다칠 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코끼리 살해 벌금은 2000만 케냐실링이지만 코끼리에 받쳐 죽은 피해자에겐 고작 500만 케냐실링이 주어진다. 이런 모순은 코끼리를 보러 오는 서구 관광객과 이들이 내는 서식 환경 보전 지원금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저자는 서구에서 오는 이런 ‘온정주의적 지원’이 결과적으로는 생태계 질서를 왜곡시키고 현지인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해동물을 향한 막연한 두려움과 혐오는 이면의 사정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무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이 제시하는 해법은 우리 주변 동물들의 생태를 이해하고 알맞은 공생 방식을 찾음으로써 ‘정신적 쥐덫’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 방식대로 계속 사는 한 유해 동물은 늘 우리 앞을 막아설 것”이라며 ‘더불어 사는 삶’의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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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운교 삼천대천세계도… 국가등록문화유산 등재 예고

    1920년대 민족 종교 수운교의 가르침을 그린 종교화가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13일 “‘수운교 삼천대천세계도’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할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수운교는 수운(水雲) 최제우(1824∼1864)의 호에서 이름을 따 1923년 창시된 동학 계통의 신종교다. 국가유산청은 삼천대천세계도에 관해 “부처와 하늘, 인간의 마음이 하나라는 교리를 표현한 그림으로 근대기 화풍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은 30일 동안 의견 수렴을 거친 뒤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칠곡 구(舊) 왜관성당’과 1950∼1960년대 한국 영화 ‘낙동강’ ‘돈’ ‘하녀’ ‘성춘향’ 등 5건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확정했다. 칠곡 구 왜관성당은 1928년 건립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소속 예배당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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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윤재 “다리 콤플렉스, 강점으로 받아들였죠”

    “오늘 학교에 갔더니 친구들이 ‘기(氣) 받아 가겠다’며 장난을 치더라고요. 솔직히 아직 우승이 실감나지 않아 받았던 상을 매일 꺼내 보고 있어요.” 한국 발레리노 최초로 로잔발레콩쿠르에서 1위를 거머쥔 박윤재 군(17·서울예고)은 12일 서울 종로구 서울아트센터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의젓하면서도 앳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로 꼽히는 로잔발레콩쿠르는 15∼18세만 참가할 수 있어 무용수들의 등용문으로 불린다. 박 군은 이번 콩쿠르가 “나와 발레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떠올렸다. “항상 콤플렉스였던 두꺼운 다리가 로잔에선 저만의 강점으로 받아들여졌어요. 신체 조건보다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매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박 군은 로잔콩쿠르에서 18년 만에 배출된 한국인 우승자이기도 하다.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에투알(수석무용수) 박세은이 2007년 우승한 뒤 처음이다. 다섯 살에 취미로 시작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발레의 길을 걸은 박 군은 지난해 제54회 동아무용콩쿠르에서도 고등부 동상을 수상했다. 박 군은 “무조건 잘하자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걸어온 길을 최대한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며 “무대를 즐기다 보니 큰 상도 주어졌다”고 말했다. “무용수라기보단 아직 배울 게 많은 학생”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한 그는 “앞으로도 내가 ‘좋아서 하는 발레’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고도 했다. 현재 많은 해외 학교에서 유학 제안이 쇄도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건 없다고 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미래에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오페라 가르니에 무대에 꼭 한번 서보고 싶고요. 강한 야생의 에너지를 품은 ‘돈키호테’의 바질 역이 꿈의 배역입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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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S아트센터, 4월 개관… 옛 LG아트센터 자리

