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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1월 10일 경남 합천 해인사 연화대에서 치러진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성철 스님 다비식. 부근 금강굴에서 산등성이를 둘 넘으니 연화대가 보였다. 연화대를 향해 3배 아닌 9배를 올렸다. 과거와 현재, 미래 삼세(三世)를 합해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번 생에 잘 못 모셨으니 다음 생에 만나 뵙겠습니다"고 다짐했다. 입적 전 큰 스님이 "니는 내가 가면 내 같은 사람 만날 줄 아느냐?"고 하던 말도 떠올랐다. 성철 스님의 유일한 혈육인 불필(不必) 스님(75)과,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던 스님의 마지막 이별 장면이다. 불필 스님은 2009년 청와대 초청으로 잠시 얼굴을 드러낸 것을 빼면 외부와의 접촉을 피해왔다. 불필 스님은 회고록 '영원에서 영원으로' 출간을 계기로 18일 금강굴 문수원에서 첫 간담회를 가졌다. 책에는 성철 스님과 나중 불가에 귀의한 어머니 일휴 스님 등에 얽힌 가족사, 향곡스님 법정스님과 은사인 인홍스님의 인연, 성철 스님의 법문 노트 등을 실었다. "(이번 생에 잘 못 모셨다는 것은) 잘 모시려 해도 받아들이시지 않는데 모실 수가 없잖아요. 세속의 편하게 잘 모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그야말로 눈을 떠 (성철) 스님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겠다는 뜻입니다." 불필 스님은 성철 스님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리 있어야 하는 존재였다. 스님은 간담회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성철 스님 입적 때까지의 사연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13세 때 부산 묘관음사에서 성철 스님을 처음 봤는데 '가라 가' 한마디 툭 던지더니 휙 사라졌어요. 옆에 있던 향곡 스님이 앞으로 뭐가 되고 싶냐고 묻길래 '사람을 연구하는 발명가가 되고 싶습니다.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문제를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라고 했죠." 성철스님은 출가 전 결혼해 두 딸을 뒀다. 다섯 살 위의 언니는 수경(불필스님의 속명)이 9세 때 죽었다. 불필 스님은 "집에서 '공주'로 떠받들어져 살다 갑자기 죽음과 인간에 대한 고민이 생길 무렵이었는데 '가라'는 한 마디에 '난 아버지와의 인연은 없다'고 생각하며 돌아왔다"고 회고했다. 그로부터 5년 뒤 진주사범학교에 다닐 때 "다녀가라신다"는 전갈을 받았다. 수경과 성철 스님의 대화가 이어졌다. "니는 무엇을 위해 사노?" "행복을 위해 삽니다" "그래 행복에는 영원한 행복과 일시적인 행복이 있는기라. 그라믄 니는 어떤 행복을 위해 살려고 하노?" 수경의 말문이 막혔다. 이 말에 삶과 불교에 눈을 떴다. "항상 행복만 추구했지, 영원과 일시적 행복이 있다는 것 몰랐지. 화두(話頭)를 깨치면 영원한 대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어요. 스님의 그 한마디에 아버지가 아닌 스승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작은 체구의 스님은 60여년 세월이 바로 어제 일처럼 손에 잡히는 듯 간간이 미소를 지었다. 스님은 "(성철)스님이 남자는 부모 빼고는 모두 도둑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맞지 않느냐"고 말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불필이라는 법명에 얽힌 사연도 털어놨다. "같이 간 친구는 자신을 낮춘다는 의미의 백졸(百拙)을 법명으로 받았는데 난 필요 없다는 불필인기라. 그래서 물었더니, 왜 필요한가, 하필(何必)을 알면 불필(不必)의 뜻도 안다고 하더군요. 그 이름 값 하려고 지금도 노력하며 살고 있어요."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3일 92세로 별세한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 총재의 장례식이 15일 오전 경기 가평군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진행됐다. 이 행사는 ‘문선명 천지인참부모 천주성화식’이라는 명칭으로 열렸으며 알프레드 모이지우 알바니아 전 대통령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김봉호 전 국회부의장, 탤런트 김상순 심양홍 정혜선 씨 등 3만5000여 명(통일교 추산)이 참석했다. 이날 오전 9시 반경 문 총재의 시신이 청심평화월드센터로 옮겨진 뒤 통일교 세계회장인 7남 문형진 성화위원장(33)의 점화, 천일국가 제창, 4남 문국진 통일교 재단 이사장 겸 통일그룹 회장(42)의 헌화 등이 이어졌다. 헌화에는 국화 대신 고인이 좋아했던 장미와 백합이 사용됐다. 문형진 위원장은 조사에서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신 구세주 메시아요, 재림주 참부모요, 만왕의 왕이신 문선명 총재께서 한평생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진두지휘하시다 지상생활을 마감하고 영계로 가시게 됐다”며 “참아버님(문 총재)이 보여준 참사랑의 모델적 삶과 비전을 중심으로 천일국(天一國·하나님 나라) 창건을 위해 전력투구하겠다”고 말했다. 고인의 시신은 통일교박물관인 천정궁이 위치한 천성산에 안장됐다. 통일교는 장례기간 중 전국에 마련된 조문소에서 25만 명의 조문객이 문 총재를 추모했다고 밝혔다. 