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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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중현 논설위원입니다.

sanjuck@donga.com

취재분야

2024-03-21~2024-04-20
칼럼100%
  • 전장의 아들 딸[횡설수설/박중현]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십시오. 대신에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소집된 나의 승무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1952년 3월 한국으로 떠나기 전 제임스 밴 플리트 주니어 중위(당시 27세)는 이런 편지를 어머니에게 보냈다. 미 8군사령관인 아버지 밴 플리트 장군이 있는 한국전선으로 전출을 자원한 그는 3월 19일 자신이 조종하는 B-26 폭격기 승무원들과 함께 아버지의 60세 생일파티에 참석했다. ▷보름여 뒤인 4월 4일 밴 플리트 주니어는 압록강 남쪽으로 비행을 나갔다가 실종됐다. 네 번째 출격이자 첫 단독 비행이었다. 밴 플리트 장군은 얼마 안 돼 “그 정도면 충분하다”며 수색작전을 중단시켰다. 며칠 뒤 부활절에 장군은 한국군 실종 장병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 “벗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은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습니다.” 육군사관학교와 한국군 육성에 크게 기여해 ‘한국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군은 100세에 눈을 감을 때까지 평생 외아들을 그리워했다. ▷대를 이어 군복무하는 걸 명예로 여기는 미국에서는 전사한 유력인 자제들이 적지 않다. 본인이 미-스페인 전쟁에 참전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장남과 차남은 모두 프랑스 노르망디 미군 묘지에 묻혀 있다. 차남은 1차대전 때 전투기를 조종하다 전사했다. 장남은 전사하진 않았지만 1차대전에 이어 2차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2차대전 때 어뢰정 정장(艇長)으로 복무했고 조종사였던 맏형은 군용기 사고로 숨졌다. ▷벨기에 왕립육군사관학교 진흙탕에서 포복하며 훈련하는 왕위 계승 서열 1위 엘리자베트 공주의 모습이 화제다. 훈련 기간은 1년으로 호칭부터 일체의 ‘공주 대접’은 없다고 한다. 아버지 필리프 국왕에 이어 장차 군 최고통수권자가 될 인물인 만큼 필요한 일이지만 19세 딸을 군사훈련에 보낸 부모의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실종 후 전사로 처리됐던 밴 플리트 주니어가 실은 비행기 추락 후 북한군 포로로 잡혔다가 중국을 거쳐 소련의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밴 플리트 장군의 외손자가 최근 주로스앤젤레스 한국총영사관이 연 세미나에서 밝혔다. 육군 정보국 참모차장을 지낸 자기 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밴 플리트 장군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목숨 걸고 전투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명예로운 가문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고 했다. 걱정을 숨기며 자식을 전장에 내보내고, 자식을 잃고도 눈물을 감추는 부모가 가문의 영예를 완성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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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택근무와 워라밸[횡설수설/박중현]

    “화상회의를 하려면 몇 시간 전엔 알려주셔야죠.” 재택근무 중인 외국계 기업의 남자 임원 A 씨는 이런 항의를 받고 나서야 노트북컴퓨터 앞에 앉기 전 여자 부하직원들에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단 걸 깨달았다. 이후 화상회의 횟수를 줄이고 시간도 정례화했다. 코로나19로 갑자기 닥친 재택근무는 한국인들이 굳이 알려고 하지 않던 많은 진실을 깨닫게 해준다. ▷고용노동부가 그제 내놓은 ‘재택근무 종합 매뉴얼’에서 회사원들이 높은 관심을 보인 부분은 주로 근태 관련이었다. ‘회사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정보, PC 접속기록을 확인하겠다는데…’라는 질문에 매뉴얼은 ‘근로자 동의가 없으면 회사가 강요할 수 없다’고 돼 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입사 때부터 개인정보 이용 동의서를 받고 있고, 그룹웨어를 통해 업무 시작과 끝 시간을 체크하고 있어 집에서 일해도 인사담당자들의 감시를 완전히 피하긴 쉽지 않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최근 미국 금융대기업 중 처음으로 재택근무 중단 결정을 내렸다. “생산성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다. 직원 간 유기적 소통에 문제가 생겼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차단됐다”는 이유다. “신입 직원들은 선배들로부터 일을 배울 기회가 원천 봉쇄됐다”고도 했다. 초봉 10만 달러가 넘는 인력을 쓰는 월스트리트 금융권이라면 인건비가 더 아까울 것이다.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최고경영자(CEO)도 재택근무와 관련해 “아이디어를 놓고 토론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고 불평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상위 100대 기업 중 88.4%가 사무직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재택근무 생산성이 정상근무의 90% 이상이란 답이 절반 정도였다. 이렇게 미국 기업들과 다른 상황이 벌어지는 건 근무시간은 길어도 업무의 집중도는 낮았던 한국의 직장문화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늘어지는 회의, 상사 눈치만 보는 퇴근시간 등 불필요한 요소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직원들 반응도 둘로 갈린다. “진정한 워라밸이 뭔지 알게 됐다”는 찬성파가 있고 “일과 개인생활의 경계가 무너져 엉망진창이 됐다”는 반대파도 적지 않다. 걱정되는 건 기업들이 기존에도 집에서 일했던 프리랜서와 출퇴근 정규직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인사권자와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성과에 대한 평가는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일(work)과 생활(life)의 밸런스가 중요해도 언제 끝날지 모를 경기침체 속에서 일은 잃고 생활만 남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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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뺀 ‘클린 패스’[횡설수설/박중현]

