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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권법 전문가 박찬운 “무역규제 풀려면 日 청구권 중재 공론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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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권법 전문가 박찬운 “무역규제 풀려면 日 청구권 중재 공론화해야”

정현상 기자 입력 2019-08-16 15:00수정 2019-08-1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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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판결 존중, 국제법 절차 무시’는 이율배반”
[박해윤 기자]

한일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고 있다. 수십 년간 이어온 양국의 선린 우호관계가 위기를 맞았다.

일본은 7월 1일 한국 반도체 소재에 대한 1차 수출규제에 이어 8월 2일 백색국가(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국·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 등으로 경제 도발을 해왔다. 수출규제 이유에 대해 안보 문제니 과거사 문제니 하며 말을 돌리던 일본이 8월 6일 본색을 드러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74주년을 맞아 열린 행사에서 “한국이 한일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하면서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며 “가장 큰 문제는 국가 간의 약속을 지키는 것에 관한 신뢰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배상 청구권은 소멸됐고 협정이 명시한 중재 요청을 한국이 거부하고 있어 수출규제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한국 정부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있다. 또 당장은 경제에 악영향이 있을지라도 이번 사태를 일본을 넘어설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8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해 “일본은 자유무역 질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나라이고, 자국에 필요할 때는 자유무역주의를 적극 주장해온 나라이므로 이번 조치는 매우 이율배반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광복절 축사에서 말했다.

“日, 국제법 위반하고 자유무역 훼손”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7월 19일 브리핑에서 강제징용과 관련한 일본 외무상의 담화를 비난했다.

주요기사

“먼저 우리가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일본 측의 계속된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대법원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반인도적 범죄 및 인권침해를 포함하지 않았다고 판결을 내렸으며 민주국가로서 한국은 이러한 판결을 무시할 수도, 폐기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측과 외교 채널을 통한 통상적인 협의를 지속해왔습니다. 그런데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다 소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은 일방적인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고 이는 세계무역기구(WTO) 원칙, 그리고 자유무역 규범과 G20 오사카 정상회의에서 발언한 자유무역 원칙, 나아가 글로벌 밸류체인(value chain·기업 활동에서 부가가치가 생성되는 과정을 말하는 가치사슬)도 심각하게 훼손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오히려 국제법을 위반하는 주체는 일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욱이 근본적으로 지적할 점은 당초 강제징용이라는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통해 국제법을 위반한 것은 바로 일본입니다. 이런 점을 우리 대법원 판결이 지적한 것입니다. 또한 일본은 청구권협정상 중재를 통한 문제 해결을 지속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로서는 일 측이 설정한 자의적 일방적인 시한에 동의한 바가 없습니다. 아울러 일반적으로 두 국가가 중재 절차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 결과적으로 일부 승소, 일부 패소하는 경우가 많아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고, 장기간 중재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양 국민 간 적대감이 커져 미래지향적인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국민 동의 구하고 치열한 논의 필요”

