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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네이버 넥슨 넷마블 등 정보기술(IT)기업과 바이오제약기업 셀트리온이 그제 발표된 71개 기업집단 중에서 순위가 껑충 뛰어올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 등을 감시하기 위해 매년 이맘때 ‘자산 5조 원 이상 기업집단’을 지정한다. 자산 규모에 따라 순서가 매겨지기 때문에 ‘정부 공인’ 재계 서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중에서도 기준이 더 높은 ‘자산 10조 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에는 최대 그룹들이 몰려 있어 평소엔 순위 변동이 많지 않다. 그런데 초유의 코로나19 사태가 대기업의 서열을 바꿔 놨다. 국민들의 소비 패턴이 급변하고, 저금리와 유동성 증가로 유망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 40개로 6개 늘고 순위도 많이 바뀌었다. ▷순위가 크게 오른 카카오(작년 23위→올해 18위), 네이버(41위→27위), 넥슨(42위→34위), 넷마블(47위→36위)은 ‘비대면 트렌드’ 혜택을 받은 IT, 게임 기업이다. 셀트리온(45위→24위)도 코로나 치료제 개발 등으로 코로나19 덕을 봤다. 2015년 처음 자산 5조 원을 넘어선 카카오는 지난해 자산 규모를 20조 원까지 키우며 순위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계열사 수도 118개로 1위인 SK그룹(148개) 다음으로 많다. 최근 뉴욕 증시에 상장한 쿠팡은 단박에 60위로 진입했다. 1위 삼성부터 17위 부영까지는 작년과 순위가 같았다. ▷과거 한국의 재계 서열을 가장 크게 뒤흔든 사건은 외환위기였다. 1998년 30대 기업 중 23년이 지난 지금 30위 안에 남은 그룹은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한화 GS 현대중공업 한진 두산 LS 대림 현대백화점 금호아시아나 HDC 효성이다. GS LS가 LG그룹에서,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HDC가 옛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만큼 11곳만 남아있는 셈이다. 재계 3위였다가 해체된 대우그룹을 비롯해 쌍용 동아 고합 진로 해태 등 19개 그룹은 사라지거나 30위 밖으로 밀렸다. ▷작은 연못 안에선 커보여도 넓은 세계무대에선 한국 기업 규모가 여전히 작다. 작년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중 한국 기업은 14개에 불과했고 한국 기업 중 1위인 삼성전자의 순위도 전년도 15위에서 19위로, SK㈜는 73위에서 97위로 밀렸다. 전년도에 비해 순위가 오른 현대차(94위→84위)를 포함해 100위 안에 든 기업은 3개뿐이었다. 반면 500대 기업 중 중국 기업은 119개에서 124개로 늘면서 미국(121개)을 사상 처음 뛰어넘었다. 미중이 벌이는 경제패권 전쟁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경쟁하고 살아남으려면 성공적인 투자와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더 키워야 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만사를 경제만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사실 경제 문제가 아닌 세상일도 드물다. 코로나19 탓에 결혼식 치르기가 어렵다곤 해도 1년 전보다 21.6% 줄어든 2월의 혼인 건수, 5.7% 감소한 출생아 수는 청년 취업난과 전셋값 급등을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 혼인 건수가 출산율을 예고하듯 결혼을 하려면 연애부터 해야 한다. 연애는 시작 단계에서 높은 ‘초기 비용’이 드는 일이다. 평소 안 다니던 비싼 음식점, 카페를 찾아다녀야 하고 각종 기념일에 선물도 준비해야 한다. 기간이 길어지면 비용은 하강곡선을 그리지만 헤어지는 순간 그동안 쓴 돈은 회수 불가능한 ‘매몰 비용’이 된다. 게다가 비용 분담이 보편화됐다고 해도 여전히 연애 과정에서 ‘경제력’은 남성에게 더 많이 요구되는 경향이 있다. 결혼할 때 주거 문제도 남성이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악화된 일자리 상황, 전셋값 상승에 대한 2030 남성의 분노가 동년배 여성보다 큰 이유가 이런 데도 있을 것이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진 남성은 20대 72.5%, 30대 63.8%로 여성(20대 40.9%, 30대 50.6%)보다 훨씬 높았다. 현 정부 초기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은 거의 사어(死語)가 됐지만 핵심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지금까지 일자리에 악영향을 미친다. 생산성 증가, 고용주 지불능력과 무관하게 정부가 ‘노동의 가격’인 임금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면 일자리가 감소한다는 당연한 경제원리를 청년층을 중심으로 온 국민이 큰 대가를 치르며 실감하고 있다. 작년 7월 말 정부 여당이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 3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을 때 “이번엔 정말 전셋값이 잡힐 것”이라고 기대한 청년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임대가 규제는 폭격 다음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확실한 방법”이란 경제학자들의 경고는 어김없이 적중해 전세난만 가중됐다. 정부가 선진국 모범사례로 제시했던 독일 베를린의 월세 상한제 역시 주택난 가중 등 부작용만 낳고 최근 독일 헌법재판소의 무효 판정을 받았다. 지난 4년간 한국 경제는 반시장적 비주류 경제학의 실험장이었다. 결과는 처참했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선한 의도’를 앞세운 검증되지 않은 정책의 위험성을 국민들이 깨닫게 됐다는 점이다. ‘문재인대(大) 경제학과’에 4년 다닌 효과로 한국인의 ‘경제 지능’이 크게 높아졌다. 문제는 정부 여당의 경제 이해도가 국민 눈높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청와대 부대변인이 “압축하다 보니 생긴 오해”라고 해명하긴 했지만 “신용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것은 구조적 모순”이란 지난달 말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국민들이 깜짝 놀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거로 확인된 국민의 부동산 세금 불만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벌어지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논쟁에서도 경제 사안에 대한 이해력 부족이 드러난다. 여권이 밀어붙인 부동산정책 실패로 집값이 폭등해 실현된 소득 없이 보유세를 더 내야 하는 국민 부담을 덜어주는 당연한 일을 하면서도 과세 대상을 몇 %로 맞춰야 표에 도움이 될지만 계산하고 있다. ‘보려 하지 않는 이들보다 더 눈먼 사람은 없다’는 영어속담처럼 경제 문제를 경제가 아닌 정치, 이념의 색안경을 통해 보려 한다면 눈앞에 놓인 뻔한 해답조차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비트코인, 도지코인 등 민간 가상화폐처럼 블록체인 기술로 만들어졌지만 중앙은행이 가치를 보증하는 디지털화폐를 ‘중앙은행 발행 가상화폐(CBDC)’라고 한다. 수시로 가격이 널뛰는 민간 가상화폐와 달리 CBDC는 가치 저장, 교환 수단으로 안정적이다. 민간 가상화폐의 인기를 거품으로 보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등 전문가들마저 CBDC가 ‘화폐혁명’의 최종 승자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만든 건 국경을 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학 발전을 돕기 위한 것이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 저우샤오촨(周小川) 전 행장은 18일 이렇게 강조했다. 내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 전 출범할 것으로 알려진 디지털 위안화가 중국 ‘국내용’일 뿐 미국 달러화 패권에 도전하기 위한 시도가 절대 아니라며 자세를 낮춘 것이다. ▷CBDC는 은행 계좌, 신용카드 없이 휴대전화 앱 등을 이용해 결제, 송금이 가능하고 기존 통화보다 발행 및 거래 비용도 현저히 낮다. 코로나19 같은 상황이라면 정부가 동시에 전 국민 ‘전자지갑’에 지원금을 쏴줄 수도 있다. 거래 기록이 모두 남기 때문에 돈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어 범죄 등으로 인한 ‘지하경제’도 차단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화폐인 셈이다. ▷미국 유럽연합(EU) 한국 등 주요국 대부분이 도입을 저울질하고 있지만 중국이 제일 앞서 있다. 작년 10월부터 주요 도시에서 시험을 시작해 올해 3월엔 청두에서 4000만 위안(약 68억6000만 원)어치를 나눠받은 20만 명이 1만여 개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성공적으로 사용했다. 2, 3년 안에 중국 화폐 유통의 30∼50%가 디지털로 바뀔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조 바이든 행정부는 디지털 위안화가 미국에 위협요인이 될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국제 은행 간 거래의 38.3%를 차지하는 달러에 비해 위안화 비중은 2.4%로 당장은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미국 제재를 받는 이란, 북한 등과 중국이 거래할 때 디지털 위안화는 미국 주도 국제 금융결제망을 피해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날 런민은행 현직 부행장이 “공식 출시 시간표는 정해지지 않았다. 