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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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중현 논설위원입니다.

sanjuck@donga.com

취재분야

2024-03-26~2024-04-25
칼럼100%
  • [횡설수설/박중현]라면값 인상

    2011년 4월 농심은 신라면의 2배 가격인 ‘신라면블랙’을 내놨다. 프리미엄급 라면의 첫 등장이었는데 곧바로 음모론에 휩싸였다. ‘조만간 신라면 생산을 중단하고 비싼 신라면블랙만 남겨 라면값을 올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무근’이란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악화되자 농심은 신라면블랙 판매를 중단했다가 1년 2개월이 지난 뒤에야 생산을 재개했다. 신라면은 여전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라면값은 이렇게 한국인들에게 특별히 민감한 사안이다. ▷삼양식품 고 전중윤 명예회장이 일본에서 라면 기술을 도입해 1963년 9월 15일 처음 내놓은 삼양라면은 한 봉지에 10원이었다. 담배 한 갑이 25원, 다방커피 한 잔이 35원 하던 시절이었다. 올해 한 대형마트에서 5개들이 ‘삼양라면 오리지널’ 기획상품이 2780원에 팔렸다. 봉지당 560원 정도로 58년간 56배가 됐다. 그사이 담뱃값이 180배, 커피값이 100배 이상 올랐으니 많이 올랐다고 볼 수는 없다. 역대 정부가 서민 식품인 라면을 물가관리 품목에 넣어 가격 상승을 억제한 결과다. ▷라면업계 2위 오뚜기가 다음 달부터 진라면, 스낵면 등의 가격을 평균 11.9% 올린다. 2008년 4월 이후 13년 4개월 만의 인상이다. 밀가루 국제 가격이 1년 전보다 30%, 면을 튀길 때 쓰는 팜유가 70% 이상 올라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체 측의 설명이다. 그동안 임금, 물류비도 많이 올랐다. 2016년 12월 이후 값을 동결한 업계 1위 농심, 2017년 5월 이후 동결한 3위 삼양식품도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발생 후 각국의 식량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수송까지 어려워졌는데 올해 들어 억눌린 소비가 폭발하면서 ‘애그플레이션(농업·agriculture+인플레이션)’이 심화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5월 세계 식량가격지수(FFPI)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40% 급등했다. 6월에 조금 안정세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5.4% 급등하자 미국의 식료품점들이 설탕, 냉동육을 사재기한다는 소식이 나온다. ▷작년 ‘집콕’, 재택근무에 힘입어 내수, 수출에서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둔 한국 라면업계는 올 들어 집 밖 활동이 늘면서 판매가 줄고 원재료값은 폭등해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 해도 라면을 제일 많이 먹는 20대 청년 1인 가구, 홀몸노인의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할 때 라면값 인상은 우울한 소식이다. 라면에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해 주는 계란값은 1년 전의 갑절이고, 대파값도 70% 오른 상태다. 한국인의 솔 푸드인 ‘파 송송 계란 탁’ 라면 한 그릇의 부담마저 커지고 있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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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정년연장 vs 고용연장

    “고용연장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검토를 시작할 때가 됐다.” 작년 2월 문재인 대통령이 고용노동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한 말이다. 앞서 2019년 10월 노인의 날에 대통령은 “어르신들이 더 오래 종사하실 수 있도록 정년을 늘려가겠다”고 했다. 맥락은 같은데 ‘정년연장’이란 용어가 4개월여 만에 ‘고용연장’으로 바뀌었다. ▷60세 정년을 시행한 지 4년밖에 안 됐는데 정년을 또 늘리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경제계는 반발했다.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비판까지 쏟아지자 이재갑 당시 고용부 장관은 “고용연장과 정년연장은 다른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법을 고쳐 정년을 높이고 의무로 적용하는 게 정년연장이라면 고용연장은 기업의 자발적 참여 등을 통해 고용을 연장하는 더 포괄적 개념이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이달 중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고용연장 대책을 내놓는다. 내년에 노사, 민정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꾸려 논의를 시작해 고용연장 로드맵을 만드는 게 주요 내용이다. 현재 62세인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이 2023년 63세, 2028년 64세, 2033년에 65세로 높아지면서 한국 은퇴자는 최장 5년의 ‘소득 보릿고개’를 겪어야 한다. 숙련공 은퇴로 중소기업의 인력난도 가중되고 있어 정년연장의 필요성이 큰 건 사실이다. ▷거대 여당의 지원을 받는 정부가 곧바로 법을 고쳐 정년을 연장하지 않는 건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2030세대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괜찮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800만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늦어지면 기업들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청년 신입 채용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올해 65세에서 70세로 정년을 높인 일본을 참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65세를 넘기는 직원들에게 기업들이 재고용, 취업 알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일할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되 위반해도 처벌하지 않는다. 그래도 기업들이 은퇴자를 적극 고용하는 건 인력난이 심각한 데다 연공서열식 호봉제에서 직무성과급제로 임금 체계를 바꿨기 때문이다. 업무 강도, 중요도 등에 따라 고령자 임금을 크게 낮출 수 있어 인건비 부담이 크지 않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60세 정년을 법제화하면서 노동계로부터 직무성과급제 도입 약속을 끌어내지 못한 걸 많은 노동 전문가들이 아쉬워한다. 그래서 현 정부가 고용연장을 추진한다면 임금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을 협상 테이블에 반드시 함께 올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런 반대급부도 없이 강성노조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대책을 내놓는다면 노사갈등을 부추길 뿐 아니라 자신들의 일자리를 86세대에 뺏긴다는 청년층의 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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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일본 수출 규제 2년

    2019년 7월 1일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의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관련 일본 기업들이 배상해야 한다고 한국 대법원이 판결한 데 대한 보복이 분명했다. 반도체 기업들 발등엔 불이 떨어졌고, 한국인의 반일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됐다. ▷한 달 뒤 일본 정부는 한국을 수출관리 우대조치 대상국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법령까지 의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해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일본산 소재·부품을 대체할 국산기술 개발과 수입처 확보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육성은 현 정부 산업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2년이 지난 지금 일본 수출 규제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반도체 세척에 쓰이는 고순도 불화수소는 솔브레인, SK머티리얼즈 등 국내 기업이 양산을 시작해 2년 전 40%가 넘던 일본산 비중이 13%로 뚝 떨어졌다. 미세회로를 그릴 때 쓰이는 포토레지스트, 휘어지는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여전히 일본산을 80% 이상 쓰지만 비중이 조금씩 줄고 있고, 한국 기업들의 기술 개발에도 속도가 붙었다. 자국 기업들의 피해가 커진 데다 반도체 주요 생산국인 한국 시장을 놓칠까 봐 일본 정부가 규제를 엄격히 적용하지 않은 것도 피해가 적은 이유 중 하나다. ▷악영향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훨씬 컸다. 불매운동 타깃이 된 유니클로의 한국 매장 수는 2년 전 190개에서 138개로 줄었고, 작년 아사히맥주 한국 매출은 전년 대비 72% 감소했다. 한국 수입차 시장에선 미국차가 일본차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일본을 찾은 한국 관광객 수는 2019년 7월 56만2000명에서 작년 1월 31만 명으로 줄었다가 코로나19 이후 전무한 상태다. 두 나라를 오가는 상품, 사람이 모두 줄면서 작년 한일 교역 규모는 136조 엔(약 1387조 원)으로 관계 악화 전인 2018년보다 20.6%나 위축됐다. ▷일본 소재·부품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대기업 중심 압축성장이 낳은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었다. 하지만 올해 1∼4월 소재·부품 수입액 중 일본산은 15.0%로 2001년 이후 가장 낮아지는 등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소재·부품산업에 대한 지속적 투자와 관심은 중요하지만 수출의 힘으로 경제 규모 10위에 오른 한국이 ‘수입 대체 국산화’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게다가 미중 간 경제 패권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까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한국 경제의 도약을 위해서라도 일본과의 경제 협력관계 복원을 언제까지나 미룰 순 없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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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갈라치기 통치술’의 후과

