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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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중현 논설위원입니다.

sanjuck@donga.com

취재분야

2024-03-20~2024-04-19
칼럼100%
  • [오늘과 내일/박중현]소비가 늙어간다

    국내 3위 휴대전화업체 팬택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해 공중분해 위기에 처했다는 슬픈 소식이 들린다. 남은 직원들이 서명운동을 하며 회생 기회를 간절히 기원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2년 반 넘게 쓴 베가R3 스마트폰이 이 회사 제품이라 안타까움이 더하다. 이미 찾아보기 힘든 케이스, 액정필름 등 액세서리를 더 구하기 힘들어지겠지만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다. 고장 난 데가 없을뿐더러 인터넷 검색 등 주로 쓰는 기능, 속도에 불만이 없어서다. 좀처럼 휴대전화를 바꾸지 않는 나 같은 소비자들 탓에 팬택이 어려움에 빠진 게 아닌지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한국의 휴대전화 산업은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돈 아끼지 않고 멀쩡한 휴대전화를 과감히 바꾼 젊고 열정적인 소비자들이 키웠다. 나처럼 소비 행태가 늙어가는 이들이 많은 모양이다. 1분기 한국 가계의 소득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6% 증가했지만 소비 지출은 0.2% 느는 데 그쳤다. 가계의 흑자 규모는 역대 최대지만 평균 소비 성향은 12년 만에 가장 낮아졌다. 이런 지표들 때문에 일본 20년 불황의 원인이 됐던 인구구조의 변화, 즉 저출산과 고령화가 한국의 소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걱정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인구구조 변동에 따른 소비의 구조적 변화라면 예전처럼 경기가 살아나도 소비가 늘어나리란 보장이 없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강조해온 ‘소득 주도 성장론’의 허점도 분명해지고 있다. 근로자의 월급을 올리면 소비가 늘어 내수가 살고, 이를 통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게 그 논리의 핵심이다. 월급 상승이 소비 증가로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순간 곧바로 기초가 허물어지는 취약한 이론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부동산, 증시 부양책도 벽에 부닥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송인호 연구위원은 1990년 이후 일본에 나타났던 고령화발(發) 주택가격 하락이 2019년경 한국에서 시작돼 연평균 1∼2%씩 집값이 내릴 수 있다고 최근 경고했다. 지난주 ‘2015 동아국제금융포럼’에 참석한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한국 경제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면 수출과 내수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도 저출산, 고령화 추세와 관련해 “청년층이 줄어드는 건 매우 심각한 문제이며 경제의 역동성과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이민자들 덕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뒤집어 생각하면 한국의 경우 이민의 문을 확 넓히거나 통일이라도 돼 청년층이 보충되지 않는 한 내수를 살리기 힘든 단계에 접어들 수 있다는 뜻이다. 늙어가는 소비가 이렇게 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데도 정부와 여야는 정반대로 달리고 있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국회 통과의 조건인 명목 소득대체율 50%를 실현하려면 젊은 근로자들은 보험료를 더 내야 해 소비가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난해 도입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청년층의 스마트폰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 여야가 합심해 도입한 김영란법은 내년부터 내수에 큰 충격을 줄 공산이 크다. 그나마 여력이 있는 고소득층의 소비를 끌어낼 의료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국회에 발이 묶여 있다. 미래 청년들의 부담을 염려해 기득권을 포기하며 노인연령 법정 기준을 70세로 높이자는 대한노인회 정도까진 안 돼도 국회와 정부가 당장 눈앞에서 숨 가쁘게 진행되는 소비 행태의 변화를 읽고 바른 해답을 내놓길 바라는 게 과도한 기대일까.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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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대륙횡단 철도의 꿈

    “왜 조선인이 둘이나 끼었나.” 열차에서 내린 두 명의 식민지 청년을 맞은 건 일본대사관 직원의 퉁명스러운 반응이었다. 도쿄에서 출발해 서울, 하얼빈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을 갈아타며 보름여 만에 독일 베를린역에 막 내린 참이었다. 눈물이 솟구쳤지만 참았다. 그래서 더욱 심장이 터져라 달렸다. 가슴에 붙은 일장기가 서러웠다. 그래도 손기정, 남승룡 선수는 1936년 개최된 베를린 올림픽에서 고국에 최초의 마라톤 금, 동메달을 안기며 꿈을 이뤘다. 최근 79년 만에 공개된 손 선수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티켓은 분단으로 섬 아닌 섬이 돼버린 한국이 유라시아 대륙의 일부란 점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한반도와 대륙을 연결했던 철도는 1945년 9월 11일에 서울을 떠나 신의주에 도착한 열차를 마지막으로 끊겼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총 9288km의 시베리아횡단철도(TSR)는 세계에서 제일 긴 직통 열차다. 25년에 걸쳐 건설된 이 철도에는 동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해 제정 러시아를 강국으로 키우려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슬픈 꿈이 담겼다. 황태자 때였던 1891년 철도 착공식에 참석했던 그는 완공 4개월 후인 1917년 2월 혁명으로 폐위됐고 이 철도를 타고 우랄산맥 근처 예카테린부르크로 유폐돼 그곳에서 살해됐다.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시베리아횡단철도, 중국횡단철도와 연결해 부산에서 유럽까지 철도를 잇는 박근혜 대통령의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 구상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23일 체코에서 열린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사장단 회의에 제휴회원 자격으로 참석한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러시아, 중국 관계자들을 설득해 한국이 이 기구의 정회원으로 가입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북한도 반대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였던 2003년 가입하려다 북한의 반대로 실패했던 걸 고려하면 큰 변화다. 6월 초 몽골에서 열리는 OSJD 장관회의에서 한국의 정회원 가입 여부가 결정된다. 유라시아철도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이 기구에 가입하면 대륙 철도 연결의 기회가 커진다. 시베리아 유연탄을 러시아 하산에서 북한 나진까지 철도로 실어 날라 나진항을 통해 한국에 들여오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하산∼나진∼원산은 철도로 이어져 있다. 남북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돼 끊어진 서울∼원산 사이 경원선이 복원된다면 부산항을 시발점으로 하는 대륙철도의 맥이 한반도로 연결된다. 주변국의 분위기도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알렉산드르 갈루시카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동아일보 주최로 열린 ‘2015 유라시아 교통·에너지 국제 콘퍼런스’에서 홍용표 통일부,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을 잇달아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 주관으로 8월 중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1차 극동경제포럼에서 남-북-러 3각 협력 모임을 갖자고 제안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철도 현대화에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투입되길 기대한다. 중국 주도로 설립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이 AIIB 회원 자격으로 북한의 철도 인프라에 투자한다면 미래의 통일비용을 크게 줄이면서 북한 주민의 경제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재·보궐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대통령은 요즘 편치 않다. 5년 임기의 채 절반이 안 지났는데도 정국의 중심이 당으로 옮겨가며 레임덕이 벌써 찾아온 분위기다. 그런 박 대통령에게 그가 꿈꾸는 대륙횡단 철도의 연결은 남북관계를 개선하면서 정국의 주도권도 되찾는 최고의 카드가 될 수 있다.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5-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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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내가 갈까, 중동

