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이지윤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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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04-10~2024-05-10
연극44%
무용13%
문화 일반13%
사회일반10%
인사일반10%
문학/출판7%
기타3%
  • 한중일 문화장관, ‘전주 선언문’ 채택…“3국 교류 강화”

    한·중·일이 문화장관 회의를 열고 각국의 젊은 세대와 콘텐츠 산업을 중심으로 문화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후허핑 중국 문화여유부장, 나가오카 게이코 일본 문부과학대신은 7일과 8일 전북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제14회 한·중·일 문화장관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23 전주 선언문’을 공동 채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탓에 세 나라 장관이 한자리에서 만난 건 2019년 이후 4년 만이다.8일 발표된 전주 선언문에는 3국의 청년과 장애인, 문화도시 간 교류를 늘리고 디지털 문화산업을 공동 육성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각국 청년 예술가 간 창작 협업을 장려하고 콘텐츠 산업 진흥을 위한 민관 교류를 확대하기로 한 것. 이날 진행된 한·중·일 문화장관회의 기조연설에서 박 장관은 “젊은이들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문화적 열정을 나눌 때 국가 간 신뢰와 우정도 쌓을 수 있다”며 “내년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 대회는 청소년의 스포츠‧문화예술 축전으로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장애인에게도 공정한 문화예술 참여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하고, 인구감소와 기후변화 등 문제를 문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연대도 강화한다. 각국 지역 간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2024년 동아시아문화도시로는 한국 김해시, 중국 웨이팡시와 다롄시, 일본 이시카와현이 선정됐다. 전주는 2023년 문화도시다.본회의에 앞서 전날엔 3국 장관이 ‘2023 한·중·일 공예전-화이부동(和而不同)’을 함께 관람했다. 환영 만찬에선 전주의 대표 음식인 비빔밥을 함께 비비는 기념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박 장관은 “한·중·일 문화장관회의는 동북아 문화 교류의 전략 플랫폼”이라며 “이번 회담이 연내 3국 정상회담으로 가는 가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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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막의 선인장은 ‘잘된 삶’일까, ‘안된 삶’일까

    사막의 선인장과 길가에서 주로 자라 사람들의 발에 쉽게 밟히는 질경이의 공통점은 뭘까. 모진 삶을 택하진 않았지만 혹독한 환경에 뿌리내린 두 식물은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강인해졌다. 이 세상에 ‘잘 될 삶’이나 ‘결국 안 될 삶’ 따위는 없음을 알려주는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23일까지 공연되는 ‘잘못된 성장의 사례’는 이러한 식물 이야기를 바탕으로 관객을 고즈넉이 위로하는 연극이다. 한 국립대에서 식물의 저항성 유전자를 연구하는 인물들이 등장해 저마다의 생존 패턴으로 살아가는 식물처럼 우리에게도 각자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연극 ‘배를 엮다’ ‘시장극장’을 연출한 강현주 씨가 처음 희곡을 쓰고 연출도 맡았다. 섬세하게 짜인 공연은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연구실 구성원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곳곳에 놓인 시약병과 빛바랜 멸균기, 책상 위 촘촘하게 붙은 포스트잇 등 실제 연구실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무대세트가 몰입도를 높였다. 공예지 류혜린 박인지 이지현 등 배우들은 탄탄한 연기로 누구 하나 튀지 않고 비슷한 온도로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는 캐릭터들을 표현한다. 마음을 울리는 다정하고도 첨예한 대사들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식물학에 관련된 이론과 용어가 자주 등장하지만 무리 없이 흐름을 좇을 수 있다. 극중 연구실의 막내인 한인범은 이렇게 묻는다. “식물은 ‘이렇게 다양하구나’ 감탄하고 보존하는데 왜 사람한테는 안 그러는 거예요?” 전석 3만5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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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계 “뮤지컬 발성-서커스 배워 보세요”

    공연계에서 이색 체험과 전문성을 앞세운 교육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젊은층과 마니아층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다. 우선 배우가 강사로 나서는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은 11일부터 뮤지컬 ‘그날들’ ‘엘리자벳’ ‘몬테크리스토’ 등에서 주조연을 맡은 배우 김승대가 뮤지컬 창법과 발성을 가르치는 세종예술아카데미강좌를 연다. 기초부터 시작해 ‘캣츠’ ‘엘리자벳’ 등의 주요 넘버까지 완창하는 과정이다. 서울 중구 국립극장은 공연예술박물관의 상설 전시를 연극배우, 무용수의 해설을 들으며 관람하는 프로그램을 이달부터 운영한다. 연극 ‘에쿠우스’에 출연 중인 배우 장두이가 16일 박물관 소장 자료를 통해 작품을 소개한다. 10월 21일에는 국립발레단장을 지낸 최태지 씨가 한국 발레 현장에 관해 설명해준다. 오정화 세종문화회관 시민예술팀장은 “특별한 경험을 즐기는 20∼40대의 관심을 불러모으고 연극, 뮤지컬의 관객 유입도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은 가느다란 막대기로 접시 돌리기, 공중 후프에서 곡예하기 등 서커스 동작을 배우는 일일 강좌를 23, 24일 연다. 올해 5월 이벤트로 이 프로그램을 운영했을 때 20, 30대의 호응이 높아 정규 강좌로 개설했다. 국립극장은 야외 문화축제인 ‘아트 인 시리즈’ 중 하나로 탈춤 일일강좌를 연다. 탈춤꾼 7명, 악사 4명과 함께 강령탈춤, 양주별산대놀이, 고성오광대 등 세 지역 탈춤의 기본 춤사위를 익히는 프로그램으로 이달 23일과 10월 28일 진행된다. 김지인 LG아트센터 홍보마케팅팀장은 “주제가 구체적이고 체험성이 강한 강좌를 선호하는 추세”라며 “이색 강좌를 통해 평소 공연을 보지 않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극장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려 한다”고 말했다.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시민예술학교’ 강의의 깊이를 강화했다. 1∼3회에 그쳤던 과정을 최대 3개월로 늘렸다. 서울 양천구 서서울예술교육센터에서는 인형극단체 ‘예술무대산’과 함께 자기만의 이야기가 담긴 인형을 만들고, 인형극을 해보는 총 6회차 수업(10월 17일∼11월 21일)을 성인 대상으로 진행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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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 학폭 방관자 아니었나… ‘회색빛 몸짓’으로 묻습니다