    4년여를 갈고닦은 여권의 ‘갈라치기’ 기술이 절정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집값, 보유세 폭등으로 4·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올해 공시가 상위 3.7%인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부과대상을 ‘상위 2%’로 줄이기로 했다. ‘부유세가 보편세가 돼버렸다’는 비판 여론에 떠밀려 세제를 정상화하면서도 ‘2 대 98’의 유리한 정치구도를 만들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공시가 9억 원이던 기준을 그냥 11억∼12억 원으로 높이면 2%와 과세대상이 비슷할 뿐 아니라 납세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행정력 낭비도 줄일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특정비율 과세’라는 신기술까지 동원해 많이 가진 자와 나머지를 선명히 구분했다. 현 정권의 갈라치기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작년 7월 말 여권이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군사작전 치르듯 도입한 ‘임대차3법’은 집주인과 세입자 간 대립과 갈등을 극대화하고 있다. 집주인들은 세입자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를 피할 방법을 찾아 법률상담을 받으러 다니고, 세입자들은 집주인들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면서 집을 비우라고 할까 봐 가슴을 졸인다. 외교 분야에선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서 비롯된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제한에 대응해 이순신 장군, 죽창가까지 동원해가며 ‘친일’ ‘반일’ 구도를 뚜렷이 했다. 갈라치기 정책 중에서 압권은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2018년, 2019년 2년간 최저임금이 30% 가까이 오르자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직원 월급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명색만 ‘사장님’일 뿐 수입은 월급쟁이만도 못한 편의점주, 카페 주인들이 알바 봉급 떼먹는 악덕 자본가로 몰려 ‘존재론적’ 고민을 하게 됐다. 최근 광주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한 카페 주인은 “진짜 서민의 삶을 ‘1’도 모르는 패션 좌파들이 ‘시급 1만 원도 못 줄 것 같으면 장사 접어라’는 소리를 거침없이 하더라”며 쌓인 울분을 토해냈다. 그렇다면 갈라치기의 상대편에 선 알바, 종업원들이라도 행복해졌어야 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일하던 편의점 카페 식당에서 해고되고 수십, 수백 대 1 경쟁을 뚫고 얻는 일자리도 주휴수당 없는 주 15시간 미만짜리다 보니 구직자들에게도 드디어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왔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최근 조사에서 구직자 48.1%는 ‘내년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답했고, 15.7%는 ‘인하해야 한다’고 했다. 10명 중 6명이 넘는 구직자가 최저임금 상승이 자기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최저임금처럼 갈라치기의 문제점이 한 정부 임기 안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건 오히려 드문 일이다. 5년 단임제 정부의 실패한 정책은 흔히 다음 정부 초기에 악영향이 발현된다. 의무임대 기간을 ‘2+2년’으로 늘린 임대차보호법 부작용은 내년 8월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양국 정상이 회담 일정조차 잡지 못할 정도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국내 ‘친일’ ‘반일’ 프레임의 극복은 다음 정부 몫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갈라치기는 피지배층의 분열을 조장해 단합된 힘으로 지배 세력에 대항하지 못하게 만드는 ‘분할통치(divide and rule)’의 일종이다. 고대 로마, 중국이 이민족 지배를 위해 자주 쓴 통치 기술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한 사회, 경제 공동체 안에서 갈라치기가 횡행하고 있다. 당장은 내게 득이 되고, ‘땅 산 사촌’만 힘들지 몰라도 종국엔 너나없이 손해를 보게 된다. 국민 스스로 각성해 대항하지 않으면 권력자들은 갈라치기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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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끝없는 변경’

    미국 상원이 8일(현지 시간) 찬성 68표, 반대 32표로 통과시킨 ‘미국 혁신·경쟁법’이 올해 4월 발의될 때 붙었던 원래 이름은 ‘끝없는 변경법(Endless Frontier Act)’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7월, 미국이 전후에도 과학 최강국 자리를 지키기 위한 전략을 제시한 버니바 부시의 보고서 ‘과학, 끝없는 변경’에서 따왔다. 부시는 레이더, 페니실린, 원자탄 개발에 참여해 전쟁 승리에 기여한 미국 과학연구개발국(OSRD) 총책임자이자 ‘과학영웅’이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토드 영 공화당 의원이 공동 발의한 법안은 향후 5년간 2500억 달러(약 279조 원)를 산업기술 분야에 투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어 하원 통과가 유력하다. 영 의원은 이날 “미래 세대가 새로운 ‘변경’을 바라볼 때 (중국의) 붉은 깃발이 꽂혀 있을 것인가. 우린 오늘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21세기에도 승리하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고, 이제 출발의 총성이 울렸다”며 환영했다.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등 신기술 연구개발에 1000억 달러(약 111조6000억 원), 반도체 제조능력 확대에 520억 달러(약 58조 원) 등을 투입하도록 한 법안은 바이든의 대중(對中) 견제 전략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8일 백악관이 공개한 ‘공급망 회복력 구축과 미국 제조업 활성화, 광범위한 성장 촉진’이란 제목의 250쪽 보고서에 중국은 458차례 등장했다. 100일 전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제약 등 4개 분야에서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할 방안을 만들라는 바이든의 행정명령으로 만들어진 보고서다. 기술·경제 분야에서 펼쳐질 미중 신(新)냉전의 작전지도인 셈이다. ▷보고서는 ‘한국’을 74번 거론했다. 80여 차례씩 등장한 일본, 대만보다 적지만 동맹국이자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인 한국은 중국을 배제하고 글로벌 공급망을 새로 짜려는 미국에 빼놓을 수 없는 파트너다. ‘삼성’ ‘LG’ 등 한국 기업 이름도 50번 넘게 나왔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44조 원 들여 미국에 반도체, 배터리 공장 등을 짓기로 약속한 데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강공에 중국은 역습을 준비 중이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의 ‘반(反)외국 제재법’ 통과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중국을 부당하게 대우한 국가와 해당국 기업에 보복 수단을 마련하는 법안이라고 한다. 철저한 대비와 냉철한 판단이 없으면 한국이 한순간에 경제 전쟁의 파고에 휩쓸릴 수 있는 상황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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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대통령의 ‘탈원전 오스트리치즘’