문 총재의 사실상 장남인 3남 문현진 통일교세계재단(UCI)그룹 회장 겸 글로벌피스페스티벌(GPF) 재단 의장(43)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문 회장은 다른 형제들과의 갈등 끝에 두 차례 조문하지 못하자 12일 미국으로 출국했으며, 미국에서 가족 지인과 별도 추모 예배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알려왔습니다 ▼◇본보 17일자 A31면 ‘통일교 문선명 총재 장례식 엄수’ 기사에서 장례식에 참석한 것으로 소개된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본인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알려왔습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고 문선명 통일교 총재의 3남인 문현진 통일교세계재단(UCI)그룹 회장(43·사진)이 통일교권과의 결별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문 회장 측은 9일 e메일을 통해 배포한 자료를 통해 “현 통일교의 분란을 형제의 난으로 언론은 전한다”며 “이에 현 통일교권과의 결별을 선언한다”며 교권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최근 통일교 주변에서는 문 총재의 장남과 차남이 세상을 떠나 문 회장이 사실상 장자임에도 불구하고 후계구도에서 밀려나고 장례위원회에서도 배제돼 형제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문 회장 측은 “저쪽에서 용역을 동원해 문 회장의 빈소 조문을 막고 있다”며 서울 강남 센트럴시티 6층 밀레니엄홀에 별도 분향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한편 형진 씨가 이끌고 있는 통일교 측은 “교회 후계 문제는 문 총재 생전에 후일 분란이 없도록 정리한 것인데 문 회장 측이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성경에 등장하는 도시들을 찾아 약 20년간 65회나 성지를 순례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터키, 시리아의 국경을 넘나들고 지중해의 작은 섬까지 찾아다녔다. 최근 ‘바이블시티 700’ 증보판을 펴낸 이원희 목사(56·사진)다. 책에서 그는 예수가 성장한 나사렛, 고대 가나안의 왕도 하솔, 예수가 첫 이적(異蹟)을 베푼 갈릴리 가나 등 성경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678개의 도시를 포함해 광야의 골짜기와 강, 시내 등 700곳을 다뤘다. 총 2760장의 사진과 함께 각각의 지명이 언급된 성경 구절과 역사, 신학적 의미 등을 소개했다. 그는 ‘바이블시티’ 출간에 목회 인생을 바친 이로 알려져 있다. “1976년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성경에 나오는 도시에 얽힌 역사와 지리를 제대로 소개하고 싶다는 포부를 품었습니다. 현장 목회를 포기한 것이 아쉽지만 순례와 책을 통해 또 다른 목회 인생을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성경의 도시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한국에도 성지센터를 건립하는 것이 앞으로의 꿈”이라고 덧붙였다. 자세한 책 정보는 홈페이지(www.photobible.co.kr)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세월이 어디로 갔는지 몰라. (모국에) 돌아가 봐야 아는 사람도 없어요.”(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84) “2년 반만 있다 내 갈 길을 가려고 했는데….”(마이클 이어돈 신부·58) 4일 오후 제주 이시돌 목장에서 만난 아일랜드 출신의 두 신부는 제주도와의 인연을 이렇게 말했다. 맥그린치 신부, 한국 이름 임피제 신부는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소속으로 1954년 제주에 첫발을 디뎠다. 그는 1961년 가난을 대물림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해 한라산 산간 지대의 황무지를 목초지로 바꾼 이시돌 목장을 개척했다. 목장 이름은 천주교 성인이 된 스페인 농부 이시돌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의 제주 사랑은 이후 양로원과 말기 암 환자 요양원, 피정센터 등으로 확대됐다. 목장 앞에는 그의 이름을 딴 ‘맥그린치로(路)’ 표지도 있다. 그의 뒤를 이어 목장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어돈 신부와 제주의 인연도 운명적이다. 대학 졸업 뒤 1978년 수의사로 이 목장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다 사제의 길을 걷게 됐다. 고국의 아버지는 아일랜드 교구에서 사제로 활동할 것을 권유했지만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수의사에서 신부로 변신해 1986년 서울에 도착했어요. 그랬더니 호칭이 마이클 씨에서 마이클 신부님이 되더군요(웃음). 그런데 서울에서 빈민 사목 활동도 하느라 다시 제주에 오는 데 7년이나 걸렸어요.” 임피제 신부는 제주 한림이라는 지명을 콕 찍어 “바로 여기가 내 고향”이라고 말했다. 7년에 한 번씩 휴가차 모국에 간 것을 빼면 쉬지 않고 제주에서 목장과 협동조합 등을 운영하며 주민들과 고락을 같이했다. 그는 “남들은 휴가 다녀오면 다른 본당으로 부임하라는 명령을 받는데 저는 계속 제주에서 일하라는 말만 들었다”고 덧붙였다. 두 신부는 같은 나라 출신인 데다 남다른 인연으로 얽혀 있다. “(맥그린치) 신부님이 한국에 온 그해 내가 태어났고, 지난해 사제 서품 60주년을 맞으셨을 때는 전 25주년이었습니다. 가끔 이 인연이 ‘팔자’ 아닌가 생각해요. 아니, 하느님의 섭리라고 해야죠.(웃음)”(이어돈 신부) 이시돌 목장은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한때 1만 마리가 넘는 돼지 등의 사육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지금은 3000마리 안팎의 한우와 젖소, 경주마를 사육하고 있다. 목장은 양로원과 피정센터, 어린이집, 요양원 등 휴양 복지시설과 함께 천주교 성지로 다시 자리매김하고 있다. 목장에서 클라라 수녀원∼금악성당∼현대미술관∼신창성당으로 이어지는 순례길이 조성돼 개방을 기다리고 있다. 두 신부는 자신들이 누구보다 사랑해 온 제주와 한국의 변화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금메달을 못 따도 최선을 다한다면 소중한 일이죠. 요즘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1등이 되기 위한 공부와 운동에만 매달리고 있어 안타깝습니다.”제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사진)가 감기와 폐렴으로 시작된 합병증 치료를 받다 3일 오전 1시 54분 경기 가평군 청심국제병원에서 성화(聖和·별세)했다. 향년 92세.고인은 지난달 14일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받았으나 현대의학으로 병세 호전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에 따라 지난달 31일 청심국제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왔다. 부인 한학자 세계평화여성연합 총재(69)와 자녀들이 임종을 지켰다.