    “덥고, 술도 잘 못 먹고 해서 답답하고 심심하긴 하다더라. 그래도 에어컨 쌩쌩 나오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한국인 식당에서 밥을 대줘서 지내는 데 문제는 없대. 한 5년 자리 보장해 주고 돈 좀 더 주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지….” 최근 어릴 적 친구들끼리 모이자는 연락을 받고도 가지 못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초중고교를 함께 다닌 동네 친구들로 올해 50줄에 들어섰다. 7명의 성(姓)이 모두 다르고 어릴 때 고스톱을 자주 쳐 모임 이름은 ‘칠각패’. 건설업체에 다니는 한 명이 작년에 자원해서 베트남 현장에 나가는 바람에 그 친구가 한국에 휴가 오는 6개월에 한 번꼴로 연락이 온다. 대기업 계열 정보기술(IT) 업체에서 현장 팀장으로 일하는 친구에게 못 가서 미안하다고 전화했다가 중동 얘기가 나왔다. 자기 회사에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등에 현장이 있다며 그 친구는 “기회만 되면 노후나 애들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중동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중동 순방을 다녀온 박근혜 대통령이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하며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중동 진출을 해보라. 다 어디 갔느냐고, 다 중동 갔다고(할 정도로 해보라)”라고 한 말이 청년들 화를 돋웠다. ‘니가 가라, 중동’이란 비아냥거림은 유행어가 됐다. 청년들은 대통령의 말에서 모래를 씹으며 사막에서 등짐 지는 자기 모습을 떠올린 모양이다. 하지만 1970년대 한국 건설근로자들이 중동에서 하던 거친 일은 이제 동남아 근로자들의 몫이다. 한국 건설업체 임직원들은 국내보다 1.5배의 보수를 받으며 예전에 파란 눈의 서양인들이 맡던 전문, 관리업무를 한다. 비자 문제, 중동의 높은 청년실업률 등을 고려할 때 실제 자리가 얼마나 날지는 미지수다. 다만 대통령이 거론한 IT, 의료서비스, 원전기술 등의 분야에 일자리만 있다면 보수 등이 괜찮을 공산이 크다. 이미 많은 한국 스튜어디스들이 중동 지역 항공사에 취업해 있다. 회의에 참석했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대통령이 말한 맥락도 알려진 것과 조금 다르다. 그 관계자는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를 만들고, 여러 부처에 흩어진 해외취업 지원 업무를 ‘K-무브’ 브랜드로 통합해 채근했는데도 실적이 저조해 관련 부처를 질책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외취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줄 서 있지만 정부 지원 해외 인턴십 참가자들의 실제 취업률은 10%가 채 안 된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명문대 출신들의 국내 대기업 취업용 ‘스펙 쌓기’에 주로 쓰인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게다가 대통령 개그의 썰렁함은 더이상 뉴스가 아니다. 그렇다면 청년들은 왜 그토록 화가 났을까. “대한민국은 노인들의 나라다. 젊은 것들은 나라를 떠나라” “청년들 지지율 안 나오니까 중동으로 보내버리려나 봐요”라는 청년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취업하기 힘든 현실을 기성세대와 현 정부의 책임으로 생각하던 차에 하와이도 아니고 중동에 가라니 짜증이 확 치민 것이다.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성장전략도 없이 정년부터 연장해 놓은 국회,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데 꼭 필요한 노동구조 개혁 논의의 지지부진함 등이 무책임한 기성세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답답한 청년들의 심정을 고려한다면 대통령이 차라리 이렇게 얘기했으면 어땠을까. “중동에 급여가 괜찮은 전문직 일자리가 좀 생길 것 같습니다. 부모 세대가 한 번 더 고생합시다. 자녀들을 위해 중동에 나갑시다. 대신 국내에서 비는 일자리는 한 번도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한 청년들에게 내줍시다.” 그랬다면 다수의 양심적 기성세대들은 이렇게 화답했을 것 같다. “그래 내가 갈게, 중동.”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5-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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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디플레 문턱에서 만난 김영란법

    “기자한테 이런 거 받아도 되나….” 아내가 외국계 스포츠웨어 업체에서 일하던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 회사는 명절을 앞두고 임직원들에게 자사 제품을 30∼60% 싸게 살 수 있는 할인 쿠폰을 나눠줬다. 임직원들에게 선심을 쓰면서 매출을 늘리고 재고는 털어내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었다. 추석 연휴 전에 아내가 가져온 쿠폰들을 봉투에 나눠 넣었다. 그리고 “그간 취재에 도움을 줘 고맙다”며 친한 공무원들에게 ‘촌지’로 돌렸다. 지금은 기획재정부로 이름이 바뀐 재정경제부에 출입하던 때였다. 관료들은 당황해했지만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그들 중 몇몇은 나중에 차관, 장관, 국회의원이 됐다. 죄책감 없이 했던 과거의 이런 행동이 국회가 최근 통과시킨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는 내년 9월 이후라면 범법 행위가 된다. 중앙부처 공무원과 출입기자는 누가 봐도 업무 관련성이 깊다. 그 쿠폰으로 공무원이 스포츠용품 매장에서 20만 원짜리 옷을 산다면 6만∼12만 원의 혜택을 본다. 적발되면 공무원이나 나나 각각 몇 배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공무원 경력에 빨간 줄이 그어지는 건 물론이다. 공직자와 배우자로 범위를 좁혀 숫자를 줄였다지만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자는 약 300만 명. 이 법이 한국 사회의 투명성을 높일 것이라는 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고위 공무원들의 성격상 자신의 경력과 공무원연금으로 보장된 안정적 노후를 걸고 골프를 치거나 비싼 밥을 얻어먹을 가능성은 낮다. 최근 동창회가 보낸 취임 축하 난을 이완구 총리가 곧바로 돌려보낸 걸 보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예상된다. 법 시행까지 1년 반이 남았지만 관가엔 이미 화환 경계령이 내려졌다. 부패와 관련한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국민의 소비 생활에 불가역적 변화를 가져오곤 했다. 지금은 국민주(酒)가 된 소주폭탄이 그런 예다. 외환위기 직후 처음 등장한 ‘소폭’은 200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도입된 접대비실명제가 결정적 계기였다. 기업이 50만 원 이상 접대비를 쓸 때 상세한 명세를 적어 내게 한 이 제도로 비싼 양주폭탄을 마시는 게 부담스러워진 사람들은 소폭을 대체재로 선택했다. 이후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에 접대비실명제가 크게 완화됐지만 국민들의 음주 습관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다. 위헌 논란을 차치하고 김영란법의 경제적 효과는 단기적으로 분명히 부정적이다. 높은 투명성이 장기적으로 사회의 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당장은 고급 음식점, 호텔, 화훼업체, 골프장, 선물세트 및 상품권 시장, 택배업계 등이 큰 타격을 받을 공산이 크다. 한우 및 과수 농가, 수산업 종사자들에게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봐도 비슷하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부패 해소 노력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도 작년 중국의 성장률이 7%대로 떨어진 이유 중 하나가 반부패 운동이란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타이밍으로 보면 최악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한국 경제의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를 공식화하면서 경기 진작을 위해 온갖 수단을 총동원하는 분위기다. 가계부채, 노후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꽁꽁 얼어붙은 소비를 이 법은 더욱 냉각시킬 가능성이 높다. 법 통과에 찬성한 경제학자 출신 국회의원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비겁한 줄 알지만 지역주민 표를 의식해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디플레 문턱에 간당간당 서 있는 우리 경제의 등을 내 손으로 확 떠민 게 아닌지 두렵습니다.”박중현 경제부장sanjuck@donga.com}

    • 201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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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누가 대통령에게 ‘된다’고 말했나

    2년 내내 무척 궁금했다. 2013년 초 박근혜 정부 출범을 준비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임기 중 총 134조6000억 원 규모의 복지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할 때 이 막대한 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보고한 이들이 누구였는지. 그때부터 최근까지 현 정부 정책의 흐름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고위 인사에게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듣고 의문이 풀렸다. “대선 공약을 만든 교수들, 보고하러 들어온 고위 공무원 중에 대통령에게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당시 인수위는 복지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으로 증세(增稅)를 제외한 세 가지를 꼽았다. 정부 지출 구조조정과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감면 축소 등이었다. 인수위는 ‘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의문이 제기됐다. “저게 가능한 일이 아닌데….” 정부 지출을 줄인다는 게 말이 쉽지 대부분 경직성이어서 1∼2% 깎기도 힘들다는 게 예산을 짜 본 공무원들의 설명이다. 새로운 복지 정책을 도입하면서 지출을 줄이는 건 더 어렵다. 국회의원들이 선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지역 예산을 줄이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 지출은 해마다 늘고 있다. 20∼30%의 경제가 지하에 묻혀 있다며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에게서 세금을 싹싹 걷겠다던 계획도 현실과 동떨어지긴 마찬가지였다. 탈세한 사람들한테서 걷어 좋은 데 쓰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이 있겠느냐만 이게 생각만큼 큰돈이 안 된다. 세금 폭탄 맞느니 사업을 접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간 문 닫는 룸살롱, 의원, 주유소가 속출한 이유다. 이미 1999년 신용카드 소득공제, 2005년 현금영수증제 도입으로 한국의 지하경제는 바닥이 드러난 우물이었다. 결국 정부는 작년 하반기부터 세무조사 강도를 대폭 늦췄다. 연말정산 사태에서 확인된 것처럼 비과세·감면 축소를 통한 재원 확보는 거센 저항에 좌초하기 십상이다. 교과서적으로 봤을 때 증세가 아니라고 정부가 아무리 우겨도 월급 토해 내는 회사원들에겐 씨알도 안 먹힌다. 대선 공약을 만든 사람들, 인수위에 불려 들어가 실행 계획을 만든 고위 공무원들이 이런 점을 몰랐을 리 없다. 공약을 만든 이들은 여야가 복지 공약 규모를 경쟁적으로 키우는 대선 과정에서 ‘일단 이기고 바로잡으면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당선 후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넘치는 대통령 앞에서 말 바꾸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영혼이 없다고 비판받는 공무원들의 영혼 밀도가 제일 희박해질 때가 바로 정권 교체기다. 곧 취임할 대통령 앞에서 직(職)을 걸고 ‘안 된다’고 할 만큼 간 큰 공무원은 드물다. 그럼 대통령은 정말 가능하다고 믿었을까.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뢰하는 사람들이 눈앞에서 다들 ‘된다’고 하는데 주변의 비판에 휘둘려 괜히 의심하며 국민과의 약속을 깰 사람이 아니다. 그 결과 국민은 요즘 뒤늦게 날아든 복지 확대의 청구서를 받고 공짜를 바란 대가가 어떤 건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최근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자 청와대와 내각의 최고위 정책 당국자들은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정책을 조율하기 위해 정책조정협의회를 신설했다. 건강보험료 개편 백지화 등 최근의 정책 난맥을 바로잡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통령에게 꼭 필요한 건 협의회나 위원회가 아니라 박근혜 레이저를 견뎌 내며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정직한 인물 한두 명이다. 지금까지 안 되던 일이 앞으로 가능할지 걱정하는 국민에게 “청와대에 찾아가서라도 대화하겠다”는 탈박(脫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취임 일성이 그나마 다행스럽게 들린다.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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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엘리트 공무원들, 마음이 떠난다