    지난달 말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대표 간담회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탈원전 정책 폐기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최고의 순방, 최고의 회담”이라고 대통령이 자평한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원전 협력을 약속한 만큼 정책기조가 바뀔 가능성이 생겼다고 본 것이다. 대통령의 답은 짧고 드라이했다. “현황을 파악해보도록 하겠다.” “할 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대통령이 직접 실패를 인정한 부동산정책을 빼고 큰 문제가 드러난 정책에 대해서도 현 정부는 사과하거나 물러선 적이 거의 없다. 대표적인 게 탈원전이다. 고리 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대통령이 ‘탈핵 시대’를 선포한 게 취임 다음 달인 2017년 6월이다. 당시 탈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1368명이 사망했다”고 한 대통령의 발언은 완전한 착오여서 일본 정부의 항의를 받았다. 첫 단추부터 엉성하게 끼워진 탈원전 정책은 4년 내내 이어져 왔다. 7000억 원 들여 보수한 원전을 멈춰 세우고, 공사 중이던 원전사업을 중단시키고, 건설이 끝난 원전은 허가를 내주지 않는 일이 계속됐다. 하지만 4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반(反)원전주의자라도 탈원전이 정말 맞는 길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수많은 변수가 발생했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막대한 돈이 투입됐지만 한국 기후조건의 한계로 효율과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 확대가 산림과 자연경관을 훼손하는 역설적 상황도 벌어졌다. 가장 큰 변화는 해외에서 시작됐다. 세계적 기후변화 대응의 목표가 ‘탈(脫)탄소’로 집중되면서 탄소배출이 없는 원전의 가치가 재조명된 것이다. 대다수 선진국들이 원전 건설 재개, 확대를 검토하고 있고, 큰 사고를 겪은 일본마저 원전 재가동에 시동을 걸고 있다. “탄소배출 없는 에너지원은 원전뿐”이라고 믿는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안전성이 높고, 폐기물을 현저히 줄이는 차세대소형원전(SMR)을 미국 내에 건설하는 계획을 내놨다. 여권에서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SMR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양국이 원전사업 공동 참여를 포함해 해외 원전 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포함되는 일이 발생했다. 탄소중립 달성에 원전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본 조 바이든 정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1979년 스리마일 원전사고 이후 원전 건설을 중단한 미국으로선 세계 원전시장을 주도하는 러시아,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이란 파트너가 필요했던 것이다. 탈원전을 신념으로 삼아온 이들은 충격을 받았겠지만 에너지 전문가들은 드디어 정부의 탈원전 옹고집을 깰 기회가 왔다며 반겼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최근 열린 ‘P4G 서울 정상회의’는 현 정부가 자연스럽게 탈원전 정책을 수정할 최적의 기회였다. 하지만 대통령 발언이나 선언문에서 ‘원전’이란 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히 탈원전 기조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주제는 거론조차 하기 싫은 모양이다. 위험을 만난 타조가 땅에 머리를 묻는다는 속설에서 나온 ‘오스트리치즘(ostrichism·현실 외면)’이란 말만큼 원전을 대하는 현 정부의 태도를 잘 나타내는 표현도 없을 것 같다.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에서 드러나듯 무리한 탈원전은 머잖아 철저히 재평가될 것이다. 눈 감고, 귀 막는 시간을 늘린다 해도 진실을 마주할 시점만 조금 늦춰질 뿐이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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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100년간 못 본 집값”

    “100년간 자료를 봐도 집값이 지금처럼 높은 적은 없었다. 투자자들 사이에 거친 서부개척 시대와 같은 사고(思考)가 나타나고 있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그제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시장에서 발생하는 거품을 경고했다. 미국 주택가격 지표인 ‘케이스-실러 지수’ 고안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2013년)의 말이라 예사롭지 않다. ▷그는 현재 상황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소유권 사회(ownership society) 정책’을 펴던 2000년대 초와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집이 있어야 책임의식이 커진다’며 저소득층의 주택 구입을 장려했다. 대출이 쉬워지자 너나 할 것 없이 집을 사들였고 주택 경기는 과열됐다. 결국 2008년 부실 주택대출 문제에서 비롯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미국 주택가격은 지난 1년 새 10% 이상 급등했고 케이스-실러 지수는 올해 2월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코로나19 발생 직후 전문가들의 전망과 반대다. 파산한 자영업자, 실업자들이 집을 내놓아 집값이 떨어질 것이란 예상과 달리 확장재정, 저금리가 집값을 끌어올렸다. 재택근무 확대로 넓고 안락한 집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실러 교수가 조지 애컬로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쓴 책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의 부제는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실러 교수는 케인스가 대공황 시기 비합리적 경제행동을 설명하는 데 썼던 ‘야성적 충동’이란 말을 원용해 ‘집값이 영원히 오를 것’이란 맹목적 믿음이 자본시장 붕괴로 이어진 글로벌 금융위기의 과정을 설명했다. 자산버블에 있어선 자타가 인정하는 전문가인 셈이다. ▷한국 집값에 대해 그에게 묻는다면 “한국 상황을 잘 모른다. 나는 ‘케첩 경제학자’가 아니다”라며 즉답을 피할 것 같다. 그는 2007년 “미국 주택가격엔 버블은 없다”는 학자의 주장에 대해 “전형적인 케첩 경제학”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케첩 2병 값이 1병의 2배 정도면 합리적’이라는 식으로 드러난 숫자로만 판단할 뿐 경제 시스템 이면에 숨겨진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지 못하는 경제학자를 비꼰 말이다. ▷한국 아파트 값은 미국 이상으로 급등하고 있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에 따르면 4월 서울의 평균 아파트 매매가는 11억1123만 원으로 1년 전보다 17.7%(1억9665만 원)나 올랐다.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 수도 1992년 1월 이후 29년 만에 가장 적어졌다고 한다. 공급 부족이 주요 원인이라곤 해도 과도한 쏠림은 거품을 만들게 마련이다. 주택 거품이 꺼질 시기를 한국도 대비해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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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다음에 털어먹을 게 남긴 할지 모르겠다