우리 목표는 달러화나 다른 국제 통화를 대체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극구 해명한 것도 미국 측 분위기가 심상찮아서다. ▷2005년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은행 북한 계좌를 미국 재무부가 동결했을 때 북한 지도부에선 “피가 마르는 심정”이란 말이 나왔다. 달러 중심의 금융결제망은 이런 식으로 미중 신(新)냉전에서 가장 강력한 ‘차가운 무기’가 될 수 있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제조업에서 시작된 미중 간 ‘테크 전쟁’이 바야흐로 국제금융 영역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책상 서랍에 봉투 3개를 넣어 뒀다. 큰 위기가 올 때 한 개씩 꺼내 보라.” 새로 취임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게 떠나는 전임자가 이렇게 귀띔했다. 얼마 뒤 큰 어려움이 닥치자 CEO는 첫 번째 봉투를 뜯었다. 안에는 “전임자를 비난하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경영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봉투 3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조직의 새 수장은 임기 초 문제에 부닥칠 때 ‘전임자 탓’을 하게 마련이다.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대통령이 봉투를 남겼을 리 만무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 기술을 현란히 구사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출범해 소득주도성장을 강하게 밀어붙이던 중 처음으로 경제정책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랬다. 2018년 최저임금이 16.4% 인상되자 취업자 수 증가폭이 전년 31만6000명에서 9만7000명으로 뚝 떨어졌다. 문 대통령은 “오래 계속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해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고 그와 함께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돼 왔다”고 했다. 무리한 임금 상승으로 서민 일자리가 줄어든 걸 전 정부들 탓으로 돌린 것이다. 2018, 2019년 2년 연속 경제성장률이 2%대로 떨어지면서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이야기 속 CEO가 열어본 두 번째 봉투엔 “사람을 바꾸라”는 메모가 들어 있다. 실패의 책임을 물어 대대적 인사를 단행하면서 경영전략을 수정하라는 뜻이다. 현 정부도 개각과 정책 전환이 필요해졌는데 작년 초 시작된 코로나19가 엉뚱한 영향을 미쳤다. 최악의 경제 성적표는 팬데믹의 높은 파고에 묻혔고,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힘입어 지난해 4월 총선에서도 압승했다. 돈을 풀라는 청와대, 여권 요구에 저항하는 척 부응한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자리를 지켰다. 비켜간 줄 알았던 위기는 대통령이 “자신 있다”던 부동산 문제에서 다시 터졌다. 3년 넘게 공급 확대 없이 규제만 강화해 눌러놨던 집값이 저금리를 타고 폭등했다. 준비 없이 시행한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요구권은 전세의 씨를 말렸다. 장관 교체 등을 신속히 실행에 옮겨야 했지만 “전 정부에서 부동산 규제들이 다 풀어진 상태에서 자금이 부동산에 몰린 상황”(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라며 또 ‘전임정권 탓’을 했다. 하지만 그 카드의 유효기간은 이미 끝나 있었다. 3년 6개월 최장수 국토부 장관은 작년 말 물러나야 했다. 여론에 떠밀렸다곤 해도 그때가 정책 궤도를 바꿀 거의 마지막 기회였다. 그런데 청와대는 ‘공공주도 개발주의자’ 변창흠 국토부 장관을 기용하며 기존 정책기조를 강화했다. 곧이어 변 장관이 사장을 지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터졌다. 일자리 참사, 증세로 누적된 국민 분노에 도덕성 불신까지 겹친 복합위기 속에서 4·7 재·보궐선거를 치렀다. 세 번째 중대위기를 맞은 조직의 장에게 남겨진 마지막 메시지는 “후임자를 위해 봉투 3개를 준비하라”는 것이다. 돌이키기엔 늦었으니 마무리에 신경 쓰라는 주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대권 도전을 위해 사의를 표한 정세균 국무총리 자리에 홍 부총리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다만 대통령 임기가 13개월 남은 시점에 정부 대표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3년짜리 원장으로 실패한 ‘소주성’ 입안자인 홍장표 전 경제수석을 앉히려는 건 어이없는 일이다. 현 정부에서 못 핀 소주성의 꽃이 차기 정부에서 활짝 개화하길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미련일 뿐이다. 어떤 후임자도 그런 부담스러운 유산은 물려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영등포.” “과천.” 1990년대 중반까지 매일 밤 서울 도심의 도로에선 조수석 차창을 연 택시기사들이 줄지어 선 사람들 앞을 지나며 행선지를 외쳤다. 대강 목적지가 일치하면 손님들은 재빨리 차문을 열고 올라탔다. “방향 맞으면 같이 가시죠”란 말만 던져 놓고 합승 손님을 찾느라 바쁜 기사에게 먼저 탄 승객은 불만이 있어도 대놓고 항의하기 힘들었다. ▷늦은 밤 달리 귀가할 방법이 없어 합승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폐해도 컸다. 손님을 찾는 택시들이 수시로 아무 데나 정차하면서 주요 도로에선 심야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요금 다툼도 잦았다. 나중에 탄 승객의 목적지가 앞 승객 경로에서 벗어나 멀리 돌아간 경우 “왜 미터기 요금을 다 내라고 하냐”는 손님과 기사 간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통행금지가 풀린 1982년 택시 합승은 전면 금지됐다. ▷39년 만인 올해 상반기 중 택시 합승이 다시 시작될 전망이다. ‘모빌리티 규제 혁신’ 일환으로 정부는 택시호출 앱을 활용한 합승을 허용하기로 했다. 오후 10시∼오전 4시 심야시간에 스마트폰 앱으로 택시를 부르는 고객에게 미리 합승 동의 여부를 확인한 뒤 경로가 비슷한 동성(同性)의 승객만 함께 태우는 방식이다. ▷2019년 8월부터 정부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스타트업 ‘반반택시’가 합승 시범 서비스를 해왔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에 기반한 ‘앱 미터기’로 승객별로 요금을 따로 매겨 택시비는 30% 정도 줄어든다. 1km 안에 있는 고객들의 이동 경로가 70% 이상 일치하고, 추가되는 시간이 15분 이내일 때에만 합승이 이뤄진다. ▷범죄 가능성이 합승 재개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다. 불법이지만 공공연히 이뤄지던 합승이 줄어든 결정적 계기도 범죄였다. 1997년 11월 서울 강남의 호텔 주변에서 택시기사와 짜고 합승객으로 가장해 취객, 여자 승객의 돈을 빼앗은 ‘택시 떼강도’ 일당이 잡힌 뒤 합승을 꺼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이후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셈) 등 국제행사를 치르면서 정부가 단속과 처벌 수위를 높이자 합승은 자취를 감췄다. ▷관련 업체들은 앱을 통해 기사와 승객의 신원이 실명 확인되고, 이성(異性)은 함께 못 태우게 함으로써 범죄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정보통신기술(ICT)로 과거 합승의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뜻이지만 그사이 국민들은 안전 문제에 훨씬 민감해졌다. 연내에 코로나19가 종식될 가능성이 작은데 상반기 중 택시 합승을 허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낯선 사람과 밀폐공간에 머무는 걸 꺼리는 사람들이 많아진 데다 자칫 합승을 통한 감염병 확산 우려까지 있다는 지적이다. 규제 완화는 좋은 일이지만 사회 상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인터넷 교보문고 3월 2주 차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2위, 종합순위 10위에 오른 책은 ‘주택과 세금’이었다. 초판 1만 부가 매진돼 2만5000부를 더 찍었고 이마저 부족해 1만5000부를 더 찍고 있다. 작가는 다름 아닌 국세청. 정부가 부동산 세제를 너무 자주, 많이 뜯어고치는 바람에 국세청의 세금 해설서가 일반인이 줄 쳐 가며 읽는 필독서가 됐다. ▷책의 최대 고객은 한국세무사회다. ‘양포세(양도소득세 상담을 포기한 세무사)’가 늘어나자 1만 권을 구입해 회원들에게 배포하기로 했다. 현행 양도세는 집 채수, 공시가격, 주택 소재지의 규제 지역 여부, 취득 시점, 보유 기간, 실제 거주 기간에 따라 수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하나라도 실수해 틀린 세액을 고객에게 알려줬다간 항의를 받는 건 물론이고 신고불성실 가산세 등 피해까지 물어줘야 해 세무사들이 양도세 상담을 꺼릴 수밖에 없다. ▷“집을 팔려고 하는데 양도세 계산법이 어려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국세청에 서면질의와 인터넷 상담을 하고 세무서 2곳을 직접 방문해 물어보고, 126 국세상담센터와 개인 세무사 대면 상담도 해봤지만 모두 다른 해석을 한다.