    “당장 나부터 물러나니 대책이 없는데 능력 있는 후배한테 끝까지 남으라고 뜯어말릴 수 있겠어요?” 최근 공직을 떠난 전직 고위관료는 해외 파견근무를 마치고 복귀할 예정인 후배의 전화를 받고 착잡한 심정을 털어놨다. 그 후배는 평소 존경하던 선배에게 “요즘 같은 공직사회 분위기에서 돌아가는 게 맞는지, 조금이라도 젊을 때 민간으로 자리를 옮겨 ‘제값’을 받는 게 나은지 모르겠다”며 구구절절한 e메일을 써보냈다. 공직생활을 계속할지 저울질하고 있는 후배는 오래전부터 위아래에서 ‘언젠간 장관이 될 사람’이란 평가를 받아온 에이스 관료다. 2000년대 중반 이 부처에 출입할 때 이익집단 간 갈등으로 얽히고설킨 문제를 그가 창조적 대안을 내 푸는 걸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예전 같으면 후배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면 선배 관료들이 나서서 “부처의 미래를 책임질 네가 뭔 말이냐”라며 호통부터 쳤겠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2014년은 한국의 엘리트 공무원들에게 잔인한 해였다. 작년 4월 터진 세월호 사고는 ‘관피아’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그들의 미래를 바꿔 놨다. 현직일 때 챙기지 못한 혜택을 은퇴 후 공공기관 등에 ‘낙하산’으로 내려가 보상받는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지난해 12월에는 ‘관피아 방지법(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올해부터 2급 이상 공무원이 맡았던 업무와 관련 있는 직장에 은퇴 후 취업할 수 없는 기간이 2년에서 3년으로 늘었다. 50대 중후반에 옷을 벗는 고위 공직자에게 3년 공백은 길다. 지난해 말 현직을 떠난 한 최고위 공무원은 “해가 바뀌기 전에 ‘잘라 줘서’ 놀아야 할 시간을 1년 줄였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삼성그룹 출신 인사전문가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은 얼마 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위공무원 스카우트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1, 2급 고위공무원을 장관이 추천하도록 하고 보수도 장관과 인사혁신처장이 협의해서 정해 공직에도 과감한 스카우트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공직사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든 민간의 인재들을 공직사회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고민이 읽힌다. 다만 그의 생각이 ‘산토끼’ 잡는 데 주로 집중돼 있고 ‘집토끼’를 고려한 내용은 적다는 게 아쉽다.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구조조정의 폐해가 있다. 조직이 불안정해지면 핵심 인재들의 마음이 먼저 떠난다는 점이다. 민간인재 스카우트도 욕심처럼 안 될 공산이 크다. 민간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 인재들은 연봉 1억 원이 채 안 되는 1, 2급 공무원의 보상 수준을 웬만큼 높인다 해도 공직에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게다가 공직에 발을 들이면 나갈 때 3년을 놀아야 한다. 그래서 경쟁력이 부족하거나 ‘갑(甲)의 자리’에 욕심 있는 사람들이 개방되는 공직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실상이 드러난 전현직 공무원들의 일탈과 모럴해저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력 있고, 양심적인 공무원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와 경제의 핵심 경쟁력이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수십, 수백조 원의 세금을 써가며 키워낸 국가적 자산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는 올해 노동 분야의 구조개혁을 추진하며 직무성과급제의 확산을 꾀할 계획이다. 공직사회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놀고먹는 공무원에게 국민의 세금이 허비돼선 안 되지만 최고의 능력을 갖춘 공무원들에겐 그 책임과 실적에 걸맞은 보상이 따라야 한다. 엘리트 공무원들의 떠나는 마음을 붙잡고 기(氣)를 살려줄 방안이 필요하다.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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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密旨인사’가 정치금융 만든다

    “다 짜여 있던 건데요 뭘. 혹시 바꿔볼 수 있나 하는 기대가 없진 않았는데…. 윗선에서 밀어줄 정도로 훌륭한 분이니 잘하시겠죠.” 5일 오후 우리은행 행장후보추천위원회(행추위)가 후보 3명을 면접한 뒤 곧바로 이광구 개인고객본부 부행장을 차기 행장으로 내정하자 탈락한 후보 중 한 명은 이렇게 푸념했다.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멤버인 이 부행장은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비선(秘線)실세들의 암투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터진 ‘정치(政治)금융’ 논란의 주인공이다. 비판여론이 휘몰아치면서 그 며칠 전부터 인선 절차가 중단될 수 있다는 금융권의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내정 전날 동아일보 취재진은 이 부행장 내정을 강행하려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정부 고위관계자가 “윗선의 의사가 워낙 굳건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이 예전 ‘관치(官治)금융’의 인사와 확연히 달라진 정치금융, 혹은 신(新)관치의 핵심이다. 금융기관 최고경영자(CEO)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나 정권의 몇몇 최고 실력자일 것으로 막연히 짐작만 가는 이른바 ‘윗선’의 밀지(密旨)가 내정설이 도는 개인과 비(非)관료 출신으로 정권 창출에 참여했던 소수의 금융계 인사에게 전달된다. 이 인사들은 해당 금융회사에 이 메시지의 내용을 알리고, 행추위 등 인선조직은 어디에선가 날아든 이름을 추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관료조직은 이 과정을 전혀 알지 못하고 철저히 소외된다. ‘이런 이유로 이 사람이 돼야 한다’는 부연설명이 없다 보니 밀지를 내린 사람과 천거된 당사자만 그 이유를 안다. 출중한 실력과 경력 때문인지, 권력실세와의 친분 덕인지, 특정 지역 출신이거나 운 좋게 잘나가는 대학에 다닌 덕인지 고위관료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모두 추측만 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온갖 설(說)들이 만들어져 시장에 유포된다. 이렇게 자리에 오른 금융권 인사들에겐 퇴임할 때까지 그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말로 대변되던 관치는 오래전부터 한국 금융권의 고질병으로 비판받아 왔다. 하지만 관치 인사 때에는 정치권력과 모피아 그룹의 협의 과정이 있었다. 장관들도 상당한 결정권을 행사했다. 관치금융 시절에도 특정 인사 내정설이 수시로 돌았지만 여론의 향배 등에 따라 바뀔 여지가 있었다. 내정자의 문제점이 드러났을 때 정치권이 추천한 인물이라면 관료조직이, 관료가 천거한 경우라면 정치권이 서로 견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과정이 사라졌다. 윗선이 밀지를 내린 의도를 확인할 채널도 막혀버렸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에서 일했던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적은 많아도 대통령에게 전화해본 적은 없다”라고 말한다. 대통령에게 밀지의 진위를 확인하기 쉽지 않은 구조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선 과정에 문제가 생겨도 윗선이 스스로 의사를 거둬들이지 않는 한 밑의 사람들이 인사 방향을 바꿀 수 없다. 또 메시지 전달자가 사심(私心)을 갖고 적당히 자기 생각이나 민원을 끼워 넣어도 누구도 알아챌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9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부정부패를 예방하려면 먼저 정부 내 업무 시스템이 더욱 투명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최노믹스’ 구조개혁의 시험대로 금융권을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한국 금융권을 개혁하고 투명성을 높이려면 왕조시대에나 있었을 법한 ‘밀지인사’부터 사라져야 한다.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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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라스푸틴 신드롬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은 300여 년간 이어지던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막바지에 등장한 악명 높은 요승(妖僧)이다. 농부의 아들인 그는 젊은 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수도사를 자처하며 사이비 종파를 세웠다. 마법을 쓴 건지, 운이 좋았던 건지 혈우병을 앓던 황태자의 병세를 완화시킨 그는 ‘기적의 승려’로 불리며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의 절대적 신임을 얻었다. 이후 러시아 황실을 쥐고 흔드는 최고 권력자가 됐고 황후를 비롯해 최고위 귀족층 여성들과 염문을 뿌렸다. 나라 꼴을 염려한 황제의 조카사위 등 귀족들은 1916년 12월 16일 암살을 준비했다. 미인계로 파티에 불러내 치사량 10배의 청산칼리를 넣은 술과 음식을 라스푸틴에게 먹였지만 그는 죽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겁에 질린 암살자들이 총까지 쐈지만 숨이 끊어지지 않자 꽁꽁 묶어 네바 강 얼음 밑으로 던졌다. 제정 러시아는 바로 이듬해 혁명으로 종언을 고했다. 라스푸틴은 그 기이한 행적 때문에 지금까지도 영화, 만화 등에서 자주 불멸의 흑마법사로 등장한다. 죽은 지 100년이 다 돼가는 라스푸틴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들이 최근 몇 년 새 한국의 재계에 떠돈다. 큰 어려움을 겪은 일부 그룹 총수 주변에 그와 비슷한 느낌의 ‘비선(秘線)’ 인물들이 있었다는 게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명석한 두뇌와 말주변, 돈을 불리거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데 남다른 재주를 가졌다는 게 이들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출신 학교, 발탁 배경 등이 불확실하거나 이전에 뭘 했는지 안개처럼 흐릿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속인’ ‘역술인’으로 불린 이들도 있었다. 이들 중 몇몇은 책임이 따르는 공식 직함 대신에 ‘고문’ 명함을 선호했다. 그룹 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총수 앞에서 문제 삼거나 멀리할 것을 조언하는 임직원들에게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재벌 총수가 사법처리를 받거나 경영상 위기를 맞은 그룹 여럿에 이런 일들이 있었다. 무속인은 아니지만 엉뚱한 사업이나 기업 인수합병(M&A)에 과도한 투자를 하도록 총수들에게 조언해 견실한 대기업들을 어려움에 빠뜨린 외국계 컨설팅사, 외국 경영학석사(MBA) 출신들도 ‘현대판 라스푸틴’으로 불릴 만하다. 문제가 터진 뒤 총수들은 하나같이 이들의 실체를 제때, 제대로 알지 못한 걸 크게 후회한다. 왜 미리 몰랐을까. 여러 대기업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이렇게 설명한다. “맨바닥에서 자기 손으로 기업을 일으킨 재벌 1세는 경험상 사기꾼을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엄격히 교육받은 2세는 이런 자들을 멀리해야 한다는 걸 배워서 안다. 그런 과정이 없었던 2세나 주로 3세들 중에서 문제가 생긴다.” 대내외 환경은 불확실한데 난국을 타개하면서 자신만의 성과를 만들고 내고 싶어 하는 2, 3세 오너들에게 월급쟁이 임직원들이 들고 오는 기획안들은 대부분 신통찮고 답답하게만 보인다. 그러다 보니 사업성이 불확실하거나 편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나들더라도 ‘비선 라인’이 내놓는 팍팍 튀는 아이디어에 마음이 끌리기 마련이라는 설명이다. 경제계 일은 아니지만 최근 정치권의 최고 관심 인물인 정윤회 씨 사안에도 역술인 혹은 무속인이 등장한다. 대통령 ‘비선 실세’로 지목돼 온 정 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 만난 역술인 집에 여러 정치인이 드나들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비선, 무속인 같은 말이나 주변 정황에서 왠지 몇몇 대기업에 나타났던 ‘라스푸틴 신드롬’의 냄새가 풍겨 국민은 불안하다.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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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중국 명동 여행기