    13년 만에 내한하는 미국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 전방위 예술의 거장 윌리엄 켄트리지, 스페인 출신 스타 안무가 마르코스 모라우…. 4월 24일 개관하는 GS아트센터의 올해 공연 라인업이다. 주제는 ‘경계 없는 예술’. GS아트센터는 LG아트센터로 운영되던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의 공연장을 재단장해 새롭게 문을 연다. 박선희 GS문화재단 대표는 11일 간담회에서 “관객의 시간과 기억이 어우러지는 공연장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2년 넘게 걸린 공연장 리모델링에는 총 320억 원이 투입됐다. 기존 객석 양옆으로 108석을 추가해 약 1200석으로 늘어났다. 의자는 일본 도쿄 산토리홀 등에 사용된 고토부키사 제품으로 교체했다. 노후했던 극장 로비와 분장실, 무대 구동장치 등도 새로 단장했다. 다만 무대 폭이나 객석 단차 등은 그대로 유지했다. 개관 뒤 첫 무대는 세계적인 발레단인 ABT가 장식한다. 4월 24∼27일 한국인 발레리나 서희, 발레리노 안주원 등을 포함한 수석무용수 15명이 내한해 단막극 5편을 선보인다. 4월 30일과 5월 1일에는 스페인 국립 플라멩코 발레단이 파격적인 안무와 현대적 미장센이 특징인 현대무용가 모라우의 안무작 ‘아파나도르’를 공연한다. 기획 공연 시리즈 ‘예술가들’에선 5월 9, 1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시각예술가 겸 연출가인 켄트리지의 대표작 ‘시빌’이 국내 초연된다. 서울재즈페스티벌이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실내 공연도 GS아트센터에서 예정돼 있다. 대관 공연으로는 7월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와 11월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박 대표는 “저변 확대를 목표로 다채로운 예술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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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세 박윤재, 韓발레리노 첫 로잔콩쿠르 우승

    세계적인 발레 경연인 로잔발레콩쿠르에서 한국인 발레리노가 처음으로 우승했다. 8일(현지 시간) 스위스 로잔 볼리외 극장에서 열린 제53회 로잔발레콩쿠르 결선에서 박윤재 군(16·서울예고)이 한국 남자 무용수로는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로잔발레콩쿠르는 바르나, 잭슨, 모스크바, 파리 콩쿠르와 함께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로 꼽힌다. 15∼18세 학생들만 참가할 수 있어 무용수들의 등용문으로도 불린다. 박 군은 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승자로 호명되고도 전혀 믿기지 않아 잘못 들었나 싶었다. 너무 놀라고 감격한 나머지 눈물부터 났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발레를 시작한 다섯 살 때부터 줄곧 꿈꿔왔던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데 큰 상까지 받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 별처럼 빛나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롤모델은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김기민 수석무용수”라고도 밝혔다. 박 군은 이번 대회에서 특별상인 ‘최우수 젊은 인재상(Best Young Talent Award)’도 함께 수상했다. 올해 대회에는 42개국 출신 남녀 무용수 445명이 지원했으며 영상 심사를 거쳐 85명이 대회에 참가했다. 결선에서는 미국, 일본 등 6개국 출신 남녀 무용수 20명이 겨뤘다. 박 군은 러시아 안무가 바실리 바이노넨이 안무한 고전발레 ‘파리의 불꽃’ 중 남자 배리에이션과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발레단 킨순 찬 예술감독이 안무한 ‘레인’을 선보였다. 결선에 오른 또 다른 한국 발레리나 김보경 양(17·부산예고)은 8위로 입상했다. 입상자들은 연계된 해외 발레단이나 발레학교에 갈 수 있다. 로잔발레콩쿠르는 앞서 1985년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한국인 최초로 1등에 올랐던 바 있다. 이후 박세은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수석무용수)이 2007년 우승을 거뒀다. 홍향기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2006년·3위), 서희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2003년·4위) 등도 입상했다. 발레리노로는 2018년 이준수가 4위와 현대무용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박 군은 지난해 열린 제54회 동아무용콩쿠르 고등부 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2022년 계원예중 재학 당시에는 제52회 동아무용콩쿠르에서 중등부 장려상을 수상했다. 초등학교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하에 있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다니면서 두각을 드러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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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년前 숭례문 화재에도 방재체계 불충분… 목조유산 소방대-문화재 패트롤 운영 필요”