통일교에 따르면 고인은 1920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고에서 수학했고 미국 성경신학대학원과 선문대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를 창시한 뒤 ‘천일국(天一國·하나님 나라)’ 건설을 주장하며 종교뿐 아니라 경제와 언론, 교육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해 왔다. 1990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인 고르바초프, 1991년 북한 김일성 주석을 면담했다. 장례는 해외 신도들의 입국 일정 등을 고려해 13일장으로 치러지며 15일 오전 가평군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문선명 천지인참부모천주 성화식’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행사의 위원장은 7남인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이 맡았다. 통일교는 세계 통일교 신도들이 사흘간 각자 처소에서 고인을 위해 특별기도를 하며 신도와 일반인 참배는 6일부터 13일까지 월드센터 내에 마련된 빈소에서 이뤄진다고 밝혔다. 장지는 가평군 송산리 천승산. 031-589-8770∼9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문선명 총재 별세로 통일교의 미래에도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인은 부인 한학자 세계평화여성연합 총재와의 사이에 13명의 자녀(7남 6녀)를 두었지만 장남과 차남, 6남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통일교와 종교전문가들에 따르면 후계 구도는 4남 국진 씨(42)가 통일그룹 회장과 통일교 재단 이사장, 7남 형진 씨(33)가 통일교 세계회장을 맡아 각각 경제와 종교 영역을 책임지는 것으로 돼 있다. 두 형이 작고해 사실상 장남인 3남 현진 씨(43)는 메리엇호텔 등 해외 기업과 비정부기구(NGO)를 관할하는 글로벌피스페스티벌(GPF) 재단을 맡고 있다. 남자 형제 중 유일하게 목회자의 길을 걷는 형진 씨는 문 총재 생전인 2008년 통일교 세계회장에 임명돼 종교 영역의 후계자로 낙점됐다. 형진 씨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철학과를 거쳐 하버드신학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했다. 티베트 불교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고, 가톨릭 김수환 추기경 빈소를 조문하는 등 종단을 뛰어넘는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통일교에서는 후계구도가 안정돼 있다며 형제간의 갈등을 부정하고 있지만 문 총재의 카리스마가 사라진 만큼 불확실성도 존재한다. 현진 씨와 연관된 한 회사는 지난해 어머니가 대표로 있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선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파문이 일었다. 통일교 총재직은 생전 고인의 언급에 따라 공동총재였던 한 총재가 물려받을 것으로 알려졌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3일 별세한 통일교 문선명 총재는 국내외에서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종교인이자 평화운동가로 평가받고 있다. 고인은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설립하면서 주목받았다. 통일교로 불린 이 단체는 1994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명칭을 바꿨다가 다시 통일교로 개칭했다. 통일교에서는 신령협회 설립과 관련해 “이 땅에 하나님 나라, 천일국(天一國)을 세우고자 했다.…협회를 창립한 것은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진행시키고자 하는 (문 총재) 뜻이 기독교 지도자들의 반대로 좌절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1957년 완성된 통일교 교리서 ‘원리강론’은 그의 종교관을 구체화했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를 신령과 진리로 통일해 하나의 세계를 만들겠다는 것. 개신교계에서는 통일교 창시 때부터 우상화와 지나친 현세주의 등을 들어 통일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도 통일교의 경제력을 앞세운 기업 활동과 대규모 합동결혼식 등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논란 속에서도 1957년 일본을 시작으로 해외 선교를 본격화해 50여 년 만에 국내 10만여 명 등 세계 194개국, 신도 300여만 명(통일교 추산)으로 급성장했다. 고인은 통일교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교육과 기업, 언론, 학술, 스포츠,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다. 일화, 선원건설, 세일여행사, 용평리조트, 세계일보, 프로축구단 일화 등이 속한 통일그룹이 있으며 지난해 보도된 이 그룹의 자산만 2009년 말 기준으로 1조7361억 원 규모다. 이 밖에 선문대와 청심국제중고교, 선화예술중고교, 미국 통일신학대학원(UTS)과 브리지포트대, 미국 통신사 UPI와 워싱턴타임스, 일본의 일간지 세카이닛포, 유니버설발레단, 리틀엔젤스예술단 등이 통일교 계열에 속한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창립 50주년을 맞은 1994년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명칭을 바꾸고 이른바 ‘참가정’ 운동을 펼쳤다. ‘참사랑의 근원인 하나님의 축복 속에 참부모와 참부부, 참자녀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취지다. 통일교에서는 문 총재 부부를 ‘참부모님’으로 부르고 있다. 고인은 특히 국제 지도자와의 교류에 적극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0년 옛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만난 것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주요 정치인들을 만나 초종교, 초국경, 세계평화 활동을 펼쳤다. 2008년에는 고인과 가족, 통일교 신도들이 탄 전용헬기가 악천후 속에 경기 가평군 장락산에 불시착했으나 경미한 부상자 외에는 모두 무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9년 펴낸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에서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포함한 해외 지도자들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특히 이 책을 통해 “나는 이름 석 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세상의 문제 인물입니다. 