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이지윤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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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장바구니에 담은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leemail@donga.com

취재분야

2024-04-09~2024-05-09
연극43%
문화 일반17%
사회일반10%
인사일반10%
무용10%
문학/출판7%
기타3%
  • “소설속 사랑 아닌 현실 연인 표현… 관객이 내 얘기라 못느끼면 실패”

    그저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끝나버린 관계가 많다. 기억을 되감아 원인을 찾아보려 해도 각자가 일련의 시간을 거치며 서로 다른 사람으로 성장했음을 짐작할 뿐이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이달 17일부터 공연되는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이처럼 한때 영원을 약속했던 연인 제이미와 캐시의 파경을 돌이켜보는 이야기다. 주인공 제이미 역을 맡은 배우 이충주(39)를 3일 서울 서초구 신시컴퍼니 연습실에서 만났다. 불같은 사랑에 빠진 예술가(뮤지컬 ‘물랑루즈!’의 크리스티안)부터 여자들을 유혹하는 미남 장교(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의 아나톨 역)까지…. 숱한 사랑을 연기해 왔지만 그는 “제이미의 연애는 색다르다”고 했다. “소설 속에나 있을 법한 사랑이 아닌 ‘내 이야기’예요. 서울의 한 커플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현실적인 연인을 표현하죠. 대본 리딩 때 출연진들이 저마다 개인사를 늘어놓을 정도로요. 관객이 이 이야기의 당사자라 느끼지 못하면 우린 실패한 겁니다.” 극 중 제이미의 관점은 숨이 멎는 듯했던 첫 만남을 시작으로 5년 뒤 사랑했던 순간들만 두고 가는 이별 순으로 펼쳐진다. 반면 캐시의 시간은 그 반대로 흐르도록 연출해 관객이 이들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단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임을 느끼게 한다. 제이미 역은 이충주와 최재림이, 캐시 역은 박지연 민경아가 번갈아 연기한다. 두 등장인물은 공연 시간 90분 내내 등장, 퇴장 없이 1, 2인극을 오간다. 이충주는 “뮤지컬 배우 경력 15년이 넘었지만 이번 연습이 가장 강도가 세다. 운동을 좋아해서 마라톤도 뛰어봤는데, 그에 맞먹을 정도”라고 고백했다. 공연은 대사와 가사 간 경계가 없는 총 14곡의 넘버로 이뤄졌다. 그는 “‘노트르담 드 파리’ 등 이전에도 대사를 모두 노래로 표현하는 송스루(Song Through) 뮤지컬은 해봤지만 연기와 노래 간 경계가 이토록 치밀하게 허물어진 적은 없다”며 “균형을 찾느라 연습마다 ‘죽겠다’ 싶어도 배우로서 성장하는 성취감이 크다”고 했다. 이 씨는 이번 공연에 온전히 집중하고자 지난해 3월까지 공연된 뮤지컬 ‘물랑루즈!’ 이후 다른 작품엔 출연하지 않았다. 같은 배역을 맡은 최재림과는 서로의 집에 놀러 갈 정도로 막역한 동갑내기 친구 사이지만 성격은 딴판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보여줄 제이미의 매력이 각기 달리 느껴질 이유다. 그는 “좋은 게 좋고 우유부단한 나와 달리 재림이는 확신이 강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재림이의 연기를 보며 연인 사이여도 할 말은 하는 ‘제이미스러움’을 느끼곤 한다”며 웃었다. 향후 도전해 보고 싶은 배역이 있는지 묻자 그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한 작품을 하면서 다음은 잘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 받은 피드백을 내일 전부 보완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요. 2008년 이후 15년 만에 올라가는 공연인 만큼 ‘대체 불가한 캐스팅’이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4월 7일까지. 6만∼8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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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관 소식 ‘학전’ 울린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가객(歌客) 고(故) 김광석(1964∼1996)이 세상을 떠난 지 꼭 28년째인 6일 서울 종로구 학전블루 소극장 앞. 어둠이 내리자 종일 맑았던 하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의 생전 ‘보금자리’였던 학전의 지붕 위로 함박눈을 쏟아냈다. 이날 학전에서 ‘제2회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가 열렸다. 대회를 찾은 관객들은 공연 전 꽃다발과 소주, 담배 등이 가지런히 놓인 김광석 노래비를 마주 보며 고인을 기렸다. 대회는 사회를 맡은 가수 박학기가 무대에 올라 친구의 사진 앞에서 향을 피우고 소주 한 잔을 따르면서 시작됐다. 김광석 추모사업회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2012년 ‘김광석 노래 부르기’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학전에서 꾸준히 열렸다. 학전은 1991년 개관 이후 김광석이 라이브 공연을 1000회 이상 펼친 곳이다. 박학기는 “오늘 대회는 훗날 큰 아름드리가 될 씨앗을 만나는 자리”라고 말했다. 총 179개 팀이 경쟁을 벌인 예선을 뚫고 본선에 진출한 7개 팀은 김광석의 노래와 창작곡을 각각 1곡씩 불렀다. 참가자 11명은 모두 무대 위에 걸린 사진 속 김광석과 같은 20대였다. ‘기타와 나’ ‘슬픔에 무게가 있다면’ 등 나직이 부른 창작곡들에는 과거 김광석이 그랬듯 앳되고 진솔한 마음이 공통적으로 묻어났다. ‘외사랑’을 부른 서림 씨는 “김광석 노래로 처음 기타를 배웠고, 아버지의 인생 첫 대학로 극장이 학전이다. 이곳에서 노래해 꿈 같다”며 웃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10∼60대 관객 150여 명은 힘껏 박수를 치며 응원을 보냈다. 최근 학전 폐관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본선 티켓은 예매 시작 1분 만에 매진됐다. 오랜 재정난에 김민기 학전 대표 겸 김광석추모사업회장의 건강 악화가 겹쳐 개관 33년 만인 올 3월 잠정 폐관이 결정된 것. 문화체육관광부가 재개관 계획을 발표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운영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학전은 ‘비상업성’ 등 기존 운영 방침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다시 문을 열어도 이 같은 대회를 학전에서 이어가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해까지 대회 현장을 지킨 김 대표는 건강상의 이유로 이날은 나오지 못했다. 대상인 ‘김광석 상’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과 창작곡 ‘청춘예찬’을 부른 이상웅·정지윤 씨에게 돌아갔다. 부상으로 창작지원금 200만 원과 마틴 기타가 수여됐다. 이 씨는 “일곱 살에 부모님과 간 라이브클럽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처음 접한 후 가수의 꿈을 키웠다”며 “뜻깊은 자리라 더욱 감사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가창상(성해빈·양은채), 연주상(플릭), 편곡상(민물결), 작곡상(곽다경·신우진), 작사상(김부경), 다시부르기상(서림) 등 나머지 6개 부문 수상자에게는 창작지원금 100만 원과 파크우드 기타가 지급됐다. 올해 심사는 학전 출신 선배들이 머리를 맞댔다. 밴드 동물원의 박기영과 가수 이적, 정원영 호원대 실용음악학부 교수, 권진원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교수, 작곡가 김형석, 작사가 심현보, 홍수현 프로듀서 등이 참여했다. 권 교수는 “지난 대회들에선 대견하다고만 느꼈는데 오늘은 찌릿한 전율이 흘렀다”고 심사평을 밝혔다. 그 밖에 김광석의 친형 김광복 씨, ‘서른 즈음에’를 작사·작곡한 강승원도 객석을 채웠다. 대회는 참가자와 심사위원 등이 다 함께 김광석의 히트곡 ‘일어나’를 부르며 끝을 맺었다. 내년에도 이곳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듯한 노랫말이 극장을 울렸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봄의 새싹들처럼’.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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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창기 우리 은하, 둥글지 않고 바나나 모양”