    “통장하고 도장이 없어졌어. 누가 훔쳐갔나 봐.”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이런 얘기를 하기 시작한 건 4년 전 겨울 아버지 상을 치른 직후였다. 놀라서 퇴근 후 두 분이 살던 집에 가보면 옷장 속 숨겨둔 가방 안에 예금통장이 멀쩡히 들어 있곤 했다. 같은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된 뒤 모시고 병원에 갔다. 치매였다. 병석의 아버지에게만 신경 쓰는 동안 어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왔던 것이다. 고령사회 한국에 치매환자가 많은 건 당연하지만 어느 자녀에게나 ‘내 부모의 치매’는 처음 겪는 일이다. 이후 의사, 부모 치매를 경험한 사람들을 통해 치매노인들이 통장과 현금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는 걸 알게 됐다. 6·25전쟁 이후 밑바닥부터 출발해 경제적으로 힘겨운 시대를 살아낸 그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제일 믿을 수 있는 것, 절대 잃어선 안 되는 게 통장과 현금이었다. 한국보다 풍요롭고 집에 현금을 두지 않는 서구 선진국에선 결혼반지, 보석이 없어졌다고 호소하는 치매노인이 많다고 한다. 요즘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청년들에게 뭉텅이 현금을 쥐여주자는 약속을 쏟아내고 있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이반현상이 뚜렷해진 20대, 특히 ‘이대남’을 어르려는 거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대학 안 가는 청년들에게 해외여행비 1000만 원을 지원해 주는 건 어떤가”라고 제안했고,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제대할 때 사회출발자금 같은 것을 한 3000만 원 장만해 드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출생 때부터 20년간 국가가 적립해 사회초년생이 될 때 1억 원짜리 통장을 만들어주자고 한다. 올해 성년을 맞은 청년이 49만7000여 명. 어림셈만 해봐도 매년 수조∼수십조 원이 필요한 공약들이다. 성년의 날을 맞아 민주당 지도부가 연 간담회에서 청년들은 “더 이상 이런 공약에 속아 표를 주진 않는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런 말을 좀처럼 믿지 않는 게 정치인들의 속성이다. 선심성 공약일수록 무리해서라도 지키려 하는 게 더 문제다. 다만 공약의 실현을 가로막을 장벽은 높아지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이 현 정부에서 폭증한 나랏빚이다. 빚을 내 돈 쓰는 일이 습관화된 영향으로 내년 말 국가채무는 1000조 원을 넘는다. 최근 취임 4주년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 확장재정”을 강조한 만큼 남은 1년도 흔들림 없이 돈을 풀 것이다. 코로나 위기에서 벗어나면 주겠다는 대통령의 ‘전 국민 위로금’ 약속도 살아 있다. 그런데 경고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의 신용등급을 제일 먼저 떨어뜨렸던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한국의 국가채무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며 재정 규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절제된 표현을 쉽게 풀면 “지금처럼 써대다간 머잖아 신용등급이 떨어질 것”이란 경고다. 게다가 미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긴축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 지금처럼 재정 털어먹기를 계속하다간 임기 내 경제 파탄을 각오해야 한다. 청년에게 쥐여준다는 돈도 결국 청년들이 평생 세금으로 갚아야 할 빚과 이자만 늘릴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요양원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가끔 만나는 어머니는 갓 고등학생 된 모습까지만 기억하는 손녀가 대학생이란 사실에 매번 놀란다. 그리고 “얘 대학 들어갈 때 등록금 해주려고 모아둔 돈이 있는데…”라고 한다. 끔찍이 챙기던 통장은 장성한 자식을 넘어 손녀의 미래를 위한 것이었다. 이런 모습을 우리 정치인들에겐 기대할 수 없는 걸까.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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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 실업급여 중독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지난주 미국 물류창고에서 일할 7만5000명 채용 계획을 밝히면서 평균 17달러(약 1만9300원)의 시급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현재 7.25달러인 연방 최저임금을 2025년까지 갑절인 15달러로 올리겠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고려할 때 낮지 않은 급여다. 코로나19 백신의 빠른 접종과 경기회복으로 일감이 많아지는데 일하려는 사람이 적다 보니 높은 임금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구인난의 원인으로 실업수당이 지목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3월 통과시킨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구제법안’은 실직한 이들에게 기존 실업수당과 별도로 매주 300달러를 9월 초까지 얹어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평균 387달러의 실업수당을 받던 미국 실업자의 주당 수입은 687달러로 높아졌다. 연봉으로 치면 3만5700달러이고 소득세도 내지 않는 실속 있는 소득이다. ▷최저임금을 받고 평균적인 근로시간을 일한 미국인이 벌 수 있는 연봉은 1만3000달러다. 일하지 않아도 그보다 2배가 훌쩍 넘는 수입이 생기다 보니 감염 위험이 남아 있는 일터에 복귀하려는 실업자가 많지 않다. 학교가 정상화되지 않아 자녀를 돌봐야 하는 여성들도 재취업을 늦추고 실업수당을 받는 게 이득이다. “실업수당이 구직 활동을 막는다는 증거가 없다”며 버티던 바이든 대통령도 결국 지난주에 “실업자는 적합한 일자리를 제안받으면 수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혜택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실업급여 하루 하한액은 6만120원, 월 181만 원으로 최저임금을 받고 하루 8시간, 주 5일 일할 때 받는 182만 원과 불과 1만 원 차이다. 정부가 2019년부터 실업급여 혜택을 대폭 늘린 영향이다. 단기간 일한 뒤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권고사직’시켜 달라고 사업주에게 요구하는 종업원들도 있다고 한다. 5년간 3번 이상 실업수당을 받은 사람이 9만4000여 명이나 된다. 고용보험기금 고갈 위험이 커지자 고용노동부는 수급 횟수가 많아지면 지급액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직장을 잃고 생계의 위협을 받는 이들을 정부가 지원하는 건 당연하지만 과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실업급여 중독’ 현상을 앞서 경험한 독일 프랑스 덴마크 등 선진국들은 정부기관의 취업 제안을 계속 거절하는 실업자에 대해 실업수당 지급 기간을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일터 복귀를 유도한다. 한국도 코로나19 이후 세금을 퍼부어 만든 일자리, 실업 대책의 부작용을 서둘러 점검할 때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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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랜섬웨어

    데이터가 곧 돈인 정보통신기술(ICT) 시대가 펼쳐지면서 범죄자들에게는 사람보다 데이터가 더 ‘수지맞는’ 인질이 되고 있다. 최근엔 미국 송유관 운영회사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의 전산 시스템을 공격한 해커조직 ‘다크사이드’가 이 회사 데이터를 인질 삼아 몇 시간 만에 500만 달러(약 56억5000만 원)를 챙기고 숨어버렸다. ▷다크사이드가 쓴 수단이 바로 ‘랜섬웨어’다. 몸값이라는 뜻의 랜섬(ransom)과 악성코드(malware)의 합성어인 랜섬웨어는 주로 이메일 등을 통해 공격 대상 기업, 정부기관 임직원 PC에 심어진다. 이들이 시스템에 접속할 때 회사 전산망에 침투해 자기들만 아는 암호를 중요한 데이터에 걸고 사용하지 못하게 한 뒤 “돈을 내면 풀어주겠다”고 협박한다. 억지로 암호를 풀려고 시도하면 데이터를 아예 못 쓰게 망가뜨리기도 한다. ▷사람이건 데이터건 인질이 잡혀 몸값을 요구받는 쪽에선 굴복하지 말자는 ‘주전파(主戰派)’와 타협으로 풀자는 ‘주화파(主和派)’ 사이에 내분이 생긴다. 미국 정부의 기본 원칙은 ‘범죄자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받아들이면 ‘돈이 된다’는 생각에 유사범죄가 폭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동남부 석유 수요의 45%를 공급하는 콜로니얼은 사회, 경제적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해 몸값을 지불하고 암호해독 키를 받았다. ▷16세기 경쟁국 상선에 대한 해적(海賊)질이 국가산업이던 영국처럼 해킹이 주 수입원인 나라들이 있다. 미 법무부는 올해 2월 북한 인민군 정찰총국 소속 해커 3명을 기소했다. 세계적으로 외화, 가상화폐 13억 달러(약 1조4700억 원)어치를 챙기려고 해킹을 시도해 3억 달러(약 3390억 원)를 실제 벌어들인 혐의다. 러시아, 중국에서도 다수의 ‘키보드 해적단’이 활동하고 있다. 미 정부는 콜로니얼 사건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제 해커조직의 움직임이 물 만난 고기처럼 활발해졌다. 비대면, 재택, 원격 근무의 확산으로 기업 등의 시스템 틈새가 커져 공격 기회가 많아진 것이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시장이 급성장함에 따라 수사기관들의 추적을 피해 몸값을 챙기는 일도 이전보다 수월해졌다. ▷한국 배달 대행업체 슈퍼히어로는 14일 새벽 중국발 랜섬웨어 공격을 받아 서버가 다운됐다. 회사 측은 해커에게 비트코인을 주고 35시간 만에 시스템을 복구했지만 3만5000여 개 점포, 1만5000여 명의 배달원이 피해를 봤다. 지난 주말 아일랜드 국가의료 전산시스템도 랜섬웨어 공격을 받아 운영이 중단됐다. 수상한 이메일은 절대 열어 보지 않는 등 각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개인과 기업, 정부기관들이 언제든 인질극의 대상이 되는 시대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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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백신 생산기지 한국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2010년 3월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수장으로 복귀하며 던진 화두다. 얼마 뒤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지하층에 만들어진 실험실에 임직원 12명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해 5월 발표된 삼성그룹 ‘5대 신(新)수종 사업’에 바이오·제약이 포함됐고 이듬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출범했다. ▷당시 삼성그룹 안팎에선 “100년 이상 앞선 세계적 제약회사들을 따라잡긴 어렵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래서 택한 1단계 전략이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이었다. CMO는 반도체로 치면 미국의 팹리스(설계전문업체) 의뢰를 받아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해주는 대만의 TSMC와 같은 비즈니스다. 반도체처럼 공정관리가 생명인 대형 장치산업이어서 삼성의 기량이 충분히 통할 것이란 이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현재 삼성바이오는 36만4000L의 생산능력을 갖춘 세계 1위 CMO다. ▷삼성바이오와 미국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 계약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바이오 측은 “확정된 바 없어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공시를 냈지만 이전 비슷한 소문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정했던 것과 온도 차이가 크다. 이 때문에 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대통령이 백신동맹을 논의한 직후 계약 내용이 공개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mRNA(메신저 리보핵산)를 이용한 모더나의 첨단 백신은 화이자 백신과 함께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된다. 모더나로서도 삼성바이오와 손잡으면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어 유리한 게임이다. 다만 한국에 당장 모더나 백신이 공급되긴 어렵다. 모더나에서 원료를 받아 후반 작업만 한다면 시점이 앞당겨지겠지만 생산설비를 새로 까는 데에만 최소 6개월이 걸린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이미 미국 노바백스 기술을 이전받아 경북 안동 공장에서 6월부터 백신을 생산하기로 했다. 삼성바이오의 계약까지 성사되면 한국이 동아시아의 ‘백신 생산 허브’로 도약할 기회가 된다. 코로나19는 팬데믹이 일단락된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계속 발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만큼 백신 생산 능력을 갖추는 건 국가경쟁력에까지 영향을 미칠 중요한 문제다. ▷선진국에 앞서 한국이 백신을 개발했다면 좋았겠지만 기초역량과 투자 규모의 차이를 고려할 때 금세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바이오산업의 불모지였던 한국이 백신 생산 위탁기지로 주목받는 것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 경제의 최대 장점인 빠르고 정확한 대량생산 능력이 한국인을 포함한 세계인의 생명을 코로나19로부터 구하길 기대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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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가상 지구의 땅값