돈도 명예도 탐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을 이야기하며 살아왔을 뿐인데 세상은 내 이름자 앞에 수많은 별명을 덧붙이고 거부하고 돌을 던졌습니다”라고 세간의 평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통일교 창시부터 현재까지 문 총재와 통일교에 대한 수많은 논란과 관계없이 고인은 통일교 그 자체였다는 게 종교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편 해외 언론들은 3일 문 총재의 별세 소식을 신속하게 보도했다. AP,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BBC 등은 장문의 부고 기사를 실어 해외에서도 상당한 통일교의 영향력을 반영했지만 일부 기사는 그를 ‘이교(cult) 지도자’로 평가했다. 문 총재의 생애를 가장 자세하게 조명한 뉴욕타임스는 그를 ‘자칭 구세주(메시아)’라고 소개하며 “1960년대 말 대안종교 열풍을 타고 미국에 자리 잡은 통일교가 정치스캔들과 합동결혼식 등 독특한 관습으로 인해 이교적 이미지를 떨쳐내지 못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문 총재가 1970년대 초 박동선 로비 사건에 연루돼 탈세 혐의로 실형까지 사는 등 미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 인물이었지만 아직 워싱턴에서 그의 영향력은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미 언론들은 문 총재가 워싱턴과 뉴욕에 상당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전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템플스테이가 10주년을 맞는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시작할 당시 전국 33개 사찰에 이용객 5000여 명에서 지난해 118개 사찰, 이용객 약 42만 명으로 확대됐다. 특히 외국인들에게 템플스테이는 불교를 넘어 우리 전통 문화를 알리는 대표적 문화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10월 11일에는 10주년을 기념하는 비전 선포식을 갖는다. 5월 템플스테이를 총괄하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장으로 취임한 법진 스님(52)을 24일 만났다. 스님은 해인사 승가대 학장을 지낸 학승(學僧)으로 전 총무원장 월주 스님의 손자상좌다. ―템플스테이 10주년을 평가하면…. “우리나라에서 요즘 우리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고궁을 보고 한식을 맛보면 그만 아닌가. 불교는 외국에서 전래했지만 1700년 역사 속에서 우리 삶과 밀착해 우리 것이 됐다.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템플스테이를 ‘전 세계의 성공적인 5대 관광 상품’ 중 하나이자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관광 자원으로 발표했다.” ―냉정하게 몇 점 줄 수 있나. “C학점, 점수로 치면 70점 정도 아닐까(웃음). 가장 큰 성과는 템플스테이가 이제 갈 길을 찾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길인가. “템플스테이는 단지 사찰에서 며칠 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 전통을 알리는 문화 운동이다. 이미 ‘템플스테이의 진화’가 이뤄져 왔다. 이를테면 금산사의 ‘내비둬’ 콘서트는 음악과 강연이 중심이다. 백담사는 108배와 사찰음식 만들기, 대청봉 봉정암 참배 등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채울 수 있는 프로그램 중심이다. 또 레저형도 있고,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형도 있다.” ―아직 외국인들의 이용도가 낮고 대부분의 사찰이 산에 있어 접근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크게 외국인, 내국인이면서 불교 신도가 아닌 사람, 불교 신도로 나눌 수 있다. 지난해 42만 명의 이용객 중 3만7000여 명이 외국인이었다. 다른 목적으로 여행 온 외국인들이 템플스테이를 체험하기는 쉽지 않다. 일정과 여건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국내외 여행사들과 협력해 명상과 문화 체험을 위주로 하는 독자적 여행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불교 신도가 아닌 분들에게는 우리 불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불자들을 위해서는 체험의 농도를 짙게 할 생각이다.” ―조계종 본산인 조계사는 ‘항상 공사 중’이다. 제대로 된 안내도 없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겠지만 개선이 필요하다. 곧 홍보관을 만들어 템플스테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해설사를 상주시켜 외국인과의 소통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 ―지난해 템플스테이 예산 감축과 관련해 조계종이 정부와 심각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개신교 일각에서 편향적 지원이라며 ‘처치 스테이(church stay)’를 하겠다는 주장도 나온다. “억울하다. 템플스테이가 시작된 것은 정부의 아이디어였다. 예산의 집행도 템플스테이를 위한 용도로 한정돼 있고 재정과 관련한 모든 자료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처치 스테이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필요하다면 그동안의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다.” ―템플스테이의 미래는 무엇인가. “템플스테이의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비디오식 구경이나 해설사의 백과사전적 정보 전달은 큰 의미가 없다. 스님들도 반성해야 한다. 템플스테이는 담당자만의 소임이 아니라 사찰 전체의 몫이다. 누군가 그 절을 찾는다면 손님이 아니라 그 절의 대중(大衆)으로 여겨야 한다.” “수행이야 경전 안과 밖이 다를 게 없지만 하도 결재가 많아 번잡하긴 하다. 무주묘행(無住妙行)이란 말이 있다. 