    ‘우리의 은하는 처음 탄생했을 땐 길쭉한 바나나 모양이었다?’ 우주의 비밀을 하나씩 파헤치고 있는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촬영 이미지를 분석한 결과 초창기 은하는 바나나나 서프보드처럼 길쭉한 모양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존 학설은 신생 은하가 동그란 원형이나 원반형이었을 것으로 추정해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 시간) “미 컬럼비아대 연구원 비라지 판디야 박사 등 연구진은 제임스웹 망원경으로 촬영한 신생 은하 이미지 약 4000장을 분석했더니, 선형에 가까운 바나나 서프보드 시가 피클의 형태가 보였다는 논문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현존 최고의 우주망원경인 제임스웹은 우주 먼지와 가스 구름을 뚫고 원거리 파장까지 포착해 가장 멀리 있는 은하까지 관측할 수 있다. 연구진은 다국적 연구 프로젝트 ‘우주 진화 초기 방출 과학 조사(CEERS)’에서 얻은 이미지를 분석해 3차원으로 제시했다. NYT는 “이 연구 결과가 받아들여진다면 은하의 등장과 성장 과정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평가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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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덕의 바리’ ‘아들에게’ 등 문예위 올해의 신작 무대에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연극·창작오페라 등 총 28개의 작품이 올해 3월까지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이달 포문을 여는 작품은 그중 6편이다. 우선 20세기 실존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를 앞세운 연극 2편이 공연된다. 6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리는 ‘언덕의 바리’는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여성 폭탄범’ 안경신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다. 여성 신화인 바리데기 이야기와 엮어 재구성했다. 13일부터 21일까지는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아들에게’가 공연된다. 중국, 미국 등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했던 실존 인물 현미옥(앨리스 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전통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연 3편도 잇달아 열린다. 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지는 ‘민요 첼로’는 우리 민요를 다섯 대의 첼로와 밴드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전통음악의 박자 개념을 현대인의 삶의 호흡과 대응시킨 ‘만중삭만―잊혀진 숨들의 기억’은 12, 13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20, 21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선 전통 장단을 흐르는 물에 빗대어 표현하고 영상예술과 결합한 ‘물의 놀이’가 관객을 만난다. 그 밖에 동화 ‘신데렐라’를 두 언니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오페라 ‘3과 2분의 1 A’도 11, 12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펼쳐진다. 유리구두를 핵심 소재로 욕망이 초래하는 파멸을 그려낸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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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가무극으로… 현대문학의 ‘변신’

    국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아 온 현대문학 3편이 올해 잇달아 ‘뮤지컬’이란 새 옷을 갈아입고 무대에 오른다. 우선 천선란 작가의 동명 공상과학(SF) 베스트셀러 소설 ‘천 개의 파랑’(2020년)이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으로 재탄생한다. 폐기 직전의 휴머노이드 로봇, 안락사 위기에 처한 경주마, 척수성 소아마비를 겪은 은혜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인간과 동물, 로봇 간 연대를 노래한다. 뮤지컬 ‘빠리빵집’ ‘라흐 헤스트’ 등을 쓴 김한솔 극작가가 제작에 참여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5월 12일부터 26일까지 공연된다. 구병모 작가의 스테디셀러 소설 ‘파과’(2013년)는 뮤지컬로 탈바꿈해 관객을 찾는다. 2013년 출간 당시 ‘60대 여성 청부살인업자’라는 주인공을 앞세워 이목을 모은 작품이다. 40여 년간 청부 살인을 한 ‘조각’이 나이가 들어 뒤늦게 연민과 사랑을 느끼며 타인의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는 이야기가 담겼다. 연극 ‘아마데우스’, 뮤지컬 ‘서편제’ 등을 만든 Page1이 제작을 맡았다.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3월 15일부터 5월 26일까지 공연된다.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2016년)도 다시 무대에 오른다. 2018년 서울예술단이 첫선을 보인 이후 이번이 4번째 시즌이다. 최상위 계층이 사는 1지구부터 최하위 9지구까지 분리된 계급 도시를 배경으로 주인공 다윈이 자신의 가문에 감춰진 악의 근원과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3월 8일부터 24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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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팡이-박테리아… 다시 보니 예술이네

    곰팡이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 생명공학 기술을 예술에 결합한 ‘바이오아트’가 최근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 시테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선정된 박지희 씨는 균류를 활용해 ‘기록되지 않은 미시적 역사’를 시각화한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옛 경성방직 사무동의 역사를 추적한 프로젝트 ‘생략된 궤도’가 대표적이다. 건물의 먼지를 수집해 곰팡이 균을 찾아낸 뒤 투명한 레진 안에 곰팡이의 색소 물질을 넣어 염색한 설치물 등으로 구성됐다. 사람과 생물 간 상호작용을 분석해 소리로 표현한 작품도 있다. 지난해(2023년) ‘ACT 페스티벌’에 전시된 ‘미시적 연결감각’이 바로 그것.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출신인 김대희 작가의 작품이다. 관람객이 전시된 버섯을 만지면 버섯에 연결된 바이오피드백 센서가 사람과 버섯 사이에 흐르는 미세 전류를 감지하고 이를 소리로 변환해 들려준다. 바이오아트는 기술과 예술 간 융합이 비교적 일찍 이뤄진 서구에선 국내보다 먼저 예술의 한 갈래로 자리 잡았다. 2000년 브라질 출신 작가 에두아르두 칵은 토끼의 몸속에 해파리의 녹색 형광 단백질을 주입해 형광 빛을 내는 유전자 변형 토끼 ‘GFP 버니’를 발표했다. 미국 출신 작가 헌터 콜은 스스로 빛을 내는 박테리아로 그림을 그린다. 밝게 빛나던 작품은 박테리아가 죽어가는 2주간 서서히 빛을 잃으며 생명의 순환을 보여 준다. 바이오아트는 인간과 생태계 간 보이지 않는 관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지희 작가는 “사람들은 곰팡이를 ‘없애야 할 존재’로 인식하지만 곰팡이를 예술로써 본 관람객은 이 역시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임을 감각할 수 있다”며 “바이오아트는 인간과 다양한 생물군의 공존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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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인공지능이 정해도 정말 괜찮을까

