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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파주출판도시 어린이책잔치(사진)가 5일부터 8일까지 경기 파주출판도시 일대에서 열린다. 올해 14회를 맞는 이번 행사는 ‘책 밖으로 나온 이야기’를 주제로 테마 전시와 거리퍼레이드, 연극 동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출판도시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출판도시 입주사와 외부 출판사 등 200여 개사가 참여한다. ‘이상하고 요상한 그림책 마을’은 9명의 그림책 작가가 원화와 미술 도구를 각각의 ‘집’에 전시해 아이들이 작품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매일 오후 1시와 3시에 작가들의 공연과 체험 행사를 연다. 5일 오후 2시에는 어린이가 좋아하는 책 속 등장인물의 옷을 만들어 입고 출판도시를 걷는 ‘출판도시 어린이 퍼레이드’가 열린다. 커다란 종이가방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전송하는 ‘어린이 페이퍼백 캐릭터 공모전’도 함께 진행한다. 연극 극단과 출판사가 기획한 ‘연극동화’는 책의 캐릭터로 분장한 배우들이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연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온몸으로 책읽기의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다. 명필름은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어린 왕자’, ‘고녀석 맛나겠다’를 상영하고 명필름아트센터 견학도 실시한다. 구텐베르크 특별전에서는 독일 장인이 15세기 인쇄술을 시연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100여 개의 부스로 구성된 ‘야외 북마켓’에서는 어린이책, 독서 관련 가구, 문구류를 함께 판매한다. 프로그램 가운데 일부는 사전 신청해야 한다. 홈페이지), 031-955-0055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신영복 교수는 수감 기간을 늘 ‘대학 시절’이라고 말했다. 감옥에서의 깊은 사유와 성찰을 통해 그는 철학자로 거듭났다. ‘낮은 인문학: 서울대 교수 8인의 특별한 인생수업’(배철현 등 지음·21세기북스)은 서울대 교수들이 교도소 수용자를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를 담았다. 배 교수는 “우리는 모두 자신이라는 오만에 갇힌 수용자지만 구속돼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지적했다. 책에는 없지만 수용자들이 쓴 독후감 일부를 받아봤다. ‘집착에서 벗어나는 순간 나와 남이 하나임을 알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소망한다.’ ‘중요한 건 고민하기를 멈추지 않는 일이다. 악은 질서와 의무와 권위의 모습으로 다가와 고민하기를 포기한 이들을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유는 철학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읽고 고요히 내면을 들여다보기. 스스로를 맑고 향기롭게 만드는 길임을 다시 깨달은 봄날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어제(26일) 뉴욕에서 귀국해 새벽 2시까지 ‘스위니 토드’ 무대 디자인 회의를 했어요. 오늘 아침에도 9시 반부터 회의에 참가했고요. 덕분에 오늘밤은 시차 문제 없이 푹 잘 것 같네요.”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48)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쉼 없이 달리는 열차 같았다. 그는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드라큘라’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동시에 숱한 실패도 맛봤다. ‘뮤지컬계의 돈키호테’로 불리는 그는 별명처럼 끊임없이 풍차를 향해 달려들었다. 2009년 미국과 합작해 ‘드림걸즈’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스핀’ ‘요시미 배틀스 더 핑크 로보츠’를 제작해 계속 브로드웨이의 문을 두드렸다. 2014년에는 전설적 힙합 가수 투팍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할러 이프 야 히어 미(Holler if ya hear me·내 목소리 들리면 소리쳐)’로 처음 책임 프로듀서가 돼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지난해에는 ‘닥터 지바고’를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렸다. 둘 다 결과는 처참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상처투성이가 된 채 돌아왔어요. 하지만 무언가를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차분하게 숨 고르기를 한 후 전력투구할 수 있을 때 도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는 브로드웨이에 선보일 세 번째 작품을 꿈꾸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두 손을 들 만한데 끄덕도 없다. “공연장을 떠나며 즐거워하는 관객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해요. 뮤지컬은 마술 같아요. 관객은 무대를 보며 환호하지만 백 스테이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많은 일이 일어나거든요.” 다행히 지난 2년간 한국에서 올린 작품은 다 성공했다. 현재 공연 중인 미국 신문팔이 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뉴시즈’(충무아트홀 대극장)는 유명 배우 없이도 열정적인 연기와 뛰어난 가창력, 매혹적인 음악으로 주목받고 있다. “신인 배우들이 많다 보니 애정이 많이 가요. 배우 한 명 한 명이 모두 주인공이라 생각하면서 진짜 열심히 해요. 그게 작품을 끌어 가는 힘이에요. 저 자신을 돌아보게도 됐고요.” 6월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막을 올리는 ‘스위니 토드’는 기존 공연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될 거라 장담했다. 조승우 옥주현 양준모 전미도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작품의 전형성에서 벗어나려고 해요. 뚱뚱하고 못생긴 러빗 부인은 섹시하고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캐릭터로 만들 거예요. ‘뮤지컬 덕후’가 많은 작품이라 반응이 어떨지 진짜 궁금해지네요.” 브로드웨이에서 처절하게 깨진 결과, 그는 비로소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빨리 주목받고 싶었는데, 지금은 인정받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작품을 잘 만들면 인정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니까요. 