    ‘서울 종로구 청와대로 1’, 즉 청와대는 현실에선 아무리 높은 값을 치르더라도 개인이 절대 살 수 없는 땅이다. 하지만 가상(假想) 지구인 ‘어스2(Earth2)’에선 땅 주인에게 100m²당 20.935달러(약 2만3500원) 이상 가격을 제안해 잘만 흥정하면 구매할 수 있다. 익명의 이 땅 소유자는 동서로 230m, 남북으로 220m의 청와대 땅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가치는 1만593.11달러(약 1191만6200원)다. ▷어스2는 호주 출신 개발자 셰인 아이작이 만든 가상 부동산 구매 게임이다. 구글 어스 위성사진 지도를 이용해 지구상의 땅을 가로세로 10m짜리 정사각형 ‘타일’로 쪼개 팔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비스를 시작할 때 전 세계 땅 가격은 타일당 0.1달러로 동일한 선에서 출발했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세계 주요 도시의 땅값은 수백 배로 치솟았다. 지금도 주인 없는 땅을 사거나 욕심나는 땅 주인에게 높은 가격을 제안해 신용카드로 부동산 거래를 할 수 있다. ▷이곳에 땅을 산 투자자들은 어스2가 ‘제2의 비트코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2100만 개로 발행량이 제한돼 희소성을 인정받는 비트코인처럼 가상 지구에선 사고팔 수 있는 땅 타일의 수가 5조 개로 한정돼 있어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다. 이미 한국인이 산 땅의 가격이 457만6000달러(약 51억4800만 원)나 된다. 709만6000달러(약 79억8400만 원)어치 땅을 산 미국인에 이어 2위다. ▷많은 이들이 가상 지구의 땅에 관심을 갖는 건 게임 개발업체가 앞으로 이곳에 건물과 도시를 세우고, 자원을 채굴하는 등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메타버스’를 만들 것이라고 홍보하기 때문이다. 복제된 지구에 일종의 ‘사이버 식민지’를 건설한다는 구상이다. 비전은 장대하지만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땅을 돈 받고 판다는 점에서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 할 만하다. 가상 지구가 하나만 만들어지리란 보장도 없고, 업체가 서비스를 중단하면 사 둔 땅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어 게임이 아닌 투자 대상으로 삼기에 대단히 위험해 보인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18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미래의 빈민촌 청소년들은 가상현실(VR) 기기를 쓰고 ‘이(異)세계’에 접속해 화려하고 모험이 가득한 삶을 즐기며 허름한 현실을 잊는다. 평생 월급을 모아도 집 한 채 장만하기 어렵다는 절망감에 주식,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이 어스2에 땅을 산다는 말도 나온다. 삶이 각박할수록 더욱 단단히 현실의 땅에 발을 디뎌야 한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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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세기의 이혼과 재산 분할

    1994년 새해 첫날 하와이의 작은 섬 라나이의 호텔들은 손님을 받지 않았다. 주변 섬을 오가는 헬리콥터들도 멈췄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멀린다 프렌치와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파파라치들을 피하기 위해 모든 객실, 헬기를 전세 내버린 것이다. 소수의 친구,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리조트 골프코스에서 결혼식이 치러졌다. ▷27년여 지난 4일 빌과 멀린다의 트위터 팔로어들은 새벽에 날아든 문자에 깜짝 놀랐다.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커플로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됐다”는 이혼 고지였다.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둘은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코로나19 퇴치에 나서는 등 이상적 동반자의 전형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한다. ▷멀린다에게 1987년 입사한 MS는 첫 직장이었다. 2년 차 때 사장인 빌과 비밀 데이트를 시작했고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던 중 결혼해 전업주부가 됐다. 하지만 세 자녀를 낳은 뒤 빌과 세계 최대 공익재단을 만들면서 사회활동을 재개해 2016년엔 포보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4위에 올랐다. ▷빌은 MS 지분 1.37%를 포함해 1460억 달러(약 164조 원)의 재산을 갖고 있다. 세계 4위 부자다. ‘동등한 파트너’를 강조해온 만큼 이혼 합의금이 사상 최고액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기로 한 두 사람의 서약이 합의금 결정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관심이다. 지금까진 세계 1위 부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57)의 2년 전 이혼 때 부인 매켄지 스콧이 350억 달러(약 39조 원) 상당의 아마존 주식을 받은 게 최고였다. ▷2위 부자인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72)은 1990년대 초 이혼했다가 재혼했다. 3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50)는 세 번째 부인인 캐나다 출신 가수 그라임스와 살고 있지만 할리우드 여배우들과의 염문이 끊이지 않는다.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 중에는 2012년 결혼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37)만 이혼 경력이 없다. ▷“빌과 멀린다도 회색이혼(gray divorce) 함정에 빠졌다”는 말이 미국인들 사이에서 나온다. 미국 전체 이혼율은 떨어지는데 50세 이상만 높아지는 걸 설명하는 용어가 회색이혼이다. 1946∼1965년에 태어나 개인 행복을 중시하는 베이비부머들이 배우자의 부정(不貞)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늘어난 수명과 건강 개선도 주요 원인이다. 66, 57세 부부의 결별 사유가 “함께 성장(grow together)할 수 없어서”란 게 의미심장하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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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개인 공매도