    “화웨이와 ZTE 등 신뢰할 수 없는 판매자가 공급하는 어떤 5세대(5G) 통신 장비도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키스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차관은 올해 5월 미국의 ‘5G 클린 패스(Clean Path) 구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세계 5G 장비 시장 점유율 1위와 5위인 중국 화웨이와 ZTE의 통신 장비를 통해 민감한 정보들이 중국으로 유출될 수 있는 만큼 세계 5G망에서 이들을 빼버리고 ‘깨끗한 통로’로 정보가 흐르게 하자는 주장이다. ▷지난 10일 온라인으로 열린 한미 정보통신기술(ICT) 정책포럼에서 미 국무부 국장급 참석자가 불쑥 ‘5G 안보’를 거론했다.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 주제를 다루는 데 부정적이었지만 굳이 언급해 클린 패스 동참을 넌지시 독려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LG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쓰고 있어 쉽게 결론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막대한 투자 비용 손실과 서비스 단절 가능성 때문에 장비 철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국은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공급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에 시동을 걸었다. 이 중 ‘5G 클린 패스’의 진행 속도가 특히 빠르다. 미국의 압박에 영국이 단계적 화웨이 퇴출을 약속했고 프랑스, 독일은 고민하고 있다. 중국과 국경분쟁을 겪는 인도도 화웨이 장비를 쓰지 않기로 했다. 미국의 기술, 장비를 사용해 만든 반도체를 허가 없이 화웨이에 팔지 못하도록 한 미 상무부 조치까지 맞물려 중국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인 화웨이는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달 20일부터는 중국의 국민 앱 ‘위챗’의 미국 내 사용을 금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까지 발효된다. 위챗 이용자 12억 명 중 미국 사용자는 화교 중심의 수백만 명뿐이지만 미국인의 정보가 중국으로 흘러들어 간다는 게 이유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위챗을 금지한다면 우리도 애플 스마트폰을 쓰지 않을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불매운동 가능성을 내비쳤다. 중국인들의 반발로 중국 내 아이폰 판매가 최대 30%까지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와도 미국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그제 국회에서 EPN과 미국 중심 안보공동체 ‘쿼드 플러스’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방침을 묻는 질문에 “우리에게 동참하라든지, 논의하자는 요청은 아직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을 세계 첨단산업의 가치사슬에서 끊어내고 중국 안에 고립시키기 위한 미국의 세계 전략은 착착 진행 중이다. 미국이 ‘미국 편인지, 중국 편인지 정하라’고 대놓고 물어볼 시간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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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 부른 ‘디지털교도소’[횡설수설/박중현]

    ‘지저분하게도 생겼네’ ‘쓰레기’…. A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과 인터넷 쇼핑몰에 올해 7월 이런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유를 찾던 A 씨는 ‘디지털교도소’가 자신을 16년 전 발생한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가해자로 지목해 이름과 사진을 공개한 사실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강력히 항의하자 사이트 운영자는 “동명이인이었다”며 정보를 지웠다. 하지만 A 씨의 사회적 이미지와 사업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았다. ▷성범죄자와 성범죄 의혹이 제기된 사람 등의 개인정보를 공개해 온 개인 사이트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된 명문대생 B 씨(20)가 3일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디지털교도소는 “B 씨가 지인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해 유통하는 이른바 ‘지인 능욕’을 누군가에게 요청했다”며 7월 그의 사진, 학교, 전공, 전화번호까지 상세한 정보를 사이트에 올렸다. B 씨는 대학 커뮤니티에 “모두 사실이 아니며 해킹당한 것 같다. 억울하다”고 해명했지만 악플, 협박에 시달려 왔다. ▷올해 6월 개설된 이 사이트 운영자는 ‘대한민국 악성 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웹사이트’라고 소개문을 올려놨다. 무기징역을 받아도 20년이면 모범수로 석방된다며 신상공개 기간은 30년으로 정했다. n번방 사건의 조주빈 등 150여 명이 ‘수감’돼 있고 하루 평균 2만 명이 방문한다.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개인정보는 물론이고 그의 미국 송환 불허 판결을 내린 판사의 신상정보까지 공개해 놨다. B 씨를 비롯해 20% 정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었는데도 제보 등을 자체 확인해 의혹을 제기한 경우다. ▷‘디지털교도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사촌동생이 n번방 사건’ 피해자란 사실을 알게 돼 복수를 고민했다. 시민들이 안전하게 분노할 공간이 필요해 디지털교도소를 열었다”고 했다. 한국의 법체계가 흉악범들에게 충분한 처벌을 하지 못하니 범죄자 신상을 공개해 댓글 등으로 응징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사이버 린치(사적 보복)와 인권 침해 소지가 커 여러 건의 고소, 고발이 접수됐지만 러시아 도메인(.ru)을 사용하고 운영자도 해외에 체류하는 것으로 추정돼 수사가 쉽지 않다. ▷이 사이트를 두고 지나치게 너그러운 한국의 성범죄 처벌 수준에 대한 불만이 투영된 것이라며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범죄 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개인에게 사적 제재를 가하는 건 법치 사회에서 결코 용인될 수 없는 행위다. 죽음까지 부른 사이버 자경단에 의한 피해가 더 이상 커지지 않게 수사기관이 적극 나서야 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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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의 빚투[횡설수설/박중현]

    19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 중엔 20여 년 전 졸업앨범 속에서 활짝 웃고 있지만 지금은 행방이 묘연해진 동기생을 발견하곤 한다. 이렇게 사라진 사람 가운데 일부는 김대중(DJ)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극복을 위해 썼던 두 가지 경기부양책의 후유증 탓에 친구들 주변에서 종적을 감췄을 수 있다.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출범한 DJ 정부는 내수를 살리기 위해 발급 조건과 현금서비스 한도 등을 완화하며 신용카드 사용을 권했다. 1998년 ―5.5%까지 떨어졌던 경제성장률이 1999년 11.5%, 2000년 9.1%로 급등한 데는 수출 증가와 함께 신용카드 사용으로 인한 소비 증가가 영향을 미쳤다. 빚의 무서움을 모르는 젊은 직장인, 대학생들이 길거리에서 서명만 하면 발급해주는 신용카드 여러 장을 지갑에 넣어 다니며 펑펑 돈을 썼다. ▷또 다른 부양책인 ‘벤처 붐’은 신용카드가 생긴 청년 중 일부를 주식 투자로 끌어들였다. 대수롭지 않은 기술을 보유하고도 순식간에 수십, 수백 배 주가가 오르는 걸 본 청년들은 카드대출을 받아 벤처 주식에 ‘몰빵’했다. 2000년대 들어 버블 붕괴로 많은 주식이 휴지조각이 됐고 ‘카드 돌려 막기’로 빚을 갚던 다수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유동성 탓에 주가가 폭등하자 20대 청년들이 ‘빚투’(빚내 주식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20대가 투자를 위해 증권사에서 빌린 돈인 ‘신용공여액’이 2년 반 만에 2.3배로 늘었다. 몇 달 만에 수십 % 이익을 낸 투자자들을 지켜보던 20대들이 빚을 내 ‘동학개미’에 합류한 것이다.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에선 무료 주식 앱을 쓰는 청년 ‘로빈 후드’가, 중국에선 풀처럼 쑥쑥 잘 자란다는 뜻의 ‘청년 부추’들이 증시를 달구고 있다. ▷2030 개미들은 최근 정부가 주식 투자 수익에 양도소득세를 물리려 하자 온라인 공간에서 강하게 반발해 시행 시기를 늦추는 등 양보를 받아냈다. 면세점이 높은 한국에서 소득세, 재산세를 좀처럼 낼 일이 없는 청년 세대의 첫 번째 조세저항이라 할 만하다. ‘주식 자산’을 보유하고 세금을 내게 된 청년층이 자본주의 사회의 시민의식과 권리를 각성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청년의 주식 투자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빚투는 위험하다. 청년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부모 세대와 같은 방법으로 부의 축적과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할 것이란 조바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형 우량주에 집중 투자한다는 점에서 벤처 버블 때보다 위험은 작다지만 다락같이 오른 주가는 실물경제의 작은 충격에도 언제든 급락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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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반지 30만 원 시대[횡설수설/박중현]