중요한 건 저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천천히 한 발짝씩 내디디겠다고 말하는 목소리에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설 때 다시 도전할 거예요. 주변 사람과도 고민을 나누고요. 예전에는 좌충우돌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제는 산초와 이야기를 많이 하는 돈키호테가 되지 않을까요.”(웃음)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영국 엘리자베스 1세는 해적을 고용해 스페인의 보물선을 공격하라고 하고는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진주란 진주는 모두 빼앗을 것. 그녀의 진주 사랑은 특별했다. 실제 진주 장신구를 한 초상화도 많다. 엘리자베스 1세는 스페인 펠리페 2세가 이복언니인 메리 여왕에게 청혼 선물로 보낸 큼직한 진주 ‘라 페레그리나’를 흠모해 그만큼 아름다운 진주를 손에 넣고자 애썼다. 보석은 역사 곳곳에 박혀 있다. 때론 처연하게 때론 아름답게. 반짝이는 희귀한 돌멩이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강렬하다. 고대사를 전공한 보석 회사 디자이너인 저자는 역사 속 보석 이야기를 세세하게 발굴해낸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된 유명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의 실체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이 맨해튼과 맞바꾼 유리구슬, 다이아몬드 회사 드비어스가 만들어낸 다이아몬드에 대한 환상 등 8가지 이야기를 정리했다. 곳곳에는 흥미를 끄는 대목이 적잖다. 여성의 장신구로 여겨진 손목시계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일상으로 복귀한 군인들이 계속 손목시계를 차면서 남성의 소유욕도 자극하게 됐다. 로마인이 친구나 동맹자끼리 신의의 징표로 주고받은 반지가 약혼반지의 기원이 됐을지 모른다고 저자는 추측한다. 보석이 세계사의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다소 과장돼 보이지만 보석과 함께한 역사 속 인물의 캐릭터와 일상을 드라마 보듯 편안하게 조망하게 만든다. 보석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상식이 풍부해지는 깨알 같은 정보에 조금은 흥분된 상태로 책장을 넘길 것 같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군대에서 책을 팔기 시작해서 참∼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반가웠습니다.” 20일 찾은 강원 홍천군 제1야전수송교육단 마트. 오형석 상병(21)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연신 책장을 살폈다(육군은 PX, 공군은 BX로 불리던 부대 내 매점 이름은 마트로 통일됐다). 책장에는 ‘마션’ ‘밤의 파수꾼’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시민의 교양’ 등 신간이 많이 꽂혀 있었다. 전국 1200여 개 부대는 군인 복지를 위해 올해 1월부터 책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100종이 공급되며 10% 할인한 가격에 판다. 부대 내 진중문고에서 책을 빌려 볼 수 있지만 신간은 거의 없었다. “휴가 때 책을 사오거나 온라인 서점에서 부대로 주문해 봤는데 이제 바로 살 수 있어서 편합니다.”(정민제 상병) 이들은 입대 후 독서 시간이 크게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입대 전에는 영화 보고 컴퓨터 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한 달에 한두 권은 꼬박꼬박 봅니다.”(김무진 상병) 가장 인기 있는 책은 동명 영화의 원작소설인 ‘마션’이다. 올해 2만 권이 팔렸는데 군대에서 소화된 물량이 5000권이나 된다. ‘가면산장 살인사건’ ‘오사카 소년 탐정단’ ‘헝거게임’ 시리즈, ‘맏물 이야기’ 등 장르소설이 판매 상위권을 차지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전쟁의 물리학’ ‘이기적 유전자’ 등 묵직한 책을 찾는 장병도 적지 않다. 이 부대에선 매달 장병에게 독후감을 받아 시상한다. 박기진 일병(21)은 지난달 ‘마션’ 독후감이 2등으로 뽑혀 외박 포상을 받았다. 1등에게는 3박 4일 휴가를 준다.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며 보람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독후감을 더 쓰고 싶어졌습니다!” 1500명이 복무하는 이 부대에서는 1분기(1∼3월)에 책 400만 원어치가 팔렸다. 이병∼병장의 월급이 14만∼19만여 원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물량이다. 국군복지단에 따르면 1분기에 전국 부대에서 팔린 책은 모두 6만 권에 이른다. 출판사도 반색하고 있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괴수전’은 군에 1500권을 공급한 후 추가로 1500권을 더 보냈고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도 1400권을 공급했다”고 말했다. 초판을 보통 1000∼2000권 찍는 걸 감안하면 부대 내 판매량이 적지 않다. 박설림 재인 대표도 “별로 기대를 안 했는데 ‘가면산장 살인사건’ ‘오사카 소년 탐정단’이 모두 3000권 넘게 들어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잡지와 토익 책, 운전면허나 컴퓨터 자격증용 수험서 등 현재 들어오지 않는 실용서적에 대한 요구도 많았다. “지게차 필기시험을 봤는데 휴가 때 책을 사 와서 공부했습니다. 국가기술자격증을 무료로 딸 수 있어 다들 자격증 준비를 많이 하는데 관련 신간이 있었으면 합니다.”(오 상병) “해외 축구나 자동차 관련 잡지를 관심 있는 사병끼리 공동구매해 돌려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정 상병) 홍천=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군부대의 풍경은 크게 달라졌다. 인터넷TV(IPTV)가 공급돼 제1야전수송교육단 병사들은 ‘태양의 후예’를 주말에 몰아서 다 함께 봤다고 말했다. 김무진 상병은 드라마에 대해 “요즘은 ‘…지 말입니다’는 표현은 안 쓴다. 그냥 ‘다·나·까’체로 말한다”고 지적했다. 비누로 세수하는 사병도 거의 없다. 선크림을 챙겨 바르는 것도 일반화됐다. 이성열 제1야전수송교육단 마트 관리관은 “폼 클렌징과 마스크팩이 많이 팔린다. 초코파이처럼 배부른 간식은 잘 안 사먹고, 스낵처럼 입이 즐거운 과자를 주로 사간다”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도 가능해 부대에서 택배를 받을 수 있다. 컴퓨터로 웹툰을 보고 부대 내 노래방에서 회식도 한다. 그래도 군대는 군대. 