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거부한 자유로운 상상력[한국미술의 딥 컷]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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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의 딥 컷]<1> 한국적 신표현주의 황창배

연극반 활동도 하고 연예인 아닌 사람으로는 최초로 포도주 광고도 찍은 황창배는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그림 중앙 인물의 손에 ‘반성문’이 들려 있
다. ‘무제’(2000년). 장지에 혼합재료. 265×150cm 황창배미술관 제공
연극반 활동도 하고 연예인 아닌 사람으로는 최초로 포도주 광고도 찍은 황창배는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그림 중앙 인물의 손에 ‘반성문’이 들려 있 다. ‘무제’(2000년). 장지에 혼합재료. 265×150cm 황창배미술관 제공
《딥 컷(Deep Cut). 대중음악에서 쓰이는 이 말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니아들이 인정하는 명곡, ‘숨은 보석’을 가리킨다. 한국 미술에도 세계에 당당히 내놓을 만한 ‘딥 컷’이 있다. 다만 장식적 취향이나 접근성의 한계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미술의 ‘숨은 보석’을 지면에는 시원하게, 동아닷컴에는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1980년대 세계 미술계에는 신표현주의 바람이 불었다.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를 비롯해 신표현주의 작가들은 지금까지도 미술시장의 주류로 활동 중이다. 신표현주의를 한국적 맥락에서 보여준 작가가 황창배(1947∼2001)다.

황창배의 신표현주의는 파격에서 나온다.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사군자나 산수 같은 전통적 소재의 한계를 벗어나고 색채를 금기시하는 한국화의 관습을 탈피했다. “밀가루로 빵만 만드는 게 아니라 수제비, 국수도 해먹을 수 있다.” 그는 자신만의 시각언어를 완성했다.

2000년에 완성한 ‘무제’는 세련된 기교가 돋보인다. 그림의 절반 이상을 검은색, 갈색이 덮었으나 인물의 화려한 색채가 산뜻한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림 속 왼쪽 아래 나무에서 시작돼 오른쪽 상단까지 이어지는 녹색 선, 세 갈래로 뻗어나가 중심을 잡는 가운데 인물의 붉은 팔, 그림의 무게를 잡아주는 어두운 배경 위 인물의 무채색 옷을 눈여겨보자.

화면의 리듬감을 위해 인체의 형태나 색채, 배치를 자유자재로 변형했다. 그림의 출발은 도시 풍경이지만 결과물은 작가 고유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버전이다. 20세기 초 독일의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1880∼1938), 노르웨이의 에드바르 뭉크(1863∼1944) 등의 표현주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속성이다.

운보 김기창 화백(1913∼2001)은 한때 자신을 찾는 기자들에게 “나 말고 황창배에게 가보라”고 했다. 그러나 동양화와 서양화를 구분하는 시각 탓에 그는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아래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더 자세히 만날 수 있다.

● 전통에 대한 저항, 장르 넘나든 파격… 한국화의 테러리스트

자유롭게 종이 위에 번지도록 무작위로 선을 그린 다음 구체적인 형상을 추가한 ‘숨은 그림 찾기’ 시리즈 중 한 작품인 ‘무제’(1987년). 종이에 채색. 150×189.5cm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자유롭게 종이 위에 번지도록 무작위로 선을 그린 다음 구체적인 형상을 추가한 ‘숨은 그림 찾기’ 시리즈 중 한 작품인 ‘무제’(1987년). 종이에 채색. 150×189.5cm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소정(素丁) 황창배(1947∼2001)

▽1947년 서울 출생
▽1975년 서울대 회화과(동양화) 석사
▽1978년 제2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대통령상
▽1988년 미국 국무성 초청 뉴욕 아티스트 콜로니(Yaddo) 작업
▽1997년 ‘북한 문화유산 조사단’ 일원으로 화가 최초 방북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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