    올해 1월 20일은 세계 증시 역사에 남을 날이었다. ‘로빈후드’로 불리는 미국 개인투자자들은 이날 “주가 하락에 베팅해 돈을 버는 헤지펀드 공매도 세력을 혼내주자”고 의기투합했다. 이들의 집중투자로 20달러 정도이던 비디오게임 유통업체 ‘게임스톱’ 주식이 1주 만에 483달러까지 급등했다. 헤지펀드들은 막대한 손해를 보고 손을 들었다. 자본시장의 골리앗을 작은 개미들이 쓰러뜨렸다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작년 3월 코로나19로 중단됐던 한국 증시의 공매도가 오늘 재개된다. 공매도는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증권사에서 빌려 시장에서 판 다음 주가가 떨어지면 싼 가격에 같은 주식을 사서 갚음으로써 차익을 남기는 투자기법이다. 작년 초 글로벌 증시가 폭락하자 한국 등 12개국은 추가 하락을 우려해 공매도를 금지했다. 작년 말까지 10개국이 공매도를 다시 허용했고 남은 둘인 한국, 인도네시아 중 한국이 공매도를 먼저 재개한다. ▷‘공매도를 영원히 금지하자’고까지 주장한 동학개미들을 의식해 금융당국은 거래 규모가 크고 충격에 강한 코스피200, 코스닥150 종목만 우선 공매도를 시작했다. 코스피200은 종목 수로 코스피의 22%지만 시가총액으로는 88%나 된다. 일부 종목의 주가 하락은 피할 수 없겠지만 전체 증시의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일반적 전망이다. ▷정보와 자금이 많은 외국인, 기관에만 유리해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불리던 공매도 투자판에 개인투자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폭도 넓어졌다. 금융당국은 ‘개인 대주(주식대여)제도’를 고쳐 사전교육을 받은 개인도 공매도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주식을 빌려주는 증권사는 6곳에서 17곳으로, 수백억 원 수준이던 주식대여 규모도 2조4000억 원으로 대폭 늘렸다. ▷1만3000여 명의 동학개미가 이미 사전교육을 받고 ‘출격 준비’를 마쳤다. 신규 공매도 개인투자자는 증권사와 약정을 맺고 담보액을 넣은 뒤 60일간 주식을 빌릴 수 있다. 투자허용 한도는 처음엔 3000만 원이었다가 횟수와 거래금액이 쌓이면 7000만 원으로 늘었다가 이후 2년 더 거래를 계속하면 제한이 없어진다. ▷문제는 가격이 떨어질 것이란 예상과 반대로 빌린 주식 값이 오르면 증권사는 담보금 증액을 요구하고, 이를 못 맞추면 강제로 공매도가 청산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반 주식투자와 달리 공매도는 원금 전부를 날릴 수 있다. ‘투자는 자기책임’이란 금언을 새삼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 로빈후드가 끌어올린 게임스톱 주가는 3개월이 지난 지금 최고 때의 36%로 떨어졌지만 미국 헤지펀드들은 1월에만 197억5000만 달러(약 22조 원)의 손해를 봤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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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재계 서열

    카카오 네이버 넥슨 넷마블 등 정보기술(IT)기업과 바이오제약기업 셀트리온이 그제 발표된 71개 기업집단 중에서 순위가 껑충 뛰어올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 등을 감시하기 위해 매년 이맘때 ‘자산 5조 원 이상 기업집단’을 지정한다. 자산 규모에 따라 순서가 매겨지기 때문에 ‘정부 공인’ 재계 서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중에서도 기준이 더 높은 ‘자산 10조 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에는 최대 그룹들이 몰려 있어 평소엔 순위 변동이 많지 않다. 그런데 초유의 코로나19 사태가 대기업의 서열을 바꿔 놨다. 국민들의 소비 패턴이 급변하고, 저금리와 유동성 증가로 유망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 40개로 6개 늘고 순위도 많이 바뀌었다. ▷순위가 크게 오른 카카오(작년 23위→올해 18위), 네이버(41위→27위), 넥슨(42위→34위), 넷마블(47위→36위)은 ‘비대면 트렌드’ 혜택을 받은 IT, 게임 기업이다. 셀트리온(45위→24위)도 코로나 치료제 개발 등으로 코로나19 덕을 봤다. 2015년 처음 자산 5조 원을 넘어선 카카오는 지난해 자산 규모를 20조 원까지 키우며 순위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계열사 수도 118개로 1위인 SK그룹(148개) 다음으로 많다. 최근 뉴욕 증시에 상장한 쿠팡은 단박에 60위로 진입했다. 1위 삼성부터 17위 부영까지는 작년과 순위가 같았다. ▷과거 한국의 재계 서열을 가장 크게 뒤흔든 사건은 외환위기였다. 1998년 30대 기업 중 23년이 지난 지금 30위 안에 남은 그룹은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한화 GS 현대중공업 한진 두산 LS 대림 현대백화점 금호아시아나 HDC 효성이다. GS LS가 LG그룹에서,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HDC가 옛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만큼 11곳만 남아있는 셈이다. 재계 3위였다가 해체된 대우그룹을 비롯해 쌍용 동아 고합 진로 해태 등 19개 그룹은 사라지거나 30위 밖으로 밀렸다. ▷작은 연못 안에선 커보여도 넓은 세계무대에선 한국 기업 규모가 여전히 작다. 작년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중 한국 기업은 14개에 불과했고 한국 기업 중 1위인 삼성전자의 순위도 전년도 15위에서 19위로, SK㈜는 73위에서 97위로 밀렸다. 전년도에 비해 순위가 오른 현대차(94위→84위)를 포함해 100위 안에 든 기업은 3개뿐이었다. 반면 500대 기업 중 중국 기업은 119개에서 124개로 늘면서 미국(121개)을 사상 처음 뛰어넘었다. 미중이 벌이는 경제패권 전쟁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경쟁하고 살아남으려면 성공적인 투자와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더 키워야 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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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국민 눈높이 못 따라잡는 정부·여당의 경제 지능