    최근 뚜렷해진 인공지능(AI)의 존재는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인류가 AI의 기계적 사고방식과 공존하게 된 건 결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는 300여 년 전부터라고 말한다.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국가를 ‘거대한 인공 인간’으로 묘사했을 즈음이다. 인류는 의사결정을 더 크고 기계적인 집단에 맡김으로써 보다 효율적으로 부와 안전을 구축했다. 국가는 헌법과 국채 등을 도구로 시장과 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그런 기업들은 이제 ‘지속가능한 성장’을 표어 삼아 AI 개발에 자본을 들이붓는 중이다. 책은 열린 결말이다. AI가 지배할 세상을 구체적으로 예견하진 않는다. 그러나 국가와 기업이 그동안 인간에게 어떻게 군림해왔는지 설명함으로써 AI가 침투할 세계를 암시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총 8개의 장으로 이뤄졌고, 전체 분량 중 3분의 2 이상을 국가의 개념과 형성 과정, 기업의 발전 등 역사를 풀어내는 데 할애하며 AI의 속성과 연결짓는다. 국가와 기업, AI가 모두 ‘비인간적인 결정 대리인’이란 점에서 같다는 논지를 펼친다. 효율성이 핵심인 이들의 기계적 사고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국가의 경우 팬데믹이 창궐하자 기술을 이용해 사회를 감시했고 오늘날 세계 곳곳에선 민주적 절차가 무시된 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저자는 “그 속에서 우리에겐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인공 대리인인 국가가, 기업이 대신 선택했다”며 “결정은 이들이 하는데 그 결과는 국민이 떠안아야 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다가올 미래를 무심히 ‘착한 AI 개발’에 맡기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국가가 할 수 있는 것과 원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AI 이후의 세상은 국가와 기업이 부여받은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고 거기서 우리가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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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T야?’ 공감욕구 드러내고 ‘추구美’로 개성 표출

    올 한 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휩쓴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과 유행어 중에선 사회 현실에 대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시선이 담긴 것이 많았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당시 한국 국가대표팀 경기를 통해 화제가 됐던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는 ‘중꺾그마’(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로 변형됐다. 연예인 박명수가 유튜브 채널에서 조어해 화제가 됐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이 학교 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복수를 앞두고 한 대사 “나 지금 되게 신나”는 숱한 패러디물로 확대 재생산됐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힘든 현실에서는 손쉬운 성취도, 통쾌한 공정도 불가능하지만 실낱같은 가능성을 좇는 마음이 해학적 밈으로 표출됐다”고 말했다. 2023년 유행어를 분석해봤다.● 공감 욕구, 개성 반영MBTI 열풍에 따른 ‘너 T야?’는 공감에 대한 욕구를 드러낸다. 성격유형 중 사고형을 나타내는 T를 빗대 공감해주지 않는 상대방을 비꼴 때 쓴다. 인플루언서 레오제이가 유튜브 영상에서 농담조로 던진 “너 혹시 뭐 돼?”란 말은 ‘너 뭐 돼?’로 축약돼 인기를 끌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유행어가 됐지만 상대에게 발언할 자격을 문제 삼거나 공감을 요구하는 자기중심적 언어”라고 말했다. ‘추구미’ 역시 X(구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미디어에서 널리 애용됐다. ‘추구하다’와 미(美)를 합성한 단어로 ‘내가 꿈꾸는 이미지’를 뜻한다. 옷차림, 롤모델, 분위기 등을 두루 가리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집단적 취향보다는 자기만의 이상향을 드러내고, 서로 다른 취향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담겼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인정받으려는 젊은 세대의 특성이 반영됐다”고 했다.● 아이돌 음악, 사회 이슈 소재로인기를 얻은 대중음악도 밈과 유행어로 널리 활용됐다. 지난해 7월 뉴진스의 데뷔 앨범 수록곡 ‘Hype Boy’가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란 밈(어물쩍 답변을 회피할 때 사용)으로 퍼진 데 이어 올해 초 발표된 ‘Ditto’는 상대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의 ‘디토(Ditto·찬성)합니다’로 즐겨 사용되고 있다. 황 평론가는 “아이돌 문화는 일상에 영향을 미쳐왔는데 SNS의 확대와 맞물려 더욱 침투력이 높아지는 추세”라며 “과거엔 TV 인기 방송이 미는 유행어를 전 국민이 사용했던 것과 달리 오늘날 유행어는 훨씬 다양한 매체에서, 누구나 알아듣기엔 까다로운 형태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밈은 사회 이슈와 직결된 경우도 많다. 전 펜싱 국가대표 선수 남현희의 재혼 상대로 알려졌던 전청조의 사기 행각으로 유행된 ‘I am 신뢰예요’는 일명 ‘맑은청조체’로 불리며 많이 회자됐다. 팍팍한 현실 속, 쇼트폼과 자극적 콘텐츠에 길들여진 젊은층 사이에선 ‘도파민 중독’이란 자조적 표현도 인기를 얻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기 세대와 관련된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들에게 유행어는 세태를 풍자함으로써 시정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며 “정치, 경제 등 젊은층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 변수 대신 온라인과 언어를 무기로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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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콘텐츠 전쟁’ 최후 승자는 누가 될까

    1997년 DVD 대여 우편배달 사업으로 시작한 넷플릭스가 10년 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출시를 통해 오늘날 왕좌에 오른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넷플릭스는 단지 시류를 읽어내는 데 성공해 스트리밍이라는 ‘대어’를 물어 운 좋게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책은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서 활동한 두 기자가 썼다. 2018년부터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 월스트리트를 다니며 취재한 내용을 정리했다. 인터넷 출현과 소니픽처스 해킹 사태 등 업계의 역사와 함께해 온 저자들임에도 “스트리밍으로 인한 지각변동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고 회고하며 스트리밍 이전과 이후의 세계를 짚어낸다. 이들은 넷플릭스가 촉발한 콘텐츠 시장 패권 경쟁에 ‘미디어 공룡’ HBO와 워너브러더스 등이 가세하고 아마존, 애플 등의 기업이 뒤늦게 뛰어든 흐름을 좇는다. 또 기회를 잡은 자와 놓친 자의 당시 내외부 상황을 입체적으로 풀어내 독자 역시 경쟁에 참여한 듯한 느낌을 준다. 2007년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할 즈음 아메리칸온라인(AOL)도 타임워너 이사회에 유튜브 매입을 적극 제안했으나 “안 돼, 꺼져”라는 대답이 돌아온 일화를 밝히고, 넷플릭스의 혁신적인 인사 시스템 등이 성공을 견인했다고 진단한다. 넷플릭스가 ‘하우스 오브 카드’의 모든 회차를 한 번에 공개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한 유명 방송국 간부가 테드 서랜도스 공동 최고경영자에게 전화해 ‘텔레비전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나 하는 거요?’라고 물었던 이야기도 공개한다. 저자는 “이 교란자에게 중요한 것은 구독자를 행복하게 해 결국 방송국 경영진까지 새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스트리밍 산업의 앞날에 대해 “한국의 ‘오징어 게임’은 스트리밍 산업의 미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언어와 문화의 장벽까지 허문, 끊임없이 움직이는 골대를 상대로 경기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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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전투가… 남았다

