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어컨 없는 집은 밖보다 더 더워요” 맞춤형 폭염대책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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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8월 5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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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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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바람이라도 불지…안은 더워요”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의 쪽방촌에서 만난 김용수 씨(74)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김 씨가 있던 쪽방은 3.3㎡(1평) 남짓. 어른 두 명이 앉으면 남는 공간이 없을 정도로 좁았다. 한쪽에는 휴대용 가스버너와 선풍기, 소형 냉장고, TV 등이 붙어 있었다. 창문이 없어 방 안에 들어간 지 1분도 안 돼 코와 이마에 땀이 맺혔다. 이날 서울은 낮 최고기온이 27.5도에 60㎜ 가량의 비까지 내려 더위가 한풀 꺾였지만 김 씨의 방은 선풍기가 향하는 곳을 제외하면 후끈했다.

기상청은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넘기는 날이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 ‘폭염특보’를 발령한다. 발령기준은 기상청에서 측정한 온도다. 그러다보니 김 씨의 집처럼 여름철 쪽방은 늘 ‘폭염특보’ 상태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가 2016년 8월 이 곳의 온도를 측정한 결과, 바깥 기온은 26.5~35.6도였지만 방 안은 30.5~38.8도였다. 이 곳에 사는 독거노인 20명을 조사한 결과 70%가 어지러움과 두통, 무력감과 호흡곤란 등의 건강 이상을 호소했다. 이에 폭염 발령기준을 다양화하고 폭염 대응도 맞춤형으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맞춤형 폭염 대책 절실

“33도에 일괄적으로 발령되는 폭염 특보를 보고 밭에 나갔다가 온열질환에 노출될 수 있어요”

채여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실제 폭염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취약계층의 체감 영향을 분석했다.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집이나 에어컨이 없는 집 등 주거환경에 따라 실내온도의 차이가 컸다. 고혈압 등 지병 유무에 따라 높은 온도에서 느끼는 어지럼증 등의 영향이 달랐다. 성별에 따라서도 실내기온이 1도 올라갈 때 남성은 0.03도, 여성은 0.06도 증가하는 등 차이가 있었다.

또 기온 33도를 전제로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온도를 측정했을 때 환경에 따라 차이가 확연했다. 논에선 39.6도, 밭은 40.2도, 공사장은 45.5도, 흙운동장은 43.2도, 인조잔디 운동장은 45.1도, 보행로는 44.4도였다. 채 선임연구위원은 “폭염으로 인한 피해는 기상·사회·환경적 요인 등이 복합돼 결정된다”며 “현재의 획일화된 기온과 행동요령은 위험수준 판단에 직관적이지만 다양한 수요자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아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별 차이도 존재한다. 지난해 KEI가 인구 대비 온열질환자가 많이 발생한 곳을 조사한 결과 전북 임실군(1만 명당 44.5명)의 발병률이 가장 높았다. 이어 전남 신안군(28.5명) 고흥군(20.6명) 보성군(18.3명) 장성군(17.6명)의 순서였다. 폭염일수는 서울이나 대구가 훨씬 많았지만 온열질환자 발병률은 이와 비례하지 않은 것이다. 폭염에 취약한 고령 인구가 많고 농업 종사자가 많은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환경부가 1일 발표한 전국 229개 기초단체의 2021~2030년 폭염위험도 평가 결과도 이런 점을 고려해 지역별 평균기온 상승 등 위해성과 고령화 등으로 인한 노출성, 도시화 비율 같은 취약성 등 3개 지표를 기초로 했다. 각 지역별 기온은 물론 지형, 인구 분포, 주요 산업, 도시화 정도, 보건시설 유무 등에 따라 폭염 위험성이 어떻게 다른지 지방자치단체가 알고 맞춰서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눈길 끄는 폭염 영향 예보

지난해 폭염이 자연재난에 포함되는 등 폭염에 의한 위험성이 커지면서 기상청은 6월부터 ‘폭염 영향 예보’를 시작했다. 기온이 높아지면 농·수산업에 피해가 발생하고, 야외근로자의 건강 이상 등 산업에도 영향을 끼치는 만큼 일 최고기온에 따른 폭염특보를 발령할 때 각 분야별 영향 수준도 함께 알리겠다는 취지다. 현재는 보건, 축산업, 산업, 교통 부문의 위험 수준을 초록, 노랑, 주황, 빨강으로 나눠 표시하고 있다. 빨강색일수록 해당 부문에 폭염이 미치는 위험 수준이 높아 대비를 잘 해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개개인이 느끼는 온도지수를 더 정교화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국립기상과학원에서는 한국형 인지온도를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인지온도는 단순히 온도계에 기록된 기온뿐 아니라 공기 중 습도, 노면에서의 바람, 지표면에서 반사되는 복사열, 옷을 입어서 얻는 쾌적성 등을 모두 고려한 폭염진단지수다. 하종철 국립기상과학원 응용기상연구과장은 “해외에서 활용되는 인지온도를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습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여름철 기온 특성 등을 반영한 인지온도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는 남성을 기준으로 한 인지온도를 개발 중인데, 향후엔 성별과 연령별 차이를 고려한 인지 온도도 개발할 계획이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최혜승 인턴기자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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