    만사를 경제만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사실 경제 문제가 아닌 세상일도 드물다. 코로나19 탓에 결혼식 치르기가 어렵다곤 해도 1년 전보다 21.6% 줄어든 2월의 혼인 건수, 5.7% 감소한 출생아 수는 청년 취업난과 전셋값 급등을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 혼인 건수가 출산율을 예고하듯 결혼을 하려면 연애부터 해야 한다. 연애는 시작 단계에서 높은 ‘초기 비용’이 드는 일이다. 평소 안 다니던 비싼 음식점, 카페를 찾아다녀야 하고 각종 기념일에 선물도 준비해야 한다. 기간이 길어지면 비용은 하강곡선을 그리지만 헤어지는 순간 그동안 쓴 돈은 회수 불가능한 ‘매몰 비용’이 된다. 게다가 비용 분담이 보편화됐다고 해도 여전히 연애 과정에서 ‘경제력’은 남성에게 더 많이 요구되는 경향이 있다. 결혼할 때 주거 문제도 남성이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악화된 일자리 상황, 전셋값 상승에 대한 2030 남성의 분노가 동년배 여성보다 큰 이유가 이런 데도 있을 것이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진 남성은 20대 72.5%, 30대 63.8%로 여성(20대 40.9%, 30대 50.6%)보다 훨씬 높았다. 현 정부 초기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은 거의 사어(死語)가 됐지만 핵심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지금까지 일자리에 악영향을 미친다. 생산성 증가, 고용주 지불능력과 무관하게 정부가 ‘노동의 가격’인 임금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면 일자리가 감소한다는 당연한 경제원리를 청년층을 중심으로 온 국민이 큰 대가를 치르며 실감하고 있다. 작년 7월 말 정부 여당이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 3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을 때 “이번엔 정말 전셋값이 잡힐 것”이라고 기대한 청년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임대가 규제는 폭격 다음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확실한 방법”이란 경제학자들의 경고는 어김없이 적중해 전세난만 가중됐다. 정부가 선진국 모범사례로 제시했던 독일 베를린의 월세 상한제 역시 주택난 가중 등 부작용만 낳고 최근 독일 헌법재판소의 무효 판정을 받았다. 지난 4년간 한국 경제는 반시장적 비주류 경제학의 실험장이었다. 결과는 처참했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선한 의도’를 앞세운 검증되지 않은 정책의 위험성을 국민들이 깨닫게 됐다는 점이다. ‘문재인대(大) 경제학과’에 4년 다닌 효과로 한국인의 ‘경제 지능’이 크게 높아졌다. 문제는 정부 여당의 경제 이해도가 국민 눈높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청와대 부대변인이 “압축하다 보니 생긴 오해”라고 해명하긴 했지만 “신용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것은 구조적 모순”이란 지난달 말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국민들이 깜짝 놀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거로 확인된 국민의 부동산 세금 불만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벌어지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논쟁에서도 경제 사안에 대한 이해력 부족이 드러난다. 여권이 밀어붙인 부동산정책 실패로 집값이 폭등해 실현된 소득 없이 보유세를 더 내야 하는 국민 부담을 덜어주는 당연한 일을 하면서도 과세 대상을 몇 %로 맞춰야 표에 도움이 될지만 계산하고 있다. ‘보려 하지 않는 이들보다 더 눈먼 사람은 없다’는 영어속담처럼 경제 문제를 경제가 아닌 정치, 이념의 색안경을 통해 보려 한다면 눈앞에 놓인 뻔한 해답조차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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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디지털 위안화

    비트코인, 도지코인 등 민간 가상화폐처럼 블록체인 기술로 만들어졌지만 중앙은행이 가치를 보증하는 디지털화폐를 ‘중앙은행 발행 가상화폐(CBDC)’라고 한다. 수시로 가격이 널뛰는 민간 가상화폐와 달리 CBDC는 가치 저장, 교환 수단으로 안정적이다. 민간 가상화폐의 인기를 거품으로 보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등 전문가들마저 CBDC가 ‘화폐혁명’의 최종 승자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만든 건 국경을 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학 발전을 돕기 위한 것이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 저우샤오촨(周小川) 전 행장은 18일 이렇게 강조했다. 내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 전 출범할 것으로 알려진 디지털 위안화가 중국 ‘국내용’일 뿐 미국 달러화 패권에 도전하기 위한 시도가 절대 아니라며 자세를 낮춘 것이다. ▷CBDC는 은행 계좌, 신용카드 없이 휴대전화 앱 등을 이용해 결제, 송금이 가능하고 기존 통화보다 발행 및 거래 비용도 현저히 낮다. 코로나19 같은 상황이라면 정부가 동시에 전 국민 ‘전자지갑’에 지원금을 쏴줄 수도 있다. 거래 기록이 모두 남기 때문에 돈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어 범죄 등으로 인한 ‘지하경제’도 차단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화폐인 셈이다. ▷미국 유럽연합(EU) 한국 등 주요국 대부분이 도입을 저울질하고 있지만 중국이 제일 앞서 있다. 작년 10월부터 주요 도시에서 시험을 시작해 올해 3월엔 청두에서 4000만 위안(약 68억6000만 원)어치를 나눠받은 20만 명이 1만여 개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성공적으로 사용했다. 2, 3년 안에 중국 화폐 유통의 30∼50%가 디지털로 바뀔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조 바이든 행정부는 디지털 위안화가 미국에 위협요인이 될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국제 은행 간 거래의 38.3%를 차지하는 달러에 비해 위안화 비중은 2.4%로 당장은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미국 제재를 받는 이란, 북한 등과 중국이 거래할 때 디지털 위안화는 미국 주도 국제 금융결제망을 피해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날 런민은행 현직 부행장이 “공식 출시 시간표는 정해지지 않았다. 우리 목표는 달러화나 다른 국제 통화를 대체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극구 해명한 것도 미국 측 분위기가 심상찮아서다. ▷2005년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은행 북한 계좌를 미국 재무부가 동결했을 때 북한 지도부에선 “피가 마르는 심정”이란 말이 나왔다. 달러 중심의 금융결제망은 이런 식으로 미중 신(新)냉전에서 가장 강력한 ‘차가운 무기’가 될 수 있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제조업에서 시작된 미중 간 ‘테크 전쟁’이 바야흐로 국제금융 영역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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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이제 ‘봉투 3개’를 준비할 때

    “책상 서랍에 봉투 3개를 넣어 뒀다. 큰 위기가 올 때 한 개씩 꺼내 보라.” 새로 취임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게 떠나는 전임자가 이렇게 귀띔했다. 얼마 뒤 큰 어려움이 닥치자 CEO는 첫 번째 봉투를 뜯었다. 안에는 “전임자를 비난하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경영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봉투 3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조직의 새 수장은 임기 초 문제에 부닥칠 때 ‘전임자 탓’을 하게 마련이다.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대통령이 봉투를 남겼을 리 만무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 기술을 현란히 구사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출범해 소득주도성장을 강하게 밀어붙이던 중 처음으로 경제정책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랬다. 2018년 최저임금이 16.4% 인상되자 취업자 수 증가폭이 전년 31만6000명에서 9만7000명으로 뚝 떨어졌다. 문 대통령은 “오래 계속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해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고 그와 함께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돼 왔다”고 했다. 무리한 임금 상승으로 서민 일자리가 줄어든 걸 전 정부들 탓으로 돌린 것이다. 2018, 2019년 2년 연속 경제성장률이 2%대로 떨어지면서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이야기 속 CEO가 열어본 두 번째 봉투엔 “사람을 바꾸라”는 메모가 들어 있다. 실패의 책임을 물어 대대적 인사를 단행하면서 경영전략을 수정하라는 뜻이다. 현 정부도 개각과 정책 전환이 필요해졌는데 작년 초 시작된 코로나19가 엉뚱한 영향을 미쳤다. 최악의 경제 성적표는 팬데믹의 높은 파고에 묻혔고,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힘입어 지난해 4월 총선에서도 압승했다. 돈을 풀라는 청와대, 여권 요구에 저항하는 척 부응한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자리를 지켰다. 비켜간 줄 알았던 위기는 대통령이 “자신 있다”던 부동산 문제에서 다시 터졌다. 3년 넘게 공급 확대 없이 규제만 강화해 눌러놨던 집값이 저금리를 타고 폭등했다. 준비 없이 시행한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요구권은 전세의 씨를 말렸다. 장관 교체 등을 신속히 실행에 옮겨야 했지만 “전 정부에서 부동산 규제들이 다 풀어진 상태에서 자금이 부동산에 몰린 상황”(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라며 또 ‘전임정권 탓’을 했다. 하지만 그 카드의 유효기간은 이미 끝나 있었다. 3년 6개월 최장수 국토부 장관은 작년 말 물러나야 했다. 여론에 떠밀렸다곤 해도 그때가 정책 궤도를 바꿀 거의 마지막 기회였다. 그런데 청와대는 ‘공공주도 개발주의자’ 변창흠 국토부 장관을 기용하며 기존 정책기조를 강화했다. 곧이어 변 장관이 사장을 지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터졌다. 일자리 참사, 증세로 누적된 국민 분노에 도덕성 불신까지 겹친 복합위기 속에서 4·7 재·보궐선거를 치렀다. 세 번째 중대위기를 맞은 조직의 장에게 남겨진 마지막 메시지는 “후임자를 위해 봉투 3개를 준비하라”는 것이다. 돌이키기엔 늦었으니 마무리에 신경 쓰라는 주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대권 도전을 위해 사의를 표한 정세균 국무총리 자리에 홍 부총리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다만 대통령 임기가 13개월 남은 시점에 정부 대표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3년짜리 원장으로 실패한 ‘소주성’ 입안자인 홍장표 전 경제수석을 앉히려는 건 어이없는 일이다. 현 정부에서 못 핀 소주성의 꽃이 차기 정부에서 활짝 개화하길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미련일 뿐이다. 어떤 후임자도 그런 부담스러운 유산은 물려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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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39년 만의 합승 부활

