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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영화 ‘마션’,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의 공통점은? 수학이 활용됐다는 것. 수학자인 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에는 42에 관한 비밀이 숨어 있다. ‘마션’에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와트니가 지구와 교신할 수 있었던 것도, ‘캐리비안…’에서 데비 존스 선장이 꾸물꾸물 움직이는 문어 수염을 가진 것도 다 수학 덕분이다.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인 저자(51·사진)는 10년 만에 낸 신작에서 문학, 영화, 미술, 철학을 종횡무진하며 “수학은 가까이 있다”고 속삭인다. 17일 만난 저자는 “중고교생이 배우는 내용을 다뤘다. 학생들이 워낙 하드코어로 공부하기 때문에 이 정도면 레크리에이션으로 여길 것”이라며 웃었다. 화사한 꽃분홍색 표지를 넘기면 생각지도 못한 세계가 펼쳐진다. 미터법은 프랑스혁명기에 만들어졌다. 수백 개의 단위는 불공정한 거래의 빌미가 돼 프랑스혁명을 촉발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와 중국을 비롯한 고대문명에서는 직각삼각형에서 성립하는 그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피타고라스처럼 연역적으로 증명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이지만…. 소설, 영화 속 장면과 명화 등은 도형, 수식과 버무려졌다. “수학적 엄밀함과 독자 사이에서 수위를 정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수식은 최소화하기 위해 애썼고요. 훅훅 건너뛰면서 관심 있는 내용 위주로 보면 돼요.” 이처럼 다양한 수학적 코드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영화, 책, 미술작품을 보다 보면 그냥 보여요. ‘매직아이’처럼요. 그만큼 수학이 곳곳에 있다는 의미죠.” 그는 소통하는 수학자로 유명하다. 전작인 ‘수학콘서트 플러스’(동아시아)와 ‘수학비타민 플러스’(김영사)는 수학 교양서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중고교로 찾아가 자주 강의하고 교과서 집필에도 힘을 쏟고 있다. 재미있는 교과서로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를 줄이는 데 기여하고 싶기 때문이다. 수학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후행(後行)학습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더 낮은 학년 과정으로 되돌아가 구멍을 메워야 해요. 수학은 벽돌쌓기와 같아서 단계별로 다져져 있지 않으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요.” 수학은 고립된 섬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책을 낸 것도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다. “대형마트 상품기획자(MD)가 제품과 고객을 연결해주는 것처럼 저도 수학과 학생을 연결하는 ‘수학 MD’가 되고 싶어요. 이 책이 수학의 놀이터가 되길 바란다면 욕심일까요?”(웃음)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1. 혜민 스님의 에세이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수오서재)이 교보문고에서 이달 3∼9일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51주 연속 1위였던 ‘미움 받을 용기’(인플루엔셜)를 밀어낸 것. 온라인서점 예스24에서는 ‘완벽…’이 한 주 앞서 1위에 올랐다. #2. 지난달 출간된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21세기북스)는 예스24에서 지난달 둘째 주부터 3주 동안 1위였다. 같은 기간 교보에서는 11∼15위에 그쳤다. 이 기간에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1위는 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소와다리)였다. 대형 서점마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차이가 난다. 본보는 1월 1일부터 이달 14일까지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에서 책을 산 독자의 나이와 성별, 장르별 판매 비율을 토대로 원인을 분석했다. ○ 뚝배기 같은 오프라인 독자 ‘완벽…’이 교보의 서가에 꽂힌 건 이달 2일. 온라인으로는 지난달 17일부터 주문을 받았지만 책이 발송돼야 판매된 것으로 집계하기 때문에 출간 시점인 이달 2일부터 반영됐다. 예스24는 지난달 19일부터 예약을 받았고, ‘주문=판매’로 계산한다. 예스24에서 이 책이 한 주 빨리 1위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가끔…’이 교보와 예스24에서 순위가 많이 다른 건 온-오프라인 독자의 성향 차가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교보는 오프라인 매출이 65%, 온라인은 35%다. 이수현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장은 “오프라인 독자는 기존에 잘나간 책을 사는 경향이 강해 화제가 되는 신간이 아니면 즉각 반응하지 않는 편이다”고 말했다. 남녀 비율도 교보는 4 대 6인 데 비해 온라인 서점 3곳은 모두 3 대 7이다. ○ 서점마다 주로 이용하는 고객층 차이 30대 여성(29.1%) 고객 비중이 높은 예스24는 읽기 쉽고 아기자기한 책이 사랑받는다. 다이어리북인 ‘5년 후 나에게: Q&A a day’(토네이도)가 10위 이내를 지키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알라딘의 색깔은 독특하다. 40대 여성(25.2%) 고객층이 두꺼운 이곳에서는 ‘하늘과…’, ‘초판본 진달래꽃’(소와다리)이 지난달 첫째 주부터 6주 연속 1, 2위를 이어갔다. 김성동 알라딘 마케팅팀장은 “1999년 설립될 때 20대 여성 고객이 제일 많았는데 이들이 대부분 남아 40대가 됐다. 공연 티켓 등을 팔지 않고 책 중심으로 운영하다 보니 ‘인문 덕후’가 많다”고 말했다. 인터파크도 40대 여성(30.8%)이 주류지만 ‘마법천자문34’(아울북) ‘WHY? 소프트웨어와 코딩’(예림당)이 상위권에 올라 자녀 책을 주로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출판계 전체의 흐름은 교보에서, 얼리 어답터의 움직임은 예스24에서 확인할 수 있다”며 “알라딘에서는 독서계 오피니언 리더가 읽는 책, 인터파크에서는 주부의 실용서 경향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정말 사람이… 사람이 성불(成佛)할 수 있습니까?” 1967년 12월 청년 법정이 물었다. 해인사 해인총림 초대 방장인 성철 스님이 답했다. “성불이란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본디 부처임을 깨닫는 것. 