    1900년 프랭크 바움이 펴낸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의 1890년대 공황을 은유한 동화다. 당시 심각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으로 농민들이 고통을 겪자 일부 정치가들이 금본위제 폐지와 은본위제 도입을 주장했다. 금보다 풍부한 은을 기초로 화폐 발행을 늘려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려던 것이었지만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 것을 경계한 동부 자본가들의 반대로 시행되진 않았다. 오즈(Oz)는 금, 은의 중량을 표시하는 트로이온스(31.1035g)의 단위기호다. ▷4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금이 온스당 2021달러(약 240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처음 2000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올해 들어서만 32% 올랐다. 어제 한국의 금값도 1돈(3.75g)에 29만1555원으로 세공비를 포함한 돌 반지 가격이 30만 원을 넘어섰다. 뱅크오브아메리카증권은 2500∼3000달러까지 금값이 오를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금의 가치는 부식되지 않는 특성과 희소성에서 나온다. 세계금위원회(WGC)에 따르면 인류가 지금까지 채굴한 금의 총량은 19만7576t이다. 한데 모으면 천장 높이 2.5m인 99㎡ 아파트 41채 안에 모두 넣을 수 있는 정도의 양이다. 이 중 47%가 장신구 등에 쓰이고 있으며 21.6%는 민간 투자용, 17.2%가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 보유량이다. 매년 2500∼3000t의 금이 새롭게 채굴된다. ▷미국 근현대사는 금과 함께했다. 미국 서부 연안은 1849년 캘리포니아 금광에 몰려든 ‘포티나이너스(forty-niners)’가 개척했다. 1, 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패전국에서 받은 금 배상금, 무기 판매 대가로 챙긴 금을 기초로 미국은 금본위제를 1971년까지 유지했고 달러화는 세계 기축통화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미국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8133.5t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행 역시 104.4t의 금을 12.5kg짜리 금괴 형태로 영국 중앙은행 지하 금고에 맡겨두고 있다. 세계 중앙은행 중 보유량 35위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해 세계 각국은 막대한 돈을 풀었다. 대공황의 교훈을 토대로 선제적으로 대응해 디플레이션은 피했지만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타났다. 너무 많이 푼 탓에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고 ‘절대 안전자산’인 금으로 자산가들의 돈이 쏠린 것이다. 좌충우돌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불안감이 세계 금값을 더 끌어올린다는 분석도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금은 인간의 불안을 반영하는 바로미터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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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벨트[횡설수설/박중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1999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내 규제 완화와 대규모 해제 계획을 발표한 뒤 환경단체가 반발하자 김대중 정부 관계자들은 이렇게 강조했다. 1970년대에 지정된 후 성역처럼 유지되던 그린벨트의 해제는 김 대통령의 1997년 대선 공약이었다. 재산권을 침해하는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주목적은 경제 활성화였다. 박정희 정부가 남긴 그린벨트가 비상금을 모아 둔 돼지저금통처럼 외환위기 극복의 요긴한 수단으로 쓰인 것이다. ▷그린벨트는 49년 전인 1971년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처음 지정됐다. 서울 광화문을 중심으로 반경 15km 선에 있는 도넛 모양의 서울, 경기도 땅 454.2km²가 녹지로 묶였다. 영국의 그린벨트가 모델이었다. 대도시가 급팽창하고 공해 문제가 심각해지자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그린벨트를 만들고 개발을 통제한 것이다. 1977년까지 국토의 5.4%, 5397km²가 그린벨트로 지정됐다. 88올림픽을 전후해 미사리 조정경기장 등이 일부 개발됐을 뿐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에서 전체 규모가 유지되다가 김대중 정부에서 대규모 해제가 이뤄졌다. ▷처음이 어렵지 다음부턴 집값 폭등으로 아파트 공급 요구가 대두될 때마다 곶감 빼먹듯 그린벨트를 쳐다봤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서울 송파구, 경기 성남시의 그린벨트를 해제했다. ‘반값 아파트’가 공약이던 이명박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지을 땅을 강남구, 서초구 그린벨트를 풀어 마련했고, 박근혜 정부도 민간기업형 임대주택 ‘뉴스테이’ 토지를 그린벨트를 풀어 확보했다. 현재 전국의 그린벨트 면적은 3837km²로 1977년에 비해 29% 감소했다. ▷어제 발표된 문재인 정부 22번째 부동산대책은 서울에서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안이 포함될지가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발표된 자료에 관련 내용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서울시에 그린벨트 일부 해제를 요청했지만 박원순 시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협의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고(故) 박 시장은 “그린벨트는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놔야 할 보물과 같은 곳”이라며 반대했지만 소속 정당의 요청을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린벨트는 무분별한 도시의 확장을 막고 환경을 보전하는 중요한 제도다. 하지만 도심 재건축 재개발 활성화와 그린벨트 해제 외에는 수도권 실수요자들이 선호하는 곳에 주택 공급을 늘릴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수장이 공석이 된 서울시와 정부 여당이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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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리콥터 머니[횡설수설/박중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양적완화가 헬리콥터로 돈 뿌리기라면 이번에는 ‘폭격기로 돈 폭탄 투하하기(money bomber)’다.” 올해 3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민 1인당 1000달러(약 119만4000원)를 나눠 주겠다고 발표하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하자 미국 금융권에서 이런 평가가 나왔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은 연준이 국채 등을 사들여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초유의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1930년대 긴축정책이 대공황을 악화시켰다고 믿는 그는 “대공황을 다시 맞으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면 된다”는 말로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을 얻었다. 현재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정크본드까지 사들이는 더 과감한 조치로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하고 있다. ▷연준과 트럼프 행정부가 2인 3각으로 돈을 풀면서 미국 증시엔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1분기에 일본 도요타의 4%인 10만3000대의 차만 생산하고도 나스닥 시장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실제 굴러가는 차를 아직 한 대도 만들지 못한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의 시총은 현대차를 넘어섰다. 전통적 분석 방법으로 설명의 한계에 부딪힌 애널리스트들은 ‘주가-꿈 비율(PDR·price to dream ratio)’ 같은 신조어까지 동원하고 있다. 분명한 건 ‘꿈’의 상당 부분은 헬리콥터 머니 영향이란 점이다. ▷각국 부동산 시장에도 과잉 유동성은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4월 주택 가격은 작년 동월 대비 4.7% 상승했다. 중국 베이징, 상하이 등 27개 대도시 아파트 거래 건수도 3월의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집값과 전·월세 가격이 동시에 들썩이는 한국에선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또 한 번의 대규모 현금 유입이 예정돼 있다. 3기 신도시 등에 풀리는 50조 원 가까운 토지보상금이다. 2006∼2007년 토지보상금 60조 원이 풀렸을 때 서울 아파트값은 32%, 전국 아파트값은 20% 급등했다. ▷지난달 30일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금값이 8년 9개월 만에 온스(약 31.1g)당 1800달러를 돌파했다. 달러화 가치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금값은 급등한다. 최근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미국의 재정적자 급증 등으로 조만간 달러가 주요 통화 대비 35% 절하될 수 있다”면서 인플레이션 또는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 상승)을 경고했다. 헬리콥터 머니는 후과가 따르게 마련이다.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돈 풀기 후유증을 더 걱정해야 할 한국에서 부작용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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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휴수당 갈등[횡설수설/박중현]