    국보 숭례문이 화마에 무너진 지 17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목조 국가유산의 화재 방지를 위해 보완할 점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문루 2층의 90%가 소실됐던 숭례문은 복원 이후 대대적인 방재 시스템이 마련됐다. 스프링클러와 불꽃 감지기가 보강됐고 폐쇄회로(CC)TV와 광센서형 감지기도 설치돼 침입자 발생 시 즉시 안전요원이 출동하게 돼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른 목조 유산도 방재 설비가 일부 보완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방재 전문 인력과 체계가 여전히 충분치 않은 실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백민호 강원대 소방방재학부 교수(국가유산방재학회장)는 “목조 건축물은 개구부가 많아 화염이 빠르게 번지기에 특화된 화재 진압이 필요하지만 유사 시 관할 소방서가 담당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함은구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도 “관리 주체가 지방자치단체로 분산되면서 방재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깊은 산속 사찰은 겨울엔 소방 용수가 마땅치 않은데도 상당수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했다. 반면 우리와 비슷하게 전통 목재 건축 유산이 적지 않은 일본은 비교적 체계적인 방재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은 국립문화재기구 산하에 문화재방재센터를 두고 현장 대응 가이드라인을 연구·설계하는 한편으로 최신 방재 기술을 전국에 공유하고 있다. 이원수 국립순천대 건축학부 교수는 “일본엔 소방국에 문화재 방재 부서가 따로 있고, 중국도 주요 목조 유산마다 화재진압 전문 소방대가 상주해 즉각적인 초동 대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통 목구조물의 화재 특성에 대한 심층적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 교수는 “전통 목조 건축물은 기와, 서까래, 적심(기와와 서까래 사이) 등 구조가 복잡한 데다 오랜 시간 건조되면서 발열, 연기량 등에서 일반 목재와 차이를 보이므로 전문적 연구가 요구된다”고 했다. 민간과 협업해 경비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교수는 “일본은 건축설계사 등 고건축 지식을 가진 일반인을 문화유산 감시원으로 임명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하는 ‘문화재 패트롤’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조언했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명예교수는 “문화유산 보호엔 시민의 협업이 필수라는 공감대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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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세 박윤재, 로잔 발레 콩쿠르서 韓 발레리노 첫 우승

    세계적인 발레 경연인 로잔발레콩쿠르에서 한국인 발레리노 최초 우승자가 탄생했다.8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로잔발레콩쿠르에서 박윤재(16·서울예고)가 한국 남자 무용수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로잔발레콩쿠르는 바르나, 잭슨, 모스크바, 파리 콩쿠르와 함께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로 꼽힌다. 박윤재는 “발레를 시작한 5살 때부터 꿈꿔왔던 무대”라며 “이곳에 선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데 큰 상까지 받게 돼 너무나 기쁘고 믿기지 않는다”고 시상식에서 소감을 밝혔다.로잔발레콩쿠르는 15~18세 학생들만 참가할 수 있어 무용수들의 등용문으로 불린다. 이번 결선에서는 미국, 일본 등 6개국 출신 무용수 20명이 겨뤘다. 박윤재는 발레 ‘파리의 불꽃’ 등을 선보였다. 앞서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1985년 한국인 최초로 1등에 올랐다. 이후 박세은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수석무용수), 서희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등 한국인 발레리나들이 이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박윤재는 지난해 열린 제54회 동아무용콩쿠르고등부 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2022년 계원예중 재학 당시에는 제52회 동아무용콩쿠르에서 중등부 장려상을 수상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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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빙하가 모두 녹으면 둘리는 뭘 타지?