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오를 정도로 양도세는 난해한 세금이 됐다. 주택 수와 소재지, 보유 기간 등에 따라 세율이 바뀌는 종합부동산세도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공동주택 공시가격 열람이 16일 시작된 이후 국세청 종합부동산세 계산 사이트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경쟁력 있는 조세’의 조건으로 공평성, 탈세 방지, 예측 가능성, 경제적인 납세협력비용 및 행정비용을 제시하고 있다. 수시로 바뀌어 납세자가 세금 부담을 예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부동산 세제는 ‘예측 가능성’이 하락하고 있다. 세금 내는 데 드는 납세자의 시간과 노력, 비용을 뜻하는 납세협력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연말정산 때를 빼면 세금 문제로 머리 쓸 일이 별로 없던 월급쟁이들까지 집 문제로 세제를 들여다보는 바람에 국세청이 ‘인기 작가’가 된 것이다. ▷부동산 세제가 ‘난수표’가 된 주된 원인 중 하나는 현 정부가 세금을 부동산대책의 수단으로 남용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덧댄 데를 또 덧대는 식으로 고치다 보니 세제가 복잡해졌다. 영국의 19세기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사랑을 하면서 현명해질 수 없는 것처럼 세금을 거두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내는 것 자체가 결코 즐겁지 않은 세금을 국민들이 ‘열공’하게 만드는 제도는 정상이라고 하기 어렵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나는 확실히 대상에 들어갑니다.” 종합부동산세 도입 기준을 놓고 정부 여당이 갑론을박을 벌이던 2004년 11월 주무부처 수장인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이런 말을 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빌라에 살고 있던 그는 강남구 도곡동 빌라, 역삼동 오피스텔 등 집 3채를 갖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 2년 차였던 당시 여권은 집값이 불안해지자 부동산 투기세력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기준선을 낮게 잡아 과세 대상을 늘리고 싶어 하는 열린우리당, ‘청와대 386’과 달리 이 부총리와 재경부는 종부세 최초 도입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범위를 최상위 부유층으로 한정하려고 했다. 과세 기준을 얼마에서 자를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재경부 세제실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이 부총리가 던진 한마디가 가이드라인이 됐다. “나만 포함시키면 돼.” 시세의 50∼60% 수준이던 기준시가로 봤을 때 이 부총리를 과세 대상 아래쪽 끝으로 포함시키는 선이 대략 9억 원이었다. 이 부총리의 뜻이 종부세 ‘9억 기준’이 처음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셈이다. “나도 부과 대상”이라고 장담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이듬해인 2005년 7만1000여 명에게 종부세가 처음 부과됐다. 증세(增稅) 논란에 정부는 “1% 미만 극소수 고가, 다주택 보유자만 내는 세금”이라고 대응했다. 하지만 그해 초 이 부총리가 물러나고 집값이 계속 뛰자 노무현 정부는 부과기준을 ‘6억 원 초과’로 낮추고 개인별이던 기준도 ‘세대 합산’으로 바꿨다. 집값 급등까지 겹쳐 종부세 대상자는 2006년 전국 주택보유 가구의 2.4%인 23만1000가구, 2007년엔 3.9%인 38만1000가구로 폭증했다. 이번 주초 정부는 작년보다 평균 19.1% 오른 아파트·다세대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발표했다. 보도자료 첫 쪽에 “공시가격 9억 원 초과는 전국적으로 3.7%”라고 강조했지만 작년 30만9000채였던 종부세 부과 대상 공동주택은 올해 52만5000채로 70% 늘었다. 서울의 종부세 대상이 ‘공동주택의 16%인 41만3000채’라지만 고가주택 대부분은 아파트이고, 서울 아파트가 168만 채란 걸 감안하면 서울 아파트 4채 중 1채가 종부세 대상이 됐다는 뜻이다. 강남3구,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을 넘어 강서·성북구 등에도 종부세 대상이 속출하고 있다. “종부세 내보는 게 소원”이란 농담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현 정부 부동산정책은 노무현 정부를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둘 다 주택 공급이 부족하고 금리까지 낮은 상태에서 증세, 대출 억제 등 온갖 대책을 쏟아냈는데도 집값은 폭등했다. 두 정부의 부동산정책의 틀을 모두 김수현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짠 것도 같다. 퇴임을 1년여 남기고서야 “부동산정책 말고는 꿀릴 게 없다”(노 대통령), “낙심이 큰 국민들에게 매우 송구하다”(문 대통령)며 부동산 실정(失政)을 인정하거나 사과한 것도 비슷하다. 임기 말 중산층으로 과세 대상이 급속히 확산한다는 점에서 종부세 문제도 14년 시차를 두고 두 정부가 같은 상황을 맞고 있다. 올해 공시가격 상승률은 노 정부 5년 차인 2007년 22.7% 이후 가장 높았다. 노 정부 임기 말 종부세 폭탄에 대한 불만 여론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 기준을 9억 원으로 높여 대상을 절반 이하로 줄이고 세율은 낮춘 뒤에야 잠잠해졌다. 두 정부의 ‘종부세 평행이론’이 마지막 장(章)까지 일치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작년 한국에서 여자아이 100명이 태어날 때 남자아이가 태어나는 비율, 즉 ‘출생성비’가 104.9명으로 관련 데이터가 남아 있는 1990년 이후 가장 낮았다고 통계청이 밝혔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출생성비가 103∼107명이란 점을 고려하면 정확히 중간 수준이다. ▷30년 전만 해도 상황이 많이 달랐다. 1980년경 시작된 출생성비 불균형이 정점에 달했던 1990년 한국의 출생성비는 116.5명으로 자연 상태를 심하게 벗어났다. 유교문화가 남긴 남아 선호 사상의 병폐(病弊)란 비판을 받으면서도 태아 성(性)감별과 낙태를 통해 남자아이만 골라 낳은 가정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1993년 ‘셋째 아이 이상’ 출생성비는 209.7명이란 극단적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 숫자도 지난해엔 106.7명으로 정상이 됐다. 중국 인도 베트남 등 남아 선호가 강한 나라에선 여전히 출생성비가 110명이 넘는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길고, 사건·사고 사망자도 남성이 많기 때문에 의도적 남초(男超) 출산이 없는 사회는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많아지는 게 정상이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자 80.3년, 여자 86.3년으로 6년 차이가 난다. 외국인을 뺀 주민등록 인구로는 한국도 2015년 6월에 이미 여성 인구가 남성을 앞질렀다. 남성 외국인의 취업이민이 많아진 영향으로 통계청 추계인구로는 2029년에 진짜 여초(女超)사회에 진입할 전망인데 출생성비 하락은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 ▷전체 인구는 남자가 많지만 사회 곳곳에선 이미 ‘여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교사, 공무원 등의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올해 임용될 서울지역 국공립 중등학교 교사 10명 중 8명(80.9%)은 여성이다. 이번 학년도 공립초등학교 교사 합격자 가운데 96.8%도 여성이었다. 국가공무원 중 여성 비율은 2017년 말에 50.2%로 남성을 넘어섰다. 과도한 쏠림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인위적으로 해결할 순 없는 문제다. 일자리를 둘러싼 한국 청년 남녀 간의 신경전도 넓게 보면 인구구조 변화의 한 단면일 수 있다. ▷출생성비를 왜곡하던 남아 선호가 자취를 감춘 데엔 고령화에 따른 의식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고령층이 많이 돌려보는 ‘어느 요양원 의사의 글’의 내용은 이렇다. “요양원 면회 온 가족의 위치를 보면 촌수(寸數)가 나온다. 침대 옆에 바싹 붙어서 챙기는 여성은 딸, 그 옆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건 사위, 문간쯤에 서서 밖을 보는 남자는 아들이다.” 과장된 우스개지만 자녀와의 ‘정서적 교감’이 노후 생활에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인구구조를 바꿔 놓고 있을 수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못(nail)이 없어서 편자(horseshoe)가 사라졌고, 편자가 없다 보니 말(馬)까지 잃었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결국엔 ‘왕국’이 파괴된다. 21세기엔 반도체가 편자의 못이다.” 