    30년 전 서울 명동은 쌀쌀한 주말 저녁이 좋은 고즈넉한 거리였다. 1980년대 초 명동성당 교리반에 들어간 고등학생은 이 동네만 가면 어른 흉내를 냈다. 지금은 없어진 카페 곰화랑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커피 맛을 배웠다. 고교 2학년 말 첫 미팅 때 첫눈을 맞으며 파트너와 찾아간 곳도 여기였다. 11월 말부턴 골목길 초입 레코드 가게에서 크리스마스캐럴이 흘러나왔다. 내 추억 속 명동은 그렇게 엘레지(悲歌)란 말이 잘 어울리는 애잔한 느낌이다. 중국 국경절 연휴(1∼7일)가 한창이던 4일 아내와 중3짜리 딸을 데리고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 체험차 명동에 갔다. 강남, 동대문 등으로 많이 흩어졌다지만 연휴 기간 한국을 찾은 16만4000명의 유커 중 절반쯤은 명동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물결처럼 골목골목에 밀려드는 그들을 향해 옷 가게, 화장품 가게 직원과 아르바이트생들이 피켓을 들고 중국어로 목청을 높였다. 이달 청년 취업률이 높아지겠다 싶었다. 중국 청소년에게 인기가 높다는 의류 브랜드 점포 쇼윈도에는 중국인 취향의 번쩍거리는 황금색 옷과 가방들이 잔뜩 진열돼 있었다. 가게 안 직원들은 한국인에게 관심이 없었다. 쇼핑백을 잔뜩 든 중국인 관광객이 들어오면 재빨리 달려들었다. 국경절 기간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쓴 돈은 약 4000억 원. 30년 전 팝송 카세트테이프를 팔던 레코드 가게 문에는 한류(韓流) 아이돌그룹의 이름과 포스터가 중국인을 겨냥해 잔뜩 붙어 있었다. 내가 알던 명동이 아니라 ‘중국의 명동’이었다. 10여 년 전 중국 상하이 푸둥(浦東)에 같이 간 진념 전 경제부총리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지금은 우리가 중국에서 발마사지를 받지만 우리 세대가 제대로 못하면 10년, 20년 뒤엔 우리 자녀들이 중국인 발마사지를 하며 살게 될지 몰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명동 네일숍, 마사지숍의 중국인 고객 비중은 아직 10% 수준이란다. 그들에겐 가격대가 높다. 하지만 이미 고급 호텔에 묵으며 백화점을 찾아 수천만∼수억 원대 쇼핑을 하는 중국인 ‘서상커(奢尙客)’가 늘고 있다. ‘서상(奢尙)’은 럭셔리 스타일이란 뜻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GDP)에서 중국은 이미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중국인에 치인 한국인들 사이에서 투덜거리는 소리도 새나왔다. 음식점 옆자리의 젊은 한국인 여성들이 수군거렸다. “중국 사람들 정말 시끄럽지 않니?” “어깨가 부딪쳐도 미안해하질 않아.” “옷 입은 걸 보면 너무 티가 나.” 딸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 스웨덴 스톡홀름 출장 때 겪은 일을 들려줬다. 짬을 내 도심 투어버스를 타고 스웨덴 왕궁 앞을 지날 때였다. 버스 안 서양인들 사이에서 와락 웃음이 터졌다. 왕궁 정문에 동상처럼 서 있던 근위병이 다짜고짜 총을 잡아당기는 동양인들에게 끌려가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딱 봐도 기념 촬영을 하려는 한국인 아저씨였다. 후배 기자가 10여 년 전 미국에서 경험한 일도 얘기해줬다. 재킷이 구겨져 다리미를 달라고 요청하자 “한국인들이 잔뜩 왔다 간 뒤 다리미를 모두 치웠다”고 호텔 관계자가 답했다. 방안 다리미를 뒤집어 놓고 삼겹살을 구워 먹다가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10∼20년 전 우리 모습은 지금 중국인 관광객들과 많이 비슷했다. 올 한 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인은 600만 명. 이들 때문에 내 추억 속의 명동은 사라졌다. 그 대신 우리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명동이 생겨났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몰린다는 날, 짬을 내 자녀와 함께 명동에 가보길 권한다.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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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일도양단의 함정