결국 한일 정부가 맞서고 있는 지점은 청구권협정의 해석 문제다. 개인의 청구권이 과연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했느냐는 문제를 두고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절차상의 의견 차이도 있다. 청구권협정 제3조에는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이 발생할 경우 우선 외교적 경로로 해결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외교적 경로로 해결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이 중재를 요청하면 30일 내에 중재위원회에 회부하며, 합의하지 못했을 때 30일 내에 제3국 중재위원을 포함하는 중재위를 다시 구성해 절차를 밟게 된다. 한일 정부는 외교적 경로로 해결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느냐는 문제와 중재위 절차 등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 숙의(熟議) 과정을 거쳐 중재 절차를 밟는 안이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국제인권법 전문가이자 한일관계 전문가인 박찬운(57)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주인공. 박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인권의식이 매우 높아진 새로운 국제법 질서에서 54년 전의 협정을 다시 들여다보면 중재위에서 한국 측이 이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또 “감정싸움이 아니라 논리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제기한 중재 절차를 밟아야 하고, 중재 절차를 받아들이면서 그 대가로 일본의 무역규제를 푸는 외교적 수단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박 교수는 “중재 절차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고, 이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전개돼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를 위해 최고 전문가들의 식견과 지혜를 활용할 수 있도록 공식·비공식 자문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또 박 교수는 “법적 책임과 역사적 책임을 분리해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칼럼과 인터뷰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한일관계에서 법적 배상과 역사적 책임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현재 한일 갈등의 직접 원인은 법적 배상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일 정부나 강제징용 피해자인 원고들과 일본 기업, 일본 정부의 해석이 극명하게 갈린 상황입니다. 이 사안을 법률적 차원에서 해결하려 한다면 청구권협정에 명시돼 있는 절차에 따라야 합니다. 이것은 한국이나 일본 모두 부인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역사적 갈등은 법적 책임 유무를 떠난 부분입니다. 역사의 교훈을 어떻게 볼 것이냐, 역사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양심과 도덕의 문제입니다. 개인 청구권 문제에 대해 중재기관이나 국제 사법기구의 유권해석이 나온다 해도 그와 상관없이 역사적 책임, 한일 간 근본적 불신의 문제는 역사, 문화 등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걸려 있기 때문에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장기적 과제로 남겨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은 매우 특수한 나라입니다. 역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부도덕한 국가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더욱 더 일본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 도덕적 우위에 서서 국제사회에서 일본이란 나라를 견인해나갈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법적 책임 문제가 직접적인 불씨가 돼 무역분쟁에 이른 상황이므로 이것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日, 동북아 질서 중요한 파트너

- 법적 책임 문제를 결론 내려면….

“잘 생각해보면 이율배반 아닙니까. 우리 정부가 한편으로는 청구권협정이 개인의 청구권을 다루지 않았다는 대법원 판결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중재 절차 등 국제적 사법절차에 따라 해결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 말입니다. 이것은 중재로 가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분쟁에 대한 사법적 절차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분쟁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사법 절차에 가기 전에 확연히 그 승패를 알 수 있다면 서로 문제 제기를 하겠습니까. 다툼의 소지가 있으니 오랜 기간 그 해석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 문제를 이렇게 끌고 가야 할까요. 미우나 고우나 일본은 우리와 오랜 기간, 동북아 질서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파트너였습니다. 앞으로도 그것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특히 지금은 상호 의존적인 국제화 시대입니다. 우리가 일본과 선린관계를 형성하면서 동북아 질서를 함께 구축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 과거에는 중재 절차를 밟는 것에 반대하신 것으로 아는데, 왜 지금은 중재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역사적 문제에 대한 갈등이 결국 우리에게 현실적 문제, 불안, 걱정을 야기했고, 이젠 더는 이런 식으로 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이 역사 갈등이 말싸움으로 끝났습니다. 우리는 계속 역사적인 문제를 제기했지만 일본은 그 진실을 은폐하거나 부인해왔습니다. 양국 갈등이 정치적으로 고조되기도 하고 상당 기간 잠잠하기도 했지요. 그럴 때는 우리가 굳이 조금이라도 패배 가능성이 있는 제3국 중재 등의 상황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지요.

독도 영유권 문제도 일본은 국제 사법절차로 가서 판가름 내자고 하지요. 일본은 독도에 대해 실효적 지배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법절차에서 이기면 좋고 져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100% 이겨야만 본전인 거지요. 지면 다 잃게 되니까.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우리가 그런 선택을 왜 합니까. 아무리 국제법적으로 승기를 잡을 이론과 증거를 갖고 있다 해도 우리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요.

