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이지윤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27

추천

여러분이 장바구니에 담은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leemail@donga.com

취재분야

2024-04-08~2024-05-08
연극47%
문화 일반17%
무용13%
문학/출판10%
인사일반7%
사회일반3%
기타3%
  • [책의 향기]모어 없는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처음 만난 외국인이 이름을 물었다고 가정해 보자. 기자의 한글 이름 그대로(Jiyoon)와 영어식으로 변환한 이름(Jean), 어릴 적 방과후 교실에서 지은 영어 이름(Hillary) 중 무엇을 말해야 할까. 이는 나를 ‘독해’할 상대방을 고려해 정체성을 택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나를 설명할 적확한 번역이 무엇인지, 얼마나 의역해야 할지 타협하는 과정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책은 ‘축복받은 집’으로 2000년 퓰리처상을 받은 저자가 작가이기 이전에 평생을 번역가로서 살며 끊임없이 ‘타협’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이다. 영국 런던의, 벵골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다시 미국으로 이주한 저자는 “진정한 모어(母語)를 갖지 못한 언어 고아”로 자랐다. 소설을 쓸 때면 머릿속에서 벵골어로 대화하는 인물들을 영어로 옮기는 고충을 겪었다. 저자는 “영어와 벵골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생활환경에서 자랐다는 건 나 자신과 타인에게 두 언어를 끊임없이 번역해 왔다는 의미”라고 했다. 유리된 두 세계를 연결하기 위해 저자는 이탈리아어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접목한다. 이탈리아어로만 글을 쓰기로 결심한 2015년부터 번역에 관해 사유하고 써내려간 에세이 10편이 실렸다. 저자는 “자유로움을 느끼기 위해 선택한 이탈리아어는 내게 제2의 삶을 안겨줬다”고 말한다. 저자는 번역이 얼마나 정교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항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중언어를 품고 자란 그의 삶에 번역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곱씹는 재미가 있다. 그가 자기 정체성이 유효함을 스스로 확인하는 과정에선 은근한 경이마저 느낄 수 있다. “이민 가정의 자식으로서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아슬아슬한 지리적, 문화적 접목”이라며 트라우마를 겪던 저자는 이탈리아어로 쓴 본인의 저서 ‘내가 있는 곳’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작품과 자의식의 약점을 발견하고 변화를 이뤄낸다. 그는 “글쓰기와 번역하기는 더 멀리, 더 깊이 헤엄쳐 가게 해주는 상호 보완적인 두 가지 영법”이라며 “나는 번역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1-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2000여명 오디션 뚫고 수녀들이 돌아왔다”

    “지붕이 들썩여야 돼. 그냥 우렁차게 내질러.” 단조로운 수녀원 안, 주인공 들로리스가 성가대를 독려하자 까만 수도복을 입은 수녀 10여 명이 엉덩이를 씰룩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루브 넘치는 넘버 ‘Raise Your Voice’를 부르며 빈틈없는 화음으로 극장을 메웠다. 들로리스 역을 맡은 니콜 버네사 오티즈와 견습 수녀 메리 로버트 역의 김소향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성가대를 이끌었다.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21일 개막한 뮤지컬 ‘시스터 액트’의 한 장면이다. 이 뮤지컬은 1992년 제작돼 인기를 끈 동명 영화에 기반했다. 무명 가수인 들로리스가 마피아 우두머리인 애인의 추격을 피해 수녀원에 몸을 숨기고, 성가대 지휘를 맡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각각 2009년, 2011년 초연됐다. 국내 공연은 2017년 아시아 투어로 첫선을 보인 후 6년 만이다. 디스코, 가스펠, 블루스 등 장르를 넘나드는 흥겨운 넘버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알라딘’에서 작곡을 맡았고, 아카데미상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8차례 수상한 앨런 멩컨이 맡았다.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2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비에이 허프먼 음악감독은 “원곡을 최대한 유지하되 이번 공연의 배우 구성과 연출, 안무에 맞게 곡의 길이와 음정, 화음을 조금씩 손봤다”고 했다. 배역은 뉴욕과 서울에서 동시에 열린 오디션에 참가한 국내외 지원자 약 2000명 가운데서 선발됐다. 들로리스 역에 발탁된 오티즈는 미국 경연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의 결승 진출자다. 로버트 조핸슨 연출가는 “역대 ‘시스터 액트’ 중 배우들의 인종이 가장 다양해 더욱 뜻깊다”며 “백인, 아프리카계, 라틴계 등과 한국인 7명이 호흡을 맞춘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뮤지컬 ‘웃는 남자’ ‘엘리자벳’ 등을 만든 EMK가 영어공연권을 확보해 제작했다. 내년 2월까지 서울, 부산 등 국내 15개 도시를 순회한 뒤 아시아에서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조핸슨 연출가는 “어느 나라에서든 즐길 수 있도록 수녀들의 몸짓 등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는 시각적 유머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내년 2월 11일까지, 8만∼17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1-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드라큘라-콰지모도… 연말연시에 돌아온 불멸의 캐릭터들