    “영등포.” “과천.” 1990년대 중반까지 매일 밤 서울 도심의 도로에선 조수석 차창을 연 택시기사들이 줄지어 선 사람들 앞을 지나며 행선지를 외쳤다. 대강 목적지가 일치하면 손님들은 재빨리 차문을 열고 올라탔다. “방향 맞으면 같이 가시죠”란 말만 던져 놓고 합승 손님을 찾느라 바쁜 기사에게 먼저 탄 승객은 불만이 있어도 대놓고 항의하기 힘들었다. ▷늦은 밤 달리 귀가할 방법이 없어 합승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폐해도 컸다. 손님을 찾는 택시들이 수시로 아무 데나 정차하면서 주요 도로에선 심야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요금 다툼도 잦았다. 나중에 탄 승객의 목적지가 앞 승객 경로에서 벗어나 멀리 돌아간 경우 “왜 미터기 요금을 다 내라고 하냐”는 손님과 기사 간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통행금지가 풀린 1982년 택시 합승은 전면 금지됐다. ▷39년 만인 올해 상반기 중 택시 합승이 다시 시작될 전망이다. ‘모빌리티 규제 혁신’ 일환으로 정부는 택시호출 앱을 활용한 합승을 허용하기로 했다. 오후 10시∼오전 4시 심야시간에 스마트폰 앱으로 택시를 부르는 고객에게 미리 합승 동의 여부를 확인한 뒤 경로가 비슷한 동성(同性)의 승객만 함께 태우는 방식이다. ▷2019년 8월부터 정부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스타트업 ‘반반택시’가 합승 시범 서비스를 해왔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에 기반한 ‘앱 미터기’로 승객별로 요금을 따로 매겨 택시비는 30% 정도 줄어든다. 1km 안에 있는 고객들의 이동 경로가 70% 이상 일치하고, 추가되는 시간이 15분 이내일 때에만 합승이 이뤄진다. ▷범죄 가능성이 합승 재개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다. 불법이지만 공공연히 이뤄지던 합승이 줄어든 결정적 계기도 범죄였다. 1997년 11월 서울 강남의 호텔 주변에서 택시기사와 짜고 합승객으로 가장해 취객, 여자 승객의 돈을 빼앗은 ‘택시 떼강도’ 일당이 잡힌 뒤 합승을 꺼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이후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셈) 등 국제행사를 치르면서 정부가 단속과 처벌 수위를 높이자 합승은 자취를 감췄다. ▷관련 업체들은 앱을 통해 기사와 승객의 신원이 실명 확인되고, 이성(異性)은 함께 못 태우게 함으로써 범죄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정보통신기술(ICT)로 과거 합승의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뜻이지만 그사이 국민들은 안전 문제에 훨씬 민감해졌다. 연내에 코로나19가 종식될 가능성이 작은데 상반기 중 택시 합승을 허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낯선 사람과 밀폐공간에 머무는 걸 꺼리는 사람들이 많아진 데다 자칫 합승을 통한 감염병 확산 우려까지 있다는 지적이다. 규제 완화는 좋은 일이지만 사회 상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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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인기 작가’ 국세청

    인터넷 교보문고 3월 2주 차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2위, 종합순위 10위에 오른 책은 ‘주택과 세금’이었다. 초판 1만 부가 매진돼 2만5000부를 더 찍었고 이마저 부족해 1만5000부를 더 찍고 있다. 작가는 다름 아닌 국세청. 정부가 부동산 세제를 너무 자주, 많이 뜯어고치는 바람에 국세청의 세금 해설서가 일반인이 줄 쳐 가며 읽는 필독서가 됐다. ▷책의 최대 고객은 한국세무사회다. ‘양포세(양도소득세 상담을 포기한 세무사)’가 늘어나자 1만 권을 구입해 회원들에게 배포하기로 했다. 현행 양도세는 집 채수, 공시가격, 주택 소재지의 규제 지역 여부, 취득 시점, 보유 기간, 실제 거주 기간에 따라 수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하나라도 실수해 틀린 세액을 고객에게 알려줬다간 항의를 받는 건 물론이고 신고불성실 가산세 등 피해까지 물어줘야 해 세무사들이 양도세 상담을 꺼릴 수밖에 없다. ▷“집을 팔려고 하는데 양도세 계산법이 어려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국세청에 서면질의와 인터넷 상담을 하고 세무서 2곳을 직접 방문해 물어보고, 126 국세상담센터와 개인 세무사 대면 상담도 해봤지만 모두 다른 해석을 한다.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오를 정도로 양도세는 난해한 세금이 됐다. 주택 수와 소재지, 보유 기간 등에 따라 세율이 바뀌는 종합부동산세도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공동주택 공시가격 열람이 16일 시작된 이후 국세청 종합부동산세 계산 사이트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경쟁력 있는 조세’의 조건으로 공평성, 탈세 방지, 예측 가능성, 경제적인 납세협력비용 및 행정비용을 제시하고 있다. 수시로 바뀌어 납세자가 세금 부담을 예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부동산 세제는 ‘예측 가능성’이 하락하고 있다. 세금 내는 데 드는 납세자의 시간과 노력, 비용을 뜻하는 납세협력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연말정산 때를 빼면 세금 문제로 머리 쓸 일이 별로 없던 월급쟁이들까지 집 문제로 세제를 들여다보는 바람에 국세청이 ‘인기 작가’가 된 것이다. ▷부동산 세제가 ‘난수표’가 된 주된 원인 중 하나는 현 정부가 세금을 부동산대책의 수단으로 남용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덧댄 데를 또 덧대는 식으로 고치다 보니 세제가 복잡해졌다. 영국의 19세기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사랑을 하면서 현명해질 수 없는 것처럼 세금을 거두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내는 것 자체가 결코 즐겁지 않은 세금을 국민들이 ‘열공’하게 만드는 제도는 정상이라고 하기 어렵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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