장병들에게 가장 먹고 싶은 것과 받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답은 모두 똑같았다. “치킨, 피자가 먹고 싶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손편지와 사진을 자주 보내주면 좋겠습니다.” 홍천=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미움 받을 용기’(인플루엔셜)의 속편인 ‘미움 받을 용기 2’(사진)가 출간된다. 교보문고에서 51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최장 기록을 세운 까닭에 속편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29일 공식 출간에 앞서 미리 본 속편은 저자 기시미 이치로의 또 하나의 자기 복제에 그쳤다. 전편에서 아들러의 사상에 감화됐던 청년은 3년 후 다시 철학자를 찾아온다. 교사가 돼 그의 사상을 실천하려 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쳐 보니 이론은 번번이 벽에 부닥쳤다며 항의하러 온 것. 전편과 마찬가지로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체로 정리했다. 흥분한 청년이 철학자의 말에 점점 감화돼 나가는 구성 역시 동일하다. 출판사는 전편이 아들러의 사상을 알려줬다면 속편은 이를 실천하는 방안을 제시한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내용을 분석한 결과 전편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은 물론이고 기시미의 수많은 저서인 ‘행복해질 용기’, ‘나답게 살 용기’, ‘엄마를 위한 미움 받을 용기’ 등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이 반복되고 있었다. ‘지금’이 과거를 결정하고,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보는 것이 존경이라는 것뿐 아니라 칭찬하지도 야단치지도 말 것, 문제 행동의 ‘목적’을 파악할 것 등 익숙한 내용이 가득했다. 인생을 선택하는 건 바로 나이며 자립을 강조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본 멜로디를 살짝 변주해 앨범 포장만 바꿔 나온 노래를 듣는 기분이었다. 독자들도 실망감을 토로하고 있다. 출간 전 네이버 연재 및 출판사의 독자 모니터링 등을 통해 작품이 알려진 터다. 인터넷에는 ‘호기심을 끄는 내용을 짜내서 짜깁기할 수는 있겠지만 1편으로 충분하다’, ‘불필요한 단어들로 언어 유희를 한 느낌이다. 전편의 감동도 의심된다’는 서평이 올라오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기시미의 계속되는 자기 복제를 먼저 일본 출판계의 특성에서 찾는다. 일본에서는 자기계발서 저자들이 기존 책에서 사례나 서술 방식을 바꿔 새 책으로 출간하는 게 일반화돼 있기 때문이다. 국내 출판사들이 앞다퉈 기시미의 책을 들여오다 보니 그의 자기 복제가 두드러져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 기시미의 책 가운데 80∼90%가 국내 출판사와 계약된 상황이다. 그의 책을 낸 한 출판사 관계자는 “저자의 기존 책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회의를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출판사 관계자도 “자기 복제는 떴을 때 빨리 한몫 챙기려는 저자의 안일함과도 맞물려 이뤄진다”며 “당장은 책을 팔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스스로의 가치를 갉아먹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알파고’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요즘,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 교수(40)가 25일 한국을 찾았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으로 호모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했다는 통찰을 담은 이 책은 30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1월 출간된 후 14만 권 넘게 판매됐다. 하라리 교수와 이광형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62)가 26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에서 만나 인공지능과 인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교수는 KAIST 미래전략대학원장이자 올해 초대 미래학회장으로 선출됐다. 중국, 대만에 이어 한국에 온 하라리 교수는 “베이징에서 목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에 갔다. 서울은 베이징보다 공기가 훨씬 좋다”며 연신 물을 들이켰다. 이 교수가 주로 질문하고 하라리 교수가 답했다. ―인공지능으로 인간이 쓸모없어진다고 했는데 ‘쓸모없다’는 건 누가 정의하는가. “경제 시스템이다. 가령 목적지로 더 빨리 싸게 데려다 주는 인공지능이 나타난다면 택시 운전사는 쓸모없어지게 된다. 인공지능은 의사가 하는 일도 더 많이, 더 잘 해낼 수 있다.” ―‘직업=인간’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여러 직업을 대체하면 인간은 더 적게 일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다. 여가를 즐기는 활동이 늘어나면 새로운 직업이 또 생기지 않을까. “일리가 있다. 나도 여유로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30∼40년 후 거의 모든 직업에서 인간을 밀어낼 것으로 보인다. 새 직업이 생기겠지만 인공지능이 그 일도 더 잘하게 될 것이다. 직업이 없어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한다고 해도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는 게 문제다. 직업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지 정신적인 측면을 면밀히 고려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인공지능의 위협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완전히 새로운 경제적인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전에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모습일지는 예측하기가 힘들다. 공산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은 훌륭하지만 현실에 적용했을 때는 전혀 달랐던 걸 생각해 보면 된다.”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조직화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상상하고 인지하는 능력은 사람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의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면서 많은 재앙을 초래했다. 