    “점주가 주 70∼80시간 일해도 알바 월급만큼 못 가져간다. 최저임금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상태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자는 노동계 요구에 반발해 그제 기자회견에 나선 편의점주들의 주장이다. 올해 오른 2.87%만큼 내년에 최저임금을 깎자는 주장과 함께 이들이 가장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 ‘주휴(週休)수당’ 폐지다. ▷주휴수당은 평생 봉급생활자로 일해 온 중장년층에겐 생소해도 편의점, 카페 등 아르바이트 경험이 많은 청년층에겐 익숙한 용어다.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1주에 평균 1회 이상 유급(有給)휴일을 보장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규정에 따라 하루 3시간, 주 15시간 이상 일한 근로자에게 실제로 일하지 않은 하루치 ‘주휴시간’ 급여를 주도록 한 것이 주휴수당이다.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때부터 있던 제도지만 현 정부 들어 새삼 논란이 커졌다. 2018년 최저임금이 16.4%나 가파르게 오르자 편의점, 음식점 주인과 중소기업 경영주들은 주휴수당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해 10월 대법원이 임금 계산 때 실제 일하지 않은 주휴시간은 빼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자 사업주들은 환영했다. 그러나 그해 말 정부는 주휴시간을 근무시간에 포함시키도록 최저임금법 시행령을 고쳐버렸다. ▷예를 들어 하루 4시간, 주 5일 20시간 일하고 주급 20만 원을 지급했을 경우 대법원 판결에 따른 시간당 임금은 1만 원이다. 하지만 시행령에 따르면 ‘20만 원 나누기 24시간(주휴시간 4시간 포함)’으로 시간당 임금 지급액이 8333원이 돼 올해 최저임금(8590원)을 어긴 게 된다. 최저임금을 위반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 처벌을 받게 된다. 대법원 판례대로 주휴시간을 빼고 계산하면 최저임금이 2019년에 이미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인 1만 원 선을 넘어섰다. ▷식당 주인 A 씨가 시행령에 문제가 있다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최근 헌법재판소는 “중소 상공인의 부담 증가는 부인하기 어렵지만 시행령 문제가 아니라 최저임금 결정의 문제”라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주휴수당을 아끼기 위해 장시간 일하던 직원을 해고하고 15시간 미만 ‘쪼개기 알바’만 쓰는 업주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주휴수당은 돈 때문에 노동자가 휴일도 없이 일하는 걸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임금 수준이 낮고 노동 여건이 열악하던 시대의 잔재인 셈이다. 원조 격인 일본에선 1990년대에 폐지돼 그 제도를 베낀 한국, 대만 등에만 남아 있다. 주 5일 근무, 연봉제 확산으로 제도 도입의 취지는 퇴색했다. 이제는 근로기준법 자체를 손볼 때가 됐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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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웨이의 검은 백조[횡설수설/박중현]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 있는 화웨이 옥스혼 연구개발(R&D) 캠퍼스의 인공호수에는 검은 백조 4마리가 산다. 런정페이 회장 지시로 마리당 120만 호주달러(약 9억9500만 원)를 주고 호주에서 수입했다. 검은 백조를 보며 연구원 2만 명이 고정관념을 깨고 상상력을 키우라는 취지다. ▷“중국 공산당이 네트워크의 취약점을 악용하고 중요한 통신 인프라를 훼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그제 중국 공산당 및 군사기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유로 중국 화웨이와 ZTE의 장비를 구입하는 통신업체엔 보조금을 주지 않기로 했다. 사실상 미국 통신시장에서 퇴출시킨 것이다. 미국 정보당국은 전산망에 침투해 정보를 빼돌릴 수 있는 ‘백도어(뒷문)’가 화웨이 장비에 심어져 있다고 본다. ▷세계 1위 통신장비업체, 2위 스마트폰 제조업체(대수 기준)인 화웨이는 미중 신(新)냉전의 한가운데 서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으로 1987년 회사를 세운 런 회장이 아무리 부인해도 실제론 중국 권부 소유의 회사라는 게 미국 측 판단이다. 비상장회사여서 런 회장 지분이 1%에 불과하다는 점 외에 지배구조가 베일에 싸여 있다. 화웨이(華爲)란 이름은 ‘중화민족을 위해 행동한다’는 ‘중화유위(中華有爲)’에서 따왔다. ▷미국 당국은 2007년 이란에 통신장비를 공급했다는 이유로 뉴욕 출장 중이던 런 회장을 조사했다. 중국 제조업의 질적인 성장을 꾀하는 ‘중국제조 2025’ 계획이 발표된 2015년 이후 미국의 경계심은 높아졌다. 5G 선두주자인 화웨이에 첨단산업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화웨이에 얽힌 한국의 이해득실은 복잡하다. 화웨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서 연간 10조 원 규모의 D램, 낸드플래시를 구매하는 주요 고객이다. 미국이 화웨이에 자국 기술, 장비가 사용된 반도체 공급 통제를 강화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반면 5G 장비,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는 삼성전자와 경쟁 관계다. 미국의 압박에 서구 선진국 업체들이 화웨이 장비 구매를 꺼리고 있어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자 미국은 경제번영네트워크(EPN) 등 중국을 뺀 공급체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블랙 스완’이란 책에서 나심 탈레브 뉴욕대 교수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한 뒤 검은 백조는 ‘도저히 발생할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 발생하는 일’이란 뜻을 얻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첨단기술 굴기를 뽐내온 화웨이엔 코로나19가 검은 백조가 될지도 모른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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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일이 일어난 방’[횡설수설/박중현]