    충무공이 북채가 닳도록 두드려댄 독전고(전투를 독려하는 북)가 없었더라면 이후 우리 역사엔 새살이 돋아날 수 있었을까. 영화 ‘명량’(2014년)과 ‘한산: 용의 출현’(2022년)에 이어 임진왜란의 종지부를 찍는 ‘노량: 죽음의 바다’가 던지는 질문이다. 20일 개봉하는 ‘노량’은 국내 영화 사상 최다 관객(1761만 명)을 모은 ‘명량’에 이어 ‘한산’(726만 명)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마지막 시리즈다. 1592년부터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 최후·최대의 전투인 노량해전(1598년)을 담았다. 영화는 독전고 소리를 배경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서 철군하라”는 유언을 남기며 시작된다. 왜군이 조선에서 황급히 퇴각하려 하자 이순신은 “이 전쟁을 올바로 끝내야 한다”며 명나라와 손잡고 왜군 섬멸을 결심한다. 이순신 역은 배우 김윤석이, 왜군 수장 시마즈 역과 명나라 도독 진린 역은 각각 백윤식, 정재영이 맡았다. 충무공은 “열도 끝까지 몰아붙여서라도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1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감독은 “‘단지 대규모 전쟁을 보여 주는 게 목적이냐’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다. 그토록 치열했던 전쟁을 설명하려면 모두가 이 전쟁을 이제 그만하자고 할 때 이순신 장군이 품었던 고독한 화두에 주목해야 했다”고 밝혔다. ‘명량’에서의 이순신이 용장(勇將)이라면 ‘한산’에선 지장(智將)으로, ‘노량’에서는 현장(賢將)으로 그려졌다. 김윤석은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탁월한 표정 연기를 통해 현장으로서의 무게감을 여실히 보여줬다. 목에 칼이 들어올 때조차 깜박임 한 번 없는 눈에선 결연함이 묻어났다. “유난히 밝게 빛나는 저 북쪽 대장별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이미 명운을 다했을 것”이라는 진린의 대사는 이순신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강인해 보이던 얼굴도 죽음 앞에서는 슬픔과 죄책감으로 일그러진다. 적군의 혼령이 악귀처럼 몸에 들러붙고, 셋째 아들 이면(여진구)이 왜적에게 살해돼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을 통해 영웅 역시 한 명의 인간임을 보여 준다. 날이 밝아오고,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지자 이순신은 직접 독전고를 울리며 왜군을 추격하다 적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싸움이 급하다. 내 죽음을 내지 말라”고 담담히 말한다. 김윤석은 “전쟁이 후손에게 미칠 영향까지 내다본 이순신의 마음을 체화하는 것이 가장 힘들면서도 가슴 벅찼다”고 말했다. 조·명 연합군은 지형과 바람 때를 맞춘 전술을 통해 압도적으로 많은 왜선에 맞선다. 2만 명을 섬멸하는 해전은 영화 상영시간 153분 중 무려 100분간 이어진다. 적막한 잿빛 바다 수평선 너머에서 일순간 솟구치는 화공(火攻)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적군의 배로 빠르게 날아가는 포탄을 쫓는 카메라는 긴박감 넘치는 배경음악과 어우러져 몰입도를 극대화했다. 거북선이 왜선을 거침없이 격파하는 장면은 목조선이 부서지는 소리가 더해지며 짜릿함을 준다. 노량해전에 거북선이 출전한 기록은 없다. 김 감독은 “후대로 갈수록 거북선이 많이 만들어졌기에 계속 재건된 것으로 보고 조선 병사에게 큰 의지가 된 거북선을 등장시켰다”고 말했다. 고향에 살아 돌아가려는 마음이 간절한 3국 병사들이 뒤엉켜 싸우는 모습은 롱테이크 기법으로 찍어 전쟁의 지난함을 강조했다. 모든 전투 장면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 사용한 강원 강릉 아이스링크에서 물 없이 촬영됐다. 투입된 제작비는 명량(190억 원), 한산(312억 원)을 넘어서 3부작 중 최대 규모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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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글로리’ 6억시간 시청… 상반기 넷플릭스 세계 3위

    드라마 ‘더 글로리: 시즌1’(사진)이 올해 상반기(1∼6월)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전체 영화·TV시리즈 1만8000여 개 가운데 시청 시간 3위에 올랐다. 넷플릭스가 13일 발표한 ‘시청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더 글로리: 시즌1’은 상반기 전 세계에서 6억2280만 시간 재생됐다. 시청 시간 1, 2위는 미국의 액션 스릴러 드라마 ‘나이트 에이전트: 시즌1’(8억1210만 시간)과 코미디 드라마 ‘지니&조지아: 시즌2’(6억6510만 시간)가 각각 차지했다. 다른 한국 콘텐츠로는 예능 ‘피지컬:100 시즌1’(2억3500만 시간)과 드라마 ‘일타 스캔들’(2억3480만 시간)이 15위, 16위에 차례로 올랐다. 이번 조사에서 비(非)영어권 콘텐츠는 넷플릭스 전체 시청 시간의 3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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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보다 남자’로 뮤지컬 첫발… “이번엔 쓸쓸한 겨울나그네”

