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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앞두고 오랜만에 국내 영화계가 기분 좋은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 움직임의 선두에 있는 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남북한 정보원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11일 개봉 당일에만 11만6000여 명을 모으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휴민트’의 두 주역인 배우 박정민(39)과 조인성(45)을 9, 11일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만났다.‘휴민트’는 두 배우를 앞세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류 감독의 바람에서 시작됐다. 조인성과는 ‘모가디슈’와 ‘밀수’로, 박정민과는 ‘신촌좀비만화―유령’과 ‘밀수’로 연을 맺었다. 이번 작품에서 류 감독은 국가정보원 블랙요원 조 과장(조인성)으로 극에 안정감을 줬다. 조인성은 “공기 같은 역할이다 보니 어렵기도 했지만 재밌었다”며 “감독님이 저를 든든하게 생각해 주셨던 것 같다”고 했다.반면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으로는 멜로 누아르적 재미를 살렸다. 옛 연인 채선화(신세경)와의 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역할로, 박정민은 감정 진폭이 큰 연기를 도맡았다. 그러나 그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멜로 연기로 접근하진 않았다고 한다. 촬영에 돌입하고 나서야 단순한 액션 첩보물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그래서 가장 부담스러웠던 장면도 채선화와의 단독 대면 신이었다. “첫 대사 ‘잘 지냈소?’를 어떻게 뱉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던 박정민은 “감정을 빼고 편하게 내뱉으니 오히려 더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두 인물이 구사하는 액션 신도 분위기가 다르다. 연인을 구출하려 몸을 내던지는 박건의 액션이 불같고 거칠다면, 두 번 다시 자신의 휴민트(인적 정보)를 잃지 않고자 하는 조 과장의 액션은 냉철하고 우아하다. “박건이 무스탕을 입었다면, 조 과장은 코트를 입고 액션을 한다”(조인성)는 말이 둘의 액션 스타일을 잘 대변한다.실제 조인성이 주로 들었던 감독의 연출 방향은 “친절하고 다정하게”였다고. 류 감독은 휴민트와 정보만이 아니라 감정까지 교류하는 ‘품위 있는 요원’을 연기해 달라고 했다. 이에 조인성은 ‘여백’으로 답했다. 그는 “제 연기에 여백이 있어야 관객이 자신의 감정을 작품에 투영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며 “미간을 풀고, 눈에 힘을 빼고, 그 상황에 저 자신을 놓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이번 영화는 두 배우 모두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덧 영화계에서 ‘기둥 같은 선배’가 된 조인성은 올해 ‘휴민트’를 시작으로 ‘호프’(나홍진 감독), ‘가능한 사랑’(이창동 감독) 등에도 연이어 참여한다.“영화 ‘안시성’을 찍고 나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막대한 투자금이 주는 압박감, 주연으로서의 책임감에 시달렸죠. 스스로 깜냥이 안 된다고 느낀 뒤엔 오히려 작은 역할에 임해 왔어요. ‘밀수’, ‘무빙’ 등이 그랬죠. ‘휴민트’로 오랜만에 제1 주연을 맡게 됐는데, 작게라도 쓰이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던 게 여기까지 이끌어 준 것 같아요.”(조인성)지난해 말 한 영화제에서 가수 화사와의 축하 무대를 기점으로 이른바 ‘멜로 장인’으로 불리는 박정민에게 이번 영화는 ‘멜로 소화력’을 입증할 무대였다.“제 인생에 멜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꼴값 떤다고 생각하실까 봐 제가 할 수 있는 것만 잘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늘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선물을 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그러다 말겠지’ 싶긴 한데요. 1인분의 몫을 잘하자고 한 것들이 큰 스포트라이트로 돌아온 것 같아요. 하하.”(박정민)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설 연휴를 앞두고 오랜만에 국내 영화계가 기분 좋은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 움직임의 선두에 있는 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남북한 정보원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11일 개봉 당일에만 11만6000여 명을 모으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휴민트’의 두 주역인 배우 박정민(39)과 조인성(45)을 9, 11일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만났다.‘휴민트’는 두 배우를 앞세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류 감독의 바람에서 시작됐다. 조인성과는 ‘모가디슈’와 ‘밀수’로, 박정민과는 ‘신촌좀비만화-유령’과 ‘밀수’로 연을 맺었다. 이번 작품에서 류 감독은 국가정보원 블랙요원 조과장(조인성)으로 극에 안정감을 줬다. 조인성은 “공기 같은 역할이다 보니 어렵기도 했지만 재밌었다”며 “감독님이 저를 든든하게 생각해 주셨던 것 같다”고 했다.반면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으로는 멜로 누아르적 재미를 살렸다. 옛 연인 채선화(신세경)와의 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역할로, 박정민은 감정 진폭이 큰 연기를 도맡았다. 그러나 그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멜로 연기로 접근하진 않았다고 한다. 촬영에 돌입하고 나서야 단순한 액션 첩보물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그래서 가장 부담스러웠던 장면도 채선화와의 단독 대면 신이었다. “첫 대사 ‘잘 지냈소?’를 어떻게 뱉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던 박정민은 “감정을 빼고 편하게 내뱉으니 오히려 더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두 인물이 구사하는 액션 신도 분위기가 다르다. 연인을 구출하려 몸을 내던지는 박건의 액션이 불같고 거칠다면, 두 번 다시 자신의 휴민트(인적 정보)를 잃지 않고자 하는 조과장의 액션은 냉철하고 우아하다. “박건이 무스탕을 입었다면, 조과장은 코트를 입고 액션을 한다”(조인성)는 말이 둘의 액션 스타일을 잘 대변한다.실제 조인성이 주로 들었던 감독의 연출 방향은 “친절하고 다정하게”였다고. 류 감독은 휴민트와 정보만이 아니라 감정까지 교류하는 ‘품위 있는 요원’을 연기해 달라고 했다. 이에 조인성은 ‘여백’으로 답했다. 그는 “제 연기에 여백이 있어야 관객이 자신의 감정을 작품에 투영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며 “미간을 풀고, 눈에 힘을 빼고, 그 상황에 저 자신을 놓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이번 영화는 두 배우 모두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덧 영화계에서 ‘기둥 같은 선배’가 된 조인성은 올해 ‘휴민트’를 시작으로 ‘호프’(나홍진 감독), ‘가능한 사랑’(이창동 감독) 등에도 연이어 참여한다.“영화 ‘안시성’을 찍고 나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막대한 투자금이 주는 압박감, 주연으로서의 책임감에 시달렸죠. 스스로 깜냥이 안 된다고 느낀 뒤엔 오히려 작은 역할에 임해 왔어요. ‘밀수’, ‘무빙’ 등이 그랬죠. ‘휴민트’로 오랜만에 제1 주연을 맡게 됐는데, 작게라도 쓰이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던 게 여기까지 이끌어 준 것 같아요.”