    “인디언 영화에 나오는 백인 기병대 대장이 생각난다.” 지난해 4월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이렇게 비난했다. 인디언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웠지만 학살자로도 비판받은 제7기병대 커스터 장군의 콧수염과 고집 센 표정을 볼턴에게서 발견했던 모양이다. 작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회담이 ‘노딜’로 끝난 책임을 볼턴에게 돌리며 한 말이었다. ▷볼턴이 쓴 ‘그 일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이 미국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어제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 트럼프가 김 위원장에게 ‘낚여(hooked)’ 회담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어리석은 실수를 했다는 내용이 공개됐다. 볼턴은 또 김 위원장이 트럼프에게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은 ‘브루클린 다리를 판 것’이라고 비판했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 팔아먹었다’는 뜻의 미국 표현이다. 미북 비핵화 외교에 대해선 ‘한국의 창조물’이란 말로 정상회담을 주선한 문재인 정부에 불편한 심정을 내비쳤다. ▷볼턴은 미국 외교계의 대표적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 때 발탁됐고 아들 부시 대통령 때 국무부 차관, 유엔 주재 미 대사로 북핵 문제를 다뤘다. 2002년 이라크 이란 북한 3개국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 제재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트럼프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된 그가 작년 하노이 회담에서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의 ‘리비아 모델’을 꺼내들자 당황한 북한은 협상을 결렬시켰다. ▷리비아 모델은 독재자 카다피 원수의 비참한 최후를 지켜본 북한 정권으로선 상상조차 하기 싫은 방식이다. 게다가 66시간 기차로 이동한 ‘최고 존엄’에게 망신을 준 볼턴은 북한엔 국적(國賊)이나 다름없다. 작년 단거리미사일 발사를 볼턴이 비판하자 북한 외무성은 “전쟁광 볼턴은 인간 오작품”이란 반응을 내놨다. 트럼프에게도 작년 9월 해임된 볼턴이 재선 가도의 큰 걸림돌이 됐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미친 볼턴이 리비아 모델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을 때 다 망했다”라고 힐난했다. ▷미국 언론이 경쟁적으로 책 내용을 보도하면서도 “자기비판이 결여돼 있다”고 꼬집는 건 오만에 가까운 볼턴의 캐릭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동맹국 관계, 인종차별 문제 등에서 안팎의 신뢰를 잃어가는 지금 볼턴의 폭로 쪽에 더 믿음이 가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연일 막말, 도발을 이어가다 “비핵화라는 개소리는 집어치우라”고까지 뻔뻔스레 떠드는 북측 태도를 보면 그들이 절대 핵을 포기할 리 없다는 볼턴의 지론이 선견지명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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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랏빚과 국가신용등급[횡설수설/박중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너무 과소평가돼 있습니다.” 2006년 그리스 정부는 이전 6년간 GDP 규모를 25%씩 상향 조정했다고 발표했다. 지하경제가 큰 몫을 차지하는 그리스의 진짜 경제규모를 보여주려면 GDP를 높여 잡아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 바람에 그리스는 매춘 밀거래 돈세탁 등 범죄부문까지 포함해 단박에 GDP를 25% 늘린 나라가 됐다. ▷그리스가 GDP를 분식(粉飾)한 진짜 이유는 국가채무, 재정적자를 적어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GDP 숫자가 커지면서 GDP 대비 국가채무, 재정적자 비율은 떨어졌다. 하지만 숫자만 바꿨다고 경제가 진짜 좋아졌을 리 없다. 국가신용등급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후 2009년 말 추락하기 시작해 무디스 기준 등급이 2년 3개월 만에 A1에서 최하위 C로 16계단 떨어졌다. ▷코로나19 대응에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청와대와 여당은 요즘 ‘좋은 채무론’을 내세운다. ‘적자국채를 발행해 돈을 풀어도 GDP가 더 많이 늘어나면 좋은 것’이란 논리다. 하지만 이는 기초산술에 안 맞는 발상이다. 재정지출을 늘렸을 때 GDP가 얼마나 늘어나는지 보여주는 ‘재정승수’가 한국은 0.3∼0.5다. 즉 1조 원을 풀 때 GDP는 3000억∼5000억 원 증가에 그친다는 뜻. ▷국가채무비율 급증은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올해 2월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2023년 46%까지 높아지면 등급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3차 추경까지 반영하면 지난해 38.1%였던 이 비율이 올해 말 43.5%로 급등한다. 마이너스 성장으로 GDP가 줄면 46% 선을 올해 안에 넘길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곧바로 등급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나라들이 재정을 풀면서 부채비율이 높아지고 있어 신용평가사들도 칼같이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 한 나라의 빚 갚을 능력을 평가하는 만큼 산업경쟁력, 증세 여력도 고려한다. 그럼에도 등급 하락을 극도로 경계해야 하는 건 1997년 외환위기 때 경험했듯 한번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기 때문이다. 복구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외환위기 이후 그전 등급을 되찾는 데 13년이 걸렸다.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국채이자가 올라 재정에 다시 부담을 주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3차에 걸친 60조 원의 추경으로 나랏빚이 111조 원 늘면서 한국은 올해에만 20조 원 안팎의 국채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만약 신용등급까지 강등돼 이자율까지 높아지면 그야말로 빚이 빚을 부르는 상황이 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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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측불가 유동성 증시[횡설수설/박중현]

    계량경제학의 창시자 어빙 피셔 교수는 1920년대 미국 예일대가 자랑하는 최고의 경제학자였다. 주식 투자에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1929년 10월 14일 투자자 모임에서 “주가가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고원(高原)에 이르렀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열흘 뒤 다우존스평균지수는 하루 만에 30% 이상 폭락했다. 대공황의 시작을 알린 ‘검은 목요일’이었다. 이후 3년간 주가는 10분의 1로 추락했고 피셔는 파산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란 코로나19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있지만 증시는 정반대로 달리고 있다. 4일까지 코스피는 5일 연속 상승해 2,151.18로 거래를 마쳤다. 바닥을 쳤던 3월 19일보다 47.6% 올랐고 연중 최고치인 1월 22일의 94.9%를 회복했다. 미 전역 시위 확산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3일 뉴욕 증시 S&P500지수 역시 전날보다 1.36% 급등하며 2월 19일 연중 최고치의 92%를 회복했다. 증시만 보면 ‘V자형 회복’ 양상인 것이다. ▷대공황 때와 결정적으로 달라진 건 중앙은행, 정부의 대응이다. 대공황 당시 미 정부는 재정적자를 염려해 긴축정책을 폈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통화 공급을 주저했다. 하지만 이번에 미 연준은 무제한 양적완화, 제로금리로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재정 지출을 크게 늘렸다. 한국도 3차에 걸쳐 60조 원 가까운 추경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0.5%로 낮췄다. ▷그 덕에 유동성 풍년인데 여유자금을 가진 사람들은 돈 넣을 데가 없어 고민이다. 예·적금에 1억 원을 넣어봐야 월 이자가 10만 원도 안 된다. 과거 경제위기 때 최악의 순간만 넘기면 주가가 회복되는 걸 경험한 한국의 ‘동학개미’들은 3월 말부터 외국인이 내놓은 우량주를 속속 사들였다. 최근엔 돈 굴릴 데가 없어 돌아온 외국인에게 주식을 팔아 차익 실현을 하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기업 실적에 관계없이 주가가 뛰고 사소한 이슈에 주가가 출렁이는 등 주가와 실물의 디커플링이 심화됐다. ▷거품이려니 하면서도 상승 랠리를 보며 지금이라도 뛰어들까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 모양이다. 그는 최근 칼럼에 투자자들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세 가지 규칙을 소개했다. “첫째, 주식시장은 경제가 아니다. 둘째, 주식시장은 경제가 아니다. 셋째, 주식시장은 경제가 아니다.” 실물과 증시가 따로 놀기 시작하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도 예측불가란 뜻이다. 90여 년 전 피셔 교수의 역사적 망신이 경제 전문가들에게는 큰 교훈이 됐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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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소득 논쟁[횡설수설/박중현]