    쾌도난마(快刀亂麻)란 말은 6세기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에 동위 효정제의 승상이던 고환의 고사에서 나왔다. 고환은 여러 아들 중 누가 출중한지 시험하려고 심하게 뒤엉킨 실타래를 나눠주고 풀게 했다. 다른 형제들이 실오라기를 푸느라 여념이 없을 때 둘째 고양은 “어지러운 것은 베어버려야 한다”며 칼을 들어 실타래를 잘랐다. 이 고양이 나중에 효정제를 몰아내고 북제를 세워 즉위한 문선제다. 쾌도난마, 또는 일도양단(一刀兩斷)과 같은 뜻으로 서구에서 쓰이는 게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다(cut the Gordian knot)’라는 표현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기원전 4세기에 고르디우스 왕의 전차에 매달린 매듭을 잘랐다는 전설에서 나왔다. ‘이 매듭을 푸는 이는 아시아의 지배자가 된다’는 예언을 들은 알렉산더는 누구도 풀지 못하던 단단한 매듭을 한칼에 끊었다. 3일 열린 2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얽힌 실타래를 끊는 것은 고르디우스 매듭 끊듯이 해야지 조금씩 고치면 부지하세월”이라고 장관들을 타박한 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란 말이 시사용어로 떠올랐다. 정부 규제개혁의 속도와 과단성에 대통령의 불만이 왜 이리 큰지 이해가 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3월 1차 규제개혁회의에서 건의된 떡 배달판매 건과 관련해 정부는 5월에 규제를 해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떡집 주인, 종업원만 배달할 수 있을 뿐 택배, 퀵서비스 배달은 허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시장 상인의 건의를 받고 개선을 지시한 뒤에야 11월부터 택배를 통한 떡 배달을 허용하기로 했다. 또 2차 회의에 참가한 한국메이크업협회 회장은 미용 분야에서 ‘메이크업’ 부문을 따로 떼어내 달라고 요청했다. 메이크업 가게를 내려면 헤어미용 자격증을 따도록 한 규제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었다. 1차 회의 때 ‘네일 미용업을 독립시켜 달라’는 건의와 같은 맥락이었다. 두 건 모두 공무원들이 조금만 꼼꼼히 살폈다면 한 번에 해결될 일이었다. 현 정부 ‘규제개혁의 상징’이 된 푸드트럭 문제를 꼼꼼히 살펴보면 더 큰 문제가 드러난다. 푸드트럭 규제를 풀어 달라는 건의가 1차 회의 때 제기돼 대통령이 개선을 독려하자 관계 장관들은 “곧바로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관련 법률이 금세 개정됐지만 8월 말까지 실제 혜택을 본 푸드트럭은 22대뿐이었다. 영업공간이 유원지로 한정된 탓으로 본 정부는 이달 초 도시공원 등에서도 푸드트럭 영업을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 기대만큼 푸드트럭이 활성화되긴 어려워 보인다. 도심에 식당이 부족한 선진국들과 달리 변두리 골목에까지 음식점이 빽빽이 들어찬 한국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많은 부분은 대통령의 뜻을 축어(逐語)적으로만 수행하는 공무원들의 책임으로 보인다. 수첩에 받아 적는 일은 줄었다지만 여전히 ‘말 그대로’ 따르는 데 급급한 모양새다. 해묵은 규제를 푸는 데 과단성은 꼭 필요한 덕목이다. 해당 부처가 존재 이유를 입증하지 못하는 규제를 자동 퇴출시키는 내용의 ‘규제 단두대(guillotine·기요틴)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새누리당의 결정은 공무원들의 과단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쾌도난마 식 해법이 항상 정답은 아니라는 점은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알렉산더의 제국은 불과 10여 년 유지됐고 문선제는 과격한 왕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제도개선엔 철저한 원인분석과 세심함이 필요하다. 얽힌 규제를 시원스레 끊어내는 것 이상으로 하나하나 제대로 매듭짓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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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중현의 오늘과 내일]경제정책 작명법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정책 묶음에 ‘최(崔)노믹스’ 또는 ‘초이노믹스’란 이름이 붙은 건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 나라 경제정책의 작명에는 선출직 최고지도자의 성이나 이름이 쓰이기 때문이다. 레이거노믹스, 부시노믹스, 클린터노믹스, 오바마노믹스 등 미국의 역대 경제정책은 대통령의 성을 따랐다. 일본의 아베노믹스 역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이름에서 따왔다. 버냉키노믹스 같은 예외가 있지만 벤 버냉키는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다. 정치지도자 이름을 반영한 경제정책 작명법이 한국에 처음 등장한 건 김대중 정부 때였다. 외환위기와 함께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DJ노믹스’를 추진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의 ‘노(盧)노믹스’, 이명박 정부의 ‘MB노믹스’가 뒤따랐다. 지난해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당연히 근혜노믹스란 이름이 붙었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재정 및 세제 구조조정을 통해 확보한 재원을 복지 확대에 쓰는 게 핵심이었다. 하지만 무리한 대선 공약에 대한 경제전문가들의 우려대로 이 정책 믹스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현오석 부총리가 이끈 1기 경제팀의 무능력도 한몫했다. 결국 올해 3월 성장 쪽으로 방향을 대폭 선회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청사진이 나왔다. 여기까지는 ‘근혜노믹스 2.0’으로 불릴 만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게 달라졌다. 내수가 바닥까지 추락하자 경제주체들은 답답한 상황을 타개할 과감한 정책이라면 언제라도 박수칠 준비가 돼 있었다. 역설적으로 최 부총리로서는 제일 좋은 타이밍에 등판한 셈이다. 그가 쏟아낸 정책은 전과 많이 달랐다. 적자재정을 무릅쓴 재정확대, 내수부양을 위한 금융 및 세제지원, 한국은행을 통한 금리인하 등 단기부양책의 종합판이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의 완화, 배당확대 세제 도입 방침에 부동산 시장과 증시가 뜨겁게 반응했다. 이어 7·30 재·보선에서 여당 압승의 1등 공신으로 최 부총리의 경기부양 정책이 꼽혔다. 정치적, 경제적 모멘텀을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최노믹스는 근혜노믹스 ‘브랜드’가 빛을 잃은 타이밍에 대안으로 등장했다. ‘근혜노믹스 3.0’이 아닌 이유다. 이런 점에서 최노믹스는 경제적이라기보다 철저히 정치적 현상이다. 재정적자와 가계부채 확대에 대한 우려, 기업소득 환류세제 등의 문제점도 흐름을 막진 못했다. 고집 세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은행이 어쩔 수 없이 끌려갈 정도의 흡인력도 이런 힘에서 나왔다. 정치적이란 이유로 최노믹스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모든 정책(政策)은 어차피 정치적이다. 인플레이션을 통한 세수(稅收) 확대와 가계부채 완화, 주가와 집값 상승을 통한 ‘부(富)의 효과(wealth effect)’ 확대 등 최노믹스의 방향은 단기적으로 맞아 보인다. 최를 영어식 ‘초이’로 읽어 만든 ‘초이노믹스’는 너무 작위적이라 개인적으로 거부감이 크지만 말이다. 물론 최노믹스는 임면권자가 따로 있는 ‘장관’ 이름의 정책이란 분명한 한계를 안고 있다. 그가 정치인이라는 점, 다음번 총선 일정 등을 고려해 최노믹스의 최장 시한을 1년 반으로 보는 이가 적지 않다. 단기부양책으로 경기를 띄울 순 있어도 경제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서비스업 중심의 산업구조 개선, 규제완화, 노사관계 변화 등 중장기적 노력이 필요하다. 최노믹스가 한철 반짝하고 잊혀질 정책 브랜드에 그칠지, 한국 경제의 물꼬를 바꾼 경제정책의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될지는 순전히 그 지속성에 달렸다.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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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KB에서 생긴 일

    “KB를 보세요. 3조 원 넘게 쏟아부어 우리은행 인수하면 뭐합니까. 수익성이 바닥까지 떨어진 데다 CEO 하나 마음대로 앉히지 못할 게 뻔한데…. 우린 안 합니다.” 우리은행에 새 주인을 찾아주겠다며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최근 내놓은 우리은행 매각방안과 관련해 인수 후보 중 하나인 금융회사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의 얘기를 이해하려면 몇 달째 KB와 금융당국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일을 들여다봐야 한다. 각각 12일, 19일에 취임 1년을 맞은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요즘 심기가 영 불편하다. 각종 금융사고와 집안싸움으로 금융감독원에서 중징계 사전통보를 받아 자칫 물러나야 할 수도 있는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터진 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태, 도쿄지점의 불법대출 사건 등으로 뒤숭숭하던 4월, KB금융 안에서 집안싸움에 시동을 건 것은 이 행장 쪽이었다. 2년 가까이 진행돼온 주(主)전산기 교체작업과 관련해 은행 이사회가 기존 IBM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 운영체제로 바꾸기로 결정하자 정병기 상임감사위원이 반대의견을 냈고 이 행장이 그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이 시작됐다. 시스템 변경 반대안건을 놓고 지주회사가 선임한 이사들이 한쪽, 정 감사위원과 이 행장이 다른 쪽에서 표 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8 대 2, 교체 쪽이 많았다. 하지만 정 감사위원과 이 행장은 결정에 불복해 금감원에 특별검사를 요청했다. 낡은 에어컨을 바꾸면서 가장이 “전에 쓰던 브랜드가 마음에 안 든다. 딴 브랜드로 바꾸자”고 결정하자 아들이 “아버지가 마음대로 에어컨 브랜드를 바꾸려 한다”며 경찰에 신고한 형국이다. 정보기술(IT) 업계발로 “전산기 교체와 관련해 리베이트가 오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금감원이 양측 계좌를 뒤진 결과 리베이트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당국은 이쯤에서 빠지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평지풍파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임 회장과 이 행장 모두 중징계 대상에 올렸다. 선생님이 싸움박질한 학생 둘을 세워놓고 불문곡직 뺨부터 때린 격이었다. 각종 금융사고의 책임이 당국에 돌아올까 봐 전전긍긍하던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결국 임 회장과 이 행장은 ‘금융계 임직원 200명 동시징계’라는 사상 초유 징계 쇼의 주연이 됐다. 임 회장은 “정상적 회사 업무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한다. 이 행장은 “문제가 있다고 신고한 쪽을 징계하는 게 말이 되냐”고 반발하고 있다. 금융권의 관전자들은 이 다툼을 ‘정치게임’으로 본다. 관료 출신인 임 회장은 이명박 정부 때 ‘금융 4대 천왕’ 중 하나인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지주회사 사장으로 영입했다. 지난해에는 자력으로 이사회 표결을 거쳐 회장이 됐다. 현 정부가 챙겨줄 이유가 없는 인물이란 뜻이다. 반면 이 행장은 현 정부의 고위층 집안과 오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국회 전문위원으로 파견 갔을 때 요즘 최고 실세로 떠오른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친분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금융권에는 “누가 진정한 강자인지 징계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란 얘기가 쫙 퍼져 있다. 이게 지난 몇 달간 KB 안팎에서 벌어진 일이다. 기진맥진한 한국 경제를 살릴 혈맥 역할을 해야 할 금융회사가 정치, 권력에 얽혀 생사를 염려해야 할 정글이 돼 가고 있다. 그 금융권 관계자의 말에 공감이 많이 간다. 누가 우리은행을 사겠다면 극력 뜯어말리고 싶다.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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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그 남자의 표정