    활주로의 끝, 빛이 반사된 그린란드의 빙상은 파도처럼 보인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적요로운 땅이다. 이곳에서 지구 열대화로 녹아 무너지는 빙하를 목도하며 기후 위기를 분석한 저자는, 명칭도 생소한 ‘빙하학자’다. 이 책은 국내 유일한 여성 빙하학자가 쓴 보고서이자 견문록, 성장일지다. 인터넷 동영상으로 범람하는 어떤 여행기보다 전문적이고 희귀한 데다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저자는 ‘냉동 타임캡슐’이라고 불리는 빙하를 통해 수천만 년 전 기후를 연구하는 과학자다. 책은 2023년 그린란드 국제 심부 빙하 시추 프로젝트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일화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과학자답게 책은 빙하, 고기후, 극지 등의 정의를 짚으면서 시작된다. 남극 빙하를 탐사하면서 벌어지는 기후재난을 다룬 영화 ‘투모로우’, 빙하를 타고 서울에 왔다는 ‘둘리’ 등 친숙한 사례를 들며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것이 강점이다. 기후 위기라는 시한폭탄을 매일 조사하는 연구자로서 그 위급함을 전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10만 년 주기로 4∼5도씩 오르내리던 지구 평균온도 변화를 200년 안에 달성하게 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세계적으로도 얼마 되지 않는 여성 빙하학자로서 겪는 어려움과 연대 의식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각종 차별을 견디며 연구실에서 12년을 매진한 끝에 겨우 실제 현장에 올 기회를 얻어냈다. 해발고도 2700m 캠프에서 고산병에 시달리지만 “다른 한국인 여성 연구자들의 기회가 막힐까 봐” 물과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서 이겨낸다. 해외 여성 연구자의 도움으로 난도 높은 시료 채취 임무에 성공하기도 한다. 저자가 자연에 대한 경의를 통해 터득하는 삶의 지혜는 울림을 준다. “이산화탄소의 농도 데이터를 1000년 규모로 보는가, 80만 년 규모로 보는가에 따라 의미가 다르듯 매일 작은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지만 인생 전체로 보면 작은 해프닝일지 모른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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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월지의 진짜 동궁, 기존 서쪽 아닌 동쪽에 있었다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에서 ‘동궁과 월지’로 잘 알려진 동궁(東宮)의 위치는 학계에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았던 주제다. 월지(안압지)의 서쪽에 있다는 게 중론이었지만, 이름 그대로 동쪽에 있어야 맞는 게 아니냐는 추론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대다수 궁들은 태자의 공간인 동궁을 ‘생장하는 봄’을 뜻하는 궁궐 동편에 배치한다. 그런데 최근 드디어 월지 동쪽에서 신라 태자의 독립적 공간이 처음 발견됐다. 국가유산청은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간담회를 갖고 2014년부터 신라 왕궁인 월성, 동궁과 월지, 신라 귀족층 무덤 등 경주 8대 유적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최응천 청장은 10년 넘게 국비 2902억 원을 투입한 결과를 바탕으로 “기존 동궁으로 알려진 건물보다 위계(位階)가 낮은 건물 터가 월지 동쪽에서 새롭게 발견됐다”고 밝혔다. 새로 발견된 ‘동궁지’는 복도로 둘러싸인 대형 건물지와 넓은 마당, 원지(園池·정원 안에 있는 못)로 이뤄져 있다. 건물지 규모는 정면 25m, 측면 21.9m로 기존 동궁지로 여겨졌던 것보다 작다. 두 건물이 위계적 차이를 두고 설계된 것으로 해석된다. 지대 역시 2.3m가량 낮다. 원지는 월지와 별도로 배수 구조를 갖춰 독립적으로 조성된 시설임을 보여 준다. 이종훈 역사유적정책관은 “태자를 일컫는 다른 말이 ‘동궁마마’, 경복궁에서도 세자의 공간은 동쪽이다. 새 동궁은 방위와 상징성 모두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기존에 동궁지로 여겨지던 공간은 왕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사를 전공한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그간 태자궁의 위치를 둘러싸고 무성했던 논란에 마침표를 찍는 셈”이라며 “태자는 동궁에 거처하면서 월지를 용왕(문무왕)에 대한 제의의 공간으로서 관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궁을 둘러싼 복도는 조사 구역 북쪽으로 이어져 태자와 궁인들이 살던 생활 공간으로 연결된다. 이곳에서 건물지 40동과 배수로 19개, 우물 3개 등이 확인됐다. 1300년 전에도 복합적이고 고도화된 생활 양식을 갖췄음을 보여 준다. 최 청장은 “수세식 변기, 폐쇄된 형태로 오물을 흘려보낸 배수시설은 오늘날 상하수도 원리와 비슷하다”고 했다.발굴 과정에선 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세밀한 선각이 새겨진 ‘선각단화쌍조문금박’과 신라시대 놀이기구인 상아주사위도 출토됐다. 아울러 신라의 모체인 3세기 사로국에서 개를 제물로 바쳤던 흔적도 찾았다. 불에 탄 듯한 직경 6m 크기의 의례 유구 근처에서 개 한 마리와 수정 장신구, 철제 고리자루 칼 등이 발견됐다. 김헌석 국립경주문화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비슷한 시기 한반도에서 개를 의례 제물로 바친 게 확인된 첫 번째 사례”라고 했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는 “문헌으로 전해지던 태자궁의 존재가 고구려, 백제 등 삼국 중 유일하게 공식화됨에 따라 활발한 관련 연구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며 “다만 회랑의 주요 출입구나 관료 업무공간 등 부속시설까지 확인해야 구체적인 의미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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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 태자 살던 ‘진짜 동궁’, 기존 서쪽 아닌 동쪽에 있었다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에서 ‘동궁과 월지’로 잘 알려진 동궁(東宮)의 위치는 학계에서 갑론을박은 끊이지 않았던 주제다. 