    드라큘라 백작, 맥베스, 영국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숱하게 각색된 ‘불멸의 캐릭터’들이 연말연시를 맞아 뮤지컬, 연극 무대로 줄줄이 찾아온다.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선 다음 달 6일부터 19세기 동명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 ‘드라큘라’가 공연된다. 호러 장르인 원작과 달리 뮤지컬은 400여 년간 한 여인만을 바라본 드라큘라의 사랑을 조명한다. 데이비드 스완 연출가는 “드라큘라는 ‘무찔러야 할 악인’이 아니라 사랑과 상처에 아파하는 다층적 인물”이라고 했다. 이번 공연에선 드라큘라가 부르는 ‘She’ 등 브로드웨이 버전엔 없는 넘버를 들을 수 있다. 김준수, 신성록, 전동석이 드라큘라 역을 맡았다. 정선아와 아이비, 임혜영이 드라큘라가 사랑하는 여인 미나를 연기한다. 내년 3월 3일까지, 8만∼17만 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도 뮤지컬로 무대에 오른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다음 달 2일부터 공연되는 서울시뮤지컬단의 ‘맥베스’는 팝과 왈츠, 주술 음악 등을 아우르는 노래들로 구성됐다. 극본을 맡은 김은성 작가는 “원작이 권력의 구조적 폭력을 꼬집는 것과 달리 맥베스 개인의 욕망과 고뇌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다음 달 30일까지, 3만∼7만 원.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출연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2015년)으로 잘 알려진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 앨런 튜링은 연극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국내 초연되고 있는 연극 ‘튜링머신’은 프랑스 극작가 겸 배우 브누아 솔레스가 쓴 극본을 토대로 했다. 신유청 연출가는 “일평생 고독했지만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할 줄 알던 튜링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다. 배우 고상호가 튜링 역을 맡았고, 이승주가 미카엘 로스 등 4개 배역을 동시에 연기한다. 25일까지, 전석 7만7000원.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내년 1월 2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한다. 1998년 프랑스 초연 후 전 세계 23개국에서 15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작품으로, 한국어 공연은 6년 만이다. 대성당의 종지기인 꼽추 콰지모도 역은 정성화, 양준모, 윤형렬이 맡았다. 대표 넘버 ‘대성당의 시대’를 부르는 해설자 그랭구와르는 마이클 리, 이지훈, 노윤이 연기한다. 내년 3월 24일까지. 7만∼17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1-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남사당패 첫 女우두머리… ‘암덕’의 삶 현대적 재해석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남사당놀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암덕: 류(流)의 기원’이 22∼26일 공연된다. 조선시대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15세에 남(男)사당패 사상 처음 여성으로 우두머리가 된 바우덕이(김암덕)의 삶을 다룬 이번 공연에선 전통연희 소품도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소품으로 공연을 들여다봤다.● 덧뵈기(탈놀이) 탈얹은머리로 담담한 표정을 짓는 각시탈, 술에 취해 붉은 얼굴을 한 취발이탈 등 ‘암덕’에선 5가지 종류의 탈 20개가 사용된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바우덕이는 이 탈들을 좇아 남사당패에 들어가기로 마음먹는다. 이현 안무가는 “다양한 탈에 우리 삶이 반영돼 있다”며 “바우덕이는 탈을 보며 어른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외로움을 잊기도 한다”고 했다.● 사자탈매서운 겨울이 찾아오자 바우덕이와 사당패는 역경을 마주한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이들 앞에 나타난 것은 푸른 몸통에 흰 털이 수놓인 사자 한 마리. 위풍당당하게 걷는 무대 위 사자는 사자춤 전문 무용수 2명이 연기한다. 정성숙 국립정동극장 대표는 “사자는 예부터 악귀를 물리치는 수호신 같은 존재”라며 “남사당놀이에서 사자춤(사진)이 흔하진 않지만 극적인 전개를 위해 활용했다”고 말했다.● 버나 대접공연 3막, 바우덕이가 외줄을 타는 동안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풍물패와 버나는 ‘암덕’의 하이라이트다. 버나는 대접을 긴 막대로 돌리거나 서로 던지고 받는 남사당놀이의 재주 중 하나다. 사기 접시 등을 쓰기도 하는데 이번 공연에선 가죽으로 만든 넓적한 원판과 최장 130cm 길이의 막대를 사용한다. 정 대표는 “서양의 서커스와 비슷하지만 우리 연희는 관객과 재담을 주고받으며 아픔을 보듬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부포부포는 새의 깃털로 풍성한 모란꽃 모양을 만든 모자다. 꽹과리를 치며 풍물패를 이끄는 상쇠가 쓴다. 머리를 뱅뱅 돌리며 꽃을 오므렸다 펴고, 돌연 곧추세우기도 한다. 이 안무가는 “조선시대엔 꿩, 닭의 털을 주로 사용했지만 최근엔 더 부드럽고 풍성한 타조 등의 털을 사용한다”며 “부포는 가진 것을 모두 동원해 서민 관객에게 풍요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려 했던 과거 풍물패의 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전석 4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1-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하이힐 높여 신은 조권, 뮤지컬 ‘렌트’ 엔젤역 데뷔

    집세(rent)조차 내기 힘든 예술가들의 꿈과 사랑을 그린 브로드웨이 뮤지컬 ‘렌트’가 11일부터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아티움에서 공연되고 있다. 여덟 명의 등장 인물이 다채로운 넘버로 펼쳐나가는 렌트를 숫자로 살펴봤다.● 1990렌트는 1990년대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모여 사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극본과 작사·작곡을 맡은 조너선 라슨이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에서 영감을 받아 자전적 이야기로 각색했다. ‘라보엠’ 속 1800년대 파리는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낡은 재개발 지역으로, 파리에서 유행했던 결핵은 에이즈로 각색해 동성애 등 당대 터부시되던 소재를 다뤘다. 작품 속 에이즈에 걸린 주인공들은 모두 라슨의 실제 친구를 모델로 했다.● 111996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렌트는 브로드웨이 사상 11번째로 장기 공연된 뮤지컬이다. 2008년까지 총 5123번 막이 올랐다. 초연했던 해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뮤지컬로 퓰리처상(드라마 부문)을 받은 몇 안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의 이재은 연출가는 “rent에는 ‘빌리다’ 외에 ‘찢기다’란 의미도 있다. 삶의 찢겨나간 부분을 위로하고, 죽을 때까지 고민하는 사랑의 본질을 노래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42모든 대사가 노래로 이뤄진 ‘송스루 뮤지컬’인 렌트에선 42개의 곡이 쉼 없이 이어진다. 5인조 록밴드가 록은 물론 R&B, 탱고, 가스펠 등 장르를 넘나드는 넘버를 140분간 라이브로 연주한다. 콜린은 엔젤이 떠나간 후 R&B가 가미된 ‘I’ll Cover You-reprise’로 상실감을 노래하고, 마크와 조앤은 탱고풍 ‘Tango: Maureen’에 맞춰 붉은 조명 아래서 춤을 춘다.● 52만5600모든 배우들이 출동해 화음을 맞추는 ‘Seasons of Love’는 렌트를 대표하는 간판 넘버다. 가사는 도입부부터 숫자 52만5600이 반복해 등장한다. 이 숫자는 1년 365일을 분 단위로 환산하면 52만5600분이 되는 데서 나왔다. 우리에게 주어진 매순간을 사랑으로 살아가자는 메시지가 담겼다. 코엑스에서 15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엔젤 역을 맡은 배우 김호영은 “듣는 사람이 저마다 추억을 소환하며 웃고 울 수 있는 곡”이라고 했다.● 134국내에서 2000년 초연된 렌트는 조승우, 최재림 등 134명의 배우가 거쳐갔다. 2002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배우 정선아가 미미 역으로, 대학생이던 김호영이 엔젤 역으로 데뷔하는 등 실력파 뮤지컬 배우들이 배출됐다. 이번엔 8개 배역에 24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마크와 로저 역은 각각 정원영과 배두훈, 장지후와 백형훈이 맡았고, 미미 역은 김환희 이지연이 연기한다. 가수 조권이 ‘최장수 엔젤’ 김호영과 번갈아가며 엔젤을 연기한다. 조권은 “기존 엔젤 역 배우들이 신던 하이힐보다 굽을 더 높였다. 조권의 ‘페르소나’인 하이힐을 신고 최고의 엔젤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내년 2월 25일까지. 7만∼14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1-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국악의 미래 이끌 26명의 꿈나무들