    “이토록 쓸쓸하고 비극적인 인물을 과연 이창섭이 소화할 수 있을까. 관객이 품은 의문일 테고, 저조차도 확신이 안 섰죠. 다만 제가 연기하는 극 중 민우처럼 우리는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면서 어른이 돼요. 걸맞은 연기를 보여드리고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차가운 겨울비가 내린 11일, 서울 강남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뮤지컬 ‘겨울나그네’의 주연 배우 이창섭(32)이 말했다.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15일 개막하는 ‘겨울나그네’는 1983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고 최인호 작가(1945∼2013)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만든 뮤지컬이다. 풋풋하고 올곧은 의대생 민우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범죄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뮤지컬 ‘영웅’ ‘명성황후’ 등을 제작한 에이콤이 1997년 초연하고 2005년 재공연한 후 올해 최 작가 10주기를 맞아 18년 만에 새롭게 선보인다. 대중에게 밝은 이미지로 각인된 이 씨는 최근 뮤지컬 ‘멤피스’(휴이 역), 유튜브 채널 ‘전과자’에서 개구쟁이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한데 민우 역은 더없이 외롭고 어둡다. 이 씨는 “보기보다 내향적이라 평소 성격은 휴이보다 민우에 가깝다. 잔잔한 연기를 해보고 싶던 차에 운 좋게 출연 제의를 받았다”며 미소 지었다. 민우 역은 이창섭과 SF9의 김인성, 아스트로의 MJ, 렌이 돌아가며 연기한다. 민우의 선배 현태 역은 가수 세븐, 슈퍼주니어 려욱, 아스트로 진진이 맡았다. 민우와 사랑에 빠지는 다혜 역은 한재아, 임예진이 연기한다. 소설 ‘겨울나그네’는 1980년대 배우 강석우 씨와 손창민 씨가 각각 민우 역을 맡은 동명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돼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씨는 기존 작품들과 거리 두기를 한다고 했다. 그는 “관객이 원작을 알고 있든, 모르든 모두가 공연을 이해하려면 오직 대본에 충실하게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해 일부러 다른 버전을 보지 않았다”며 “이창섭이 보여줄 민우는 학생에서 어른이 될 때의 변화, 즉 선택과 책임의 무게감을 표현하는 데 방점을 뒀다”고 했다. 2012년 그룹 비투비로 데뷔한 그는 2017년 ‘꽃보다 남자 더 뮤지컬’로 뮤지컬 무대에 첫발을 디뎠다. 가수로서의 경험이 안무를 금방 익히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첫 공연 날이면 어김없이 얼어붙어 위경련에 시달린다고 했다. 그는 “근육이완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다. 너무 아파서 인터미션이 되자마자 대기실에 주저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 앞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2시간을 사는 것만큼 매력적인 일이 없기에 자꾸 도전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연습은 매일 오전 11시부터 꼬박 11시간 동안 이어진다. 하지만 오후 10시가 지나도 그의 연습은 끝나지 않는다. 집에서 대본을 꼼꼼히 살펴보며 실수를 복기하고, 대본에는 없는 민우의 인생 전체를 상상하며 일기 쓰듯 빈칸을 빼곡히 채웠다. 다른 배우들이 어떤 각도로 무대에 섰을 때 멋있었는지 되짚어보며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기도 한다. 그는 “한밤중이라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동갑내기 김민영 연출가에게 대뜸 전화를 건다. 원작 소설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모든 걸 쏟아붓고 있다”고 했다. “공연장을 나설 땐 관객 한 명 한 명이 겨울 나그네가 되길 바랍니다. 따뜻함이 감도는 연말이지만 최대한 쓸쓸하게요. 언젠가는 연극 ‘에쿠우스’처럼 강렬함과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고독하거나 기괴하게…. 그래야 관객 마음에 오래 남을 수 있으니까요.(웃음)” 내년 2월 25일까지, 6만∼15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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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수 “운명은 믿지 않지만, 운명적 사랑 기다려요”

    “드라큘라처럼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려요. 현실적인 성격이라 운명을 잘 믿지 않지만, 사랑에서만큼은 그러길 바라죠. 그런 사랑을 노래하는 넘버 ‘She’는 제가 가장 아끼는 곡입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11일 만난 뮤지컬 ‘드라큘라’의 주인공 배우 김준수(36)의 말이다. ‘드라큘라’는 6일부터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2014년 초연부터 5번째 시즌인 이번 공연까지 빠짐없이 드라큘라 역을 맡아온 그는 드라큘라의 사랑과 원망, 고독이 뒤엉킨 감정을 호소력 짙은 노래로 표현해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그 어떤 작품보다 우선순위에 두던 ‘드라큘라’를 다시 공연할 수 있어 기쁘다”며 웃었다. ‘드라큘라’는 1897년 출간된 동명 원작 소설을 토대로 400여 년간 한 여인만을 바라본 드라큘라의 사랑을 그린 뮤지컬이다. 2004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후 국내에선 2021년 4번째 시즌까지 총 318회 공연되며 누적 관객 40만 명을 모았다. 이번 공연에서 드라큘라 역은 김준수와 전동석, 신성록이 번갈아가며 연기한다. 드라큘라와 사랑에 빠진 여인 미나 역은 임혜영 정선아 아이비가, 드라큘라로 인해 아내를 잃고 복수를 꿈꾸는 반 헬싱 역은 손준호와 박은석이 각각 맡았다. 김준수가 출연하는 회차는 전석 매진됐다. 어느덧 14년 차 뮤지컬 배우가 된 그에게 ‘드라큘라’는 배우 인생의 이정표가 돼준 작품이다. 20년 전 그룹 동방신기로 데뷔한 후 2010년 뮤지컬 ‘모차르트!’로 뮤지컬 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김준수는 “단편적인 캐릭터가 많은 뮤지컬계에서 드라큘라는 손에 꼽히는 입체적인 배역이다. 초연부터 창작진과 머리를 맞대고 배역을 연구하면서 배우로서 크게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드라큘라 역을 맡은 후로 ‘가수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가 옅어지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드라큘라’는 그가 가장 많이 출연한 뮤지컬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에선 드라큘라의 다정함에 주목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패기 넘치고 다혈질인 드라큘라를 표현하려 했던 것과 달리 드라큘라와 미나의 첫 만남을 상상하며 더 다정한 목소리, 말투를 연기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드라큘라 역을 비롯해 뮤지컬 ‘데스노트’의 엘 역, ‘엘리자벳’의 죽음(토드) 역 등 신비로운 배역들로 유독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일반적이지 않은 목소리가 한몫하는 듯하다. 목소리만으로도 이런 분위기가 부각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유의 쇳소리로 개성이 뚜렷한 목소리를 지녔다. 그는 “인간 이외의 존재는 몸으로 풀어내는 연기가 중요한데, 아이돌 출신이다 보니 몸을 쓰는 덴 자신이 있다”고 했다. 인간의 피를 탐하는 배역에 맞춰 새빨갛게 물들인 머리카락은 일명 ‘샤큘’(시아준수 드라큘라)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러나 이번 공연을 끝으로 그의 빨간 머리는 볼 수 없게 될 예정이다. 그는 “5∼7일에 한 번씩 염색을 하지 않으면 분홍색이 돼버린다. 운동할 때조차 빨간 물이 흐르고 수건과 베개를 버리는 건 기본이고 피부도 많이 상한다”며 “빨간 머리 드라큘라를 보고 싶다면 이번에 오셔야 한다”며 웃었다. “모든 공연에서 최선을 다해왔기 때문에 그 수준을 넘지 못하면 ‘잘해야 본전’이죠. 관객의 기준도 이미 높아졌을 테니, 죽을힘을 다해 연기하겠습니다.” 내년 3월 3일까지, 8만∼17만 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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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명이 80개 배역 연기 ‘뮤지컬 도미노’… 9·11 비극 속에 피어난 희망의 불시착