    내 기억 속 최고의 표정 연기는 단언컨대 1967년 제작된 프랑스 영화 ‘25시’의 마지막 장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순박하고 어리숙한 루마니아 농부 요한은 아름다운 아내 수잔나를 탐하는 동네 경찰서장의 계략 때문에 유대인이라는 모함을 받고 노동캠프로 끌려간다. 유대인, 헝가리인 등으로 오인받으며 유럽 전역으로 끌려 다니던 그는 엉뚱하게 인종주의자 히틀러가 칭송한 순수 혈통 ‘아리안’의 외모를 가장 완벽히 갖춘 인물로 뽑혀 독일군 홍보 포스터 등에 모델이 되는 희극적 상황에 놓인다. 전쟁이 끝난 뒤 이런 전과(前過) 때문에 전범재판에 회부된 그에게 변호사가 묻는다. “당신은 여기에 왜 와 있는지 아십니까.” 다음과 같은 어리바리한 대답이 요한을 구한다.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8년 동안 영문도 모르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기만 했어요.” “활짝 웃어 달라”고 주문하는 고향 역의 사진기자들 사이에서 전쟁 통에 낳은 소련군의 아이를 안은 아내와 재회하는 요한. 명배우 앤서니 퀸은 펑펑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 웃는 건지 우는 건지 헷갈려 어정쩡한, 그래서 진정 비극적인 요한의 표정을 완벽히 연기했다.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의 소설을 토대로 앙리 베르뇌유 감독이 만든 영화였다. 이달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새 국무총리 후보자를 깜짝 공개한 날 기자들 앞에 선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의 표정은 고위공직 지명을 받은 여느 후보자들보다 훨씬 밝았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자리에 낙점 받고 기분 나쁜 사람 있겠냐만 “표정 관리 좀 해야겠다” “너무 웃는다”는 농담이 나왔다. T(Time·때) P(Place·장소) O(Occasion·상황)에 맞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일찌감치 체득한 정치인, 관료들과 달리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살아온 기자였던 탓일 게다. 다음 날 ‘악마의 편집’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교회 강의 내용이 공개되면서부터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여유가 넘치던 얼굴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친일파’란 야권의 비판에 욱하는 감정도 보였다. “안창호 선생, 안중근 의사를 제일 존경하는 내가 어떻게 친일파일 수 있나”라고 격정적으로 토로하며 낯색을 붉히기도 했다. 이어 여권 내에서조차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그의 표정에서 억눌린 분노가 배어나왔다. 이런 와중에 그의 사퇴를 유도하려는 정부가 나서서 문 후보자의 조부가 건국훈장까지 받은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해주는 희극적인 사건도 발생했다. 같은 건국훈장을 받은 할아버지를 둔 필자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청와대의 처분을 오래 기다리던 그는 24일 결국 비장한 표정으로 사퇴 의사를 밝히며 눈을 질끈 감았다. 성공한 언론인이자 주위에서 매력적인 인물로 평가받으며 살아온 개인이 인생의 절정에 섰다가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15일간의 파노라마 같은 표정 변화를 국민은 생중계를 통해 지켜봐야 했다. 청와대는 이미 문 후보자의 후임을 찾기 위해 많은 명망가에게 열심히 전화를 돌리고 있다. 후보감을 찾기 얼마나 힘든지 이런 신종 보이스피싱이 유행한다는 우스개까지 나온다. “국무총리직에 관심 있으십니까. 관심 있으신 분은 본인 확인을 위해 삐 소리가 난 뒤 개인정보를 입력해 주십시오.” 다음번에 누가 총리 지명을 수락하건 다시는 이런 인사 참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청와대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증해야 한다. 며칠 건너 한 번씩 참사, 참극이 벌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천국과 나락을 오가는 개인의 표정을 낱낱이 지켜보는 건 국민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비극이다. 시대의 희비극이 함축된 남자의 표정은 영화에서 보는 것만으로 족하다.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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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엘리트 공무원 사용법

    “중국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이고 사회주의 국가예요. 인민들 눈이 있는데 아무리 엘리트라도 관료 월급을 선진국처럼 많이 줄 순 없거든요. 그래서 각자 알아서 치부(致富)해도 눈감아 준 겁니다. 계속 이렇게 둘 순 없죠. 부정부패 척결로 시작했지만 결국 싱가포르처럼 공무원에게 제대로 보상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쪽으로 갈 겁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다음 날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의 한 경제학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추진하는 반부패 드라이브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해수부 마피아’의 민관 유착에서 시작돼 급물살을 탄 관피아 개혁 논의를 지켜보며 그 학자의 얘기가 계속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공직사회 개조를 약속하고 4일 뒤 정부는 5급 공무원 공채(행정고시) 선발 규모를 단계적으로 줄여 2017년에 5급 공채와 민간 경력자의 채용비율을 반반으로 맞추겠다고 발표했다. 낙하산 관행을 없애기 위해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 제한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재취업을 제한하는 민간기업의 수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또 대가성,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100만 원이 넘는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하는 ‘김영란법’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관료사회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부패와 민관 유착의 소지를 물샐틈없이 차단하는 방안들이다. 주요 표적이 된 행시 출신 엘리트 공무원들 사이에선 한숨이 새나온다. “이젠 무조건 정년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갈 곳도 없는데 후배들을 위해 용퇴하라면 누가 옷을 벗겠느냐” “평생 기업 다니는 친구들보다 적은 월급을 받았는데 은퇴 후 돈 벌 길까지 막으면 어떻게 하나. 행시 인기가 뚝 떨어질 거다” 등 볼멘소리 일색이다. 이들의 불만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센티브’다.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경제원칙은 엘리트 공무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데다 주말에도 수시로 불려 나가고, 부처가 세종시로 옮기면 군말 없이 두 집 살림을 하면서 30여 년을 버틴 끝에 ‘공무원의 별’인 1급, 차관급이 돼 봐야 월급은 대기업 부장 수준이다. 조기 퇴직이 일상화된 민간기업보다 낫다 해도 승진 길이 막히면 정년에 관계없이 옷을 벗어야 한다. 지급액이 많고 일찍부터 주는 연금이 그나마 위안이지만 이 부분에도 곧 개혁의 칼날이 날아들 기세다. 평생 수재 소리를 듣다가 명문대에 들어가 국가고시를 통과한 엘리트들이 만족하긴 힘든 조건이다. 공직사회 개혁을 위해 민간 경력자를 뽑는 데에도 이런 조건들은 걸림돌이 된다. 유능한 민간의 인재들이 이 정도 대우를 받기 위해 공직에 입문하려 할까. 들어갔다가 다시 민간에 나갈 때 3년간 취업이 제한되는 악조건까지 붙는데 말이다. 열악한 보상에 대응해 고위 공무원들이 ‘알아서 챙긴’ 대표적 보상법이 공기업, 협회 등에 낙하산으로 취업하는 길이었다. 재직 중 손해 본 걸 은퇴 후 몰아서 보상받는 시스템이다. 이 길은 세월호 참사로 낱낱이 문제가 드러나 곧 막히거나 대폭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남는 문제는 앞으로도 우수하고 헌신적인 관료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치열하게 글로벌 경쟁을 치르는 민간부문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공무원의 경쟁력은 선진국 수준까지 높아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도 이제 공무원 쓰는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할 때가 됐다. 안전비용이 빠진 저렴한 서비스의 선호가 세월호 참사로 이어졌다면 엘리트 공무원들을 제값보다 싸게 써온 오랜 관행은 민관 유착과 부패를 낳았다. 공직사회 개혁의 밑그림을 그릴 때부터 고위 공무원의 처우 등 인센티브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4-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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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리스크 테이킹의 대가