지난달 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자동차용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개 품목 글로벌 공급망 검토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한 발언이 세계 경제계에 충격을 던졌다. ▷오랜 기간 미국인에게 말은 농사에 필요한 기초 생산력이자 철도 등장 전까지 유일한 장거리 이동수단이었다. 말발굽을 보호하는 편자와 편자를 고정하는 못은 자동차 타이어만큼이나 핵심 부품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편자를 말발굽에 박을 때 쓰는 못’이란 쉬운 표현으로 국가 경제력에 영향을 미칠 첨단 분야 소재·부품의 자국 내 생산 필요성, 경쟁국이 이 제품 생산을 독점할 때의 위험성을 강조한 것이다. ▷작년 코로나19 발생 초기 트럼프 행정부는 인공호흡기 등 기본적 의료기기조차 확보하지 못해 6·25전쟁 직후 제정된 ‘국방물자생산법’을 동원해 기업에 생산을 강제해야 했다. 수많은 세계적 기업이 있어도 정작 물건을 생산할 공장은 중국 동남아시아 등 해외에 있기 때문이었다. 유턴 기업에 대한 혜택을 대폭 늘렸지만 떠났던 공장이 돌아오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번 조치는 중국을 겨냥했다. 한국(34.7%)이 바짝 뒤쫓고 있지만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은 37.5%로 세계 1위다. 희토류는 세계 수요의 58%를 중국이 공급한다. 중국의 반도체 점유율은 15%로 대만(22%) 한국(21%)에 밀리지만 12%인 미국을 추월해 일본(15%)과 3, 4위를 다투고 있다. 미국은 인텔 퀄컴 엔비디아 등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들을 보유하고도 반도체의 생산은 대만 TSMC와 삼성전자 등에 맡기고 있다. ▷최근엔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 차질로 GM, 포드와 테슬라 전기차 생산라인까지 멈춰 미국 정부의 마음이 급해졌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적 ‘집콕 트렌드’로 인한 가전제품 수요 급증, 텍사스주 한파와 정전 사태가 겹쳐 ‘못이 없어 말이 사라지는’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F-35 스텔스 전투기 등 미국 첨단무기 제작에 필요한 희토류 수출을 통제하려는 중국의 움직임은 경제 문제를 넘어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으로선 단기적으로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반도체 배터리 두 분야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미국 시장을 확대할 좋은 기회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중국산 희토류 수입을 줄이도록 압박하면서 양자택일을 요구해 올 경우 문제가 복잡해진다. 두 강대국 모두에 ‘못과 편자’를 팔아야 지탱하는 한국 경제의 숙명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도대체 왜 이럴까.’ 무척 궁금한데 평생 풀리지 않는 의문을 사람들은 몇 개쯤 안고 산다. 내 경우 “동네 목욕탕 체중계에서 잰 몸무게는 왜 항상 적게 나올까”가 바로 그런 거다. 수많은 목욕탕을 다녀봤지만 거기서 잰 체중은 어김없이 집에서 잰 것보다 0.5∼2kg 가벼웠다. 예전에야 바늘이 돌아가는 기계식 저울이라 그랬다 쳐도 요즘은 숫자가 표시되는 전자저울인데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목욕탕 주인에게 물어도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세운 가설(假說)은 이렇다. 다중이 함께 쓰는 물건인 만큼 목욕탕 체중계는 고장 나거나 오차가 생기기 쉽다. 그런데 몸무게에 신경 쓰는 고객의 경우 기대한 체중보다 무게가 더 나올 때 “체중계가 이상하다”며 목욕탕 직원에게 불만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적게 나오면 기분 좋게 넘어가는 일이 많을 것이다. 따라서 무게가 더 나오는 ‘불쾌한’ 체중계는 머잖아 저울업체의 수리를 받게 된다. 반면 가볍게 나오는 체중계는 그런 상태가 오래 유지된다. 결과적으로 내가 올라서는 체중계는 ‘기분 좋은’ 쪽일 확률이 높아진다. 집권 5년 차에 들어선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서 ‘숫자’의 정확성이 문제 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올해 신년사부터 그랬다. 대통령은 1월 11일 신년사에서 “지난해 한국의 성장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1위”라고 했다. 성장률이 마이너스 1.0%였지만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은 더 큰 폭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기 때문이었다. 플러스 성장한 중국(2.3%), 대만(3.1%)이 OECD 회원국이 아닌 만큼 당시로선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후 노르웨이가 예상(―1.2%)보다 높은 ―0.8%의 성장률을 내놓자 한국은 OECD 2위로 밀렸다. 일반적으로 선진국 경제통계가 한국보다 늦게 집계된다는 걸 고려하지 않고 연초에 성급히 ‘1등 자랑’을 했다가 머쓱하게 됐다. 역시 신년사에서 대통령이 약속한 ‘전 국민 코로나 백신 무료접종’의 국민 부담은 ‘0원’이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병원 접종비의 70%를 건강보험에서 끌어다 쓸 계획이어서다. 근로자와 기업이 낸 보험료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은 ‘문재인 케어’ 탓에 3년 연속 적자여서 올해에도 보험료를 올리려 하고 있다. 결국 국민은 자기가 낼 건보료로 백신을 맞는 셈이 됐다. 전남 신안군 임자대교에서 이달 5일 열린 해상풍력단지 투자협약식에서 대통령은 “(완공 후 생산될) 8.2GW(기가와트)의 전력은 서울과 인천의 모든 가정이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라고 했다. 문제는 48조5000억 원의 투자와 2030년까지 공사가 차질 없이 진행돼도 8.2GW의 전력이 실제로 생산되는 일은 없다는 거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최대 생산전력은 8.2GW지만 바람 세기에 따라 기복이 심한 풍력발전 특성상 실제 생산량은 그것의 30%를 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틀린 숫자를 대통령이 직접 만들진 않는다. 하지만 해당 부처, 청와대 참모들이 써주는 숫자가 자주, 그것도 한쪽 방향으로만 계속 틀리면 문제가 뭔지 꼼꼼히 따져보는 게 정상적인 리더다. 국민의 소득분배가 악화됐을 때 마음 편한 쪽으로 통계 방식을 바꿔 오거나, 정상적 일자리는 줄었는데 ‘세금 알바’를 잔뜩 늘려 개선된 고용통계를 보고하는 공무원들은 대통령 ‘심기 경호’에만 도움 되는 쪽으로 고장 난 체중계나 마찬가지다. 이런 걸 바로잡지 않고 대통령이 기분 좋은 숫자에 취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국민이 살고 있는 엄혹한 현실에선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지난 1년여 동안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45)만큼 ‘롤러코스터’를 탄 기업가도 드물 것이다. 2010년 창업해 국내 1위 배달 앱으로 키운 ‘배달의민족’(배민)을 2019년 말 40억 달러(약 4조4300억 원)에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해 벤처 성공 신화를 이뤘지만 ‘알고 보니 게르만 민족’ 등 뒤따르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작년 4월 총선을 앞두고도 배민은 자영업자들이 내는 수수료 체계 개편을 시도했다가 “영세 상인을 착취하는 독점기업”(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의 공격을 받고 포기해야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1월 기업결합 승인 조건으로 DH의 자회사인 ‘요기요’ 매각을 요구하면서 인수합병(M&A) 무산 위기까지 맞았지만 결국 DH가 요기요를 팔기로 결정해 위기를 넘겼다. ▷김 의장이 한국인 중 첫 ‘더 기빙 플레지’ 회원이 됐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부부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시작한 이 모임은 재산 10억 달러(약 1조1060억 원) 이상이고, 절반 이상 기부(give)를 서약(pledge)해야 가입할 수 있다. 재산이 1조 원 넘는 김 의장은 “자식들에게 주는 어떤 것들보다 최고의 유산이 될 것”이라고 서약문에 썼다. ▷서울예술대를 졸업하고 네이버 등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던 김 의장은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 등 감각적 광고카피, ‘치믈리에 자격시험’ 같은 튀는 이벤트로 배민을 키웠다. 인구 100여 명인 전남 완도군 구도에서 태어나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생활했던 그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에 이어 219번째 세계적 기부자가 됐다. 이 모임 회원 4명 중 3명은 김 의장 같은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이달 초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한국사회 문제 해결에 재산 절반(약 5조 원) 이상을 쓰겠다고 밝혔다. 