알고 배운 것에 머무르지 말고, 마음과 행동으로 새로운 것을 낳으라는 의미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언제나, 누구든지 찾아오면 기도하고 수행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절집을 찾으면 우선 마음이 편해야죠.” 794년에 창건된 봉은사 주지 진화 스님(56)의 말. 이곳은 재적 신도만 15만여 명이 넘는 서울 도심의 대표적 사찰로 알려졌다. 그러나 1970∼80년대 조계종 분쟁으로 ‘강남 총무원’이 들어서는 등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최근에도 봉은사의 직영사찰 전환을 둘러싼 당시 주지인 명진 스님과의 갈등으로 정치권 외압설이 불거지는 등 큰 홍역을 치렀다. 그때 부주지였으며 2010년 11월 주지로 취임한 진화 스님을 21일 봉은사에서 만났다. 주지 취임 뒤 첫 인터뷰다. “신도들 사이의 갈등도 적지 않았고 상처도 컸죠. 개인적으로 봉은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조용한 대다수의 신도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진화 스님은 직영사찰 문제 등 이른바 ‘봉은사 사태’가 화두가 되자 “아직은…”이라며 “(할 말은 많지만) 주지로 지난 상처를 다시 건드리기보다는 함께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게 먼저”라며 말을 아꼈다. 그동안 봉은사에는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기도와 수행 중심의 도량(道場·사찰)으로 바뀌고 있다. 매월 개최하는 천수다라니 독송 3년 대정진 기도에는 4000여 명이 몰린다. 주지가 목탁을 치고 염불하는 것을 보기 힘든 요즘이지만 진화 스님은 새벽부터 직접 예불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선교율 대법회에는 매주 1000여 명 이상의 청중이 참석하고 있다. 무비스님과 고우스님, 도일스님의 분야별 법문과 진화 스님의 생활 법문이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성과는 과거 분규사찰에서 조계종의 ‘모범 사찰’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점. 최근 일부 스님의 도박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조계종은 봉은사의 신도 관련 컴퓨터 프로그램을 종단 차원에서 공식 채택하기도 했다. 투명한 재정관리도 모범사례로 꼽힌다. 대형사찰인 봉은사의 1년 예산을 물어봤다. “올해 예산이 130억 원이 조금 넘습니다. 대부분은 인건비와 포교, 사회복지를 위한 사업에 들어갑니다. 한마디로 봉은사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돈과 절집 운영에 관한 모든 상황이 신도들에게 알려져요. 제 ‘주머니 속사정’도 마찬가지죠.(웃음)” 스님은 “과거 조계종에서는 봉은사가 본사(本寺)가 아닌 ‘말사(末寺)의 꽃’이라는 농담이 있었지만 그것은 정말 옛날 얘기”라며 “이제 봉은사는 스님과 종무원, 신도회가 함께 가꿔가는 아름다운 꽃”이라고 덧붙였다. 조계종은 지역 대표 사찰을 25개 본사로 지정하고 그 아래 부속사찰인 말사를 두고 있다. 스님은 봉은사 사태를 계기로 묘한 관계에 놓인 명진 스님과 관련해 “지난달 다른 스님들과 봉암사에 갔을 때 만나 인사를 드렸다. 건강하게 잘 계시더라”고 했다. 진화 스님은 찾아온다기에 차나 한잔 마시려던 것이 인터뷰가 됐다며 웃었다. 그는 “어떤 종교든 행복해지려고 믿는 것 아니냐. 지금 이 시점에 행복한 것이 중요하다. 수행자뿐 아니라 모든 신도가 현재 잘 살면 그것이 미래의 행복도 된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문선명 통일교 총재(92·사진)가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위독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교와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15일 “문 총재가 감기와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13일 호흡기내과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며 “현재 수면 치료를 받고 있지만 상태가 위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교 측은 “문 총재의 가족과 전 세계 통일교 신도들이 문 총재의 완쾌를 위해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문 총재의 4남 문국진 통일그룹 회장과 7남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이 병원을 지키고 있고, 3남 문현진 글로벌피스페스티벌(GPF) 재단 이사장 등 다른 자녀들도 서둘러 귀국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 총재는 고령에도 7월 통일교재단이 주최하는 피스컵 축구대회에서 개회선언 및 우승컵 시상을 직접 했고, 매달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왕성한 선교 활동을 벌여왔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아이돌이 점령한 요즘 가요계에서 ‘판’을 움직일 여성 솔로가 드물다. 그러나 20, 30대의 두 여성 보컬이 요즘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보아(본명 권보아·26)는 2년 만에 정규 앨범 ‘온리 원’을 내고 음악 차트를 석권했다. 소향(34)은 MBC TV ‘일밤-나는 가수다2’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 7집 앨범 ‘온리 원’서 변신한 보아 ▼ 날카로운 콧날에서 느껴지는 카리스마.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얼마 전까지 오디션 프로그램 SBS ‘K팝 스타’에서 깐깐한 심사위원의 ‘포스’를 뿜어냈던 보아가 2년 만에 정규 7집 앨범 ‘온리 원’을 발표했다. 그는 2000년 만 14세에 데뷔해 일본 진출에 성공하고 2008년 미국에 진출해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 진입했다. 24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난 그는 스타의 아우라를 뿜어내기보다는 소녀 감성이 충만한 20대 가수였다.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평범함. 이번 앨범의 콘셉트도 그렇다. “이번 앨범은 지난번 ‘허리케인 비너스’처럼 강렬한 비트와 과한 화장이 아닌, 평범하고 감성적인 코드로 다가가요.” 7집 앨범의 타이틀곡 ‘온리 원’은 보아가 직접 작사, 작곡했다. 