월지(안압지)의 서쪽에 있다는 게 중론이었지만, 이름 그대로 동쪽에 있어야 맞는 게 아니냐는 추론이었다. 실제로 대다수 궁들은 태자의 공간인 동궁을 ‘생장하는 봄’을 뜻하는 궁궐 동편에 배치한다. 그런데 최근 드디어 월지 동쪽에서 신라 태자의 독립적 공간이 처음 발견됐다.국가유산청은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간담회를 갖고 2014년부터 신라 왕궁인 월성, 동궁과 월지, 신라 귀족층 무덤 등 경주 8대 유적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최응천 청장은 10년 넘게 국비 2902억 원이 투입한 결과를 바탕으로 “기존 동궁으로 알려진 건물보다 위계가 낮은 건물터가 월지 동쪽에서 새롭게 발견됐다”고 밝혔다.새로 발견된 ‘동궁지’는 복도로 둘러싸인 대형 건물지와 넓은 마당, 원지(정원 안의 못)로 이뤄져 있다. 건물지 규모는 정면 25m, 측면 21.9m로 기존 동궁지로 여겨졌던 것보다 작다. 두 건물이 위계적 차이를 두고 설계된 것으로 해석된다. 지대 역시 해발 2.3m가량 낮다. 원지는 월지와 별도로 배수 구조를 갖춰 독립적으로 조성된 시설임을 보여준다. 이종훈 역사유적정책관은 “태자를 일컫는 다른 말이 ‘동궁마마’, 경복궁에서도 세자의 공간은 동쪽이다. 새 동궁은 방위와 상징성 모두 일치한다”고 설명했다.이에 따라 기존에 동궁지로 여기지던 공간은 왕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사를 전공한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그간 태자궁의 위치를 둘러싸고 무성했던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셈”이라며 “태자는 동궁에 거처하면서 월지를 용왕(문무왕)에 대한 제의의 공간으로서 관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동궁을 둘러싼 복도는 조사 구역 북쪽으로 이어져 태자와 궁인들이 살던 생활 공간으로 연결된다. 이곳에서 건물지 40동과 배수로 19개, 우물 3개 등이 확인됐다. 1300년 전에도 복합적이고 고도화된 생활 양식을 갖췄음을 보여준다. 최 청장은 “수세식 변기, 폐쇄된 형태로 오물을 흘려보낸 배수시설은 오늘날 상하수도 원리와 비슷하다”고 했다.발굴 과정에선 눈으로 식별이 어려운 세밀한 선각이 새겨진 ‘선각단화쌍조문금박’과 신라시대 놀이기구인 상아주사위도 출토됐다. 아울러 신라의 모체인 3세기 사로국에서 개를 제물로 바쳤던 흔적도 찾았다. 불에 탄 듯한 직경 6m 크기의 의례 유구 근처에서 개 한 마리와 수정 장신구, 철제 고리자루 칼 등이 발견됐다. 김헌석 국립경주문화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비슷한 시기 한반도에서 개를 의례 제물로 바친 게 확인된 첫 번째 사례”라고 했다.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는 “문헌으로 전해지던 태자궁의 존재가 고구려, 백제 등 삼국 중 유일하게 공식화됨에 따라 활발한 관련 연구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며 “다만 회랑의 주요 출입구나 관료 업무공간 등 부속시설까지 확인해야 구체적인 의미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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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의 초상 모신 ‘경복궁 선원전’ 편액, 100년만에 귀환

    조선 왕들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을 봉안했던 경복궁 선원전(璿源殿)에 걸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편액(扁額·사진)이 약 100년 만에 일본에서 돌아왔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3일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된 것으로 보이는 ‘경복궁 선원전 편액’을 환수했다”고 밝혔다. 편액은 방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글이나 그림 액자를 일컫는다. 현판에 사용된 안료를 조사한 결과, 의궤에 기록된 편액 재료와 대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환수된 편액은 가로 312cm 세로 140cm 크기로, 옻칠을 한 검은 바탕에 ‘옥의 근원’을 뜻하는 ‘선원’이 금빛으로 쓰여 있다. 글씨는 조선 후기 이조참판 등을 지냈으며 ‘명필’로 알려진 문신 서승보(1814∼1877)가 쓴 것으로 추정된다. 액자 테두리에는 부채와 보자기 등 ‘칠보’(七寶·일곱 가지 보물) 문양이 새겨졌으며, 테두리를 연장한 봉에는 구름무늬를 조각해 격식 높은 현판 양식을 보여준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해당 편액은 1868년 재건된 경복궁 선원전에 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선원전은 왕들의 어진을 봉안하고 의례를 지낸 신성한 공간이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선원전은 왕실의 뿌리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이곳에 걸린 편액 또한 왕실의 소중한 보물”이라고 설명했다. 조선 최초의 선원전은 1444년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만들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전소됐다. 1868년 경복궁 재건 때 다시 세워졌으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헐렸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이 있는 자리가 선원전 권역이다. 