부처님 계신 곳은 바로 지금 그대가 서 있는 그 자리입니다.” ‘설전(雪戰·사진):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책읽는섬)는 한국 불교계의 두 거인이 깨달음과 수행, 세상에 대해 나눈 대화와 인연의 자취를 처음 정리한 책이다. 성철(1912∼1993)과 법정 스님(1932∼2010)은 속가 나이로 정확히 스무 살 차이가 난다. 법정 스님은 성철 스님을 큰 어른으로 따랐고, 제자들에게 엄격하기로 유명한 ‘가야산 호랑이’는 법정 스님을 인정하고 아꼈다. 법정 스님은 “불교란 무엇인가” “기독교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망설임 없이 던졌다. “법문만 듣고 있으니 얼얼하다. 출가하게 된 인연을 말해 달라”고 도발적으로 청하기도 했다. 성철 스님은 여유롭게 때로 즐기듯이 답한다. “죽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눈을 감으면 캄캄하고 눈을 뜨면 광명입니다. 본래 생사란 없습니다. 삶 이대로가 열반이고 해탈입니다.” 두 사람은 인연을 이어가며 불교 정신은 물론이고 지도자의 덕목, 인간성 회복, 미래가 꺾인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도 폭넓게 나눴다. 성철 스님은 자신이 쓴 원고 ‘본지풍광’ ‘선문정로’를 손봐달라고 부탁했고, 법정 스님은 정성을 기울였다. 1993년 성철 스님이 열반에 들었을 때 추모사를 쓴 이도 법정 스님이었다. 때론 팽팽하게 때론 따스하게 나눈 문답에는 이들이 치열하게 추구한 사랑과 자비, 지혜가 담겨 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그림책 작가, 디자이너, 출판사 등으로 구성된 그림책협회가 이르면 올해 상반기에 출범한다. 그림책을 독자적인 장르로 자리매김하도록 성장 역량을 모으기 위해서다. 한성옥 권윤덕 김서정 이수지 작가 등으로 구성된 그림책협회준비위원회는 다음 달 7일 서울 중구 시민청에서 ‘그림책협회를 꾸리기 위한 자유토론회’를 열어 논의를 진행한 뒤 상반기에 협회를 출범시킬 예정이라고 14일 밝혔다. 한국 작가들은 이탈리아 볼로냐 아동도서전과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 등 세계 유명 도서전에서 꾸준히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그림책을 즐기는 성인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림책을 어린이책의 한 종류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림책협회는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그림책을 연구하며 △국제 교류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연휴가 끝나고 일상이 시작됐지만 여기저기서 ‘피곤하다’는 말이 들린다. 손쉽게 기분 전환을 하고 싶다면 그림책이 딱이다. 생일을 맞은 꼬마곰 베리가 숲 속 친구에게 말을 거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니?’(이승환 지음·그림북스)에는 꿀벌, 부엉이, 여우의 모습이 아기자기하게 담겨 있다. ‘아프리카 초콜릿’(장선환 지음·창비)은 초원에 떨어진 초콜릿을 맛보는 기린, 사자, 코끼리의 오묘한 표정이 압권이다. 여자아이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수채화처럼 담은 ‘그림을 그려봐’(김삼현 지음·시공주니어)도 있다. ‘그림책의 힘’(가와이 하야오 지음·마고북스) 저자는 그림책은 평생 세 번 읽는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 아이를 키울 때, 황혼에 손주에게 읽어 줄 때. 머릿속이 복잡할 때 그림책을 꺼내 보자. 씨익 웃음이 나고 어느새 편안해진 자신을 발견할지 모른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오늘 하루, 혹은 일 년만 버티고 보자는 건 개인이나 기업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돈이 없어도 신용카드로 긁고, 기업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술 개발에 투자하기보다는 자사주를 사들여 손쉽게 주가를 올린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주 매입에 1140억 달러(약 136조8000억 원)를 썼다. 연구 개발에 들어간 자금의 1.5배다. 왜 이럴까.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를 충동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충동에 사로잡혀 멀리 내다보지 못한다는 것. 원제(‘The Impulse Society’) 그대로 미국 사회를 ‘충동사회’라고 이름 붙였다. 자신의 욕구에 충실해 파편화된 개인은 정책에 관심이 없다. 정치인은 귀에 쏙쏙 꽂히는 자극적인 구호를 앞세운다. 중도는 사라지고 극단주의만 남게 됐다. 생산 기지의 해외 이전으로 인한 대량 해고, 부동산 거품과 부실한 파생상품 거래로 촉발된 금융위기, 고가의 장비를 들인 후 불필요한 치료를 권하는 의료 제도 등 미국 사회의 문제가 풍부한 사례와 함께 총망라돼 있다. 저자는 모두를 ‘하루살이’로 만든 주범으로 금융을 지목한다. 정확히는 주주 자본주의다. 2011년 구글은 1900명을 고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가 주가가 20% 넘게 폭락했다. 들어갈 비용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투자자들이 퇴짜를 놓은 것. 1990년대 후반 록히드마틴은 월가의 투자자들에게 투자 예정인 첨단 기술을 소개했다. 이들은 발표장을 빠져나가자마자 이 회사 주식을 팔아치웠고, 나흘 만에 주가는 11%나 급락했다. 주식 보유 기간이 평균 18개월인 데 비해 해당 기술을 개발하려면 15년이나 걸린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기업최고경영자(CEO)의 임기도 20년 전 평균 9년에서 이제 5년으로 줄었다. 단기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해 등장한 로봇은 단순 업무만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변호사까지 위협한다. 유사한 판례, 특정 판사의 판결 성향은 컴퓨터가 더 방대한 양의 자료를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충동사회는 일자리를 없애는 ‘노 칼라(No Collar)’로 귀결돼 다수의 개인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빈부격차는 극심해진다. 저자는 충동사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공동체 회복을 제시한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50년간 연구한 결과 행복을 가장 잘 예측할 수 있는 변수가 사회적 유대의 폭과 깊이였다”는 하버드대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정부의 개입도 촉구한다. 강력한 정부를 둔 독일 등 유럽과 싱가포르를 거론하며. 개인에게는 현재 삶의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충동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당부한다. 미국이 당면한 문제는 한국과도 많은 부분 겹친다. 