    ‘행복감 제고에 약간 효과 있음, 근로의욕 고취 효과는 별로 없음.’ 핀란드 사회보장국이 지난달 6일 내놓은 기본소득(basic income) 실험 최종 보고서는 이렇게 요약된다. 기본소득 도입 찬성파와 반대파는 이 결과를 놓고도 각자 유리한 쪽으로 해석했다. 핀란드 정부는 2016년 말부터 2000명의 실업자에게 2년간 아무 조건 없이 매달 기본소득 560유로(약 76만4000원)를 지급하고 기본소득을 받지 않은 비수급 실업자와 스트레스 수준, 취업률 등을 비교한 정부 차원의 기본소득 실험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실시했다.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은 모든 국민에게 동일 액수의 기본소득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면 빈곤층의 안정감이 높아지고 더 적극적으로 취업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핀란드 실험에서는 이런 기대가 입증되지 않았다. 스위스에서는 2016년 전 국민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20만 원)의 기본소득을 주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근로의욕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국민이 많아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다. ▷이렇게 검증되지 않은 제도지만 한국 정치권에선 주도권 선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3일 “당이 ‘실질적 자유’를 어떻게 구현해 낼지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실질적 자유’는 기본소득 이론 체계를 구축한 벨기에 경제학자 필리프 판파레이스가 쓴 개념이다. 김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시절인 2016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세계적으로 불평등 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로 기본소득 논의가 시작됐다는 걸 매우 주목해야 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여권 역시 2022년 대선의 어젠다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는 기본소득 주제를 놓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소병훈 의원은 ‘기본소득에 관한 법률 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최근 집행된 긴급재난지원금 총예산이 14조3000억 원이다. 4인 가족 기준 100만 원씩 지급된 이번 지원금 수준의 기본소득을 매달 전 국민에게 나눠주려면 연간 171조 원이 든다. 이런 재원 문제 때문에 청년층, 노인층 등에 제한적으로 지급하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검토될 공산이 크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여러 선진국이 기본소득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수백 년에 걸쳐 복잡해지고 효율성이 떨어진 복지 시스템을 기본소득 도입을 통해 정비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체계에 ‘선심성 돈다발’을 추가로 얹는 형태다. 여야는 기본소득 논의를 본격화하기 전에 현재의 복지체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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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비냐, 기부냐[횡설수설/박중현]

    “특히 한우와 삼겹살 매출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26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재난지원금의 소비 진작 효과가 나타났다며 반색했다. 그러면서 “기부에 참여하고 있는 국민들께도 특별히 감사드린다”고 했다. 하루 전 춘천시 중앙시장 내 약국을 찾은 최문순 강원지사는 재난지원금으로 받은 강원상품권으로 탈모치료제를 샀다. ‘기부하지 말고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주장대로 실천에 나선 것이다. ▷25일까지 12조9640억 원이 풀린 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소비심리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평소 못 먹던 한우로 ‘플렉스(flex·과시적 소비를 일컫는 신조어)’했다”는 이들이 늘면서 한우 도매가가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고 돼지고기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공짜면 황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이 현실이 됐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소비자심리지수도 석 달 만에 반등했다. ▷다만 기부는 정부 여당의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급 대상 2171만 가구 중 94.7%인 2056만 가구가 총지급 예상액 14조2448억 원의 91%를 이미 타갔다. 지급 시작 전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7∼20%의 국민이 기부 의사가 있고 10% 부가가치세를 고려하면 푸는 돈의 30%는 환수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현실은 차이가 있다. ▷물론 이미 사회적 혜택을 많이 받았다며 자발적으로 기부하거나 신청하지 않은 이들이 주변에 꽤 있다. 반면 공식 기부처를 고용보험기금으로 고정한 것이나, 자발성을 강조하면서도 심리적 부담을 준 여권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굳이 받아썼다는 이들도 있다. 고소득층 가운데는 ‘어차피 내가 갚을 돈’이라며 당당히 받아 소비하는 이들도 있다. 나랏빚이 쌓이면 어차피 고소득층에게 증세(增稅) 부담이 주로 돌아올 것인 만큼 기부할 생각이 없다는 주장이다. 2018년 기준 전체 근로자의 상위 30%(560만 명)가 근로소득세수의 94.9%를 부담했다. ▷공무원들은 고심하는 분위기다. 고위 공무원 가운데는 혹시라도 승진이나 인사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이들도 있다. “가족의 선택은 강제할 수 없다”며 가족 전체 수령액 중 자기 몫만 부분 기부했다는 공무원도 있다. ▷“정부가 보유한 정책 수단의 숫자가 정책 목표보다 많거나 같을 때에만 경제정책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틴베르헌의 법칙’은 정책전문가들 사이에선 상식이다. 국민이 재난지원금을 소비해 자영업자, 소상공인 매출이 늘고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정책 목표 달성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기부 문화 확산 같은 다른 목표에 너무 많은 미련을 남길 필요는 없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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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손잡이 리더를 보고 싶다[오늘과 내일/박중현]