단칸방에 살던 2남 3녀 중 맏아들로 “흙수저도 아니고 그냥 흙이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그는 “기업이 선한 의지를 가지면 사회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친지들에게 1450억 원어치 주식을 나눠준 것도 기부 덕에 미담이 됐다. ▷두 김 의장은 코로나19가 앞당긴 ‘언택트(비대면) 시대’ 최적의 기업을 창업했다는 게 공통점이다. 기부는 아니어도 밑바닥에서 출발해 세계적 게임기업을 키운 ‘3N’(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창업자들은 경쟁적으로 직원 처우를 개선해 다른 직장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막대한 기부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성공한 기업인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을 긍정적으로 바꾼 게 이 ‘개천용’들이 한국 사회에 준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새해 벽두에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세균 국무총리 등 ‘여당 3룡’의 공방은 ‘2월 기본소득 대전(大戰)’의 전초전이었다. 이 지사는 1월 들어 일찌감치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 총리가 지난달 7일 “더 이상 ‘더 풀자’와 ‘덜 풀자’ 같은 단세포적 논쟁에서 벗어나자”며 포문을 열었다. 아메바, 짚신벌레와 동격 취급을 받고 가만있을 이 지사가 아니다. 말은 “잘 새기겠다”고 했지만 몸은 경기도민 1인당 10만 원씩 ‘재난기본소득’을 나눠주는 방안을 행동에 옮겼다. 이 대표가 “거리 두기 중인데 소비하라고 말하는 것은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비쳤지만 다음 날 이 지사는 재난기본소득 지급 계획을 발표했다. 2월 들어 이 대표가 선수를 쳤다. 2일 국회 연설에서 ‘신(新)복지국가’ 구상을 내놓은 뒤 한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은) 알래스카 빼고는 하는 곳이 없다. 기존 복지제도의 대체재가 될 수는 없다”며 이 지사의 지론인 ‘기본소득’ 도입 주장을 공격했다. 정 총리도 외신과 인터뷰에서 “보편적 기본소득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시행한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거들었다. 이 지사는 6일 SNS에 글을 올려 되받아쳤다. 한니발, 나폴레옹, 방탄소년단(BTS),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로 거론되는 윤여정 씨까지 쭉 열거한 뒤 “선대들이 강제 주입당한 사대주의 열패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능한 일을 하는 것은 행정이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정치”라고 썼다. 집중포화를 맞고 탈당설까지 돌자 이 지사는 “극히 소수의 소망사항”이라며 강력 부인했다. 말싸움에서 져본 적 없을 것 같은 고수(高手)들의 공방이 이 지사의 대표 브랜드인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과 ‘기본소득’이란 복지정책을 놓고 벌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대표, 정 총리 지적대로 세계 최초로 한국이 기본소득을 본격 도입한다면 재정이 거덜 날 뿐 아니라 취약계층 보호 수준이 오히려 떨어질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의견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전문가들 대부분이 ‘작동 불가능한 정책’으로 꼽았던 게 이 대표가 첫 총리로 2년 8개월간 재직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다. 집권 5년차에 접어든 지금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해 임금을 높이면 밑에서 위로 경제 활력이 치솟는다는 소주성의 ‘분수효과’는 어디서도 확인할 수 없다. 성장률 3년 연속 하락,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일자리 쇼크만 남았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을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시험장’으로 본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는데 ‘소주성은 되고 기본소득은 안 된다’는 건 이 지사로선 부당하게 느낄 만하다.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을 놓고 1월에 이 지사와 신경전을 벌인 이 대표는 요즘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4차 재난지원금을 ‘보편+선별’로 지급하자며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대립하고 있다. 정 총리는 몇십조 원이 들지 모르는 자영업자·소상공인 피해보상 제도를 내놓으라고 기획재정부를 압박하면서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라고 쏘아붙였다. 겨우 1조4000억 원을 나눠주고 ‘포퓰리스트’로 불린 이 지사의 손이 작아 보일 지경이다. 분명한 건 이들이 나랏돈 쓰는 일에 한없이 대범하다는 점이다. 국민의 세금, 그것도 장차 자식·손자 세대까지 내야 할 세금을 당겨쓰는 문제다. 그런데도 몇 달 뒤 이들이 나눠준 돈으로 한우를 구워 먹으며 행복해할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허탈할 뿐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그제 러시아제 ‘스푸트니크V’ 백신과 관련해 “다양한 백신에 대해 문을 열어놓고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러시아, 중국 백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미국, 영국 백신의 공급 차질로 백신 쟁탈전이 심화하면서 세계 각국 정부로선 ‘꿩 대신 닭’이라도 필요한 상황인데 꿩 못잖은 닭이란 평가까지 나오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작년 8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가말레야 연구소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세계 최초로 승인했다. 이름도 냉전시대 로켓기술 경쟁에서 미국 기선을 제압한 첫 인공위성에서 따온 ‘스푸트니크V’로 지었다. 하지만 임상시험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서구 전문가들은 “이 백신을 맞는 건 러시안 룰렛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최근 국제의학지에 공개된 임상시험 결과 스푸트니크V의 예방 효과는 91.6%로 미국 백신들 못지않고 2∼6도의 상온 보관도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값도 20달러(약 2만2300원)로 화이자, 모더나의 절반 밑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스푸트니크V 자료가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푸틴과도 대화했다”고 말해 신뢰도가 더 높아졌다. ▷백신 접종 속도에서 이스라엘을 제치고 최근 1위에 오른 아랍에미리트(UAE)의 비결은 중국 백신 시노팜이었다. 작년 6월부터 시노팜 임상시험을 자국 내에서 진행한 UAE는 80% 정도의 예방 효과가 확인되자 12월 접종을 시작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 협조를 받아 지난해 11월 접종한 것으로 알려진 백신도 시노팜일 가능성이 있다.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나오긴 해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백신 지원을 무기로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백신 개발은 제약 바이오 화학 등 기초과학 역량의 종합 시험대다.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지난해 발표한 자연과학 연구 성과 지표에서 중국은 미국에 이은 2위로 9위인 한국을 크게 앞섰다. 러시아는 18위지만 구(舊)소련 시절 쌓은 기초과학 수준은 여전히 톱클래스로 평가된다. 게다가 백신 개발은 환자 수가 많을수록 유리하고, 마지막 단계엔 실험 중인 백신을 접종한 뒤 감염 위험을 감수할 인원까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지난해 한국 정부가 ‘K방역’ 성과를 자랑하면서 국산 백신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을 키울 때 전문가들 사이에서 “헛된 기대로 끝나기 쉽다”는 평가가 나왔다.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이 확실하게 입증되고, 멈춰선 경제와 일상의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된다면 굳이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를 가릴 필요는 없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코로나가 주는 고통의 무게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정부는 고통의 무게를 함께 나누는 것에 최고의 우선순위를 두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5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닥친 경제적 충격을 염려한 것이다. 