그 원인을 충동에 따른 근시안적 사고로 본 분석틀은 흥미롭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문제를 광범위하게 나열하다 보니 분석의 밀도는 떨어진다. 분석 대상을 좁히고 한발 더 깊숙이 들어가지 못한 데 따른 아쉬움이 남는다. 해결 방안도 이상적이지만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다만 이 책이 보내는 경고 하나는 확실하다. 언 몸을 녹일 장작을 패기 위해 열심히 도끼로 찍고 있는 게 대들보가 아닌지 살펴보라고. 저자의 다른 책으로는 ‘석유의 종말’ ‘식량의 종말’이 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가볍다/너무 가벼워서/깃털보다 가벼워서/답삭 안아 올렸더니/난데없이 눈물 한 방울 투투둑/그걸 보신 우리 엄마/“얘야, 에미야, 우지 마라/그 많던 걱정 근심 다 내려놔서/그렇니라” 하신다/아, 어머니’ 화가 윤석남 씨가 이달 초 펴낸 그림책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사계절)의 한 대목이다. 아기처럼 작아진 백발의 엄마를 안고 눈물 흘리는 중년 여성 이야기를 윤 씨가 그림과 글로 담아냈다. 김진 사계절 그림책팀장은 “어른을 위해 만든 그림책”이라며 “40, 50대 여성들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며 공감을 표했다”고 말했다. 또 사계절은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시리즈의 이름을 지난해 ‘디어 그림책’으로 바꿨다. 그림책을 더이상 어린이만이 아니라 어른도 즐겨 본다는 최신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그림책과 동화책 시장에서 어른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서정적인 그림과 함께 쉬우면서도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은 이 책들에서 위안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이미지를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도 영향을 미쳤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등 고흐의 작품을 차용한 그림책 ‘고흐, 나의 형’도 인기다. 백창화 숲 속 작은 책방 대표는 “한 직장인 여성에게 권했는데, 매우 감동적이었다며 책에 나온 그림을 함께 그리며 마음을 나누는 모임을 운영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샬롯의 거미줄’이 최근 100쇄를 돌파했고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도 조만간 100쇄를 넘어설 예정인데, 이는 어른의 힘이 컸다는 분석이다. 박진희 시공주니어 아동청소년팀장은 “아이와 같이 동화책을 보던 엄마들이 책의 매력에 빠져들어 아이가 자란 후에도 계속 동화책을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황선미의 ‘목걸이 열쇠’도 80쇄 가까이 찍었다. 2009년 출간된 이수지의 ‘파도야 놀자’는 4만5000권 넘게 팔렸다. 호주 일러스트레이터 숀 탠의 ‘도착’은 2008년 출간돼 모두 1만8000권이 판매됐다. 같은 해 나온 폴란드 일러스트레이터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두 사람’은 1만6000권이 팔렸다. 서울 홍익대 앞의 그림책 전문 서점인 ‘베로니카 이펙트’ ‘책방 피노키오’도 성업 중이다. 유승보 베로니카 이펙트 대표는 “미술작품처럼 책을 소장하려는 20, 30대 남녀 고객이 많다”며 “유명 작가의 책은 절판된 후 가격이 계속 오르지만 구해 달라는 고객의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출판계에서는 우리나라가 어른용 그림책 시장이 정착된 미국 일본 영국을 닮아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그림책 보기가 하나의 취미로 정착하면서 시장이 성장할 여지는 충분하다”며 “메시지가 명쾌하면서도 감동이 오래 남는 글을 쓸 수 있는 국내 저자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가볍다/너무 가벼워서/깃털보다 가벼워서/답삭 안아 올렸더니/난데없이 눈물 한 방울 투투둑/그걸 보신 우리 엄마/“얘야, 에미야, 우지 마라/그 많던 걱정 근심 다 내려놔서/그렇니라” 하신다/아, 어머니’ 화가 윤석남 씨가 이달 초 펴낸 그림책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사계절)의 한 대목이다. 아기처럼 작아진 백발의 엄마를 안고 눈물 흘리는 중년 여성 이야기를 윤 씨가 그림과 글로 담아냈다. 김진 사계절 그림책팀장은 “어른을 위해 만든 그림책”이라며 “40, 50대 여성들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며 공감을 표했다”고 말했다. 또 사계절은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시리즈의 이름을 지난해 ‘디어 그림책’으로 바꿨다. 그림책을 더 이상 어린이만이 아니라 어른도 즐겨 본다는 최신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그림책과 동화책 시장에서 어른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서정적인 그림과 함께 쉬우면서도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은 이들 책에서 위안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이미지를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도 영향을 미쳤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등 고흐의 작품을 차용한 그림책 ‘고흐, 나의 형’도 인기다. 백창화 숲 속 작은 책방 대표는 “한 직장인 여성에게 권했는데, 매우 감동적이었다며 책에 나온 그림을 함께 그리며 마음을 나누는 모임을 운영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샬롯의 거미줄’이 최근 100쇄를 돌파했고 ‘내 이름은 삐삐롱 스타킹’도 조만간 100쇄를 넘어설 예정인데, 이는 어른의 힘이 컸다는 분석이다. 박진희 시공주니어 아동청소년팀장은 “아이와 같이 동화책을 보던 엄마들이 책의 매력에 빠져들어 아이가 자란 후에도 계속 동화책을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황선미의 ‘목걸이 열쇠’도 80쇄 가까이 찍었다. 2009년 출간된 이수지의 ‘파도야 놀자’는 4만5000권 넘게 팔렸다. 오스트레일리아 일러스트레이터 숀탠의 작품도 어른이 주로 찾는 인기 그림책이다. ‘도착’은 2008년 출간돼 모두 1만8000권이 판매됐고, ‘두 사람’은 1만6000권이 팔렸다. 서울 홍대 앞의 그림책 전문 서점인 ‘베로니카이펙트’ ‘책방피노키오’도 성업 중이다. 유승보 베로니카이펙트 대표는 “미술작품처럼 책을 소장하려는 20, 30대 남녀 고객이 많다”며 “유명 작가의 책은 절판된 후 가격이 계속 오르지만 구해달라는 고객의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출판계에서는 우리나라가 어른용 그림책 시장이 정착된 미국 일본 영국을 닮아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그림책 보기가 하나의 취미로 정착하면서 시장이 성장할 여지는 충분하다”며 “메시지가 명쾌하면서도 감동이 오래 남는 글을 쓸 수 있는 국내 저자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나는 가끔 생각한다.