느린 비트와 가사 전달에 중점을 둔 곡으로 감성적인 멜로디와 대중성을 갖췄다. 앨범엔 팬들에게 전하는 노래 ‘더 섀도’ 등 총 9곡이 실렸다. “일렉트로닉 음악에 질렸어요. 이젠 비트보단 목소리가 앞으로 나오는 노래를 하고 싶었죠. 시간이 흘러도 듣고 싶은 노래는 역시 멜로디와 가사가 좋은 노래란 걸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심사하며 알았어요.” ‘온리 원’은 100% 그의 취향대로 만든 곡이다. 이별노래는 타이틀곡으로 부적격하다며 가사를 바꿔야겠다는 디렉터의 요구에도 “죽어도 못 바꾸겠다”며 끝까지 버텼다. “이런 이별 안 해본 사람 있을까요? 누구나 해봤을 법한 이별 얘기예요. 여자들 대부분 나쁜 남자 좋아하잖아요. 그러곤 후회하고 헤어지잖아요. 그 헤어지는 모습을 담백하고 진솔하게 쓰려 노력했어요.” ‘온리 원’의 댄스 버전 뮤직비디오는 둘째 오빠 권순욱 씨(31)가 감독을 맡았다. 서정적인 멜로디에 미묘하게 어울리는 고난도 안무로 화제가 돼 조회수가 200만을 넘었다. 그에게 오빠는 술친구이자 베스트 프렌드이기도 하다. “촬영 때 오빠가 춤 많이 시켜서 짜증을 많이 냈죠(웃음). 저에게 오빠는 ‘절친’이에요. 술 먹고 싶으면 오빠 ‘꼬셔서’ 먹으면 되고….” 10대 때에 비해 춤추는 게 힘들어졌냐고 묻자 그는 “요즘 다리가 무겁다”며 농담을 던졌다. “사실 하이힐을 신고 춤추는 게 서커스잖아요. 제게 알맞은 운동화를 신으니 음악이 나오면 힘을 주체 못하겠어요(웃음).”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 ‘나가수 2’로 뜬 ‘교회 팝’ 디바 소향 ▼소향은 14년차 가수지만 개신교계 밖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달 초 ‘나가수2’에 출연해 휘트니 휴스턴의 ‘아이 해브 너싱’을 부르기 전까지는. 그는 한국 CCM(기독교계 팝 음악·contemporary christian music)계 최고의 디바로 불린다. 지난 주말 ‘나가수’에서 정훈희의 ‘꽃밭에서’를 불러 폭발적 가창력으로 화제를 모았다. 최근 서울 목동 기독교방송 사옥에서 만난 소향은 묵직한 노래와 달리 여리고 아이 같은 말투와 목소리로 기자를 맞았다. 그는 “CCM이란 좁은 틀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에서 꿈을 펼치고 싶어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그가 가수 활동을 시작한 것은 스무 살 무렵 CCM그룹 ‘포스(POS)’의 보컬로 들어가면서부터다. “중3 때 머라이어 캐리의 ‘이모션’ 뮤직비디오를 보고 벼락같은 충격을 받았어요. ‘저렇게 한 번만 노래해보고 싶다….’ ‘그 여자’는 ‘돌고래 소리’라고 하는 초고음을 웃으면서 부르고 있었거든요.” 머라이어 캐리의 앨범을 1000번 이상 들으며 멜로디와 편곡을 완전히 외웠다. 창문을 열어놓고 휘트니 휴스턴의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를 들으며 펑펑 울기도 했다. 이후 그는 그룹 포스의 선교 공연 활동 궤적을 따라 전 세계를 떠돌았다. 1년에 8∼9개월을 나가 있던 무역선 선장 아버지의 영향일까. “10여 년 동안 50개국은 넘게 다닌 것 같아요. 카자흐스탄 몽골부터 파라과이 아르헨티나까지.” 신나는 월드투어가 삶의 전부는 아니었다. 고3 때 닥쳐온 부모의 이혼과 가난의 늪. 차비도, 점심 값도 없어 배를 곯을 때도 영화 ‘시스터 액트2’에 나오는 찬송가를 따라 부를 때만큼은 세상이 반짝거리고 황홀했다. 1998년 스무 살 나이에 포스 드러머인 남편과 결혼한 그는 산부인과에 갔다가 자궁암 판정을 받았다. 한쪽 난소를 떼어냈다. 2년 동안 노래할 수 없었다. 머라이어 캐리와 로린 힐의 노래를 들으며, 그 절창을 끝없이 상상했다. 마침내 회복이 왔다. 솔로 1집에 3옥타브를 넘는 초고음 피날레를 실은 ‘반석 위에’라는 곡을 녹음해 넣었다. 그의 매니저는 시아버지 김경동 목사다. 포스 멤버들은 남편과 시누이들이다. ‘새로운 가족’과 ‘신’의 존재가 삶을 떠받치는 절대적 힘이라고 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KBS ‘넝쿨째 굴러온 당신’, SBS ‘추적자’ ‘신사의 품격’. 최근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드라마들이다. 그러나 극중 직업에 대한 묘사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세 드라마에 등장한 직업들의 실상을 관련 업종 종사자의 입을 통해 들여다보았다.○ 넝쿨째… 외과 의사가 그리 한가해 보이나요 주인공 유준상 씨가 존스홉킨스대 출신 외과 의사였나요? 수술 장면이 없어 다른 과인 줄 알았습니다. 요즘 드라마에선 미국 명문대를 나와 한국에 취업한 의사들이 많던데, 제 주위에서는 찾기 어려워요. 무엇보다 비현실적인 것은 유 씨의 생활이죠. 아침을 차리고, 외조도 잘해 제 아내도 부러워해요. 근데 저희 병원 출근시간이 오전 7시 반입니다. 제 아침밥도 못 챙겨 먹는다고요. 가끔 등장하는 그 예쁜 여자 의사분(박수진)도 좀 그래요. 그렇게 하이힐을 신고 다니면서 수술할 수 있겠어요?(유준상 씨 또래 대학병원 흉부외과 의사 A 씨)○ 추적자… 신창원을 능가하는 손현주 손현주 씨가 드라마 10회 방영분에서 7번째 탈주에 성공했다죠? 신창원을 능가하는 기록이군요. 근데, 황당한 것은 최근 손 씨가 자기 집과 가족 봉안당에 다녀오는 장면이에요. 수사의 기본이 뭡니까. 연고지 파악이거든요. 한두번 잡혔다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그 이상은 경찰 출신 아니라 그 할아버지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손 씨의 달리기 실력으로는 말이죠.(서울 모 경찰서 20년차 강력계 형사 B 씨)○ 신사의… 그런 소장님 저도 좀 소개해 주세요 장동건 씨가 40세 건축사사무소장으로 나오잖아요. 언젠가 “세 번 망했다”란 말을 했는데 이거 이상해요. 일단 건축사 면허를 따려면 대학 졸업 뒤 3∼5년간 실무기간을 거치고, 그 어렵다는 시험에도 합격해야 하는데요. 군대 나오고 사무소 개업하려면 최소 32세예요. 결국 장 소장님은 8년간 세 번이나 망한 건데 너무했네요. 게다가 “2억 원이면 우리 사무실 한 달 치 월급”이란 말도 하더군요. 세 번이나 망한 소장님이 운영하는 설계사사무소 규모가 얼마나 큰 걸까요. 참고로 이 바닥은 신입사원 월 보수가 200만 원이 안 될 만큼 아주 박해요. 암튼, 그렇게 잘생긴 소장님과 월급 후한 회사라면 정말 다니고 싶네요.(서울 유명 건축사사무소에서 근무하는 20대 여성 C 씨)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 한국기독교언론포럼(한기언)은 7월 3일 오후 2시 서울 남산동 명지빌딩에서 포럼 사무실 개소예배를, 오후 3시 남산동 ‘문학의 집 서울’ 내 더스토리 카페에서 언론인카페 개소식을 연다. 이 단체는 개신교회와 언론의 올바른 소통을 돕는다는 취지로 결성돼 3월 창립 발기인 총회를 개최했다. 한기언은 앞으로 간담회와 토론회, 초청 강연, 정기 간행물 발행 등의 사업을 진행한다. 덕수교회 손인웅 목사가 이사장을 맡았고, 강용규 김명혁 김지철 박은조 손달익 오정호 이상화 이영훈 조재호 지형은 목사, 장신대 임성빈 교수, 정기평 전 포항 MBC 사장, 윤정국 전 동아일보 문화부장 등이 참여했다. 070-7437-4293■ 전남 해남 미황사가 7월 22일부터 2회에 걸쳐 7박 8일 일정의 한문학당을 연다. 초등학교 4∼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새벽 예불부터 오후 10시까지 한문과 다도, 서예, 탁본, 자연학습 등을 진행한다. 7월 15일까지 미황사 홈페이지(www.mihwangsa.com)에서 참가 신청서를 내려받아 e메일(dalmaom@hanmail.net)이나 팩스(061-535-2706)로 제출하면 된다. 참가비 30만 원. 061-533-3521}