국가 합의로 개인 인권 건드릴 수 없어

2018년 10월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 피해자들의 영정을 들고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춘식(95) 씨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신원건 동아일보 기자]₼蛭鲕뢬ꃬₜ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도 이제까지는 그런 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었어요. 말싸움 정도로 여길 수 있었고, 굳이 위험을 떠안을 필요가 없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발단이 돼 무역 갈등이 발생했고, 분쟁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실제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사지 말자, 가지 말자, 배일(排日), 반일(反日) 구호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반도체 부품 수입 규제에서 더 나아가 1194가지 품목에 대한 무역 규제는 우리 경제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큽니다. 이제 우리 국민이 그 상황을 해소할 대책을 마련하라고 아우성을 칠 겁니다. 과연 우리 정부는 어떤 협상 카드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중요한 카드는 중재절차로 가서 현대 국제법 질서 속에서 법적 책임과 관련해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 결론을 내고, 그 문제가 발단이 돼 무역 규제로 갔으니 일본에 그것을 원상 복구할 것을 요구하는 겁니다. 그래야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 현대 국제법 질서란 무엇을 말하는지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인권법이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국제 인권법 차원에서는 어떤 조약이 개인의 인권과 관련된 부분이 있으면 국가 간 합의로 개인의 인권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원칙이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개인의 청구권은 국가 간 합의로써 포기될 수 없다는 얘기의 배경입니다. 그런 식의 합의는 무효라는 거지요.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 등은 단순하게 개인 차원에서 일어난 범죄행위로 볼 수 없고 국가가 직접 관여했고 책임져야 하는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이미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유엔이 만든 국제형사재판소의 중요한 범죄 가운데 하나가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라는 범죄 유형입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저지른 만행은 대부분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합니다. 세계대전 이후 국제법에는 반인도적 죄를 저지른 국가의 책임자들은 반드시 처벌돼야 하고, 그 희생자의 인권은 모든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는 규범이 정해졌습니다. 이런 것을 위반하는 어떤 조약도 강행규범 위반으로 무효입니다.

이런 현대 국제법 질서에서 보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에 개인의 모든 청구권(반인도적 범죄에 따른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 포함)까지 포기한 것으로 해석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청구권협정은 국가 간에 이뤄진 조약이기 때문에 그 약속은 원칙적으로 지켜져야 하고, 해석상에 문제가 있다면 동 협정이 예정하고 있는 절차(외교적 노력과 중재)에 의해 정리돼야 합니다.”

한국이 지는 상황 받아들일 수 있나

- 그런데 중재 절차에서 한국이 질 수도 있다면 그런 상황을 국민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현재는 일본이 개과천선하지 않는 한 단 한 푼도 받아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중재 절차에 따른 법적 결론은 이기든 지든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재 절차에서 개인의 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일본은 우리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국내의 일본 기업에 대한 재산 압류 강제집행 절차가 진행되겠지요. 만약 우리가 진다면 우리 사법부가 협정을 잘못 해석했다는 결론이 나오고, 일본 입장에선 우리가 협정을 위반한 것이 되지요. 그러면 부득이 우리 정부가 판결금을 대신 지불해주는 절차를 밟아야 할 겁니다.

잘 생각해보면 이런 중재 절차를 거친다는 것은 1965년 체제의 정리 혹은 극복을 뜻합니다. 우리에게 불리하든 유리하든 이 문제는 이제 일단락 지어야 합니다. 유리한 중재 결정이 나오면 나오는 대로, 불리한 결론이 나오면 나오는 대로 정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현재 국제법 질서라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 중재가 과연 유일한 해결책일까요.

“유일하다기보다는 매우 중요한 카드라는 겁니다. 일본이 협정 해석과 관련된 분쟁이 생겼으니 협정에서 정한 분쟁 해결 절차로 가자고 국제사회에 선전하고 있는데, 우리는 일본이 외교적 노력도 하지 않고, 우리가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중재 절차로 가자고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두 주장만 비교해보면 우리 논리가 빈약합니다. 자칫 분쟁 해결 절차를 회피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적 피해가 나타날 상황에서는 적절한 대응 태세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중재 절차가 분명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여러 개의 카드 중 하나지만, 현재 대통령과 우리 정부는 이것을 선택지의 하나로 삼는 것을 꺼리는 것 같습니다.”