지난해 10월에도 대통령은 “코로나로 인한 ‘불평등’은 국민의 삶을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고통의 무게가 모두에게 같지 않다”고 했다. 올해 발언이 한층 압축적이고 어감이 강해졌는데 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 지적처럼 코로나19로 인한 ‘K자형 양극화’는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수출 대기업, 금융회사 직원들은 수입이 감소하지 않고 재택근무만 많아졌다. 110만 명을 훌쩍 넘은 공무원들 역시 나랏빚이 늘었다고 월급이 줄진 않는다. 650만 명 자영업자 가운데 영업이 제한된 음식점 주점 노래방 헬스클럽은 폐업이 속출하지만 배달을 많이 하는 치킨집은 매출이 는 곳도 적지 않다. 이미 취업 문턱을 넘은 청년과 코로나 발생 후 일자리를 찾다가 포기하고 ‘그냥 쉬는 청년’의 차이는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는다. 맞는 말인데도 고통의 평등, 불평등이란 표현이 낯설었던 건 일반적인 언어습관과 다르기 때문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문 대통령 취임사처럼 평등이란 말은 ‘기회’같이 긍정적인 단어와 잘 어울린다. 그래서 나눠 줘도 아무도 안 반길 고통 뒤에는 ‘나눠서 부담한다’는 ‘분담’이 많이 쓰인다. 행간에 담긴 대통령의 뜻을 먼저 캐치한 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1주일도 안 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는 “코로나19로 많은 이득을 얻은 계층, 업종이 이익을 기여해 한쪽을 돕는 다양한 방식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고통을 평준화할 방법으로 ‘이익공유제’를 꺼낸 것이다. 자발성, 인센티브를 강조했지만 ‘기업 팔 비틀기’로 귀결될 것이란 점을 너무 잘 아는 대기업, 금융회사, 플랫폼 기업들은 “우린 코로나 수혜 기업이 아니다” “이익을 멋대로 기부하면 배임으로 처벌될 수 있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래도 여당은 2월 중 민간의 기금을 출연받을 방법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 대표가 대통령 심중(心中) 읽기에 성공했다는 건 18일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확인됐다. 대통령은 “그런 (코로나 승자) 기업들이 출연해 기금을 만들어 고통 받는 소상공인·자영업자, 고용 취약계층을 도울 수 있다면 대단히 좋은 일”이라며 “다만 제도화해서 정부가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추진할 순 없지만 당이 나서준다면 고마운 일이란 뜻이다. “왜 40%대인지 근거가 뭔지 알려 달라”는 질문 하나로 기획재정부의 국가채무비율 마지노선을 무너뜨렸던 대통령도 퇴임을 1년 4개월 앞두고 국채를 무한정 찍어내 돈을 쓰는 건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라도 민간의 돈을 이쪽 주머니에서 저쪽 주머니로 함부로 옮기는 건 자유시장경제를 하는 민주국가가 쓸 만한 정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현 정부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볼 수도 없다. 임기 초 2년간 최저임금을 30% 가까이 올린 건 식당 주인, 편의점주의 이익 일부를 종업원, 아르바이트생 수입으로 옮긴 것이다. 주택, 상가 임대료 상한을 제한하는 건 임대인 수입을 세입자에게 옮기는 정책이다. 편의점주, 임대인이라고 여유 있으리란 보장이 없지만 돈 안 쓰고 생색 낼 수 있는 이런 정책들을 정부와 여당은 선호해 왔다. 2월이 지나면 결국 자영업자를 돕겠다며 돈 낼 ‘착한 기업’들이 줄을 설 것이다. 지금 한국에선 고통도 이렇게 쉽게 평등해진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는 곤충형 외계생물과 지구인 보병들이 벌이는 잔혹한 전투 장면으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영화 속 청춘남녀 군인들은 왜 목숨 걸고 싸우는 걸까. 로버트 하인라인이 쓴 원작 SF소설에 이유가 나온다. 미래 지구에선 자원입대해 2년 이상 복무해야 참정권을 포함한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 보니 우주선을 타고 다른 행성에 떨어져 끔찍한 외계생물과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선 재산 있는 성인 남성에게만 시민권을 줬다. 그 대신 전쟁이 터지면 참전할 의무를 졌다. 영국 명예혁명, 미국 독립혁명 등 근대 시민혁명은 왕과 나라에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뺏기지 않을 권리, 부당하게 세금을 뜯기지 않을 시민권을 쟁취하는 과정이었다. 대한민국 수립 때부터 연령, 성별을 가리지 않고 시민권을 부여받은 한국인들이 그 무게를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한국의 높은 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시민으로의 각성을 늦추는 요소다. 역대 정부들은 표를 의식해 고소득층 소득세율을 높이면서 저소득층엔 각종 감면으로 세금을 깎아줬다. 근로자 40%가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낸다. 연봉이 낮은 2030 청년 직장인들은 세금에 민감할 일이 없다. 4명 중 한 명인 청년 실업자에게 세금은 남의 일이다. 코로나19가 번진 지난해 변화가 시작됐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추면서 주식시장에 불이 붙었다. 작년에만 200만 명의 ‘동학 개미’가 증시에 뛰어들었고 올해 들어 매일 10만 명씩 주식계좌를 새로 열고 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2030 청년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로 집값이 급등하자 월급을 모아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청년들이 주식투자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생전 처음 갖게 된 주식 ‘자산’을 지키려고 청년개미들은 사상 초유의 단체행동도 벌였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을 한 기업 기준 가족합산 10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낮추려 하자 주가 하락과 세금 부과를 걱정한 청년개미들은 청와대와 정치권을 압박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결국 백기를 들고 기준 10억 원을 유지하기로 했고 사태 책임을 지겠다며 사표 소동까지 벌였다. 청년들이 주도한 조세 저항이자 ‘작은 시민혁명’은 이렇게 승리로 끝났다. 요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외국인, 기관투자가가 판 주식을 사들여 코스피 3,000 돌파를 가능케 한 이들을 ‘영웅’ ‘애국자’라고 연일 치켜세우고 있다. 하지만 여당은 ‘코로나 이익공유제’가 본격 추진돼 대기업들이 이익을 뚝 떼어내 ‘자발적’으로 기부할 때 그 회사 주식을 들고 있는 청년개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해 봤을까. 청년개미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에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들의 언행이 주가에 즉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기업 총수를 긍정적 시선으로 주목하는 첫 청년 세대다. 종국에 비극으로 끝난 ‘동학’ 대신 깨어 있는 시민, ‘깨시민’이란 이름을 청년개미들에게 붙여주고 싶다. 좌파청년들이 스스로를 일컬을 때 많이 쓰였지만 사상 처음 ‘경제시민’으로 자각해가는 청년개미에게 훨씬 잘 맞는다. 빚을 내 무모한 투자를 하는 건 깨시민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자산투자는 철저한 자기 책임이 원칙이다. 외국인, 기관투자가와의 힘겨루기에서 전세가 불리할 땐 물러나는 법도 배워야 한다. 공매도 재개 같은 문제엔 무조건 반대하기보다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게 현명하다. 원래 큰 힘에는 크고 작은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서구 여러 나라에서 이혼이 급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삶을 헤집어놓은 코로나19 탓이다. 재택근무가 일반화되고 외출까지 줄어 가족 간 대면접촉 시간이 길어졌다. 부부가 오래 집에 함께 있다 보면 ‘음식물 쓰레기를 누가 버릴 건가’ 같은 작은 문제도 큰 충돌로 번지기 쉽다.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 ‘코로나 블루’가 분노조절이 안 되는 ‘코로나 레드’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면 “그럼 이혼해”란 말이 튀어나올 수 있다. 그래서 ‘코비디보스(Covid+divorce)’란 말까지 생겼다. 좁은 공간에 갇힌 동물들이 스트레스가 높아져 서로 공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국인의 1인당 주거면적은 서구 선진국은 물론이고 일본에 비해서도 좁은 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가정 격리’ 스트레스도 더 높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방문해 “부부와 어린아이 같은 경우엔 2명도 가능하겠다”고 한 공공임대아파트 넓이는 44m²(전용면적 기준)로 주거기본법 4인 가족 최저주거기준 43m²가 넘지만 2011년 만든 이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논의가 계속돼 왔다. 