(조인성)지난해 말 한 영화제에서 가수 화사와의 축하 무대를 기점으로 이른바 ‘멜로 장인’으로 불리는 박정민에게 이번 영화는 ‘멜로 소화력’을 입증할 무대였다.“제 인생에 멜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꼴값 떤다고 생각하실까 봐 제가 할 수 있는 것만 잘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늘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선물을 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그러다 말겠지’ 싶긴 한데요. 1인분의 몫을 잘하자고 한 것들이 큰 스포트라이트로 돌아온 것 같아요. 하하.”(박정민)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걸그룹 ‘캣츠아이’(사진)가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뽑은 ‘포스트 넥스트(POST NEXT): 2026년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50인’에 선정됐다. WP는 9일(현지 시간) 공개한 ‘포스트 넥스트’ 명단에서 캣츠아이를 예술·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차기 주자로 꼽았다. 신문은 이들을 “K팝의 틀을 깨부수며 세계로 나가고 있는 그래미상 후보 가수”라며 “캣츠아이의 다양성은 다른 K팝 그룹들과 차별화되는 요소”라고 평가했다. WP는 이어 “공개 연애도 허락되지 않는 대부분의 K팝 스타들과 달리 캣츠아이는 사생활을 대중에게 솔직하게 공개한다”면서 캣츠아이 일부 멤버들이 다양한 성적 지향을 드러낸 점도 높이 샀다. 캣츠아이는 방탄소년단(BTS)이 소속된 한국 기획사 하이브와 미국 음반 레이블 게펀레코드가 협력해 지난해 선보인 6인조 걸그룹이다. 멤버들은 한국과 미국, 스위스, 필리핀 등 다양한 국적으로 이뤄져 있다. 1일 개최된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선 ‘최우수 신인상’과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등 2개 부문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포스트 넥스트’는 WP가 해마다 정치와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인물들을 선정한 명단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 11일 개봉한 영화 ‘넘버원’(사진)의 시사회가 있던 날, 영화사 관계자들이 참석자들에게 나눠준 선물이 있었다. 다름 아닌 ‘쌀’이었다. 이런 이색 마케팅에 나선 이유는 영화 ‘넘버원’의 주요한 소재가 ‘엄마의 집밥’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어느 날부터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줄어드는 숫자를 보게 된 아들 ‘하민’(최우식)이 그 숫자가 0이 되면 엄마 ‘은실’(장혜진)이 세상을 떠난다는 걸 알게 되며, 이를 막으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았다.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하는 가족 타깃용 힐링 영화인 만큼 주연 배우들은 4일 ‘6시 내고향’에 출연하기도 했다. 원작은 일본 작가 우와노 소라의 소설 ‘어머니와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328번 남았습니다’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영화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10대 시절 보육원에서 지냈던 김태용 감독은 이번 영화 촬영을 앞두고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들었지만 장례를 함께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 감독은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뒤 엄마에게 전화 한 통씩 하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이번 영화는 영화 ‘기생충’에서 인상적인 모자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최우식과 장혜진이 6년 만에 재회한 작품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11일 기준 ‘넘버원’은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에 이어 예매율 3위(5만여 명)를 기록하고 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 11일 개봉한 영화 ‘넘버원’의 시사회가 있던 날, 영화사 관계자들이 참석자들에게 나눠준 선물이 있었다. 다름 아닌 ‘쌀’이었다.이런 이색 마케팅에 나선 이유는 영화 ‘넘버원’의 주요한 소재가 ‘엄마의 집밥’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어느 날부터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줄어드는 숫자를 보게 된 아들 ‘하민’(최우식)이 그 숫자가 0이 되면 엄마 ‘은실’(장혜진)이 세상을 떠난다는 걸 알게 되며, 이를 막으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았다.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하는 가족 타깃용 힐링 영화인 만큼, 주연 배우들은 4일 ‘6시 내고향’에 출연하기도 했다.원작은 일본 작가 우와노 소라의 소설 ‘어머니와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328번 남았습니다’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영화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10대 시절 보육원에서 지냈던 김태용 감독은 이번 영화 촬영을 앞두고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들었지만 장례를 함께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 감독은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뒤에 엄마에게 전화 한 통씩 하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이번 영화는 영화 ‘기생충’에서 인상적인 모자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최우식과 장혜진이 6년 만에 재회한 작품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죽음의 카운트다운’이란 판타지적 설정을 더해 기존 가족 영화와는 차별화된 긴장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엄마표 진수성찬을 화면에 내세워 자연스레 군침을 흘리게 하는 맛도 있다. 11일 기준 ‘넘버원’은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에 이어 예매율 3위(5만여 명)를 기록 중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걸그룹 ‘캣츠아이’가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뽑은 ‘포스트 넥스트(POST NEXT): 2026년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50인’에 선정됐다.WP는 9일(현지시간) 공개한 ‘포스트 넥스트’ 명단에서 캣츠아이를 예술·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차기 주자로 꼽았다. 신문은 이들을 “K팝의 틀을 깨부수며 세계로 나가고 있는 그래미상 후보 가수”라며 “캣츠아이의 다양성은 다른 K팝 그룹들과 차별화되는 요소”라고 평가했다.WP는 이어 “공개 연애도 허락되지 않는 대부분의 K팝 스타들과 달리, 캣츠아이는 사생활을 대중에게 솔직하게 공개한다”면서 캣츠아이 일부 멤버들이 다양한 성적 지향을 드러낸 점도 높이 샀다.캣츠아이는 방탄소년단(BTS)가 소속된 한국 기획사 하이브와 미국 음반 레이블 게펀레코드가 협력해 지난해 선보인 6인조 걸그룹이다. 