    “잿빛 뿌연 안개 속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교실 속 폭력을 이대로 둘 것인가’…. 아이들은 다가올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학교폭력을 꼬집는 무용극 ‘그리멘토’의 무대, 조명, 의상, 소품 등을 맡은 정구호 연출가(58)의 말이다.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그를 만나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멘토’는 프랑스어로 회색을 뜻하는 ‘Gris’와 기억, 순간을 의미하는 라틴어 ‘Memento’의 합성어다. 가해자, 방관자, 피해자 등의 역할을 맡은 무용수 16명이 폭력에서 치유로 이어지는 과정을 6가지 상황에 맞춰 춤으로 풀어낸다. 안무는 정 연출가와 서울시무용단 ‘일무’로 호흡을 맞췄던 현대무용가 김성훈 씨가 맡았다. ‘일무’ ‘묵향’ 등 전통무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스타덤에 오른 정 연출가가 사회적 이슈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을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접한 학교폭력 이슈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 뉴스 등이 그에게 굳은 의지를 심어줬다. 그는 “콘텐츠가 결코 과장된 게 아니라 현실에선 더 잔인하단 걸 알고 많이 놀랐다. 해법을 찾으려면 끊임없이 공론화돼야 하고, 적극 동참하고 싶었다”며 “틀이 확고한 장르보다는 현대무용이 문제를 제기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무용수들은 서로 다른 6가지 회색으로 표현된 교실을 배경으로 책상과 의자를 활용해 춤춘다. 공연 초반 어두웠던 무채색 조명은 점차 밝아지도록 연출했다. 피해자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기억을 표현하고자 소품과 무대를 무광 회색으로 칠했다. 그는 “방관자와 가해자의 경계, 가해자를 낳은 구조적 모순 등 단순 흑백논리 밖의 회색지대까지 짚으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공연에선 방관자의 존재를 강조했다. 폭력이 벌어지는 동안 교실 곳곳에 숨어 있는 방관자들은 무대 벽과 바닥에 투사되는 영상에 의해 시각적으로 호명된다. 그는 “중학생 때는 키가 큰 편이어서, 고등학생 때는 미술부에서 그림만 그리느라 ‘조용한 학생’으로 지냈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과거의 나 역시 방관자는 아니었을까 되물었다”며 “학교폭력은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했다. 그가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객과의 소통’이다. 1990년대 미국 뉴욕에서 안은미, 안성수 등 현대무용가들의 의상을 맡아 무용계에 발을 디뎠기에 현대무용을 향한 그의 애정은 남다르다. 그는 “무궁무진한 새로움을 보여주되 명료한 메시지를 토대로 대중과 가까워지고 싶다”며 “지금까지 현대무용 작품에 비해 다소 설명적일 수 있지만 관객이 쉽게 동작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1000석 이상의 대극장에서 주로 활약했던 정 연출가에게 300석 규모의 소극장 공연은 ‘귀한 작업’이었다. 그는 “규모와 설비 등 여러 제약이 도전정신을 자극했고, 관객과 더 친밀히 호흡하는 게 좋다”고 했다. 제일모직 전무 출신으로 패션 디자인과 브랜드 컨설팅, 영화 미술감독 등 다채로운 경력을 쌓은 그는 스스로 ‘도전 중독자’라고 했다. 다음 달엔 직접 연출한 오페라 ‘나비부인’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제작사의 의뢰를 받아 드라마 대본도 쓰고 있다. “7월부터 패션 디자인과 컨설팅 일은 전부 정리했어요. 10년간 제 인생의 마지막 전환을 해보려고요. 수입이 끊겨 불안하기도 하지만 공연을 비롯한 새 도전에 열중하고 싶어요. 내년에는 정구호가 아닌 비밀스러운 이름으로 여러분을 만나게 될 겁니다.(웃음)” 7∼10일, 4만5000∼5만5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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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재자 대역 배우, 9세부터 72세까지 연기… 70대 아버지 유심히 관찰했죠”

    구부정한 노인이 된 네불라에게도 한창때가 있었다. 무고한 시민을 쓰러뜨린 독재자의 대역을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그는 환희를 느꼈다. 끌려가듯 시작한 대역이었고, 여느 때처럼 성실히 임했을 뿐이지만 훗날 속절없는 회한이 그를 집어삼켰다.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지난달 31일 만난 배우 윤나무(38)는 “뮤지컬 ‘쇼맨’ 속 네불라의 삶은 그저 성실히 살아가는 나와 당신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국립정동극장에서 창작 뮤지컬 ‘쇼맨…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 배우’ 두 번째 시즌이 15일 개막한다. 올해 1월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으로, 윤 씨는 주인공 네불라 역으로 남자주연상을 받았다. 공연은 미국의 한 유원지에서 입양아인 24세 수아가 잔혹한 독재자의 대역 배우였다고 말하는 네불라로부터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엉겁결에 이를 수락하며 시작된다. 관객은 네불라를 바라보는 수아의 양가적 시선으로 각자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배우 신성민과 강기둥이 윤나무와 함께 네불라를 연기한다. 수아 역은 정운선 박란주 이수빈이 맡았다. 윤나무는 네불라의 찬란했던 젊은 시절과 빛바랜 현재까지 폭넓은 시기를 연기한다. 극 중 나이로는 9세부터 72세에 이른다. 그는 “나보다 인생을 더 산 배역을 연기해야 하는데, 내 삶에서 연기의 디테일을 찾아낼 수 없어 까다롭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70대인 아버지의 지금 모습과 20, 30년 전의 자세, 말투를 비교하며 연기에 녹였다. “외양으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이별로 우리가 홀로 참아내야 했던 마음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지난해 공연을 보신 부모님께서 ‘마치 내 인생 같다’며 제가 출연한 공연 30편 중 최고로 꼽으셨어요.(웃음)” “진실된 연기를 하고 싶다”는 그는 지난해 초연 때보다 깊이를 더하려 애쓰는 중이다. 영광과 회한이 뒤엉킨 과거를 읊는 동안 마음속 요동치는 감정을 표현하고자 작은 숨소리와 눈빛까지 다듬고 있다. 배우를 꿈꿨으나 방황하다 대역에 그친 네불라를 보며 대학(동국대 연극학과) 시절도 되짚었다. 그는 “교수님께 칭찬받는 학생이 되기 급급해 내 목소리 없이 연기하던 모습이 겹쳐 보여 네불라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2011년 연극 ‘삼등병’으로 데뷔한 그는 ‘킬 미 나우’, ‘함익’, ‘카포네 트릴로지’를 비롯해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천원짜리 변호사’ 등에 출연하는 등 무대와 방송을 활발히 오가고 있다. “편집되지 않은 배우의 연기를 그대로 볼 수 있는 게 공연만의 매력이죠. 극장 맨 끝자리 관객에게도 진심이 닿을 수 있도록 대사 한 줄 한 줄에 성심을 다할 겁니다.” 11월 12일까지. 전석 7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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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은 내 춤과 인생의 안내자”

    80대 노장의 느릿한 춤동작에는 날카로운 생이 깃들어 있었다. 가느다란 어깨선을 타고 내려와 손끝 허공을 응시하는 눈동자에선 검은 휘광이 번득이는 듯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23일 만난 현대무용가 홍신자 씨(83)는 “죽음은 내 춤과 인생의 안내자였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모든 순간을 아이처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가 주최하는 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가 다음 달 1∼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등 6개 극장에서 열린다. 총 9개국 23개 무용단이 26편의 작품을 공연한다. 인간 생애주기에 대한 고찰을 무용으로 풀어낸 ‘죽음과 노화’ 특집 작품 5편도 선보인다. 그중 홍 씨의 독무작 ‘이불 위에서’가 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무대에 오른다. 2년 전 제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첫선을 보인 작품이다. 홍 씨는 1973년 미국 뉴욕에서 ‘제례’를 공연한 후 백남준, 존 케이지 등 세계적 예술가들과 호흡을 맞춘 현대무용가다. 숙명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뉴욕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던 그는 우연히 미국 유명 현대무용단인 알윈 니콜라이 무용단의 공연을 접했다. ‘나도 저런 자유로운 춤을 추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27세에 뒤늦게 무용을 시작했다. ‘이불 위에서’는 죽음을 다루는 1부와 탄생을 다루는 2부로 구성됐다. 삶의 시작과 끝에 놓인 인간이 삶의 모든 굴레로부터 해방될 때 에너지를 춤으로 표현한다. 홍 씨는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자리가 모두 이불이란 데 착안했다. 열 살 때 터진 6·25전쟁으로 허다한 죽음을 목도한 후 죽음은 내 생각의 근간을 이뤘다”고 했다. 공연은 구체적인 안무 노트 없이 즉흥 춤으로 구성했다. 홍 씨의 목소리를 콜라주한 음악 등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다. 무대디자인은 신소연 전통침선공예가가 맡았다. 얼기설기 늘어진 희고 기다란 끈과 바닥에 깔린 하얗고 깨끗한 이불 한 채가 무대를 이룬다. 공연 시작 전에는 그가 80세 되던 해 스스로 치른 장례식 퍼포먼스 영상을 내보낼 예정이다. 제주 바닷가에 지인을 모아놓고 1시간 동안 벌인 장례식을 담은 영상이다. 그는 “탄생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임을 보여주려 한다”며 “태어났을 때 축하를 하듯 이 세상에서 기쁨과 슬픔을 모두 겪고 ‘잘 놀다 가는 인생의 끝’을 기념하고자 장례를 미리 치렀다”며 웃었다. 삶에 후회도, 미련도 없다는 그는 꼭 다시 공연하고 싶은 작품이나 ‘죽을 때까지 춤추겠다’는 욕심 역시 없다. 홍 씨는 “그 역시 생에 대한 집착이다. 다만 관객과 만나는 순간이 여전히 너무 좋기에 앞으로도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하려 한다”고 했다. 다음 달 초 삶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담은 책 ‘생의 마지막 날까지’도 출간될 예정이다. “단지 ‘되는 대로 살겠다’는 마음으론 자유로워질 수 없어요. 삶을 공부의 터전이라 여기고 항상 비움에 대해 생각해야 해요. 오늘보다 내일 더 비우고, 그럼으로써 더 자유롭도록….” 공연 전석 5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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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로 만나는 김옥균과 박열