    “저마다 가진 소질과 꿈이 있는데 형편이 어려워서 교육을 받을 수 없거나, 이를 발휘할 수 없으면 행복할 수 없잖아요.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2009년 12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기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라는 기치를 들고 차기 대권 도전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이론은 인간의 욕망을 다섯 단계로 구분해 아래 단계의 욕구가 실현돼야 높은 단계의 욕구로 옮겨간다는 내용이다. 최하위 1단계는 ‘생리적 욕구’, 2단계는 ‘안전의 욕구’, 3단계는 ‘사회적 욕구’, 4단계는 ‘존경받고 싶은 욕구’, 그리고 제일 높은 단계가 박 대통령이 말한 자아실현 욕구다. 대통령은 올해 2월에 일자리·복지 분야 업무보고를 받을 때에도 이 이론을 거론하며 “자기 실력과 역량을 발휘하고 싶은 것이 인간이 가진 근본적 욕구로 그걸 실현하는 게 고용과 복지”라고 강조했다. 이런 국정철학을 갖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세월호 참사는 큰 충격일 것이다. ‘국가개조’ 수준으로 나라의 전체 시스템을 싹 바꾸겠다는 얘기에서 그 충격의 강도가 읽힌다. 규제완화와 창조경제로 임기 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고 일자리와 복지를 확대해 국민들이 5단계 자아실현 욕구를 실현하도록 하려던 계획이 2단계 안전의 욕구가 무너지면서 어긋나버렸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4월 28일 “2005년 카트리나 사태 당시 미국인이 자국의 안전 부재와 대응력 부실을 절실히 깨달았듯 한국인들이 저개발국가형 재해인 세월호 사고에서 비슷한 ‘깨달음’의 순간을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앞만 보고 ‘빨리빨리’ 달려온 우리 사회는 이번 사고로 성장의 뒤편에 방치했던 안전의 가치를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 한국은 전형적인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 사회’다. 국민들은 ‘안전비용’이 빠진 저렴한 상품과 서비스를 선호했다. 효율과 속도를 높일 수 있다면 웬만한 리스크에는 눈감는 데 익숙했고, 크지 않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비용을 치르는 데는 대단히 인색했다. 국가와 기업도 이런 국민의 기호에 맞춘 덜 안전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그동안 밀린 위험 감수의 대가를 우리 사회가 한꺼번에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문제는 안전한 국가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는 데에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라는 점이다. 당장 더 신속하고 유능한 구난·구조 서비스를 갖추려면 인력과 장비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해운업체는 노후한 선박을 폐기하고 새 선박과 안전장비를 구입해야 할 것이다. 붕괴 위험이 있는데도 재정이 부족해 개축하지 못했던 전국의 학교 건물들도 필요하다면 모두 새로 지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정과제와 재정배분의 우선순위부터 조정해야 한다. 수십 년간 곪은 위험 감수 사회의 근간을 수리하는 일만으로도 대통령의 임기는 짧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국회가 앞장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한 만큼 야당도 공허한 정쟁 대신 국민의 ‘안전의 욕구’를 충족시킬 정책부터 여당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 다만 그 비용은 결국 국민의 지갑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사회 전체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세금을 더 내고, 안전한 서비스에 값을 더 치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아무리 큰 비용도 진도 앞바다에서 잃어버린 수백 명 청소년들의 목숨에 비할 바 아니다.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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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좋은 인디언, 나쁜 인디언

    “내가 아는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이다(The only good Indian is a dead Indian).” 19세기 후반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미국의 백인들은 서부 개척에 방해되는 인디언들을 잔인하게 소탕하고 있었다. 코만치족의 추장 토와시는 이때 부족원들을 이끌고 투항했다. 더듬거리는 영어로 그가 “나 토와시, 좋은 인디언”이라며 선처를 호소했을 때 토벌작전을 지휘하던 필립 셰리든 장군은 “내가 본 좋은 인디언은 다 죽어버렸어”라고 대꾸했다. 이 말이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 뿐’이란 말로 바뀌어 인구에 떠돌았다. 지난달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끝장 토론회’에서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는 우리 경제의 ‘암 덩어리’지만 복지, 환경, 개인정보 보호같이 꼭 필요한 규제들도 있다. 좋은 규제는 개선하고 나쁜 규제는 뿌리 뽑겠다”라고 밝히는 걸 보면서 엉뚱하게 미국 인디언 멸망사의 한 토막이 떠올랐다. 박 대통령은 이날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에 대해 설명했지만 전체적인 무게는 ‘나쁜 규제의 혁파’에 실렸다. 다음 날부터 모든 정부부처는 규제개혁 총력전에 돌입했다. 한국의 인터넷쇼핑몰에 ‘천송이 코트’를 주문하려는 중국인들을 가로막는 공인인증서 규제, 트럭을 개조해 소자본으로 음식장사를 해보려는 청년들을 방해하는 푸드트럭 관련 규제 등 토론회에서 지적된 사안들은 벌써 개선 방안과 일정이 나왔다. ‘좋은 규제는 폐지된 규제뿐’이란 느낌이 들 정도로 각 분야의 규제들이 사회의 발전을 해치는 절대악으로 떠올랐다. 공인인증서 규제, 푸드트럭 규제는 누가 봐도 폐지돼야 할 나쁜 규제다. 하지만 조금만 다른 부문으로 가면 선악의 경계는 금세 흐릿해진다. 끝장 토론회에서 여성가족부 장관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설전을 불렀던 ‘셧다운제’는 게임산업을 활성화하고 관련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선 폐지돼야 할 나쁜 규제다. 하지만 자녀의 게임중독을 두려워하는 부모들에게 이 규제는 고마운 규제다. 문제는 선악의 중간지대에 있는 이런 규제들이 일자리 창출, 기업투자 확대의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이다. 카지노 관련 규제도 이런 종류다. ‘도덕 국가’ 싱가포르에서 카지노는 40여 년간 금단의 비즈니스였다. 하지만 2006년 취임한 리셴룽(李顯龍) 총리는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도박은 절대 허용 못한다”는 아버지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반대를 무릅쓰고 카지노 허용에 박차를 가했다. 활력을 잃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거센 반대에도 2010년 내국인도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 두 곳을 포함한 복합리조트의 문을 열었다. 결과는 5만 개의 일자리, 10%가 넘는 성장률이었다. 시대에 따라 규제의 선악은 바뀌기도 한다.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규제로 자주 꼽히는 영국의 ‘적기 조례(Red flag act)’는 증기 자동차가 마차 타는 사람이나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차에 앞장서 달리게 하는 내용이었다. 1865년 제정 당시엔 도로 사정 등을 고려한 세계 최초의 선진적 도로교통법이었다. 하지만 차의 속도를 사람이 달리는 속도 이하로 제한한 이 규제로 영국의 자동차산업은 독일, 프랑스에 영원히 뒤처졌다. 규제의 선악을 판가름하는 일은 기병대가 좋은 인디언, 나쁜 인디언을 생사로 가르는 것만큼 분명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각종 규제가 현재와 미래에 끼칠 손익을 읽어내는 눈을 갖춰야 한다. 선악의 경계에 있고, 반발이 예상돼도 국가의 미래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개혁을 추진하는 지도자의 의지가 결국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규정한다. 그런 의지가 담긴 선택을 보고 싶다.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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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연금 5년 평균 수익률 OECD 20개 국가 중 2위

    국민연금의 2008∼2012년 5년간 자산운용 수익률은 5.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개 회원국 국가연금 중 2위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노상윤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은 9일 ‘글로벌 공적 연기금의 자산운용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멕시코 사회보장청(IMSS)기금의 지난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6.0%로 20개국 중 가장 높았다. 다음은 한국, 호주 연금펀드인 퓨처펀드(5.0%), 미국 사회보장신탁기금(SSTF·4.6%), 노르웨이 국부펀드(GPF-N·4.4%) 등의 순이었다.}

    • 201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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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물가 강박증, 이젠 깨야 할 때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란 게 뭐 별거 있나요. 빚 탕감해주거나 경기 살려서 일자리와 소득이 늘어나길 바라는 건데….” 최근 정부가 발표한 가계부채 대책이 3년 전 발표했던 것에서 숫자만 바꾼 ‘재탕’이란 비판이 제기되자 한 정부 관계자가 이런 전화를 걸어왔다.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을 넘어서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박근혜 정부 첫해인 지난해 저소득층 부채 탕감을 해줬고, 경기활성화를 위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까지 내놓은 상황에서 대출만기를 늘려주는 정도 외에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푸념이었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보면 부채 문제에 확실히 먹히는 ‘마법탄환’이 하나 있다. 인플레이션, 즉 물가 상승이다. 물가가 올라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화폐로 표시된 빚 부담은 줄어든다. 1980, 90년대에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이 많았어도 지금처럼 부채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던 건 부동산을 포함해 물가가 빠르게 올랐기 때문이었다. 요즘 한국의 물가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안정돼 있다. 2월 중 소비자물가는 작년 같은 달보다 1.0% 오르는 데 그쳤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10월에 0.9%까지 떨어졌다가 이후 4개월 연속 1%를 간신히 넘겼다. 한국은행의 물가 목표인 2.5∼3.5%에 한참 못 미친다. 상품·서비스의 가격 수준을 보여주는 생산자물가지수는 1월에 0.3% 하락하는 등 16개월 연속으로 떨어졌다. 물가 문제는 공공기관 ㅊ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최근 한국전력, 수자원공사, 철도공사(코레일), 도로공사 등은 전기, 수도, 철도, 고속도로 요금을 올려 각각 3000억∼2조 원 정도의 빚을 줄이겠다고 기획재정부에 보고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공공기관의 황당한 복리후생 관행은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전기요금에서 한전의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다. 한전 직원들 월급을 절반으로 깎아도 요금의 1%를 줄일 수 있을 뿐이어서 막대한 부채 감축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이들 기관의 만성적자를 해결하려면 정치적 이유로 제때 올리지 못했던 요금을 언젠간 현실화할 수밖에 없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핵심 과제인 ‘서비스업 빅뱅’도 물가 문제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금융, 보건·의료, 교육, 관광 등 서비스 분야를 활성화하려면 ‘고(高)부가가치화’가 필수적이다. 고부가가치화는 고급화의 동의어다. 좀더 질 좋은 서비스에 훨씬 비싼 값을 치르는 고소득층이 있어야 서비스업을 통한 내수 활성화가 가능해진다. 제대로 오르지 않는 물가 때문에 여러 문제가 불거지고 있지만 한국의 경제정책에서 물가는 ‘죽은 카드’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 말기에 물가잡기 총력전을 편 이후 현 정부에서도 그런 기조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도 ‘물가안정’ 목표에만 매달려 재작년과 작년 초에 기준금리 인하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문제가 더 꼬였다. 물론 물가 상승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임금 상승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상승이 억제돼 기업들이 제대로 돈을 못 벌면 근로자들의 임금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최근 “꿈까지 꿀 정도로 규제개혁을 생각하라”며 경제를 옥죄는 규제의 혁파를 강조하고 있다. ‘가격 규제’야말로 시장경제를 해치는 가장 강력한 규제다. 경기 활성화에 팔을 걷어붙이기로 했다면 물가 상승에 대한 과도한 피해강박은 버리는 게 좋다. 곧 취임할 이주열 한은 총재 후보자도 ‘물가 도그마’에서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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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당신의 살, 편안하십니까