멤버들은 한국과 미국, 스위스, 필리핀 등 다양한 국적으로 이뤄져 있다. 1일 개최된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선 ‘최우수 신인상’과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2개 부문의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포스트 넥스트’는 WP가 해마다 정치와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인물들을 선정한 명단이다. 2026년 포스트 네스트엔 역사상 최초의 무슬림 뉴욕시장이 된 조란 맘다니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손녀이자 활발한 소셜미디어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카이 트럼프 등이 이름을 올렸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아는 맛이 무섭다.” 지난달 29일 공개한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BRIDGERTON)’ 시즌4의 파트1을 본 이들이라면 상당수가 이 말에 공감하지 않을까. 청소년 관람 불가의 야릇한 로맨스에 다양한 배경을 지닌 배우들을 캐스팅해 글로벌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브리저튼’ 특유의 전략은 이번 시즌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한국계 여배우가 자리했다.● 한국계 배우 하예린이 여주 19세기 영국 사교계가 배경이지만 판타지 성격도 띠고 있는 이 시리즈는 2020년 첫 시즌을 선보인 뒤 줄곧 넷플릭스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왔다. 시즌4 역시 공개 첫 주에만 3970만 시청 수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영어 쇼 부문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 이 시리즈는 브리저튼 가문의 8남매가 진실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매 시즌마다 주요 인물이 바뀌는데, 이번 시즌 주인공은 차남이자 결혼과 책임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해온 ‘베네딕트’(루크 톰프슨)다.줄리아 퀸의 동명 원작 소설 가운데 에피소드 ‘신사와 유리구두(An Offer from a Gentleman)’를 영상화한 시즌4는 제목에서 가늠할 수 있듯 ‘신데렐라’와 스토리 라인이 비슷하다. 운명적 만남은 가면무도회에서 벌어진다. 베네딕트는 그곳에서 만난 ‘은빛 드레스의 여인’에게 강렬하게 끌리지만, 여인은 이름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나간다. 그녀의 이름은 ‘소피 백’(하예린). 귀족이 아닌 하녀다. 귀족의 사생아로 태어나 가문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존재다. 이 ‘뻔한 공식’에 변주를 하나 뒀다면, 소피란 캐릭터의 성격이다. 현실을 슬퍼하며 신분 상승을 꿈꾸는 수동적인 주인공이 아니다. 당찬 성격으로, 타인을 위해 자신을 바꾸지 않는 단단함을 가진 여성이다. 시즌4는 그런 소피를 통해 앞선 시즌들과 차별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전까진 화려한 사교계에서 펼쳐지는 로맨스에 치중했다면, 이번엔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았던 하층 계급을 충실하게 담아냈다. 계급 구조의 이면을 정면으로 다룸으로써 브리저튼 세계관도 더 입체적으로 확장됐다.● 더 뚜렷해진 드라마의 정체성‘브리저튼’ 시즌4는 국내에선 한국계 호주 배우인 하예린의 출연으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배우 손숙의 외손녀인 하예린은 어려서부터 할머니를 보며 배우를 꿈꿨다고 한다. 그가 ‘브리저튼’에서 주연을 맡은 첫 번째 아시아 배우란 건 의미가 무척 크다. 최근 한국이나 일본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이 크게 늘긴 했지만, 서구 로맨스 장르에서 주인공에 발탁되는 건 여전히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하예린도 최근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 가진 인터뷰에서 “(오디션 영상을 보낼 당시) 조연인 줄 알았다”며 “그렇게 유명한 출연진과 작품에 합류하는 건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고 했다. 원작 소설 속 여주인공은 원래 ‘소피 베킷’이었으나, 그가 캐스팅되며 한국인 성을 딴 ‘소피 백’으로 바뀌었다. 이는 ‘브리저튼’이 가진 정체성 덕분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는 그간 다양한 유색인종 배우들을 주연급으로 출연시켰다. 정사(正史)에 얽매이지 않고 흑인 여왕이나 인도계 귀족 등을 등장시켜 백인 일색인 서구 시대극의 전형을 깨뜨려 왔다. 시즌4 역시 하예린 외에 소피의 계모인 아라민타 부인(케이티 렁)과 두 친딸도 아시아계 배우가 연기했다. 렁은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해리의 첫사랑 초 챙으로 친숙한 배우.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하예린은 자칫 밋밋할 수도 있었던 소피라는 인물에 특유의 단호함을 불어넣어 캐릭터의 풍미를 살렸다”고 호평했다. ‘브리저튼’ 시즌4의 파트2는 26일 공개될 예정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변호사의 나라’ 미국, ‘엔지니어의 나라’ 중국.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중국 산업 분석가로 손꼽히는 저자는 두 초강대국을 이렇게 정의한다.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살았던 저자는 양국이 전혀 다른 작동 방식을 갖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말(言)’이 지배하는 미국과 ‘기술’이 주도하는 중국. 저자의 한 줄 평을 중심으로 이상적인 국가 운영 방식은 무엇일지 고민하며 양국이 직면한 위협을 따라가다 보면, 묘하게도 대한민국의 과거와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이공계 출신 권력자들의 빠르고 과감한 의사결정으로 급부상했으나 억압 정치의 대가를 뒤늦게 치르는 나라.” 중국이다. 시작은 1980년대였다. 덩샤오핑(鄧小平)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개혁·개방을 표방했다. 그러곤 공학자 출신을 정부 최고위층으로 끌어올렸다. 이들의 목표는 국방력 강화. 이후 도로, 교량, 발전소, 새로운 도시 건설 등 대규모 국가 개발 계획이 착수됐다. 공학자 중심 국가의 장점은 명확했다. 그들은 도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생산 기반시설을 널리 구축하는 데에 탁월했다. 덩샤오핑의 개혁이 시작된 뒤로 중국의 하드웨어 역량은 급속히 탄탄해졌다. 현재 중국은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 모두를 더한 것보다 더 긴 고속철도망을 보유하고 있다. 태양광 및 풍력발전 설비 역시 다른 국가들을 모두 합친 규모와 맞먹는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성장엔 폐해가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업체인 ‘디디추싱’과 결제대행업체 ‘앤트그룹’ 등 신규 기술 기업을 향한 강한 규제 정책을 쏟아냈다. 소비자 중심보다는 국가 전략상 필요한 산업을 우선시했던 것. 합리적이지 않은 규제에 투자자 등 부유층이 중국을 떠나는 ‘룬(潤·Run)’ 현상도 일었다. 저자는 “일련의 정책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중국의 경제는 훨씬 나아졌을 것”이라고 했다.“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초를 달성했으나 이제는 규제와 절차에 갇혀 역동성을 잃어버린 나라.” 이 한 줄 평은 미국의 것이다. 한 세기 전 미국은 현 중국과 비슷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국내에선 건설 산업에 대한 열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야흐로 법률가의 시대가 도래했다. 