    우리나라 근현대사 속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2편이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10월 22일까지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곤 투모로우’와 3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링크아트센터에서 초연되는 뮤지컬 ‘22년 2개월’이다. ‘곤 투모로우’는 1884년 갑신정변이 3일 만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피신한 김옥균의 암살사건을 재창작한 작품이다. 김옥균과 그를 암살하려는 고종, 암살자로 등장하는 가상의 캐릭터 한정훈까지 세 인물이 중심이 돼 극을 이끈다. 2016년 초연된 후 세 번째 공연되고 있다. 이번 시즌에선 무대장치와 영상디자인을 보강해 웅장함을 강조했다. 이수인 연출가는 “콜라주 기법을 활용한 영상으로 혼란스러운 격변기를 표현했고, 이번 시즌에서 처음 회전무대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마치 오래된 필름이 되감기는 듯한 회상 장면, 슬로 모션 연기를 활용한 누아르 액션 등으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김옥균 역은 배우 강필석, 최재웅, 고훈정, 조형균이 번갈아가며 연기한다. 6만∼13만 원. ‘22년 2개월’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펼친 박열(1902∼1974)을 다룬 작품이다. 조국을 위해 투쟁하다 22년 2개월간 옥살이를 했던 박열과 그의 부인 가네코 후미코의 삶과 사랑을 그렸다. 공연은 1926년 일왕을 암살하려던 두 사람의 옥중 사진이 유출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신념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박열이 부르는 ‘난 누구인가’ 등 넘버들이 극의 비장한 분위기를 강조한다. 박열 역은 배우 유승현, 양지원, 이재환이, 가네코 후미코 역은 최수진, 강혜인, 홍나현이 돌아가며 연기한다. 11월 5일까지. 5만5000∼7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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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자녀의 삶, 부모에겐 미지의 영역

    혜고부지춘추(蟪蛄不知春秋). 여름 한철 살다 가는 매미는 봄가을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장자’에 나오는 말로,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 아는 체해선 안 된다는 속뜻이 있다. 가장 친밀한 가족 역시 내가 겪지 못한 인생을 사는 타인이다. 무심히 건넨 ‘잘되라고 하는 소리’가 상처를 줄 때가 많다. 저자는 이 글귀를 인용하며 세상의 부모들에게 “나의 경험치가 세상 전부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인 저자(전 한국고전번역원장)는 현재 서울 강남구 중동고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2021년 교장 부임 후 자신의 아이를 다른 집 자녀와 비교하는 부모들을 만나며 이들에게 하고 싶은 제언을 책으로 펴냈다. ‘중용’ ‘논어’ ‘한비자’ 등 고전에서 명구를 빌려왔다. 고전을 빌려 섣불리 가르치려 들기보단 저자가 보고 느낀 소회를 담담히 밝히며 독자의 마음을 다독인다. 책은 “아이의 장래를 위해 다그치지만, 아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냉철하게 생각하는 분은 많지 않았다”며 조급해하는 부모들에게 아이를 믿고 기다려 줄 것을 꾸준히 강조한다. 학부모들에게 전하는 글로 이뤄진 1∼3부 이후 마지막 4부에선 학생들에게도 ‘쉼표’를 제안한다. 입시에 얽매여 자신의 그릇에 자꾸 무엇을 담으려기보단 그릇을 넓히는 마음을 가져보자는 것. 저자는 “학부모와 아이들 모두 숲이 우거진 ‘옛길’을 찬찬히 걸으며 삶의 여유와 지혜를 찾길 바란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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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장면이 원작에 있었나?”… ‘소설-영화-뮤지컬’ 3색의 묘미

    뮤지컬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레베카’ 등 오랜 기간 사랑받아 온 뮤지컬 대작들이 올해 잇달아 공연되고 있다. 이들 작품은 원작 소설을 토대로 재구성하고, 영화로도 제작돼 인기를 모았다. 원작 소설, 영화와 다른 뮤지컬만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 봤다. ● 바리케이드 전투 전 청년들 독려하는 장발장, 소설엔 없어1885년 영국 웨스트앤드에서 초연된 후 53개국에서 약 1억3000만 명이 관람한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1862년 발표한 동명 소설의 서사를 따른다. 국내에서 공연되는 건 2015년 이후 8년 만이다. 부산 남구 드림씨어터에서 10, 11월 공연한 뒤 11월 30일부터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로 옮겨 공연을 이어간다. 원작이 프랑스의 사회상과 종교, 낭만 등을 다룬 대하소설이어서 시간 제한이 있는 뮤지컬에서는 주인공 장발장과 자베르의 대립을 중심축으로 각색했다. 김영인 레미제라블 협력프로듀서는 “장발장과 자베르의 성격과 서사가 보다 확실하게 드러나도록 했다”고 말했다. 바리케이드 전투를 앞두고 장발장이 마리우스와 젊은 청년들을 위해 넘버 ‘Bring him home’을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설에는 바리케이드 전투 전 청년들을 독려하는 내용이 없다. ‘레미제라블’은 2012년 국내 관객 594만 명을 모은 휴 잭맨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제작됐다. 뮤지컬과 영화의 넘버 구성은 거의 동일하지만 각각 서로 다른 한 곡씩 추가돼 있다. 공연 후반부 장발장이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업고 하수구로 탈출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넘버 ‘Dog eats dog’는 영화에선 생략됐다. 영화에서 장발장이 테나르디에 부부로부터 어린 코제트를 구하고 떠나는 장면에서 부르는 ‘Suddenly’는 영화를 위해 추가된 넘버다.● 추리소설 로맨스로 바꾼 ‘오페라의 유령’ 11월 17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역시 동명 원작 소설 원작과 영화 모두 유명하다.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동명 소설은 1910년 출간됐다. 뮤지컬은 1988년 미국 뉴욕에서 초연된 후 전 세계에서 1억6000만 명이 관람했다. 소설은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벌어진 무명의 오페라 여가수 크리스틴 다에의 실종사건을 쫓는 추리물이다. 이에 비해 뮤지컬은 유령과 크리스틴, 라울의 삼각관계에 초점을 맞춘 로맨스 장르다. ‘All I Ask of You’ ‘The Music of the Night’ 등 넘버가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소설에선 유령에게 ‘에릭’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뮤지컬에선 이름 없는 존재로 등장한다. 제작사 에스앤코 신동원 대표는 “유령의 카리스마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부각하기 위한 장치로, 유령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닌다”고 했다. 조엘 슈마허 감독이 연출한 영화(2004년)는 줄거리와 넘버는 흡사하지만 뮤지컬엔 없는 넘버 1곡이 추가됐다. 엔딩 크레디트까지 기다리면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Learn to Be Lonely’를 들어 볼 수 있다.● 댄버스 부인의 카리스마 부각한 ‘레베카’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19일부터 공연 중인 뮤지컬 ‘레베카’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에게 첫 아카데미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동명 흑백 영화(1940년)로 유명하다. 원작은 영국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가 1939년에 발표한 동명 미스터리 소설이다. 뮤지컬에선 핏빛 붉은색과 보라색을 강조한 무대와 의상으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소설과 영화 모두 두 번째 드 윈터 부인인 ‘나’의 시선을 따라간다. 뮤지컬에서도 ‘나’가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기괴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댄버스 부인의 존재가 단연 부각됐다. 댄버스 부인은 배우 옥주현과 신영숙, 리사, 장은아가 번갈아 연기한다. 로버트 요한슨 연출가는 “댄버스 부인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강렬한 캐릭터”라며 “오케스트라 선율은 으스스함을 배가시킨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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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이틀간 165조원 투입 위기진화 안간힘… 韓 ‘금융-수출’ 비상