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가 천국이라고.” 이렇게 말한 버지니아 울프는 낙원에서 산 셈이다. 영국 남부 해안에 자리한 집의 정원에 오두막을 짓고 글을 썼으니까. 정원이 보이는 ‘자기만의 방’ 외에도 침실, 거실 등을 원고로 어지럽히며 작품에 몰두했다. 저자는 사진, 일기, 인터뷰와 지인의 진술을 바탕으로 여성 작가 35명의 작업 공간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여성의 방과 가방을 보는 건 내밀한 속내를 살피는 것과 비슷하기에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해나 아렌트, 시몬 드 보부아르, 수전 손태그, 애거사 크리스티, 이사벨 아옌데…. 이름만으로도 일단 책장을 넘기게 된다. 저자는 작가들의 작품은 언급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다. 삶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은 그들의 인생사와 자연스레 버무려지고 작품이 태어난 과정도 살짝살짝 엿볼 수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보부아르는 상류층의 의무였던 파티가 죽음처럼 지루했기에 호텔과 카페에서 글을 썼다. 장편소설 ‘레 망다랭’으로 공쿠르상을 받은 후에야 상금으로 집을 마련한다. 서가에 수북이 쌓인 책 더미 앞자리는 계약 결혼한 연인 사르트르의 사진들이 차지하고 있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부엌 식탁도 마다하지 않고 어디서나 글쓰기에 몰두했다. “튼튼한 책상과 타자기 외에는 필요한 게 없어요”라며. 출판사에서 받은 돈으로 온실을 만드는 등 생활에 요긴하게 썼던 그에게 글쓰기는 거대한 사명이 아닌 직업이었다. 소설에 살인 도구로 독약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1차 세계대전 때 군 병원에서, 이후에는 약국에서 일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삐삐 롱스타킹’은 침대에서 태어났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앓아누운 딸을 위해 붉은색 머리를 땋은 당찬 소녀의 이야기를 지어 들려줬다. 자신이 다리를 다쳐 병상에 눕자 비로소 책을 쓰기 시작했고, 침대에서의 글쓰기는 습관으로 굳어졌다. ‘닐스의 신기한 여행’으로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셀마 라겔뢰프가 향토적이고 소박한 작품을 탄생시킨 데는 사랑했던 스웨덴 시골 고향집의 2층 서재도 한몫했다. 다리 길이가 달라 흔들리는 부엌 식탁은 이사벨 아옌데가 몽환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작품을 토해 내게 만들었을지 모른다고 저자는 추측한다. 1930, 40년대 ‘책에 흥미를 잃게 만든다’는 이유로 잘 싣지 않았던 여성 작가들의 얼굴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렌트, 손태그, 프랑수아즈 사강, 마르그리트 뒤라스, 보부아르 등의 손가락 사이에는 한결같이 불붙은 담배가 끼워져 있다. 강의하던 연단에서 내려온 작가와 따로 만나 차 한잔을 기울이는 기분이다. 화보집에 가까울 정도로 풍부한 사진이 돋보이지만 작가의 삶을 글로 넉넉히 담아냈다면 책이 좀 더 단단해질 것 같다. 비슷한 결을 지닌 책으로는 ‘작가의 책’(문학동네) ‘작가의 창’(마음산책)이 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명절은 즐겁다. 하지만 닷새에 걸친 빨간 날 도망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상 차리기에 이골 난 며느리, 친척 만나기 두려운 백수 삼촌과 노처녀 이모, 살갑지 않은 자식에게 서운한 노부모…. 책은 때로 치유제가 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도서 전문가에게 힐링 서적을 추천받았다. 그대여, 설날이 와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 친척 만나기 두려운 ‘싱글’과 청년백수 “좋은 소식 없어?” 그런 소식, 어련히 알렸을까. 위축되지 말자. 싱글 여성이라면 마스다 미리의 만화가 적적한 위로를 준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대표작. ‘혼자 있는 시간의 힘’처럼 혼자인 시간을 값지게 쓰는 노하우를 담은 책도 있다. 그렇다고 사랑을 포기할 순 없다. 고전 ‘오만과 편견’(민음사)은 어떨까. 짝 없이 헛헛한 마음에는 역시 제인 오스틴이다. 취업 때문에 좌절한 청년이라면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처럼 청년이 가질 비전에 대해 현실적으로 당부하는 책도 있다. 때로 비슷한 고민을 한 이의 경험담은 도움이 된다.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는 ‘평범하게 살기 위해 죽을 만큼 노력해야 하는 이상한 시대’에서 벗어나고자 소규모 자본으로 자신만의 생업 개발에 나선 젊은이의 이야기다. ‘100세 할머니 시인’으로 유명한 고 시바타 도요의 시집 ‘약해지지 마’(지식여행)도 울림을 준다. 그는 92세에 시를 써 98세 무렵 이 시집을 펴냈다. ○ 명절 이후 냉랭해진 부부 진부하지만 명절은 부부싸움의 주요 원인. 시댁 거실에서 뒹구는 남편을 보며 아내는 한숨을 쉬고,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한 남편 역시 눈치 보느라 좌불안석이다. 자기계발서 ‘나는 아직 내게 끌린다’는 상처 입은 아내들의 자존감 회복에 도움이 될 만한 책, 에세이집 ‘여자는 아내가 필요하다’는 워킹맘이 특히 공감할 만하다. 아내를 비롯한 여자의 마음을 읽기 어려운 남편이라면 상담 사례를 통해 여성 심리를 설명한 책 ‘무엇이 여성을 분노하게 하는가’도 있다. 자기계발서 ‘신경 쓰지 않는 연습’이나 ‘머리 아픈 남편 가슴 아픈 아내’도 가족, 부부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러나 가족 간의 갈등에서 벗어나려면 한발 물러나 관찰자 시점을 유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유인원부터 사이보그까지 인류의 거대한 변화를 다룬 ‘사피엔스’ 같은 책을 읽다 보면 그까짓 부부싸움이야말로 칼로 물 베는 것 아닌가 싶을지도.○ 새해가 쓸쓸한 노년, 그리고 자식 나이와 서운함은 비례하는 걸까. 자식은 내 맘 같지 않고 명절날 속 끓이는 일이 잦아진다.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은 요긴한 인생의 지혜를 무겁지 않게 전한다.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는 외로움이 낫다’ ‘자기반성은 적당하게 해야 오래 산다’ 같은 조언은 젊은이에게도 유용하다. ‘노년의 의미’ ‘나이듦 수업’ 등 나이 듦에 대한 성찰을 담은 책은 꾸준히 늘고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부키)는 제목은 무시무시해 보이지만 죽음에 맞서 인간적 존엄을 어떻게 간직할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책이다. 자식에게도 부모의 나이 듦을 대면하는 건 두렵다. 라즈 채스트의 만화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돼’는 늙은 부모를 혼자 책임져야 하는 어려움과 불안을 담담한 어조로 들려주며 공감을 이끈다.구가인 comedy9@donga.com·손효림 기자 }