해결 방법이 있나. “200여 개의 독립된 국가 체제로는 지구온난화, 인공지능의 위협 등을 해결할 수 없다.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경제 성장을 멈추는 것이지만 어떤 국가도 경제 성장을 멈춰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개별 국가 위에 존재하는 전 지구적 기구가 필요하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2050년의 세상이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아이들은 교사나 연장자에게 기존의 지식을 배워 미래를 준비하는 게 불가능한 역사상 첫 세대일지 모른다. 모르는 걸 인정하고 어떻게 하면 늘 변화하며 살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 ―기술은 발전하고 있지만 인간이 느끼는 행복은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나. “인간은 경제, 정치 등 주변 환경을 바꿔서 행복해지려고 애썼다. 무엇을 더 가져서 맛보는 행복은 일시적이다. 자기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매일 두 시간씩 위파사나 명상(호흡 중심의 불교 수행법)을 하고, 매년 30∼60일 정도 외부와 완전히 단절한 채 명상을 한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하라리 교수는 우유, 달걀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다. 무자비하게 사육되는 가축들의 고통에 공감해 육식을 끊었다. 인류가 미래에 맞을 기회와 위협 등을 짚은 ‘미래의 역사(The History of Tomorrow)’가 올해 9월 영어로 출간된다. 한국에는 내년쯤 나올 예정이다. 하라리 교수는 새 책에 대해 “미래에 대한 예언서가 아니다. 인류가 미래에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는지 지도를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위한 역사책을 쓰는 작업도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는 힘주어 말했다. “기술이 답을 주기를 원하는데, 그렇게 되면 기술이 사람을 통제하게 됩니다. 기술은 우리가 묻는 질문에 답을 할 뿐 질문을 하는 건 우리라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우리 미술관의 대표작이에요. 이것만 보러 오는 분도 있으니 잘 봐두세요.” 8일 방문한 서울 종로구 율곡로 미술관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상설전 ‘리얼리?’. 이 전시에서 도슨트(설명자) 유경영 씨는 영국 작가 마크 퀸의 미술품 ‘셀프’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은 마크 퀸이 5년 동안 자신의 피 4∼5L를 뽑아 얼려 조각한 본인의 두상이다. 관람객 20명의 시선이 일제히 이 작품에 꽂혔다. 백남준, 앤디 워홀 등 작가 35명의 작품 140여 점으로 구성된 ‘리얼리?’에서는 사람이 안내하는 도슨트, 이어폰에서 정보가 나오는 오디오 가이드, 전자책 가이드 등 3가지 방법으로 관람객의 감상을 돕는다. 전자책 서점 리디북스의 전자책 단말기 ‘페이퍼’를 활용한 전자책 가이드는 2월 23일부터 도입됐다. 세 가이드의 특징을 비교해봤다. 모두 무료이며 걸리는 시간도 1시간으로 비슷하다. 도슨트의 설명은 주목도가 높았다. “‘셀프’가 보관된 곳은 영하 20도 이하의 냉동고예요. ‘셀프’는 세계에 4개가 있었는데 영국에 있던 작품이 냉동고의 전원이 빠져 망가졌어요. 삶의 유한함, 인간의 나약함이 드러나죠.” 박제된 사슴 두 마리에 수백 개의 반짝이는 구슬을 붙인 일본 작가 고헤이 나와의 ‘픽셀-더블 디어#7’ 앞에서도 설명이 이어졌다. 수백 개의 구슬을 붙인 두 마리 사슴을 보며 “와, 예쁘다”를 연발하던 관람객들은 그 안에 실제 박제된 사슴이 있는 걸 확인하고는 놀랐다. 본질에 대한 인식을 의도적으로 방해한 작품이다. “작가가 주문한 오브제와 전혀 다른 게 도착한 데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죠.” 이런 설명은 오디오 가이드와 전자책 가이드에는 없다. 다만 도슨트가 설명하는 작가는 15명 내외로 오디오 가이드(19명)와 전자책 가이드(18명)에 비해 적었다. 전체 관람객의 7% 정도가 도슨트를 이용한다. 오디오 가이드의 이어폰을 꽂자 남자 성우의 목소리가 나왔다. 눈은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영어와 중국어로도 지원돼 외국인이 많이 이용한다. 사용하는 관람객 비율은 34% 정도다. 이어폰을 귀에 걸어야 해 불편하고 목소리 톤이 일정해 단조로운 느낌이 든다. 오디오 가이드는 앞뒤로 한 개 작품씩 옮겨갈 수 있는 데 비해, 전자책 가이드는 목록을 보며 작품을 자유자재로 찾아볼 수 있었다. 작품당 설명도 오디오 가이드보다 많았다. 망가진 ‘셀프’가 세계적 컬렉터인 영국의 찰스 사치가 소장하던 것이었고, 이 얘기로 작품이 더 유명해졌다는 내용도 전자책 가이드에만 있었다. 하지만 눈이 침침한 고령자라면 조금 불편하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전자책 가이드 이용률은 도입 당시 12%에서 최근 32%로 늘었다. 오디오 가이드와 맞먹는 수준이다. 양민희 ㈜아라리오 홍보담당은 “전자책 가이드에 대한 호응이 커서 다음 달 5일 제주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Ⅱ에서 시작하는 ‘실연에 관한 박물관’ 전시에도 도입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다채로운 이야기를 듣길 원한다면 도슨트가 ‘딱’이다. 설명 시간에 맞추는 게 쉽지 않고, 도슨트별 실력 차가 있다는 건 감안해야 한다. 조용히 집중해서 풍부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전자책 가이드를 권한다. 작품 감상에만 눈을 두고 싶다면 오디오 가이드가 제격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도 번다면 금상첨화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다르거나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몰라 괴로운 이가 많겠지만. 트랙처럼 정해진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선구자’들의 이야기는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헌데 갈수록 이런 판타지를 실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법’(한명석 등 지음·사우)에는 세상의 기준을 내던지고 자신만의 길을 간 10명의 인생이 담겨 있다. 외교관이 우동집을 운영하고 공기업을 다니다 양봉가가 된 이가 있다. 변호사를 하다 전통주 제조에 뛰어들고 교사를 그만두고 농사를 시작한 사람도 있다. 저자는 “이들은 자기 인생을 진두지휘한 결과 살아있다는 희열을 느꼈다”고 말한다. 한번쯤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면, 필요한 건 결단을 내리는 용기다. 