    중국 부동산 및 실물경제 위기가 확산되면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의 경기 침체는 한국의 금융시장 불안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수출 감소로 이어져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더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中 성장 전망 4%대 하향, “내년엔 더 낮아”최근 중국 경제의 둔화 양상을 반영해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일제히 중국의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 은행 JP모건은 15일(현지 시간) 중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5.0%에서 4.8%로 낮추면서 부동산 시장 변수를 최대 리스크로 꼽았다.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 등 대형 부동산 기업의 디폴트 위기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같은 날 영국 바클레이스도 올해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4%포인트 내린 4.5%로 제시했다. 일본 미즈호증권 또한 올해 중국 성장률을 5.5%에서 5.0%로 낮췄다. JP모건과 바클레이스는 내년 중국 성장률로 각각 4.2%, 4.0%를 제시했다. 특히 민간 부동산 업체에 이어 국유기업인 위안양(遠洋·시노오션)그룹까지 채무 변제에 실패하면서 업계에선 ‘도미노 디폴트’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위안양그룹은 13일 만기였던 이자 2094만 달러(약 280억 원)를 지불하지 못했다. 중국 경제의 핵심 축인 부동산 시장이 계속 흔들리면서 경제 전반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노무라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부동산 신탁 상품의 잇따른 디폴트는 ‘부의 효과’(자산가치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를 통해 경제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가 시장 불안을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은행은 15, 16일 이틀에 걸쳐 총 9020억 위안(약 165조 원)의 유동성을 시장에 투입했지만 전문가들은 이 정도로는 시장을 안정시키기에 역부족이라고 보고 있다. 영국 경제기관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중국 정부가 계속해서 한발 늦게 대책을 내놓자 시장은 정부가 손을 놨다고 인식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가 청년 실업률 등 불리한 통계의 발표를 돌연 중단하기로 한 것도 시장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정례브리핑에서 “여러 서방 정치인과 언론이 중국의 포스트 팬데믹 경제 회복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기적 문제를 과장해왔다”며 “결국 그들이 틀렸다는 것이 분명히 증명될 것”이라고 밝혔다.● 수출 감소로 韓 성장률도 ‘빨간불’중국 부동산발 위기는 한국 경제에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한국은 올 초만 해도 중국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효과로 하반기(7∼12월) 수출 회복을 기대했지만 중국의 경기 부진이 길어지자 국내 실물경제 지표도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대중(對中) 수출은 지난해 6월 이후 14개월 연속 감소세다. 전문가들은 중국 리스크가 실물경제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의 경제 불안으로 인해 글로벌 투자자들이 안전자산 선호 현상을 보일 것”이라며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금 이탈, 환율 상승 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지금까지 중국의 성장 흐름에 올라타 그간 경제 위기를 빨리 벗어났지만 중국이 불황에 빠지면 그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중국 경제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상저하고(上低下高)’라는 기존의 경기 전망을 고수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현 경기 흐름 전망에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 20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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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하나된 잼버리, K팝 환호속 피날레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11일 잼버리 폐영식과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가 열린 서울 마포구 상암동. 캐나다에서 온 도로시 모리슨 양(16)은 “폭염부터 태풍까지, 출발 전엔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을 줄 생각도 못 했다”면서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잼버리가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또 “마지막 날 콘서트까지 잘 마무리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한국 정부와 시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1일 시작된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가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막을 내렸다. 태풍 ‘카눈’ 때문에 전북 부안군 새만금 야영장을 떠나 전국 8개 시도로 흩어졌던 스카우트 대원 약 4만 명은 이날 오전부터 버스 약 1400대를 타고 경기장으로 모였다. 폐영식이 시작되자 파도타기를 하고 함성을 지르며 잼버리의 마지막 밤을 뜨겁게 달궜다. 뉴진스 등이 무대에 오를 땐 너나없이 스마트폰 카메라를 치켜들며 열렬히 환호했다. 벨기에에서 온 릴리 자넨 양(14)은 “초반엔 힘들기도 했지만 일정을 완주하니 정말 뿌듯하다”며 “K팝 ‘왕팬’인데, 아티스트들을 직접 보고 노래를 들으니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폐영식에선 한국 스카우트 대원이 차기 잼버리 개최국인 폴란드 대원에게 스카우트 연맹기를 건네주는 전달식이 진행됐다. 캐나다 대원 온킷 사하 군(15)은 “12일 캐나다로 돌아가는데 더 있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4만여명 응원봉 열광… “잼버리 도와준 한국인에 감사” K팝 콘서트로 피날레K팝 아이돌 등장때마다 환호성BTS 카드 등 ‘리멤버 키트’ 선물 11일 폐영식 및 K팝 콘서트를 앞두고 서울월드컵경기장과 각국 스카우트 대원들의 숙소에선 들뜬 분위기와 아쉬움이 교차했다.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기숙사에 머물던 스위스 단원들은 이날 오전 강당에 모여 함께 K팝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공연 관람을 준비했다. 한 단원은 “콘서트를 신나게 즐기기 위해 아침부터 노래를 듣고 춤추며 준비했다”고 말했다. 오후 2시경부터 경기장 입장이 시작됐는데 각국 대원들은 이슬비를 맞으면서도 정해진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밝은 표정으로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 앞에선 스카우트 대원들을 도왔던 한국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스카우트 대원들은 이들과 반갑게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한국어로 인사하며 행사장에 들어섰다. 일부 대원은 총을 들고 입구를 지키는 경찰특공대원들과 사진을 찍거나 준비한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기도 했다.● 유명 그룹 등장하자 응원봉 흔들며 열광 잼버리의 마지막 순서인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가 시작되자 스카우트 대원들은 좋아하는 그룹의 이름을 외치고 응원봉을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댄스크루 ‘홀리뱅’이 콘서트의 포문을 연 뒤 ‘더보이즈’ ‘있지’ ‘마마무’ ‘NCT 드림’ 등 자신이 좋아하는 유명 그룹이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대원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공연 중에도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대원들의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 대원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박자에 맞춰 양손을 머리 위로 흔들고, 앉은 자리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챌린지로 유행한 아이브의 ‘I AM’ 하이라이트 소절이 나올 땐 안무를 따라 추는 대원들도 눈에 띄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알투로 군(15)은 “콘서트장에서 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니 마지막까지 재밌다. 처음에는 힘들기도 했지만 좋은 기억 가득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며 감격했다. 미국에서 온 케빈 하트 씨(22)도 “주최 측에 감사하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연 전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의 포토카드와 K팝 콘서트 응원봉,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상품 등이 담긴 ‘콘서트 리멤버 키트’ 기념품을 지급했다. 미국에서 온 데포 오에린 씨(21)는 “BTS 굿즈를 받았다고 하니 미국 친구들이 메신저로 벌써부터 달라고 난리”라며 웃었다. 마지막 무대가 다가오자 대원들 사이에선 아쉬움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대원들은 “꼭 다시 만나자”며 다른 나라 대원들과 포옹을 나누고 서로의 SNS 계정을 교환하기도 했다. 콘서트에 등장한 아티스트 19개 팀이 함께 무대로 나와 마지막 곡 ‘풍선’을 부르자 스마트폰 플래시 불빛과 응원봉을 흔들며 경기장을 더욱 환하게 물들였다.● “힘들었지만 즐거운 추억” 각국 스카우트 대원들은 “힘들었지만 즐거운 잼버리였다”고 입을 모았다. 네덜란드에서 온 마틴 새트 씨(20)는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유럽에서 먼 국가에서 온 이들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며 “특히 한국 시민들의 친절함에 감동했다. 한국에 더 남기 위해 항공편도 바꾸고 다음 주에는 부산과 제주도를 찾을 생각”이라고 했다. 모리셔스에서 온 사하바나즈 아모드 씨(24)와 잔시 파르마 씨(20)는 “화합이라는 스카우트 정신에 부합하는 잼버리였다”며 “매일매일 예측할 수 없는 일이 펼쳐졌지만 그래서 즐거웠다”고 말했다. 아흐마드 알헨다위 세계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은 폐영식에서 “여러분은 시련에 맞서고 이것을 오히려 특별한 경험으로 바꿨다”며 “‘여행하는 잼버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날로 공식 일정이 마무리되면서 각국 스카우트 대원들은 12일부터 귀국길에 오르게 된다. 스웨덴과 대만 스카우트 대원 957명이 부산을 찾는 등 일부 국가의 경우 자체적으로 추가 관광 일정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개별적으로 한국에 남아 다른 프로그램이나 관광을 하는 경우 비용은 해당 국가가 부담하도록 할 방침이다. 행정안전부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2일 이후에도 잼버리 참가자들이 원하는 경우 숙소 등 필요한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송유근 기자 big@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 2023-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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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만명 파도타기-응원봉 환호… 잼버리 ‘K팝 피날레’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11일 잼버리 폐영식과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가 열린 서울 마포구 상암동.캐나다에서 온 도로시 모리슨 양(16)은 “폭염부터 태풍까지, 출발 전엔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을 줄 생각도 못 했다”면서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잼버리가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또 “마지막 날 콘서트까지 잘 마무리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한국 정부와 시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1일 시작된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가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막을 내렸다. 태풍 ‘카눈’ 때문에 전북 부안군 새만금 야영장을 떠나 전국 8개 시도로 흩어졌던 스카우트 대원 약 4만 명은 이날 오전부터 버스 약 1400대를 타고 경기장으로 모였다. 콘서트가 시작되자 파도타기를 하고 함성을 지르며 잼버리의 마지막 밤을 뜨겁게 달궜다. 뉴진스 등이 무대에 오를 땐 너나없이 스마트폰 카메라를 치켜들며 열렬히 환호했다.벨기에에서 온 릴리 자넨 양(14)은 “초반엔 힘들기도 했지만 일정을 완주하니 정말 뿌듯하다”며 “K팝 ‘왕팬’인데, 아티스트들을 직접 보고 노래를 들으니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폐영식에선 한국 스카우트 대원이 차기 잼버리 개최국인 폴란드 대원에게 스카우트 연맹기를 건네주는 전달식이 진행됐다. 캐나다 대원 온킷 사하 군(15)은 상기된 표정으로 “완벽한 피날레”라며 “12일 캐나다로 돌아가는데 더 있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11일 폐영식 및 K팝 콘서트를 앞두고 서울월드컵경기장과 각국 스카우트 대원들의 숙소에선 들뜬 분위기와 아쉬움이 교차했다.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기숙사에 머물던 스위스 단원들은 이날 오전 강당에 모여 함께 K팝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공연 관람을 준비했다. 한 단원은 “콘서트를 신나게 즐기기 위해 아침부터 노래를 듣고 춤추며 준비했다”고 말했다.오후 2시경부터 경기장 입장이 시작됐는데 각국 대원들은 이슬비를 맞으면서도 정해진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밝은 표정으로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 앞에선 스카우트 대원들을 도왔던 한국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스카우트 대원들은 이들과 반갑게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한국어로 인사하며 행사장에 들어섰다. 일부 대원은 총을 들고 입구를 지키는 경찰특공대원들과 사진을 찍거나 준비한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기도 했다.● 유명 그룹 등장하자 응원봉 흔들며 열광잼버리의 마지막 순서인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가 시작되자 스카우트 대원들은 좋아하는 그룹의 이름을 외치고 응원봉을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댄스크루 ‘홀리뱅’이 콘서트의 포문을 연 뒤 ‘더보이즈’ ‘있지’ ‘마마무’ ‘NCT 드림’ 등 자신이 좋아하는 유명 그룹이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대원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공연 중에도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대원들의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 대원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박자에 맞춰 양손을 머리 위로 흔들고, 앉은 자리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챌린지로 유행한 아이브의 ‘I AM’ 하이라이트 소절이 나올 땐 안무를 따라 추는 대원들도 눈에 띄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알투로 군(15)은 “콘서트장에서 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니 마지막까지 재밌다. 처음에는 힘들기도 했지만 좋은 기억 가득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며 감격했다. 미국에서 온 케빈 하트 씨(22)도 “주최 측에 감사하다”고 했다.문화체육관광부는 공연 전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의 포토카드와 K팝 콘서트 응원봉,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상품 등이 담긴 ‘콘서트 리멤버 키트’ 기념품을 지급했다. 미국에서 온 데포 오에린 씨(21)는 “BTS 굿즈를 받았다고 하니 미국 친구들이 메신저로 벌써부터 달라고 난리”라며 웃었다.마지막 무대가 다가오자 대원들 사이에선 아쉬움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대원들은 “꼭 다시 만나자”며 다른 나라 대원들과 포옹을 나누고 서로의 SNS 계정을 교환하기도 했다. 콘서트에 등장한 아티스트 19개 팀이 함께 무대로 나와 마지막 곡 ‘풍선’을 부르자 스마트폰 플래시 불빛과 응원봉을 흔들며 경기장을 더욱 환하게 물들였다.● “힘들었지만 즐거운 추억”각국 스카우트 대원들은 “힘들었지만 즐거운 잼버리였다”고 입을 모았다.네덜란드에서 온 마틴 새트 씨(20)는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유럽에서 먼 국가에서 온 이들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며 “특히 한국 시민들의 친절함에 감동했다. 한국에 더 남기 위해 항공편도 바꾸고 다음 주에는 부산과 제주도를 찾을 생각”이라고 했다.영국 스카우트 단원 제임스 에더리지 씨(37) 역시 “스카우트 목도리를 두르고 다닐 때마다 한국인들이 환한 표정으로 맞아줬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라고 돌이켰다. 모리셔스에서 온 사하바나즈 아모드 씨(24)와 잔시 파르마 씨(20)는 “화합이라는 스카우트 정신에 부합하는 잼버리였다”며 “매일매일 예측할 수 없는 일이 펼쳐졌지만 그래서 즐거웠다”고 말했다. 아흐마드 알헨다위 세계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은 폐영식에서 “여러분은 시련에 맞서고 이것을 오히려 특별한 경험으로 바꿨다”며 “‘여행하는 잼버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이날로 공식 일정이 마무리되면서 각국 스카우트 대원들은 12일부터 귀국길에 오르게 된다. 스웨덴과 대만 스카우트 대원 957명이 부산을 찾는 등 일부 국가의 경우 자체적으로 추가 관광 일정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개별적으로 한국에 남아 다른 프로그램이나 관광을 하는 경우 비용은 해당 국가가 부담하도록 할 방침이다. 행정안전부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2일 이후에도 잼버리 참가자들이 원하는 경우 숙소 등 필요한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 20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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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 구경하는 눈초리서 해방된 모던걸의 춤