당시 미국 곳곳에선 원유 유출 사고, 화학물질 누출 사고 등 경제성장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고학력 법률가들이 사회 전반에 부상했다. 법률가들의 관심사는 ‘소송’과 ‘규제’였다. 물론 이들 덕에 환경 파괴나 불필요한 건설 등 과거의 문제가 해결됐지만, 병폐도 있었다. 저자는 “법률가들이 장악한 미 정부는 국가 전략보다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거나 위원회를 설치하는 데에 익숙해졌다”고 평한다. 미국 내 변호사 숫자만 인구 10만 명당 400명, 유럽 국가 평균의 3배다. 이들이 구축해 놓은 절차 중심주의는 기업과 대학,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제조업이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전통 제조업체들은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했고, 미국은 제조 인력과 지식을 보존하지 못했다. 미 국가핵안보국(NNSA)이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기밀 부품 제조법을 잃어버린 사건도 있었다. 저자는 “만약 이 세상에 종말이 다가와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눈다면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하다”며 “전쟁은 첨단 정보기술(IT)만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국가정보원 블랙요원(비공식 정보요원)인 조 과장(조인성). 그의 ‘휴민트(HUMINT·인적 정보)’였던 북한 여성이 눈앞에서 숨졌다. 그가 남긴 인신매매 사건의 단서를 쫓아 조 과장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다. 11일 개봉하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 ‘휴민트’는 이렇게 시작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남북한 정보원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조 과장과 그의 새로운 휴민트 채선화(신세경), 채선화의 옛 연인이자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 ‘휴민트’는 ‘베테랑’(2015년)과 ‘군함도’(2017년), ‘모가디슈’(2021년) 등 굵직한 블록버스터를 선보인 류 감독이 2024년 ‘베테랑2’ 이후 약 17개월 만에 선보인 신작. 전작에서 다소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가 이번 작품으로 최근 심각한 침체에 빠진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섣불리 판단하긴 이르지만, 2026년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 될 가능성은 무척 높아 보인다. 이 영화의 장르는 ‘액션 멜로’라 볼 수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다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휴민트’는 액션으로도 멜로로도 기대 이상이다. 시원시원한 액션물을 기대했다면, 양도 질도 차고 넘친다. 그 중심에 선 건 단연 조인성. 영화는 조 과장의 전사(前史)를 과감히 덜어내고 초반부터 그의 목적인 ‘인신매매 사건’을 추적하며 질주해간다. 특히 ‘휴민트’의 액션 묘미는 이해관계에 따라 순간순간 공조와 대치가 뒤섞인다는 데에 있다. 첫째, 조 과장 대 박건. 서로 총구를 겨눌 수밖에 없는 남북한 요원들이다. 둘째, 황치성 대 박건. 황치성은 자신의 범죄를 숨기려 박건을 해치우려 한다. 마지막으로, 조 과장·박건 대 러시아 범죄조직. 인신매매 사건을 조사하는 두 사람은 때로 손을 잡고, 때로는 서로를 의심한다. 첩보물 특유의 정보 과잉을 줄인 점도 ‘굿 초이스’였다. 영화는 북한과 러시아 국경지대에서 발생하는 북한 인신매매와 마약 밀반입이란 매우 직관적인 사건을 내세운다. 영화의 실제 촬영지는 북유럽 라트비아.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눈밭 위 총격 액션이 ‘휴민트’가 구축한 스산한 세계를 잘 표현해준다. 그럼 멜로 영화로서는? 살짝 고전적이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를 좋아한다면 꽤나 흡족할 터. 멜로 서사의 주인공은 박건과 채선화다. 한때 연인이었으나 보위성 조장인 박건이 탈북을 시도했던 채선화의 아버지를 체포하며 사이가 어긋났다. 그리고 몇 년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어김없이 흔들린다. 하지만 재결합이 쉬울 리가 있나. 재회 시점, 채선화는 국정원의 휴민트다. 이 사실을 먼저 알아챈 황치성은 박건의 만류에도 채선화를 강압 조사한다. 나아가 둘을 한 번에 제거할 목적으로 채선화를 러시아 범죄조직에 넘긴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 제 한 몸을 내던지는 박건. 다소 뻔한 순애보지만, 박정민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는 기쁨이 크다. 마지막 관전 포인트는 류 감독의 2012년 영화 ‘베를린’에 있다. ‘휴민트’는 ‘베를린’과 세계관이 이어진다. ‘베를린’을 봤던 관객이라면 기억을 떠올려보자. 북한 첩보요원 표종성(하정우)이 아내 련정희(전지현)를 잃은 뒤 복수에 불타 향했던 곳이 블라디보스토크였다. 물론 이들이 전면에 등장하진 않지만, 블라디보스토크를 매개로 한 이스터 에그(easter egg·숨겨진 장치나 메시지)를 발견하는 재미가 꽤나 옹골차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국정원 블랙요원(비공식 정보요원)이던 조 과장(조인성). 그의 ‘휴민트(HUMINT·인적 정보)’였던 북한 여성이 눈 앞에서 숨졌다. 그가 남긴 인신매매 사건의 단서를 쫓아 조 과장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다. 11일 개봉하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 ‘휴민트’는 이렇게 시작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남북한 정보원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조 과장과 그의 새로운 휴민트 채선화(신세경), 채선화의 옛 연인이자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 ‘휴민트’는 ‘베테랑’(2015년)과 ‘군함도’(2017년), ‘모가디슈’(2021년) 등 굵직한 블록버스터를 선보인 류 감독이 2024년 ‘베테랑2’ 이후 약 17개월 만에 선보인 신작. 전작에서 다소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가 이번 작품으로 최근 심각한 침체에 빠진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섣불리 판단하긴 이르지만, 2026년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 될 가능성은 무척 높아 보인다. 이 영화의 장르는 ‘액션 멜로’라 볼 수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 다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휴민트’는 액션으로도 멜로로도 기대 이상이다. 시원시원한 액션물을 기대했다면, 양도 질도 차고 넘친다. 그 중심에 선 건 당연 조인성. 영화는 조 과장의 전사(前史)를 과감히 덜어내고 초반부터 그의 목적인 ‘인신매매 사건’을 추적하며 질주해간다.특히 ‘휴민트’의 액션 묘미는 이해관계에 따라 순간순간 공조와 대치가 뒤섞인다는 데에 있다. 첫째, 조 과장 대 박건. 서로 총구를 겨눌 수밖에 없는 남북한 요원들이다. 둘째, 황치성 대 박건. 황치성은 자신의 범죄를 숨기려 박건을 해치우려 한다. 마지막으로, 조 과장·박건대 러시아 범죄조직. 실종 사건을 조사하는 두 사람은 때로 손을 잡고, 때로는 서로를 의심한다.첩보물 특유의 정보 과잉을 줄인 점도 ‘굿 초이스’였다. 영화는 북한과 러시아 국경지대에서 발생하는 북한 인신매매와 마약 밀반입이란 매우 직관적인 사건을 내세운다. 영화의 실제 촬영지는 북유럽 라트비아.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눈밭 위 총격 액션이 ‘휴민트’가 구축한 스산한 세계를 잘 표현해준다.그럼 멜로 영화로서는? 살짝 고전적이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를 좋아하다면 꽤나 흡족할 터. 