좁은 공간과 스트레스가 문제라면 한국은 이혼이 다른 나라보다 더 많아야 한다. 집값 급등도 이혼을 부추기는 동인이다. 최석준 서울시립대 교수는 3년 전 ‘전세 및 매매 가격 변동이 이혼율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을 냈다. 1997∼2014년 주택 실거래가와 이혼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이 논문의 결론은 ‘한국인은 집값이 오를 때 이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집값이 상승하면 이혼해 나눠 가질 재산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집값이 떨어지면 자기 몫이 줄어 이혼을 늦추거나 보류하게 된다. 자산의 76%를 부동산, 특히 집으로 갖고 있는 한국인의 특성이다. “전처와 살던 강남 아파트 값이 20억 원을 넘은 뒤 이혼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지인의 얘기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집값이 크게 오른 올해 한국에서 이혼이 줄고 있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서울가정법원에 접수된 이혼사건 건수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 넘게 감소했다고 한다. 성장률이 높은 시기엔 이혼이 줄고,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 ‘불황(不況) 이혼’이 증가한다는 통계와도 정반대다.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9만1160건이던 이혼 건수가 경제 충격이 본격화한 1998년 11만6294건으로 28%나 폭증했다. 밖으로부터 위협이 닥치면 가족끼리 똘똘 뭉치는 한국인의 품성이 발현돼 이혼이 줄었다는 해석은 신빙성이 높지 않다. 2년 연속 증가하던 이혼 건수가 올해 줄어든 이유가 ‘전세대란’ 탓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집값 상승기엔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가 비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올해는 집값과 전세가율이 동시에 높아지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임대차 2법 등의 영향으로 전세 매물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12월 수도권 전세가율은 67.1%로 치솟았고, 전셋값이 집값을 뛰어넘은 곳까지 나왔다. 집값이 올랐어도 이혼하면서 둘로 쪼개면 비슷한 수준의 전셋집을 구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혼 결정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집은 이렇게 한국인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과 긴밀히 얽혀 있다. 청년들이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도 일자리와 집 문제다.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란 구호만으로 국민의 생활 방식이 금세 바뀌진 않는다.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내년 설 연휴 전 내놓겠다는 현 정부 25번째 부동산대책은 이런 복잡한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을까.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이자 미디어아트 작가인 준용 씨(38) 전시회를 둘러싸고 정치권과 인터넷에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17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중구 회현동의 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시선 너머, 어딘가의 사이’란 그의 개인전이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예술가를 위해 서울시가 배정한 추가경정예산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은 올해 4월 예술인들의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65억4000만 원의 예산을 추가 편성했다. 시각 분야에선 281명이 지원해 46명이 선정됐고, “연초부터 전시, 기획들이 취소돼 피해가 크다”는 취지의 지원서를 제출한 준용 씨를 비롯해 36명이 1400만 원씩, 나머지 10명은 이보다 적은 지원금을 받았다. 서울시 측은 “당시 대통령 아들이 포함됐는지, 재산은 얼마나 되는지 등 상세한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A4용지 1쪽 분량 ‘피해 기술서’만 보고 목돈을 지원한 절차의 허술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지원자 이름, 경력을 가리지 않고 심사한 것도 문제다. 미국 뉴욕의 명문 미술학교 파슨스디자인스쿨 출신인 준용 씨가 이 분야 작가로 일한다는 건 미술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5명의 심사위원이 준용 씨가 대통령 아들이란 걸 알아채지 못하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서울시가 알고도 준용 씨를 지원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무엇보다 가난한 예술인을 지원하려는 예산을 현직 대통령 아들이 받은 게 적절하냐는 문제가 있다. 온라인에선 “임대료 다 내면서 영업 못 한 노래방 주인에겐 (2차 재난지원금) 200만 원 주고 대통령 아들은 1400만 원 지원이라니…” 같은 불만이 쏟아졌다. ▷논란이 커지자 어제 준용 씨는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지원금은 작가에게 수익으로 주는 돈이 아니라 작가가 전시, 작품 제작에 사용하는 돈” “즉,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을 고른 것”이란 해명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하지만 지원금 20% 내에서 본인 사례비를 챙길 수 있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데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준용 씨는 같은 작품으로 5월에 민간 문화재단에서 3000만 원을 추가로 지원받기도 했다.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에 따르면 준용 씨 부부는 2014년 3억1000만 원에 샀던 서울 구로구의 84m²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다가 올해 1월 5억4000만 원에 팔았다고 한다. 주거 문제가 없다고 해도 대학강사 수입으로 여유로운 생활은 어려운 만큼 이번 논란에 본인은 억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준용 씨는 자신의 ‘신분’을 고려해 지원금 신청 전 더 깊이 고민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꼼꼼히 살펴야 할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1882년 모래 섞인 쌀을 급료로 받은 구식군대 군졸들이 일으킨 임오군란(壬午軍亂)을 기화로 흥선대원군이 재집권하자 고종의 척족인 민씨 일파는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청나라 정부는 오장경(吳長慶)을 지휘관으로 한 병력 4만5000명을 파견해 난을 진압했다. 사신, 상인을 제외하고 중국인이 근대 이후 한반도에 대규모로 진입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인천을 통해 조선 땅에 들어온 청군은 용산, 동대문 등지에 머물렀고 난이 진압된 뒤에도 3000여 명이 용산에 눌러앉았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잇따라 승리한 일본군은 청나라 군대가 차지했던 땅에 주둔군 사령부를 지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패망하자 미군이 이 땅을 접수해 보병 제7사단을 주둔시켰고 한국전이 끝난 1953년 용산에 주한미군사령부를 창설했다. 군사독재 시절엔 ‘한국 안의 미국’인 용산 기지에 드나드는 것이 특권층임을 확인해주는 징표가 되기도 했다. ▷지난주 정부는 미국 측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열어 용산기지 내 땅 2곳을 포함해 전국 12개 기지 터를 미국 측에서 돌려받기로 했다. 외국 군대가 138년간 상주해온 용산 땅이 국민 품으로 돌아오는 첫발을 뗀 것이다. 이번에 돌려받는 용산기지 터는 남쪽 스포츠필드 터와 동남쪽 소프트볼 경기장으로 용산기지 전체면적 202만1000m² 중 2.6%인 5만3000m²다. 미군이 평택기지로 완전히 옮길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먼저 비는 땅부터 순차적으로 돌려받기로 한 것이다. ▷올해 들어 서울 집값이 급등하자 국토교통부는 8·4 부동산 대책을 통해 미군에게서 돌려받는 용산기지 캠프킴 터에 공공주택 3100채를 짓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역사적 상징성이 큰 땅을 단기 부동산 대책용으로 소모하지 말고 더 나은 개발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당초 정부는 2016∼2017년 용산기지 이전을 완료하고 2019∼2027년 공사를 진행해 뉴욕 센트럴파크에 비견될 도심공원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지만 기지 이전과 협상이 지연되면서 이 계획의 시간표도 늦춰지고 있다. ▷미군기지 반환의 ‘뜨거운 감자’인 환경오염 정화비용 문제는 우리 정부가 먼저 비용을 부담한 뒤 나중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미군 측이 원상복구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지금까지 미군기지 반환 후 정화비용은 한국 측이 고스란히 부담했다. 