정진석 추기경이 20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 교정의 새 거처인 강성삼관에 도착해 신자들과 어린이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정 추기경은 이날 자신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명동대성당을 떠났다. 추기경의 이삿짐은 미리 옮겨진 책이 대부분이었고 손수 챙긴 것은 어머니 사진, 2006년 추기경 서임 당시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찍은 사진, 낡고 작은 고동색 손가방이 전부였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은 14일 전남 여수시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불교도우의회(WFB) 한국대회에서 중국 대표단이 개회식 불참에 이어 일방적으로 철수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사과를 촉구했다. 조계종은 이날 발표문을 통해 “자국의 정치적 입장만을 내세워 WFB의 정식 지부로 등록된 티베트 대표단의 참석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중국 대표단의 주장과 행위는 세계 불교계가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바탕으로 추구해온 상호 유대와 평화라는 공동의 가치를 스스로 거스르는 행위”라고 밝혔다.}

제26차 세계불교도우의회(WFB) 행사가 열린 12일 오후 전남 여수시의 한 호텔 로비에서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한 스님 앞에서 세 명의 젊은 태국 여성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예를 올리고 가르침을 청한 것. 이들은 10여 분간 간간이 미소를 지으면서 진지한 자세로 스님의 말을 경청했다. 태국 출신으로 호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나욕 와라와트 스님(60)은 “오늘 처음 (이 여성들을) 만났는데 갑자기 결혼과 삶에 대해 질문해 조언을 해주었다”고 말했다. 무릎을 꿇어 출가자에게 예를 취하는 것은 태국 미얀마 등 남방불교의 전통이다. 세 여성은 각자 한국인과 결혼해 여수에 살고 있다. 폿자나 씨(33)는 “여수에서 큰 불교행사가 열리는 것을 알게 돼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태국 스님을 만나니 친정아버지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의 모습을 지켜본 국내의 한 스님은 “대승불교는 개인의 해탈을 우선시한다며 소승불교를 비판해왔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부끄러울 뿐”이라며 “한중일 3개국이 경제적으로 앞서 절집 살림살이가 낫다지만 수행과 공부는 다시 남방불교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중국 정부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고 있는 중국 불교대표단의 돌출 행동으로 세계 불교도의 우의를 다진다는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중국 측은 WFB 공식 지부 자격으로 참석한 티베트 망명 정부 대표단의 참가를 이유로 잇따른 항의와 티베트 대표단 퇴장 요청에 이어 동남아의 다른 대표들에게 보이지 않는 압력을 가하다가 13일 출국했다. 여수=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지구상에서 달라이라마가 갈 수 없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뿐이다. 아니, 하나 더 있다. (웃음)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지난해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의 생일에 맞춰 달라이라마가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투자 문제로 중국의 눈치를 본 그쪽 정부가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전 총리이자 달라이라마(77)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삼동 린포체(73)가 한국에 왔다. 여수엑스포 기간에 전남 여수시에서 열리는 제26차 세계불교도우의회(WFB) 한국 대회에 달라이라마를 대신해 참석한 그는 12일 오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날 오전 티베트 대표단이 총회 참석을 거부당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이날 중국 대표단이 티베트 대표단의 참석을 이유로 대회 보이콧을 주장한 가운데 태국인 사무총장 팔 롭 씨가 페마 친졸 종교문화성 장관 등 티베트 측의 퇴장을 요청했다. 삼동 린포체는 개인 자격으로 초청받아 아예 총회장에 입장하지 않았다. 그는 ‘부적절’ ‘부도덕’이라는 표현을 쓰며 거듭 원칙을 강조했다. “다람살라는 WFB 회원으로 권리가 있음에도 부당하게 참석을 거부당했다. 세계 불교도의 화합을 위한 WFB가 정치와 (중국의) 힘에 의해 오염되고 있다.” 그의 본명은 로브상 텐진. 환생을 믿는 티베트불교에서 네 번째 환생한 고승(5대 삼동 린포체)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2001년부터 10년간 망명정부 총리를 지냈다. 미국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국제법 전문가인 로브상 상계(44)가 지난해 3월 그의 후임 총리로 선출됐다. 화제가 정치적인 문제로 옮겨지자 그는 말을 아끼면서도 나직한 목소리로 진지하게 답변했다. “10년간 티베트 정부를 이끈 기본적 원칙은 진실과 비폭력, 민주주의 세 가지다. 이 원칙은 달라이라마와 티베트인 공통의 것이다.” 