멜로 서사의 주인공은 박건과 채선화다. 한때 연인이었으나, 보위성 조장인 박건이 탈북을 시도했던 채선화의 아버지를 체포하며 사이가 어긋났다. 그리고 몇년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어김없이’ 흔들린다.하지만 재결합이 쉬울 리가 있나. 재회 시점, 채선화는 국정원의 휴민트. 이 사실을 먼저 알아챈 황치성은 박건의 만류에도 채선화를 강압 조사한다. 나아가 둘을 한번에 제거할 목적으로 채선화를 러시아 범죄조직에 넘긴다. 그리고 어김없이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 제 한 몸을 내던지는 박건. 다소 뻔한 순애보지만, 박정민의 또 다른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기쁨이 크다.마지막 관전 포인트는 류 감독의 2012년 영화 ‘베를린’에 있다. ‘휴민트’는 ‘베를린’과 세계관이 이어진다. ‘베를린’을 봤던 관객이라면 기억을 떠올려보자. 북한 첩보요원 표종성(하정우)이 아내 련정희(전지현)을 잃은 뒤 복수에 불타 향했던 곳이 블라디보스토크였다. 물론 이들이 전면에 등장하진 않지만, 블라디보스토크를 매개로 한 이스터 에그(easter egg·숨겨진 장치나 메시지)를 발견하는 재미가 꽤나 옹골차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2023년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일본 영화 ‘괴물’(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은 한 소년 배우의 이름도 세계에 각인시켰다. 구로카와 소야(黒川想矢·17).그는 순수함과 혼란이 공존하는 아이인 무기노 미나토를 섬세하게 표현해 일본 아카데미 신인배우상도 거머쥐었다. 그로부터 2년 뒤. 구로카와는 일본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국보’에서 가부키에 타고난 재능을 지닌 소년 기쿠오를 연기했다. 무대를 향한 열망이 강하면서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는 캐릭터를 나이에 걸맞지 않은 깊이감으로 연기해 차세대 기대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구로카와 배우가 1일 ‘국보’ 무대 인사를 위해 내한하며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 응했다. 다섯 살 무렵 처음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원래 “연기란 얼굴로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4년 전 ‘괴물’ 촬영장에서 “얼굴은 가장 나중이어도 괜찮다. 손끝이나 몸 전체로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연기하면 된다”는 고레에다 감독의 조언을 듣고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다. 그때부터 “연기를 좋아하기 시작했다”고.“그 뒤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이지 않아요. 대신 바람이나 냄새, 그리고 상대 배우로부터 받는 것을 솔직하게 느끼고 되돌려주죠. 그렇게 연기하다 보면, 아직 17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감정과 마주하는 순간이 있는데요. 그때 행복을 느끼고, 연기가 재밌다고 느낍니다.”그의 진심을 읽었던 걸까. 이상일 감독은 ‘국보’ 캐스팅 당시 구로카와를 보고 “이 배우가 정말로 연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구로카와 역시 대본을 받자마자 간절히 기쿠오 역을 원했다. 그는 “기쿠오는 굉장히 강인한 사람”이라며 “기쿠오에게 동경심을 느꼈고, 이 역할을 통해 저 자신도 더욱 강해지고 싶었다”고 했다.매니저와 함께 ‘뭘 잘못했는지’ 따로 돌이켰을 만큼 불합격을 예상했던 ‘국보’ 오디션. 하지만 합격 소식을 들은 날, 구로카와는 기쁨과 동시에 불안을 느꼈다. “일본의 소중한 전통문화인 가부키에 누가 되진 않을지 두려워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이에 꼬박 반년간 연습을 거듭했고, 포기하고 싶을 만큼 호되게 혼나면서도 끝까지 연기를 준비했다.구로카와가 또래 배우들과 구별되는 점은 연기뿐만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하는 소년이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경계하는 성숙한 자기 인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2024년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수상 소감이 그랬다. 당시 15세였던 그는 “‘괴물’에서 미나토 역을 맡은 게 운이라 생각하는 저와, 마치 ‘내 힘으로 해냈다’고 착각하는 제가 싸우고 있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여전히 그 싸움은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싸워 나가야 한다”고 했다.그는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르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줄곧 “한국 작품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밝혀 온 구로카와는 올해 그 바람을 이룬다. “아직 공개 전이지만 몇몇 한국 작품에 출연하게 됐으니 기대해 달라”는 말과 함께 다음을 기약했다.“‘괴물’로 한국에 왔을 때 많은 분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신 게 어제 일처럼 기억에 생생해요. 사실 지금 한국어 공부도 하고 있어요. 언젠가 여러분과 한국어로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럼 또 만나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일본 영화 ‘괴물’(2023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은 한 소년 배우의 이름도 세계에 각인시켰다. 구로카와 소야(黒川 想矢·17). 그는 순수함과 혼란이 공존하는 아이 무기노 미나토 역을 섬세하게 표현해내며 일본 아카데미 신인배우상을 거머쥐었다. 그로부터 2년 뒤. 구로카와는 일본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국보’에서 가부키에 타고난 재능을 지닌 소년 기쿠오를 연기했다. 무대를 향한 열망이 강하면서도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는 캐릭터를 나이에 걸맞지 않는 깊이감으로 연기해 차세대 기대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구로카와 배우가 1일 ‘국보’ 무대 인사를 위해 내한하며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 응했다. 다섯 살 무렵 처음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원래 “연기란 얼굴로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4년 전 ‘괴물’ 촬영장에서 “얼굴은 가장 나중이어도 괜찮다. 손끝이나 몸 전체로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연기하면 된다”는 고레에다 감독의 조언을 듣고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다. 그때부터 “연기를 좋아하기 시작했다”고.“그 후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이지 않아요. 대신 바람이나 냄새, 그리고 상대 배우에게서 받는 것을 솔직하게 느끼고 되돌려주죠. 그렇게 연기하다 보면, (아직 17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감정과 마주하는 순간이 있는데요. 그때 행복을 느끼고 연기가 재밌다고 느낍니다.”그의 진심을 읽었던 걸까. 이상일 감독은 ‘국보’ 캐스팅 당시 구로카와를 보고 “이 배우가 정말로 연기하는 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구로카와 역시 대본을 받자마자 간절히 키쿠오 역을 원했다. 그는 “키쿠오는 굉장히 강인한 사람”이라며 “그런 키쿠오에게 조금의 동경심을 느꼈고, 이 역할을 통해 저 자신도 더욱 강해지고 싶었다”고 했다.