관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만드는 때가 다가왔다.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주어진 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관계. 가족이다. 사람들은 집 밖에서는 한 편의 연극을 한다고 했던가. 막이 내린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무도 모른다. 혜민 스님은 4년 만에 내놓은 에세이집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수오서재)에서 조곤조곤 말한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과도하게 의지하고 챙겨주고 또 그래서 상처를 받습니다. (중략) 관계는 난로 다루듯 해야 합니다. 너무 뜨겁게 가까이 다가오면 한 걸음만 뒷걸음하세요.’ ‘사랑의 표현 중에 하나는 상대를 그냥 좀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쿨한 관계 맺기는 삶의 중심축이 가족이나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에게 있을 때 가능해진다. 자기에게 집중하기. 서로를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2010년 책을 낼 때만 해도 이렇게 잘 팔릴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모바일 시대지만 손글씨를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악필교정의 정석1’(사진)을 펴낸 법률저널 출판사의 이명신 출판팀장의 말이다. 사법시험, 행정고시와 같은 서술형 시험 준비생을 위해 만든 이 책은 매년 1만4000권이 팔리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 팀장은 “엉망인 글씨체를 고치려는 어른이 많고 아이의 글씨를 바로잡아주려는 부모도 적지 않다. 과거 서예학원이 했던 역할을 책이 대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안겨주는 스테디셀러는 출판사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스테디셀러 가운데 약 80%는 베스트셀러였던 ‘화려한 과거’를 지녔지만 이목을 끌지 않고 ‘소리 없이 강한’ 책도 적지 않다. 교보문고와 예스24에 따르면 2010년까지 출간된 책 가운데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000권 이상 팔린 책에는 의외의 책도 포함됐다. ‘21세기 한글 펜글씨 교본’(정진출판사) 역시 스테디셀러로 꼽혀 글씨로 고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출판사의 편집부가 저자인 책도 상당수였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은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윤동주의 ‘서시’ 등 우리나라에서 애송되는 명시 100편을 모았다. 편집부의 저력은 아동 도서에서 두드러진다. ‘똥 눌 때 보는 신문’ ‘아기 초점책’ ‘초등학생을 위한 탈무드 111가지’가 대표적이다. ‘똥 눌 때…’를 만든 삼성출판사 관계자는 “아기들이 똥을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해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퀴즈, 이야기, 그림 등을 모아 신문 형식으로 만들었다. 마케팅을 하지 않는데도 매년 2000권 이상 판매된다”고 말했다. 시리즈가 아닌 한 권짜리 아동책의 경우 수명이 길어도 5년을 넘기기 쉽지 않지만 ‘초등학생을 위한…’은 2002년, ‘똥 눌 때…’는 2009년 각각 출간된 뒤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편집 기획력만으로도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사례로 그런 경향은 앞으로 더 짙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스테디셀러 장르별로는 소설이 27.3%를 차지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데미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그리스인 조르바’ 등이 꼽혔다. 유아(14.1%)와 아동(13.6%)이 뒤를 이었고, 시·에세이와 자기계발서는 각각 7.8%였다. ‘감시와 처벌’ ‘소크라테스의 변명’ ‘초역 니체의 말’ ‘논어’처럼 읽기 만만치 않은 책에 대한 수요도 꾸준했다. 역사·과학 분야 명작인 ‘총, 균, 쇠’ ‘코스모스’ ‘이기적 유전자’도 강세를 보였다. 박정남 교보문고 상품지원단 구매팀 과장은 “독자들은 검증된 책을 찾기 때문에 스테디셀러 목록은 시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2010년 책을 낼 때만 해도 이렇게 잘 팔릴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모바일 시대지만 손글씨를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악필 교정의 정석1’을 펴낸 법률저널 출판사의 이명신 출판팀장의 말이다. 사법고시, 행정고시와 같은 서술형 시험 준비생을 위해 만든 이 책은 매년 1만4000권이 팔리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 팀장은 “엉망인 글씨체를 고치려는 어른이 많고 아이의 글씨를 바로잡아주려는 부모도 적지 않다. 과거 서예학원이 했던 역할을 책이 대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안겨주는 스테디셀러는 출판사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스테디셀러 가운데 약 80%는 베스트셀러였던 ‘화려한 과거’를 지녔지만 이목을 끌지 않고 ‘소리 없이 강한’ 책도 적지 않다. 교보문고와 예스24에 따르면 2010년까지 출간된 책 가운데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000권 이상 팔린 책에는 의외의 책도 포함됐다. ‘21세기 한글 펜글씨 교본’(정진출판사) 역시 스테디셀러로 꼽혀 글씨로 고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출판사의 편집부가 저자인 책도 상당수였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은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윤동주의 ‘서시’ 등 우리나라에서 애송되는 명시 100편을 모았다. 편집부의 저력은 아동 도서에서 두드러진다. ‘똥 눌 때 보는 신문’ ‘아기 초점책’ ‘초등학생을 위한 탈무드 111가지’가 대표적이다. ‘똥 눌 때…’를 만든 삼성출판사 관계자는 “아기들이 똥을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해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퀴즈, 이야기, 그림 등을 모아 신문형식으로 만들었다. 마케팅을 하지 않는데도 매년 2000권 이상 판매된다”고 말했다. 