    “공연 110분간 관객은 무려 80여 개 배역을 만나게 됩니다. 배우들은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하니 무대 뒤에서도 긴장하죠. 저희끼리는 이 작품을 ‘뮤지컬 도미노’라 불러요. 한 명이 실수하면 모든 게 엉켜 버리거든요.”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5일 열린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정영주가 이같이 말하며 웃었다. 컴프롬어웨이는 2001년 9·11테러 당시 캐나다 마을에 불시착한 승객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2017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돼 그해 토니상 최우수 연출상 등을 수상했다. BBCH홀에서 국내 초연 중인 이 작품에는 정영주와 남경주 최정원 신영숙 차지연 고창석 등 배우 24명이 참여했다. 작품은 9·11테러 당일 인구 1만 명의 소도시 캐나다 뉴펀들랜드 갠더에 수십 대의 비행기가 불시착하며 벌어진 일을 그렸다. 실제 당시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미국으로 향하던 항공기들을 긴급 우회시켰고, 갠더에는 총 6579명이 착륙해 6일간 머물렀다. 극작과 작사, 작곡을 맡은 아이린 샌코프와 데이비드 헤인이 테러 10주기에 갠더를 찾아 당시 불시착한 이들과 주민을 인터뷰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공연은 사회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에 따스함을 선사한다. “마을 하나가 통째로 들어온” 기막힌 상황임에도 갠더 주민들은 “욕조만 한 그릇에 따뜻한 음식을” 담아 주고, 사례금마저 손사래 치며 “비행기 사람들(Come From Away)”을 대가 없이 받아들인다. 1막 후반부의 국적이나 종교, 성별에 관계없이 다 함께 복닥거리며 춤추는 장면은 먹먹함을 준다.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12명의 배우가 80여 명에 가까운 배역을 나눠서 연기한다는 점이다. 남경주는 “모든 배우가 (평균적으로) 대여섯 배역을 맡아서 연기한다는 게 의미 있다”고 했다. 여성 파일럿 베벌리 역이 제복을 분홍색 조끼로 갈아입고 목소리를 발랄하게 바꾸면 갠더 학교의 선생님인 애넷 역이 되는 식이다. 오즈 역 등 10개에 달하는 최다 배역을 맡은 이정수는 “분량이 많든 적든 배역마다 동일한 부담감을 느낀다. 물 마실 시간조차 부족하다”며 웃었다. 다만 주요 배역 외엔 누가 누군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아 다소 혼란스럽다. 대사 대부분이 노래로 이뤄졌음에도 서사가 소절마다 정교하게 담겨 매끄럽게 이어졌다. 만돌린, 바우런 등 켈트족 악기를 활용해 신비롭고 정겨운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구소영 음악감독은 “오래전 영국 어부와 선원들이 뉴펀들랜드에 이주해 오며 켈틱 음악이 유입된 후 전통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서로 다른 존재를 수용하고 함께 살아가는 작품의 주제와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깊은 인상을 남기는 넘버가 없고, 번역을 거치며 가사의 마디당 단어량이 늘어나면서 전달력이 떨어진 점은 아쉽다. “잃은 것을 애도하고 새롭게 찾아낸 것에 감사하자”는 후반부의 대사는 여운을 남긴다. 내년 2월 18일까지. 6만∼15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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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이토록 다채로운 한국 사람들

    지구상 인류를 몇 개의 종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 정답은 1개다. 80억 명이 넘는 전 세계 사람들은 모두 호모 사피엔스 ‘단일종’에 속하기 때문이다. 15만∼20만 년 전 출현한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미그란스(이동하는 인간)’이자 ‘호모 하브리두스(잡종 인간)’임이 고인류학 연구의 정설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끊임없이 다른 지역(in the other zones)으로 이동하며 광범위한 혼혈을 겪은 다양성의 결과가 오늘날 우리라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책은 지난해 말 진행된 콘퍼런스의 강연과 대담을 풀어 엮었다. 염운옥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장대익 가천대 창업대학 석좌교수, 민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김학철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 이수정 경기대 범죄교정심리학과 교수 등 분야별 연구자 6명이 참여했다. 다양성을 사회학, 인구학, 범죄심리학 등 관점에서 풀어내며 단순히 ‘역지사지’의 감성에 호소하지 않는다. 책은 “국내 19세 이하 인구 100명 중 3명은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났고, 전체 국민의 14%에 해당하는 700만 명 이상이 해외 180여 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은 이주 국가”라며 사실과 논리를 근거로 포용, 연대에 대한 동기를 자극한다. 또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8명 이하로 떨어진 상황을 거론하며 “이주민이라 불리는 다양한 사람과 손잡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책 후반부의 팽팽한 대담문에선 인구학적, 사회문화적 다양성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어떤 노력을 기울어야 하는지 제시한다. 다른 문화권에 이질감을 느끼는 기성세대와 달리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와 연결되는 ‘잘파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를 다양성 확대의 주역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플랫폼에 기반해 역사상 전례 없는 ‘문명의 동시대성’을 타고난 세대의 정규 교육 과정에 ‘다양성 교육’을 편성하는 등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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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정-실력 남다른 사람들과 ‘마스터 클래스’… 특별한 경험”

    “동아뮤지컬콩쿠르는 학교라는 우물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예요. 열정과 실력이 남다른 사람들이 ‘마스터 클래스’에 모여 만드는 시너지는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거든요.” 서울 관악구 관악문화재단에서 6일 열린 제7회 동아뮤지컬콩쿠르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한 김다빈 씨(23·서울예대)가 말했다. 이번 마스터 클래스는 4∼6일 진행된 예선 통과자에게 제공된 특전의 일환이다. 참가자들은 수업에서 배운 합창곡으로 11일 열리는 본선 경연에서 축하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김 씨는 “올해로 4번째 동아뮤지컬콩쿠르에 도전한다. 1년간 절치부심한 끝에 올해 마스터 클래스에서 솔로 파트까지 따내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채널A, 공연제작사 신시컴퍼니 등 7개 단체가 후원하는 올해 동아뮤지컬콩쿠르에는 지난해(176명)보다 1.8배로 늘어난 312명이 참가했다. 마스터 클래스엔 예선을 거쳐 선발된 초등부 16명, 중등부 8명, 고등부 8명, 대학·일반부 16명이 참가했다. 본선에서 수상하면 이비인후과 전문의와 발성교정사로부터 성대 관리를 받고 뮤지컬 배우와 만날 수 있는 ‘보아스 뮤지컬 워크숍’ 등의 혜택을 받는다. 이날 먼저 진행된 고등·일반부 수업에선 뮤지컬 ‘렌트’의 간판 넘버인 ‘Seasons of Love’를 배웠다. 수업 초반 어색했던 강약과 완급은 섬세한 교정을 거치며 1시간 만에 완성도를 높였다. 뮤지컬 ‘벤허’, ‘프랑켄슈타인’에서 보컬코치를 맡았던 오도현 씨가 멘토로 나서 “악보를 벗어나 보라. 풍부한 가사 전달력과 나만의 분석을 가져야 관객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한 정이제 씨(25·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는 “단순히 ‘여리게’가 아닌 ‘여리되 긴장감 있게, 신난 기분으로’ 등 구체적으로 잡아주신 덕에 짧은 시간에 많이 배웠다”고 했다. 초등·중등부는 ‘마틸다 더 뮤지컬’의 인기 넘버 ‘어른이 되면’으로 수업을 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를 꿈꾸며 노래하는 합창곡이다. 유주헌 군(12·안양 부림초)은 “2년 전 뮤지컬 ‘비틀쥬스’를 본 뒤 뮤지컬에 반해 독학했다. 평소 화음을 맞출 때 끌려다니곤 했는데 전문 코칭을 받으니 빠르게 개선돼 보람차다”고 말했다. 솔로 파트를 맡은 양규아 양(10·하남 한홀초)은 “4년 전부터 어린이 공연단 활동을 했지만 뮤지컬 합창은 이번이 처음인데 정말 재밌었다. 본선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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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타버스 공간서 예술로 명상… 문화, 기술을 품다[인사이드&인사이트]

