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극혐’ 기생충? 알고보면 매력적인 지구 생명체

  • 동아일보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지구의 2인자, 기생충의 독특한 생존기/서민 지음/376쪽·1만6000원·을유문화사

뇌에 염증과 출혈을 일으키는 파울러자유아메바 영향형(왼쪽 위)과 설사, 복통을 일으키는 람블편모충. ⓒscimath, ⓒschlisa87아래는 디르크 할스의 ‘가족의 풍경: 아이들의 머릿니를 잡아주는 여인’.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제공
뇌에 염증과 출혈을 일으키는 파울러자유아메바 영향형(왼쪽 위)과 설사, 복통을 일으키는 람블편모충. ⓒscimath, ⓒschlisa87
아래는 디르크 할스의 ‘가족의 풍경: 아이들의 머릿니를 잡아주는 여인’.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제공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였던 시절, 해마다 기생충 검사를 위해 집에서 채취한 대변을 내던 날, 아이들은 닿기만 해도 터지는 폭탄처럼 채취 봉투를 수거 봉지에 냅다 집어던졌다.

얼마 후 담임선생님이 한 명씩 이름을 불렀다. 호명되지 않은 아이들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교탁 앞으로 불려나간 아이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구충제를 삼켜야 했다. 꽤 오랜 기간 ‘구충대장’이라는 놀림에 시달려야 했던 건 물론이다.

기생충 학자로 잘 알려진 저자(단국대 의대 교수)가 특유의 입담으로 발랄하게 풀어낸 이야기는 유년 시절의 기억 한 토막을 끄집어냈다. 이 책은 전작인 ‘서민의 기생충 열전’에 나오지 않은 기생충을 다뤘다.

책장을 펼치면 드라마틱하고 놀라운 기생충의 세계가 펼쳐진다. 시모토아 엑시구아는 물고기의 혀가 떨어져 나가게 한 후 물고기가 죽을 때까지 혀 노릇을 대신한다. 질편모충은 남녀를 차별한다. 남성의 몸에서는 열흘도 못 견디지만 여성의 몸에서는 수년씩 살며 고통을 주고 에이즈 감염률까지 높인단다. 암세포로 돌변하기도 하는 왜소조충은 좀 무시무시하다.

어떤 병이든 없는 자에게 더 가혹한 법.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제3세계 사람들이 피부로 들어오는 구충에 자주 감염되는 건 신발이 없어 맨발로 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빈대를 통해 전파되는 크루스파동편모충은 어릴 때 사람 몸에 들어와 잠복해 있다 중년 무렵 심장마비를 일으켜 순식간에 숨지게 만든다. 중남미에는 감염자만 500만∼600만 명에 달하고 해마다 수만 명이 목숨을 잃지만 아직 치료제는 없다.

부자 나라의 흔한 질병이라면 진작 약을 개발했겠지만, 서글픈 현실은 사람의 목숨에 값을 매긴다. 저자는 제약회사가 아플 때 잠깐 먹는 약보다 고혈압이나 콜레스테롤 저하제처럼 평생 동안 먹는 약을 선호한다고 꼬집는다.

온갖 먹거리가 국경을 넘나들고 지구 곳곳을 여행하는 이가 늘어나는 요즘, 기생충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과테말라에서 재배된 라즈베리, 멕시코에서 키운 고수로 인해 원포자충에 감염돼 집단으로 설사에 시달리는 사례가 잇따랐다. 사람 몸 안을 돌아다니다 드물게는 뇌출혈도 일으키는 유극악구충은 날생선을 통해 주로 감염되는데 태국, 미얀마, 중국, 일본, 남미에서 꾸준히 환자가 발생한다. 어느 순간 출장, 여행으로 다녔던 나라를 되짚어보며 뭘 먹었는지를 꼽아보는 자신을 발견했다.

연구를 위해 앞뒤 안 재고 돌진하는 저자의 엉뚱하면서도 열정적인 모습에는 웃음이 터진다.

사람과 동물의 눈에 사는 동양안충 유충을 배양하는 데 연거푸 실패하자 홧김에 유충 두 마리를 자기 눈에 집어넣는다. 논문 때문에 급한 마음에 눈을 보려고 개를 껴안은 채 뒹굴고, 군인 4명이 다리 한 짝씩 잡은 군견 셰퍼드의 눈에서 동양안충을 꺼내는 장면은 한 편의 시트콤 같다.

기생충은 박멸해야만 하는 대상은 아니다. 구충은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치료제로 쓰이고, 친환경적 항응고제를 만드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단다. 날달팽이, 자라 피 등 남들이 잘 안 먹는 건 먹지 않기, 면역력이 약할수록 기생충에 취약한 유기농 식품을 먹을 때 주의하기, 숙련된 요리사가 뜬 신선한 회를 먹기…. 모르면 무섭지, 알고 나면 두려움은 줄어든다. 기생충이라는 작디작은 생명체를 통해 세상살이의 지혜를 함께 선사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서민#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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