매니저와 함께 반성회까지 했을 만큼 불합격을 예상했던 ‘국보’ 오디션에서 합격 소식을 들은 날, 구로카와는 기쁨과 동시에 불안을 느꼈다고 한다. “일본의 소중한 전통문화인 가부키에 누가 되진 않을지 두려워 견딜 수 없었다”는 것. 그렇게 꼬박 반 년간 연습을 거듭했고, 포기하고 싶을 만큼 호되게 혼나면서도 끝까지 무대를 준비해갔다.구로카와가 또래 배우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연기뿐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하는 열일곱 소년이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경계하는 성숙한 자기인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2024년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수상소감이 대표적이다. 당시 15살이던 그는 “‘괴물’에서 미나토 역을 맡게 된 것이 운이라 생각하는 저와, 마치 나의 힘으로 해냈다고 착각하는 제가 싸우고 있다”는 소감을 남겼다. 구로카와는 “여전히 그 싸움은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싸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구로카와는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칭하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줄곧 “한국 작품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밝혀온 구로카와는 올해 그 바람을 이룬다. “아직 공개 전이지만 몇몇 한국 작품에 출연하게 됐으니 기대해달라”는 말과 함께 그는 다음을 기약했다.“사실 지금 한국어 공부도 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여러분과 한국어로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그동안 저희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사랑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지금 이 곡이 마지막 연주가 될 것 같습니다.”1일 경기 파주시 명필름아트센터. 이날 마지막 상영작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년)를 보러 온 200여 명은 영화의 첫 대사에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2015년 5월 1일 명필름아트센터가 문을 연 지 11년 만에 폐관을 맞은 날이었기 때문이다.관객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박수를 터뜨렸다. ‘성우’(이얼)가 과거의 첫사랑 ‘인희’(오지혜)가 부르는 ‘사랑밖에 난 몰라’를 반주하며 끝이 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즈음이었다. 화면을 뚫고 나온 듯 25년의 세월을 건너뛴 오지혜 배우가 무대에 서서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부르자, 관객 몇몇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이날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마지막 상영작으로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고른 이유에 대해 “왜인지 이 영화가 마지막에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자리에 함께 한 임순례 감독과 박원상 배우, 오지혜 배우는 “(폐관한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속상하다”며 “그동안 버텨주신 명필름에게 한 명의 관객으로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관객석에 있던 이얼 배우(1964~2022)의 딸 이금주 씨는 “아빠 모습과 함께 영화가 시작해 처음에 너무 눈물이 많이 났다”며 “명필름아트센터의 마지막 상영작이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니 아빠가 엄청나게 기뻐해주실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속 수철의 아역으로 나왔던 배우 김종언 씨는 “당시 19살이던 제가 45살이 됐다”며 “이 영화가 제가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던 힘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비록 명필름아트센터는 잠시 문을 닫지만, 이 공간을 통해 관객, 후배, 동료들에게 남긴 자산은 굉장할 겁니다. 영화를 만드는 조건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새로운 30년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임 감독)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디즈니 최고경영자(CEO)인 밥 아이거(75·사진)가 이르면 올 상반기에 조기 은퇴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디즈니 이사회가 다음 주 캘리포니아 본사에서 회의를 갖고 후임 CEO에 대한 투표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아이거 CEO는 최근 지인들에게 “고된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WSJ 등에 따르면 아이거 CEO는 디즈니 산하 ABC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지미 키멀 라이브’ 진행자인 키멀의 출연 중단 사태 때 큰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평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이던 키멀이 현 정부의 압박으로 하차한 것으로 알려지며 디즈니 안팎에선 거센 반발이 몰아쳤다. 결국 키멀은 약 일주일 만에 복귀했다. 아이거 CEO의 후임으로는 테마파크 사업을 총괄하는 조시 다마로 체험부문 회장과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이끌고 있는 데이나 월든 공동회장이 거론되고 있다. 아이거 CEO는 2005년부터 15년간 디즈니를 이끌다가 2020년 은퇴했으나, 후임이던 밥 체이펙이 실적 부진으로 경질된 뒤 2022년 11월 복귀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디즈니 최고경영자(CEO)인 밥 아이거(75)가 이르면 올 상반기에 조기 은퇴할 것으로 알려졌다.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디즈니 이사회가 다음 주 캘리포니아 본사에서 회의를 갖고 후임 CEO에 대한 투표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아이거 CEO는 최근 지인들에게 “고된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WSJ 등에 따르면 아이거 CEO는 디즈니 산하 ABC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지미 키멀 라이브’ 진행자인 키멀의 출연 중단 사태 때 큰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평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이던 키멀이 현 정부의 압박으로 하차한 것으로 알려지며 디즈니 안팎에선 거센 반발이 몰아쳤다. 결국 키멀은 약 일주일 만에 복귀했다.아이거 CEO의 후임으로는 테마파크사업을 총괄하는 조시 다마로 체험부문회장과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이끌고 있는 데이나 월든 공동회장이 거론되고 있다. 아이거 COE는 2005년부터 15년간 디즈니를 이끌다가 2020년 은퇴했으나, 후임이던 밥 체이펙이 실적 부진으로 경질된 뒤 2022년 11월 복귀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영화 ‘나홀로 집에’ 시리즈에서 주인공 케빈의 엄마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배우 캐서린 오하라(사진)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72세. 