    “100년 전 급변하던 세상에서 ‘모던걸’들이 거쳐야 했던 폭풍의 눈과 그럼에도 꺾이지 않던 정신을, 그 속에서 태동하던 에너지를 춤으로 보여주려 해요.” 이달 24∼2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되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신작 ‘여자야 여자야’의 안무를 맡은 안은미 씨(60)의 말이다. 9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신작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극장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공연은 1920, 30년대 우리나라에서 구습을 비판하며 새 길을 개척했던 신여성을 이야기한다. 파격적인 안무와 무대 구성으로 대체 불가능한 스타일을 구축한 안 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무용가로 꼽힌다. 2018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 시립극장(테아트르 드 라빌)의 상주예술가로 위촉됐고, 그의 대표 레퍼토리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해외 50개 안팎의 극장 및 축제에 초청을 받았다. ‘여자야 여자야’는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무용수들과 함께 다양성을 이야기한 공연 ‘잘란잘란’ 이후 10개월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짓에 담긴 역사를 발견하고 춤으로 풀어냈던 그가 과거의 인물상을 토대로 안무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안 씨의 대표작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아저씨의 무책임한 땐스’ 등은 각각 동시대 할머니와 중년 남성의 몸에 새겨진 사회적 맥락을 짚었다. 신작에서 12명의 무용수는 ‘닫혀 있던 여성의 몸’이 점차 열리는 과정을 표현한다. 개화기 서구 문화를 받아들인 신여성들이 거추장스러운 치마와 쪽 찐 머리 대신 짧은 치마, 단발머리를 선택한 데 따른 변화다. 안 씨는 “조선시대의 문화는 앉아있는 자세, 말하는 태도 등 여성의 몸 제스처까지 제한한다”며 “사진 기록 속 신여성들은 홀가분해진 옷차림 덕에 손발의 움직임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터져 나온 해방감을 춤에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까까머리에 형광 꽃무늬 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모는 ‘21세기 신여성’ 안은미는 자료를 수집하는 동안 ‘최초’를 일궈낸 인물들에게 특히 마음이 가닿았다고 했다. 한국 최초의 여자 서양화가 나혜석, 국내 첫 단발머리를 시도한 강향란 등과 연대감을 느낀 것. “나를 구경하는 눈초리들, 이해받지 못하는 답답함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저는 거기서 고통받지 않기로 결심했을 뿐, 크고 작은 굴레들이 상존하죠. 이를 견뎌낸 최초의 시도들이 있었기에 남자와 여자 모두 부당한 현실로부터 차츰 해방될 수 있었던 겁니다.” 무용수들은 단조로운 ‘유관순 스타일’ 한복을 벗어던지고 색색깔 옷으로 갈아입으며 무대를 쉼 없이 뛰어다닌다. 의상과 무대는 시대상을 반영하되, 화려하고 통통 튀는 ‘안은미식’으로 제작됐다. 동대문종합시장을 휩쓸며 원단과 부자재를 손수 떼 왔다. 공연에 사용되는 음악은 국악퓨전밴드 이날치의 장영규가 작곡했다. 안 씨는 “30년 가까이 함께 작업하면서 말없이 서로 믿고 맡기는 듀오가 됐다. 모던걸의 춤사위에 꼭 맞는 1시간짜리 교향곡을 들려줄 예정”이라고 했다. 1988년 ‘종이계단’을 발표하며 안무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그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은 적게 잡아도 150편이 넘는다. “밥 먹고 작품만 했어요. 이걸 끝내면 저걸 또 춤으로 빚어보고 싶고. 과학자가 공식을 찾아내기 위해 쉬지 않고 연구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세상에 궁금한 게 이렇게나 많은데 글쎄, 잠이 와요?”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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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집힌 갈라파고스, 기후위기가 무대로