    3월 말 당정청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처음 모였을 때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들고 온 소득 하위 50% 가구 지원 구상에 유일하게 편들어준 인물이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이다. 더불어민주당 기세에 밀려 지급대상이 하위 70%로 늘고 총선 후 다시 전 국민 지급으로 결론 나는 과정에서 부총리가 재정 악화를 우려하며 버티는 모습을 보였던 데에도 김 실장의 심정적 조력이 있었다고 한다. 진보성향 학자로 현 정부의 첫 공정거래위원장을 거쳐 청와대에 들어간 김 실장이 총선을 전후해 보인 모습이 의외여서 기억에 남았다. 김 실장은 작년 10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양손잡이 경제학자’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트루먼 미 대통령 일화를 빗댄 표현이다. “한편으론(on the one hand) 이렇지만 다른 한편으론(on the other hand) 저렇다”식으로 정책 장단점을 함께 거론하는 경제학자들을 보고 트루먼이 짜증내며 “손이 하나만 있는 경제학자를 데려오라”고 했다. 김 실장은 또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대통령도 나처럼 양손잡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란 말이 익숙해질 정도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국 정부는 ‘한쪽 손’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위기에 빠졌다. 국민 안전을 위해 격리를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경제활동을 재개해 무너진 가계·기업을 살려야 하는 게 모든 정부가 처한 딜레마다. 저소득층 생계유지를 위해 돈을 풀어야 하지만 재정적자 확대로 국가신용도 하락, 외국자본 유출을 걱정해야 하는 건 기축통화국이 아닌 개도국의 딜레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최고경영자(CEO)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는 경영학이 오래 고민해온 주제다. 최고의 경영전문가들 중에 위기 속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프로블럼(problem)’과 ‘딜레마(dilemma)’를 구별하는 능력을 꼽는 이들이 있다. 말 그대로 ‘문제’를 만나면 해법(solution)을 찾아 실천에 옮기는 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딜레마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에 대응 방식이 달라야 한다. 현명한 대처법은 한쪽을 대뜸 선택하지 말고 상황을 관리(manage)하면서 이를 극복할 창조적 아이디어를 모색하는 것이다. 현 정부 경제정책은 ‘한손잡이’란 비판을 받을 만했다. 소득 양극화를 ‘문제’로 인식한 정부는 2년 만에 30% 가까이 최저임금을 올리는 해법을 썼다. 긴 근로시간도 ‘문제’로 보고 주 52시간 근로제를 답으로 내놨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급등하자 편의점주, 음식점 주인들이 직원을 해고해 저소득층이 일자리를 잃었다. 탄력근로제 보완 없이 근로시간 감축을 강행하자 근로자는 수입이 줄고, 기업은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 딜레마를 정답이 있는 문제로 인식하다 보니 속도 조절 등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코로나 사태와 총선 압승 이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해외로 나갔다가 유턴하려는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는 수도권 규제,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20년간 진척 없는 원격의료 등의 사안에 대처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기류가 달라졌다. 섣불리 다루면 지지층이나 여당의 강한 반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안들이다. 코로나 사태가 금기에 가까운 딜레마를 뛰어넘을 기회를 제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10일 취임 3주년 연설의 대부분을 경제 문제에 할애했다. 정권 초부터 수많은 논쟁을 부른 ‘소득주도 성장’은 빠졌다. 오너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나라의 전문경영인으로 일할 시간이 이제 2년 남았다. 그 안에 최대한 많은 딜레마를 극복하고 성공한 국가 경영자로 기억되려면 대통령이 제일 먼저 능수능란한 양손잡이 리더가 돼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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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UG 독점 논란[횡설수설/박중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외에 주택 보증 기관을 추가해 경쟁시켜야 한다.” 건설업체와 재건축 조합들 사이에서 최근 이런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주택법이 30채 이상 주택을 선(先)분양할 때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보증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보증을 내주는 기관은 HUG 한 곳뿐이기 때문이다. ▷주택도시기금법에 따라 설립된 HUG는 주택 분양, 임대보증금, 전세보증금 등의 보증 업무를 도맡는 공기업이다. HUG 독점 문제가 최근 도드라진 건 여러 재건축·재개발 사업들이 HUG와 마찰을 빚으면서다. HUG는 ‘보증 리스크 관리’라는 이유로 서울, 경기 과천시 등을 고분양가 관리지역으로 지정해 보증 전에 분양가를 심사하고 있다. 높은 분양가로 주변 아파트 값을 자극하지 못하게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있는 셈이다. ▷HUG가 보증을 서주지 않으면 사업 진행이 불가능해진다. 서울 둔촌주공아파트 조합은 1만2000가구의 대단지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HUG와 분양가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사업이 지체되고 있다. 수수료 수입으로 지난해에만 4850억 원의 영업이익을 챙기면서도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상전 노릇’을 한다는 게 건설업체와 재건축 조합들의 불만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HUG 요구에 맞춰 분양가를 낮춘 아파트는 당첨만 되면 수억 원대 차익을 올릴 수 있는 ‘로또 청약’이 된다. ▷주택 보증 시장에 경쟁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은 2008년부터 제기됐다. 2017년에는 시장경쟁 촉진이 주 업무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복수 주택 보증 기관 체제를 도입하라”고 국토교통부에 권고했고 그 시한이 올해까지다. 당시 국토부는 HUG 외에 ‘장관이 지정하는 보험회사’가 보증을 해줄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고쳤지만 아직까지 업체를 지정하지 않고 있다. 다른 보증업체가 들어와 HUG를 피할 길이 생기면 아파트 분양가를 잡을 강력한 수단이 약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는 게 건설업계의 생각이다. ▷HUG로선 억울한 면이 있다. 정부 정책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이유로 비판의 타깃이 되기 때문이다. 경쟁체제 도입으로 시장에 새로 들어오는 민간업체가 높은 수수료를 챙기려고 고가 아파트 분양에 집중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신용도가 낮은 중소 건설업체의 수수료가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 ‘보증 독점’이란 수단으로 아파트 값을 언제까지나 억누를 수 없다는 건 정부나 HUG 관계자들도 잘 알고 있다. 정부와 여야는 21대 국회에서 시장의 문을 여는 쪽으로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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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억대 연봉 직장인[횡설수설/박중현]