줄어든 수입과 불투명한 미래를 견뎌낼 배짱과 함께.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국 문화에 관심을 넘어서 애착을 가진 이방인을 만나는 건 언제나 흥미롭다. 미국에서 자라 1982년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후 많은 칼럼을 쓰고 ‘미래시민의 조건’ ‘서울의 재발견’ 등을 펴낸 저자는 자신만의 눈으로 한국을 바라본다. 그 중심에 한옥이 있다. 서울 북촌과 서촌의 한옥에서 모두 살아본 저자는 서촌에 강하게 끌렸다. 북촌에 비해 가치를 더디게 인정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규모가 더 작고 원형이 잘 보존된 데다 이웃 간의 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서촌지킴이를 자처하며 한옥마을을 유지하고자 애쓸 정도였다. 서촌에서 한옥을 사들여 ‘어락당’을 만드는 과정은 저자가 한옥에 매료된 이유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집을 고치는 과정은 공개됐고 마을 사람들은 자주 와서 이를 구경한다. ‘어락당’이 완공된 날, 동네잔치를 벌인 것처럼 함께 모여 기뻐했다. 집이 완공된 후 오히려 허탈함을 느끼는 저자를 보노라면 그가 추구했던 가치는 결국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 간의 부대낌이 있고 살아온 자취가 간직된 곳, 오늘도 평범한 이들이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곳이 골목이 있는 한옥 마을이었다. 책은 미국인의 한옥 사랑가에 그치지 않는다. 88 서울 올림픽 후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고 독재 정치를 끝내려는 열망에 차 있던 한국의 현대사가 제3자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유교 사상이 강한 이유를 일제가 조선을 억압한 데 따른 반대급부로 해석하고 상업적인 대중문화를 국가 브랜드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우려하는 모습에서 애정이 느껴진다. 현재 미국에 있는 그는 서촌에서의 두 번째 인생을 꿈꾸고 있다. 옛것에 매료된 이유를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깊은 울림을 준다. ‘주위에 오래된 것이 많고 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면 지금의 인생이 얼마나 짧으며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셰익스피어의 삶은 미스터리하다. 직접 작품을 썼는지조차 끊임없이 논란이 분분하다. 최근 출간된 ‘세계를 향한 의지: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민음사)에서 미국 하버드대 교수로 셰익스피어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흐릿하고 비밀스러운 삶’과 당시 시대상을 치밀하게 추적해 작품 곳곳에 녹아 있는 흔적을 핀셋으로 끄집어낸다. 당시 파격적으로 여덟 살 연상의 앤 해서웨이와 결혼했고 그의 아버지가 대금업을 했다는 사실 등을 제외하고 책은 상당 부분 추론에 의존한다. 그럼에도 책장을 넘기다 보면 셰익스피어가 진짜 작품을 썼다고 차츰 믿게 된다. 집요할 정도로 촘촘하게 셰익스피어의 삶을 복원해낸 저자의 땀방울 덕분이다. “양피지는 양의 가죽으로 만드는 것이잖은가?”라고 햄릿이 묻자 친구 호레이쇼는 수긍하며 “송아지 가죽으로도 만들지요”라고 답한다. 장갑 가게도 운영한 아버지 덕분에 가죽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곰을 묶어 놓고 사나운 사냥개와 싸우게 하는 유흥거리를 즐겼던 시대상도 보인다. 맥베스는 적들이 포위해 오자 외친다. “곰처럼 나는 이 과정을 싸워내야 하리라!” ‘헨리6세’에서 “서두른 결혼은 거의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한 건 ‘속도위반’으로 결혼 6개월 만에 딸 수재너를 낳은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재산 대부분을 큰딸에게 물러주고 아내에게는 거의 남기지 않은 이유는 ‘좋으실 대로’에서 “아가씨인 동안은 5월이지만 아내가 되면 날씨가 확 바뀐다”고 노래한 데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성장에는 동갑내기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도 빼놓을 수 없다. 여성들을 몰살시키고 이집트 공주를 신부로 맞이하며 끝나는 말로의 ‘템벌레인’에 환호하는 관객을 보고 셰익스피어는 경쟁심에 불타오른다. 그의 윤리관을 단박에 전복시켰기 때문이다. 29세에 말로가 세상을 떠나자 ‘좋으실 대로’에서 말로 작품의 유명한 대사를 인용한 건 라이벌에 대한 헌사였다. 셰익스피어가 불멸의 생명력을 가진 작품을 토해낼 수 있었던 건 천재성과 함께 엄청난 성실성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희곡 작업에 매달린 결과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내세울 것 없는 시골 출신이지만 자신의 뿌리를 잃지 않고 시골 생활의 경험을 상상 속의 세계로 그려내는 재능도 지녔다. 사람들의 잡담이나 사소한 사건도 지루해하지 않고 모두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냈다. 엄청난 다독가였던 셰익스피어는 당시 출간된 책들을 통해 세계를 아우르는 넓은 안목을 키웠을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로 가보자며 손목을 잡아끄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가 서로를 죽이던 잔인한 현실은 물론이고 연극을 보기 위해 목을 빼고 몰려들었던 군중의 모습이 실사 영화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이 모든 현장을 바라보며 골똘히 사색하고 글을 쓰던 한 남자를 만날 수 있다. ‘흐릿하고 비밀스러운’ 셰익스피어의 삶을 조각조각 맞춰 선명하게 보여준 솜씨가 일품이다. 책장을 덮은 후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어스 시저’ ‘햄릿’을 함께 묶은 ‘셰익스피어 전집 4: 비극 1’(민음사) 등을 읽으면 셰익스피어의 인생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2016 엠디엠 한국여자바둑리그’가 2월 개막된 후 뜨거운 열기 속에 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시작된 여성바둑리그는 종합부동산개발회사인 엠디엠이 여성 프로기사의 실력 양성을 위해 만들었다. 엠디엠 문주현 회장은 후원 이유에 대해 “양궁 탁구 등 대한민국 여성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분야가 많은데 여성 바둑도 적절한 무대를 지원하면 스타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엠디엠은 후원 액수를 지난해 2억 원에서 올해 3억 원으로 올렸다. 