    “작년 예선에서 떨어진 뒤에 굳은살 안의 피물집이 터질 정도로 연습했어요. 그 결과를 보상받은 듯해 더욱 뜻깊습니다. 동아국악콩쿠르에서도 꼭 금상을 타고 싶어요.” 서울 서초구 정효아트홀에서 15일 열린 제2회 동아주니어국악콩쿠르 본선에서 최옥삼류 가야금산조를 연주해 금상을 수상한 김태은 양(14·국립국악중 2년)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동아일보사와 정효문화재단(대표 주재근)이 주최하고 국악방송(사장 백현주)과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김삼진)이 후원한 이번 콩쿠르는 초·중등부 현악, 관악, 성악, 무용 등 4개 부문에서 11일 예선을 거쳐 36명이 본선에 올랐다. 이날 본선에선 금상 9명 등 26명이 수상했다. 주요 입상자에게는 독주회와 국악방송 출연, 심사위원 멘토링 등 특전이 주어진다. 다음 달 콩쿠르 홈페이지(www.donga.com/concours/juniorgugak)에서 심사 결과와 심사평, 본선 연주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수상자 명단(장려상 명단은 홈페이지 참조). ◇현악 ▽중등부 △금상 김태은(14·국립국악중 2년) 김태완(15·국립전통예중 3년) △동상 이소윤(14·국립국악중 2년) ▽초등부 △금상 임규도(10·미르초 5년) △은상 이연두(11·삼미초 5년) △동상 한예준(12·함박초 6년) ◇관악 ▽중등부 △금상 김시우(14·국립전통예중 2년) △은상 강효민(15·국립전통예중 3년) △동상 김시온(14·국립전통예중 2년) ▽초등부 △금상 홍리안(12·여수한려초 6년) △은상 김소연(12·김포금빛초 6년) ◇성악 ▽중등부 △금상 전호민(15·국립국악중 3년) △은상 남하율(13·국립국악중 2년) △동상 차다연(14·국립전통예중 2년) ▽초등부 △금상 김서우(11·용인 성지초 5년) △은상 손연재(11·건원초 5년) △동상 조하윤(11·청주 중앙초 5년) ◇무용 ▽중등부 △금상 장희윤(15·오금중 3년) △은상 박솔지(13·철원여중 1년) △동상 최혜지(14·미금중 2년) ▽초등부 △금상 전인호(11·대구고산초 5년) △은상 정채빈(12·신철원초 6년) △동상 김혜린(9·해강초 3년)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1-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온몸으로 뿜어낸 전장 속 충무공의 고뇌

    휘몰아치는 파도를 배경으로 독전고(전투를 독려하는 북)가 울려 퍼졌다. 소리꾼 이자람이 “임금이 백성을 버렸다”며 임진왜란에 비통해하는 소리는 구절마다 폐부를 관통했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의 삶이 판소리와 뮤지컬, 무용이 합쳐진 창작가무극으로 탄생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7일 초연된 서울예술단의 신작 ‘순신’이다. ‘순신’은 전쟁 영웅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이순신의 고뇌에 주목했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꿈 이야기를 소재로 1592년부터 6년에 걸친 이순신의 삶을 따라간다. 판소리로 박진감 있게 풀어낸 한산, 명량, 노량 등 3대 해전 장면은 ‘순신’의 백미다. 해설자 ‘무인’ 역을 맡은 이자람이 직접 작창을 맡았다. ‘우르르르’ 등 판소리 특유의 의성어, 의태어와 물살 타듯 빨라지는 소리는 전쟁의 긴박함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순신 역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서울예술단 형남희 단원(무용)이 맡아 대사 대신 몸으로 고뇌를 표현했다. 다만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안무가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는 점은 아쉽다. 이순신의 막내아들(권성찬)과 가상 인물 하연(송문선)의 사랑 이야기는 뮤지컬 형태로 곳곳에 삽입됐으나 극 흐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 듯했다. 무대 위엔 거북선도, 대포도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영상물이 투사된 20m 길이의 터널 구조물이 이순신의 속마음과 전쟁 상황을 추상적으로 보여준다. 터널은 붉은 화염이 치솟았다가 시퍼런 파도가 넘실대는 해협이 되며 웅장함을 강조했다. 26일까지, 6만∼9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1-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징어 게임’ ‘기생충’ 음악감독이 들려주는 선율

    “제게 어마어마한 극장이 주어져 설레면서도 굉장히 긴장됩니다.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반나절은 연습에 매진하고, 오후엔 이 무대를 어떻게 더 빛낼지 고민하고 있어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다음 달 15, 16일 단독 콘서트 ‘리슨(Listen)’을 여는 연주자 겸 작곡가 정재일 씨(41)가 말했다. 그는 2021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주제가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단독 콘서트를 여는 건 3년 만이다. 그는 세종문화회관에서 1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시간에 달하는 공연인 만큼 지루하지 않도록 다채롭게 구성하려 노력 중이다”라고 했다. 이번 공연에선 그를 스타덤에 올려준 영화들의 OST와 올해 발매된 개인 앨범 ‘Listen’ 수록곡 등을 연주한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영화 ‘기생충’, ‘브로커’ 등 3개 작품 속 음악을 메들리 형식으로 편곡해 들려주고, “꼬마 시절부터 사랑에 빠져 있는” 국악기와도 호흡을 맞춘다. 20여 년을 협업한 이아람 대금 연주자와 소리꾼 김율희, 사물놀이패 느닷이 협연자로 무대에 올라 3일 발매된 정 씨의 앨범 ‘A Prayer’의 수록곡을 선보인다. 정 씨는 “전통악기와 협업할 땐 연주가 더 자유롭고, 다이내믹해지는 것이 매력”이라고 했다. 정 씨는 1999년 밴드 ‘긱스’에서 베이시스트로 데뷔한 후 2019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음악감독으로 활약하며 스크린과 무대를 오갔다. 지난달에는 영국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국악, 피아노, 오케스트라를 결합한 음악을 협연해 현지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는 “런던 심포니 단원들 역시 국악 연주자들의 연습을 본 뒤 전부 기립박수를 보냈다”며 “우리 전통음악 깊은 곳엔 아주 넓은 세계가 있다”고 말했다. 8만∼15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1-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학전과 작별 아쉬운 중년관객들, 다시 ‘1호선’으로