    ‘억대 연봉’은 한국 직장인 100명 중 3명만 도달하는 최고 수준의 급여다. 임원도 아닌 직원 평균 연봉이 1억 원을 넘는다면 월급쟁이에게 ‘꿈의 직장’이다. 지난해 한국에 이런 억대 연봉 직장은 33곳이었다.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지난해 500대 기업 연봉을 분석한 결과 임원을 제외한 직원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곳은 KB금융그룹 지주사인 KB금융(1억3340만 원)이었다. 하나금융지주도 1억2280만 원으로 4위를 차지했다. 시중은행과 달리 금융지주사는 직원 수가 적고 간부의 비중이 커 평균 연봉이 높다. 업종별로 봤을 때 증권사(1억430만 원), 은행(9200만 원)도 대기업 평균(7920만 원)보다 연봉이 각각 32%, 16% 높았다. 한국에서 연봉 1억 원 이상인 직장인은 2018년 기준 49만 명, 전체 임금근로자의 3.2%다. ▷문제는 이처럼 ‘높은 연봉 일자리’인 금융권이 정보기술(IT)과 핀테크 발전으로 대면업무가 줄어듦에 따라 일자리도 감소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6개 시중은행의 직원 수는 6만8000명으로 1년 전보다 0.9% 줄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속화된 ‘언택트(비대면) 트렌드’는 금융권 일자리를 더 줄일 수 있다. IBK기업은행 NH농협은행 등이 공채를 진행 중이지만 다른 시중은행들은 하반기로 일정을 미루고 있다. ▷2017년 연봉 1∼5위를 휩쓸었던 정유업계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SK에너지는 1위에서 지난해 2위로 물러났고 에쓰오일은 4위에서 18위로, GS칼텍스는 5위에서 19위로 내려앉았다. 대형 장치산업인 정유업체는 전문 엔지니어의 연봉이 월등히 높아 ‘제조업 분야 신의 직장’으로 불린다. 하지만 실적 악화로 정유업계 연봉은 8760만 원으로 전년보다 4.7% 줄었다. 명예퇴직을 고려하는 업체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도 ‘여섯 자릿수 연봉(six-figure income)’, 즉 10만 달러(약 1억2260만 원)는 고연봉자를 구분하는 전통적 기준이다. 미국 정부가 ‘경기부양 수표(stimulus check)’를 연봉 9만9000달러 이하 직장인에게만 지급하는 것도 10만 달러 이상을 고소득으로 보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93.6%가 수표를 받았다. ▷갈수록 높은 연봉의 일자리가 많아져야 할 텐데 현실은 정반대다. 코로나19 사태로 고연봉 업종들의 실적이 나빠지고 들어가는 문도 좁아지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과 원화 가치 하락이 겹치면 작년 3만2047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이 올해 3만 달러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월급쟁이에겐 기운 빠지는 현실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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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9개월 만의 무역적자[횡설수설/박중현]

    “99개월 만에 4월 무역수지가 적자를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획재정부 김용범 1차관은 29일 제1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경제 중대본)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무역수지 100개월 연속 흑자’라는 대기록 달성이 불과 한 달을 남기고 무산될 것이란 소식이다. 3월 무역수지 확정치는 다음 달 1일 발표된다. ▷상품 수출액과 수입액을 비교한 무역수지의 적자는 코로나19 탓이다. 미국 중국 유럽 등 주요 교역국의 국경이 막히면서 수출이 크게 감소한 반면 수입은 그만큼 줄지 않았다. 4월 1∼20일 무역수지가 34억5500만 달러(약 4조2000억 원) 적자여서 남은 기간 만회하기가 어렵다. 수출, 수입을 합한 금액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무역의존도가 한국은 68.8%로 미국(20.4%)의 3.4배, 일본(28.1%)의 2.4배다. 그만큼 다른 선진국에 비해 무역 축소가 전체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이 월 기준 마지막 무역 적자를 냈던 2012년 1월은 유럽 재정위기 영향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던 때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지나치게 돈을 푼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 몇 년이 지나 재정적자로 국가부도 상황에 직면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위축되면서 휴대전화, 선박 등을 중심으로 한국의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6.6% 감소한 데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수입액이 크게 늘어 19억6000만 달러 무역적자를 냈다. ▷그로부터 두 달도 지나지 않은 2012년 3월 15일 한국과 미국 사이에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다. 노무현 대통령 때 시작돼 이명박 대통령 때 발효된 한미 FTA를 계기로 수출이 활성화되면서 이후 8년 넘게 월간 무역수지 흑자 릴레이를 이어왔다. 광복 이후 한국이 연간 무역수지 흑자를 낸 것은 1986년이 처음이었다. 이후 4년간 흑자를 내다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그러다 1998년 원-달러 환율 상승 덕분에 높아진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출이 급증해 흑자로 전환했다. ▷무역수지가 적자를 내면 국내 외환이 줄어들고 국가신용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무역적자는 코로나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정부가 설명하지만 국제질서는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에 불리한 반(反)세계화와 보호무역 강화 쪽으로 급격히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수출이 1분기에 선방했지만 코로나 영향이 본격화된 2분기에는 큰 폭의 감소가 불가피하다. 8년 전 한미 FTA처럼 앞뒤가 꽉 막힌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반전 카드가 필요한 때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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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너스 유가[횡설수설/박중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20일 전날보다 305% 폭락해 배럴당 마이너스 37.63달러라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원유 1배럴(159L)을 사가는 사람에게 생산자가 4만6000원을 얹어준다는 뜻이다. 세계가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유가다. WTI는 영국 북해산 브렌트유, 중동산 두바이유와 함께 세계 3대 유종으로 국제유가의 표준이 되는 고급 기름이다. ▷생산지가 텍사스, 오클라호마주 등 미 내륙이란 점이 마이너스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 다음 달까지 미국 내 코로나19 종식과 소비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고, 현지 저장시설은 2주면 꽉 찰 것이란 전망 때문에 아무도 5월 생산될 원유를 미리 구매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유정 특성상 수도꼭지 잠그듯 생산을 멈추기도 어렵다. 바다까지 옮겨 해외로 수출하려면 추가 비용이 든다. 차라리 가져가는 사람에게 웃돈을 얹어주는 게 낫게 된 것이다. 같은 날 해상유전에서 생산돼 유조선으로 실어 나르기 편한 북해산 브렌트유는 25.57달러에 거래됐다. WTI도 코로나 영향이 적어질 6월 인도분은 21달러 선을 유지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독려 끝에 23개 산유국 모임인 ‘오펙플러스(OPEC+)’는 하루 970만 배럴 감산에 합의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하루 3000만 배럴 줄어든 세계 원유 수요를 고려하면 너무 적어 가격을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다. 유가를 끌어내려 세계 1위 산유국이 된 미국의 셰일가스 산업을 고사시키는 게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의 속마음이란 분석도 나온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지만 석유화학제품은 반도체(17.3%), 자동차(7.9%)에 이은 3위(7.5%) 수출품이다. 정유업체 매출의 60%가 나프타 등 수출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전 비싸게 산 원유는 유조선에 실려 속속 항구에 도착하고 국내 저장시설은 꽉 차서 재고 비용만 늘고 있다. 항공유 판매는 작년 동월 대비 80%, 휘발유도 15% 감소했다. 수출품 가격은 빠르게 하락해 ‘정제 마진’은 마이너스다. 돌릴수록 손해여서 일부 업체는 공장을 세웠다. ▷원유 값이 떨어져도 판매가의 60% 이상이 세금인 휘발유 값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위기에 빠진 정유업계는 유류세 부담을 줄여달라고 요청하지만 세수의 10% 정도인 에너지세를 깎아줬다가 재정에 구멍이 뚫릴까 봐 정부는 소극적이다. 원유 값이 떨어지면 대형 LNG선을 생산하는 조선업, 중동에 진출한 건설업체들도 큰 타격을 받는다. 마이너스 유가가 경제에 희소식만은 아닌 이유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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