그는 ‘젊은’ 로브상 상계에 대해 달라이라마와 많은 의견을 나눴다고 털어놓았다. “젊음과 변화는 좋은 것이다. 그는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젊음과 새로운 비전을 갖고 있다. 잘 교육받았고 민주주의에 익숙하다. 일부에서는 젊은 그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강경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다. 지난 1년여 동안 그랬듯이 어려운 문제에서 ‘지혜의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다.” 삼동 린포체는 최근 국내에서 불거진 일부 스님의 도박사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BBC를 통해 뉴스를 봤다. 티베트불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가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승복 입고 승려로 살아가면서 사회적 존경을 받으려면 계율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그는 티베트불교를 통해 한국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 선불교에 대해 잘 모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르지 않다. 티베트불교는 무엇보다 지혜를 얻기 위한 명상과 수련을 중시하고 있다. 동국대에서 강연도 하면서 한국 불자들에게 티베트불교를 널리 알리고 싶다.” 이번 대회는 이날 오후 4시 반 5000여 명이 모인 개막식을 시작으로 15일까지 진행된다. 한편 17명의 중국 대표단은 티베트 대표단의 방한을 이유로 개막 행사에 불참한데 이어 13일 출국할 예정이다.여수=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일부 스님들의 도박파문에 휩싸인 대한불교조계종이 사찰 재정의 관리를 전문 종무원에게 맡기고 주지 선거에 공영성을 강화하기로 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사진)은 7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발표한 ‘제1차 쇄신계획’을 통해 각종 분규와 비리의 원인이 됐던 사찰과 종단 운영의 전근대적인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조계종은 사찰의 재정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종단 법으로 사찰예산회계법을 제정해 신자들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향후 직영사찰과 직할교구 사찰, 교구본사 등으로 재정 공개를 확대할 방침이다.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사찰은 통합 전자발권 시스템을 도입해 재정 투명성을 높이기로 했다. 사찰의 모든 수입에 대해 영수증 발급을 의무화하며 사찰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조계종은 금권선거 시비를 불러일으켰던 본사 주지와 총무원장 등 각종 선거와 수행 분위기를 높이기 위한 청규(淸規)와 관련한 대책도 밝혔다. 앞으로 선거에 들어가는 경비를 총무원과 교구가 부담하고, 후보자 선출도 일정 기준 이상의 자격을 갖춘 스님들이 모두 참여하는 산중총회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조계종은 청규와 엄격한 징계법의 제정에 이어 불교적 방식인 ‘참회원’도 설치할 예정이다. 자승 스님은 자신과 관련한 일부 언론의 의혹 제기에 대해 “제가 총무원장으로 부임하기 전, 10여 년 전에 있었던 부적절한 일에 대해서는 향후 종헌종법에 따라 종도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규명하도록 하겠다”며 “다만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종단의 책임자로서 바라이죄(波羅夷罪) 같은 무거운 잘못은 결코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바라이죄는 음행(淫行) 도둑질 살인 거짓말 등 스님이 승단을 떠나야 하는 중죄를 뜻한다. 자승 스님이 자신의 부적절한 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쇄신대책이 미흡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종단 안팎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수습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비상대책위 구성 등 종단의 뿌리를 흔드는 초법적 발상은 다시 종권 투쟁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쇄신대책조차도 향후 중앙종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계속 쇄신안을 내놓을 것이고, 종회의 적극적인 개혁 동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세계 불교인들이 화합을 다짐하는 제26차 세계불교도우의회(WFB) 한국대회가 여수세계박람회 기간인 11∼16일 전남 여수시에서 열린다. 1990년 이후 22년 만의 국내 개최다. 이 대회는 ‘21세기의 불교생태환경사상과 수행’을 주제로 진행되며 40개국의 불교 지도자 500여 명과 불교 신자 10만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12일 오전 대표자 회의에 이어 오후 4시 반 흥국체육관에서 개막식이 열린다. 13일 오후 2시 진남경기장에서는 2만여 명이 참석해 오계(五戒) 등을 지킬 것을 다짐하는 세계고승수계대법회가 열린다. 대한불교조계종 고산 스님 등 원로 스님과 해외 고승들이 전통 불교 양식에 따라 법회를 봉행한다. 대회 중에는 학술, 환경, 비즈니스 포럼도 예정돼 있다. 11일 환경포럼은 도법 스님과 태국 사마나포풋 잔타세도 스님의 대담으로 진행되며, 13일 학술포럼은 ‘불교가 현대사회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폴 넘리치, 카르마 렉셰 초모 등 불교 석학들이 토론을 벌인다. 문화행사로는 이 대회를 기념해 제작한 창작뮤지컬 ‘카르마의 노래’가 14, 15일 오후 7시 반 흥국체육관에서 초연된다. 대회 집행위원장인 진옥 스님은 “여건이 맞지 않아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지 못했지만 티베트 망명정부 총리를 지낸 삼동 린포체의 대회 참석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www.wfb26korea.org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