    “학전은 제가 배우로서 첫발을 디딜 수 있게 해준, 큰 의미가 있는 곳이에요. 갑작스러운 폐관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학전 소극장에서 연기 생활을 시작한 배우 황정민이 학전 폐관에 대해 12일 심정을 밝혔다. 그는 배우 설경구, 김윤석, 장현성, 조승우와 함께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린다. 학전이 개관한 지 정확히 33주년인 내년 3월 15일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다. 경영난이 가중된 데다 김민기 학전 대표가 위암 판정을 받으면서 내린 결정이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10일 열린 대표작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첫날 공연엔 중년 관객들이 몰렸다. 허현희 씨(49)는 “사회 초년생 시절 본 공연을 잊지 못한다. 속상한 마음에 부랴부랴 표를 구했다. 대학로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20대 딸과 함께 온 김은성 씨(51)는 “제가 딸 나이 때 봤던 공연을 엄마가 돼 같이 보러 왔다. 마지막이 될 줄 모르고 예매했는데 섭섭하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장을 지킨 김 대표는 “그저 모두가 건강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했다. 12일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하철 1호선’의 40대 이상 예매자 비율은 전체의 70.1%에 달했다. 김성민 학전 총무팀장은 “격려를 위해 온라인이 아니라 전화나 직접 방문해 예매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렇게 큰 관심을 보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첫 공연 전날인 9일 열린 최종 리허설에는 학전 출신 배우들이 여럿 방문했다. 다만 이름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다음 달 31일까지 공연되는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초연된 학전의 간판 공연이다. 독일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의 ‘1호선’을 1990년대 말 한국 상황에 맞춰 각색했다. 영화 ‘기생충’ OST 등을 작곡한 정재일 음악감독이 편곡했다. 2008년까지 4000회 공연되며 70만 명 이상 관람했다. 거쳐간 배우만 170명이 넘는다. 1991년 문을 연 학전은 동물원, 들국화, 안치환 등이 콘서트를 열었고 고 김광석은 데뷔 10주년 기념공연을 했다. 뮤지컬 ‘의형제’로 1999년 제35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어린이극 제작에도 매진했다. 단둘이 집을 지키게 된 형제의 좌충우돌을 그린 ‘고추장 떡볶이’는 폐관 전 예정된 마지막 공연이다. 30년 넘게 공연계에서 일한 한 기획자는 “학전은 독보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며 소극장 시대를 이끌었다. 가난한 창작자들을 위해 편집 설비를 내어주던 보금자리이기도 했다”며 “급등한 유지비, 임대료로 학전마저 버티기 어려운 것이 소극장의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학전 폐관 소식이 알려지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소극장 활성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재개관 지원을 비롯해 학전 보전 방안을 논의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과거 삼일로 창고극장, 세실극장처럼 단순 재개관을 돕는 건 단기적 해법에 그친다”며 “학전을 전문극장으로 만드는 등 공간의 역사성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1-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조성진, 베를린 필 상주 음악가로… 아시아인 두번째

    피아니스트 조성진(29·사진)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주 음악가가 됐다. 아시아인이 베를린 필의 상주 음악가가 된 건 일본 피아니스트 우치다 미쓰코(75)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안드레아 치치만 베를린 필 대표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1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성진이 내년부터 베를린 필의 상주 음악가로 활동하며 협주곡, 실내악곡을 함께 연주하게 된다”고 밝혔다. 치치만 대표는 “조성진은 매우 직관적인 음악가”라며 “그의 다양한 면모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성진은 “베를린 필은 세계에서 가장 잘하고, 특별한 오케스트라”라며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하는 건 많은 연주자의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를린 필과의 협연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베를린에 살고, 음악가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서 할 때마다 더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조성진은 2017년 열린 베를린 필 내한공연에서 협연자로 처음 호흡을 맞췄다. 6년 만에 내한한 베를린 필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12일 조성진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한 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를 연주한다. 공연 첫날인 11일에는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비롯한 3개 작품을 선보인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1-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연기경력 227년’ 신구 박근형 박정자 김학철… “고도를 기다리는 주인공들이 지금 우리 모습”

    “50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게 ‘고도(Godot)’고, 자유고, 신이에요. 하지만 인간은 ‘오늘은 못 와도 내일은 올 것’이란 희망이 없이는 살지 못해요. 고도를 기다리는 주인공들에게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음 달 1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에스트라공 역을 맡은 배우 신구 씨(87)는 9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극은 아일랜드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사뮈엘 베케트가 쓴 부조리극으로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고도라는 인물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이야기다. 극단 산울림이 1969년부터 2019년까지 공연하는 동안 전무송, 정동환 등 저명 배우들이 거쳐갔다. 공연 제작사 파크컴퍼니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블라디미르 역은 배우 박근형 씨(83)가, 포조 역은 김학철 씨(63)가, 포조의 노예 럭키 역은 박정자 씨(81)가 맡았는데 신 씨를 포함해 네 배우 모두 이 연극에 출연하는 건 처음이다. 네 배우의 연기 경력을 합치면 227년이다. 신 씨는 “오랫동안 꿈꿨던 작품”이라며 “나이가 들었고 병력도 있지만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할 거란 생각이 들어 내 진을 모두 빼기로 했다”고 했다. 박근형 씨는 “40여 년 전 연극학부 시절부터 동경해 온 작품이다. 그간 보여준 연기와는 다른, 아주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국내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사상 여성 배우가 럭키 역을 연기하는 것 역시 최초다. 박정자 씨는 이번 공연이 준비된다는 소식을 듣고 자진해 손을 들었다. 그는 “국내 초연 때부터 꾸준히 챙겨보면서 경이감을 느낀 작품”이라며 “인간의 보편성을 이야기하는 데 성별은 중요치 않다. 럭키를 연기해야겠다는 동물적 육감이 들었다”고 했다. 1978년 데뷔한 김학철 씨가 이번 무대에선 막내다. 그는 “캐스팅 조합을 듣고 ‘내가 여기 껴도 되나’ 싶어 도망가고도 싶었다. 박정자 선배의 목에 밧줄을 거는 장면은 너무나 송구해 연습 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네 배우 모두 동아연극상 수상자다. 공연은 단일 캐스트로 진행된다. 내년 2월 18일까지, 5만5000∼7만7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1-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대학로 소극장 학전… 내년 3월 문닫는다