이 편액은 2023년 말 일본 고미술 경매장에 나오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일각에선 1910년부터 1916년까지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경복궁 일부 건물과 함께 일본으로 뺏어 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가유산청 측은 “소장자에게 조선 왕실 문화유산이 고국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설득해 환수가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선원전 편액은 27일 실물을 처음 공개한 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관리할 예정이다. 환수 비용은 라이엇게임즈가 후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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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 강점기 때 반출된 ‘경복궁 선원전 편액’, 100년 만에 환수

    조선 왕실의 ‘뿌리’였던 경복궁 선원전의 현판이 약 100년 만에 일본에서 돌아왔다.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일제강점기에 반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복궁 선원전(璿源殿) 편액’을 지난해 2월 환수했다고 3일 밝혔다. 편액은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기 위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 액자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선원전은 왕실의 뿌리를 상징하는 공간”이라며 “소장자 측에 조선 왕실의 문화유산이 고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득한 끝에 환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환수된 현판은 가로 312cm 세로 140cm 크기로, 옻칠을 해 검은 바탕에 ‘옥의 근원’을 뜻하는 ‘선원’이 금빛으로 쓰였다. 글씨는 조선 후기 이조참판을 지낸 문신 서승보(1814∼1877)가 쓴 것으로 추정된다. 액자 테두리에는 부채, 보자기 등 길상을 뜻하는 ‘칠보(七寶·일곱 가지 보물)’ 문양이 더해졌다. 테두리를 연장한 봉에는 구름무늬를 조각해 격식 높은 현판의 양식을 보여준다. 현판은 1868년 재건된 경복궁 선원전에 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선원전은 역대 왕들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을 봉안하고 의례를 지낸 신성한 공간으로 과거 경복궁, 창덕궁, 경운궁(덕수궁)에 각각 마련됐다. 조선 최초의 선원전은 1444년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만들어졌고, 임진왜란 중 화재로 전소됐다. 1868년 경복궁 재건 때 다시 마련됐으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헐렸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의 자리가 경복궁의 선원전 권역이다. 현판에 사용된 안료를 조사한 결과, 의궤에 기록된 편액의 재료와 대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현판의 존재는 2023년 말 일본 고미술 경매장에 매물로 나오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편액이 반출된 과정은 아직 추가 조사가 필요하지만, 1910년부터 1916년까지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을 지낸 테라우치 마사타케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선원전 역사를 다룬 책 ‘아니다 거기 있었다’에서는 데라우치 총독이 편액을 경복궁 일부 건물과 함께 고향으로 가져갔으며, 1942년 폭풍우로 해당 건물이 철거되면서 한 건설업자가 수거했다고 주장한다.편액 환수 과정은 라이엇게임즈가 후원했다. 실물은 이달 27일 언론에 최초 공개되며, 이후 왕실 관련 유물을 소관하고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및 관리할 예정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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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징어 게임’ 대단원 시즌3, 6월 27일 공개

    ‘오징어 게임’의 마지막 시즌이 올 6월 공개된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대단원인 시즌3를 6월 27일 공개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시즌2를 선보인 지 6개월 만이다. 2021년 9월 시즌1이 첫선을 보인 뒤 시즌2가 나오기까지는 3년 3개월이 걸렸다. 시즌3는 시즌2 제작 당시 연속으로 촬영됐으나 공개는 홍보 효과 극대화 등을 위해 시차를 두고 진행하기로 결정된 바 있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 시즌3의 공개 날짜를 공식 발표하면서 새로운 스틸컷(사진)도 함께 공개했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 시즌3 스틸컷에는 반란에 실패하고 수갑에 묶인 채 누군가를 노려보는 기훈(이정재)의 모습이 담겼다. 