    《지난달 25일 도심 속 주말 인파를 뚫고 도착한 서울 종로구 아트코리아랩 전시장. 관람객들로 붐비는 이곳에 마치 고요한 낙원 같은 공간이 있었다. 푹신한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머리에 가상현실(VR) 기기를 쓰니 보랏빛 우주와 거목 한 그루가 눈앞에 펼쳐졌다. 평소 아무리 애써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잡념이 잔잔한 음악과 우주 너머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했다.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한 몰입형 예술명상 플랫폼 ‘고요행성’이다. 무용을 전공한 박수진 스페이스몸 대표와 김서령 프로듀서가 만든 것으로 메타버스 공간에 모여 명상을 즐길 수 있는 콘텐츠다. 7년 전부터 명상 공연과 프로그램을 제작해 온 이들이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 대표는 “오프라인 명상과 달리 시공간 제약이 없어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다. 해외에 선보이기도 수월하다”며 “훈련이 필요한 일반 명상에 비해 초보자들도 손쉽게 몰입 가능한 것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 메타버스 명상부터 ‘관객 마음 읽어낸 커피’까지최근 예술계에 ‘테크’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예술가들이 직접 최신 기술을 배우거나 기술자들과 협업해 기술융합예술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것. 올해 10월 개관한 예술특화 종합지원 플랫폼인 아트코리아랩에선 지난달 23∼25일 전시와 공연, 강연을 결합한 행사 ‘랩들이’가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아트코리아랩이 올해 예술가, 연구소, 대학교, 기업 등을 대상으로 추진한 지원사업에 참여한 총 55개 팀의 작품 38건을 소개하고 실험 과정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공학도가 자신의 역량을 살려 예술 활동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았다. 세 명의 공학도로 이뤄진 미디어아트랩 ‘얼스’는 관람객의 감정을 데이터로 분석해 이를 맛으로 표현해내는 ‘탠저블 이모션 리플렉션’을 개발했다. 손바닥 땀 분비량으로 감정을 측정하고, 2차원 좌표평면으로 표시한 뒤 단맛, 쓴맛, 신맛 등 원두를 배합해 관람객에게 맞춤형 커피를 제조해 준다. 이승정 얼스 대표는 “HCI(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관계)를 연구하던 중 ‘우리는 얼마나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며 살까’를 고민하다 작업이 시작됐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해 내는 과정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봤다”고 했다.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선 이달 13일까지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가 열린다. VR 기술을 활용한 몰입형 콘텐츠와 인공지능(AI)을 오디오에 접목한 청각예술, 관객과 상호작용 하는 인터랙티브 아트 등 국내외 작품 23점이 전시된다. 서울문화재단의 이정훈 융합예술팀장은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예술을 창작, 유통, 소비하는 젊은 예술가와 대중이 늘면서 기술은 자연스럽게 물감이자 악기가 됐다”며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기존 전시 위주였던 행사를 지난해부터 축제 형태로 확대했다”고 말했다. ● 접근성 높이며 작품에 생명력 불어넣는 ‘기술’창작자들은 기술을 통해 관람객 접점을 늘리는 보람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각각 조소와 클래식음악 작곡을 전공한 권정원, 소수정 작가는 더 다양한 관람객을 만나고자 기술융합예술에 도전했다. 올해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역사 내에 전시된 작품 ‘닿을 때 만나는 것들’은 시민들이 서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센서로 인식해 무작위적 이미지와 소리로 변환하고, 이를 벽면에 투사한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다. 권 작가는 “작품이 생명력을 가지려면 관람객이 찾고,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술 기반 작품은 언제 어디서든 전시하기 좋고, 한 번에 여러 감각을 활용할 수 있어 장애인, 어린이 등의 참여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기술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가능성도 제시한다. 그림책 등 기존 평면 일러스트 작업을 하던 이은정 작가(문요)는 올해 처음 VR 드로잉 툴을 익혀 메타버스 그림책 콘텐츠를 제작했다.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토대로 만든 알록달록한 가상 도시를 이용자가 탐험하는 콘텐츠다. 이 작가는 “VR 드로잉 툴로 3차원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평면의 한계를 벗어난, 그림의 새로운 가능성을 체감했다”며 “향후 상호작용이 가능한 어린이용 VR 교구 등도 개발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수령 아트코리아랩 본부장은 “새로운 시도에 목말라 있는 젊은 창작자들 중심으로 기술융합예술 교육, 네트워킹 등에 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했다. 기술은 ‘배고픈 예술가’가 소득을 올릴 발판이 돼 주기도 한다. 기술을 접목한 예술품은 상품화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자성유체(자석의 성질을 가진 액체)를 활용한 음향시각화 장치(FAV)가 대표적 사례다. 상품화를 의도하진 않았으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베놈 스피커’란 별칭으로 유명세를 타며 미국 인디고 크라우드펀딩에서 1억 원 넘는 모금을 이뤘다. 이를 개발한 정승훈 번슬랩 대표는 “과거 일러스트 프리랜서로 활동할 때와 비교해 수입이 안정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디스트릭트(d’strict)의 실감 미디어아트 전시관 ‘아르떼뮤지엄’이 있다. 프로젝션 매핑(영상을 투사해 대상물의 외형을 변화시키는 기술), 3D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 등을 활용해 8m 높이 미디어 폭포, 거대한 밤바다 등을 전시한다. 2020년 제주에 처음 설립된 이후 SNS 인증샷 명소로 입소문을 타며 강원 강릉, 전남 여수, 부산(예정)으로 확대됐다. 웹디자이너 3명이 외주용역으로 시작한 회사가 600만 명의 관람객(누적 관람객 수)을 끌어모은 ‘미디어아트’ 기업으로 거듭났다. ● 기술융합예술, ‘기계’인가 ‘작품’인가그런데 기술의 비중이 높고 외관과 특성이 ‘기계’에 가까워도 ‘예술품’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광석 서울과기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작곡이나 건축 등은 인간의 기술을 활용해 구현한 예술이다. 인간의 기술이 그 자체로서 오래전부터 예술로 대접받았던 것”이라며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철학가들은 기술과 예술을 한 몸으로 여긴 ‘테크네’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기술을 창작의 재료나 매체로 쓰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과 기계가 구축할 미래를 보여준다면 예술로서 기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술융합예술은 예술 생태계를 다양화하고 첨단기술 시대에 대한 비판점을 제시한다는 의의도 있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과거 사진, 비디오, 인터넷 등이 등장했을 때처럼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열어줌으로써 예술 생태계를 풍요롭게 한다”며 “이미 일상 깊숙이 침투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는 기술의 잠재적 위험과 비예측성 등을 보여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융합예술이 화두가 되며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책도 최근 빠르게 확대됐다. 창작 지원은 물론 예술가와 기술자 간 교류, 작품 유통과 판매, 경영 자문까지 돕는 것. 그러나 지원이 최신 유행 기술에 집중되고 장기적 방향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창작자는 “특정 기술이 유행하면 지자체 예산이 그 기술로만 쏠린다. 한때 실감 미디어아트가 그랬고, 메타버스로 옮겨갔다가 이젠 AI에 집중되고 있다. 창작자는 불안하고 대중은 금방 피로를 느낀다”고 했다. 기술융합예술이 비교적 일찍 확산한 해외에선 기술 혁신과 예술 진흥, 사회문제 해결을 아우르는 관점에서 정책이 설계된다. 유럽연합(EU)이 2021년부터 2027년까지 955억 유로(약 135조 원)를 투입해 기술혁신과 사회문제 해결을 결부하는 지원책인 ‘호라이즌 유럽’의 과학, 기술, 예술 융합 플랫폼 ‘S+T+ARTS’가 대표적이다. 이광석 교수는 “기후 위기 등의 문제를 과학자와 예술가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S+T+ARTS 등은 ‘사회문화적 디지털 전환’이란 뚜렷한 방향성을 갖지만 국내 지원책은 K컬처, 신성장산업 등의 영향을 받아 단기적, 양적 지표에 휘둘리는 경향이 크다”며 “단순 외형 성장이 아닌, ‘기술 동반 사회’라는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윤 문화부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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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 계획 밝힌 자승스님이 왜” 불교계 충격… 조계종 “소신공양”