최근 중국 장쑤 성에서 열린 황룡사쌍등배 1차전에서 한국이 5승 1패로 선전한 것도 여성바둑리그 활성화가 큰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문 회장은 “여자바둑리그의 활성화로 많은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바둑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 여자바둑리그엔 지난해 초대 우승팀인 인제 하늘내린(감독 현미진 5단)을 비롯해 서울 부광탁스(권효진 6단), 경기 호반건설(이다혜 4단), 경기 SG골프(윤영민 3단), 부안 곰소소금(김효정 2단), 서귀포 칠십리(하호정 4단), 여수 거북선(강승희 2단), 포항 포스코켐텍(이영신 5단) 등 8개 팀이 출전했다. 경기 SG골프와 경기 호반건설, 여수 거북선은 올해 창단됐다. 개막전은 2월 18일 서울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에서 경기 SG골프와 여수 거북선의 대결로 막이 올랐다. 다음달까지 열리는 정규리그에서는 총 56경기, 168국을 치러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4개 팀을 선발한다. 포스트시즌에 오른 4개 팀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챔피언결정전의 3판 2선승제로 최종 순위를 가린다. 포스트시즌은 5, 6월에 열릴 예정이다. 모든 경기는 바둑TV에서 생중계한다. 18일 현재 포항 포스코켐텍이 7승 2패로 팀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는 서울 부광탁스(6승 2패)이며 인제 하늘내린(6승 3패)이 3위다. 개인 전적에선 중국 기사인 위즈잉 5단(서울 부광탁스)이 6승 1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조혜연 9단(포항 포스코켐텍)과 김혜민 7단(부안 곰소소금), 최정 6단(서울 부광탁스)이 각각 6승 2패로 공동 2위를 달리고 있다. 오유진 2단(인제 하늘내린·6승 3패)이 5위이며 루이나이웨이 9단(경기 SG골프·5승 1패)이 뒤를 잇고 있다. 바둑TV의 한 관계자는 “남자 바둑대회보다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선수들에게 팀별로 고유한 유니폼을 입도록 한 것도 흥행의 한 포인트”라고 말했다. 총상금은 7억8000만 원이며 우승상금은 5000만 원, 준우승상금은 3000만 원이다. 우승상금과 별도로 승자 100만 원, 패자 30만 원의 대국료가 각각 지급된다. 각 팀은 3명의 주전 선수와 1명의 후보 선수로 구성된다. 지역연고제를 정착하기 위해 팀별 주전 선수 가운데 2명 이상을 최소 2년간 보유해야 한다. 외국인 선수 선발, 주전 선수 트레이드, 후보 선수 방출도 도입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경험만큼 처절한 깨달음을 주는 건 없다. 드라마 ‘추노’의 유명한 대사도 있지 않은가. “당해 봐야 아는 거야.” 미국 컬럼비아대 정신과 교수인 저자는 9·11테러로 여동생을 잃은 후 우울증에 빠졌다. 몸이 무너져 내리고 말로 하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 처음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이었다. 대부분의 의사처럼 저자 역시 의사는 아프지 않을 것이란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이후 저자는 환자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자신처럼 환자가 된 의사 70명을 심층 인터뷰해 그들의 목소리를 날것 그대로 담아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을 비롯해 유방암, 백혈병, 복부암 등의 판정을 받은 의사들은 현실을 부정하지만 이내 공포에 휩싸인다. 병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로 유명한 김혜남 정신과 전문의는 책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에서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뒤 그 끔찍한 고통을 환자들처럼 견뎌낼 수 있을지 두려웠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이들의 육성은 공감이 결여된 진료 현장과 진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도려내 보여준다. 진료를 받느라, 온갖 검사를 받느라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기본이고 약으로 인한 불면증, 구역질, 두통 등 이른바 ‘가벼운 증상’은 실제 겪어보니 진을 다 뺀다. 암 환자인 내과 전문의 샐리는 말한다. “항생제를 맞기 전 구토방지제를 달라고 고집 피우지 않았으면 몇 시간 동안 게워냈을 거예요.” 유방암에 걸린 정신과 전문의 데보라는 금발 머리카락을 잃는 것이 항암 치료로 인한 고통보다 훨씬 괴로웠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방사선 치료 후에 한번 빠진 머리카락은 다시 나지 않는다고 설명해주지 않았다. 환자들이 평소 말하고 싶었거나 말해도 무시당했던 사연들이 의사 환자들 입에서 그대로 흘러나오는 걸 읽노라면 아프면 누구나 같아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 조울증을 앓는 정신과 전문의 수잔은 외친다. “환자에게 ‘왜 약을 안 먹고 있나요?’라고 말하는 건 쉽죠. 그러나 하루에 열일곱 개의 알약을 먹는 게 쉬운 일인가요!” 가슴을 할퀴는 의사들의 무심한 한마디는 ‘의사 환자’ 역시 피해가지 않았다. 림프종을 앓는 내과 전문의 월터는 “암이 구석구석 퍼졌습니다. (중략) 죽게 될 것입니다”란 건조한 말을 듣는다. 심근경색을 앓는 신생아의학 전문의 허브는 말한다. “수술 전날 내가 죽을 가능성이 5%라는 말을 듣고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생존 가능성이 95%라고 들었으면 훨씬 나았을 거예요.” 이들은 환자 체험을 통해 “두 눈을 완전히 떴다”고 고백한다. 병원에 복귀하자 회진할 때 서서 환자를 내려보는 대신 의자에 앉아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환자들이 호소하는 통증에도 더 귀를 기울였다. ‘환자 의사’의 솔직한 이야기는 의료계 종사자들의 인성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권위와 관료주의에 갇혀 ‘사람’을 보지 못하는 의료계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의사에게 환자와 대화하는 법과 환자를 대하는 자세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의료계 종사자들에게 간곡히 권하고 싶은 책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대학 시절, 학교 앞 기찻길 옆 외진 곳에 있던 작은 서점이 기억난다. 힘겹게 버티던 그 서점은 결국 문을 닫았고 서점의 ‘죽음’을 애도하는 플래카드가 캠퍼스 곳곳에 걸렸다. 서로 생각을 나누고 교감했던 곳이었기에 작은 서점의 빈자리는 크게 느껴졌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펴낸 ‘세계서점기행’에는 1294년 지은 고딕성당에 들어선 네덜란드 도미니카넌 서점을 비롯해 나라별 역사와 문학, 사상을 망라한 책을 보유한 영국 돈트북스 등 철학이 있는 서점 22곳이 담겨 있다. 