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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미신 취급받던 한의학은 어떻게 근대화를 이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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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미신 취급받던 한의학은 어떻게 근대화를 이뤘나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입력 2019-11-02 03:00수정 2019-11-0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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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한의학-근대, 권력, 창조/김종영 지음/360쪽·2만 원·돌베개
한의학의 근대는 혼종적 근대(하이브리드 모더니티)다. 현대의 한의학에는 과학, 양의학, 병원 조직 체계 등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합됐다는 뜻이다. 싸움은 때때로 창조를 낳는다. 한의학은 양의학(과학)과의 싸움을 통해 더 많은 인프라 권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50대 남성 이발사인 박모 씨. 그는 오른팔과 다리에 마비 증상이 있어 중풍 치료로 유명한 병원에 간다. 병원에서는 양의가 자기공명영상(MRI)과 심전도, 혈액 검사를 한 뒤 고혈압과 뇌경색 진단을 내린다. 혈전용해제와 항혈소판응고제가 처방된다. 옆에 있던 한의사가 맥을 짚어보고, 혀를 내밀라고 하면서 설진을 한다. 그에겐 태음인 체질에 맞는 한약이 처방된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한방과 양방 전문의 협진센터 모습이다. 20세기 근대화 과정에서 미신으로 치부됐던 한의학이 현대의학을 받아들여 ‘혼종(하이브리드) 의료문화’를 탄생시키며 생명력을 키워가고 있는 현장이다. 요즘 한의사는 엑스레이를 활용하고, 실험실에서 연구해 세계 유수 과학지에 실리는 영어 논문을 쓴다. 기업들은 앞다퉈 한방화장품, 천연물 신약을 내놓는다. 세계 전통의학에서 한의학만큼 성공적인 사례는 드물다.

이 책은 사회학자인 저자가 대학원생 시절부터 한의학 실험실 관찰을 시작해 20년간 ‘한의학 근대화’ 과정을 연구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한의학의 과학화라는 창을 통해 한국 사회의 ‘근대성’과 ‘권력’을 설명한다. “근대는 한국인들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낳았다. 한국 근대의 아버지는 서구이고, 우리는 거세당할 위협을 느끼며 서구가 제시한 사회모델과 질서 체계를 따라가야 한다는 집단적 억압에 시달려 왔다.”



그는 ‘근대-전통’, ‘서구-비(非)서구’, ‘과학-전통지식’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에 도전하며 “비서구에서 창조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실제로 한의학은 양의학(과학)과 충돌해 왔지만 끊임없이 이들과의 하이브리드화를 통해 확장됐고, 국가와의 싸움과 타협을 통해 자신들의 인프라 권력을 성장시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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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한의학은 구한말까지 국왕과 왕실에 대한 의료 활동을 담당했지만, 일제강점기에 식민화의 대상이 된다. 1914년 일제의 근대적 의사면허 제도가 도입되고, 한의사는 의생으로 격하된다. 한의학은 일제에 의해 ‘미개와 후진을 상징하는 소재’가 됐다. 광복 이후에 1951년 의료법 개정으로 양·한방 이원 의료체계가 탄생했지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양의학과 갈등을 겪었다. 1990년대 한약 분쟁이 대표적이다. 한약 분쟁을 계기로 한의학계는 역설적으로 과학적 전환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이후 정부와의 투쟁 속에서 한의약정책관, 한방전문의 제도, 한의약육성법 제정, 국립대 한의학과 설치, 양·한방 협진 의료 체계 법제화 등 정치적 권력을 크게 확장해 왔다.

저자가 이 책에서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의학이 아니라 ‘식민지 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으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 근대화론 논쟁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동양의 정신, 서양의 물질’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있으며, 모든 사안을 ‘일관된 전체’로 설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의학의 근대화는 통일적 전체가 아니라 우발적인 역사적 사건들, 공격적인 한의사 집단의 정치력, 한의학과 양의학의 혼종성 등 ‘비통일적 세트(set)들’의 확장과 변화다. 통일적 전체로 근대를 이해하는 것은 ‘전부 아니면 무(無)’라는 조급하고 과격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비통일적 세트들’로서의 근대는 다양한 방식으로 행위자들의 자율성과 창조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근대는 끊임없이 확장 가능한 행위자들의 열린 기획이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하이브리드 한의학#김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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