시리즈가 아닌 한 권짜리 아동책의 경우 수명이 길어도 5년을 넘기기 쉽지 않지만 ‘초등학생을 위한 …’은 2002년, ‘똥 눌 때…’는 2009년 각각 출간된 뒤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편집 기획력만으로도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사례로 그런 경향은 앞으로 더 짙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스테디셀러 장르별로는 소설이 27.3%를 차지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데미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그리스인 조르바’ 등이 꼽혔다. 유아(14.1%)와 아동(13,6%)이 뒤를 이었고, 시·에세이와 자기계발서는 각각 7.8%였다. ‘감시와 처벌’ ‘소크라테스의 변명’ ‘초역 니체의 말’ ‘논어’처럼 읽기 만만치 않은 책에 대한 수요도 꾸준했다. 역사·과학분야 명작인 ‘총,균,쇠’ ‘코스모스’ ‘이기적 유전자’도 강세를 보였다. 박정남 교보문고 상품지원단 구매팀 과장은 “독자들은 검증된 책을 찾기 때문에 스테디셀러 목록은 시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거미와 돼지의 우정을 그린 미국 동화 ‘샬롯의 거미줄’(시공주니어) 한국어판이 ‘100쇄 클럽’에 입성했다. 시리즈가 아닌 단권 동화책이 100쇄를 넘어선 경우는 많지 않다. 누적 권수로는 45만여 권에 달한다. 미국 작가 엘윈 브룩스 화이트가 1952년 쓴 이 책은 1996년 시공사에서 출간됐다. 작은 시골 농장에서 작다는 이유로 무시당하지만 순수한 아기 돼지 윌버와 경험 많고 현명한 거미 샬롯이 친구가 돼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돕는다는 내용이다. 드라마틱한 모험담도 없지만 편견 없이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주며 꾸준히 사랑을 받아 왔다. 2006년에는 다코타 패닝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로도 개봉됐다. 시공주니어는 100쇄 돌파를 기념해 컬러 특별판으로 양장본 5000권을 만들었다. 네이버의 시공주니어 북클럽과 온라인 서점을 통해 사은품 증정 행사도 연다. ‘샬롯의 거미줄’을 소장한 독자가 판쇄 사진을 찍어 올리면 추첨을 통해, 책 표지 사진을 올리면 선착순으로 사은품을 준다. 지금까지 ‘100쇄 클럽’에 들어간 동화책으로는 권정생의 ‘몽실언니’ ‘강아지똥’, 원유순의 ‘까막눈 삼디기’,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나쁜 어린이표’,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책 먹는 여우’ 등이 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천한 우수교양도서 가운데 일부가 이념적으로 편향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청년지식인포럼 스토리K’는 2006∼2015년 선정된 역사부문 우수교양도서 345권 중 근현대사 내용 등이 담긴 128권을 조사한 결과 편향성을 띤다고 판단한 책이 24권이라고 2일 밝혔다. 이들은 2011년 선정된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돌베개)가 ‘한국은 아직도 식민지 사회다. 정해진 식민 지배자가 없는데도, 미국이든 국제 거대 자본이든 상전을 모시고 싶어 하는 식민지 사회다’라고 기술했다고 지적했다. 또 ‘해방일기’(너머북스)는 미군정의 불합리한 행위를 비판한 반면 북한에 진주한 소련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을 문제 삼았다. 2012년 선정된 이 책에는 ‘소련군의 역할은 이남의 미군처럼 적극적인 것이 아니었고, 또 일관성이 있는 편이었다. (중략) 이남에서 정치적 분열과 대립이 격심했던 것은 미군의 작용 때문이었다’고 서술돼 있다. 2014년 선정된 ‘똑똑한 지리책’(휴먼어린이)은 북한의 식량난이 자연 재해와 함께 자립적 경제 노선을 강조한 데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을 뿐 독재 체제 등을 비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철희 돌베개 대표는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일부 표현만을 문제 삼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그동안 부실하다고 지적돼 온 문체부의 도서 선정 과정의 개선이 미흡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문체부는 부실 지적에 따라 지난해부터 심사위원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심사위원을 뽑은 후 심사위원 1인당 책 15권을 두 달 동안 심의해 선정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념 편향 주장은 전문성 없는 단체가 자신들의 입장에 맞춰 책을 평가했을 뿐”이라며 “비판받은 책의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학점이나 취업과 관련 없는 걸 하면 죄책감이 느껴져요. 책을 읽고 있으면 할 일을 미룬 채 한가하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요.” 최근 한 출판사의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서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솔직히 말해 달라’는 질문에 나온 답변이라고 한다. 이 출판사 대표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젊은이들마저 이러니 한숨이 나왔지만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며 착잡해했다. 해외 저자들의 책을 읽을 때면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의사, 심리상담사, 기업인 등 글쓰기가 업이 아닌데도 글을 잘 쓰는 이들이 참 많구나! 자라면서 치열하게 읽고 쓰고 생각하는 훈련을 받은 결과일 것이다. 한국에서 독서교육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시기는 딱 초등학교 때까지다. 책읽기가 죄의식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바꾸는 묘안,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할까.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날마다 죽어가는 것 같아요.” 다리가 꺾인 채 마룻바닥에 누운 니카라과의 잠수부 앤드루가 고통스럽게 말한다. 때 묻은 붕대 밑으로 진물이 흐른다. 그는 열세 살부터 9년 동안 바닷가재를 잡아왔지만, 몸을 다치자 선주와 가족에게서 버려졌다. 특별한 날을 근사하게 만드는 바닷가재는 잠수부들의 목숨을 담보로 잡히고 있다. 커피, 바나나, 초콜릿, 사과주스도 다르지 않다. 너무도 친근한 이 음식들이 누군가의 생명을 갉아먹으며 재배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니카라과를 비롯해 콜롬비아, 코트디부아르, 코스타리카, 중국 등 4개 대륙을 7개월간 누볐다. 아침마다 먹는 ‘스타벅스 콜롬비아 로스트’를 누가 재배하는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발단이 됐다. 