한국은 부산 영광도서와 보수동 책방골목이 포함됐다. 저자는 95년 역사를 지닌 채 2002년 문을 닫은 종로서적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다행히 작은 서점들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종로서적과 학교 앞 그 서점도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사그라들고 있는 책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방법부터 연구해야겠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출판계 게릴라들이 등장했다. 20, 30대 편집자, 디자이너, 번역가 등 ‘12명+알파(α)’로 구성된 ‘읻다 프로젝트’가 2년간 작업해 문학성이 짙은(한편으로 팔릴지는 의문스러운) 책 3권을 최근 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중 쓴 세 권의 일기를 묶은 ‘전쟁일기’, 루이페르디낭 셀린이 스스로를 인터뷰해 쓴 소설 ‘Y교수와의 대담’, 일본 시인 미즈노 루리코가 제2차 세계대전의 공포를 회상한 ‘헨젤과 그레텔의 섬’이다. 》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5일 저녁 6명의 게릴라가 모였다. 낭독회, 페이스북 등을 통해 알게 된 이들은 출판사 직원, 어학 강사 등 생업이 있다. 퇴근 후와 주말 시간을 투자해 책을 만든 건 상업성만 추구하는 출판계에서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러시아 소설을 내고 싶어 제안을 해도 번번이 물을 먹었어요. 안 팔린다는 거죠.”(다다 씨·예명) “이름 있는 작가들하고만 작업해요. 그게 안전하니까요. 실험해 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여지가 아예 없어요.”(김잔섭 씨·예명) 판매 부수와 유명 작가에 대한 섭외력에 따라 편집자의 등급을 매기는 시스템에 숨이 막혔다는 이도 있었다. 한 대형 출판사 면접에서는 면전에서 탈락 통지를 받았단다. 편집을 시킨 후 곧바로 채점한 뒤 “당신은 B마이너스다. 우리 회사는 B플러스 이상만 올 수 있다”고 통보한 것. 오랜 시간이 걸려도 책을 잘 만드는 사람보다는 단시간에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을 원하는 게 한국 출판계의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번역자는 디자인 등에 대해 어떤 의견도 낼 수 없는 구조 역시 답답했다. “책이 나온 후 표지나 장정이 별로면 힘들게 번역했던 숱한 날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어요.”(정수윤 씨) 이들은 작업 과정에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다. 전원합의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세 권을 만드는 데 모두 600만 원가량 들었다. 인건비는 포함되지 않은 액수다. 서로에게 자료를 보낼 땐 퀵서비스 대신 대중교통을 타고 직접 전해주는 방식으로 한 푼이라도 비용을 줄였다. 클라우드 펀딩으로 1500만 원을 모았고, 게릴라들의 갹출로 2000만 원을 따로 마련했다. “순수하게 책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내가 이 책의 주인이라는 생각도 많이 들고요.”(김보미 씨) 박술 씨는 “책을 보니 꿈만 같았어요!”라고 외쳤다. 책은 좀 팔릴까. “초판을 각각 1000권씩 찍었는데 ‘전쟁일기’는 출간 일주일 만에 추가로 1000권을 더 찍게 됐어요.”(최성웅 씨) 각각 700권씩만 팔리면 제작비는 건진다고 한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 릴케의 ‘두이노 비가’ 등 7권을 더 출간해 모두 10권을 내는 게 1차 목표다. “인문·철학책을 누가 사보냐고들 하지요. 밤에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이 희미한 불빛 아래서 인문학 책을 읽고 계시더라고요. 그런 분이 대한민국에 1000명은 계시지 않을까요? 그러면 가능한 작업이라고 믿어요.”(최성웅 씨)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1. 테스가 알렉 더버빌에게 짓밟힌 날, 숲 속을 에워싼 건 안개였다. 테스를 노리던 알렉은 ‘모든 것을 감추는 안개’를 이용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숲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리고 욕망을 채운다.(토머스 하디의 ‘더버빌가의 테스’) #2. 1790년 7월 14일, 바스티유 함락 1주년을 기념해 파리에서 열린 축제에서는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시민들은 의기소침했다. 반전이 일어났다. 빗물에 흠뻑 젖은 병사와 시민들이 함께 춤추기 시작한 것. 악천후도 혁명에 대한 열정을 억누를 수 없음을 증명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와 문학자, 지리학자 등 10명이 함께 쓴 이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수많은 뷰파인더 가운데 날씨를 선택했다. 비, 햇빛, 바람, 눈, 안개, 뇌우가 인류의 역사와 예술 등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며 흥미로운 지적 여행으로 초대한다. 안개는 그 형태의 신비스러움으로 인해 예술가에게 창조적 영감을 불어넣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에세이 ‘의향’에서 안개를 야수에 비유한다. 클로드 모네는 템스 강의 안개가 사물의 윤곽을 지우는 순간을 포착하려 애썼다. 모네는 “이 엄청나게 멋진 광경은 고작 5분간 지속될 뿐이오! 미칠 노릇이지!”라며 안타까워한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정벌이 실패한 데 혹독한 추위가 한몫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빅토르 위고는 시 ‘속죄’에서 1812년 겨울 나폴레옹 군대가 러시아에서 눈을 맞으며 회군한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하늘은 굵은 눈발로 소리 없이/이 거대한 군대를 위한 거대한 수의를 지었다.’ ‘시민왕’을 자처한 루이 필리프 1세는 1831년 도열한 병사들이 비를 맞고 있자 망토를 쓰는 것을 거절하고 함께 비를 맞았다. 모든 프랑스인은 자연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는 재미가 적잖다. 햇빛은 기력을 소진시킨다는 생각에 오랜 기간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1787년 광합성 작용의 발견으로 햇빛이 생명의 원리를 조절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햇빛이 찬양의 대상으로 드라마틱하게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장 자크 루소는 ‘에밀’에서 아이들이 햇볕을 쬐어 땀을 흘리며 자라야 단련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맑은 날씨는 여행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인식돼 휴가 때 비가 오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우천 보험’까지 나올 정도였다. 