    며칠이 지났는데도 설 연휴 중 생긴 부기가 빠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 끼에 하루 권장열량의 75%나 된다는 설 밥상을 거푸 받은 탓이다. “부은 게 아니라 살이 찐 것”이라는 아내의 입바른 소리가 고깝게 들리고 약이 오른다. 먹어도 살 안 찌는 사람들은 이해 못한다. 한국의 900만 ‘과(過)체중인’들에게 살찌는 것과 붓는 것은 절대 같은 일이 아니다. 한 달 전 사두고 놔뒀던 책에 절로 눈길이 갔다. ‘왜 뚱뚱한 사람이 더 오래 사는가’란 선정적 부제가 붙은 ‘다이어트의 배신’. 독일의 뇌 과학자이자 비만 전문가인 아힘 페터스는 이 책에서 살이 찌는 건 병이 아니라 스트레스에 대한 인체의 정당한 ‘응전’이라고 설명한다. 같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밥맛이 없고 몸이 축나 마르는 체질보다 음식을 더 많이 먹고 살찌는 체질 쪽이 더 건강할 개연성이 크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난해 12월 말 동아일보의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기 위해 열렸던 편집국 회의 때가 떠올랐다.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이들은 최종적으로 선정된 LA 다저스의 투수 류현진을 비롯해 가수 싸이, 골프 여제(女帝) 박인비 등. 하나같이 당당한 체격과 한국적인 대두단지(大頭短肢) 체형을 갖춘 인물들이다. 이 중 류현진, 박인비 선수는 승패가 갈리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놀라운 침착성을 발휘한 스포츠맨이다. 싸이는 군대에 두 번째 가서도 밝은 모습으로 국군장병을 위해 열정적인 공연을 펼친 끝에 재기해 국제스타가 됐다. 살집 있는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가 스트레스에 강하다는 설명이 더욱 그럴듯하게 들린다. 다만 이들은 자발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란 점에서 스트레스에 수동적으로 노출된 일반인들과 차이가 크다. 페터스는 책에서 보통 사람들이 받는 사회, 경제적 스트레스와 비만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정기적 수입이 없고, 자녀와 함께 사는 미국 5대 도시의 빈민 거주지역 여성 4500여 명 중 일부를 추첨을 통해 생활여건이 나은 곳으로 이동시킨 실험이었다. 15년 후 중산층 지역으로 이주한 여성들의 비만도는 가난한 동네에 남은 여성들보다 하락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한국을 덮쳤을 때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갑자기 생활이 팍팍해진 사람들은 쇼핑, 여행 등 돈이 들고 에너지를 소모하는 외부 활동을 크게 줄였다. 반면 집에 들어앉아 TV 앞에서 라면, 과자류, 소주 등 칼로리는 높고 영양소는 적은 이른바 ‘공(空)칼로리’ 음식들을 많이 소비했다. 이때 ‘IMF형 비만’이란 말이 나왔다. 최근에도 비만 관련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5∼94세 한국 남성의 3분의 1, 여성의 4분의 1 정도는 복부 비만이라는 조사 결과, 10여 년간 소득수준 하위 계층 어린이 및 청소년의 비만율이 높아진 반면 같은 또래 상류층 아이들은 비만율이 떨어져 ‘비만의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기사 등이다. 비만이 스트레스 수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면 한국 사회의 스트레스 수준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새해 들어서는 온 국민에게 스트레스를 던지는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다. 1700만 명이 신용카드 개인정보가 유출돼 금융범죄 등 2차 피해 우려에 떨고 있다. 여수 기름 유출이란 대형 재난도 터졌다. 두 사건의 관리 책임이 있는 장관들은 사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계속되는 말실수와 황당한 대응으로 국민들의 화만 돋우고 있다. 대외적으론 신흥국발(發) 금융위기가 다시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대로 가다간 올해도 한국인들의 다이어트가 연초 계획대로 성공하긴 어려울 것 같다. 사회, 경제적 스트레스로 늘어날 ‘살’의 책임은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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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대통령의 달 착륙 프로젝트

    애니메이션과 영화에 자주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펭귄은 인간의 사랑을 듬뿍 받는 동물이다. 지난해 5월 영국과 중국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은 펭귄이 하늘을 나는 대신에 헤엄을 치는 데 날개를 사용하게 된 이유를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펭귄과 생김새가 비슷하고 서식지가 가까우며 자맥질도 할 수 있는 바다오리를 면밀히 관찰했다. 그 결과 잠수에 능한 바다오리의 비행능력은 다른 새들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펭귄이 오래전 날기와 잠수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진화의 기로에 직면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황제펭귄의 경우 물속에 한번 뛰어들면 평균 5.7분간 숨을 참고 237번 날개를 퍼덕이며 먹잇감을 잡는다. 하늘을 나는 능력을 포기한 대신에 생존능력을 높이는 쪽으로 결정적인 진화론적 선택을 한 셈이다. ‘3·4·7 비전(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의 목표 달성)’이 발표된 박근혜 대통령의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와 비슷한 선택을 봤다. 80분의 기자회견 중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51차례 등장한 ‘경제’. 지난해까지 박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만큼이나 무게를 뒀던 ‘복지’는 단 2번만 나왔고 ‘경제민주화’는 아예 거론되지 않았다. 특히 “3만 달러 시대를 넘어 4만 달러를 바라보는 토대를 만들겠다”는 발언과 관련해 대통령은 사전에 청와대 경제팀과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부처를 출입한 경험에 비춰 볼 때 경제 관료의 계산기에서 ‘4만 달러’같이 담대한 숫자는 절대 나올 수 없다. 매년 4%씩 성장해도 지난해 2만5000달러 정도로 추산되는 1인당 국민소득을 3만 달러로 끌어올리는 데는 5년, 4만 달러로 높이려면 12년 정도가 걸린다. 지난해 성장률이 2.8%였고 잠재 성장률도 3%대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원화 강세 등으로 환율이 크게 요동치지 않는 한 3만 달러도 임기 내에 달성하기 대단히 어려운 목표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4만 달러 표현을 고집한 의도는 지난해 12월 제50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했던 얘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옛날에 ‘수출 100억 불, 1인 개인소득 1000불, 마이카 시대’를 70년에 연다고 했을 때 세상에 3대 웃음거리가 됐대요. 너무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했다고…. 그런데 국민의 저력이 그것을 이뤄냈거든요.” 이렇게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장 청사진과 같은 도전적 목표로 ‘4만 달러’를 내놨다. 이 목표와 함께 “통일은 대박”이란 표현이 나온 배경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미국 독일 일본처럼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인구 8000만 명인 ‘40-80 클럽’ 국가가 되려면 통일은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개인적으론 박 대통령의 4만 달러 발언에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달 탐사 계획 발표를 떠올렸다. “미국은 1960년대가 끝나기 전까지 인간을 달에 보내고 다시 지구로 무사히 귀환시킬 것입니다.” 1961년 5월 케네디의 이 발표는 ‘스푸트니크 쇼크’로 열패감에 빠져 있던 미국인들에게 지향점을 제공했다. 1969년 7월 아폴로 11호의 승무원 닐 암스트롱은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4만 달러 비전은 ‘박근혜표 달 착륙 프로젝트’나 다름없다. 한국 대통령의 임기는 5년, 그중 1년이 이미 흘러갔다. 성장과 복지 대선 공약을 동시에 달성하고, 투자 및 내수를 활성화하면서 경제민주화도 챙기기에 남은 임기가 너무 짧다. 제한된 시간 안에 더 높이 비상하기 위해 다른 한쪽을 포기한 대통령의 결정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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