앞서 저자는 즐겨 입는 옷의 원산지인 온두라스, 방글라데시 등의 노동자를 취재해 ‘나는 어디에서 입는가(한국어판 제목 ‘윤리적 소비를 말한다’)’를 펴냈다. 커피와 바나나를 따는 작업에 뛰어든 체험기는 아찔하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가파른 콜롬비아의 커피 농장에서는 넘어지는 순간 허리를 묶은 벨트에 몸이 두 동강 나버릴 것 같다. 바나나를 딸 때 쓰는 무거운 칼인 마체테는 아차 하는 순간 손가락을 날려버릴 수 있다. 바닷가재 잠수부들처럼 장시간 잠수에 나섰다가 고압실로 실려가 응급치료까지 받는다. 몇 주간 계속됐던 왼쪽 팔꿈치의 통증은 이후 피곤할 때마다 나타나 몸을 괴롭힌다. 목발과 휠체어에 의지하고 성인용 세발자전거 페달을 손으로 돌리며 다니는 니카라과의 젊은 남자들이 바닷가재 잠수부였다는 건 놀랍지 않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초라하다. 카카오 농장의 농부들은 허쉬 초콜릿이 1kg에 10달러(약 1만2000원)라는 말에 탄식을 내뱉는다. 그들은 카카오 씨앗 1kg에 1달러(약 1200원)를 받고 있었다. 흔치 않은 여행기 같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공정무역이 단순히 노동자를 돕는 시혜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농가에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건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환경을 만든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마친 뒤, 두 아이의 아빠인 저자는 아장아장 걷는 아들이 자폐일지 모른다는 진단에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자폐아가 늘어난 원인이 살충제일지 모른다는 미국 소아과학회의 성명을 주목한다. 실제 저자가 방문했던 중국의 사과 농장에는 벌레 한 마리, 풀포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1년에 6번 살충제를 뿌리는 곳이었다. 저자의 집 냉장고에 든 사과주스는 원산지가 중국으로 표기돼 있다. 그의 지인인 데이브 부부는 세 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않는 딸을 위해 식단에서 글루텐과 우유 단백질의 일종인 카세인을 뺐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몇 년이 지나자 아이는 또래 친구들처럼 말하고 홀로 척척 생활하게 됐다. 공정무역 제품이나 환경인증 제품을 사는 데서 멈추지 말고 인증기관이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어떻게 일하는지 꾸준히 확인하자는 저자의 제안은 호소력을 지닐 수밖에 없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1967년 연설에서 빵, 커피, 차, 코코아를 언급하며 말했다. “우리는 아침에 식사를 끝마치기도 전에 지구상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중략) 우리가 모든 현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라는 기본적인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지상에서 평화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가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쇠사슬이 되지 않도록 행동에 나설 수 있다. 일상에서 마주한 음식에서 지구상의 그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변화는 이미 시작된 건지 모른다. 원제는 ‘Where am I eating?’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좋은 책을 읽는 것도 그중 하나다. ‘유마’(쌤앤파커스·1만4000원)는 유마거사를 통해 불교 정신을 형상화한 소설로, 영화로 큰 인기를 모은 ‘관상’을 비롯해 ‘탄트라’를 쓴 백금남 작가의 신작이다. 작가는 ‘유마’를 집필 30여 년 만에 탈고했다. 유마는 출가승도, 브라만도 아니지만 시장바닥을 수행처로 삼고 불법을 터득한다. 그는 석가의 10대 제자와 보살들은 물론 미륵보살마저 차례로 논파해 나간다. 이어 석가마저 논파하기로 결심한다. 유마는 종교는 이상이 아닌 현실이어야 하며 배고픈 사람들에게 먼저 빵을 주기 위해 일어선 인물이다. 유마가 최후로 내뱉었던 “중생이 아프니 보살이 아프다”는 말에는 그의 사상이 또렷이 담겼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치유되었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명상은 정신 건강은 물론 육체 건강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된다. ‘헤드스페이스: 생각이 사라진 신기한 마음 속 평화 공간’(불광출판사·1만5000원)은 명상 앱 ‘헤드스페이스’ 개발자인 앤디 퍼디캠이 쓴 유쾌한 명상 책.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사람들은 500만 회 이상 앱을 내려받았다. 저자는 10여 년간의 승려 생활을 바탕으로 완성한 ‘10분 명상법’을 책에 담아냈다. 헤드스페이스는 ‘고요하고 텅 빈 마음’을 뜻한다. 이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 수행 3단계로, ‘명상에 접근하기-명상 수행하기-명상을 삶과 통합하기’를 제시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효과적인 방법과 함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명상 다이어리’를 수록해 10일간 직접 명상을 하며 기록할 수 있게 했다. ‘어려울 때 힘이 되는 8가지 명상’(불광출판사·1만3000원)은 위파사나 명상을 서양에 소개한 잭 콘필드가 쓴 책. 명상 지도를 해 온 경험을 녹여냈다. 연민 나누기, 용서의 실천, 최선의 의지 등 명상법을 통해 내면에 있는 지혜에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낮은 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유명한 아일랜드 수녀 스태니슬라우스 케네디가 시와 명언, 성경 구절 등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명상을 담은 ‘영혼의 정원’(열림원·1만4000원)은 한 구절 한 구절 곱씹어 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글귀로 가득 차 있다. ‘사랑은 겨드랑이 밑에 열쇠들을 숨기고 있다. 어서 문을 열어라’는 블레즈 파스칼의 말에 수녀는 ‘사랑은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기쁨, 평화, 아름다움, 조화를 가져다준다’고 묵상한다. 이해인 수녀가 조카 이진 씨와 함께 번역했다. ‘생각 버리기 연습’으로 유명한 일본인 승려 고이케 류노스케가 쓴 ‘하지 않는 연습: 마음을 지키는 108가지 지혜’(마로니에북스·1만2000원)도 있다. 너무 많이 해야 하는 시대에 오히려 하지 않음을 통해 마음을 지키는 방법을 전한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어린 왕자의 귀환: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 ‘밥벌이 마인드’, ‘경제인의 종말’, ‘자본론’. 