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엔 일시적 행복과 영원한 행복 있는기라, 니는 어떤 행복 위해 살려 하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8일 17시 39분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 불렀던…不必스님 회고록 펴내

성철 스님의 유일한 혈육인 불필 스님이 회고록 ‘영원에서 영원으로’를 출간했다. 성철 스님이 결혼해 출가 전 낳은 딸인 불필 스님은 “화두(話頭)를 깨치면 영원한 대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성철)스님의 그 한마디에 아버지가 아닌 스승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회고했다. 불필 스님 뒤로 성철 스님의 사진이 보인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제공
성철 스님의 유일한 혈육인 불필 스님이 회고록 ‘영원에서 영원으로’를 출간했다. 성철 스님이 결혼해 출가 전 낳은 딸인 불필 스님은 “화두(話頭)를 깨치면 영원한 대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성철)스님의 그 한마디에 아버지가 아닌 스승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회고했다. 불필 스님 뒤로 성철 스님의 사진이 보인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제공

1993년 11월 10일 경남 합천 해인사 연화대에서 치러진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성철 스님 다비식. 부근 금강굴에서 산등성이를 둘 넘으니 연화대가 보였다. 연화대를 향해 3배 아닌 9배를 올렸다. 과거와 현재, 미래 삼세(三世)를 합해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번 생에 잘 못 모셨으니 다음 생에 만나 뵙겠습니다"고 다짐했다. 입적 전 큰 스님이 "니는 내가 가면 내 같은 사람 만날 줄 아느냐?"고 하던 말도 떠올랐다.

성철 스님의 유일한 혈육인 불필(不必) 스님(75)과,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던 스님의 마지막 이별 장면이다. 불필 스님은 2009년 청와대 초청으로 잠시 얼굴을 드러낸 것을 빼면 외부와의 접촉을 피해왔다.

불필 스님은 회고록 '영원에서 영원으로' 출간을 계기로 18일 금강굴 문수원에서 첫 간담회를 가졌다. 책에는 성철 스님과 나중 불가에 귀의한 어머니 일휴 스님 등에 얽힌 가족사, 향곡스님 법정스님과 은사인 인홍스님의 인연, 성철 스님의 법문 노트 등을 실었다.

"(이번 생에 잘 못 모셨다는 것은) 잘 모시려 해도 받아들이시지 않는데 모실 수가 없잖아요. 세속의 편하게 잘 모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그야말로 눈을 떠 (성철) 스님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겠다는 뜻입니다."

불필 스님은 성철 스님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리 있어야 하는 존재였다. 스님은 간담회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성철 스님 입적 때까지의 사연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13세 때 부산 묘관음사에서 성철 스님을 처음 봤는데 '가라 가' 한마디 툭 던지더니 휙 사라졌어요. 옆에 있던 향곡 스님이 앞으로 뭐가 되고 싶냐고 묻길래 '사람을 연구하는 발명가가 되고 싶습니다.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문제를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라고 했죠." 성철스님은 출가 전 결혼해 두 딸을 뒀다. 다섯 살 위의 언니는 수경(불필스님의 속명)이 9세 때 죽었다.

불필 스님은 "집에서 '공주'로 떠받들어져 살다 갑자기 죽음과 인간에 대한 고민이 생길 무렵이었는데 '가라'는 한 마디에 '난 아버지와의 인연은 없다'고 생각하며 돌아왔다"고 회고했다.

그로부터 5년 뒤 진주사범학교에 다닐 때 "다녀가라신다"는 전갈을 받았다. 수경과 성철 스님의 대화가 이어졌다. "니는 무엇을 위해 사노?" "행복을 위해 삽니다" "그래 행복에는 영원한 행복과 일시적인 행복이 있는기라. 그라믄 니는 어떤 행복을 위해 살려고 하노?"

수경의 말문이 막혔다. 이 말에 삶과 불교에 눈을 떴다.

"항상 행복만 추구했지, 영원과 일시적 행복이 있다는 것 몰랐지. 화두(話頭)를 깨치면 영원한 대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어요. 스님의 그 한마디에 아버지가 아닌 스승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작은 체구의 스님은 60여년 세월이 바로 어제 일처럼 손에 잡히는 듯 간간이 미소를 지었다. 스님은 "(성철)스님이 남자는 부모 빼고는 모두 도둑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맞지 않느냐"고 말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불필이라는 법명에 얽힌 사연도 털어놨다.

"같이 간 친구는 자신을 낮춘다는 의미의 백졸(百拙)을 법명으로 받았는데 난 필요 없다는 불필인기라. 그래서 물었더니, 왜 필요한가, 하필(何必)을 알면 불필(不必)의 뜻도 안다고 하더군요. 그 이름 값 하려고 지금도 노력하며 살고 있어요."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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