    서울 대학로의 대표적 소극장인 학전(學田)이 경영상 어려움으로 내년 3월 15일 문을 닫는다. 1991년 같은 날 문을 연 지 꼭 33년 만이다. 김성민 학전 팀장은 9일 “경영난이 이어진 데다 최근 김민기 학전 대표가 위암 판정까지 받아 결국 폐관을 결정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학전은 대학로 공연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아침이슬’ ‘상록수’ 등을 작곡한 김 대표가 독일 그립스극장의 원작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손봐 1994년 초연한 ‘지하철 1호선’은 뮤지컬 역사에 획을 그었다고 평가된다. 1990년대 말 한국의 다양한 서민 군상을 담은 이 작품은 2008년까지 약 4000회 공연을 하면서 70여만 명이 관람했다. 스타 배우와 가수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초창기 동물원, 들국화, 안치환 등이 학전에서 콘서트를 열었고 고 김광석은 데뷔 10주년 기념공연을 했다.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가 학전 출신으로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린다. 29년 전 뮤지컬 무대에 섰던 나윤선은 오늘날 세계적인 재즈 가수가 됐다. 그러나 다른 대학로 소극장과 마찬가지로 관객 감소와 팬데믹 직격탄을 겪으며 어려움을 겪어왔다. 폐관 전까지는 대표작들이 공연된다. 10일부터 다음 달 31일까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공연된다. 내년 1월에는 ‘제2회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가 열린다. 2012년 김광석 추모사업회의 주관으로 시작한 ‘김광석 노래 부르기’가 확장된 대회다. 어린이 뮤지컬 ‘고추장 떡볶이’도 3월 초까지 공연이 예정돼 있다. 학전 측은 “그동안 극장에서 콘서트를 열었던 아티스트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공연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1-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선균-유아인 영화 제작비만 940억 날려… K컬처 ‘마약 리스크’

    연예계 마약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이선균, 유아인 등 배우와 가수, 작곡가까지 마약류 투약 정황이 드러나며 연예계를 파고든 마약 실태가 충격을 안겼다. 영화 ‘기생충’(2019년),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년)을 비롯해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연이은 성공으로 전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는 ‘K컬처’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선균-유아인이 날린 제작비만 940억 원 이선균이 마약류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자 팬데믹으로 인한 타격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한국 영화계는 더욱 침체되는 분위기다. 올해 개봉할 예정이던 이선균 주연의 제작비 200억 원 영화 ‘탈출: PROJECT SILENCE’는 개봉이 무기한 연기됐다. ‘탈출…’은 5월 칸영화제에 초청받은 뒤 해외 판매에도 주력하고 있었지만 이 역시 모두 중단된 상태다. 제작비 약 90억 원을 투입한 영화 ‘행복의 나라’도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을 하고 있었으나 올스톱됐다. 드라마 ‘노 웨이 아웃’은 첫 촬영을 앞두고 있었지만 이선균이 하차하면서 대체할 배우를 찾고 있고, 그가 주인공인 ‘Dr.브레인 시즌2’는 제작이 불투명해졌다. 앞서 올해 3월 마약류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유아인 역시 영화 ‘승부’, ‘하이파이브’와 넷플릭스 시리즈 ‘종말의 바보’ 공개를 앞두고 있었지만 모두 무기한 연기됐다. 세 작품의 제작비는 총 650억 원이다. 이선균, 유아인 두 배우가 출연했다가 개봉이 연기된 작품 제작비는 약 940억 원에 달한다.● “엎친 데 덮친 격”…연이은 악재에 영화계 패닉 영화계는 팬데믹 이후 좀처럼 매출이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마약 사태까지 터져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영화산업 전체 매출액은 팬데믹 이전(2017∼2019년 각 상반기 평균)의 72.5%였고, 관객 수는 57.8%에 그쳤다. 특히 영화계 대목으로 꼽히는 추석이 있던 9월에도 영화산업 전체 매출액은 팬데믹 이전 같은 기간의 52.9%로 절반 수준이었다. 올해 추석에 맞춰 개봉한 대작 한국 영화 3편(‘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거미집’ ‘1947 보스톤’)도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에 대한 투자가 이전만큼 회복되지 않고 있는데 마약 사태까지 벌어져 걱정이 크다”며 “연말에도 관객 수가 회복세로 돌아서지 못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투자·제작사 관계자는 “마약 관련 루머만 돌아도 긴장하고 있다”며 “우리 작품에서는 부디 (마약 이슈가) 터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폭탄 돌리기 하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외신도 이번 사태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 버라이어티지는 “오스카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의 스타 이선균이 마약류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며 “이선균은 ‘기생충’으로 미국 배우조합상도 받은 유명 배우”라고 보도했다. 미국 할리우드리포터도 이선균 소식을 전하며 “한국 연예계에서 최근 마약 관련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우들의 일탈이 한국 영화·콘텐츠업계의 해외 투자에도 리스크가 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배우 개인의 책임을 실효성 있게 묻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작품마다 계약서가 제각각이고, 위약금 조항 유무와 배상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의 출연료에 비례해 위약금 조항을 넣지만 수백억 원의 콘텐츠 투자금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사업이어서 문제를 일으킨 배우의 소속사와 법적 공방을 벌이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돌 그룹, 한 명만 추락해도 도미노 붕괴 이선균과 함께 작곡가 등도 수사 대상에 오르자 가요계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이돌 그룹은 멤버 한 명의 마약류 투약이 팀 활동에 큰 제약으로 작용한다. 2019년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아이콘의 리더 비아이가 마약 사건으로 입건된 후 탈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리더이자 프로듀싱 멤버였던 비아이의 탈퇴 후 아이콘의 팬덤 규모나 활동 범위는 현격히 축소됐다. 그룹 위너 출신 남태현은 필로폰 투약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작곡가이자 가수 돈스파이크는 필로폰을 투약하고 엑스터시를 건네 지난달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K콘텐츠의 위상과 영향력이 단시간에 높아지면서 연예인들도 그에 맞는 책임감을 가져야 했지만 실제로는 부족했다”며 “몇몇 사람에 의해 K콘텐츠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지 않으려면 연예인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제대로 인식하고 자기 관리를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0-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韓 마약 연예인, 자숙후 은근슬쩍 복귀… 日선 거액 손해배상 해야