여권의 총선 부담

- 청와대가 중재 절차를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치적인 부담 탓이죠. 많은 사람이 중재 절차로 가면 곧 우리가 패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우리 정부의 정치적 부담을 줄여줘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그쪽으로 가기가 대단히 힘들지요. 그 부분은 결국 전문가 집단에 맡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여야가 추천하는 전문가들의 판단에 따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듯합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를 거친다든지 하는 방식도 있겠지요. 그런 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국민적 합의를 통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전제돼야 합니다.

만약 야당이 반대하거나, 중재를 받는 것이 애국이냐 매국이냐 프레임으로 야당이나 언론의 공격을 받게 되면 이 카드를 쓸 수가 없어요. 야당이나 언론에서 법적 문제와 역사적 문제를 분리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이것을 대통령이나 정부가 전격적으로 받아들일 때 정치적 위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그것입니다. 여야가 합의해서 대통령에게 이 카드를 제시하고, 대통령이 외교권을 이용해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정치적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것이 위기 상황에서 우리 국민이 선택해야 할 위기 탈출 방안입니다.”

- 전문가 집단이 중재 절차를 받아들일 수 있는 국민 여론을 조성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정말 새로운 한일관계 질서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국민의 자각에 의해 ‘사지 말자, 가지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우리 정부가 힘을 받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카드입니다. 하지만 불매운동 등을 정부가 주도한다면 관제 민족주의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한일관계를 더 꼬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박 교수는 8월 5일 SNS에 ‘어리석은 반일감정 조장’에 대한 글을 올렸다. 서울 중구청이 광복절을 맞이해 명동거리 등에 태극기를 게양하면서 ‘노 재팬기’도 함께 꽂는다는 뉴스를 보고 올린 글이다.

반일감정 조장 어리석은 일

“그런 식의 반일감정 조장은 일본 전체를 잃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마저 한국을 멀리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자칫 일본인 전체에 대한 혐오로도 이어질 수 있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 명의 일본인 관광객이 찾는 명동 한가운데서, 노 재팬기가 펄럭일 때, 그들이 갖는 감정을 생각해보았는가. 입장을 바꿔 대한민국 관광객들이 동경 한복판에서 노 코리아기가 펄럭이는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해보라. 생각만 해도 섬찟하지 않은가. 그런 일본에 우리가 다시 갈 수 있겠는가. 우리 시민이 지금 반일감정을 표시하는 것은 일본인 전체를 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다. 일본 극우세력을 대표하는 아베의 무도한 행동에 분노하는 것이다. 정부(자치단체 포함)가 이런 정서를 외교의 장에서 활용하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당연하나), 그것을 넘어 직접적으로 조장하는 것은, 일본과 경제전쟁을 넘어 진짜 전쟁을 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박 교수의 글이 SNS에 퍼지고, 의식 있는 시민들의 반대 여론이 일어나 결국 서울 중구청은 노 재팬 배너기를 거둬들였다.

- 중재로 갔을 때 이기고 지는 것 외에 다른 경우의 수는 없는지요.

“중재로 갈 때 중재의 대상을 무엇으로 삼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 유무와 관련된 청구권협정의 해석이 1차적 예상 중재 대상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된 협정의 해석, 그리고 일본이 전쟁 중에 저지른 반인도적·비인간적 처우나 범죄와 관련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도 따져볼 수 있겠지요. 이번 중재 절차는 거기에 국한해서 진행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중재가 그것을 뛰어넘어 한일 간의 전반적 갈등까지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중재위의 권한을 넘는 것입니다. 청구권협정이 예정하고 있는 중재절차는 오직 협정의 해석과 관련해 분쟁이 발생했을 때 그 해석을 공정한 중재기관에서 판단케 하자는 것이 목표입니다. 단지 사법적 절차일 뿐이니, 이 중재 절차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日, 중국엔 사과하고 한국엔 인색

- 일본은 중국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서는 공식 사과하고 배상했는데, 한국에는 이토록 인색한 이유가 무엇인지요.

“일본이 한국과는 청구권협정을 맺었고, 중국과는 맺지 않았으니까요.”