이 외에 검은 가면을 손에 든 채 생각에 잠긴 프런트맨, 관을 둘러싸고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등장인물 등의 모습도 담겼다. ‘오징어 게임’을 만든 황동혁 감독은 “심었던 씨앗이 자라고 결실을 보는 모습을 보게 돼 매우 기쁘다. 또 한 번 스릴 넘치는 이야기를 선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2는 지난해 4분기(10∼12월) 시청 횟수 1억6570만 회를 기록했다. 에피소드 7개로 구성된 시즌2에 대해 넷플릭스는 “역대 가장 많이 시청된 오리지널 시리즈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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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갑 찬 이정재? ‘오징어 게임’ 시즌3, 6월 27일 공개

    ‘오징어 게임’의 마지막 시즌이 올 6월 공개된다. 30일 (현지시간)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대단원인 시즌3을 6월 27일 공개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시즌2를 출시한 지 6개월 만이다. 2021년 9월 시즌1이 첫선을 보인 뒤 시즌2가 출시되기까지는 3년 3개월이 걸렸다. 시즌3은 시즌2 제작 당시 연속으로 촬영됐으나 공개는 홍보 효과 극대화 등을 위해 시차를 두고 진행하기로 결정된 바 있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 시즌3의 공개날짜를 공식 발표하면서 새로운 스틸컷도 함께 공개했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 시즌3 스틸컷에는 반란에 실패하고 수갑에 묶인 채 누군가를 노려보는 기훈(이정재)의 모습이 담겼다. 이외 검은 가면을 손에 든 채 생각에 잠긴 프론트맨, 관을 둘러싸고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등장인물 등의 모습도 담겼다. ‘오징어 게임’을 만든 황동혁 감독은 “심었던 씨앗이 자라고 결실을 보는 모습을 보게 돼 매우 기쁘다. 또 한 번 스릴 넘치는 이야기를 선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한편 지난해 12월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2는 지난해 4분기(9~12월) 시청 횟수 1억6570만 회를 기록했다. 7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시즌2에 대해 넷플릭스는 “역대 가장 많이 시청된 오리지널 시리즈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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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위에 꽃 떨어지듯, 두팔을 좌우로 뿌려라”… 조선시대 궁중 댄스 교본 20여종 영인 마쳐

    “꽃을 바라보는 듯한 자세로(花前態·화전태) 곱게 미소 짓고(媚弄·미롱), 물 위에 꽃이 떨어지듯(落花流水·낙화유수) 두 팔을 좌우로 한 번씩 뿌린 뒤 한 바퀴 돌아라(左右一拂一轉·좌우일불일전).”조선 왕실의 댄스 교본이라 할 수 있는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가 알려주는 ‘춘앵전(春鶯囀)’ 추는 법이다. 춘앵전은 봄에 꾀꼬리가 지저귀는 것을 표현한 정재(궁중 연향에서 추는 춤)로 31가지 춤사위가 홀기에 아름답고 직관적으로 설명돼 있다. 홀기는 무용수가 춤을 어떻게 춰야 하는지를 한글과 한자로 적은 연습용 지침서다.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은 2022년부터 진행한 홀기 영인 작업의 마지막 발간물로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 흩어져 있던 홀기 20여 종을 한데 모아 최근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9집’을 출간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처용무’가 담긴 국립중앙도서관 ‘진찬정재홀기’, 국립고궁박물관 ‘무법’ 등이 영인된 건 처음이다. 홀기는 조선시대 궁중 무용을 오늘날 무대로 복원하기 위한 핵심 자료로 꼽힌다. 의궤가 행사의 절차나 주관자, 춤 종류 등을 개괄적으로 기록한 데 비해 홀기는 춤사위, 노랫말, 반주 등을 상세히 담았기 때문이다. ‘춤추며 나아가 선다’는 뜻의 ‘족도이진입(足蹈而進立)’ 등 동작을 표현한 단어가 약 200가지에 이른다. 홀기에는 춤의 대형과 실제 연향에 출연한 무용수의 이름도 담겨 있다. 북 주위를 돌며 추는 군무인 ‘무고’의 경우 여자 무용수 ‘홍매’를 비롯해 출연 무용수들의 소속과 이름이 둥그런 춤 대형을 그리며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부 맥이 끊겼던 궁중무용을 1980년대부터 복원할 수 있었던 건 홀기의 역할이 컸다. 춤이 지금처럼 동영상으로 남아 있지 않은데도 홀기에 담긴 생생한 표현이 복원의 바탕이 됐다. 하지만 그간 홀기는 어람용 고문서 등과 달리 보존도가 떨어지고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해서 관련 연구가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신혜주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는 “국립국악원 ‘정재무도홀기’는 1980년에 한 차례 영인됐으나 해상도가 낮아 주석을 읽기 어려웠다”며 “소장처별 자료들도 대부분 훼손 방지를 이유로 열람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영인은 가로 7cm, 세로 24cm의 자그마한 책에 깨알같이 쓰인 주석까지 읽을 수 있도록 고해상도로 진행됐다. 홀기 영인본 발간을 계기로 우리 춤에 대한 연구와 복원 속도가 높아질 것이란 기대도 커졌다. 