괴테는 ‘기상 이론의 초안’을 펴낼 정도로 날씨에 관심이 많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 로테와 짜릿한 춤을 출 때 ‘그녀와 함께 공중의 뇌우처럼 날아오르다니!’라며 환호한다. 항상 곁에 있기에 무심코 지나쳤던 날씨라는 존재를 감성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제작비 때문에 풍성한 그림과 사진이 흑백으로 인쇄된 점은 다소 아쉽지만 보는 즐거움이 크게 반감되지는 않는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호랑이에게 쫓기듯 허겁지겁 하루를 달려온 후 허탈감이 밀려드는가. 느리게 살고 싶다! 많은 이들이 간절히 소망하는 일이다. ‘여행의 기쁨: 느리게 걸을수록 세상은 커진다’(실뱅 테송 지음·어크로스)는 자동차, 기차 대신 두 다리와 말(馬)로 세상을 누빈 이야기를 담았다. 여행 작가인 저자는 히말라야에서 5000km 넘게 걷고 중앙아시아 초원에서는 말을 타고 3000km를 달린다. 느림이 속도에 가려진 사물의 모습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란다. 고비 사막을 지날 때는 몇 분이 몇 년 같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강조한다. ‘우리의 영혼이 시계에 맞서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달리기에서 벗어나려면 느릿느릿,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여 이동해야 한다.’ 시간이라는 말의 고삐를 당기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고삐를 당기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삶의 거친 호흡이 잦아드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저는 유가족으로, 생존 학생 역시 그 이름으로 평생을 살 텐데, 그 오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우리가 많이 아프다는 걸 알려 주고 ‘세월호 세대’라 불리는 또래들과 함께 잘살 수 있게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고 박성호 군의 누나 박보나 씨가 담담하게 말을 이어 갔다. 세월호 생존 학생 11명과 희생자의 형제자매 15명의 육성을 담은 ‘다시 봄이 올 거예요’(창비)의 출간 간담회가 5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렸다. 지난해 출간된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후속편 격인 이 책은 이들이 2년 동안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기록했다. 희생자 부모들의 육성을 담은 ‘금요일엔…’을 쓴 4·16 세월호 참사 작가 기록단이 참여했다. 책에는 상주가 뭔지도 모른 채 상주 역할을 하고, 바다를 보면 눈물이 나는 자신을 보며 감정이 무뎌졌으면 좋겠다고 기원하는 목소리가 그대로 실려 있다. 고 남지현 양의 언니 남서현 씨는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서로에게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이제 비로소 서로의 마음을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지만 동시에 성장했고, 다시 일어섰다고 말한다. 이호연 작가는 “피해자들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입장 차이가 나는데 서로 이해하고 보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건웅 윤필 등 만화가 5명은 책 내용을 웹툰 5회로 제작해 다음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지난달 29일부터 한 달간 예정으로 연재하고 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열세 살 소녀 시리는 누군가의 제삿날 엄마를 따라 산자락 좁다란 동굴로 간다. 어머니는 10여 년 전 일을 두런두런 말하기 시작한다. 토벌에 참가했던 외삼촌이 숨진 여인의 품에 안긴 채 살아있던 어린아이를 데려왔다고. 나무도장을 손에 꼭 쥐고 있던 그 아이는 시리였다. 제주4·3사건을 서정적 그림과 절제된 문체로 담아낸 그림책이다. 저자(56)를 서울 종로구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꽃할머니’(2015년)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말 잇기 놀이인 제주도의 꼬리따기 노래를 모아 재해석한 ‘시리동동 거미동동’(2003년)을 내면서 제주와 인연을 맺었다. 실화인 ‘빌레못굴의 학살’을 바탕으로 한 책을 내기 위해 저자는 3년간 취재했다. 제주4·3평화재단, 우당도서관, 탐라도서관을 뒤졌다. 권영옥 도서출판 장천 대표를 비롯해 30명이 넘는 관련 전문가와 관계자들에게 자문을 받았다. 북촌초등학교 교지도 확인하며 제주의 정서를 이해했다. 엄마가 시리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날을 당초 시리의 생일날에서 시리 생모의 제삿날로 바꾼 것도 이유가 있다. “제주는 생일보다는 제사를 중요시하더라고요. 배를 타다 혹은 물질하다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다 보니 제사를 정성껏 올리며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기원하는 문화가 강했어요.” 철저한 고증을 통해 다큐멘터리 못지않게 당시 풍경을 정확하게 그려냈다. 광복 후 제주로 사람들이 돌아올 때 타고 온 관부연락선은 물론이고 당시 입었던 옷, 보따리 등도 세세하게 확인했다. 경찰과 국방경비대의 복장이 비슷하지만 모자에 붙은 마크가 다른 점도 반영했다. ‘빌레못굴의 학살’에서는 일곱 달 아기가 숨지지만 저자는 아이가 살아남아 토벌군의 누나가 데려가 키우는 것으로 바꾸었다. 감정적인 표현은 자제하고 이념 대립으로 비칠 수 있는 단어도 가급적 쓰지 않으려 애썼다. 피도 푸른색과 갈색으로 그렸다. 끔찍했던 현실을 완곡하고 담담하게 표현해 보는 이의 가슴을 더욱 시리게 만든다. 그리고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인간의 잔인함보다는 냉전 시대에 국가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구조에 주목했어요. 사람들을 총살할 때 비켜 쏜 군인도 있었다고 해요. 그 사람이 갖고 있었던 건 인간에 대한 희망 아닐까요.” 책은 제주4·3평화기념관에 헌정됐다. “아이들에게 이념 대립보다는 평화의 섬으로 제주가 기억되길 바랍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조정해 나가는 방법에 대해 질문하고 함께 답을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