- 한일청구권협정은 어떤 내용이 부족하고,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한계, 그에 따라 나온 한일청구권협정의 한계, 이 두 한계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아시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한 1951년,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에 세계대전 당사자로서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6·25전쟁 중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식민 지배의 불법성이나 그에 따른 일본의 배상책임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지요. 냉전체제로 세계가 나뉘어 있었고, 미국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기보다 일본 측의 주장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강화조약을 만들게 됐지요. 그런 세계정세 속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 이뤄진 겁니다. 당시 근대화와 산업화를 내세운 박정희 정권은 적은 돈이라 해도 일본으로부터 빨리 받아 뭔가 해보려는 조급한 마음 탓에 법적인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매우 모호한 협정을 맺었습니다. 청구권과 관련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요. 당연히 그 협정 자체는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았지요.”

“정부 시야 너무 좁다”

국내 한센인 500여 명이 2005년 10월 27일 서울 종로구 훈정동 종묘공원에서 일본 정부의 보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당시 박찬운 교수는 대일본 보상 소송에서 한국변호단 간사를 맡아 일본의 보상을 이끌어냈다. [뉴스1]

-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일협정 직후 담화문에 “(협정을 잘 이행해서) 우리 국민이 역시 일본은 믿을 나라가 못 된다고 생각지 않도록 해달라”며 우리 국민과 일본에 감정적으로 호소했습니다. (협정 자체에 모호성이 있든 없든) 일단은 매듭을 지었으니 잘 이행되기를 바란다는 뜻이었지요. 결국 그 실책을 문재인 정부가 떠안은 셈인데요.

“문재인 정부는 수면으로 떠오른 청구권협정 체제의 한계를 해결해야 하는 정부가 됐습니다. 자신의 책임과 상관없이 이를 해결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일본에 대해 강공을 펼 수 있는 여건도 되는 겁니다. 만약 박정희 정권과 연속선상에 있는 정권이라면 이런 갈등이 극명하게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과거의 실책을 자신의 실책으로 볼 필요가 없거든요. 당당하게 일본에 대해 주체적으로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거죠. 일본은 과거 정권과 전혀 다른 상황을 마주하게 돼 갈등이 현실화된 겁니다.

저는 이 문제가 문재인 정부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봅니다. 정부가 일본과 대등한 관계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때 처음엔 불편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양상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한일 간에 경제전쟁으로까지 표현되는, 중대한 기로에 와 있습니다. 외교와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으니 우리 국민이 한마음으로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정부의 시야가 너무 좁은 것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 갈등을 해결하는 데는 하나의 방향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원사회라는 게 뭡니까.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 정부와 대통령은 다원적 사회가 가진 다양한 해결 방향에 대해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경청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을 통해 선택지를 넓히고,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면 국민에게 정확하게 설명하고 호소하며 지지를 얻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내부 분열로 가게 되면 어떤 정권도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일본 양심 세력과 연대 필요”

- 일본에 역사적 책임은 어떻게 물어야 할까요.

“전후 질서를 만들어나갈 때 독일은 일본과 매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독일은 진실을 정면으로 직시하면서 문제를 해결했지만, 일본은 회피하면서 봉합하려고 했던 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국제 질서에도 큰 차이를 낳았습니다. 독일은 전쟁 중에 바로 옆 나라인 프랑스를 점령해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았지만 책임을 인정하고 진정 어린 사과를 했습니다. 그처럼 비극적 역사가 재연되지 않도록 노력한 것을 주변국이 인정했고, 그것이 유럽 통합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과 같은 안정된 유럽 정치 질서를 구축하게 된 핵심 열쇠가 바로 독일의 역사 인식이었지요. 일본은 그러지 못했으니 계속 동북아 질서가 흔들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일본의 책임이 대단히 무겁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문제를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곳은 아베 정권을 지탱하는 보수 세력입니다. 이들이 개과천선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일본의 진보 세력, 즉 역사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양심 세력을 분리해서 우리가 대응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이 반대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쪽은 아베 정권입니다. 일본의 선량한 시민들과는 연대하는 것이 현재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이라고 봅니다.”