그간 편찬 시기가 불분명했던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정재홀기’는 이번 영인 과정에서 헌종대 무신년(1848년) 자료로 추정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재옥 학예연구관은 “편찬 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홀기들을 비교 연구하면 복원 수준을 높일 수 있다”며 “오늘날 여성 군무로 공연되는 ‘선유락’의 경우, 연대 불명 장서각 소장 홀기에선 남자 무용수인 무동들도 춘 것으로 나온다. ‘정재 악사는 남자, 춤은 여자’라는 인식을 넘어서는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영인본 편찬에 참여한 김영운 전 국립국악원장은 “홀기의 내용과 맥락을 정확히 이해한 뒤에야 기존 해석을 보완하거나 현대적인 재해석을 가미할 수 있다”며 “같은 춤이 시대에 따라서 어떻게 변용됐고, 바뀌지 않는 정체성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짚어내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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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서 왕의 ‘세화’ 받고, 박물관서 연날리고

    설 연휴를 맞아 고궁과 박물관 등에서 명절 분위기가 물씬한 행사가 펼쳐진다. 28∼30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의 흥례문 광장에선 ‘을사년 설맞이 세화 나눔’ 행사가 개최된다. 세화는 한 해 동안 행운이 깃들길 기원하는 그림으로, 조선시대 왕은 새해를 맞아 신하들에게 세화를 하사했다. 오전 10시와 오후 2시 수문장 교대 의식이 끝난 뒤 세화를 나눠줄 예정이다. 30일까지 4대 궁과 종묘, 조선왕릉 등 22곳도 무료로 개방된다. 평소 예약제로 운영되는 종묘도 이때는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을사년 ‘푸른 뱀의 해’를 맞아 준비한 특별전 ‘만사형통’과 함께 설맞이 한마당을 연다. 전시에선 뱀과 관련한 생활용품이나 의례용품 등 60여 점을 살펴볼 수 있다. 27, 28일 윷점 보기와 연 날리기 등을 체험할 수 있고, 광주시립광지원농악단의 지신밟기 공연도 펼쳐진다. 서울역사박물관도 18세기 서울을 조명한 전시 ‘태평계태평’과 더불어 설맞이 한마당 행사를 개최한다. 30일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박물관 앞 광장에서 푸른뱀 키링 만들기, 가오리연 만들기 등에 참여할 수 있다. 이날 오후 1시엔 사물놀이 ‘판굿’과 사자놀이를 선보인다. 29, 3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선 국립무용단 ‘2025 축제’가 공연된다. 풍년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태평무, 북으로 장단을 주고받으며 흥겹게 추는 무고 등 ‘왕을 위한 축제’를 주제로 7개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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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러-우 전쟁 기원은 20세기 초 유럽”

    1945년 5월 8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항복한 직후의 시간을 ‘슈툰데 눌(Stunde Null·제로 시간)’이라고 부른다. 기존 체제가 무너진 시기, 들끓는 복수심은 평화 대신 더 잔혹한 폭력을 가져왔다. 유럽 각지에서 여성 수백만 명이 성폭행을 당했다. 크로아티아인은 세르비아인을, 우크라이나인은 폴란드인을 죽이는 등 파편화된 차별과 학살이 난무했다.이 책은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의 기원이 제2차 세계대전에 있다”며 반인도적 폭력의 근간이 만들어진 20세기 전후(戰後) 초기 유럽의 역사를 파헤친다. 언론인 출신 역사가이자 소설가인 저자가 치밀한 논증과 풍부한 사례를 담아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냈다. 2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됐으며, 국제작가협회(PEN 인터내셔널)가 주관하는 ‘헤셀 틸먼 상’을 수상했다.책은 이미 많은 연구가 이뤄진 서유럽은 물론 동유럽과 옛 소비에트 연방, 북유럽까지 아우르면서 전쟁 직후의 야만적 상황을 다룬다. 1945년 유럽 전승기념일이 선포된 뒤에도 대륙 전역에선 폭력이 이어졌다. 우크라이나와 발트 3국에서 민족주의자들은 1950년대까지 소련군에 맞서 전투를 벌였다. 더 잔혹한 보복이 민간인 사이에서 일어나기도 했다.특히 독일 민간인들은 유럽 전역에서 구타당하거나 살해당했다. 1945년 전쟁 직후 유고슬라비아에서 벌어진 블라이부르크 강제 송환 사건은 희생자 수만 명을 낳았다. 패전국들의 군인과 민간인이 유고슬라비아를 떠나 오스트리아로 피란했으나 영국군에 의해 강제로 송환됐다. 대부분 처형되거나 열악한 환경에 처한 채 숨졌다. 저자는 이 같은 복수 행위가 “도덕적 우위성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렀을지언정 누가 전후 권력의 지배권을 쥐고 있는지 입증해 주는” 공동체적 도구였다고 지적한다. 개인에게는 더 이상 역사적 사건의 수동적 방관자가 아니라는 환상을 심어주면서 잔혹한 복수의 메커니즘에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전쟁으로 인한 도덕적 수렁에서는 모든 민족과 정치 종파가 희생자인 동시에 범죄자였다”고 역설한 대목은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대해 다시 한번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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