    국내 연예계에서 마약류 투약·흡입이 확산된 데는 일정 기간 쉬다가 복귀하면 아무 제약 없이 다시 활동하는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우 하정우는 2020년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3000만 원 벌금형을 받은 후 지난해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으로 2년 만에 복귀했다. 이후 영화 ‘비공식작전’ ‘1947 보스톤’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케타민, 엑스터시 투약 혐의로 2009년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배우 주지훈은 2012년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로 활동을 재개했다.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 ‘공작’ ‘비공식작전’을 비롯해 드라마 ‘킹덤’ ‘하이에나’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1999년 대마초 흡연 등의 혐의로 체포된 방송인 신동엽은 이듬해 20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은 후 자숙 기간조차 없이 곧바로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복귀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마약류 투약·흡입 후 빠르게 복귀한 여러 선례가 마약에 대해 안일하게 여기는 분위기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연예인 마약 범죄는 형량이 가벼운 데다 자숙하면 ‘부활’할 수 있다는 학습효과를 만들었다. 막대한 돈을 버는 연예인들에게 회생 불가능한 수준의 손해배상이 얼마인지에 대한 정교한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연예인이 위법 행위를 저지를 경우 광고 및 작품 제작 등에서 거액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2019년 유명 가수 겸 배우인 피에르 다키가 코카인 복용 혐의로 체포되자 그가 성우로 참여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을 포함해 여러 작품의 상영이 중단됐다. 이로 인해 피에르가 제작사 등에 물어준 위약금은 총 10억∼30억 엔(약 90억∼271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2014년부터 ‘마약 연예인 명단’을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중국 미디어를 총괄하는 국가광파전시총국은 마약 범죄를 일으킨 연예인들이 제작 및 출연한 작품의 방송과 상영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당사자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기도 한다. 한편 국내 연예인들의 마약류 투약·흡입이 잇달아 알려지며 세계에서 깨끗한 이미지로 좋은 평가를 받아온 K컬처도 타격을 입게 됐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K스타들이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 시기에 마약 사건으로 이미지가 실추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글로벌 10대들의 팬덤을 중심으로 성장한 K팝은 아이돌 그룹의 반듯한 이미지가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K팝 가수들은 연습생 시절부터 숙식을 함께하며 소속사가 밀착 관리해 스캔들 리스크가 적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때문에 마약류 투약·흡입이 가요계로 확산될 경우 청정 이미지가 추락하며 K팝 시장에 충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해외에서는 K팝 가수들이 지닌 도덕적인 이미지를 좋아하기에 가수의 마약 범죄 혐의 자체만으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10-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너 ‘진짜로’ 몇살같아?”… 나를 찾는 80분 여정

    “너 지금 ‘진짜로’ 몇 살이라 생각해? 취향은 있니? 넌 사랑받는다고 생각해? 그걸 믿어?”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26일 개막한 국립극단 연극 ‘Tank;0-24’(사진)의 대사다. 형체 없는 내레이터가 쉼 없이 질문을 던진다. 10대 주인공들은 때론 패기와 무례의 경계에 놓인 말투로, 때론 짐짓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질문에 답한다. 작품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자기 자신을 향해 치열하게 묻고 답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담아냈다. 국립극단이 500석 이상 중극장에서 선보이는 청소년극으로 80분간 진행된다.아수라장인 속마음을 나타내는 작품인 만큼 무대미술이 강렬하다. 1막은 형광색 소품과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 등으로 소란스럽게 꾸며 주인공들의 내면을 대변했다. 2010년 동아연극상 무대미술·기술상을 수상한 여신동이 연출과 구성, 무대미술을 맡았다. 마치 소행성에 불시착한 듯 자욱한 연기 사이로 들려오는 신비로운 사운드는 여 연출과 연극 ‘pan123mE1’ 등에서 호흡을 맞춘 혁오밴드의 오혁이 맡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은 오혁이 고등학생 시절 만든 곡을 편곡했다. 허를 찌르는 질문들에 성인 관객도 속수무책이 된 자신을 발견할지 모른다. 소동이 멈춘 2막은 한 치 앞조차 가늠하기 힘든 암흑 속에서 대사 없이 몇 줄기 빛만으로 펼쳐진다. 불친절한 무언극이 25분간 이어지지만 지루할 겨를은 없다.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을 향한 탐사가 막이 내린 후에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달 19일까지, 3만∼4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0-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나막신 춤-엄마 발레리노… 웃고 박수치며 보는 발레

    공주도 백조도 아닌 평범한 여성과 평범한 남자의 사랑을 그린 발레가 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다음 달 8∼12일 오르는 국립발레단 ‘고집쟁이 딸’이다. 1789년 프랑스 안무가 장 베르셰 도베르발이 창작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막 발레다. 국립발레단은 영국 발레 거장 프레더릭 애슈턴이 재안무한 버전으로 공연한다. 1960년 영국 로열발레단에서 처음 선보인 후 국내에선 지난해 초연됐다. 국내 팬들에겐 다소 낯설지만, 누구나 쉽고 재밌게 볼 수 있는 ‘고집쟁이 딸’의 5가지 감상 포인트를 알아본다.희극발레 ‘고집쟁이 딸’은 ‘돈키호테’와 함께 희극 발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유쾌한 서사를 바탕으로 발랄하게 연출했다. 오프닝 때 등장하는 닭들의 행진부터 웃음을 자아낸다. 이야기는 시몬의 외동딸 리즈가 젊은 농부 콜라스와 사랑을 맹세하며 시작된다. 엄마인 시몬은 리즈를 부유한 포도밭 농가의 아들과 결혼시키기 위해 콜라스와의 만남을 방해한다. 주인공 리즈는 수석무용수 박슬기, 솔리스트 심현희, 드미솔리스트 조연재가, 콜라스는 수석무용수 허서명과 박종석, 솔리스트 하지석이 돌아가며 연기한다. 엄마 발레리노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는 우악스러운 엄마 시몬 역은 전통적으로 남자 무용수가 여자로 분해 연기해 왔다.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난 여성 캐릭터를 남자 무용수가 맡는 발레 관습에서 비롯됐다. 솔리스트 배민순과 드미솔리스트 김명규가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정옥희 무용비평가는 “테크닉과 공식 중심으로 창작된 고전 발레와 달리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구체적인 이야기, 유기적으로 연결된 마임 덕에 발레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다”고 했다.서민발레 ‘고집쟁이 딸’은 오늘날 남아 있는 발레 중 평민이 주인공인 최초의 작품이다. 귀족 등 상류층이나 신화 속 인물을 내세운 기존 발레와 달리 농촌 서민의 삶을 담아낸 것. 이는 작품이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기 단 2주 전에 초연된 것과 직결된다. 한지영 발레해설가는 “왕실의 호화로운 문화였던 발레가 부르주아 등 시민의 오락거리로 확산하던 시대상과 맞물린다. 발레의 대혁명을 대변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나막신 춤 리즈의 성화에 못 이긴 시몬이 신발을 갈아 신고 추는 ‘나막신 춤’은 ‘고집쟁이 딸’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안무가 애슈턴이 영국 랭커셔 지방의 민속춤에서 차용했다. 당시 편곡을 맡은 작곡가 존 랜치베리를 민속춤 공연에 데려가 이와 잘 어울리게 작업하도록 요청했다. 한지영 해설가는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극에 달했던 시대이기에 민속춤을 막간극으로 활용해 흥을 돋웠다”고 말했다.리본 파드되 리본은 주인공의 사랑을 보여주고 춤의 스펙터클함을 더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리즈와 콜라스는 1막 1장에서 서로의 몸에 리본을 얽은 채 ‘인간 실뜨기’를 하고, 1막 2장에선 8명의 군무단과 함께 거미집 같은 리본 대형 속에서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선율에 맞춰 아슬아슬한 춤을 춘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은 “리본으로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 두 사람의 감정선을 잘 담아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5000∼10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0-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고통의 잔해 너머 찬란한 삶이