서울대 자유전공학부가 ‘서울대 새학기, 책으로 시작한다’를 주제로 주최한 독서캠프에서 서울대생 53명이 고른 책 가운데 일부다. 경기 파주출판도시 도서관 ‘지혜의 숲’에서 25, 26일 1박 2일간 열린 독서캠프에서 학생들은 자유롭게 책 1권씩을 골랐다. 이들이 고른 책에는 불안, 불평등, 외로움 등 이 시대 ‘젊은 날의 초상’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25일 오후 9시, 학생들은 각자 고른 책을 들고 조별로 고른 이유를 설명하고 책 내용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경제인의 종말’을 고른 차도형 씨(경영대학원)는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지만 끊임없이 불안해한다”고 입을 뗐다. 신자유주의를 풍자한 ‘어린 왕자의 귀환’을 고른 김지훈 씨(자유전공학부)가 말을 이어갔다. “의미도 모른 채 마구 달려가는 게 지금 사회 모습인 것 같아요.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게 많고요. 10년 동안 미친 듯이 일해도 굶어죽지 않을 정도라면 그런 나라는 떠나야 하는 게 아닌가요?” 다른 조에서는 ‘내가 유전자 쇼핑으로 태어난 아이라면?’이라는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 책을 고른 이동우 씨(사회학과)는 “유전자 가위가 나오고, 혈액 검사로 암에 걸릴 확률을 분석하는 시대”라며 “우월한 유전자로 아이를 만드는 건 곧 다가올 현실”이라고 말했다. 조원들이 여기저기서 얘기를 쏟아냈다. “경제, 교육 분야에서도 불평등이 대물림되고 있는데 원하는 대로 유전자까지 고를 수 있게 되면 불평등이 더 심화될 수 있어요.” “노력해도 안 되면 어떻게 하죠?” “노력하는 자세 그 자체도 유전 아닐까요.” 강혜진 씨(생물학과)의 손에는 ‘이기적인 사회’가 들려 있었다. 강 씨는 “지난해 고시원에 살아보니 세상에서 혼자 뚝 떨어진 것 같았다”며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는데 이기적으로 살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돼 가고 있는 것 같다”면서 한숨지었다. 대중문화의 힘은 책에도 투영됐다. 김유경 씨(자유전공학부)는 소설 ‘자기만의 방’과 ‘시계태엽 오렌지’를 골랐다. “좋아하는 가수 루시아가 ‘자기만의 방’을 읽고 똑같은 제목으로 앨범을 냈어요. ‘시계태엽 오렌지’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책이 원작이더라고요.”(김유경)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행성의 파도가 몰아치는 장면에 영향을 준 남극 탐험기 ‘인듀어런스’도 책 목록에 포함됐다. 플라톤이 쓴 ‘소피스테스’를 고른 학생은 “수업 때문에 일주일간 밤새워 읽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이런 책은 피하라는 뜻에서 골랐다”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 독서캠프를 기획한 한경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장은 “예상치 못한 걸 만난다는 점에서 책을 읽는 건 바다나 숲을 탐험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학생들이 책 속에서 모험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자주 마련해주고 싶다”고 말했다.파주=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어린 왕자의 귀환: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 ‘밥벌이 마인드’, ‘경제인의 종말’, ‘자본론’. 서울대 자유전공학부가 ‘서울대 새학기, 책으로 시작한다’를 주제로 주최한 독서캠프에서 서울대생 53명이 고른 책 가운데 일부다. 경기 파주출판도시 도서관 ‘지혜의 숲’에서 25, 26일 1박 2일간 열린 독서캠프에서 학생들은 자유롭게 책 1권 씩을 골랐다. 이들이 고른 책에는 불안, 불평등, 외로움 등 이 시대 ‘젊은 날의 초상’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25일 오후 9시, 학생들은 각자 고른 책을 들고 조별로 고른 이유를 설명하고 책 내용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경제인의 종말’을 고른 차도형 씨(경영대학원)는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지만 끊임없이 불안해한다”고 입을 뗐다. 신자유주의를 풍자한 ‘어린 왕자의 귀환’을 고른 김지훈 씨(자유전공학부)가 말을 이어갔다. “의미도 모른 채 마구 달려가는 게 지금 사회 모습인 것 같아요.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게 많고요. 10년 동안 미친 듯이 일해도 굶어죽지 않을 정도라면 그런 나라는 떠나야 하는 게 아닌가요?”(김지훈) 다른 조에서는 ‘내가 유전자 쇼핑으로 태어난 아이라면?’라는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 책을 고른 이동우 씨(사회학과)는 “유전자 가위가 나오고, 혈액 검사로 암에 걸릴 확률을 분석하는 시대”라며 “우월한 유전자로 아이를 만드는 건 곧 다가올 현실”이라고 말했다. 조원들이 여기저기서 얘기를 쏟아냈다. “경제, 교육 분야에서도 불평등이 대물림되고 있는데 원하는 대로 유전자까지 고를 수 있게 되면 불평등이 더 심화될 수 있어요.” “노력해도 안 되면 어떻게 하죠?” “노력하는 자세 그 자체도 유전 아닐까요.” 강혜진 씨(생물학과)의 손에는 ‘이기적인 사회’가 들려 있었다. 강 씨는 “지난해 고시원에 살아보니 세상에서 혼자 뚝 떨어진 것 같았다”며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는데 이기적으로 살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돼 가고 있는 것 같다”며 한숨지었다. 대중문화의 힘은 책에도 투영됐다. 김유경 씨(자유전공학부)는 소설 ‘자기만의 방’과 ‘시계태엽 오렌지’를 골랐다. “좋아하는 가수 루시아가 ‘자기만의 방’을 읽고 똑같은 제목으로 앨범을 냈어요. ‘시계태엽 오렌지’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책이 원작이더라고요.”(김유경)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행성의 파도가 몰아치는 장면에 영향을 준 남극 탐험기 ‘인듀어런스’도 책 목록에 포함됐다. 플라톤이 쓴 ‘소피스테스’를 고른 학생은 “수업 때문에 일주일간 밤새 읽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이런 책은 피하라는 뜻에서 골랐다”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 독서캠프를 기획한 한경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장은 “예상치 못한 걸 만난다는 점에서 책을 읽는 건 바다나 숲을 탐험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학생들이 책 속에서 모험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자주 마련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