    지구온난화 시대를 넘어 ‘열대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공연계에서도 기후위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국립극단은 이달 24일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멸종위기종 갈라파고스 땅거북을 소재로 삼은 연극 ‘스고파라갈’을 공연한다. 뒤집어지고 비틀려 버린 장소 ‘스고파라갈’에서 인간의 이기심으로 희생되고 있는 땅거북과 이를 발견한 인간 7명이 주고받는 파편화된 대화가 극을 이룬다. 올해 1월 열린 제59회 동아연극상에서 신인연출상을 수상한 임성현이 연출을 맡았다. 임 연출은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연구한 ‘종의 기원’은 생물의 적응과 변화를 이야기했으나 사람들은 이를 ‘진보’로 비틀어 해석했다”며 “이러한 오역이 기후위기를 초래한 근본적 원인임을 말하고자 ‘뒤집힌 세계’를 고안했다”고 설명했다. 배우 7명은 고정된 한 인물을 연기하지 않고 속사포로 대사를 내뱉는다. 임 연출은 “쉽게 다른 것에 관심이 뺏겨 집단적 고민이 깊어지지 못하는 현 세태를 표현했다”며 “관객은 직접 방석을 배치해 앉아 무대와의 경계를 지운다. 이를 통해 ‘나 역시 이곳에 책임이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0월 6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시내 주요 공연장에서 열리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선 기후위기를 다룬 강의형 연극 ‘에너지…보이지 않는 언어’가 28, 29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전윤환, 김지연이 공동 연출을 맡고 직접 출연한다. 이들은 ‘미미하다’ ‘깨끗하다’ 등 일상적 단어가 적힌 카드들을 가지고 관객들과 ‘기후 문장’을 만들어 나가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전 연출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착한 소비 같은 기업적인 용어들 외에 기후에 대해 이야기할 일상적 언어가 부족하다. 언어의 부재가 기후위기 시대에 상상력의 부재를 만든다고 봤다”며 “기후라는 거대 서사를 개인의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연세대 기후적응 리빙랩 연구사업단에서 연구 중인 김 연출은 “기후 대응이 일상화하기 위해선 지식 너머의 감수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환경 교육은 지나치게 과학적이고 당위적”이라며 “경각심을 일깨우는 언어는 일상에 거리감과 피로감을 주기에 희망을 주는 예술의 언어를 활용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소설도, 영화도 아닌 물리적 한계가 많은 극장을 기후위기 논의의 장으로 택한 이유는 뭘까. 임 연출은 “집이나 영화관과 달리 관객과 무대가 함께 호흡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는 만남은 공동체성을 자극한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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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개국 55명 성악 부문 1차 예선무대 올라

    동아일보사와 서울시가 공동 주최하는 ‘LG와 함께하는 제18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성악 부문)’ 1차 예선 경연에 참가할 10개국 55명이 가려졌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는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등 3개 부문을 매년 돌아가며 개최하는 국제대회로 바리톤 김기훈, 테너 스테판 마리안 포프 등이 이 대회 우승자 출신이다. 10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열린 참가자 제출 영상 예비심사에는 박미자 서울대 교수, 신상근 경희대 교수, 양준모 연세대 교수, 성악가 연광철, 캐슬린 김 한양대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심사위원들은 15개국 224명의 지원자가 제출한 영상을 보며 예선 출전 가능 여부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채점한 뒤 합산해 예비심사 합격자를 정했다. 합격자 55명의 국적 및 인원은 한국 38명, 중국 4명, 러시아 3명, 몽골 3명, 미국 2명, 브라질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호주 각 1명이다. 심사위원들은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출중한 지원자가 많아 합격자를 가려내기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예비심사 합격자들은 11월 22,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리는 1차 예선에 참가한다. 예비심사 결과는 21일 콩쿠르 홈페이지에 공지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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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화기 신여성들의 해방감, 춤으로 표현”… 안은미 신작 ‘여자야 여자야’