    대한불교조계종이 지난달 29일 경기 안성 칠장사에서 발생한 화재로 입적한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자기 몸을 태워 부처님 앞에 바치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했다고 밝혔다. 자승 스님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자승 스님의 장례는 5일간 종단장으로 치르며 영결식은 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겸 대변인인 우봉 스님은 30일 서울 종로구 조계종 총무원에서 브리핑을 열고 “자승 대종사는 종단의 안정과 전법도생(傳法度生·부처님 말씀을 전해 중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을 발원하며 소신공양, 자화장(自火葬·스스로 화장)을 하심으로써 모든 종도들에게 경각심을 남기셨다”고 밝혔다. 또 “자승 대종사는 살아생전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라는 열반송을 남기셨다”고 말했다. 우봉 스님은 “종단은 진우 총무원장을 장의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종단 규정에 따라 (입적일을 기점으로) 5일간 종단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분향소는 이날 오후부터 조계사 및 전국 교구본사, 자승 스님이 회주로 있던 서울 강남구 봉은사, 자승 스님의 출가 본사인 경기 화성 용주사 등에 마련됐다. 3일 오전 10시 조계사에서 영결식을 한 뒤 용주사로 이동해 다비장을 치른다. 자승 스님이 세수 69세, 법랍 51세로 입적한 이튿날인 이날 조계종은 안팎으로 충격에 휩싸였다. 우봉 스님은 브리핑을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스님들과 직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탄식했다. 한 조계종 관계자는 “늘 수행하던 사람을 돌려보내고 자승 스님이 직접 운전해 (칠장사에) 갔다고 하니 스스로 선택한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바로 이틀 전까지 향후 활동에 왕성한 의욕을 보인 분이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승 스님은 입적하기 이틀 전인 27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열린 불교계 언론사 간담회에서 “앞으로 10년간은 대학생 전법에 모든 열정을 쏟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향후 행보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이어 일각에서 거세게 반발하는 동국대와 중앙승가대의 통합도 강조했다. 당시 자승 스님은 “앞으로 2, 3년 내에 중앙승가대에 신입생이 없을 것이고, 그렇게 폐교가 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동국대와 중앙승가대가 한 몸이 돼 중앙승가대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자승 스님은 앞서 10월 31일 열린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간담회에서도 “달라이 라마를 초청해 20만 청년불자가 동참하는 대법회를 서울에서 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 조계종 관계자는 “올해 3월 말 43일간 1167km를 걷는 상원결사 인도·네팔 순례 대장정을 마치고 귀국해 열린 회향식에서 자승 스님이 환하게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고인은 ‘전법 없는 불교는 죽어가는 불교’라며 인사도 ‘성불하십시오’ 대신 ‘부처님 법을 전합시다’로 바꾸자고 했던 분”이라고 추모했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자승 스님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입적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자승 스님이 2009년부터 8년간 제33, 34대 총무원장을 연임했고 현재까지 조계종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활발하게 활동한 점을 고려할 때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오랜 기간 조계종 중심에 서 온 스님이 여러 비판을 받으며 부담을 느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승 스님과 교류했던 한 스님은 “최근 자승 스님이 심적으로 괴로워하고 때로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편 30일 오후 조계사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등이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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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문화교류 시리즈 ‘동행’ 내달 2일 하늘극장서 열려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다음 달 2일 오후 5시 한국과 일본 뮤지션이 출연하는 공연 ‘동행’이 열린다. 올해 11회를 맞은 한일문화교류 시리즈 ‘동행’은 한일문화교류회의(위원장 정구종)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후원한다. 정훈희가 ‘안개’ ‘꽃밭에서’를 부른다. 정 씨는 1970년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에서 ‘월드베스트10 가수상’을 받았다. 드라마 ‘가을동화’ OST를 부른 가수 정일영, 그룹 2StepS가 출연한다. 일본 측에선 기타리스트 하타 슈지, 싱어송라이터 하쓰시바 다카시가 무대에 선다. 무료.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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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RM-뷔-지민-정국 내달 육군 현역입대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RM(29)과 뷔(28), 지민(28), 정국(26)이 다음 달 육군 현역으로 입대한다. 이로써 BTS 멤버 7명 모두가 병역 의무를 이행하게 된다. 29일 가요계에 따르면 다음 달 11일 RM과 뷔가, 12일 지민과 정국이 각각 입대한다. 전역 예정일은 2025년 6월이다. BTS는 지난해 12월 맏형 진이 멤버 중 처음 입대한 후 차례로 병역 절차를 밟고 있다. 올해 4월 제이홉이 입대해 신병교육대 조교로 복무 중이고, 슈가는 9월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BTS는 멤버 전원이 군 복무를 마친 뒤 2025년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한편 일본 도쿄돔에서 28일 열린 음악시상식 ‘2023 MAMA 어워즈’에서 BTS는 6년 연속 대상을 받았다. 정국은 영상을 통해 “오늘 다 같이 만나진 못해 아쉽지만 곧 더 큰 하나가 돼 만날 것”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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