용산은 100년 이상 군대가 주둔한 땅이다 보니 유류, 중금속 오염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토지 정화에만 2∼3년이 걸리고 비용도 수천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흐지부지 넘어가선 안 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역사상 제일 높은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 깜짝 브리핑을 열어 123년 만에 처음 3만 선을 넘은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를 자랑했다. ‘이런 경제 치적을 쌓은 내가 대선에서 졌다는 게 말이 되냐’는 속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시장이 꼽은 주가 상승의 동력은 잇따른 코로나19 백신 개발 성공과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초대 재무장관으로 내정한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었다. ▷월가가 환호한 건 옐런이 코로나19 충격에서 경제를 회복시킬 최적의 ‘구원투수’라고 봤기 때문이다. 2014년 오바마 정부 때 연준 의장이 된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풀린 과도한 유동성을 줄이는 어려운 임무를 맡았다. 공화당 쪽 인물로 교체를 원한 트럼프 때문에 ‘39년 만의 첫 연임 실패 의장’이 됐지만 시장은 그가 금리 인상 충격을 최소화하며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4년 재임 기간 중 주가가 100% 가까이 올랐고 실업률은 완전고용 수준(4.1%)까지 떨어졌다. ▷겉모습은 온화한 은발 할머니지만 1946년 뉴욕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브라운대를 수석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노동경제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사람들의 삶에 직결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학문이 경제학”이란 소신을 가진 케인스주의자다. 남편은 중고차 시장에 ‘레몬’(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곯은 차)이 많은 이유를 ‘정보 비대칭 이론’으로 설명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 애컬로프 조지타운대 교수다. ▷옐런은 연준 설립 101년 만의 첫 여성 의장 기록에 이어 첫 여성 재무장관 기록도 갖게 됐다. 1789년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 이후 231년간 유지돼 온 유리천장을 깨고 세계 경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의 경제·금융 컨트롤타워를 맡게 된다. 미 재무부는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조직이기도 하다. 달러의 국제 흐름을 감시하는 재무부가 2005년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하자 북한에선 “피가 마르는 심정”이란 비명이 나왔다. ▷우선 옐런은 2조2000억 달러(약 2431조 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관철시켜야 한다. 상원 과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공화당은 과도한 재정지출에 반대하고 있다. 바이든의 공약인 법인세, 소득세율 인상에도 공화당의 반대가 크다. 한국으로선 대규모 부양책이 현실화돼 달러가 풀리면 원화가치가 높아져 수출품 가격 경쟁력에 탈이 날 수 있다. 세율 인상은 미국인의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역시 수출에 부정적이다. 이런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경제 전문가가 연말연시 개각에서 발탁되길 기대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믿음 깊은 청년이 있었다. 마음씨 착하지만 돈 버는 재주는 별로였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산에 올라 기도하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제발 로또 한 번만 당첨되게 해주십시오.” 1주일, 한 달, 반년이 지나도록 매일 기도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꼭 1년 되던 날 신이 나타났다. 답답하고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신은 말했다. “네 마음은 잘 알았다. 아무리 그래도 로또는 사야 하지 않겠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2050년 탄소중립 달성’ 목표를 제시한 날 오래전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통령은 그제 국무회의에서도 “기후위기 대응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탄소중립 실천 의지를 강조했다. 진정성 넘치는 발언에서 답답증을 느꼈다. 30년 뒤라 해도 배출한 만큼 온실가스를 흡수해 순(純)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건 대통령 말처럼 “결코 쉽지 않은 무거운 약속”이다. 많은 선진국이 약속한 만큼 한국도 가만있을 순 없다. 걱정되는 건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에 한국의 자연 조건은 대단히 열악하다는 점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탄소중립의 요체를 ‘탈(脫)석탄’으로 보고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원자력발전을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권한다.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해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마저 원전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감사원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감사 결과 발표 과정에서 확인된 것처럼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성역이 됐다. 그러면서 탄소중립을 예고하니 체증(滯症)을 느끼는 것이다. 신념이 굳은 사람은 매력적이다. 다만 눈앞에 해결할 난제를 놓고 파트너가 되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신념의 근거가 불명확하거나 상식과 차이가 크면 그렇고, 그 파트너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부인 경우 더욱 그렇다. 최근 부동산 정책에 답답해하는 국민이 늘어난 게 이런 이유다. 6·17부동산대책의 핵심은 ‘갭 투자’ 규제였다. 다주택자를 집값 상승 주범(主犯)으로 보고 추진한 대책들이 효과를 내지 못하자 정부는 전셋값과 집값 차이가 좁혀진 틈을 타 집을 산 갭 투자자를 종범(從犯)으로 간주해 대출을 억제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없었던 건 갭 투자가 월세→전세→자가로 이어지는 보통 사람들의 정상적 내 집 마련 과정이어서다. 게다가 갭 투자자는 전셋집 공급원이었다. 틀어막으면서 전세 매물이 더 줄었다. 전셋값이 들썩이자 정부와 여당은 임대가격 규제를 시작했다. 임대차 3법 도입이 다시 전세대란으로 이어지자 여권은 ‘월세가 전세보다 나쁜 게 아니다’라는 주장을 폈다. ‘너에게 좋은 건 내가 더 잘 아니까 불편해도 참아라’는 식이다. 자기 확신이 강하고 반성을 모르는 사람 곁에 있다 보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그릇된 믿음에서 출발해 기대와 정반대 효과가 났는데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정책이 적지 않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소비가 늘어 경제가 성장한다’는 소득주도 성장론은 일자리 감소와 소비 위축 등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여권 내에서도 거의 사어(死語)가 됐다. ‘비정규직은 나쁜 것’이란 믿음으로 추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공기업 정규직만 늘렸다. 집권 후반기 대통령 발언에 ‘기필코’ ‘반드시’ 같은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정책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자기 다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국민들은 3년 반의 경험을 통해 이미 무엇이 실패한 정책인지 판단을 내렸다. 국민의 답답한 속을 뚫어줄 성과를 내고 싶다면 줄곧 해오던 방식만 고집해선 안 된다. 절대 틀릴 리 없다고 믿어온 기본적인 신념까지 하나하나 뜯어봐야 한다. 거기에 문제와 정답이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