    “100년 전 급변하던 세상에서 ‘모던걸’들이 거쳐야 했던 폭풍의 눈과 그럼에도 꺾이지 않던 정신을, 그 속에서 태동하던 에너지를 춤으로 보여주려 해요. 작은 공연 하나로 삶과 사회가 변화할 힘이 생긴다면 그건 우리가 춤춰야 할 이유죠.”이달 24~2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리는 ‘여자야 여자야’를 안무한 안은미 씨(60)의 말이다. 9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극장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공연은 1920~1930년대 우리나라에서 구습을 비판하며 새 길을 개척했던 신여성을 이야기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이 그를 안무가로 초청한 첫 작품이다. 파격적인 안무와 무대 구성으로 대체 불가능한 스타일을 구축한 안 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무용가로 꼽힌다. 그의 대표 레퍼토리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해외 50개 안팎의 극장 및 축제에 초청을 받았다. 2018년에는 한국인 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 시립극장(테아트르 드 라빌)의 상주예술가로 위촉되기도 했다. ‘여자야 여자야’는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무용수들과 함께 다양성을 이야기한 공연 ‘잘란잘란’ 이후 10개월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짓에 담긴 역사를 발견하고 춤으로 풀어냈던 그가 과거의 인물상을 토대로 안무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안 씨의 대표작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아저씨의 무책임한 땐스’ 등은 각각 동시대 할머니와 중년 남성의 몸에 새겨진 사회적 맥락을 짚었다. 그는 “공공기관과의 협업인 만큼 역사 속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을 돌아볼 책무를 느꼈다”고 말했다.공연에서 12명의 무용수들은 ‘닫혀있던 여성의 몸’이 점차 열리는 과정을 표현한다. 당시 서구 문화를 받아들인 신여성들이 거추장스러운 치마와 쪽진머리 대신 짧은 치마, 단발머리를 선택한 데 따른 변화다. 안 씨는 “한 시대의 문화는 앉아있는 자세, 말하는 태도 등 몸의 제스처까지 제한한다”며 “사진 기록 속 신여성들은 홀가분해진 옷차림 덕에 손발 움직임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터져나온 해방감을 춤에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까까머리에 형광 꽃무늬 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모는 ‘21세기 신여성’인 그는 자료를 수집하는 동안 ‘최초’를 일궈낸 인물들에게 특히 마음이 가닿았다고 했다. 최초의 여자 서양화가 나혜석, 여성 최초로 단발머리를 시도한 강향란 등과 연대감을 느낀 것.“나를 구경하는 눈초리들, 이해받지 못하는 답답함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저는 거기서 고통 받지 않기로 결심했을 뿐, 크고 작은 굴레들이 상존하죠. 이를 견뎌낸 최초의 시도들이 있었기에 남자와 여자 모두 부당한 현실로부터 차츰 해방될 수 있었던 겁니다.”무용수들은 단조로운 ‘유관순 스타일’ 한복을 벗어던지고 색색깔 옷으로 갈아입으며 무대를 쉼 없이 뛰어다닌다. 의상과 무대는 시대상을 반영하되, 화려하고 통통 튀는 ‘안은미식’으로 제작됐다. “없는 게 없는” 동대문종합시장을 휩쓸며 원단과 부자재를 손수 떼왔다. 공연에 사용되는 음악은 국악퓨전밴드 이날치의 장영규가 작곡했다. 안 씨는 “30년 가까이 함께 작업하면서 말없이 서로 믿고 맡기는 듀오가 됐다. 모던걸의 춤사위에 꼭 맞는 1시간짜리 교향곡을 들려줄 예정”이라고 했다.이번 공연이 끝나면 초등학생을 탐구한 작품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1988년 ‘종이계단’을 발표하며 첫발을 내딛은 그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은 적게 잡아도 150여 편이 넘는다.“밥 먹고 작품만 했어요. 이걸 끝내면 저걸 또 춤으로 빚어보고 싶고. 과학자가 공식을 찾아내기 위해 쉬지 않고 연구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세상에 궁금한 게 이렇게나 많은데 글쎄, 잠이 와요?”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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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한결, 한국인 첫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우승

    “결선 무대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지휘봉을 잡았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행복했어요. 젊은 지휘자로서는 감히 넘보기 어려운 무대죠.” 6일(현지 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열린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콩쿠르 우승자 윤한결 씨(29)는 “수상보다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좋은 연주를 남겨 드리려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 씨는 7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멘델스존 교향곡 3번을 지휘하기 시작했을 때 오케스트라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 보고 ‘오늘 연주 잘 되겠다’는 직감이 왔다. 연주가 끝난 뒤 카라얀협회의 마티아스 뢰더 대표께서 ‘이 단원들을 수없이 봤지만 눈빛을 보니 결과는 이미 나왔다’고 말씀해 주셨다”며 웃었다. 전설적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을 기리는 카라얀협회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주최하는 이 콩쿠르는 젊은 스타 지휘자를 여럿 배출해 왔다. 앞선 우승자로 네덜란드 국립오페라단 상임지휘자 로렌조 비오티(2015년), 스페인 국립관현악단 상임지휘자 다비트 아프캄(2010년) 등이 있다. 우승자는 1만5000유로(약 2150만 원)의 상금과 다음 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지휘할 기회를 얻는다. 이번 우승은 “독일에서 지휘를 공부하는 아내의 따끔한 조언과 지휘자 사이먼 래틀 경의 덕”이라고 했다. 윤 씨는 래틀 경이 이끄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SO)의 2022∼23년 시즌 유럽 투어에 부지휘자로 참여했다. 지난해 11월엔 래틀 경과 정명훈, 첼리스트 요요마 등이 속한 기획사 아스코나스 홀트와 전속 계약을 맺기도 했다. “예전엔 테크닉이 수려하고 정확한 지휘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두 사람을 통해 테크닉 너머의 감정을 연주자들로부터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단 걸 깨달았죠. 감사하게도 유럽 투어 동안 래틀 경이 단순 보조가 아닌 ‘진짜 지휘’를 시켜주셨어요. 그때 많이 보고 배웠죠.” 이날 대회 결선 무대에서 윤 씨는 멘델스존의 교향곡 3번 가단조 ‘스코틀랜드’ 등 총 4곡을 지휘했다. 신동훈의 체임버 오케스트라곡 ‘쥐와 인간의’와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서곡은 직접 골랐고, 모차르트의 아리아 ‘오, 그대 온화한 별이여’는 지정곡으로 지휘했다. 독일 뮌헨 음대에서 작곡과 지휘를 공부한 윤 씨는 2019년 세계적 음악 축제 ‘그슈타트 메뉴인 페스티벌’의 지휘 부문에서 최연소로 1등을 거머쥐며 이름을 알렸다. 2019∼2021년 독일 노이브란덴부르크 극장·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했다. 그는 “언젠가 BRSO와 호흡을 맞춰 보는 게 꿈이다. 마리스 얀손스(1943∼2019)가 지휘한 BRSO의 공연을 보고 지휘를 꿈꾸게 됐기 때문”이라며 “오케스트라의 일부로서 손발을 맞추며 최고의 연주를 안겨 줄 수 있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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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가 겸 배우 겸 음악인이 펼쳐놓은 “듣도 보도 못한 쑈”

    무대 위 볼품없는 냉장고 하나가 덩그러니 웅웅댄다. 그 옆에 무심히 선 배우는 토막글을 소리 내 읽기도, 콩트를 벌이기도 하며 80분간 이어달리기를 한다. 짧게는 2분, 길게는 7분 길이의 쇼트폼 같은 20개의 쇼가 서사적 맥락 없이 연잇는 공연은 언뜻 낯설다. 그러나 어릴 적 책 귀퉁이에 그린 낙서를 빠르게 넘기던 놀이처럼 관객 마음에 잔상을 새겨놓는다. 다음 달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컨템포러리 시즌 ‘싱크넥스트23’ 중 ‘백현진 쑈: 공개방송’이 공연된다. 배우 김고은, 가수 장기하 등 소극장에서 만나보기 힘든 톱스타들이 출연 배우로 총출동해 화제가 된 작품이다. 작품의 연출과 미술감독, 출연까지 두루 맡은 아티스트 백현진(51)을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내가 재밌어하고 잘하는 재료를 한데 모은, 듣도 보도 못한 공연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PKM갤러리 소속 화가인 백 씨는 드라마 ‘모범택시’(2021년)의 박양진 회장 등 강렬한 악역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연기해 배우로서도 눈도장을 받았다. 음악인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국악퓨전밴드 이날치의 장영규와 함께 ‘어어부 프로젝트’로 활동하던 시절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년)에서 음악감독으로 활약했다. 또 전설적인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슈(1940∼2009)의 2003년 내한공연 ‘마주르카 포고’ 에선 그의 음악이 안무곡으로 사용됐다. 이번 공연에선 단막극과 낭송을 비롯해 무대 소품으로 설치미술 작품을 활용하는 등 여러 장르를 빌려 ‘문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인간이 변화하는 존재일 뿐, 진보하는 존재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누가 우월한지 끝없이 비교하는 사회에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다”며 “형식은 독특하지만 내용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쉬운 문장으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배우 한예리와 코미디언 문상훈 등 이번 공연 무대에 오르는 사람만 총 20여 명에 달한다. “주어진 제작비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조합”인 이들은 순전히 ‘재미’를 위해 모였다. 출연진은 장면을 들락날락하며 연기도 하고 토크쇼도 한다. “그동안 캐스팅 타율이 경이로운 수준이었는데 이번엔 많이 까였어요.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출연을 제안했죠. 작품이 흥미롭다는 이유만으로 단번에 ‘오케이’한 고마운 사람들이 출연합니다.” 여러 매체를 종횡무진하며 ‘괴짜’ 대접을 받는 백 씨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재미’다. 최근에는 재미로 밴드 활동명을 백현진씨에서 ‘벡’현진씨로 바꿨다. 그는 “20, 30대까지만 해도 별명이 ‘홍대 염세왕’일 정도로 냉소적이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일상에서 재미를 느끼고자 훈련했다”며 “꾸준히 귀동냥, 눈동냥 하며 예술적 영감을 찾는다”고 고백했다. “1995년에 처음 공연했을 땐 다들 ‘저 인간 뭐냐’고 했어요. 제 색깔대로 오래 하다 보니 이젠 사람들이 좋아해 주네요. 운신의 폭이 넓어진 만큼 과거의 저처럼 오랜 무명에 놓인 좋은 ‘일꾼’들과도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4만5000∼5만5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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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대 미국을 흔든 로큰롤의 열기 속으로