- 매우 중요한 지적 같습니다.

“7월 25일에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일본 지식인들이 ‘한국을 적으로 보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등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아베 정권을 향한 맹렬한 비판이었지요. 그처럼 일본 사회에서도 그런 지식인 계층, 양심 세력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을 남으로 생각지 않는 친구가 일본 사회에 있으니, 그들과 계속 연대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법률 대응은 타이밍이 중요, 지금이 바로 그때”

- 한일 갈등을 법적인 시각으로만 접근할 경우의 문제는 무엇인지요.

“법률적인 대응은 어떤 경우엔 매우 협소하고, 마지막 단계에 하는 것이 좋을 수 있습니다. 법률적인 접근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지요. 저도 그건 잘 압니다.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한데,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갈등이 수면으로 팍 올라왔으니까, 이럴 때 쓸 수 있는 방법인 거죠. 법률 문제는 법률로 푸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전직 변호사이니만큼, 정치인 문재인이 아니라 변호사 문재인의 생각을 가지고 이 문제를 풀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 일본이 수출규제를 시작했고,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도 실행했습니다. 향후 일본이 할 수 있는 조치는 어떤 것들이 있을는지요.

“상당히 예측하기 힘든데요. 화이트리스트 배제 전에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랐습니다. 미국의 개입 얘기도 나왔지만 저는 미국이 개입해 이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재 절차를 포함해서 ‘현상동결합의(standstill agreement)’ 같은 방식은 극적인 타결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일본이 거부해서 무산됐습니다. 그러자 우리도 뭔가 카드를 쥐고 있어야 한다면서 한일정보보호협정(GSOMIA) 카드를 살피고 있지요. 저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현실화되면 정말로 한일, 나아가 한미일 갈등이 지금보다 심해져 생각할 수 없는 지경으로 가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 일본의 수출규제 등의 조치에 대해 한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을 고려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WTO의 분쟁해결 상소기구 위원이 12월엔 1명으로 줄어들어 기능이 마비될 수 있고, 분쟁 판결에 불복해도 별다른 제재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의 WTO 제소 방안이 과연 실익이 있을까요.

“우선 일본에서 수출규제, 무역 갈등으로 표면화됐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그것을 두고 볼 수는 없는 것이고, 당연히 WTO에 제소하는 쪽으로 가야지요. 그러지 않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만은 없지요. 물론 그것이 상당한 시간이 걸리니 그사이에 어려운 일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 카드를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그것이 현재의 갈등을 해결하는 주요 수단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저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이지요.”

“명분만큼 실리도 중요”

- 이번 한일 갈등을 딛고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번 한일 갈등은 과거에 불거졌던 것과 달리 어떤 임계점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형식으로든 이 갈등을 극복해야 하는데, 양국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일은 공동운명체죠. 그동안 1965년 청구권협정과 관련된 해석 문제로 쌍방이 다퉈왔는데, 이제는 그것을 뛰어넘는 신(新)한일관계를 맺는 체제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그것을 일본에 적극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국제사회에서도 정당성을 먼저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외교에선 명분도 중요하지만 실리도 매우 중요합니다. 명분과 관련해서는 누가 먼저 얘기하느냐, 누가 먼저 이니셔티브(initiative·주도권)를 쥐느냐가 매우 중요하죠. 일본의 중재 회부 요구에 응하는 게 끌려가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먼저 제안해서 일본을 끌고 가는 방식으로 한일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현재의 한일 갈등을 65년 체제를 극복하면서 신한일관계를 만드는 계기로 삼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박찬운
●1962년 충남 청양, 한양대 법대, 고려대 법학박사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 합격
●대한변협 인권위 부위원장
●대(對) 일본 소록도 보상소송 한국변호단 간사
● 現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 국제인권 전문위원, 인권법학회 회장,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저서: ‘국제인권법’ ‘문명과의 대화’ ‘자유란 무엇인가’ 등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9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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