    “세상을 바꾸는 건 비관주의자가 아닌 낙관주의자”라는 한 스타 강사의 말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면 환자’라고 조소하던 사람들이 오랜 시간 빠져 있던 염세와 제자리걸음의 굴레에 스스로도 염증을 느껴서일지 모르겠다. 책은 응급실 의사가 환자들의 상처를 치료하며 자기 영혼을 치유 받는 과정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역경이 곧 성장이라는 오래된 메시지를 진솔하게 또박또박 써나가며 독자가 자신의 아픔을 직면하고 이를 넘어설 용기를 준다. 책은 멍투성이 어린 시절을 되짚으며 왜 응급실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는지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침묵을 요구하는 사회 속에서 홀로 떨던 어린 저자는 아버지와의 몸싸움에서 다친 오빠와 응급실을 가게 된다. 그는 “병원에 모인 이들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낸 뒤 결국 평온을 얻는 것”에 놀라워하며 “문제를 들여다보고, 이름 붙이고, 원인을 밝혀낸다면 이를 해결할 기회도 있다”고 믿게 된다. 레지던트 시절 이후부터는 환자를 보듬으며 자신의 시련과 아픔을 극복한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겪은 좌절, 예기치 못한 이혼과 실패 등 끊이지 않는 역경 속에서 저자는 온몸에 폭력의 흔적이 가득한 꼬마 제니, 성폭행을 당해 임신 중절을 한 군인 비키 등 생존하려는 환자들을 도우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한다. 우울한 과거나 두려운 미래에 함몰되지 않고 “여기서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받아야 할 선물조차 영영 받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제목대로 어차피 ‘부서져도 살아갈 우리’라면 잔해더미에서 살다가 죽기를 선택하기보단 잔해를 기어 넘어 다른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좋다. 저자는 “부서짐은 수수하고 젠체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을 주는 놀라운 선물”이라며 “마음이 부서진 자리에 사랑과 평화를 품고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자”고 제안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0-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상공 8.5m 치솟는 그네… 환상의 서커스로 초대

    멕시코의 고대 도시 테오티우아칸. ‘신들의 도시’라 불리던 이곳의 작열하는 사막과 거대 건축물 ‘태양의 피라미드’가 서커스 천막 속으로 옮겨왔다. 석양처럼 붉게 타오르는 커다란 원판을 배경으로 공중그네가 상공 8.5m까지 치솟았고, 출연자들이 폭포처럼 떨어지는 물을 온몸으로 맞으며 빠르게 회전하자 만화경 같은 환상이 펼쳐졌다. 후프에 양팔과 두 다리를 이용해 바퀴살처럼 매달린 출연자들은 원판 둘레를 따라 돌며 선인장 사이를 오갔다. 멕시코의 신화와 전통을 다채로운 서커스로 표현한 태양의서커스 ‘루치아(LUZIA)’가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탑에서 25일 막을 올렸다. 국내 초연이다. 태양의서커스는 1984년 캐나다 퀘벡에서 시작해 90개국 1450여 도시에서 3억6500만여 명의 관객을 모은 세계적인 공연 제작사다. 1만6500여 m(약 5000평) 이상의 부지에 원뿔형 텐트를 세워 전 세계에서 공연한다. 이번 공연을 위해 출연자 47명을 포함해 창작진과 스태프까지 총 130여 명이 내한했다. 루치아는 스페인어로 ‘빛(luz)’과 ‘비(lluvia)’를 합친 단어다. 태양의서커스가 만든 38번째 작품으로 투어 공연 사상 처음으로 물을 활용했다. 매회 재활용해 쓰는 물의 양은 1만 L에 달한다. 그레이스 발데즈 예술감독은 24일 빅탑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멕시코에서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지는 비를 주요 주제로 내세웠다. 안전을 위해 오랜 기간 준비했다. 10년간 기획했고, 201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2년간 초연하며 완성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무대 바닥에는 볼펜보다 직경이 좁은 수천 개의 구멍이 있어 공연 중 잠시도 물이 고이지 않았다. 후프엔 자전거 타이어를 둘러 미끄럼을 최소화했다. 공연은 5000송이의 멕시코 메리골드가 펼쳐진 황금빛 무대로 시작된다. 발데즈 예술감독은 “멕시코에서 제단 위에 놓는 메리골드는 죽은 자의 삶을 축복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우물은 마야인 문명을, 이구아나 의상을 입은 여성은 멕시코 초현실주의 운동을 의미하는 등 멕시코 문화를 은유하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다니엘 핀지 파스카 감독이 멕시코에서 10여년간 지낸 경험을 녹여냈다. 관능적인 라틴아메리카풍 음악에 맞춰 출연자들은 숨이 멎을 듯한 곡예를 선보였다. 맨몸의 출연자가 10m 높이 허공으로 던져져 붉은 태양을 가로지를 땐 경이롭기까지 하다. 실물 크기의 재규어, 작은 거울 850개가 달린 수영복 등 화려한 인형과 의상도 볼거리다. 다니엘 라마르 태양의서커스 부회장은 “멕시코 문화를 매혹적이고 정교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훗날 한국의 문화도 공연에 담아내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12월 31일까지. 7만∼29만 원. 내년 1월 13일부터 2월 4일까지 부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0-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무용수 없는 무용공연… 佛 안무가의 대본 맞춰 ‘무용 영상’ 재생