    “흙냄새 나는 영혼이 나의 멤피스 이곳에 살아 숨 쉬네.”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국내 초연된 브로드웨이 뮤지컬 ‘멤피스’는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1950년대 미국 남부 멤피스를 배경으로 백인 DJ 휴이와 흑인 가수 펠리샤가 꿈과 사랑을 나누며 로큰롤을 세상에 전파하는 이야기다. 작품은 당시 흑인들의 음악으로 여겨지던 로큰롤을 대중화시킨 라디오 쇼 DJ 듀이 필립스의 실화를 토대로 한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2009년 초연된 이 작품은 이듬해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복고풍 넘버와 무대 세트는 관객을 1950년대 미국으로 데려다준다. 록밴드 본조비의 멤버 데이비드 브라이언이 작곡한 넘버는 로큰롤부터 리듬앤드블루스, 가스펠 등을 다채롭게 오간다. 브라이언은 “어릴 적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됐던 아픔을 떠올리며 작곡했다”고 밝혔다. 친숙한 선율과 박자가 향수를 자극하지만 심금을 울리는 대목 없이 기계적인 ‘솔’만 남은 점은 아쉬웠다. 지난달 28일 공연에선 아이돌 그룹 비투비 출신 가수 이창섭이 휴이 역을 맡아 천진난만한 캐릭터를 매끄럽게 묘사해냈다. 펠리샤 역은 배우 손승연이 맡아 ‘컬러드 우먼(Colored Woman)’ 등 고음의 넘버를 파워풀하게 소화하며 관객의 환호를 샀다. 휴이 역은 박강현과 고은성이, 펠리샤 역은 정선아와 유리아가 번갈아가며 연기한다. 백인인 휴이의 시혜적 시선이 아닌 펠리샤의 주체적인 면모를 강조한 서사는 ‘음악으로 차별에 맞선다’는 메시지를 모순 없이 드러내는 데 일조했다. 10월 22일까지, 7만∼16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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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된 생을 탁 꺼버리고 싶을때… 토카타는 나를 일으켜 세운 희망”

    “나이가 들면 설렘도 미움도 옅어져요. 편안하지만 서글픈 일이죠. 엉덩이 뼈를 다쳐 병상에 누워 딸이 녹음해준 대본을 들으며 지난 인생을 잠잠히 돌아봤어요. 이 연극은 내 삶과 같습니다.” 배우 손숙 씨(79)가 19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개막하는 신작 연극 ‘토카타’에 대해 말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3일 그를 만났다. 이탈리아어로 접촉을 뜻하는 ‘토카타’에서 그는 세상과 단절된 노년의 여성을 연기한다. 연출을 맡은 손진책 감독은 “처절한 고립 속에서도 관세음보살의 따스한 눈으로 인생을 보게 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손씨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던 찬란한 시간이 전부 지나고 홀로 남은 노인이 살아가야만 하는, 즉 나의 이야기”라며 “이름을 걸고 하는 마지막 연극이 될 거라는 생각에 부담이 크다. 연륜이 쌓인다 해서 연기가 쉬워지진 않는다”고 고백했다. 이작품은 손 씨의 연기 인생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됐다. 고려대 사학과 재학 중 1963년 연극 ‘삼각모자’로 데뷔한 그는 자상한 어머니와 세련되고 냉철한 여인 등 다채로운 배역을 넘나들며 연극계 ‘대모’로 불린다. 출연한 연극만 200편이 넘는다. 연습 전 자신의 대사뿐 아니라 상대방의 대사까지 모두 외우는 성실함과 탁월한 기억력을 지녀 ‘지적인 배우’로도 유명하다. 그는 다시 하고 싶은 연극으로 1999년 초연된 대표작 ‘어머니’를 꼽았다. ‘엄마를 부탁해’, ‘메리크리스마스, 엄마’ 등을 짚으며 “엄마는 나와 잘 맞고, 잘할 수 있는 배역”이라고 했다. 드라마 ‘더 글로리’와 ‘나의 아저씨’, 영화 ‘봄날’ 등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젊은 시청자들이 ‘아이유 할머니’ ‘더 글로리 할머니’라고 불러주는 게 재미있다”며 웃었다. ‘토카타’는 등장인물 3명이 각각 독립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총 4개 ‘악장’으로 이뤄졌다. 뚜렷한 서사도, 화려한 무대장치도 없다. 완만한 파고로 침전과 부유를 반복하는 산문시 같은 대본은 극작가 배삼식이 손 씨를 염두에 두고 썼다. 배 작가는 “연극적 장치 없이 순수한 목소리가 들려지길 원했다. 손숙 씨가 아니면 안 됐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경을 헤매는 중년 남성 역은 배우 김수현(53)이 맡았다. 춤추는 사람 역의 무용수 정영두(49)는 미니멀한 피아노 선율을 배경으로 고독을 몸으로 표현한다. 공연은 당초 올해 3월 개막할 예정이었지만 연습실로 향하던 손 씨가 넘어져 엉덩이뼈에 금이 가면서 미뤄졌다. 그는 이후 3개월 동안 걷지 못했다. 제대로 걷기 시작한 건 2개월도 채 안 됐다. 시력이 나빠진 그는 딸이 해 준 녹음을 듣고 또 들으며 대사를 외웠다. “1악장 마지막에 ‘이 오래된 생을 탁 꺼버리고 싶다’는 대사가 나와요. 누워 있는 동안 그 대사를 계속 떠올렸어요. 뼈가 붙을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니 죽을 맛이더군요. ‘토카타’는 그 고립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은 그의 오랜 연기 열정에 다시 불을 지폈다. 어릴 적 경남 밀양에 살았던 그는 할아버지가 구독하던 동아일보의 연재소설을 빠짐없이 읽으며 이야기를 사랑하게 됐다. 고교 시절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이 쓴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를 접한 경험은 연기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그는 “60년 전 데뷔 무대를 앞두고 들떴던 마음을 요즘 새삼 느낀다. 아침마다 연습 갈 생각에 행복하다”고 했다. 연습은 매일 오후 1시부터 길게는 9시까지 이어진다. “연기는 오르고 올라도 끝없는 산처럼 느껴져요. 그러니 내 연기 인생의 전성기는 바로 지금이에요. 살아 움직이는 한 연기할 거고, 다시 태어나도 무대에 설 겁니다. 훗날 묘비명은 이렇게 써 달라고 딸에게 미리 알려뒀어요. ‘손숙, 열심히 연극하다 간 사람’(웃음).” 다음 달 10일까지, 5만∼7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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