소속사 CAA는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고인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구체적 병명은 공개하지 않았다.캐나다 출신인 고인은 1970년대 토론토 코미디극단 ‘세컨드 시티’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이후 할리우드에 진출해 팀 버튼 감독의 ‘비틀쥬스’(1988년) 등에서 주목받았고, 1990년 개봉한 영화 ‘나홀로 집에’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2015년 시트콤 ‘시트 크릭 패밀리’에서 모이라 로즈 역으로 에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나홀로 집에’에서 케빈을 연기한 배우 매컬리 컬킨은 소셜미디어에 “사랑하는 엄마, 우리에게 시간이 더 있는 줄 알았다”며 “의자에 나란히 앉아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며 애도했다. 영화 ‘제2의 연인’(1986년)에 함께 출연했 배우 메릴 스트리프은 “고인은 (연기를 통해) 기지 넘치는 연민으로 세상에 사랑과 빛을 가져다줬다”고 추모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942년 미국의 공상과학(SF) 소설가 잭 윌리엄슨은 이런 상상을 했다. 소행성 내부에 중력 장치를 장착해 인공 중력을 구현하는 기술을 마련하면 어떨까. 이런 그의 상상력은 단편소설 ‘충돌궤도’에 반영됐고, 잭은 이 기술에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상상’으로 치부되던 이 개념은 현재 우주농업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원예학자와 식물공학자인 두 저자는 ‘테라포밍’에 대한 로드맵을 차근히 설명한다. 물론 현재의 ‘테라포밍’은 1942년의 발상과는 다소 다르다. 행성 또는 위성의 생태계를 변화시켜 여러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을 뜻하는 개념으로 진화했다. 책은 지금껏 인류가 쌓아올린 농업 기술의 역사를 훑으며, 우주에서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을 다각도로 모색한다. 테라포밍에는 윤리적 문제가 뒤따른다. 찬성 측은 “생명체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테라포밍을 하는 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테라포밍 과정은 반드시 자연에 비윤리적인 인간의 간섭을 일으키므로 옳지 않다”는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다. 다행히(?) 아직까진 외계 행성에서 생명체가 발견된 적이 없기에, 학계 인사들 대부분은 해당 지역에 자생 중인 생명체가 없다면 테라포밍이 괜찮다는 입장 쪽으로 기운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건 경제적인 측면이다. 화성의 대기를 지구 수준의 밀도로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재료를 지구에서 가져간다고 하면, 1018t에 이르는 공기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대략 구매력 평가 지수 기반 세계 국내총생산(GDP) 총합의 18억 배 정도 비용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대두되는 개념이 ‘패러테라포밍(Para-terraforming)’이다. 행성 표면에 외부와 격리된 작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만 테라포밍하는 방식이다. 행성 전체의 테라포밍에 비하면 환경을 적게 교란할 뿐 아니라, 사용하는 자원의 양도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물론 대기가 잘 조성돼 있지 않은 행성은 운석 충돌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충돌 시 빠르게 수리할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위험한 방사선을 막아낼 피복재도 반드시 필요하다. 1950년대 달 탐사가 진행될 조짐이 보이자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세계 SF 작가와 학자는 달에 인간이 살 기지를 만들기 위해 조감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외형은 대개 월면 토양에 깊숙이 파묻혀 있는 형태였다. 단점은 창문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태양 에너지를 활용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요즘은 밀폐된 월면 기지가 건설될 경우, 그 내부에서 인공광을 사용해 수경 재배를 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저자들은 “더 먼 우주까지 나아가기 위해 몇 가지 기술이 더 필요하지만, 우리는 우주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답을 찾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다음 달 6일엔 유인 달 탐사 작전인 ‘아르테미스 II 프로젝트’가 가동된다. 이번엔 달에 착륙하진 않지만 우주비행사들이 10일간 달 주위를 비행할 예정이다. 달 착륙은 2028년쯤 발사될 ‘아르테미스 III 프로젝트’를 통해 시도된다. 테라포밍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최근 각종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에 자주 등장하는 해시태그 중 하나는 ‘독서노트’ ‘필사’ 등이다. 에세이 등에 실린 한 구절을 옮겨 적은 노트 사진을 공유하며 “매일 필사를 하면 작은 성취감이 쌓여 간다” “필사의 장점은 내가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것” 등 필사를 예찬하는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 피로감에 지친 청년 세대가 다시 종이와 책을 집어 들고 있다. 기존 열풍이 책을 읽는 ‘텍스트 힙(text hip)’이었다면, 최근엔 읽고 쓰는 ‘라이팅 힙(writing hip)’으로 퍼져가는 모양새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세대에게 쓰기는 신선하고 새로운 자극이 됨과 동시에, 빠르게 소비되는 숏폼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손을 쓰는 행위 자체가 뇌를 쉬게 하는 휴식이 돼 준다고 한다. 자주 책의 일부 구절을 필사한다는 직장인 김모 씨(32)는 “하루 종일 화면을 보다 손으로 글자를 옮기면 머리가 비워지는 느낌”이라며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 노트를 보면서 예전에 적었던 문장을 상기하곤 한다”고 말했다. 필사, ‘라이팅 힙’ 열풍은 출판시장에서도 감지된다. 인터넷서점 예스24의 ‘2025년 도서시장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해 필사 서적 판매량은 전년 대비 64.7% 증가했다. 2년 연속 판매 상승세다. 신간 종수 역시 크게 늘어 403종으로 전년(181종)의 두 배를 넘어섰다. 최근 5년간 판매된 글쓰기 도서 베스트셀러 1위는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한 유선경 작가의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였다. 이런 아날로그적 취미에 맞춰 ‘맞춤 공간’도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기기 없이 사색과 글쓰기에 집중하는 ‘라이팅 카페’ ‘라이팅 룸’ 등이 급속도로 많아졌다. 이런 장소들은 대화 금지, 조도를 낮춘 조명, 개인 간 거리를 확보한 좌석 등이 특징이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라이팅 카페를 즐겨 찾는다는 홍모 씨(26)는 “소음에 민감한 편인데 독서를 하거나 생각을 정리하기 좋았다”며 “어딜 가도 빠짐없이 소리 지르고 깔깔대는 사람들을 피해 제대로 쉬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한카드에 따르면 2025년(1∼10월) 수도권 주요 라이팅 카페 이용 금액은 전년에 비해 71%가 증가했다. 