    “저는 안무가지만 이 공연을 하는 이가 무용수일 필요는 없어요. 움직임과 언어, 이성과 감성 사이에 우선순위는 없기 때문이죠. 균형을 맞춰 관객이 최대한 주체적이고 명확하게 이해하길 바랄 뿐입니다.” 31일부터 다음 달 26일까지 개최되는 다원예술축제 ‘옵/신 페스티벌’에서 강의형 퍼포먼스 ‘제롬 벨’을 공연하는 프랑스 안무가 제롬 벨(59)의 말이다. 서울 동대문구 김희수아트센터에서 다음 달 14, 15일 국내 초연되는 이 공연에 춤추는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벨이 제작한 대본과 프로토콜에 따라 이영준 비평가 겸 서울과기대 교양대학 교수가 홀로 무대에서 무용 영상을 재생하고, 대본을 ‘발화’하며 동작을 취할 뿐이다. 벨은 작품을 통해 ‘이것은 춤인가?’를 비롯해 여러 질문을 던진다. 올해 총 11개국 19개 작품이 펼쳐지는 ‘옵/신 페스티벌’엔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무용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 2010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인 태국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감독 등과 함께 ‘회고전’을 주제로 참여한다. ‘제롬 벨’은 2005년 이후 그가 국내에 선보인 6개 공연 등을 포함한 전작들을 통해 그의 삶을 돌아보는 회고전이다. 그의 대표 레퍼토리인 ‘무용수의 초상’ 시리즈 중 마지막 편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작품들을 일대기로 소개한다.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2005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으로부터 작품을 의뢰받았을 당시 은퇴를 앞둔 코르드발레(군무단) 무용수인 베로니크 두아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시리즈가 시작됐다”고 했다. 이후 초상화 시리즈는 ‘세드리크 앙드리외’(2009년), ‘이사도라 덩컨’(2019년) 등으로 이어졌다. 이번 공연을 위해 그는 대본과 프로토콜을 자기만의 해석으로 자연스럽게 풀어낼 사람을 김성희 옵/신 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부터 추천받았다. 이영준 비평가가 그의 작품을 영상으로 보여준 뒤 벨을 대신해 ‘왜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 설명한다. 해외 공연에서 제3자가 공연을 이끄는 건 제롬 벨 무용단이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2019년부터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과 직결된다. “올여름은 아포칼립스처럼 끔찍했어요. 파리는 10월이지만 7월 같고요. 원격 퍼포먼스라니, 실험적이긴 하지만 저는 예술이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세상을 꿈꿉니다.” 전석 4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0-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러브콜 쏟아진 K콘텐츠… ‘명당’ 1층 입구에 한국관 내줘

    프랑스 칸에서 16∼19일(현지 시간) 열린 제39회 글로벌 방송콘텐츠마켓 밉콤(MIPCOM). 과거 미국, 프랑스 등 ‘콘텐츠 강국’의 전유물이던 1층 입구 ‘명당’을 꿰찬 건 한국공동관이었다. 다큐멘터리 ‘귀족식당’을 제작한 빅하우스엔터테인먼트의 부스엔 사흘간 프랑스TV, 기네스북 등 30여 개 업체 관계자들이 쉴 새 없이 모였다. 이선영 빅하우스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일류 회사들이 먼저 콘텐츠 아이디어까지 제시하며 공동 제작하자는 러브콜을 보내 놀랐다. 비인기 장르이던 다큐멘터리까지 한국 콘텐츠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높아졌음을 체감했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국내 방송 콘텐츠 제작사들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방송 콘텐츠 마켓 밉콤에 참가했다. 올해 100여 개국 관계자 1만1000여 명이 찾은 밉콤에는 미국 워너브러더스, 영국 BBC스튜디오 등이 바이어로 참석했다. 한국에선 역대 최다인 34개사가 참여했다. 올해 밉콤에서 달성한 총 수출 상담액은 5345만 달러(약 722억 원)로 지난해(3293만 달러·약 445억 원)보다 62%나 늘었다. 한국은 국가 공동관 중에선 유일하게 야외 테라스 부스까지 차렸지만 해외 바이어들이 대거 몰리며 테이블을 추가로 마련해야 했다. KT스튜디오지니 부스를 찾은 중동 지역 최대 통신사 에티살랏의 바이어 메가 쿠카르 씨는 “K드라마는 군더더기 없이 분명한 서사, 팬층이 확보된 배우들이 출연하는 것이 강점”이라며 “작품당 수십 편을 넘기는 다른 아시아 지역 콘텐츠와 달리 6∼12편으로 구성돼 시청자와 배급사 모두에 접근성이 높다”고 했다. 지식재산권(IP)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기업들은 IP 활용도를 높인 콘텐츠로 바이어들의 호응을 샀다. 채널A ‘흐르지 못하는 강 오카방고’ 등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와일드테일은 동물 실사화 애니메이션으로 해외 5개사와 수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한종 와일드테일 PD는 “굿즈 제작에 유리하고 향후 인공지능(AI) 기술과도 결합이 가능해 반응이 좋았다. ‘코리안 프리미엄’까지 붙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18일에는 해외 관계자 200여 명을 대상으로 국내 기업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쇼케이스가 진행됐다. 중소 제작사 글로벌 도약지원 사업에 선정돼 IP 개발을 지원받은 12개사가 참여했다. 배우 변요한 주연 드라마 ‘블랙아웃’(방영 예정)을 제작하고, 드라마 ‘미생’(2014년) ‘시그널’(2016년) 제작에 참여한 이재문 히든시퀀스 대표는 “최근 국내 제작 비용이 급등해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건 필수가 됐다. 밉콤은 가뭄의 단비 같은 기회”라고 했다. K드라마와 영화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자 이들 작품에 출연한 주연 배우들이 나오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민다현 CJ ENM 해외콘텐츠사업팀 부장은 “예전에는 한국 예능을 현지화해 방영하는 계약 위주였다면 최근엔 한국 예능을 그대로 방영하려는 수요가 많아졌다. 디즈니플러스 ‘무빙’의 주연 배우 조인성과 차태현이 출연하는 예능 ‘어쩌다 사장3’에 대한 문의가 쏟아졌다”고 말했다.칸=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10-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