이용 건수와 이용자 수도 각각 37%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문구숍의 이용 건수도 2023년 동기 대비 18% 증가했다. ‘라이팅 힙’ 덕에 아날로그적인 취미를 위해 필사용품인 노트나 펜 등을 찾는 이용객이 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한카드 측은 “인공지능(AI)과 배속 시청, 숏폼 영상처럼 빠르게 소비하는 콘텐츠가 일상으로 자리 잡은 환경 속에서, 오히려 속도를 내려놓고 뇌가 제 기능을 되찾을 수 있는 경험을 찾는 이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난해 해외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이라면 한 번쯤 이 작품에 대한 갑론을박을 들어봤을 가능성이 높다. 흥행은 실패했지만 평단은 극찬을 보낸 영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다. 22일(현지 시간) 발표된 미국 오스카(아카데미상) 최종 후보에서 무려 13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이 작품, 어째서 흥행과 평가는 이토록 엇갈린 걸까.‘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순제작에만 최소 1억3000만 달러(약 1880억 원)가 들어가 할리우드에서도 블록버스터 급이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3억 달러 이상 벌었어야 했으나, 글로벌 수입은 2억 달러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장사로 치면 엄청난 손실이다.흥행에 실패한 주된 이유는 앤더슨 감독의 강력한 ‘작가주의적 색채’가 꼽힌다. 그는 ‘부기 나이트’(1997년), ‘펀치 드렁크 러브’(2002년) 등으로 유명한 예술영화 감독.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그의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긴 하지만, 블록버스터를 보며 확실한 재미를 원하는 관객들을 유인하기엔 부족했다는 해석이 나온다.하지만 이 ‘애매함’이야말로 해당 영화가 가진 진가라는 의견도 상당하다. 이 작품은 큰 틀에서 보면 ‘위기에 빠진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고군분투’라는 익숙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반정부단체 출신인 밥 퍼거슨(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민자 차별과 폭력 시위의 양태를 다뤘다. 그 대척점에 있는 스티븐 J 록조(숀 펜)를 통해 백인 우월주의자의 실상까지 드러내며 트럼프 시대 미국의 풍경을 재치 있게 그려냈다.미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도 “이 영화는 급진적인 정치와 문화적 퇴락을 신랄하게 풍자했다”며 “거침없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도발적인 작품으로 이번 오스카 시상식이 품은 도발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했다.현지에서도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이번 오스카 레이스에서 가장 선두를 달리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으로 여겨지는 올해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감독·각본·여우조연상 등을 차지했다. 제31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감독상·각색상 등 핵심 부문의 수상을 독차지했다.3월 15일 열리는 제98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또 한 번 괴력을 발휘할까. 다만 그에 맞서는 경쟁작도 만만치 않다. ‘씨너스: 죄인들’이다.미 흑인 역사를 장르물로 담아냈다는 호평을 받는 ‘씨너스: 죄인들’은 오스카 1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역대 최다 후보 지명이란 기록을 세웠다. 이 영화는 지난 15년 동안 북미에서 가장 높은 수익(약 4000억 원)을 거둔 실사 오리지널 영화란 기록도 세웠다. 글로벌 수입도 3억 달러를 넘었다. 흥행 성적만 보자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보다 한 수 위인 셈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지난해 해외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이라면 한 번쯤 이 작품에 대한 갑론을박을 들어봤을 가능성이 높다. 흥행은 실패했지만 평단은 극찬을 보낸 영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다. 22일(현지 시간) 발표된 미국 오스카(아카데미상) 최종 후보에서무려 13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이 작품, 어째서 흥행과 평가는 이토록 엇갈린 걸까.‘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순제작에만 최소 1억3000만 달러(약 1880억 원)가 들어가 할리우드에서도 블록버스터 급이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3억 달러 이상 벌었어야 했으나, 글로벌 수입은 2억 달러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장사로 치면 엄청난 손실이다. 흥행에 실패한 주된 이유는 앤더슨 감독의 강력한 ‘작가주의적 색채’가 꼽힌다. 그는 ‘부기 나이트’(1997년), ‘펀치 드렁크 러브’(2002년) 등으로 유명한 예술영화 감독.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그의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긴 하지만, 블록버스터를 보며 확실한 재미를 원하는 관객들을 유인하기엔 부족했다는 해석이 나온다.하지만 이 ‘애매함’이야말로 해당 영화가 가진 진가라는 의견도 상당하다. 이 작품은 큰 틀에서 보면 ‘위기에 빠진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고군분투’라는 익숙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반정부단체 출신인 밥 퍼거슨(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민자 차별과 폭력 시위의 양태를 다뤘다. 그 대척점에 있는 스티븐 J. 록조(숀 펜)을 통해 백인 우월주의자의 실상까지 드러내며 트럼프 시대 미국의 풍경을 재치있게 그려냈다.미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도 “이 영화는 급진적인 정치와 문화적 퇴락을 신랄하게 풍자했다”며 “거침없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도발적인 작품으로 이번 오스카 시상식이 품은 도발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했다.현지에서도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이번 오스카 레이스에서 가장 선두를 달리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으로 여겨지는 올해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감독·각본·여우조연상 등을 차지했다. 제31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감독상·각색상 등 핵심 부문의 수상을 독차지했다.3월 15일 열리는 제98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은 또 한 번 괴력을 발휘할까. 다만 그에 맞서는 경쟁작도 만만치 않다. ‘씨너스: 죄인들’이다. 미 흑인 역사를 장르물로 담아냈다는 호평을 받는 ‘씨너스: 죄인들’은 오스카 16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되며 역대 최다 후보 지명이란 기록을 세웠다. 이 영화는 지난 15년 동안 북미에서 가장 높은 수익(약 4000억 원)을 거둔 실사 오리지널 영화란 기록도 세웠다. 글로벌 수입도 3억 달러를 넘었다. 흥행 성적만 보자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보다 한수 위인 셈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